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고양이와 남자들, 그리고……
해인은 꿈에서 반지를 봤다.
그건 붉은 동백 잎 사이에 마치 또 다른 꽃잎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하지만 꽃잎들 중에 가장 빛났고, 가장 싸늘하고 또 가장 부드러웠다.
그 시린 은색이 마치 그를 닮은 것 같았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반지의 겉은 매끈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았다.
대신 안쪽으로 숨기듯 박혀 있는 투명한 보석은 제 마음과 닮아 보였다.
‘강, 이건 왜 보석이 안쪽에 있어?’
‘겉으로 보이진 않아도 거기에 있다는 게 좋지 않아?’
‘……그러네.’
‘너랑 나만 아는 거.’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 그 자리에 있고 너무나 소중한 것. 그와 저만 알고 있는 것.
그의 반지도 해인의 것과 같았다. 똑같은 마음인 것처럼.
그렇게 꿈에서 해인은 사랑스러운 커플을 보았고, 제게 입 맞추는 남자를 보았다.
그냥 문득, 세상을 채우고 있는 따스함과 벅참을 느꼈다.
그 겨울에 그 땅에서 어느 것이고 선명하지 않은 게 하나 없었고, 느닷없이 행복하지 않은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중, 자신이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만이 겨울처럼 차갑고 쓰라렸다.
***
“하아!”
꿈의 끝에서 섬뜩함에 눈이 번쩍 떠졌다.
“……강?”
해인은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키며 그를 찾았다.
시트를 들추고 방을 들러보며 아직 이곳이 그와 자신의 집이라는 사실에 겨우 안심하며, 회색 시트를 움켜쥔 제 손가락을 내려다봤다.
반지는 제대로 약지에 끼워져 있었다.
하지만 곁에 그가 없었다. 침대 위에는 해인 혼자였다. 반지를 만지며 불안하게 그를 불렀다.
“강!”
없어지는 건 제 쪽이면서 그를 찾아 매일 불안해하는 것도 자신이었다.
사라져야 하는 날을 고백했더니, 그날이 너무도 실감이 나서 매일 눈을 뜨는 게 악몽이고 동시에 고비였다.
어느 날 눈을 뜨면 이곳이 아닐까 봐, 그것이 두려웠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로 매 시간이 그랬다.
오늘일까. 아니면 내일일까.
머리로는 아직 조금 더 시간이 남았다는 걸 알면서도 점점 다가오는 그날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잠을 설쳐야만 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신이 저를 데리러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날 것만 같아서…… 때때로 숨이 막혔다.
‘내가 이토록 겁쟁이였나. 이토록 나약했나. 그래, 나는 다가올 것들이 이렇게나 두려워.’
매일 자신의 무언가가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손끝이나, 발끝이 조금씩 바스러져 없어지고 있는 것만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해인은 애써 숨을 고르며 손안에 얼굴을 묻었다. 자신을 진정시키는 일이 점점 쉽지가 않아졌다.
나날이 두려움이 깊어지는 건 스스로의 선택에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를 두고 가느니, 평생을 꾸역꾸역 이렇게 기묘하게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겨우 다잡은 마음이 추잡스레 흔들려서…….
“불렀어?”
“강…….”
해인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가 문가 안쪽으로 얼굴을 내밀자, 그제야 그의 손에 들린 커피 향이 코끝에 잡혔다.
“왜 그래? 악몽이라도 꿨어?”
“……아니, 그냥.”
“급하게 부르는 거 같던데. 아니야?”
“안 그랬어.”
해인은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잠이 덜 깨서 그랬는지, 꿈에 사로잡혀서 그랬는지, 찰나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조금만 차분히 굴었어도 그가 커피를 타러 갔다는 걸 냄새로 알았을 텐데.
아침이면 꼬박꼬박 찾아오는 공포에 짓눌려서 여유가 없었나 보다.
그래, 이 모든 건 눈이 녹기 시작해서다.
이렇게 불안한 건 영원했으면 하는 겨울이 빠르게 녹아 사라지고 있어서…… 잔인하게도, 올해의 겨울이 유난히도 짧아서.
벌써 창밖으로는 눈 대신 비가 오고 있었다.
‘꿈에서 깨는 꿈을 꿨어.’
눈을 떴는데 여기가 아닌 꿈을 꿨어.
해인은 식은땀이 배어 나와 저릿거리는 손을 뻗어 그가 내미는 제 몫의 코코아를 받아 들었다.
그는 아직도 조금 파리한 해인의 안색을 빤히 보다가, 손을 뻗어 동그란 뺨을 매만졌다. 그러고는 저를 보게 하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너…….”
