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고양이의 미덕
입고 있던 잠옷 사이에서 덩그러니 허무한 얼굴로, 그래봐야 고양이 모습이라 확장된 동공과 바보같이 벌린 입술이 전부지만, 해인은 어느 때보다 충격 받은 얼굴이었다.
“왜, 왜 이러지?”
“……네가 모르면 내가 어떻게 알겠어.”
양기가 부족한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삼 일 내내 사람으로 지내도 될 만큼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갑자기 입고 있던 옷들이 이불처럼 된 이유는 뭘까?
몸이 멋대로 고양이가 된 이유는?
그리고 다시 사람이 안 되는 이유는?
사신탈도 고장이 나는 걸까? 이거 AS는 되는 거야? 아니, 만약 고장이라면 사신이 없는데 누가 고쳐주지?
‘혹시…… 계속 사람이 안 되는 건…….’
해인은 잠시 멍한 얼굴이 됐다가, 생각에 빠졌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처음의 충격 받은 얼굴로 돌아와 소리쳤다.
생각할수록 이거 너무 큰일이었다.
“이런 거 싫어!”
울먹이나 싶더니 기어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느긋하게 출근하려던 시율은 당황해서는 돌아와 해인을 안아 올렸지만, 해인이 버둥대는 통에 다시 침대에 내려줘야 했다.
파닥, 파닥.
“시러시러시러!”
“…….”
“고양이 시러! 으흐엉!”
왜 변신이 안 되는 거야!
해인은 마치 걷고 싶은데 마음대로 걸을 수 없자 뻗대며 짜증 내는 아기처럼 자신의 몸에 온갖 성질을 내고 있었다.
그런다고 새삼 변신이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울지 마.”
“왜…… 흐엉, 왜 안 되는 거야!”
사탕 빼앗긴 아이도 아닌데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 콧물을 쏟고 있는 해인이었고, 그 버둥버둥, 파닥파닥대는 모양을 침대 옆에서 턱을 괴고 구경하는 시율이었다.
“파닥거리지 말고. 진정하고 얘기 좀 해봐.”
“무슨 얘기!”
“왜 갑자기 그러는지, 짐작 가는 거라도 없어?”
“짐작…….”
패닉에 빠진 해인과 달리 시율은 침착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듯했다.
해인은 곧장 눈앞의 사내가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 시율이 보고 있어서 변신이 안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강! 방에서 나가봐! 빨리!”
“으음? 내 방…… 아니 내 집인데.”
시율은 영문도 모르고 방에서 쫓겨나야 했다.
해인은 방문까지 꼭 닫고 방 안에 자신밖에 없음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는, 평소보다 몇 배나 공을 들여 변신하길 기원했다.
‘사람!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반응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었다. 눈을 꼭 감고 있던 해인은 한쪽 눈을 슬그머니 떠봤지만 자신은 여전히 고양이 발을 하고 있었다.
보통 속으로 강하게 바라면 변신이 되는데…… 정성이 부족했던 걸까?
해인은 다시 시도했다. 몇 번이나.
“끙…… 끄응! 끄으응?”
한동안 끙끙거리며 변신을 시도하던 해인은 결국 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했다.
하나도 소용없었다. 애초에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변신은 몇 초면 충분한 일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시율이 등만 돌리고 있어도 변신은 할 수 있었다. 그의 등 위에서도 변신할 수 있었으니까.
그가 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않으면 됐다.
시율이 문제가 아니라면…….
“역시…….”
이 몸은 고장 난 걸까? 갑자기 멋대로 고양이가 되어버린 걸 보면 그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해인은 자신의 고양이 발바닥을 내려보다가, 다시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이젠 다신 사람이 될 수 없는 걸까. 남은 시간을 전부 고양이로 보내야 하는 걸까?
‘이제 키스도 못 하고, 손도 못 잡아? 데이트도 못 해? 여행은? 크, 크리스마스는?’
가장 큰 문제는, 반지를 낄 수 없다는 거였다.
연달아 사람이 아니면 못 하는 것들이 떠올라 엉엉 울고 싶어졌다. 이미 눈물콧물 범벅인 얼굴이었지만.
***
해인은 우울해서 병원에 못 가겠다며, 마치 사형 선고라도 받은 것처럼 기운 없이 흐물거렸는데…… 시율이 출근하고 몇 분 지나자 거짓말처럼 사람으로 변신이 됐다.
혼자 있고 싶다며 시율을 반 쫓아내다시피 했는데.
“이런……! 나쁜!”
심각해져서 눈물 콧물 뽑은 것이 다 민망해졌다.
해인은 제멋대로인 자기 몸한테 화가 나서 사람이 되자마자 발을 동동 굴리며 온갖 할 수 있는 욕을 쏟아냈다.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건지.
