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고양이 공부시키기
그는 할 말을 잃었다.
잔뜩 걱정했는데.
“강! 왔어?”
아침에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하루 종일 걱정했는데, 집으로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어딜 싸돌아다니는 건지 알 수는 없고.
당장 조퇴하고 싶어도 진료가 밀려서, 급한 일만 끝내고는 서둘러 귀가했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 저를 향해 반색하며 총총, 가벼운 걸음으로 뛰어나오는 해인이었다.
혼자만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상쾌한 얼굴을 하고는…….
그는 멀쩡히 두 발로 서 있는 해인을 게슴츠레 하게 노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응?”
울컥 화가 나서 태평하게 방실거리고 있는 뺨을 붙잡아 무자비하게 늘리며 이를 갈았다.
“너 인마.”
“으엑? 에이래? 아프아!”
“전화도 안 받고, 대체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거야?”
“으야야!”
일부러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건 그도 알았지만, 너무 걱정했던 나머지 지금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해인이 야속한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으로 변할 수 없다며 펑펑 우는 걸 두고 출근하기가 어디 쉬웠겠는가.
혼자 있고 싶다며 등 떠밀기에 마지못해 출근하기는 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머릿속에는 온통 해인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러다 기어코 실수를 연발해서 간호사들에게 요즘 들어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기나 하고. 그런데 정작 본인은…… 이렇게 태평한 얼굴로……!
“느와줘어어.”
뺨이 늘어날수록 점점 못생긴 얼굴이 됐다.
해인은 그의 손등을 찰싹찰싹 소리 나게 때리며 바둥대야만 했다. 아니, 세상에, 자기 여자 친구를 손수 못난이로 만드는 남자 친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게 몇 번째냐, 응?”
“으아으아!”
억지였다. 겨우, 딱 한 시간 외출했는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정돈 봐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일일이 모든 행동을 보고할 수 있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거다.
해인이 보기에 시율은 요즘 들어 걱정이 너무 많았다. 잠깐만 눈에 안 보여도 불안해하는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그 마음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뺨은 놓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아픈 건 둘째치고 품위가 없었으니까.
“이이, 모생겨지자나아! 이그느아!”
반항이 극심해졌다. 뺨을 더 잡아 늘렸다가는 울거나, 물 것 같았다.
고양이란 본래 남이 저를 걱정하거나 말 거나 자유로운 영혼이긴 했다. 어딜 그렇게 맘대로 다니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알긴 알지만…….
“……실컷 걱정시키고는.”
시율은 한숨을 쉬며 손을 풀어줬지만 여전히 눈초리가 사나웠다.
풀어지자마자 두 손으로 부랴부랴 뺨을 문지르며 그를 올려다보는 해인의 눈이 꼭 반항기 소녀 같았다.
그가 더 힘주어 노려보자 금세 눈을 내리깔았지만 말이다.
“……미안.”
“너, 걱정돼서 숨 막히는 기분 알아?”
“조금은……?”
“알면 좀 얌전히 굴어야 할 것 아냐.”
“네에에네.”
가끔 아빠 같을 때가 있는 시율이었다. 자식들이 으레 그렇듯 해인은 혼나면서도 자신은 타당했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한쪽은 걱정하느라 바쁘고, 한쪽은 뭔가 한다고 바빴다. 걱정하는 쪽에서 보기에는 뭘 하든 불안했고.
“그래서 이젠, 괜찮아진 거야?”
“응. 전화했었어?”
“그래! 세 번이나!”
5분 간격으로 계속. 그러고 나서야 해인이 집 밖에 나갔다는 걸 깨달은 시율이었다.
변신이 안 되는 중이었으니 만약 고양이 모습으로 나갔을까 봐 속이 새까맣게 탔다.
“……잘못했어.”
“나가는 건 좋아. 좋다고.”
“으응.”
“그럼 휴대폰을 들고 다니면 되잖아! 왜 안 가져가는 거야!”
“거…… 챙긴다고 챙기긴 하는데…….”
이건 확실히 할 말 없이 깨갱해야 할 부분이었다. 해인은 휴대폰 얘기가 나오자 슬금슬금 그의 눈을 피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가 분명 휴대폰을 하나 장만해줬지만, 해인은 원래도 그랬듯 거의 놓고 다녔다.
“챙기긴. 아예 꺼져 있더만.”
“그야…… 집에 있을 때는 안 쓰니까 꺼뒀다가…… 혹시 나갈 때…….”
“놓고 가지.”
젊은 여자치고는 드물게도, 해인은 휴대폰이라는 물건을 매우 귀찮아했다. 예나 지금이나 말이다.
