소설리스트

고양이 키스-106화 (106/114)

106화. 고양이와 내기

“사신탈이란 본래 인간들 사이에 숨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 그 안에 가만히 있으면 사신들 도 널 알아볼 재간은 없다. 다만, 힘을 쓸 때만은 낌새를 눈치챌 거다. 변신하는 순간이나, 순간이동 하는 찰나에는…….”

“……들키겠군요.”

“특히나 너처럼 평범한 영혼이 제대로 기를 갈무리할 수 있을 리도 없지. 너 기운을 쓰는 법 모르지?”

“그게…… 어떤 건데요?”

이 몸은 여러 가지 기를 이용해 움직였다. 달의 음기나, 시율이 주는 양기를 충전해서 그 힘으로 사람의 모습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건 숨 쉬는 것과 같은 일이라 ‘쓰는 법’과는 다른 것 같았다.

해인이 멍청하게 되묻자 야호가 면전에 대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참, 너 순간이동 해봤다고 했지? 그때 기운을 얼마나 썼냐.”

“……딱 한 번 해봤어요. 그런데 사람으로 서너 시간 있을 수 있을 만큼의 기운이 사라졌어요. 그렇게 멀리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그게 바로 기운을 ‘못쓰는’ 거다. 보통은 그렇게 많이 안 쓸걸? 네가 힘을 조절할 수 없으니 기운을 낭비한 거지. 네가 그런 식으로 흘린 기운들을 사신들이 감지하면…… 모든 게 끝이다.”

순간 야호의 얼굴이 깜짝 놀랄 만큼 가까워졌다. 바짝 힘을 준 미간이 겁을 주는 어미 짐승의 것 같았다.

“네가 힘을 쓰는 건 ‘나 여기 있소, 잡아가시오.’ 하는 것밖에 되지 않아. 너희들 표현으로 자살행위라는 거지.”

“그…… 나를, 사신으로 알 수도 있잖아요……? 그냥 그런 척하면…….”

“쯔쯧. 세상 천지에 인간을 살리려고 드는 사신이 어디에 있겠냐.”

바보같이 태평하다고 생각했던 야호가 저를 그런 눈으로 보자 해인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누가 누구를 바보 취급하는 건지…….

물론 이쪽 방면의 지식은 야호가 월등하니 입 다물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명심해라. 무턱대고 힘을 쓰다간 무슨 사달이 날지 몰라. 특히나 순간이동 같은 건 기를 흘리고 다니는 행위니까, 절대로 쓰지 마라. 앞으로는.”

“……으음.”

“연습 같은 거 하다가는 너부터 죽어. 아니, 살아날 수 없어.”

아무리 그렇게 겁을 줘도, 선뜻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해인은 다만 바짝 말라오는 목을 축였다.

“대답해라.”

“모르겠어요…….”

“이 멍청이가.”

“그, 그치만! 꼭 내가 힘을 써야 하는 위기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렇잖아요?”

“…….”

“어떤 사고일지 모르는 거잖아요! 아주 가벼운 사고일 수도…… 있는 거니까…….”

야호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지그시 해인을 바라보다가 혀를 찰 뿐이었다.

왜 평소처럼 귀를 후비적거리며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대답해주지 않는 걸까.

불안은 멋대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러다가 너무 커져서,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이 모든 게 너무나 벅찼다.

하지만 제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죽는 건 시율이라. 해인은 어떡하든 생각을 해야만 했다.

간절한 눈으로 야호에게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같은 보름달을 특히나 조심해라.”

야호는 괜찮을 거라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하늘을 가리켰다.

“보름달……?”

“보름달이 뜨는 날은 사신들의 힘이 가장 강력해지는 날이거든. 사신탈은 요괴의 몸을 비롯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음기에 최적화되어 있지. 아, 그건 알겠지?”

“알아요. 그런데 그게 왜요?”

“사신들이 가장 죽이기 힘든 건 건강한 젊은 남자거든. 그래서 주로 보름달이 뜰 때를 노릴 거야. 힘이 팽배할 때. 단명이란, 억지로 죽인다는 말과도 같아. 더 살 수도 있는 영혼의 수명을 토막 내는 거니까.”

언뜻, 그건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말로 들렸다. 죗값을 치른다는 기준을 두고 본다면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해인이 몰랐던 잔인한 이야기투성이였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자비롭지 않았다.

“누릴 수 있는 삶을 강제로 박탈시키는 거야. 그러니 영혼은 당연히 반발한다. 살려고 힘을 품어. 그럼 사신은 죽이기 위해 더 강한 살기를 써야 하지. 보름달이 뜨는 날만큼 사신이 칼을 들기 좋은 날도 없다.”

