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양이 키스-104화 (104/114)

104화. 고양이의 눈에 보이는 것

그와 다신 만나지 못하는 이유가, 제가 그를 잃어버려서도 아니고, 그를 떠올리지 못해서도 아닌.

그가 저를 찾지 못해서도 아닌.

그가 죽어서라면, 이 세상에 다신 없어서라면…… 자신은 그의 곁을 떠날 의미가 없었다.

‘말도 안 돼.’

눈물이란 참으로 무의미해서 아무리 흘려도 세상에 나아지는 것은 하나 없고, 스스로에게도 허무함만 채워질 뿐이라.

다신 울지 말아야지, 라고 수도 없이 다짐했는데.

그런 다짐 같은 건 지금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그가 남들만큼의 생을 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보다 덧없고 무의미한 것은 또 없었으니까.

해인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느끼지도 못해서,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딘가 제가 고장 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멍하니 우는 것 말고는 겨우 숨을 쉬고 있을 뿐이라…….

“슬퍼 마라.”

“…….”

“인간이란 본래 죽는 거다. 그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야. 갑작스럽고, 또 당연하지. 그건 누구보다 네가 가장 잘 알지 않냐.”

야호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들면서는 그제야 겨우 제가 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해인은 느릿느릿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물론 한 번 죽음을 맞아본 자신처럼 그게 얼마나 허무하고 돌연한 일인지 아는 사람을 드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아무렇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해인은 힘껏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멘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떨리고 갈라진 가여운 소리밖에는.

“야호 님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죽는 게…… 어떻게, 당연해요?”

“난 인간이 아니지 않냐. 인간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아. 너희가 우리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듯이.”

“……그, 그건 미안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나 소가 죽는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길에서 죽은 고양이를 보고 가여워하는 사람보다는 못 볼 걸 봤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안다.

해인 역시 전에는 그랬으니까. 야호가 보기에는 인간 한둘 죽는 건 아무런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리라.

“죽음은 그저 흐르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지.”

야호의 평온한 목소리를 듣자니 오히려 눈앞이 더 캄캄해졌다.

숨결이 거칠어져서, 가슴을 누르고 가늘게 숨을 몰아쉬는 걸로 해인은 겨우 자신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야호를 보는 눈이 갈피를 잃고 엉망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치만요. 소중한 존재가 죽는 게 어떤 건지는 야호 님도 알잖아요?”

“알지.”

“그게 어떤 기분인지는…….”

“물론 알지. 그러니 나도 너에게 연민과 애틋함을 느껴. 그럼에도,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의 죽음이 야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들려서, 애꿎게도 울컥 야호에게 화가 났다. 원망할 곳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달리 어디에 화내고 소리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야호처럼, 도인도 아닌데 ‘그래, 죽음은 누구에게나 일어나.’ 그렇게 간단하게 납득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야호 님은 어떤지 몰라도…… 나한테, 강이 죽는 건……! 내가 죽는 것만큼 힘들어요. 그렇게 들린다구요!”

“뭐, 너야 평범한 인간이니까. 나처럼 도를 닦지 않는 이상에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죽음이란 건 세상에서 가장 끝에 가까운 말이라, 어떤 슬픔도 견줄 수 없는 일이라, 해인은 몸이 떨리는 걸 막지 못했다.

덜덜 떨리는 손을 꽉, 주먹 쥐면서는 시율의 얼굴을 떠올렸다.

“몇백 년을 살면서 무수한 죽음을 지켜보다 보면, 죽음이 당연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게 돼.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을 뿐이지.”

“내가 그런 게 될 리가 없잖아요!”

“아이쿠, 귀야.”

“난…… 그럴 만큼 오래 살지 못했어요! 강도, 벌써 죽고 싶을 리 없다고요!”

이 순간 소리치는 것 말고는 이 답답하고 아픈 것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야호의 멱살이라도 잡아 흔들고 싶었다.

그가 죽지 않을 방법을 내놓으라고…….

“맞아! 방법, 살 방법 같은 거 없어요? 강이 죽지 않을 방법이요!”

“으응?”

“당신이라면 알 거 아니에요?! 산신이잖아!”

“죽지 않는 방법은 없어.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지.”

그건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일순간 화가 나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너무 당연해서…… 다시 눈물이 치솟았다. 울고 있으면서 또 눈물을 흘리는 게 지금 해인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바로 몇분 전만 해도 그가 죽는 건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는데, 지금은 코앞의 일이 되어 있었다.

