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고양이의 욕심
일본에 오기 전부터 반드시 먹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병아리과자를 상자째 옆구리에 끼고, 설탕물을 입힌 과일 꼬치는 왼손에, 색소가 잔뜩 들어간 싸구려 슬러시는 오른손에 들고는 그것도 모자라 다음에 먹을 군것질을 매의 눈으로 물색 중인 해인이었다.
“……너, 지금까지 조금 먹는 척했던 거냐.”
“우으음우.”(아니아니.)
해인은 입안 가득 단걸 우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오해였다. 그간 못 먹은 한을 풀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여행이 아니고서야 며칠 내내 사람으로 지낼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 먹거리의 천국이라는 일본이 아닌가. 한을 풀기에 제격인 곳이었다.
“다 먹을 수는…… 있는 거지?”
이렇게 열심히 먹는 해인을 보는 건 처음이라, 시율은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동 세 가닥 먹고 기권하던 여자가 오늘은 옥수수 구이를 혼자 하나 다 먹은 것도 놀랄 일인데, 또 양손 가득 먹을 걸 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먹고 있는 것 말고도 그의 손에는 문어빵과 볶음우동이 들려 있었다.
이젠 돌아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하나둘 사다 보니 두 사람 손이 부족할 지경이 되어서, 앉을 자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해인은 먹을 자리를 찾는 와중에도 새로운 먹거리만 보면 눈을 반짝였다.
시율은 우동 두 그릇을 혼자 먹어야 했던 고난을 떠올렸다. 설마 이번에도 같은 시련을…….
“강! 저기 봐! 다, 당고야. 나 저것도 먹어보고 싶어! 만화책에서 봤어!”
“…….”
“응? 저거저거!”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원하는데 안 사줄 수도 없고. 시율은 경단꼬치에 달게 조린 색색의 팥고물을 올린 당고 가게 앞에 서서는 한숨을 쉬었다.
“……몇 개?”
“음, 음…… 나는 4개!”
“우리에게 볶음 우동이랑 문어빵이 있다는 건 알고 있는 거겠지?”
그가 다정하게 웃으며 되물어서, 해인은 더 활짝 웃어 보였다.
“물론!”
“……그런데도 4개란 말이지.”
“이거랑 이거!”
시율이 설핏 어두운 안색이 됐지만, 해인은 그걸 보지 못했다. 자신이 먹을 꼬치를 고르느라 말이다.
***
한적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은 둘은, 상점가를 쓸다시피 해서 마련한 갖가지 먹거리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나무로 된 공원 벤치는 4명도 앉을 수 있을 만큼 자리가 넉넉했지만 금세 먹을 것들로 꽉 차버렸다.
전부 해인이 욕심부려 사 모은 것들이었다.
“이 정도 양이면 점심인데…….”
시율은 엄청난 양에 긴장했지만, 해인은 행복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었다.
“뷔페 같아!”
“……그래, 먹어라, 먹어.”
제 여자 친구가 이렇게 먹을 것에 욕심이 많은 타입이었던가. 이런 먹성을 대체 어디에 숨기고 있었던 걸까.
해인은 시율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부지런히 먹어치우고 있었다.
냠냠, 이라는 의성어가 이렇게 잘 어울리기도 힘들 것 같았다. 손을 움직이느라 바쁜 해인의 모습은 가끔 보여주는 햄스터 같은 얼굴이었다.
저 볼 살은 어디까지 늘어나는 걸까.
시율은 제가 먹는 것보다는 해인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너무 맛있게 먹고 있어서, 그걸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불러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렇게 먹을 수 있는 거였냐.”
“그러게, 되네.”
“너도 몰랐던 거야?”
“음…… 작아져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서 그런지 잘 들어가는걸.”
해인도 이렇게 먹는 건 처음이었다. 이 몸으로는 말이다. 원체 겁이 많아서 이 몸으로 배불리 먹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자칫 고양이로 돌아갔을 때 배가 터질 것 같아서 무서웠으니까.
이렇게 원 없이 먹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그래, 맛있는 걸 먹는 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다.
“강은 왜 안 먹어? 먹어봐. 이거 되게 맛있다?”
시율은 해인이 내밀자 그제야 문어빵 하나를 찍어 먹으며 물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야, 줄었다가 커졌다가 하는 건 어떤 기분이야?”
“이상한 기분.”
“……얌마, 네가 그런 기분이면 어쩌냐.”