아직은 낮이라 보름달이 어슴푸레하게 그림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평소 덧없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던 달이, 이 순간에는 그를 죽이려는 처참한 칼날처럼 보였다.

하늘은 너무 넓었고, 그 안 어디에 다른 사신이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지금 하늘을 올려다보는 기분이 평소와는 너무도 달랐다. 누군가 그의 죗값을 물으러 올 거라고 생각하자 저 하늘마저 적으로 보여서…….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가르쳐 주마. 실질적으로 큰 보탬은 못 될 테지만.”

“……야호 님. 혹시, 보름달을 두 번 보고 가겠다고 했던 건…… 강 때문이었어요?”

“본래는 네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다만…… 네가 하고 있는 짓이 너무 가여워서 이러고 있는 건지도 몰라.”

“…….”

“해줄 것도 달리 없지만.”

이 두려운 순간에. 적어도 제 편으로 야호 하나는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 적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다.

해인이 너무 반짝반짝한 눈으로 저를 바라봐서일까. 부담스러운지 야호가 시선을 피하며 말을 덧붙였다.

“강조하지만 난 중립을 지켜야 하거든. 원망은 마라.”

“아니에요. 원망이라니, 당치도 않아요.”

“……인간들이란 해줄수록 양양이라…….”

“충분히 고마워요. 정말이에요! 야호 님이 없었다면…… 저, 지금 너무 무서워서 제정신이 아닐지도 몰라요.”

해인은 무서운 일에는 쥐약이었다. 하물며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공포 영화조차 보지 못했다. 대낮이어도, 누가 같이 봐줘도 절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와 견줄 수 없을 만큼 두려운 사실과 마주치고도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힘닿는 한 도와주려는 야호와…… 시율 때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가 없이 그를 위해 움직일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으니까.

죽어라, 기운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

“……괜히 알려줬어.”

“빨리 말해봐요!”

“그냥 경고만 해주려던 건데…… 내가 어쩌다 코를 뀄지……?”

“투덜, 투덜 남자가 시끄럽긴. 사신을 피하는 방법 없냐니까요?”

“가르쳐 준다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놀이터의 장난감 말 위에 올라탄 야호는 해인이 들려준 메론바를 먹으며 마지못해 질문에 대꾸는 해주고 있었지만, 그리 건질 건 없었다.

“사신들 속이기란 쉽지 않아. 인간들은 항상 그 방법에 목매지만 성공한 사례도 적고.”

“그건 있긴 있다는 거잖아요? 어떻게 하는 건데요?”

“뭐…… 사신들은 들어갈 수 없는 영험한 절에서 동자승으로 유년시절을 보낸다든가, 어릴 때 여장을 시켜서 다른 집에 맡겨 기른다든가.”

“강은 이미 어른인데요?”

“그러니까, 다 커버리면 숨기가 힘들어. 눈속임은 어릴 때나 되는 거니까.”

해인은 할 수만 있다면 전부 받아 적을 태세였다. 주술 때문에 오로지 머리로 외워야만 했지만 말이다.

“저기, 그럼 내가 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면요?”

“네가?”

“기를 못 써서 더 위험한 거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기를 다스리고 갈무리하는 건, 결코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적어도 몇십 년의 수련이 필요하지. 기를 느끼는 데만 최소 일이 년이 필요하고.”

“그래요……?”

매 질문마다 시무룩해지길 반복하는 해인이었고, 야호는 그 집요한 정성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끝없이 뭔가 생각해내는 집념은 감탄할 만했으니까.

“인석아, 누누이 말했잖냐.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네가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을 거라고.”

“……있긴 있는 거니까. 힘낼 거예요.”

“힘낸다고 사신이…….”

“야호 님이 그랬잖아요? 고비를 넘기면 살 수도 있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야호는 해인이 이렇게 집요하게 굴지 몰랐다.

처음엔, 당장 제 몸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데 그걸 거부하고 여기에 남겠다는 이유가 누구 때문인지 너무 뻔해서 보기 가여웠다.

명이 얼마 남지 않은 남자를 사랑하는 게 어떻게 가엽지 않을까.

심지어 그와의 기억을 잃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는…… 그가 저를 찾아오기를 바라는 덧없는 희망을 보면서는 절로 고개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인간들은 미련했다. 나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였다. 남은 시간을 알려준 건, 해인이 애꿎은 희망을 버리고 지금 남은 그와의 시간에 충실하기를 바라서였다.

“……넌, 네 몸으로 돌아가는 일부터 생각하는 게 낫기 않겠냐.”

“아뇨. 지금은 강이 가장 중요해요.”

“무슨 뜻이냐.”