“……?”
“눈곱 꼈다.”
“앗, 정말?”
“농담이야.”
해인은 놀라 급히 제 눈가를 비볐는데, 시율이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뚱하니 부풀리는 뺨을 그의 손이 다정하게도 토닥거려 줬다.
그는 여전히 해인을 놀리는 걸 즐기는 남자였다. 물론 이게 달래주기의 일환이라는 건 알지만 말이다.
악몽 아닌 악몽을 꾼 것만 제외하면 평소와 같은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오늘 오후 출근이라 좀 한가한데, 같이 시장이나 보러 갈까.”
시율이 침대 위로 올라와 가까이 앉으며 물어봐서, 해인은 코코아를 먹다 말고 고개를 내저었다.
“나 약속 있는데.”
“……약속?”
“응. 누굴 좀 보기로 했어. 강이 출근하면 그때.”
“너…… 방금 놀렸다고 복수하는 거야?”
“아니, 정말인데?”
집 고양이나 다름없는 해인이 누군가와 약속이 있다는 것도 그를 충분히 신경 쓰이게 하는 일인데, 심지어 자신이 출근하면 보기로 했다니.
그의 안에서 적색경보가 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누구랑?”
“왜, 전에 얘기했던 고양이 밥 주는 남자.”
“……전화번호 물어봤다던?”
“응.”
이 정도면 진돗개 발령이었다. 나라에 무장단체가 침입했을 때나 울리는 심각한 수준의 경보.
“……그놈은 왜 만나는데? 굳이 날 빼고? 혹시 자주 보는 거야?”
“그냥 가끔 마주치면 우연히 보는 정도? 줄 게 있다길래. 그리고 강은 원래 같이 안 가잖아.”
“줄 게 뭔데?”
“몰라. 안 물어봤어.”
“……이상한 놈인 거 아냐?”
시율은 지금 의처증 있는 남편처럼 굴고 있었지만, 전혀 의식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가끔 마주치는데 괜찮아 보였는걸.”
“너 너무 태평해!”
“에이, 착해 보였어.”
“착하게 생긴 미친놈이 제일 무서운 거 몰라?”
“미친놈이 고양이 밥을 주지는 않잖아?”
해인은 처음 보는 사람은 분명 경계하지만, 몇 번 봐서 안전하다 싶으면 조금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봐야 옆에 왔을 때 도망가냐 도망가지 않냐 정도의 차이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건 붙잡힐 수 있냐 아니냐의 차이기도 했다. 시율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아무튼, 며칠 전에 봤을 때 다음에 나한테 줄 게 있다고, 오늘쯤 시간 있냐고 하기에…… 강이 출근하면 나간다고 했어.”
이 녀석 정말이지 납치될 소질이 다분했다. 낯선 남자랑 대체 무슨 약속을……! 물가에 내놓은 아이도 이보단 안심이 되리라.
시율이 이를 갈며 한마디 하려는데, 그보다 빨리 해인이 말을 이었다. 방긋 웃으며 덧붙이기가 굉장히 해맑았다.
“그랬더니, 강이 누구냐고 하더라.”
“……그래서?”
“남편 같은 거라고 했어.”
그건 반쯤은 마음에 들고, 반쯤은 마음에 안 드는 대답이었다.
해인을 기특해해야 하는 건지, 혼내야 하는 건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시율은 복잡 미묘한 얼굴로 커피를 몇 모금 들이켰다.
그러다가 뭐랄까. 지금 자신이 의처증 환자처럼 굴고 있다는 게 문득 깨달아졌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같이 가지, 뭐.”
“응? 왜?”
“싫어?”
“아냐! 그건 아니지만…… 거기 병원 가는 길이랑 완전 반대인데 괜찮아?”
“나 오늘 시간 많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길고양이 보러는 안 가잖아? 평소엔 전혀 관심 없잖아? 해인이 눈으로 의문을 표했지만 시율은 대답 대신 벌컥벌컥 커피만 들이켰다.
그는 애처가가 되고 싶은 거지, 의처증 남편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
***
근래 들어서 시율은 정말 ‘남편 같은 남자’였다. 그것도 막 결혼한 신혼 부부 중 새신랑 쪽.
매일 퇴근하면 집으로 곧장 돌아왔고, 해인과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같이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보러 가길 즐겼다.
그와 처음으로 가본 자동차 극장은 정말 재미있었다. 그 시간들을 만끽하는 해인의 일상도 역시 새신부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집에서 그가 퇴근하길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그가 오면 격하게 환영의 키스를 퍼부었으니까.