“하지만 정말 그런걸. 아마 애가 됐다 어른이 됐다 하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제 일인데 마치 남의 일처럼 대꾸하며 해인은 당고를 하나 꺼내서 입에 물었다.
“너야 항상 애 같잖아.”
“응? 왜 이래, 요즘은 나름 어른스럽게…….”
해인은 말을 멈췄다.
내내 맛이 궁금했던 당고를 처음 먹어본 소감은, 팥을 바른 가래떡이랄까. 동그랗게 만든 가래떡을 꼬치에 꿰어 색색의 팥을 바른 건데, 그 떡이랑 팥이 엄청 맛있는 느낌.
해인은 그만 감격해서는 심각하게 입을 뗐다.
“강…….”
“응?”
“일본 음식은 다 왜 이렇게 맛있을까?”
“…….”
그게 바로 시율이 말하는 어린애 같은 점이라고는 절대 생각 안 하는 눈치였다.
“나 여기 살고 싶다.”
“여기로 찾으러 오면 되냐.”
“엣, 그건 아니고.”
이 남자 머릿속엔 저를 잡으러 올 생각밖에 없나 보다. 해인은 괜스레 민망해져서 당고를 우걱우걱 맛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급하게 씹어댔다.
저러다 체하겠네 싶어서, 시율은 예의 그 불량식품에 가까운 슬러시를 들어 해인의 손에 넘겨줬다.
“목멘다. 천천히 먹어.”
“넵.”
꼭 지금처럼, 그의 눈에 해인이 아이 같아 보일 이유야 항상 넘쳤다. 덜렁대는 걸 챙겨주거나, 뜬금없는 질문에 답해줄 때면 그랬다.
저를 보는 저 무한한 신뢰의 눈에 보답해야 할 때도.
“일본 음식이 맛있는 건…… 아마 나라 특성 때문이려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식점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서잖아? 생계수단.”
“……일본은 돈 안 번대?”
“그게 아니라, 일본은 가업을 잇는 문화가 강하거든. 그래서 음식점을 해도 전통 있는 경우가 많고…… 2대 정도 이어온 덴 오래된 것도 아니라고 할 정도니까. 그렇다 보니 자기들 요리에 자부심이 강하대. 참고로, 우리가 묵는 료칸만 해도 5대째야.”
“오호…….”
“심지어 달걀말이 하나를 만들어도 장인정신으로 만든다니까 알 만하지. 음식에 들이는 공이 남다른 거라고 해야 하나. 물론 일본이라고 모든 음식점이 그러진 않겠지만 말이야.”
내 남자 친구는 하여간 똑똑해. 오늘도 배우는걸? 해인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시율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시했다.
그러다가 불쑥, 그가 눈을 마주친 채 저를 향해 손을 뻗어 와서 살짝 눈을 감았다. 뭘까.
“응?”
“여기 묻었잖아.”
아무래도 입가에 팥고물이 묻어 있었나 보다.
시율은 눈에 거슬렸는지 그것을 제 손끝으로 문질러 해인의 입가에서 떼어냈다. 그의 손에 묻은 제 덜렁거림의 흔적이 부끄러워서 해인은 얼른 휴지를 내밀었다.
“미안, 휴지 여기…….”
“됐어.”
하지만 그는 해인이 휴지를 내미는 것보다 빠르게, 제 손가락을 입안에 넣었다 뺐다.
그리고 가볍게 쪽, 빨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기도 당고를 하나 집어 들어 입에 물었다.
“맛있네. 잘 산 것 같다.”
그건 내 입에 묻었던 팥을 얘기하는 걸까, 혹시 방금 그걸로 맛을 본 건 아니겠지? 해인은 돌연 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두 뺨이 화끈거리는 와중에, 방금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야 항상 애 같잖아.’
아니라고 부정했는데, 지금 보니 맞는 것도 같았다. 해인은 끄응, 하니 생각에 빠졌다.
물에 빠진 걸 끌고 가 씻겨주는 것부터, 잘 자라고 토닥토닥 재워주는 거, 입에 묻은 걸 닦아주는 거까지 전부…….
‘……그, 그다지 성인들의 데이트 같진 않은데?’
그보단 그가 애를 하나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율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고 말이다.
지금도 양손에 먹을 걸 들고 입가에 뭘 묻힌 자신이 문득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졌다. 해인은 슬그머니 손에 든 꼬치와 슬러시를 벤치에 내려놨다.
“다 먹었어?”
“어? 응…….”
“것 봐. 너무 많이 샀다고 했잖아.”
