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고양이가 좋아하는 꽃
이번에 혈압상승을 느낀 건 시율이었다. 그는 심각한 얼굴이 됐다. 얼굴 표정이 이상해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느라 그렇게 되고 말았다.
“미안, 하던 대로 하자.”
“……으응.”
둘 다 말이 없었지만, 부끄러워서 안 되겠다는 걸 알았다. 말하는 해인이 너무 부끄러워하자 시율까지 이상한 기분이 됐다.
그의 귀가 은근히 빨개졌다.
오빠 소리라면 태일의 앞에서 남매인 척할 때도 들은 적 있었는데, 그때와 달리 지금은 너무 낯간지럽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해인이 말하는 의미가 달라져서 그러리라. 뭔가 자기라고 불린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저기…… 그럼, 계속 강이라고 부른다?”
“그게 좋겠어. 여동생이 있어서 그런지…… 네가 그렇게 부르니까, 뭔가 이상해서…….”
시율이 말끝을 흐리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다. 해인은 그의 얼굴이 조금 붉어 보이기는 했지만 순전히 온천 때문이라고만 여겼다.
“……그리고 또, 생각해보니까.”
“응?”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건…… 너밖에 없어서…….”
“…….”
“좋네.”
온천 효과일까. 왜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이렇게 열기 어리고, 뜨겁고, 심장을 답답하게 하는 걸까. 해인은 다시 탕 안으로 얼굴을 담갔다.
코에 휴지를 꼽고 있다는 걸 상기하고는 부랴부랴 빼내서 탕 밖으로 버렸다.
좁은 온천 안은 무슨 짓을 해도 서로에게 움직임이 느껴졌다.
물 안에서 다리를 꾸물거리는지, 손을 휘젓는지. 그가 제게 다가오는지…… 그런 게 전부 고스란히 말이다.
마주 다가온 그를 보며 해인은 안절부절못했다.
“……어지럽진 않아?”
그가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긴 했지만, 사실 어지러웠다. 너무 어지러워서 또 코피를 쏟을 거 같은 기분이 됐다.
마침내 그의 손이 제 어깨를 붙잡았을 때, 해인은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알겠다. 이게 무슨 느낌인지. 수증기 때문이겠지만…… 마치, 누군가의 숨결 안에 있는 기분이야. 그래서 자꾸 기분이 벅차져.’
차락, 물소리를 내며 시율의 손끝이 해인의 뺨을 매만졌다.
물기 어린 손을 느끼며 홀린 듯, 눈을 감았다. 그가 다가오리란 걸 알았다. 입술이 닿고 말 거라는 것도. 해인은 그 순간을 고대했다.
가장 먼저 그가 입술을 맞춘 건 코끝이었다.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지며, 다시 닿아 가벼운 소리를 냈다. 그는 부끄럽게도 무언의 찬양을 하며 해인의 눈썹 위에, 뺨 위에 점점이 입술을 눌렀다.
보드라운 두 뺨을 붙잡아 쓸며 깊은 숨 소리를 흘렸다.
그에 해인은 참지 못해서 물 밖으로 손을 꺼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물 안은 따듯했고, 더웠다. 기어코 하게 된 그와의 키스는 더 치열하고 뜨거웠다. 숨이 막혔고 심장이 옥죄어서 급격이 어지러워졌다.
정신을 놓고 싶어질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하아, 하…….”
키스 끝에 숨이 차서, 낮게 몰아쉬고 있자 그가 여전히 으슥하고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 채 속삭여 물었다.
“……우린, 아이를 가질 수 없어? 절대?”
해인은 낮의 일이 떠올랐다. 주차장에서 속을 게워내자 그는 그런 걱정부터 했다.
오늘 계속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미련을 못 버리는 것 같았다. 너무 현실적인 걱정을 하는 그가 해인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아직 키스의 열기가 남은 입술로 조금 슬프게 웃었다.
“없어. 지금은.”
“……지금은, 이란 말이지.”
“강, 이것만은 말할게.”
“무슨?”
“난, 요괴는 아니야.”
그것 말곤 말하지 못하지만. 내가 사람이라도 말할 수 없고, 사신의 힘을 빌려 쓰고 있다는 것도 말하지 못하지만.
그거라도 알아주길 바라.
“선인 같은 건가, 그럼. 신선? 신수? 도를 닦는 무언가.”
“……그것도 아냐.”