아까는 안 됐잖아! 그런데 왜 또 이래!
십년감수한 억울함이랄까. 한참을 그렇게 울분을 터트리다가 뒤늦게 거울 속 제 얼굴을 본 해인은 진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못생겼으니까.
눈물콧물 쏟던 얼굴 그대로 사람이 돼서 그런지 얼굴 꼴이 아주 말이 아니었다. 두 눈은 퉁퉁 부은 데다가 새빨갛게 충혈됐다. 코끝도 술이라도 먹은 것처럼 붉었다.
울어도 예쁜 사람이 정말 미인이라는데, 적어도 저는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 추한 모습을 시율이 못 봐서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시율의 앞에서 운적이야 몇 번 있지만, 기껏해야 훌쩍이는 수준이었지 이렇게 버둥대며 나 죽는다고 울고불고 난리 친 건 처음이었다.
“……차, 창피해.”
그만큼 놀랐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결국 부끄러움은 온전히 해인의 몫이었다.
퉁퉁 부운 얼굴을 손등으로 비비며 욕실로 향했다. 거울로 사람인 제 얼굴을 확인하니, 그래도 안심이 됐다.
열 손가락을 펴서 한참 바라보니 이게 얼마나 소중한 거였지 새삼 와 닿았다.
자칫 남은 시간을 전부 고양이로 지낼 뻔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아직 몇 달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당장 헤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사람이 되지 못하면 그와 함께하는 시간의 의미는 퇴색될 테니까.
“으으…….”
해인이 부르르 떨며 연거푸 찬물로 얼굴을 문지르면서는 문제가 뭐였는지를 알 것 같았다.
원인은, 시율이 아니라 방유나였다.
아까 제정신이 아니긴 했었는지, 제대로 머리가 안 돌아갔는데, 차근차근 다시 생각해보니 그랬다.
모든 게 평소와 똑같은 아침이었다. 시율은 함께 병원에 가자고 했고, 자신은 좋다고 했다. 평소와 다른 점은…… 사람이 되라고 했던 것뿐이었다.
방유나와 저를 만나게 해서 초상화를 그리게 하려고.
“그렇군. 이렇게 방해한다, 이거지…….”
수건에 두 뺨을 묻으며 해인은 지그시 거울 속 저를 노려봤다.
전에는 기절하더니, 이번엔 고양이로 돌아왔다.
뒤늦게 원인을 깨닫고 나니 차라리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꽤나 침착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방유나는 초상화를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박해인’의 실제 지인만큼이나 위험하게 인식된 것 같았다.
바로 자신에게.
해인은 불만스러움으로 가득 차서 거울 속 저를 노려보는 걸 그만둘 수 없었다.
거울 쪽에서도 저를 똑같이 노려보는 게 당연한데, 이상한 느낌이었다. 자신과 자신이 서로를 거슬려 하다니.
“그럼…… 이제 사람으로는 병원에 못 가는 건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사람 모습을 하고 병원에 가는 데 제재를 받은 적은 없었다. 맹세코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과 달라진 건, 분명 방유나뿐이었다.
만약 병원으로 갈 수 없다면…… 원인은 분명해지는 셈이었다.
한번 시험해볼까 싶어졌다.
성공한다면 초상화를 얻을 수 있을 테고, 실패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방해받을지 궁금했다.
해인은 주술의 영향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도전일지도 모르고.
***
병원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면 시율과 마주칠 테니, 해인은 그에게 잔소리를 듣지 않도록…… 정확하게는 걱정 끼치지 않도록 옷을 두껍게 챙겨 입었다.
눈이 오기 시작한 뒤로 날씨는 잔인할 만큼 추웠으니까. 물론 해인이 체감한 건 아니었다. 시율이 감기에 걸려 골골대는 걸 봤을 뿐이었다.
이제는 옷들이 전처럼 숨겨져 있지 않았다.
시율이 사준 하얀 옷장 안에 차곡차곡 들어 있었고, 은근히 옷이 늘어나고 있었다. 제가 사지는 않으니 시율이 어디선가 사와서 하나둘 늘리는 게 분명했다.
‘옷장에 옷이 늘어나는 걸 모르진 않는데…….’
몰래 옷 사주는 희한한 남자야. 그리고 취향이 훌륭해서 대충 골라 입어도 예쁘지.
해인는 목도리며 장갑까지 완전 무장하고는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병원이었고. 다행히 집을 나섬과 동시에 다시 고양이로 돌아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1층에 내려와서, 병원 쪽으로 가는 것부터가 안 됐지만.
“……흐음. 이런 식이군.”
