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고양이의 철벽
특강은, 밤에도 계속됐다.
어두운 침실, 미등 하나 켜놓고 한이불을 두른 둘은 어깨를 나란히 기대고 엎드려서는 일대일 집중 강의가 한창이었다.
“길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한다?”
“그 자리에 서 있는다!”
“그리고?”
“휴대폰을 켜고 강시율한테 전화한다!”
“좋아. 거기선 정말 잘 가지고 다녀야 된다. 로밍할 거니까.”
시율은 해인에게 외국의 무서움에 대해 단단히 설교하는 중이었는데, 거의 초등학생 수준의 수업 같을 때가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하면?”
“……그건 좀 아니다! 내가 몇 살인데!”
“몇 살인데?”
“에…….”
“어차피 난 모르는걸. 아무튼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거야?”
“……으음, 뭘 사주는지 봐서…….”
“이 녀석이.”
이번엔 그가 코를 잡아서 해인은 꺅꺅대며 도망쳤다. 아깐 뺨을 늘리더니, 이 선생님 손버릇이 영 별로였다.
잠시간 퀸 사이즈의 침대 위를 도망치고 붙잡느라 엎치락뒤치락거렸고, 결국 해인이 시율의 등 뒤에 날렵하게 매달리는 것으로 사태는 진정됐다.
“안 따라가면 되잖아!”
“억지로 데려가려고 하면?”
“소리 지른다. 아니! 남자 친구 있다고 말한다.”
“말이 안 통할 텐데?”
“그럼, 보란 듯 키스한다.”
해인은 그 자세 그대로 시율의 목을 꼭 하니 끌어안으며 그의 머리 위에 쪽쪽, 자잘한 키스를 쏟아부었다.
그에 시율은 낮게 웃으며 마음대로 하라는 듯 자신의 커다란 몸을 늘어뜨렸고, 해인은 그의 몸을 실컷 간질이다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어차피, 강이 내 옆에 꼭 달라붙어 있을 거잖아?”
시율이 노파심을 내는 것에 비해 해인은 태평했다. 그만 믿고 있으면 된다는 걸 알았다. 어떤 여행이 되든 즐거울 거라는 것도.
“뭐, 그렇긴 하지.”
“또 강을 잃어버려도 난 금방 찾을 수 있는걸.”
“으흠?”
“냄새로.”
해인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시율의 냄새를 찾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 있어도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저만의 체취가 있었고, 시율이 쓰는 향수나 샴푸, 비누 스킨, 그것들이 섞여서 또 그만의 향을 만들었다.
해인은 그의 냄새를 좋아했다. 아주 청결하고, 기분 좋은 냄새였으니까.
“그리고 내가 없어지면 강이 울 거 아냐. 그럼 안쓰러우니까 꼭 붙어 있을 거야.”
“이봐이봐, 미아는 넌데, 내가 우는 스토리냐.”
“그게 사실인걸.”
반은 장난이었고, 반은 진심이었다. 해인은 그렇게 그의 등에 매달려 있는 게 제법 마음에 들어서 잠시 그렇게 있었다.
생각보다 편하기도 했다. 그가 숨을 쉬는 게 가슴 아래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는 무겁지도 않은지 해인을 등에 업은 채로 자신이 프린트해 온 내용들 중 중요한 부분을 다시 읽어주고 있었다.
이 선생님, 하여간 끈질겼다.
“우선 부산으로 가서, 거기서 국제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탈 거야.”
“알았다니까.”
“배는 세 시간 동안 항해할 거고. 넌 그동안 캐리어에 있어야 해. 참을 수 있겠어?”
“그쯤이야 문제없지.”
“불안한데…….”
시율은 자꾸만 했던 이야기를 또 해주고 있었다. 해인은 공부하기가 싫어서 그의 옆으로 데룩 굴러가, 어깨를 비비며 불쌍한 얼굴로 호소했다.
“강, 공부 그만하면 안 될까? 내일 자습할게.”
“과연.”
“정말이야. 오늘은 많이 했잖아?”
“50장 중에서 40장 남았는데.”