요괴도 아니고 선인도 아니면 대체 뭐라는 걸까. 시율은 꽤나 열심히 그 방면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내였지만 이건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요괴도 아니고, 선인도 아니고. 선녀도 아니고 마녀도 아니고.”
그가 불만스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해인은 그가 둔 후보 중에 선녀가 가장 낯간지러웠다.
애를 셋 낳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의 구미를 당기는 모양인데…….
“음, 있잖아, 강.”
“힌트가 더 필요해.”
“나도 주고 싶어. 하지만…… 마음대로 안 돼. 내가 강을 좋아하는 만큼 그게 힘들어져. 나는…… 강을, 엄청 좋아하지만, 강이랑 결혼도 하고 싶고…… 강의 아이도 낳고 싶지만…….”
해인은 더 이상 말을 고를 수 없었다.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더는 없었다. 그게 바로 힌트였으니까.
이렇게 답답해질 때면 차라리 이 몸을 집어던지고, 영혼 상태가 되어서, 그에게 온갖 사실을 속삭이고 싶었다.
이 몸은 그를 만질 수 있게 해주는 족쇄였으니까.
“차라리 내가 귀신이었으면 좋았을걸.”
“……그럼 우리 못 만져.”
“그러니까.”
하지만 육체의 억압에서 벗어나면, 적어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는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마저 유혹적이었다.
물론, 그 계획에는 시율이 귀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붙지만 말이다.
온갖 수를 상상해봤지만 엉망인 것투성이였다.
어떻게 해야 영혼이 될 수 있는지는 알았다. 전에 사신이 얼핏 말을 한 적은 있었다. 이 몸이 완전히 ‘망가지면’ 영혼이 튕겨 나간다고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 악령에게 먹히거나, 다른 사신에게 잡혀 저승으로 끌려가 영영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어질 거라고 했다.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얼마나 절실했는지 해인은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는 했다.
손을 들어 그의 두 뺨을 덮었다. 무릎으로 일어서며, 이번엔 자신이 먼저 그에게 키스했다.
“강, 나는 그리 똑똑하지 못해서…… 잘못된 선택을 할지도 몰라. 그래도…… 온 힘을 다해 강을 사랑할 거야.”
“……너 요즘, 고백이 잦아졌다.”
키스를 받아주는 그의 눈길이 가늘었다. 그가 되묻는 목소리가 밝지 않았다.
“혹시, 떠나야 한다던 날이 가까워진 거야?”
“…….”
“얼마 안 남았어? 그래서 그래?”
무언은 해인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답이었다.
사신이 돌아오기 전까지 짧게는 두 달. 그건 길다기보다는 짧은 시간이었다. 이 여행을 마지막 여행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처음 고양이가 됐던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더 이상 해인에게 있어서 봄은, 기다려지는 따듯한 날이 아니었다. 차라리 이 겨울이 길기를 바랐다.
말로 고르지 못할 만큼, 이 겨울이 절실했다.
***
시율이 자는 동안 해인은 창가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결국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 챙겨 온 자신의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들었다.
창가 가까이 앉아서 료칸의 정원과 달을 그리기 시작했다.
밤이면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는 건 어느새 들어버린 버릇일지도 모르겠다.
태일이 함께 살았을 때, 해인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은 밤뿐이었으니까.
사각사각, 이제는 제법 짧아져서 몽당해진 색연필들로 해인은 지금 제 눈에 아름다운 것을 남기는 데 여념 없었다.
기억을 남기지 못한다면 그림이라도 욕심부리고 싶었다.
제 얼굴을 그리는 건 안 되지만 이 정도는 가능했으니까.
본래는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몸인 데다가, 최근에는 기운이 넘쳐서 잠은 더욱 무의미했다. 어둠 속에서도 모든 건 똑똑히 보였다.
열중했더니 날이 밝는 건 금방이었다.
밤새 그렸더니 그림은 꽤 그럴싸한 퀼리티가 나왔다. 해인은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시율의 기척을 느끼고 손을 멈췄다.
“너, 거기서 뭐 해……?”
“그림 그렸어!”
시율은 비어 있는 옆자리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잠도 덜 깬 손으로 제 옆을 토닥거렸다. 해인은 얼른 그의 옆으로 돌아가 배를 깔고 드러누웠다.
“안 잔 거야?”
“잠이 안 와서. 그린 거 볼래?”
“……그래.”
“어때?”