“만약 아무런 대책도 나오지 않는다면…… 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영혼까지 꿰뚫어 보는 야호의 눈에는, 대부분의 인간의 운명이 보였다. 어떤 성격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며 남은 삶이 어떨지까지 전부.

하지만 드물게도 해인은, 잘 보이지 않았다.

겨우 그 영혼의 본질만 엿볼 수 있었다. 해인이 사신탈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위장이 용이한 걸 뒤집어쓰고 있는 것도 점을 치는 데 거슬리는데, 심지어 제 본래의 몸이 아니다 보니 모든 걸 볼 수는 없었다.

만약 이렇게 고집 있는 성격인 줄 알았더라면 시율의 운명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너 말이다…….”

“……앗, 강이다!”

한 소리 하려던 야호는, 해인이 쪼르르 달려가 버려서 말할 곳을 잃어야 했다. 분명 코는 제가 더 좋을 텐데, 시율의 기척을 먼저 느낀 건 해인이었다.

이게 바로 인간들의 무서운 점이었다. 낯간지럽게 표현하면 사랑의 힘이라고 해야 하나.

“너, 왜 또 나왔어?”

“오늘은 좀 따듯했잖아.”

“그래도 겨울은 겨울…….”

“여어!”

“……쳇.”

시율은 뒤늦게야 야호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야호가 가볍게 목짓을 하며 알은체를 하자, 대 놓고 혀를 찼다.

저런 건방진 인간이 어디가 좋은 걸까.

야호는 진심으로 그 점이 의문스러웠다. 해인과 시율은 본질부터가 꽤나 다른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시율은 어느 쪽이냐면, 살짝 사악한 쪽이었다. 그런데도 악귀가 들러붙지 않을 만큼 강한 기를 가지고 있었다.

화려한 전생의 내력을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강! 그러지 마.”

반면 해인은, 누가 봐도 순도 높은 선한 기운의 소유자로…… 속된말로 맛있어 보이는 영혼이었다.

저 몸 밖으로 빼낸다면 잡아먹겠다고 들러붙을 악귀가 한둘이 아닐 것 같았다.

저 둘의 영혼을 날로 붙여놓는다면, 이론만 보면 명명백백하게 해인 쪽이 잡아먹힐 터였다. 기의 세기부터가 달랐으니까.

그런 둘이 어울리냐 아니냐를 묻는다면, 당연히 아닌 쪽이었다.

그런데도 궁합이 좋아 보이는 건 왜일까.

강시율의 영혼이 해인의 영혼에 집착한다는 건 분명했다. 그런데 그게 잡아먹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다른 것들로부터 지키고 싶어 하는 걸로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건 성향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새끼로 여기고 기르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광경이었다.

해인의 전생까지 보인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텐데.

“야호 님! 얼른 와요!”

“……흥.”

“맛있는 거 해준대요! 빨리 와요.”

짙은 금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야호는 둘의 뒤를 따랐다. 둘이 서로를 위해 어디까지 할지가 궁금해졌다.

***

“저 녀석, 왠지 쳐다보는 게 기분 나빠.”

“유, 육식동물이라 그런 거 아닐까? 호랑이잖아.”

“뭔가…… 뼛속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단 말이지.”

“……기분 탓이겠지!”

뻔히 한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데 굳이 해인에게 야호의 험담을 늘어놓는 시율이었다. 들으라는 뜻이었고, 시율은 여전히 야호와 잘 지내볼 마음이 없었다.

해인의 노력이 가상하니 마지못해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걸 봐주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 간다고?”

“길어야 한 달. 다음 보름달이 뜰 때쯤.”

“……참아보지, 뭐.”

엘리베이터가 멈추자마자 시율은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고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어제 사온 엄청난 양의 재료를 해치우기 위해서라도 뭔가 만들긴 만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해인은 그런 시율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야호에게 현관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거슬리게 했다가는 또 쫓겨날지도…….

“오, 너희가 어떻게 화해했는지 알겠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사이좋은, 냄새가…….”

이 미친 코 같으니라고. 사이좋은 냄새는 대체 뭐래? 당황스러웠지만 짐작 가는 바가 충분히 있었다.

해인은 부끄러워져서 황급히 야호의 코를 틀어막았다.

새빨간 얼굴을 하고는 당장 집 밖으로 야호를 내몰았다. 이번에 야호를 내쫓는 건 해인이었다.

“나가요! 나가!”

“에에?”

“킁킁대지 말고! 나가서…… 그래, 잠깐 옥상에 가 있어요!”

“너무하는 거 아냐? 이번엔 이유가 뭐야?”

댁의 후각이 너무 성능이 좋아서!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남의 애정사까지 냄새를 맡는 건 심각한 사생활 침해였다.