어림없다는 눈이었다. 해인이 혼자는 절대 공부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아는 눈치였다.
그가 준 대량의 숙제는 얼핏 살펴봤더니 반은 안전 수칙과 주의점 등등이었고, 반은 여행코스와 간단한 일본어 회화였다. 책으로 내도 될 수준의 자세함이 아주 일품이었다.
“……그, 사흘이나 남았고…….”
“12시 지나서 이제 삼 일 남았어.”
“일본어 회화랑 여행 코스는 가서 봐도 되잖아! 응? 응?”
“……공부하기 그렇게 싫냐.”
젠장. 이 남자 안 통하네. 해인은 애교 공격이 통하지 않자 폭풍 때를 쓰기로 했다.
“그래! 엄청 싫어! 싫다고! 공부 재미없어!”
세상에 누가 공부를 좋아하냐! 라고 속으로 소리치면서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 남자라면 ‘나.’라고 말하고도 남았으니까.
해인이 공부하기 싫다고 그렇게 진심으로 칭얼대고 있자니, 시율이 한숨과 함께 프린트를 덮으며 물었다.
“네가 애냐.”
“어른이라 더 싫어!”
“넌 뭐가 재밌는데, 그럼.”
“……난, 이런 거.”
해인은 기회다 싶어서 기습적으로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쳐 눌렀다. 완전히 방심한 채로 저보다 아래 누워 있는 남자에게 키스하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돌연 덮쳐진 시율은 제법 놀란 얼굴이 됐다.
그러다가 이내 얼마나 공부하기 싫으면 이러나 싶어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응? 난 공부라면 질색이란 말이야.”
“참 나…… 유혹하는 거야?”
“응. 안 져줄 거야?”
“……져줘야지.”
백 번이라도. 시율은 그렇게 덧붙이며, 손을 뻗어 해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자신에게로 당겨갔다.
커다란 손안에 작은 어깨는, 굉장히 기분 좋은 것이었다.
***
“좋은 학생이네.”
“그렇지?”
따스한 시율의 가슴팍이 좋았다. 해인은 그에게로 몸을 기대며, 그의 팔 안에서 그의 턱 아래 입술을 눌렀다.
저와 같아진 그의 체온을 느끼며, 손안에 익숙한 피부를 더듬었다.
한창 기분 좋은 여운을 느끼며…… 미안하긴 하지만 태일이 없으니 좋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강, 나 있잖아. 일본에 가면 유명한 병아리 과자를 먹어볼 거야.”
“좋지. 바나나 빵도 있어. 알아?”
“그럼! 딸기 모찌도!”
“먹고 싶은 거 전부 거기에 적어놔.”
기대된다. 엄청 기대된다.
해인은 이불 속을 빙글빙글 굴러다니며,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는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애교란 애교는 다 부리고 있었다.
그에게 아낌없이 기분 좋은 몸짓을 하고, 행복한 듯 웃었다. 누운 채로 그를 보며 웃는 반달 모양 눈이, 그의 마음까지 행복하게 했다.
그저 얕고 말랑거리는 미소가 가슴을 파고들어서, 심장 속에서 나가지 않았다.
손끝으로 해인의 웃는 눈 모양을 건드렸다. 허리를 끌어와 품에 가득 안고는 가느다란 속눈썹 끝에 닿을 듯 말 듯한 키스를 했다.
그가 바랐던 둘만의 시간은, 그가 상상하던 것보다 하나도 부족하지 않았다.
사랑이란 공기마저 부드럽게 만들었다. 숨 쉬는 것조차 기분 좋게 했고, 시선을 섞고 함께 호흡을 맞추는 순간을 어떤 다디단 노래처럼 느껴지게 했다.
“아깐…… 화내서 미안해.”
“응? 괜찮아. 강은 이유 없이 그러지 않으니까.”
“뭐, 너도 나름 이유가 있었겠지만…….”
물어봐야 나가서 뭘 했는지는 또 비밀일 테고. 시율은 잠시 말은 멈췄다. 해인은 비밀이 너무 많았고, 자신은 그것마저도 사랑하기로 했다.