딱히 타박하는 것도 아닌 목소리였다. 그럼 그렇지, 하고 익숙하게 자신이 뒤치다꺼리 할 준비를 하는 얼굴이었다.
해인은 왜 하필이면 이 남자는, 이렇게 어른스럽고, 또 가만있어도 섹시하고 매사에 태연한 걸까 하는 그런 고민에 빠졌다.
자신과 너무 다른 그가 존경스럽고, 그래서 가끔 저와 안 어울릴까 봐 겁이 났다.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남들 눈에 우리가 커플로 보이긴 할까?’
이런 모습이라서야, 그러니까 얼굴에 뭐나 묻히고 다니는 여자와 그 뒤치다꺼리에 익숙해진 남자라서야 오빠랑 여동생쯤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돌연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해인은 슬쩍 일어나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온갖 먹을 것들 때문에 자리가 없어서, 굳이 그의 무릎 위에 앉아서는 그를 당황시켰다.
“……갑자기 뭐야?”
고양이의 애교란 하여간 제멋대로였다. 예고도 없고 뜬금도 없었다.
“강은, 섹시한 여자가 좋댔잖아.”
“내가?”
“예전에 그랬잖아.”
“……아아.”
아주 예전에, 그런 말은 한 것 같기는 했다. 해인에게 이런 감정을 품기 전에 말이다. 시율은 이 녀석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꺼내나 싶어서 당황했다.
“있잖아.”
“……응?”
“노력할게!”
“뭘……?”
“강이랑 어울리는 어른스럽고 섹시한 여자가 되도록!”
그거 상당히 가망 없어 보이는데. 종족이 다른 것과 같은 갭인데.
시율은 우선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해인이 섹시해지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를 깨닫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저 때문일 테니까.
“푸핫.”
“정말인데!”
노력한다고 되는 게 따로 있었지만, 성의가 가상했다. 그래서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며칠 말썽을 부리더니 그걸 반성하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마. 난 지금이 좋으니까.”
“……그럴 리가!”
“정말, 정말로.”
그가 해인을 애 취급하는 건 해인을 챙겨주는 게 좋아서였다.
제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태평하게 굴다가, 덜렁대면 그게 그에게는 제법 뿌듯한 일이었다.
예전에 긴장과 경계로 가득 차서 저를 볼 때는, 이런 실수들을 하지 않았으니까.
지금의 무방비한 해인은 그의 자랑스러운 훈장 같은 거였다. 당연히 아낄 수밖에 없었다.
“나랑 있을 때는 편하게 있으면 돼. 내가 다 챙겨줄 테니까.”
“애 같다며!”
“어차피 평생 내가 너보다 어른인데? 넌 평생 연하고.”
“……어, 그건 그러네.”
그는 해인이 저를 오빠라고 부른 걸 똑똑히 기억했다. 그러니 아마 실제 나이도 제가 연상 일 거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해인이 만약 몇백 살 먹은 구미호 따위였다면 절대 저에게 오빠 소리 같은 건 안 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널 챙겨주는 거, 싫지 않거든.”
그는 조금 웃으며 해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제 무릎 위에 앉아 있는 해인을 제 품에 기대게 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으니까.
다만, 평소에는 얌전히 안기는 해인이 무슨 생각인지 지금은 빠져나가려고 버둥댔다.
“어디 가게?”
“잠깐…… 지금은……!”
“네가 먼저 내 무릎에 앉았잖아.”
그가 도망 못 가게 손에 힘을 주자 해인이 여전히 붉은 기운이 남은 뺨으로 창피한 듯 중얼거렸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내가 많이 먹어서…… 배, 배도 나왔을 것 같고. 평소보다 무거울 것 같고…… 그래서…….”
이런 말을 하면서 섹시해지겠다니 그 얼마나 웃음이 나오는 일인지.
시율은 이 무방비하고 사랑스러운 연인을 여전히 놔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뒤쪽에서부터 끌어안고, 배에 닿은 손에는 약간 힘을 풀어줬지만 대신 어깨에 이마를 기대며 실컷 웃음을 터트렸다.
“웃지 마아!”
“하나도 안 무거운데.”
“……거짓말! 지금 배 터질 것 같단 말이야!”
“꿰매는 드리지.”
아, 시율이 하니 알겠다. 자신이 휴게실에서 얼마나 매를 버는 농담을 했었는지 말이다.
