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양이 키스-90화 (90/114)

90화. 고양이는 외롭지 않아

해인은 공원과 아파트 사이에 있는 예쁘장한 주택 앞에 멈춰 섰다.

정원이 넓은 이 단층 주택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집주인의 성품이 분명 정갈하고 아늑할 거라는 느낌을 주고는 했다.

그림 같은 정원이나, 하얀 아치형 대문 때문일까.

담벼락 대신 높게 자라 있는 동백나무가 이 집의 가장 예쁜 점이었다.

동백나무 앞에 서면 공원의 후문이 바로 보였는데, 퇴근하고 그곳으로 빠져나올 시율을 기다리는 게 요즘 이맘때 해인의 일이었다.

‘마중이라면 병원 앞으로 가는 게 더 좋지만.’

여기가 최적의 장소가 되어버린 건 예전과 달리 병원에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져서였다.

방유나의 존재는,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했음에도 여전히 위험하게 인식되는 모양이었다.

‘얄궂은 주술…… 아니, 저주 같으니라고.’

고양이 모습일 때는 아무 문제 없이 전처럼 병원에 들락날락하다 못해 안에서 뛰어다닐 수 있었지만……

일단 사람으로 변하면, 박해인의 얼굴을 하면 그때부터는 몸이 까탈을 부렸다.

병원의 반경 1km 주변으로 무슨 결계라도 생긴 것처럼,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고양이로 변신해서 병원에 들어간 다음에, 사람으로 변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시도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절대 어림없다는 걸.

억지로 고양이로 되돌아가는 판에.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여간 이 몸은 사신의 주술에 아주 충실했으니까. 애초에 사신의 것이니까 당연할지도…….

여튼, 해인이 사람일 때 병원에 접근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무려 15분 거리 밖. 병원 앞이라기보다는 아파트 앞에 가까운 곳.

“슬슬 올 때가 됐는데?”

해인은 공원의 뒷문을 빤히 쳐다보다가 살며시 동백나무 아래 쪼그려 앉았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래 봐야 아무도 없는 집 안을 뒹굴거리며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건데, 지금 하는 일도 결국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집 안에 갇혀 시간을 때우는 건 지겹고 따분하고, 이 자리에서 그가 보이길 기다리는 순간은 즐겁고 두근거린다는 거였다.

그는 알려나. 하루 종일 자기만 기다리는 기분이 어떤 건지.

물론,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거나 스케치를 하면서 뒹굴거리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그를 기다리는 일부일 뿐이었다.

이렇게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고 있을 때면 해인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의 전부에 한없이 가깝다는 걸 말이다.

“주인 기다리는 개가 이런 기분이려나……?”

쪼그려 앉은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바람에 날려 작은 눈이 빙글빙글 천천히 허공을 휘돌면서 내리고 있었다. 그 자체로 하늘은 예뻤다.

눈으로 덮인 꽃나무 그늘도. 쌀쌀한 겨울 공기도. 제 입술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도.

모든 게 반짝거렸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를 기다리던 순간이 이런 느낌이라는 거.

***

타닥.

눈길을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해인은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앗, 너 또.”

“……강!”

“기다리지 말라니까.”

후문으로 나오는 시율이 보이자마자 해인은 거의 팔짝거리듯 뛰어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오지 말래도 자꾸 밖에 나와 있는 해인이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하필이면 며칠 연속 눈도 오고 추운데 마중을 나오기 시작할 건 뭔지.

물론 태일이 없으니 그런다는 건 알지만 추위로 발갛게 물들인 뺨을 보면 못내 마음이 쓰였다.

본인은 별로 안 춥다고 했지만, 보는 그의 눈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선선한 가을바람도 막아주고 싶은 마음이 이런 추위를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 추위를 못 견디는 건 해인보다는 그의 마음이었다.

“말도 참 안 들어.”

그는 그렇게 핀잔하면서도, 팔짱을 끼려고 하는 해인에게 서슴없이 자신의 코트 사이를 열어 보였다.

해인은 냉큼 그의 팔 아래로 파고들었다. 다람쥐처럼 웅크리며 익숙한 품을 차지했다. 그의 체온으로 덥혀진 코트 안은 더없이 따듯했다.

마치 그곳만은 겨울이 아닌 것처럼.

“헤헤.”

그는 해인을 자신의 코트 속으로 집어넣고 나서야 조금 풀어진 목소리였다.

“추운데 왜 자꾸 나오는 거야.”

“기다리려고!”