그래도 좋다고 한 건 자신이니, 그걸로 투덜거리는 건 남자답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잠시간 말없이 흐트러진 해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다가, 천천히 귓가에 걸어주며 다른 중요한 얘기를 꺼냈다.
“아무튼 괜찮아진 거 같으니까, 내일은 같이 병원에 가서…….”
“그건 안 돼.”
“……안 된다고?”
“방유나 씨 만나는 거, 안 돼.”
“왜?”
마냥 웃고 있던 해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늘은 삽시간에 기분 좋은 것들을 잡아먹었다. 공기가 돌연 차가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림.”
“뭐?”
“그림 그리지 마.”
“……그럼 못 찾잖아.”
해인은 할 수 없는 말들 대신에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해인이 속상한 걸 참고 있다는 것쯤은 말이다. 저를 끌어안는 작은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가고, 바르르 떨고 있는 걸 보면, 뻔한 일이었다.
“그리면…… 안 돼.”
이렇게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냥 조를 때면, 그는 차라리 차분한 기분이 됐다. 다만 울까 봐 해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나지막이 물었다.
“……그림 그리면, 변신할 수 없어?”
“……응.”
“또…… 아파져?”
“…….”
“그렇구나.”
그도 많이 생각을 해봤다. 오늘 아침, 평소와 달랐던 게 무엇인지. 되돌려보면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방유나를 만나러 가자고 했었다.
그것 말고는 걸리는 게 없었다.
그리고 해인은 이상하게 저를 그리는 걸 불편해했다. 그림을 그리면 방해하고, 그림 얘기를 하면 말을 돌리고.
해인이 이상하게 굴 때는 항상, 흔적을 남기려고 하거나 흔적을 찾았을 때였다.
“그럼 안 그릴게.”
시율은 그렇게 수긍했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가 무섭도록 머리가 좋다는 게 새삼 실감했다.
해인은 그의 가슴에 안겨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감사했다. 그가 제게 있어줘서 다행이었다.
이런 남자라,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
함께 말이 없어진 시율은 품에 파고드는 해인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생각에 빠졌다.
요즘 들어서는 자신들 사이에 혹시 ‘제3자’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해인은 자의로 보이지 않은 일을 가끔 했으니까.
‘괜찮아. 난 병 같은 거 안 걸린댔어.’
얼마 전에는 그런 말을 하기도 했고. 자신이 잘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다른 누군가는 안다는 뉘앙스를 비치기도 했다.
누가 있는 걸까.
해인의 행동에 제재를 걸고 하면 안 되는 걸 정해주는 누군가가?
“……화내도 돼.”
그가 말이 없자, 해인은 제가 부리는 이상한 억지에 그가 차라리 화를 냈으면 했다. 기껏 그가 좋은 수를 내도 제가 방해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미운가.
심지어 그게 저를 위한 일들이라는 건 정말이지 면목 없는 일이었다.
“응? 화를 왜 내.”
“나는 도움도 안 되고. 말썽만 부리고. 걱정만 끼치고.”
“……고양이는 원래 그렇더라.”
“치, 고양이랑은 좀 다르다고.”
“흐음.”
뭐, 그거야 보면 아는 일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신을 하겠는가. 시율은 그보단 무거워진 이 분위기를 아까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해인의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제 가슴 사이에 가두고는 끈질긴 키스를 했다. 깊고, 야릇해지는 그런 키스.
“응?”
이 내밀한 키스의 뜻을 모를 리 없는데,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해인은 이불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난데없이 시트로 몸을 둘둘 말고는 눈만 밖으로 조금 내보였다.
지금 그게 무슨…….
“이번 주는 그만이야.”
“뭐?”
“일주일에 한 번이야! 알짤 없어”
“말도 안 돼. 그런 독재가 어디 있냐?”
이불 밖으로 붙잡고 나오려고 했지만, 잡으려고 하자 해인은 이불 속으로 잽싸게 머리까지 숨나 싶더니…….
그대로 작아져 버렸다.
