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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스-93화 (93/114)

93화. 고양이도 부끄러워

물을 뚝뚝 흘리며 다다미방을 가로질러 갔다.

해인은 자신이 아직 짐도 다 풀지 않은 깨끗한 방에 구정물이나 다름없는 연못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에 이를 딱딱, 부딪치면서도 시율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이 깔끔쟁이 남자는 아직 그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급해서 그런지 다른 걸로만 성질을 내고 있었다.

“내가 너 때문에 정말!”

“으드드…….”

“온천이 여기지 거기냐! 어!”

시율은 온갖 구박을 아끼지 않고 쏟아내며 정원과는 반대쪽 문을 열어젖혔다. 곧장 온천이 보였다.

시율이 잡지를 보여주며 기대하라고 당부했던 그 멋들어진 전경 그대로였다.

높은 대나무로 빙 담벼락이 둘러져 있고, 그 너머로 이름 모를 커다란 산이 보였다. 자연의 풍경을 그대로 모방한 아늑한 개인 온천은 이 료칸의 자랑이라는 천연온천이었다.

물론 그 경치를 즐길 여유 같은 건 없었지만 말이다.

해인은 온천 옆에 마련된 샤워실로 끌려 들어가 그대로 샤워기 세례를 받아야 했다.

온천에 그대로 집어넣을 줄 알았더니, 뜨거운 물로 행구는 게 먼저였다. 하긴, 더러운 채로 온천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온천에 들어가기 전에는 씻는 게 예의였으니까.

다만…….

“뜨거워!”

사람 삶을 일 있냐, 이 남자야! 해인이 버둥댔지만, 시율은 억지로 해인의 머리를 감기며 소리쳤다.

“참아! 몸부터 녹여야 할 거 아니야!”

“끼약!”

“그러게 왜 거기에 빠지냐, 빠지길! 이 한겨울에 얼어 죽으려고 작정했지!”

연못에 한번 잘못 빠진 죄로 시율에게 온갖 혼쭐은 다 나는 중이었다. 시율은 본래 이렇게 윽박지르는 남자가 아니었다.

잘못하지만 않는다면 항상 상냥했다. 말썽만 안 부리면 말이다.

해인에게 그건 자신 없는 일이었지만.

“너 인마, 연못물이 얼마나 더러운 줄 알아?”

흘러내리는 흙빛 물을 보니 알겠네요.

물을 맞는 동안 연못에서부터 머리에 달고 왔는지 조각난 연잎이며 개구리풀 같은 게 물을 타고 몸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잔뜩 떨어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찌꺼기들을 보며 해인은 입 다물고 혼나는 수밖에 없었다.

누가 그리로 순간이동 하고 싶어서 했겠는가. 다만 될지 안 될지 모르고 반신반의한 채로 시도했다가 이 모양이 됐을 뿐이었다.

‘정신통일만 제대로 했어도 성공하는 건데! 연못에서 그놈의 잉어가 풍덩거리지만 않았어도!’

불끈 주먹을 쥐던 해인은 시율이 제 옷을 벗기려고 해서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내가 할게, 내가!”

“…….”

“믿어주세요!”

해인은 저를 비 맞은 개처럼 노려보는 시율을 향해 부지런히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그는 당장 해인을 벅벅 씻기고 싶은 눈치였다.

예전에도 이런 일을 경험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태일에게 처음 주워졌던 비 오는 날에 말이다. 비를 쫄딱 맞은 고양이의 운명도 목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쫄딱 젖기는 했지만 명색의 숙녀였다.

“깨끗이 씻을게. 귀 뒤까지 박박 씻을게!”

“……너, 온천에 이상한 거 떠다니면 혼난다.”

“넵.”

시율은 그 말과 함께 미심쩍은 눈길도 남기며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언뜻 뭔가를 가지고 온다고 하는 것 같았다.

해인는 얼떨결에 벗겨질 뻔했던 위기를 겨우 모면하고는, 한숨을 돌리며…… 덜덜 떨었다.

“히익, 더럽게 춥네.”

아직도 이가 절로 맞부딪쳤다.

시율이 서둘러 뜨거운 물을 들이부어줬는데도 말이다.

아무리 이 몸이 추위에 강하다지만 눈 내린 한겨울에 살짝 언 연못에 빠지고도 껄껄거리고 웃을 정도는 아니었다.