해인이 내민 A4 사이즈의 스케치북 안에는 여러 색감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밤하늘의 어디에서 이런 반투명한 아름다운 보라색을 본 건지, 달은 왜 이런 신비한 푸른빛인 건지. 자신이 빠졌던 연못마저 색색을 써서, 빛이 비춘 보석 같은 색이었다.
시율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명색이 촉망받는 아티스트의 그림인 줄은 모르고 말이다.
“……엄청 잘 그리네.”
“아무렴 강보다야.”
“사람들은 내가 개를 그리면 다람쥔 줄 알더라.”
“고양이를 그리면 뱀인 줄 알고.”
“맞아.”
시율이 가끔 하는 말이라 해인은 제가 뒤를 따라 말했다. 그가 유일하게 못하는 하나가 자신이 제일 잘하는 한 가지라니, 신기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해인이 기분이 좋아져서는 턱을 괸 채 노래하듯 말했다.
“이거 여기에 주고 갈까 봐. 심심해서 그린 것치고 잘 그려졌어.”
“……료칸에? 밤새 그린 건데 아깝지 않아?”
“에이, 그냥 색연필로 막 그리 건데, 뭐.”
“너무 아까운데, 그러기엔……. 이거, 내가 가지면 안 돼?”
시율이 정말 아까운지 그림을 팔랑 흔들며 물었다.
그거, 좋은 생각이었다. 나중에 자신이 보면 제 그림이라는 걸 알아볼 수도 있을 테니까.
첫눈에는 모를 테지만, 시율이 우리가 함께했다는 증거로 이 그림을 들이밀면…… 그림 속에서 자신만의 버릇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만약 그런 의도로 시율에게 주고자 하면서 그렸다면 그림을 그리지 못했으리라. 해인은 겨우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잘 가지고 있어줘. 혹시 내가 알아볼 수 있도록.’
그의 이마에 살포시 굿모닝 키스를 했다.
***
“우선 유후인에 갈 거야.”
시율이 빵을 하나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게 뭐야? 먹는 건…… 아닌 거 같고.”
“이쪽으로 관광 오는 사람들은 거의 다 들리는 유명한 관광지야. 오래된 산에 둘러싸여 있는 전통이 있는 마을이래. 여행책자에 의하면 일본 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라는데, 아마 네 취향 아닐까?”
“오호.”
“특히 거기 있는 호수가 장관이라는데…… 저것들 챙겨 가서 또 그려도 좋겠네.”
“지금은 괜찮아.”
시율이 원하면 색연필 챙기라고 눈짓했지만, 해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자고 있을 때나 혼자 심심해서 그린 거였다.
낮에는 당연히 그와 팔짱 끼고 데이트하는 데 시간을 쓰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유명한 신사에 들를 거고. 신사 알지? 우리나라 절 같은 거.”
“당연히 알지. 신사! 만화에서 봤어!”
“마지막으로 저녁에는 쇼핑센터에 가서 트리를 보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사고…… 8시 전에 귀가해서 오늘이야말로 달을 보면서 온천을 하는 거지.”
“……다 좋은데, 맛집은 없어? 모처럼 여행 왔잖아.”
여행의 묘미는 맛집이건만, 이 남자의 완벽한 플랜에서는 완벽하게 식당이 배제되어 있었다. 그건 이상한 공백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맛있는 것도 좋아하면서 지금도 대충 빵을 먹고 있었다.
“그건 됐어. 네가 안 먹으니까.”
“……어?”
“혼자 먹어서 뭐해. 대충 때우지, 뭐. 군것질거리라면 여기저기서 팔 거야.”
여기까지 와서 그런 아까운 짓을! 해인은 분명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가끔 맛을 보기 위해 먹기는 해도…… 잠이 필요 없듯, 음식도 필요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행이란 평소와는 다른 것이었다. 해인은 큰맘 먹고 말했다.
“저기, 이번엔 먹을게. 고양이로 돌아갈 일 없으니까, 마음껏 먹을 수 있어.”
“……그래?”
“응. 여행하는 동안은, 사람으로만 있을 거니까.”
평소에는 뭔가 먹어도 아주 조금 먹었는데, 사실 먹으려면 더 먹을 순 있었다. 음식을 먹어 버릇하지 않았더니 위장이 작은 느낌이라 금방 더부룩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소식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고양이로 돌아갈 때를 대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내내 사람으로 있을 거니까, 평범하게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시율이 아쉬운 얼굴로 턱을 긁적였다.
“이런, 네가 못 먹을 것 같아서 화식도 신청 안 했는데, 내일은 해야겠군.”