그림 작업을 할 때는 매우 집중해야 해서 휴대폰을 꺼놓는 경우가 많았고, 장시간 그걸 반복하다 보면 점점 오는 연락 자체가 줄어버려서 나중에는 방전된 걸 며칠씩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그게 익숙한 지인들이다 보니 다들 해인과 며칠 연락이 안 되어도 하나 당황하지 않았다. 여전히 연락이 잘 안 되는데 문제 삼는 사람이 없는 건 그런 화려한 전적이 있어서였다.
“아주 당당하게 놓고 가.”
“……데헷.”
“내가 그걸 꼭 목에 걸어줘야겠냐!”
시율과 똑같은 답답함을 느낀 이들이 몇 있었다.
하지만 해인은, 제발 전화 좀 받으라고, 휴대폰은 왜 있는 거냐고 누가 성질이라도 내면 도리어 작업 방해하지 말고 적반하장인 위인이었다.
전형적인 고독한 예술가 타입으로, 작업할 때는 특히나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뭐가 문제야? 할 말이 있으면 문자를 남기면 되잖아?’
마치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라던 누군가처럼, 문제를 몰랐다.
‘왜 꼭 바로 통화해야 해? 문자 해. 답장은 32시간 안에는 해줄 테니까. 운 나쁘면 76시간일 수도 있고. 난 그게 편해.’
그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박해인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덕에 연애와는 담 쌓을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완전히.
누가 작업이라도 걸라치면 답장을 해야 썸이 되는데 읽지도 않고 씹어버리니…… 전보를 쳐도 해인과 연락하는 것보단 소통이 잘될 게 분명했다.
지금 해인의 잠수병으로 고생하는 시율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에 첫 남자 친구가 될 수 있기도 했다.
“하아…… 너한테…… 휴대폰이 낯선 거 이해는 하는데 말이야.”
이래 봬도 해인이 멀쩡한 현대인이라는 걸 알 리 없는 시율은, 다만 써본 적이 없어서 휴대폰 같은 기계에 취약하다고만 여겼다. 적응을 못 해서 그렇다고.
그러니 이 말썽쟁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속만 썩을 뿐이었다.
“날 생각해서 좀 가지고 다녀줘라. 제발.”
“……넵. 노력할게용.”
대답은 참 잘했다.
해인은 커다란 눈을 불쌍하게 뜨고는 살금살금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매달렸다. 잘못한 게 있을 때는 유난히 귀엽게 굴어서 그를 마음 약하게 만드는 수법이었다.
“정말루.”
눈을 너무 반짝여서,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부리는 애교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시율은 속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해인이 이래놓고 또 까맣게 잊어버릴 거라는 걸 알았다. 당연하다는 듯 항상 맨손으로 덜렁 몸만 싸돌아다녔으니 말이다.
고양이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니, 옷이라도 입어주는 데 감사해야 하는 건지 이젠 헷갈리는 수준이었다.
“……아무튼, 해결됐으니 다행이네.”
“응!”
“휴대폰 좀 가지고 다니고.”
“넵.”
“……그럼 씻고 올 테니까, 이거나 읽고 있어.”
시율이 재킷을 벗으며 내민 건, 조금 두툼한 A4 뭉치였다. 리포트의 향기가 물씬 나는.
“이게 뭔데?”
“읽어둬. 일본 가기 전에. 여행 자료니까.”
얼떨결에 받아 들었는데, 두께를 보아 사오십 장은 되는 듯했는데, 그가 직접 만든 자료 같았다. 그리고 첫 장부터 제목도 길었다. 징그럽게 길었다.
이건 절대 순수 여행 자료가 아니었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즐거운 출국 준비 ’
뭐지, 이 읽다가 숨 막히는 긴 부제는.
해인은 격렬한 동공 지진과 함께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글자와는 정말이지 안 친했다. 만화는 봐도 소설은 못 보는 타입이었으니 말 다 했다.
“내가 이걸…… 왜 봐야 하는데?”
“너 일본은 처음이라며? 네가 또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것 같아서 준비했어. 여행은 조심해야 될 것도 많으니까…… 공부해. 거기 가서 또 기분대로 돌아다녔다가는 너 국제 미아 된다.”
“나 바보 아니야!”
“너 길치잖아.”
이런 반박불가를 봤나. 행복한 여행을 앞두고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공부 싫어!”
“그럴 것 같아서 ‘즐거운’을 넣어줬어.”
“그런다고 즐거워질 리가 없잖아!”
“읽. 어.”