해인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젖어서 몸에 달라붙는 옷들을 겨우겨우 벗어냈다.

탈피라도 하는 양 낑낑대며 벗고 있자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반투명한 욕실 문을 두드리는 건 보나 마나 시율이었다.

똑똑.

“이제 씻을 거야! 벗는 게 힘들어서 그래!”

해인은 괜히 제 발 저려서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시율은 깐깐하게 굴기 시작하면 엄마보다 더했으니까.

“문 앞에 샴푸랑 보디워시 갖다 놨으니까 써라.”

“앗, 맞다.”

“수건도 여기 놓는다!”

그러고 보니 단출한 욕실 안에는 비누밖에 없었다. 아마도 온천하기 전과 후에 간단하게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샤워실 개념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해인은 제가 확실히 손이 많이 가는 종류임을 인정해야 했다.

그 덕에 시율이 고생이 많다는 것도.

***

꼼꼼히 씻고 나온 해인은 시율이 가져다준 커다란 수건을 가슴 아래로 둘러 묶었다.

“잘 씻었네.”

“당연하지, 내가 애도 아니고!”

“아아, 애가 아니라 연못에 빠지셨나 보지?”

“……거시기, 그건…….”

직감하는데, 시율은 이 연못 건으로 한 달은 구박할 게 틀림없었다. 기억력이 좋은 남자는 이럴 때 나빴다.

물론 확실히 그럴 만큼 황당한 사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해인은 슬쩍 시율의 눈길을 피하며 뭐라고 변명해야 물에 빠진 게 자연스러워 보일지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건 게 있을 리 없었다.

순간 이동을 초보운전으로 하다가 주차에 실패했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거까지 한다는 걸 알면…… 사람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지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을 구미호쯤으로 생각하는 시율인데, 거기에 확신을 보태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럴 땐 얼버무리는 게 최고였다.

“……에헷?”

“……됐고. 추우니까 온천에 먼저 들어가 있어. 나도 씻고 따라갈 테니까.”

“넵.”

해인은 과장되게 경례해 보였고, 시율은 그런 해인은 흘겨보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제야 한숨을 좀 돌리며 여유를 갖고 온천을 둘러볼 수 있었다.

개인 온천이라 엄청 넓진 않았지만, 둘이 쓰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큰 안방 정도의 크기일까.

뿌연 수중기가 발목까지 넘실댔다.

아래는 증기가 고여서 후덥지근하고 묵직했고, 위쪽은 공기가 맑고 차가워서 경쾌한 느낌이었다. 그 이질감이 제법 신선했다.

무엇보다 하늘이 뻥 뚫려서, 실내라기보다는 야외인 게 분명했다.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산도 구름에 잠겨 공들인 한 폭의 풍경화처럼 보였다.

해인은 돌로 된 바닥을 발바닥으로 몇 번 쓰다듬다가, 대나무로 된 담장으로 다가가 대나무 사이로 밖이 보이나 살펴봤다.

대낮에 야외에서 벗고 있는 건 조금 부끄러워서, 아무리 담장이 있다지만 미덥지가 못한 느낌이었다.

‘음, 그래도 누가 훔쳐보진 않겠네.’

대나무 너머는 바로 산이 있었다.

어두워서 사람이 지나갈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해인은 일단 노출증은 없기 때문에, 수건을 좀 더 단단히 가슴 위로 조여 맸다.

그러고는 슬렁슬렁 그제야 온천으로 다가가 발끝부터 집어넣었다가 냉큼 빼냈다.

무척이나 뜨거웠다.

온천을 해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뜨거울 줄도 몰랐다. 찬물 틀어달라고 하면 시율에게 등짝을 맞을까?

잠시 이 무슨 시련인가 싶었지만…… 기껏 온천에 와서 뜨겁네 어쩌네 하는 건 그다지 어른스럽지 못한 것 같아서 해인은 일단 참기로 했다.

이미 충분히 온갖 말썽을 저지른 와중에 어른스러워 보이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욕심이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더 애 같아 보이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오늘의 말썽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토한 것과,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연못에 빠진 거면 충분했다.

“……사실 좀 넘칠지도…….”

해인은 작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몸에 두른 수건을 꼭 붙잡고는 발끝부터 조금씩 온천물에 집어넣었다.

넣었다 뺐다, 식혔다가 덥혔다를 반복하면서 센티 단위로 물 안에 들어갔다.