해인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야호를 욱여넣었다. 억지로 집어넣고는 겨우 달랬다.

“정자에서 잠깐 기다리면…… 먹을 걸 가지고 올라갈게요!”

“……어, 나 그거 안다. 배달음식!”

“……맞아요!”

잘못된 학습을 시키고 있다는 건, 지금 해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더 다급한 일이 있었으니까.

***

“뭐야, 대체. 어제는 케이크 노래를 부르더니. 오늘은 왜 갑자기 청국장이야?”

시율은 졸지에 옥상에서 저녁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물었지만, 해인은 어색한 동작으로 그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대뜸 오늘 저녁은 옥상에서 먹을 거고, 된장찌개 아니면 청국장을 끓여 오라고 조르더니 환기를 잘 시키고 오라는 엄명까지 떨어졌다.

오늘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일단 시키는 대로 다 하긴 했지만, 이래서야 출장 요리사가 된 기분이었다.

“미안…… 환기 잘 시키고 왔어?”

“청국장 끓였으니 당연히 했지.”

“……그게, 집에 냄새가 좀 나더라고!”

“그랬어? 겨울이라 환기를 자주 안 시켜서 그런가?”

“그거야, 그거.”

옥상정원에는 아담한 정자가 하나 있었는데, 가끔 주민들이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는 곳이었다.

여름엔 너도나도 소풍 나오듯 차지해서 자리가 거의 없었지만 겨울은 워낙 춥다 보니 한적했다. 지금만 해도 시율과 해인, 야호 셋뿐이었다.

야호는 청국장과 함께 가져온 잡채와 파전을 보며 매우 흡족스러워했다. 늘 그랬듯 말끝이 얄미웠지만.

“다 좋은데 막걸리는 없냐.”

“……너무 친한 척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하하! 좋은 태도야. 그래야 오래 살지.”

“뭐래…….”

야호를 대하는 시율은, 유난히 가시가 뾰족하게 돋아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그는 타인에게 대체로 그런 남자였다.

해인은 이제야 그게 그의 살아남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 예민한 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일 테니까.

“멋진 술상도 차려줬겠다.”

“밥상인데.”

“친해지자는 뜻으로…….”

“설마…….”

해인은 야호가 옆구리에 손을 가져갈 때부터 불안했다.

기어코 거기서 도자기로 된 커다란 옥색 술병을 쑥, 하니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꺼냈을 때는 할 말을 잃었고 말이다.

이 호랑이, 정체를 말하면 안 된다면서 기술을 너무 남발하고 있었다. 시율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해인도 그런 기술은 안 쓰니까. 아공간 어쩌고라니!

“……방금 그거 어디서.”

“마술이야, 마술.”

“거짓말 못한다면서요!”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잖아?”

해인까지 놀라게 해놓고는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여 보이는 야호였다.

마술이라니. 겨우 그런 걸로 속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시율은 따지지 않도록 잘 조련된 남자였다.

그는 해인을 힐끔 보는 걸로 제가 본 해괴한 장면을 납득해버린 듯했다. 기상천외한 일들에 익숙해진 시율이 불쌍해졌다.

“내가 아주 아끼는 술이지. 평양의 벽향주(碧香酒)라고 해. 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술은 안 좋아해서.”

“자, 한 잔 받아.”

“……이봐, 방금 싫다고 했잖아.”

시율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온 걸로 보이는 건 착각이리라. 하지만 ‘정말 싫다, 이 호랑이.’라고 얼굴에 써 붙인 건 분명했다.

“가, 강?”

“……술 생각 없어.”

“좀 놀아줘.”

“잔도 없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야호는 제 옆구리에서 잔을 꺼내 보였다. 잔은 두 개였다. 옥색 도자기로 된 걸로 보아 술병과 한 쌍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 마술은 그만 보여줬으면 좋겠다.

해인이 쩔쩔매는 만큼 시율의 심기가 언짢아지는 것도 당연했다. 억지로 술을 권하는 건 그를 자극하기 좋을 뿐이었으니까.

“안 먹어.”

“내기를 하자, 그럼.”

“안 먹는 다니까?”

“나랑 대작을 해서 이기면, 좋은 걸 가르쳐 주지.”

“하,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짓…….”

“나는, 이 아이의 이름을 걸지.”

……저요?

해인은 야호가 손끝으로 저를 가리키고 있다는 데 잠시 당황했다가, 그랬다가, 놀라 시율을 올려다봤다.

“……할게.”

시율은 어느새 쳐다도 안 보고 있던 술잔을 들고 있었다.

조금 멍한 채로 해인은 야호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봤다. 엄청 강할 거라는 것만 겨우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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