아침부터 걱정시킨 대가로 오늘 시율은 저기압이었고, 그래서 인정사정없었다. 그는 예의 그 매서운 눈을 한 번 더 번뜩이고는 욕실로 가버렸다.
해인은 난데없는 숙제를 들고 있다가, 그가 욕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냅다 바닥에 집어 던졌다.
무슨 여행이 이래!
나쁜 남자 같으니! 이젠 여자 친구 공부도 시키는 거냐!
난 예술계 종사자라고!!!
“아, 그리고…….”
덜컥 소리와 함께 시율이 욕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해인은 얼른 주저앉아 황급히 종이 뭉치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톡톡 털며 어색하게 웃었다.
“……떨어트렸졍.”
“…….”
“저, 정말이야.”
손으로 던져서 떨어트렸어!
해인이 시선을 회피하며 과하게 귀여운 척할 때는 분명 찔리는 게 있을 때였다.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물어볼 거니까 제대로 읽어둬.”
여행 가자고 했을 때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 해인은 리포트에 가까운 두꺼운 종이 뭉치를 들고는 점점 볼을 부풀렸다.
***
시율이 식사를 하는 동안 해인은 맞은편에 앉아 그가 준 숙제를 뒤적였다.
물론 억지로 읽으라고 앉혀둔 거였다. 그가 밥을 먹으며 감시했고, 해인은 마지못해 보는 척했지만 딴청 부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당연하겠지만 재미가 없는지, 한 줄 읽고 그가 밥 먹는 걸 몇 분 보고 다시 한 줄 읽고 천장 보고를 반복했다.
‘이 녀석 모범생 타입은 아니군.’
하긴 학생이었던 적이 없을 테니까…… 휴대폰도 잘 못 쓰고.
시율은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밥을 씹었다. 이렇게 식사할 때면 유난히 해인이 저와는 다르다는 실감이 났다.
거의 먹지 않아도 일상에 지장이 없다니, 그건 아주 신기한 일이었으니까.
분명 같은 사람 모습인데…… 조금 깊이 생각하던 시율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해인에 대해서 과학적인 이해를 포기한 지 오래였다.
“강, 여기 모르겠어. 무슨 말인지.”
“어디?”
그는 입에 수저를 문 채로 해인이 가리키는 장을 살펴봤다. 겨우 두 번째 장이었다. 이 녀석…….
“해외로 고양이를 데려가려면 마이크로칩 시술과 광견병이 어쩌고 하는데, 그럼 이걸 내가 맞아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고양이도 광견병에 걸려? 그건 개가 걸리는 거 아냐?”
“광견병은 개가 바이러스를 옮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뿐 모든 동물에게 옮아.”
“엇, 그렇구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광견병이 무서운 이유는 여러 동물에게 옮을 수 있어서야. 그리고 자칫 죽을 수도 있는 심각한 병이고. 잠복기가 길어서 골치 아픈 병이기도 하고.”
“잠복기? 여기 적힌 거 말하는 거지? 광견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출국 6개월 전에 검사를 받으라는 거.”
“맞아. 길면 1년의 잠복기를 가지기도 해서 발병 여부를 확인하려면 그 정도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해.”
잠깐, 그럼 난 여행 못 가는 거? 준비 하나도 안 했는데? 해인이 심각한 얼굴을 했고, 시율은 듣지 않아도 무슨 걱정인지 아는 것 같았다.
“너는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일단 고양이를 대상으로는 이런 형식이 있으니까 알아두라는 거야.”
“그러니까 이거…… 겨우 고양이 하나 외국 데려가는 데 6개월이나 전에 신청해야 한다는 거잖아?”
“개도 마찬가지야. 다들 잘 몰라서 이민 갈 때 반려동물을 못 데려가는 경우도 있어.”
몰랐던 사실이었다. 동물 같은 거 그냥 캐리어에 넣어서, 달랑 들고 비행기를 타면 될 줄 알았다.
“동물들끼리 심각한 병을 옮길 수 있으니까 당연한 검사야.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사실상 광견병이 없다고 봐도 무방해. 10년 가까이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응? 그럼 이런 거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아니지. 이렇게 조심했으니까 일어나지 않은 거야.”
“그렇구나…… 그러네! 강 똑똑하다!”
돌연 수의사 선생님과 함께하는 ‘즐거운’ 과외 시간이 된 것 같았다. 해인은 그래도 글자로 읽는 것보다는 시율이 옆에 붙어서 설명해주니 훨씬 이해가 잘돼서, 그의 옆으로 바짝 자리를 옮겨 갔다.
시율은 밥을 먹던 중이었지만 해인이 묻는 것들을 꼬박꼬박 귀찮은 기색 없이 설명해줬다.