“집에 있으면 좀 좋아? 따듯한 데서 기다리면 어련히 간다고.”

시율은 코트 자락을 움직여 해인의 어깨를 꼼꼼하게 덮어줬다. 고양이 때만큼 작진 않았지만 지금도 그의 코트 안에 들어오기에는 충분히 아담한 몸집이었다.

그에게 살갑게 몸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기에도, 부족하지 않았다.

해인은 일단 기분이 좋으면 그가 버티기 힘들 만큼 넘치는 애정공세를 퍼붓고는 했다. 꼭 지금처럼.

“그치만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

“하루 종일 보고 싶었단 말이야!”

“너 어째, 요즘 부끄러워하는 게 없다.”

“그야 내가 강을 좋아하는 만큼 강도 날 좋아한다는 걸 아니까. 그럼 부끄러워할 필요 없잖아? 나 혼자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맞는 소리긴 하지만. 예전에 부끄러움을 타던 때는 그럼 몰랐다는 건가. 시율은 뻔뻔해진 해인을 내려다보다가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막지 못했다.

“그래도 오늘은 강이 너무 걱정해서 두껍게 입었어. 정말이야. 봐봐.”

“그건 그거고. 일단 춥단 말이야.”

“에잇, 얇게 입으면 얇게 입었다고 타박, 두껍게 입으면 두껍게 입고 나왔다고 타박! 대체 어쩌라는 거야!”

“그러니까…… 집 안에만 있으라는 말이지.”

“엑, 그럼 숨 막혀서 어떻게 살아?!”

시율은 마치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거의 진심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해인을 집 안에 가둬놓고, 문을 잠그고, 저만 혼자 보고 싶었다.

없어지길 바라지 않는 마음은 두 번째고, 그보다는 다른 누군가에게 이렇게 웃을 거라고 생각하면 슬그머니 화가 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 번도 그러는 걸 보진 못했지만.

‘태일이 녀석이 없어지니까…… 본성이 더 기어 나온단 말이지.’

강시율 그는 본래 공유라고는 모르는 남자였다. 자신의 사생활부터, 자신이 아끼는 어떤 것도 남과 나누는 건 질색이었다.

하지만 그걸 두고 독점욕이라고 여겨본 적은 없었다. 사생활에 민감한 건 타인을 자신의 가까이에 두는 게 불편해서였으니까.

그 증거로 지난 그의 어떤 연인도 그에게 딱히 소유욕을 불러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해인에게는 자신도 몰랐던 위험한 본성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들끓는 독점욕 같은 거, 자신은 평생 모를 줄 알았다.

“농담이야. 추우니까 그만 들어가자고.”

“난 한군데 가만히 못 있는단 말이야.”

“알아요, 알아.”

해인은 볼을 부풀리며 시율을 따라 집 쪽으로 끌려가듯 걸음을 옮겼다.

처음 이 사신탈을 받게 된 것도, 사신이 새로운 몸을 만드는 데 1년이 걸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 동안 사신의 공간 안에만 갇혀 있다가는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아서.

전생이 고양이라서 그랬는지, 타고난 방랑벽 때문인지는 몰라도 해인은 원체 잘 싸돌아다니는 타입이었다.

시율도 그걸 알아 해인이 가만있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 아가씨, 오늘은 하루 종일 뭘 하셨나?”

“공원 고양이들 밥 주고 왔어!”

“흠, 안 하던 짓을 하네. 하루 이틀 하면 질릴 줄 알았더니.”

“날 뭘로 보고……!”

“상당한 기분파라 뭐든 금방 질리는 아가씨지.”

“……그, 그건 맞지만…… 겨울이라 신경 쓰인단 말이야. 전에 말했잖아. 엄청 어린 녀석도 있다니까.”

종알종알. 해인은 시율이 퇴근하면 하루 종일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그는 관심 없을 법한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이야기들.

아침 드라마의 내용부터, 어떤 홈쇼핑 물건이 기가 막힌다는 것까지 소소하고 쓸데없는 것들이 주를 이뤘지만, 시율은 전부 귀담아들어줬다.

해인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는 그에게 중요한 관심거리였으니까.

“아아, 기억난다. 그래서 너 말고도 누가 밥을 챙겨준다고 그랬지.”

“응! 오늘도 처음 보는 남자가 와서 자기도 밥 줘도 되냐고 하더라. 캣 대디는 처음 봤어!”

“……그래서?”

“주라고 했어. 내가 밥 주는 거 특허 낸 것도 아니고. 여럿이 주면 좋은 거잖아.”