“뭐, 도라도 닦지 않는 이상은 말이야.”

“……지, 지금부터라도 하면 돼요?”

“그럴 리가. 불로불사를 위해 도를 닦아서야 절대로 득도할 수 없어. 도라는 게 그렇게 만만하지 않거든.”

“이…… 이! 그럼 어쩌라는 거예요! 결국 하나도 도움이 안 되잖아! 애초에 그런 걸 왜 알려준 거야!”

해인은 참다못해 야호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었다. 저보다 두 배는 몸집이 큰 사내다 보니, 실상은 제 몸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야호는 마사지라도 받는 양 태평한 얼굴이었다.

“뭐,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비를 넘기면 살 수도 있지.”

“……뭐요?”

“죽을 고비는 분명 닥칠 거야. 하지만 그 고비를 이겨낸다면, 살 수도 있겠지.”

“누가…… 못 알아들어서 물어봤는 줄 알아요?! 그런 것부터 말하란 말이에요! 왜 헷갈리게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야!”

해인은 다시 탈탈, 야호의 멱살을 흔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흔들리는 건 자신뿐이었다. 울어서 퉁퉁 부운 눈이라 얼굴도 엉망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시율이 죽는다느니, 어쩔 수 없다느니, 그런 소리를 하니까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 말하고 있잖아.”

“너, 이 야…….”

“말 안 한다?”

“……호 님.”

“진정해. 진정.”

적잖게 놀림 받은 기분이라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해인은 겨우 야호의 목에서 손을 떼어냈다.

아쉬운 쪽은 자신이라, 다시 샤바샤바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게 언젠데요? 고비라는 거요!”

“정확히는 나도 모르지.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게 가깝다는 정도야.”

“얼마나요? 몇 달? 몇 주? 혹시 며칠은 아니죠?”

목깃에서는 손을 뗐지만 대신 팔을 붙잡고 흔들며 닦달했다. 이 호랑이는 사람을 가지고 노는 재주가 아주 신묘했다.

“내일일지, 몇 달 뒷일지, 내년일지 그런 건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그림자가 보일 뿐이야. 네가 사랑하는 남자를 죽이려는 운명의 그림자가.”

예로부터 짐승의 눈에는 사신이 보인다는 속설이 있기는 했다. 그건 바로 이런 걸까. 해인은 마른 목을 축였다.

짧은 시간에 너무 울어서 따끔거리는 눈가를 문지르며 정신을 차렸다.

“저기…… 아까 죽음은, 절대로 막을 수 없는 거라고 했잖아요.”

“당연하지. 안 죽는 인간도 있나?”

“그럼요?”

“막을 순 없어. 미룰 수 있을 뿐.”

“…….”

“평범한 인간인 이상 언젠간 죽어야지. 안 그래? 다만, 고비를 넘기면 조금 더 살 수 있을 뿐이야.”

한 대 치고 싶다. 격렬하게 치고 싶어. 또 혼자만 태평한 야호였다. 해인은 이를 으득으득 갈아야 했다.

이 호랑이가 저를 놀리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 조금이라는 건 대체 얼마큼인데요?”

“글쎄, 끽해야 몇십 년 아니겠어?”

아, 칠백 살 먹은 호랑이의 나이 개념이란 이런 거로군. 해인은 화도 났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미룰 수 있게 도와줄 순 없는 거죠?”

“하하, 그것까진 무리야.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선이 아니라고.”

“……끙.”

“힘내봐.”

야호는 해인의 어깨를 만지려다가, 멈추고 대신 머리 위를 토닥거려줬다. 아마도 시율이 만지지 말라고 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시율은 이마저도 싫어할 것 같았지만 말이다.

“……야호 님.”

“응?”

“고마워요.”

늦었지만, 야호가 나름의 방법으로 저를 도와주고 있다는 걸 알겠다. 별로 티가 나지 않아서 그렇지, 저를 꽤 생각해주고 있다는 것도.

해인은 문득 깨달았다. 제가 참 뻔뻔하다는 걸 말이다. 야호에게 당연하다는 듯 그를 살릴 방법을 내놓으라고 하질 않나, 도와달라고 하지 않나.

기껏 고비가 올 거라고 알려줬는데, 그런 걸 알려만 주고 대책은 안 알려줬다고 성질을 부렸으니. 슬그머니 부끄러워졌다.

‘도’라는 야호의 법칙에 의하면 이건 상당히 무례한 일이었다.