이렇게 친절하고 쉽게 설명해주는 과외 선생님이라면 공부도 할 만한 것 같았다.
“……이거든? 그래서 밀수가 위법인 거지. 천연기념물 같은 동물들이 밀수될 때 이런 검사들을 일일이 받았을 리도 없으니까. 오지에서 백신도 없는 어떤 미지의 병을 옮겨 올지 모른다고 생각해봐.”
“나 비슷한 거 알아. 철새들이 병을 옮기잖아! 조류독감.”
응용예문으로 조류 독감 하나 안다고 엄청 의기양양해하는 해인이었고, 그마저 귀여워 보이니 제가 꽤나 중증이라는 걸 알겠는 시율이었다.
“잘 아네. 그것도 포함이지. 새들은 통제가 안 되니까 골치 아픈 대상이고.”
“음, 그런데 이 검사하는 걸 난 안 해도 된다고?”
“네 피를 뽑아서 뭐가 나올 줄 알고.”
“……그건 나도 무섭다!”
해인은 정말 오싹한 얼굴로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몸에 전자칩 같은 걸 심는 것도 당연히 싫었다. 그나마 광견병 주사를 맞는 게 가장 할 만해 보였지만, 역시나 자신 없는 부분이었다.
“원래는 널 데리고 해외로 나가려면 이게 다 필요해. 이렇게 어렵다는 걸 일단 알려주고 싶었어.”
“그런데?”
“내가 여행지를 굳이 일본으로 정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음, 온천? 아니면 배로 갈 수 있어서!”
“그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운이 좋았지.”
이 남자가 이렇게 웃을 때는, 뭔가 완벽하게 좋은 일이 있을 때였다. 해인은 그가 기분 좋게 속삭이는 것 들을 전부 귀담아들었다.
“오래 알아온 보호자 중에 일본으로 유학 간 사람이 있어. 자취하면서 기르던 고양이를 함께 데려가려고 했는데…… 준비가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결국 못 데려가고 부모님 댁에 맡겼지.”
“그거 참 안됐네…….”
“우리한텐 잘된 거지만. 아무튼 그 양반 일본에서 향수병에 걸렸거든. 무려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말이야. 그래서 결국 고양이를 데려갈 준비를 시작했지. 딱 반 년 전에. 날 통해서.”
“응?”
“피 검사랑 항체 검사도 우리 병원에서 했고, 그 고양이한테 내가 광견병 주사도 놔줬지. 증빙 서류도 다 내가 떼어줬고. 모든 게 순조로웠어. 건강한 고양이였거든.”
설마……! 해인은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았다.
선생님 저 알겠어요! 저요, 저!
해인은 자신감에 차서 발표하고 싶은 기분에 번쩍, 오른손을 들었다. 하지만 시율은 해인의 입술을 손끝으로 살짝 누르며,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고양이를 맡아주고 있던 부모님이 정이 너무 들어서 못 보내주겠다고 하신 거지.”
이 무슨 사랑과 전쟁 양육권 쟁탈하는 소리냐!
“저쪽은 향수병, 이쪽은 빈둥지증후군. 결국 그쪽에서 고양이를 포기하게 됐는데…….”
“딱 내 자리네!”
“딩동. 기껏 들인 검사비랑 수속비를 내가 대신 내주기로 하고, 수속을 취소하는 대신 내가 다른 고양이를 데려가기로 한 거지.”
바로 너.
그의 손이 해인의 이마를 꾹, 하니 느리게 눌렀고, 해인은 우선은 당장의 행운에 기분이 좋았다가…… 소시민답게 더럭 겁을 냈다.
“그, 그런데 그거 불법 아닌가?”
“하하. 아니.”
“아니야?”
“살다 보면 우연히 출국할 고양이가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
……전혀 아닌 거 같은데요, 선생님. 해인은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제가 일본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이건 우연히 고양이가 바뀐 걸로 하기로 했다.
시율이 덧붙였다. 그가 말하니 그럴싸했다.
“일단 여권위조보다는 건전하잖아.”
“……그건 그래?”
“난 법 없이도 산다고.”
“맞아, 맞아.”
“그리고 네 이름은 동동이야.”
동동…….
“원래 일본에 갈 예정이었던 고양이 이름.”
개냥이보다는 아무렴 훨씬 나았다. 해인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제 남은 일은 여행을 기대하며 신나게…….
“그리고 너, 이거 마저 읽어.”
“……으엑.”
“안 읽으면 안 데려가.”
신나게 공부하는 일이었다. 여행 사흘 전이었다. 해인에게는 45장의 숙제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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