발이 바닥에 붙어버리는 느낌이랄까. 오른쪽으로 가야 병원인데, 그쪽으로 몸을 틀려고 하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잠시 고민하던 해인은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생각하기 전에 행동하면 막을 수 없을 테니까.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쳇!”
공원을 빙 둘러서 병원에 가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방해받는 중이었다. 박해인이 아는 걸 박해인이 모를 리 없었다.
병원과 가까워질수록 자꾸만 두통이 극심해지는 익숙한 방식으로 진로를 방해받는 중이었다.
해인은 결국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머리가 아파와서, 가까운 벤치에 널브러져야 했다.
이제 이 모습으로 병원에 못 가게 된 건 분명했다.
‘젠장, 사신…… 두고 보자! 저주할 거야! 너만 주술 걸 수…… 있지.’
인정하기 싫은 사실에, 해인은 한동안 대단히 억울한 얼굴로 벤치에 쪼그려 앉아 있어야 했다.
그래도 실험 결과, 보아하니 고양이로 돌아가거나 기절하는 건 꽤나 극단적인 방해 수단 같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도 위험한 방식이었다.
혼자 다니다 기절하기라도 했다간 누가 119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병원에 실려 가니까…… 아웃.
그렇다고 이런 공공장소에서 고양이로 돌아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누군가 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사신이 건 주술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정체를 들키지 말 것.’에 위배되는 것이다.
해인은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시율에게 조금이라도 더 흔적을 남길 수 있을지.
그게 어렵다면, 모든 걸 잊은 자신에게 시율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좋은데.
‘이제 얼마나 남은 거지…… 세 달? 봄까지니까…….’
해인은 벤치에 멍하니 앉아 남은 날을 헤아려 봤다. 예전엔 열심히 날짜를 셌는데, 언제부턴가는 의식적으로 대충 생각하고는 했다.
아마도, 시율이 너무 좋아진 다음부터였다.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걸 세고 싶을 리 없었다.
요즘 들어서는 그런 생각도 해봤다. 사신에게 몇 년만 더 고양이로 지내겠다고 부탁해서…… 시율이 저한테 질릴 때까지라도 시간을 버는 거.
2, 3년이면 시율도…… 제게 질리지 않을까.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하하.”
하지만 결국은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그럴 남자였다면 이렇게 좋아하게 되지도 않았을 테고, 이런 고민을 하지도 않을 테니까.
아무리 수단을 강구해보려고 해도, 결국에는 항상 원점이었다.
역시 이 몸은 안 된다는 것.
이렇게 그의 양기 없이는 살 수 없는 것도 고문이었고, 또 그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다신 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건 자신의 진짜 몸이 아니었으니까. 제재를 주렁주렁 달고는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결정적으로…….’
시율에게 정체를 들켰다는 걸 사신이 알았다가는 시율마저 기억을 잊어버릴 게 분명했다. 그러니 사신에게 부탁해 몇 년의 시간을 더 버는 것도, 결국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해인은 요즘 들어 한숨만 늘어난 것 같았다.
푹, 하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는데 왠지 귀를 쫑긋하게 하는 부름이 들려왔다.
“야옹아~ 쭈쭈쭈.”
자신을 부르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습관은 무서운 거라고 저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지금 있는 곳은 평소에는 오지 않는 공원의 북쪽이었다. 병원과는 반대쪽이라 거의 오지 않는 곳이었는데…….
“많이 먹으렴.”
“야옹!”
이제 보니 이 근방은 저 아줌마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곳인 모양이었다.
아줌마가 나타나 몇 번 부르자 사방에서 고양이들이 뛰어나왔다. 거의 열댓 마리였는데, 어디에 저렇게 숨어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물론 한두 마리 정도 있다는 건 기척으로 알고는 있었다..
고양이들은 아줌마의 등장에 매우 기뻐 보였다.
“먀오, 먀오먀!”(맛있어, 맛있어!)
근래에야 알게 된 건데, 고양이들은 너무 맛있는 걸 먹으면 울면서 먹었다.
그리고 길고양이들은 겨우 저런 흔한 싸구려 사료에도 맛있다며 울었다.
밥을 주는 아줌마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였는데, 약간은 흰머리가 났고, 허리가 조금 불편해 보였다.
겹쳐 입은 옷들이 많이 낡은 걸 봐서는 그렇게 형편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왜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걸까.
빤히 보고 있자니 아줌마는 민망한 얼굴을 했다.
“미안해요. 이거만 주고, 제대로 치우고 갈게요.”
“…….”
딱히 뭐라고 하려던 건 아닌데 아줌마는 해인에게 사과부터 했다. 지금 표정이 너무 뚱해서 그랬을까.