도움을 구한다는 건 받기만 하려는 행위기도 했으니까.

“착하구나.”

“……착하긴요.”

“난 말이다. 너에게 감사의 말도, 사과의 말도 듣고 싶은 게 아니야. 모든 짐승이 인간에게 그럴 거야. 하지만…… 널 만나러 오기 잘했다 싶어.”

“그건 또 무슨 뜻이에요?”

“네 영혼은, 월과 닮았다. 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문득 월이 그리워져서야.”

얼굴도 아니고 영혼이라고? 해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야호는 알 수 없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

“선한 영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게 해주지. 난 너 같은 인간이 행복해지길 바라. 난 이루지 못했지만…… 너라도.”

“음……?”

“그뿐이야. 내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한없이 만만해 보이다가도, 훌쩍 멀어지는 야호에게 해인은 다시금 꾸물꾸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했다.

바람 소리만큼이나 작았지만 야호에게는 들렸으리라.

***

사고는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기껏 시율이 오기 전에 세수도 하고 머리도 만지고, 울었던 자국을 부지런히 없앴지만…….

“……왜 그래?”

해인은 시율이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울상이 되어버렸다. 마트에서 사온 짐을 내려놓는 그의 모습을 보다가 그만 참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그건 그저 불가항력이었다.

저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다신 볼 수 없는 순간을 상상해버렸다.

다신 그의 손을 잡지 못하고, 그가 집에 돌아와 저를 보며 웃어주는 순간이 없다고 상상하자 눈물은 통제를 벗어났다.

마트에 간다고 나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게 죽음이라고 생각하니, 그것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다.

그가 밖에 나갔다 왔다는 사실조차 불현듯 두려워졌다.

죽음을 안다는 건 이런 거로구나. 매 순간 피가 말라 심장이 경련하듯 옥죄어왔다.

‘그에겐 말해서는 안 돼.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테니까.’

‘알려줘서…… 조심하게 하는 게 낫지 않아요?’

‘글쎄다. 과연.’

이제야 야호가 그렇게 당부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죽음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공포 중에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것이었다.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좋았다.

“강?!”

갑자기 뚝뚝 울어버리는 해인을 보고 시율은 일순 놀라는가 싶더니, 소파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야호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멱살째 들어 올리더니 곧장 주먹질을 했다.

저 커다란 몸을 들어 올리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가 결국 야호를 한 대 팼다는 것도 기겁할 일이었다.

“너 이 개자식!”

“엇, 아프지는 않지만 불쾌한데.”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네가 대체 뭔데 그래?!”

“그리고 난 개가 아니라 호랑이야.”

“입만 살아서는!”

시율은 아무래도 해인의 우는 게 야호 때문이라고 여긴 듯했다. 물론 그건 얼추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때릴 정도는 아니었다.

“음…… 맞을 짓까지는 안 한 것 같은데.”

“하, 하긴 했다는 거네?”

어제도 참기에 시율은 주먹질은 생전 안 하는 남자라고 여겼다. 워낙 똑똑하고, 머리 쓰는 데 익숙하니 몸으로 치고받는 건 그와 머나먼 일이라고.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제법 매서워 보이는 주먹질이 또 한 번 이어졌고, 해인은 온몸으로 매달려 세 번째 주먹은 겨우 막을 수 있었다.

야호는 왜 순순히 맞아주는 걸까.

“아니야! 야호 님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강, 제발 그러지 마!”

“그럼 왜 우는 건데!”

정신없이 매달리고 있자니, 그의 화난 목소리가 귓가에 내리꽂혔다.

해인은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신이 죽을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고는, 얼마 살지 못할 수도 있다고는, 맨정신으로는 말할 수 없었다. 도저히.

“……그건.”

“말해봐.”

말해보려고 입술을 벙긋댔지만, 결국 아무것도 소리 낼 수 없었다. 끝내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저를 보는 그의 무시무시한 시선을 피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야호를 계속 맞게 둘 수도 없어서 해인은 시율의 허리를 붙들고는 그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그를 뒤에서부터 꼭 끌어안고, 그저 온 힘으로 달래는 수밖에는 없었다.

“미안해. 내가 나빠……. 야호 님을 때리지 마. 그러면 안 돼.”

따지자면 고마워해야 했다. 시율에게 그걸 설명하기란 힘들겠지만, 적어도 야호에게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물론 영문도 모르고 받아줘야만 하는 그의 답답함도 알았다.