“화식은…… 뭔데? 먹는 거지, 그건?”
“가이세키라고…… 일본의 한정식 같은 거랄까. 상다리 부러지게 일본 음식을 차려주지.”
“나 그거 느낌 알아! 엄청난 거잖아!”
역시나 만화에서 얻은 지식이었지만 말이다. 그걸 먹기 위해서라도 해인은 오늘 하루 열심히 위를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숙소를 나가기 전, 시율은 해인의 목에 뭔가를 걸어줬다. 방긋 웃으면서 묵직한 그것을 손수.
“몸에서 절대 떼지 마.”
마치 영험한 부적이라도 걸어주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반면 해인은 질색했다.
“……이, 이런 건 할머니들이 하는 거야!”
“오, 그걸 알다니, 제법이군.”
어디서 구해 왔는지 휴대폰에 빨간 스트랩을 연결해 목에 걸어준 것이다. 그것은 요즘 보기 힘들다는 휴대폰 목걸이였다.
“모를 줄 알았냐!”
“그래도 해.”
“주머니에 넣으면 되잖아!”
“넌 그러면 잃어버리고도 남을 것 같아. 여기 와서 한 것들을 생각해봐.”
“……끄응.”
“그리고, 목줄을 거는 것보다는 낫잖아.”
이거나 목줄이나!
그는 일부러 붉은색 스트랩을 산 게 분명했다. 산책 줄과 똑같은 색의 줄을 목에 건 기분이 꾸리꾸리했다.
볼을 부풀리며 현관으로 나왔는데, 뚱한 해인의 눈에 걸린 건 눈 쌓인 꽃나무였다.
해인은 대끔 옆에 가는 시율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그것을 손짓했다.
“강! 강, 나 이거 좋아해.”
“뭔데?”
깊게 생각하지 말고 말해야 했다. 툭, 하니 내뱉듯. 그렇지 않으면 방해당하니까. 아마 이런 식으로 두 번 말할 수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방해꾼은 학습을 해서, 한 번 당한 것에 두 번 당하지 않았으니까.
해인은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하는 시율에게 재차 설명했다.
“동백나무야.”
“꽃도 안 폈는데 알아보네. 아…… 알겠다. 이거 네가 매일 나 기다리는 그 집 앞에 있는 거구나.”
“맞아!”
“이파리가 특이해서 기억하지.”
그의 기억력은 역시나 특출했다.
동백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자마자 꽃이 피는 나무라서, 가끔 이르게 피어서 눈을 맞기도 했다.
그래도 꽃이 떨어지지 않는 생명력이 강한 꽃나무였다. 시율이 넓은 동백나무 이파리를 만지작거리며 대꾸했다.
“난 네가 벚꽃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게 더 좋아.”
“흠. 의외네.”
다들 시율과 비슷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해인은 또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시율이 동백나무를 보고 있다는 사실로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걸 알면, 내 소중한 사람인 거야.’
왜냐하면 엄마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알고 있기 때문이거든. 해인은 누군가에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뭔지 말해본 적 없었다.
항상 속으로 생각하고 속으로 정했다. 애초에 속을 내보이는 데 인색한 사람이라, 곧이곧대로 말하지도 않았다.
작품 활동으로 주로 꽃을 그리다 보니 무슨 꽃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고는 했는데, 그럴 때면 해인은 그냥 벚꽃이라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꽃이 맞기도 했고.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했으니까.
동백꽃이라고 하면, 하나같이 왜냐고 묻고는 했다. 보통 사람들은 썩 좋아하지 않는 꽃이었으니까.
‘아빠가 좋아하셨어. 단아하다고.’
해인은 시율을 따라 꽃잎에 눈을 털어주며 말했다. 말할 수 있는 거라도. 흘러가는 흔한 말로 들릴지라도.
“강, 동백나무의 꽃말 알아?”
“모르는데.”
“기다림이야. 애타는 사랑이라는 뜻도 있고, 옛날옛날에, 남편을 기다리다가 죽은 부인의 무덤에서 피어났다는 설화도 있어.”
그림의 주 대상이 꽃이다 보니, 해인은 꽃에 대해 제법 해박했다. 자세한 생물학적 정보보다는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을 좋아했지만 말이다.
“다른 꽃말은,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작게 말하고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의 이파리를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그가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사실은 더 중요한 걸 가르쳐 주고 싶지만, 이 몸에 얽매여 있는 이상은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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