주로 맛있는 식사 준비를 하는 게 남자 쪽인 거만 빼면 둘은 완벽한 신혼부부였다.
“안녕하세요.”
“……아, 예.”
“남편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그건……?”
“제가 프러포즈했거든요.”
기쁘다고만 했지 승낙의 대답은 없었지만. 반지는 나눠 끼고 있지만 결혼식을 올릴 예정은 아직 없지만.
어쨌든 시율은 자랑인 두꺼운 낯짝으로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문제의 진돗개를 발령시킨 남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응수했다.
그 시각, 해인은 태평하게 구석에서 고양이 밥을 챙기고 있었다.
저 때문에 남자 둘이 얼마나 어색한 시간을 만들고 있는지는 조금도 관심 없는 게 분명했다. 정확하게는 한쪽이 당하고 있는 거였지만.
“……그럼, 약혼한 사이 같은 거네요.”
“거가 아니라 그겁니다.”
“혹시나 무슨 오해를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 약혼녀분에게 사심 같은 건 없습니다.”
“헤에…… 정말입니까?”
“저, 정말…… 전혀.”
시율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남자였다. 지금만 해도 이 죄 없는 남자를 쩔쩔매게 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판단으로 그는 중죄인이었지만.
“하늘에 맹세코? 조금도?”
저 방황하는 동공으로 보건대, 해인이 남편 비슷한 게 있다고 하기 전에는 조금쯤은 마음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오면서 듣자니 은근히 자주 마주치는 것 같았고. 이 남자 곧잘 여기서 시간을 때운다고 했다.
해인은 별생각 없이 ‘아마도 백수인가 봐.’라고 했지만…… 시율이 보기엔 그보다는 해인을 만날까 싶어 여기서 기다린 것 같았다.
물론 감일 뿐이었지만. 남자의 습성은 남자가 잘 알았다.
“강! 이리와 봐, 얘 좀 봐줘. 아픈 것 같아!”
“어, 잠깐.”
“빨리이!”
해인이 뒤편에서 재촉했지만, 당장 시율에게 중요한 건 눈앞의 라이벌, 아니 웬 지나가던 진돗개 남이었다.
‘남의 여자를 노리면 멍멍이지, 멍멍이야. 아무렴.’
남자가 순하고 똑똑하게 생겨서 붙인 별명은 아니지만, 여하튼 그는 시율의 속에서 한 마리 진돗개와 동급이었다.
그나마 좋게 표현해서 말이다.
하지만 딱히 더 흠잡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신신당부대로 밖에 나올 땐 장갑도 목도리로 꼭꼭 하고 다니는 해인의 손에 반지가 있는지 어쩐지.
임자가 있는지 어쩐지는 투시력이라도 있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래서, 남의 ‘약혼녀’는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한 겁니까?”
“……다른 게 아니라…… 이걸 좀 드릴까 해서…….”
굳이 약혼녀를 강조하면서 대놓고 경계하자, 남자는 황급히 엄청난 양의 고양이 캔을 꺼내 보였다. 비도 오는데 웬 시장 카트를 끌고 다니나 했더니…….
“그, 제가 새끼 때부터 밥을 주는 고양이가…… 요즘 이쪽에서 밥을 얻어먹는데…….”
“그런데?”
“보답으로…….”
“돈 주고 사온 겁니까?”
같이 영화 보려고 돈 주고 산 영화표를 공짜로 얻었다고 뻥치는 남자처럼?
“아뇨! 그냥 집에 있던 겁니다! 누나가 미미 주라고 사온 것도 있고. 경품으로도 받고…… 그…… 모아둔 것들인데…….”
“댁이 직접 주지 굳이 남의 약혼녀한테 맡기는 이유는?”
“정말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이번에 취직을 해서요. 회사가 좀 멀어서 당분간 이쪽에 못 올 것 같아서…… 그래서…….”
기에 눌려 이래저래 온갖 변명을 늘어놓는 남자는, 그가 봐도 위험인물 같지는 않았다. 해인의 말대로 착해 보였다.
그래도 적은 적이지만.
오늘 시율이 해인과 함께 오지 않았다면 여러 핑계로 해인의 연락처를 물어봤을지도 모를 남자였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남자가 쩔쩔매는 것도 그래서였다.
시율은 지금 웃고 있지만 말하는 게 결코 상냥하지 않았다. 일어났을지도 모를 어떤 일을 생각하면 화가 났으니 말이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취직 축하하고. 앞으로 웬만하면 내 약혼녀랑은 마주치지 말았으면 좋겠네.”
“정말 오해…….”
“……그거 말도 안 되잖습니까.”
“예?”