무슨 마술쇼도 아니고, 이불 밖으로 빠져나오는 매끈한 검은 고양이는 치명적으로 얄미웠다.
고양이로 변신해버릴 줄이야. 이러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너무하는 거 아냐?”
시율이 억울함에 항의했지만 해인은 뚱한 얼굴로 침대 발치로 내려가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강, 이러려고 나 만나?”
고양이 주제에.
“……너, 너 어디서 그런 말을 배운 거야!”
화를 냈더니 냅다 도망가 버렸다. 한번 도망치면 결코 잡을 수 없는 그 날랜 뒷모습을 보며, 시율은 극렬한 후회에 빠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화 같은 거 안 했을 거다.
다른 걸 했을 거다.
***
내일이면 기대하고 기대하던 여행 날이었다.
해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요 며칠 매일 했던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건 바로 길고양이 밥 주기였다.
얼마 전 관리인 아줌마에게 부탁받은 뒤로 며칠째 해오고 있었다. 싫은 척하면서도 은근히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가 왔다, 이놈들!”
해인이 공용 화장실 앞에 나타나기 무섭게, 밥을 기다리고 있던 고양이들이 사방에서 졸졸 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냐오!”
“냥!”
“미야아.”
녀석들 나름대로 반가움을 표했고. 개중 살가운 녀석들은 벌써 해인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지 않은 마른 땅 몇 군데에 나눠서 사료를 부어주고, 눈치 보느라 못 먹는 녀석들을 위해서 또 따로 부어주고. 물그릇 가득 물도 챙겨줬다.
겨울은 먹이도 귀하지만 물이 전부 얼어버려서 물을 꼭꼭 챙겨줘야 했다.
여름엔 비라도 오지, 겨울엔 추운 눈만 내렸으니 말이다. 길고양이들에게 깨끗한 물이란 정말 귀한 음식 중 하나였다.
“어디 보자, 또 늘었네?”
참 신기한 게, 고양이들 사이에도 어딜 가면 밥을 준다는 소문이 나는지 하나둘,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 수가 늘고 있었다.
짐승들 간에도 모종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모양이었다.
“앗! 너 인마 저리 안 꺼져!”
해인은 어린 고양이들을 위해 준비한 캔을 뺏어 먹고 있는 대장 고양이를 거칠게 내쫓았다. 별로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지 금방 돌아와 다시 캔에 코를 묻었지만 말이다.
“야, 이 양심 없는 놈아! 애들부터 먹여야지!”
유난히 덩치가 커다란 녀석을 들어 올려 다른 건 사료 앞에 내려줬지만 녀석은 이 근방의 두목답게 고집이 셌다.
가장 맛있고 가장 고단백질인 캔을 향한 집념이 보통이 아니었다. 다시 호통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제 새끼 아닌 다음에야 약육강식의 원칙에 따라 양보란 없었기 때문이다.
해인은 결국 식탐을 부리는 대장 때문에 어린 고양이들 앞에서 캔을 지켜야 했다.
쉭쉭. 쫓아내는 손짓을 하며, 눈 때문에 발이 시린지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린것들을 쓰다듬어 줬다.
사람들은 중무장하다시피 옷을 입고 목도리에 장갑까지 꽁꽁 껴입어도 추워하는데, 숨만 쉬어도 하얀 입김이 서려 나오는데, 이제 갓 솜털이 빠진 이 어린 녀석들이 죽지 않고 겨울을 버틴다면 그건 정말이지 기적 같았다.
“왜 겨울에 태어났니…….”
물론 녀석들 탓은 아닐 테지만, 안타까웠다.
시율은 길고양이는 보통 겨울에 새끼를 잘 낳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들도 생존이 힘들다는 걸 알아서 될 수 있으면 겨울은 피한다고 말이다.
이 녀석들은 어쩌다 한겨울에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있는 걸까. 어미 고양이는 왜 또 보이지 않는 거고. 어디선가 죽은 걸까?