“흐음…….”

“그런데 갑자기 나한테 휴대폰 번호를 물어봐서 도망쳤어.”

잘 걷던 시율이 덜컥 멈춰 서서, 해인도 따라 멈췄다. 왜 이래?

“젊냐.”

“응?

“그 남자.”

해인은 이 방면으로 상당히 눈치가 둔했다. 시율이 왜 미간을 모으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본인이 그 남자에게 너무 관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마 강 정도일까?”

어느 정도냐면 분명 몇 시간 전에 본 남자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율은 해인의 그런 반응에 안도하는 대신 눈썹 끝을 꿈틀거렸다.

이래서 집 안에만 가둬두고 싶어지는 거다. 이렇게 무방비하니까. 그는 아직 철벽 치는 해인을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그의 눈에 해인은 이렇게 몸을 비비적거리길 좋아하는 애교 넘치는 생물이었으니 말이다.

태일에게도 그랬고, 이하은에게도 금방 넘어가서는 달라붙었고, 김기도는…… 열외.

“……다음엔 같이 가자.”

“응? 공원에? 강은 길고양이 밥 주는 거 별로라며. 야생성 떨어트린다고.”

“보통은 꾸준히 못 주니까 끝까지 책임 못 질 거면 반대하는 편이지만…….”

“편이지만?”

차마 그 얼굴도 모르는 캣 대디가 신경 쓰인다고는 말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해인을 옆구리에 끼고도 질투를 하고 있다고는 말이다.

휴대폰 번호를 물어봤다는 데 화가 났다는 것도.

해인이 제 입으로 저 애인 있어요, 라고 말하지는 않을 테니 따라가서 기필코 영역표시를 해야겠다는 것도.

“겨울이니까. 고양이들 예방접종이나 해줄까 해서.”

“그거 좋다!”

“잡을 수 있는 녀석들에게라도 놔주면 좋지.”

“응응!”

“……근데, 잘생겼어?”

“……애기 고양이가?”

“아니.”

“아, 보스 고양이?”

“……됐다.”

이렇게 아웃 오브 안중이라니 되새겨주진 말아야겠다.

시율은 해인을 보며 생각했다.

‘이 눈치 밤탱이.’

***

여행은 당장 내일로 다가왔다. 아니, 출발이 새벽 4시니까 몇 시간 뒤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했다.

해인은 시율이 씻는 동안 은밀하게 트렁크 안을 뒤지고 있었다.

32인치 여행가방 안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건 해인의 옷이었다. 시율의 옷은 그에 비하면 단출하게 코트 한 벌과 스웨터, 셔츠 정도였다. 누가 꼼꼼한 남자 아니랄까 봐 짐도 아주 잘 싸놨…….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반지는!’

해인은 벌써 제 것으로 치고 있는 반지를 찾고 있었다. 시율이 여기에 챙겼을 게 분명한데, 아무리 뒤적여 봐도 반지가 없었다.

대체 언제 주려는 걸까. 여행 가서 줄 거라면 여기 챙겨놨어야 하는데.

‘혹시 내 게 아니었다든가…… 그, 여동생이나 부모님거였다든가…….’

그걸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봐버린 이상 해인은 반지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가방을 뒤지는 데 몰두했는지 시율이 다가온 것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해인은 지금 평소에 자랑하는 예민한 감각 이상으로, 반지에 대한 높은 집중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뭐 해? 수상하게.”

“그냥……! 뭘 챙겼나 해서…….”

“너도 챙길 거 있으면 얼른 가져와.”

“없어, 없어.”

그는 애초에 해인이 반지, 아니 반지로 추정되는 상자를 봐버렸다는 걸 모르니 수상하게 구는 이유도 알지 못했다.

다만 젖은 어깨에 수건을 걸치며 트렁크 앞에 앉아서는 자신이 안 챙긴 게 있나 다시 살펴보는 그의 얼굴도 해인만큼은 아니지만 들떠 보였다.

“부산까지는 차를 끌고 갈 거야.”

“드, 드라이브 좋지!”

“중간에 휴게실에 한 번 들를 거고.”

“……그럼 우동 먹을래!”

“우동?”

“여행 하면 역시 휴게소 우동이잖아!”

수상한 짓을 하다가 딱 걸려서 슬금슬금 도망치던 해인은, 다시 시율의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고양이 모습이었다면 필시 꼬리 파닥파닥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뭘 좀 아네.”