해인은 조금 뾰로통한 얼굴로 계속 웃는 시율을 돌아봤다. 그러다 그의 시선에 이끌려 몸을 조금 돌렸고, 그의 팔등을 붙잡았다.
그와 영락없이 연인이라는 키스를 하면서는,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되새겨야 했다.
그와 나누는 자잘한 키스는, 사랑한다는 속삭임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
해가 질 무렵, 이 근방에서 가장 유서 깊다는 신사 앞에 도착한 해인과 시율은 우선 끝없이 높아 보이는 계단을 우러러봐야 했다.
해인이 불만스러운 듯 물었다.
“……신사에 계단이 많은 이유는 뭔가요, 선생님.”
“음, 단순히 산 위에 지어서가 아닐까.”
“뭔가 이유를 납득하기 전에는 저 엄청난 계단을 오르고 싶지 않은데요!”
해인이 학부터 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척 봐도 뭔가 대단한 기도라도 하며 하나하나 정성으로 올라야 할 것 같은 수많은 계단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높냐면, 해인의 좋은 시력으로도 까마득히 멀리 겨우 붉은 문이 하나 보일 정도였다.
“그럼 안 갈 거야?”
“……끙.”
“여기까지 와서 구경 안 하긴 아깝잖아. 중간에 힘들면 업어줄게.”
어른스럽게 굴기로 몇 시간 전에 다짐했기 때문에, 해인은 일단 마지못해 시율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왠지 올라가기가 싫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계단을 오르는 일은 꽤나 체력을 요하고 있었다. 해인은 반도 못 오르고 헥헥댔다.
“으아…….”
“업어줄까?”
“아니, 괜찮아…….”
아까도 말했지만, 오늘은 많이 먹어서 그에게 업힐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럴 때야 말로 순간이동 능력을 쓰면 좋겠지만 그의 앞에서 그 능력을 쓰는 건 상당히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아직 조절이 잘 안 되는 건 둘째치고, 그에게 조금이라도 사람다워 보이고 싶었으니까.
그래도 몸에 좋은 등산이다, 하고 오르다 보니 그래도 슬슬 고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인은 잠시 숨을 돌리며 계속 시야에 걸리는 신사 입구의 빨간 문을 가리켰다.
“강, 저기 저 한자가 적힌 빨간 문은 뭐야?”
“저거? 어디 보자…… 여기에서 설명을 본 것 같은데.”
한 계단 오르고 한 계단 쉬는 해인과 달리, 시율은 여행책자를 뒤적이는 여유까지 보였다.
“도리이(鳥居)라고 한대. 신사라는 게 ‘신’을 모시는 사당이잖아? 그리고 도리이는 불경한 인간 세계, 그러니까 일반적인 세속과 신성한 신사를 구분해주는 경계래. 세속의 불경함을 걸러주는 신성한 문이라고 보면 되려나…….”
“……그렇구나.”
빨개서 그런지 뭔가 기분 나빠.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해인은 얼마 남지 않은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빨간 문과 가까워질수록 기분이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설마…….’
속이 울렁거리면서, 머리가 설핏 어지러워졌다. 그래, 마치 뱃멀미 같은 끔찍하게 불쾌한 감각이었다.
“안 들어가?”
“……강, 나 이거…… 못 들어가.”
“무슨 소리야?”
문 앞에 섰을 때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냥 온몸에 울리는 감각이었다. 이 불경한 것을 걸러준다는 도리이가 자신을 격렬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말이다.
마치 넌 여길 통과할 수 없다고 외치듯, 해인의 피부를 따갑게 하고 있었다.
도리이라고 불리는 이 신성한 문은 해인을 쫓아내고 있었다.
손발이 저릿거렸다. 생생한 거부를 당하며 해인은 그만 울상이 됐다.
‘하긴, 사신이 복스러운 존재는 아니니까. 하지만 부정한 것이라고도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사신들이 인간의 영혼을 가져가기 위해 만든 요괴를 응용한 껍데기인데. 사신탈은 애초에 그런 것이었는데.
자신이 부정하지 않다고 여겨왔던 게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건 자기최면이었을까?
조금이라도 자신이 덜 끔찍하길 바랐던 무의식일까.
해인은 제 양 팔뚝을 붙잡으며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파리한 안색이 되어서는, 스스로에게 겁에 질려 버렸다.
“너 왜 그래?”
시율이 이상하게 구는 해인을 보며 미간을 좁혔지만, 해인은 입술을 깨무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앞에서 자신을 불경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쫓겨나듯 문을 등지고는 계단을 허겁지겁 내려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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