“저렇게 귀여운데, 정말 조금도 사심이 없었다고?”
지금 대체 어쩌라는 걸까.
남자는 시율의 삐딱한 시선에 어찌할 바 모르고 있었다. 절대 아니라고 하니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얼굴이고, 그렇다고 긍정하면 한 대 때릴 것 같아서…….
“강!”
“……네, 네.”
“빨리 와! 내가 부르잖아! 세 번이나!”
시율은 조금 더 남자를 취조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해인의 화난 얼굴을 보게 될 것 같아서 마지못해 물러서야 했다.
대신 마지막까지 남자를 노려보다가 가보라는 뜻으로 휙휙, 턱짓을 했다.
“…….”
남자는 신경질적인 부름에 끌려가는 시율의 뒷모습을 보며, 이 둘이 커플이 맞고 잡혀 있는 건 시율 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공원에서 항상 보기로 거의 말수 없던 해인이 이렇게 성질을 부리며 큰소리치는 것도 그걸 증명했고.
으르렁대며 저를 보는 시율의 태도도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취직은 했으나, 여자 친구는 없는 모양이었다.
해인의 이름 정도는 물어보고 싶었던 남자지만, 택도 없는 일이었다.
***
“이리 와봐.”
반 명령이었지만 시율은 말을 잘 들었다. 해인의 곁으로 쪼그려 앉으며 해인이 붙잡고 있는, 덩치 큰 고양이를 쳐다봤다.
예전 같으면 자신이 얼마나 고급 인력인지 토로했겠지만 말이다.
“아프다는 게 그 녀석이야?”
“응, 얜데 이 구역 보스야. 그제는 괜찮았는데 지금 보니까 여기 눈가에 상처가 생겼어.”
“어디 보자…… 시력에 이상은 없어 보이고. 상처를 보니까 다른 고양이랑 싸우다 다친 것 같은데.”
“약 발라주면 나을까?”
“그 전에 소독부터 해야겠지. 내가 간단한 도구 가져다줄게.”
해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쪼르르 달려가더니 이번엔 자신이 가장 예뻐하는 녀석을 잡아왔다. 자랑하듯 얼룩 고양이를 시율의 눈앞에 내보였다.
“얘가 전에 말했던 새끼 고양이야. 많이 컸지?”
“비실비실하다던 녀석? 잘 컸네. 나는 지금 처음 보지만.”
“……엇, 그러네?”
“얘기를 너무 들었더니 낯설진 않지만.”
가장 마르고 힘없던 얼룩 고양이는 그사이 제법 살이 올랐고, 건강해져 있었다. 은혜도 모르고 매우 앙칼졌지만 말이다.
지금만 해도 저를 놓으라고 해인의 손안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냐악!”
“……다 좋은데 말이야. 이 녀석들한테 너무 정 주지 마. 나중에 힘들어지니까. 계속 말했잖아.”
“알지만…… 외면할 수 없어졌는걸. 한 번 눈이 마주친 뒤로는…….”
길고양이의 수명은 끽해야 몇 년이었고, 시율은 그래서 해인이 이 녀석들에게 정을 주는 게 탐탁지 않았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건지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동물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길에서 태어나 길로 돌아가는 길고양이기 때문에. 분명 찾아올 이른 죽음 같은 건 버티기 힘들 테니 말이다.
오늘 예뻐하며 쓰다듬은 녀석이 병마로, 혹은 사고로 갑작스럽게 내일 아침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난…… 이 녀석들이,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먹었으면 좋겠어.”
“……너, 그러게 왜 밥을 주기 시작해서는…….”
시작은 그냥, 친해져두고 싶어서였다.
특정한 사람이랑은 친하게 지내려고 하면 몸이 거부했지만…… 고양이들이랑은 무리가 없었다.
이 녀석들이 아무리 저를 기억해도 그걸론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너무나 희박해서 사신의 주술도 방해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양이를 하나하나 붙들고 말을 걸었다.
이 녀석들이라도 나중에 저를 알아보기를 바랐다. 혹시 알겠는가. 이 중 하나라도 어딘가를 떠돌다가 저를 알아보고 몸을 비벼올지.
그럼 무언가 떠오를지.
[찾았다.]
“……뭐? 뭘 찾아?”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에…….”
해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금 분명 뭔가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저랑 시율뿐이었다.
그리고 곱씹어보니 그건 시율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뭐였을까?
“냐냑!”(놔라, 인간!)
아, 이 녀석일지도. 해인은 손안의 얼룩 고양이를 그제야 바닥에 내려줬다. 언뜻 들린 목소리와는 조금 다른 것도 같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주변에 고양이라면 아주 많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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