이 유난히 어린 얼룩이들이 신경 쓰이는 건 해인뿐이 아닌지, 누군가 화장실 옆에 스티로폼을 잘라 고양이 집을 만들어두기도 했지만 그건 금세 다른 고양이들 차지가 됐다.
길은 춥고 열악했다. 다들 살고 싶어 했기에 약한 녀석부터 쓰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으휴, 내가 한 며칠 못 오니까. 아줌마가 주는 밥 먹고 있어. 알겠지?”
“미야?”
“미야먀.”
“저 뚱땡이 조심하고.”
해인이 말하는 뚱땡이는 대장 고양이었다. 혼자만 맛있는 건 다 먹는지 가장 패둥패둥했다.
시율은 그 얘기를 했더니 길고양이들은 염분이 들어간 것을 그대로 먹어서 살이 잘 찌는 것뿐이지 건강한 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놀랍게도 길고양이의 수명은 고작 3년이었다. 4년만 되어도 장수한 셈이라니. 전에는 몰랐던 이야기였다.
“다녀올게. 힘내고 있어.”
***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보다 중요한 건, 흔적을 치우는 일이었다. 제대로 치우지 않으면 벌레도 꼬였고,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수 있었다.
그만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자박, 자박 눈을 밟고 제게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돌아보자 저 멀리서 웬 덩치 큰 남자가 다가오다 말고 놀라서 멈춰 서는 게 보였다.
왜 자기가 오다가 자기가 놀란대?
“……?”
“……엇, 저기…….”
거리가 제법 됐지만 해인은 청력이 좋았고, 남자가 저에게 말은 거는 듯싶자 당장 뒷걸음 질 쳤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니거든요……?”
“…….”
이상한 사람이 자기 이상하다고 말하나! 해인은 다가오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까지 부지런히 내저으며 후진했다.
시율이 보면 좋아했을 만한 철벽 바리게이트였다.
“다른 게 아니라 전 이 근처 캣 대디인데…….”
“……?”
“혹시 이렇게 생긴 애 못 보셨어요?”
대여섯 걸음 앞에서 휴대폰 화면을 보여줘 봤자, 보통은…… 안 보였다. 해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랐지만.
해인은 눈에 익은 연두색 눈에 회색 털을 가진 고양이를 보고는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여전히 말은 입도 벙긋 안 했지만.
‘강이 모르는 사람이랑 얘기하지 말랬어.’
그보단, 본인이 낯을 가리는 것도 문제였지만 말이다.
“엇, 보셨어요? 여기 나타나나요?”
해인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목도리 속으로 얼굴을 거의 숨기고는 남자가 한 걸음 다가오면 한 걸음 뒷걸음질 치면서 말이다.
“저희 집 근처에서 몇 년째 밥 주던 녀석인데 요즘 안 보여서…… 무슨 일 생겼나 해서 찾아다니고 있었거든요…….”
해인은 고양이 구분이라면 아주 잘했고, 저 남자가 찾는 고양이가 여기 나타나는 녀석이라는 걸 알았다. 요즘 이 근처 고양이 무리 속에 섞여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남자는 주변의 고양이들을 한번 둘러봤고, 자신이 찾는 고양이가 지금은 없자 다시 해인을 주시했다.
분홍색 목도리에 얼굴을 묻고는 커다란 눈으로 사람을 경계하는 모양이…… 꼭 고양이 같았다. 이름 모를 남자는 항상 들고 다니는 건지 주머니에서 고양이 사료를 꺼내 보였다.
“혹시, 저도 여기서 밥을 줘도 될까요?”
뭐, 그런 거야 문제없었다. 많이 주면 좋지. 마침 며칠 못 오는 터라 해인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없었지만 그건 남자가 보기에도 좋아하는 눈이었다.
“내일도 오세요?”
도리도리.
“아…… 그렇구나.”
“…….”
“괜찮으시면, 제 휴대폰 번호 가르쳐 드릴 테니까…… 그 아일 보면 연락 주실 수 있나요?”
남자가 너무 가까워졌고, 해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다가 냉큼 도망쳤다. 거참 엄청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죽어도 저한테 관심 있는 남자라고는 생각 못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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