“……그냥, 다 나 때문이야.”

“하.”

“강, 나를 미워하고, 나를 싫어하고…… 나한테 화를 내! 강. 그게 나아.”

“그런 건 죽어도 불가능해.”

그는 더 이상 야호를 때리진 않았지만 답을 듣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에는 한계를 맞은 모양이었다. 그가 숨을 참는 게 느껴졌다.

해인도 알았다. 이렇게 불안정한 채로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이다.

말하지 못하는 것도 이렇게 답답한데, 그는 어떠할까. 제 몇 배나 힘들 건 당연했다. 그와 자신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저는 매일 못 버티겠다며 울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날들은 너무나 힘겨웠다. 함께 있어도 있는 게 아니고, 언제 떨어질지 몰라 매일이 불안하고 위태로워 온몸에 날이 섰다.

그리고 그날은 모든 걸 아프게 하고 있었다.

***

“매정하네, 그 인간. 아직 겨울인데 내쫓을 줄이야.”

밤의 옥상정원은 어딘가 섬뜩했지만 야호는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강이 원래 이 정도는 아닌데…… 요즘, 많이 날카로워진 것 같아요.”

“두 대나 맞았다.”

“대신 사과할게요! 우선 이걸로…….”

해인은 밖으로 쫓겨난 야호에게 날계란과 이불을 내밀었다. 시율은 해인이 야호를 챙겨주러 나가는 것까지는 말리지 않았다.

못 본 척해주는 걸 봐서는 조르면 풀어질 것도 같았다.

우선 그때까지 야호는 옥상에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계란?”

“혹시 멍들까 봐…….”

“아직도 이런 방법을 쓰냐. 좀 더 신기술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리고 어차피 멍 같은 건 안 들어. 내가 인간이었다면 모를까.”

“으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괜찮아도 그렇지, 왜 가만히 맞고 그래요. 미안하게.”

“내가 같이 팼으면 그 녀석 죽었을걸? 한 대면 즉사야. 목뼈가 아작 나서.”

“……흐이.”

전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아니, 농담을 할 수 없다고 했으니 진담이리라.

어디선가 곰보다 호랑이의 펀치가 강력하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천하의 코끼리도, 호랑이를 보면 도망칠 정도라니…… 그 위력은 감히 상상도 안 갈 정도였다.

이건 강자의 여유인 걸까?

“우린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하지만 원한은 잊어도 되거든. 맞는 게 편하지. 또 속 시원히 너희를 도와주지 못해서 그런가, 맞아줘도 괜찮겠다 싶었어.”

“야호 님…….”

그런 이유가 있었다니. 이쯤 되면 야호를 은인으로 대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강을 살려준 셈이기 때문이다.

조금이지만 감동스러워져서, 원수 같기만 했던 야호가 슬슬 신령한 산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랑이가 고양이랑 싸워서야 되겠냐.”

세상에 강시율을 건방진 고양이 취급하는 건 야호밖에 없으리라. 물론 이 특대 사이즈 호랑이의 눈에는 모든 인간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를 그런 취급을 했다는 걸 알면, 시율은 화를 풀지 않으리라.

“그 말 강 앞에서는 하면 안 돼요.”

“왜?”

“그걸 알면 케이크 안 만들어 줄걸요. 먹어야죠, 케이크.”

“먹어야지! 명심하마!”

야호가 단순해서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해인은 벤치에 폭신한 이불을 깔아주며 주섬주섬 가져온 봉지 과자들을 야호에게 한 무더기 들려줬다.

“아무튼, 미안하지만 오늘만 여기서 좀 버텨요. 이거라도 까먹고. 심심하면 이 책이라도 봐요. 그리고 혹시 사람이 올라오면 숨어요. 알겠죠? 노숙자로 오해받으면 끌려가니까.”

“알겠다.”

“누가 먹을 거 준다고 막 따라가면 안 돼요!”

“이게 날 뭐로 보고…….”

“아침에 강이 출근하면 데리러 올게요.”

뭔가 엄마 몰래 커다란 호랑이를 한 마리 옥상에 기르는 기분이 들었다. 시율은 엄마라기보다는 엄격한 남편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 인간 녀석 보아하니 타고난 고집이 장난 아닐 것 같던데, 만일 화를 안 풀면?”

“풀 거예요.”

“호오. 자신 있어 보이네.”

“그야 강은 나한테…….”

“푹 빠져 있으니까?”

“사랑해서, 항상 져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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