이를 악물고는 무슨 고문이라도 당하는 표정으로, 마침내 어깨까지 입수에 성공했지만 이게 뭐가 좋은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탕 안의 물이 너무 뜨거워서 머리가 팽팽 돌기 시작했으니까.

피부가 당장에 분홍빛으로 달아올랐고, 몸은 언제 덜덜 떨었냐는 듯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온천은 아무래도 어른들의 취미인 걸까. 중년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고난이도의 고온사우나 같은 건가!

해인은 문득 어릴 적, 목욕탕에서 엄마의 손에 의해 반쯤 익도록 때를 불렸던 기억을 되새겼다.

‘싫어어! 할머니, 살려줘! 엄마가 나 죽인다!’

‘어유, 이 가시나! 조용히 좀 못하니!’

‘으앙! 아빠한테 이를 거야!’

‘가만있어야 불 것 아니야!’

매번 등짝 스매싱을 당했었다.

생각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해인은 뜨거운 물에 약했다. 남들이 적당하다고 하는 온도도 혼자 뜨겁다고 난리를 쳤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전생에 고양이였던 티를 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모처럼의 여행이었고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았다. 하나 있는 연인이 워낙 어른스러운 인물이다 보니 조금쯤은 비슷해지고 싶었다.

당장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애써 자기 최면을 시도했다.

‘나는 어른이다. 나는 어른. 이 정도 뜨거운 것쯤 어른의 힘으로……. 으음, 그 전에 변신에다가 이젠 순간이동까지 하는 이상한 생물체지만…….’

자연스레 자기최면에 실패한 건, 퐁당퐁당거리며 제 턱에부터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때문이었다.

당분간 이 소리는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어릴 적 추억을 떠올렸더니, 그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도 연달아 떠올랐다.

시율은 버리고 본래대로 돌아가려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듯, 이해할 수 없었다. 끝맺을 듯 끝맺지 못하는 고뇌였다.

해인은 물 안에서 무릎을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숨을 가늘게 몰아쉬어야 했다.

‘그래도 순간이동을 할 수 있으니까…… 엄마를 만나러 가기는 수월할지도.’

그동안 쓴 교통비가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자신에게 이런 힘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진작 썼을 텐데. 물론 쓰고 나니 연비가 나쁜지 사람으로 서너 시간 있었던 것만큼의 기운이 사라져 있었지만 말이다.

겨우 몇 미터 이동했을 뿐인데…….

물론 그것 말고도 단점은 많았다.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는 것과, 실패 확률이 높아 보인다는 것.

조금 정신을 팔았을 뿐인데 연못에 빠진 걸 생각하면, 잘못 썼다가는 벽 같은 데 몸이 낄지도…….

확실히 그건, 지금 온천 안인데도 몸이 부르르 떨릴 만큼 무서운 상상이었다.

‘……사신은 일부러 안 가르쳐 준 게 틀림없어. 아마도 쓰기 어려워서.’

변신 기능은 가르쳐 주면서, 다른 유용해 보이는 기능을 숨긴 원인이야 뻔해 보였다. 시율이 저를 보며 매번 불안해하듯, 사신도 그랬을 것이다.

막 시도하면 안 된다는 건 분명했다.

잘못해서 옮겨간 곳에 사람이 있으면 그것도 큰일이니까.

아, 그래서 사신이 매번 공중 사이로 순간이동을 했나 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해인으로서는 난감함 일이었던 터라 똑똑히 기억났다.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해인은 고양이의 진화 버전이 새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이것저것 생각하는 사이 뜨거운 물에는 제법 적응해 있었다. 몸이 흐물흐물해지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긴장이 풀리고, 온천의 장점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나도 어른…….”

“후, 오자마자 계획이 틀어졌잖아. 온천은 저녁에 느긋하게 할 예정이었는데.”

시기적절하게, 시율이 젖은 머리를 하고는 샤워실에서 빠져나왔다.

해인은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제 쪽으로 다가오는 시율을 바라봤다. 그는 허리에 수건을 두르며 터벅터벅,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탕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미쳤다.

“둘이 들어가기에 좁을까 봐 걱정했는데, 괜찮아 보이네.”

“…….”

시율은 해인과 달리 발을 한 번 넣더니 그대로 쑥 물 안에 들어와서는, 뜨거운 물을 손에 담아 자신의 얼굴과 목덜미를 몇 번 문질렀다.