“기본이지, 기본!”

“아, 부산에 가서는 배를 타기 전에 바다도 좀 보고.”

“……그러고 보니 부산 가는 것 자체도 여행이잖아. 대박!”

뭐, 이렇게 완벽한 플랜이 다 있담. 해인은 하물며 여행계획까지 완벽하게 짜야 직성이 풀리는 자신의 남친에게 찬사를 보냈다.

많은 양의 숙제를 줬던 건 아직도 원한이 남는 일이지만 말이다.

“겨울이라 수영은 못하지만, 아쉬운 대로 좋겠지.”

“난 어차피 수영은 싫어. 바다는 좋지만.”

“그럼 바다는 보기만 해?”

“당연하지. 보기만 해. 그거면 충분한걸.”

“……이상한 녀석. 고양이라 그런가.”

아니, 원래도 그래.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바다에 가도 끽해야 발이나 담그는 해인이었다. 해수욕을 해본 역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나 이렇게 큰 배를 타보는 건 처음이야.”

“그럴 거 같긴 했는데. 역시.”

아무래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집이다 보니 해인의 어머니는 항상 바빴다. 그 속에서 가족 여행이 거의 없었던 건 해인이 사랑받지 못해서는 아니었다.

먹고살기 바쁜 엄마에게 우리도 놀이동산을 가자고 조를 만큼 해인은 뻔뻔하지 못했다.

억지로 어른이 되어야 했던 유년시절이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감당하면서는 타인을 싫어하게 됐다.

가장 섬세한 시기에 당한 상실은 상처가 깊었다.

또 누군가를 잃을 거라고 생각하면 혼자가 편했다. 그러니 혼자의 세계에 틀어박혀도 되는 그림은 그녀의 천직인 셈이었다.

그래서일까. 해인의 그림은 딱히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쓸쓸함이나, 고독, 서글픔, 어떤 가녀린 외로움. 해인의 그림을 보고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 물으면 다들 그런 것들을 이야기했다.

아무리 많은 색채를 덕지덕지하게 덧붙이고 섞어도 하나같이 그랬다.

‘해인 씨 작품은 항상 전하고 싶은 게 확실해서 좋더라. 외로움, 혼자.’

그런 말을 한 교수도 있었다.

쓸쓸해서 멋진 감정이라고. 이런 선명한 외로움은 아무나 표현할 수 없는 거라고. 그땐 그게 칭찬인 줄 알았고, 자신의 장점인 줄 알았다.

그러다 보니 밥을 먹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전부 혼자 하는 거면 족했다.

혼자 먹는 밥은 먹고 싶은 메뉴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혼자 보는 영화는 보고 싶은 장르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다.

여행도 그랬다. 혼자 하면 싸울 일도 없고, 얼마나 자유로운지…….

“부산에 간 김에 하고 싶은 거 더 있어?”

“…….”

“먹고 싶은 거나. 뭐든.”

정말, 내내 그렇게 살아왔는데. 자신이 아주 외로운데 그게 외로운지도 모를 만큼 익숙해져서.

시율을 만나보니 이제야 알겠다.

사실은 이런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는데, 받아주는 사람이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걸 말이다.

오랫동안 자신을 따듯하게 채워줄 상대를 만나지 못했고, 그래서 계속 외로운 채였다.

“강.”

“응?”

낯을 가리느라 쉽게 곁을 내주지 못했고, 누구도 그 따가운 외면과 무시를 받으면서까지 해인과 이만큼 친해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들, 그냥.

고양이는 혼자도 잘 지낸다는 편견처럼, 해인도 원래 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세상에 외로운 걸 좋아하는 존재는 없을 텐데.

“고마워.”

“여행이?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데.”

“외롭지 않게 해줘서, 고마워.”

“……갑자기 왜 그래.”

혼자 있는 게 외로울까 봐 달려와 줘서, 고마워. 어딘가 데려가 줘서 고마워. 꼭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여 줘서, 고마워.

혼자 있어도 쓸쓸하지 않게 해줘서 고마워.

사실은 내가 외로웠다는 걸 알게 해줘서.

“사랑해. 알지?”

“……알아.”

“내가 까먹어도, 강은 까먹으면 안 돼.”

누군가와 같이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걸 가르쳐 줘서. 내게 외로움 말고도 그릴 수 있는 걸 가르쳐 줘서.

뒤에서부터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어깨 위로 눈가를 기댔다. 해인은 시간이 멈추길 바라지 않았다.

돌아오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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