지극히 나른하고, 느리고…… 그래서 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미쳤어.

“너 왜 말이 없냐.”

그의 미간으로 물이 흘러내렸다. 젖은 머리칼은 어딘가 야했다. 물에 젖은 남자는…… 너무 섹시한 것 같았다.

물에 적셨다는 것만으로 성인관람가가 된 느낌이었다.

분명 가릴 덴 다 가리고 있는데…… 수증기 때문에 시야는 더 나쁜데. 물이 문제일까, 이 남자의 고질적인 페로몬이 문제일까.

나는 왜 매일 보는 남자에게 이렇게 지독한 설렘을 느끼는 걸까. 그가 수증기 너머로 저를 보는 눈이 나른해서일까. 그 목소리가 물에 잠긴 듯 찰랑대서일까.

그와 자신이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적나라해서일까.

지금 숨이 막히는 건 분명, 뜨거운 탕 때문이리라.

“너 물 뜨겁지? 얼굴이 빨갛다.”

시율의 더운 손이 제 뺨을 만졌을 때, 해인은 뭔가 한계에 도달한 걸 느꼈다.

“……얌마.”

“엣.”

“코피…….”

그의 말에 놀라 퍼뜩 고개를 내리자, 물 위로 뚝, 하니 떨어지는 선명한 핏방울이 보였다. 해인은 놀라 손으로 코를 틀어막으며 변명을 내뱉었다.

“무, 물이 너무 뜨거워서. 그래서 혈압이 올랐나 봐.”

“어지러우면 그만…….”

“아우! 이게 왜 이런대!”

해인은 당황해서는 급히 탕에서 빠져나왔다. 당연히 시율이 따라 나왔다. 그는 여전히 흠뻑 젖은 채였다. 코피는 멎지 않았다.

어째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

코피가 진정이 되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해인은 코에 휴지를 틀어막고 다시 탕 안에 앉아 있었다.

대체 이 여행에 수치의 끝은 어디인가. 자신은 어디까지 망가져야 하는가.

해인은 뜻하지 않은 번뇌에 빠졌다. 보통 연인이 하는 데이트라고 하면 이런 느낌이 아닐 텐데…….

“……풉.”

“우, 웃지 마!”

“푸하하핫!”

“강!”

웃지 말라니까 더 폭소해버리는 남자를 보며 해인은 한층 시뻘건 얼굴이 됐다.

차라리 연못이 나았다. 코피를 터트릴 바에야 말이다. 코에 휴지를 넣어야 할 바에는 말이다.

아무래도 자신은 일본과 상성이 나쁜 모양이었다. 여기 오는 내내 자꾸만 트러블이 생겨서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아아, 배야…… 내가 너 때문에 산다. 정말.”

“……못 사는 게 아니고?”

너무 웃더니, 눈물인지 온천물인지 모를 것을 눈가에서 닦는 시율이었다. 해인은 여기가 일본만 아니라면 정말 가출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끄러움은 왜 오로지 나의 몫인지. 이젠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너 때문에 사는 게 행복하니까. 그게 맞아.”

“……흐, 흥. 구박해놓고는…….”

“그보다 이제 강이라고 부르는 거 그만둬도 되지 않아?”

보글보글, 코를 조금이라도 덜 강조하기 위해 탕 안에 코 아래까지 담그고 있던 해인은 시율의 물음에 의아한 눈을 했다.

“우란 어엿한 연인 사이잖아. 언제까지 그렇게 부를 거야.”

“그런가……?”

“으흠.”

“이름…….”

하긴, 그는 멀쩡한 강시율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처음에 그를 ‘강’이라고 멋대로 줄여 불렀던 건 단순히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게 너무 친근한 느낌이라서, 그게 싫어서였다.

그땐 그와 사이가 나빴으니까. 앙숙에 가까워서…… 이렇게 될 줄 몰랐었다. 꿈에도.

함께 온천을 즐기는 사이가 될 거라고는 말이다.

해인은 잠시 궁리했다. 그럼 그를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까. 풀 네임을 부르는 건 되레 정 없고, 이름만 부르자니 건방진 것 같고…… 그럼.

“……시, 시율……오빠?”

내뱉고 나니 다시 심하게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부끄러운 일에는 끝이 없는 것 같았다.

“…….”

그는 왜 말이 없는 걸까. 해인은 시율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잔뜩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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