해인이 제 얼굴을 좀 주무르는 동안 아줌마는 부랴부랴 고양이들에게 공중화장실에서 물을 떠다 주고, 뒤쪽에 있는 약한 고양이들에게도 따로 사료를 부어다 줬다.
그사이 고양이의 수가 조금 늘어 있었다.
멀리서 봐도 굉장히 어려 보이는 새끼 고양이들도 있었다.
해인은 마침 할 일도 없고 해서,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갔다.
“……고양이 좋아해요?”
아군인가 싶었는지, 아줌마가 말을 걸어서 해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끼 고양이들에게 다가갔다.
겨우 주먹 두 개만 한 녀석들은 이제 겨우 사료를 씹을 수 있어 보였고, 다행히 건강한 듯했다.
하필이면 겨울에 태어난 어린 새끼들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따듯한 시기에 태어나도 반은 죽는다는데…….
“어머, 만지게 두네? 난 아직도 그 녀석들 못 만져봤는데.”
아줌마는 신기한지 어느새 해인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해인은 쪼그린 채로 고개만 조금 끄덕였다.
“아가씨 이제 보니 낯가리는구나.”
“예? 예…… 좀…….”
“호호, 꼭 고양이 같네.”
거 아주머니 돗자리 까셔야겠어요. 해인은 어색하게 웃고는 유난히 작은 얼룩 고양이 앞으로 사료를 몇 알 더 굴려줬다.
길고양이의 미덕은 으레 낯가림과 사람에 대한 경계였다. 보통은 이렇게 밥을 주는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해인은, 따지자면 고양이인 구석이 있기 때문인지 고양이들이 쉽게 무장해제를 하고는 했다.
일전에 고양이 카페에서도 역으로 고양이들에게 구경을 당했었다. 길고양이들은 처음 만져봤는데,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해인은 시율과 했던 데이트가 생각나 조금 웃음이 났다.
“나도 걔가 신경 쓰이더라고. 유난히 작고, 형제들한테도 치이고.”
“……그러게요.”
“겨울이라 더 걱정돼. 챙겨준다고 챙겨줘도 다 뺐기거든.”
“여기서…… 항상, 밥 챙겨주시는 거예요?”
“한 1년 줬나……? 밥 주는 걸 보고 그렇게 고양이가 좋으면 데려다 키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욕하는 사람도 있고…… 뭐, 그러네.”
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이 작은 녀석이 하루쯤 더 살길 바라며 밥을 챙겨주는 게 그렇게 욕먹을 일일까, 하고.
***
“저희들도 살겠다고 밥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렇게 우르르 몰려와. 그게 또 얼마나 가여운지…… 귀여운 건 나중 문제야. 무서워서 쭈뼛거리면서도 먹겠다고 오는 게 안쓰럽거든.”
“네…….”
아줌마는 고양이에게 호의적인 사람을 별로 못 만났는지 해인에게 고양이들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줬다.
저 덩치 큰 녀석이 대장이고, 저 녀석은 누가 주워 갔다가 다시 내다 버렸고, 저 녀석은 세 달 전부터 나타났는데 품종묘인 걸 봐서는 누가 버린 것 같다는 등등.
“저기, 아가씨. 혹시 이 근처에 살아?”
“……그런데요.”
“그럼 부탁이 있는데…… 저기 화장실 공원 창고에 내가 고양이 사료를 몇 포대 갖다 놨거든?”
“막…… 갖다 놔도 되는 거예요? 공공기물에…….”
“내가 여기 공원 관리부거든. 이 화장실 청소도 내가 해.”
“아하…….”
“그래서 말인데, 가끔 나 대신 아이들한테 사료 좀 퍼주지 않을래? 이 시간에 여길 지나게 되면.”
태평하게 고양이를 주물거리던 해인은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싶었다. 제가 그렇게 백수 같아 보였던 걸까. 물론 오전 11시쯤 공원에서 빈둥대고 있으면 그래 보일 테지만…….
“……에…….”
“내가 한동안 이 시간에 이쪽으로 못 올 거 같아서 그래. 겨울이라 우리 관리직 인원이 대폭 줄어서…… 내가 동편도 관리하게 됐거든. 물론 안 잘린 것도 감지덕지지만 얘들 밥 주기가 힘들어져서.”
“그…… 아침이나 저녁에 주시면…….”
“어휴, 아침이나 밤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밥을 줄 수가 없어. 출근 때는 번잡스러워서 안 되고, 밤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랑 개가 많아서…….”
“그거야 알지만.”
“이 시간이 공원이 제일 한가하거든. 부탁해, 아가씨. 응? 아주 가끔이라도 좋아. 그냥 아가씨 이쪽으로 지나갈 때, 응?”
아까 말씀하셨지만 제가 낯을 좀 가리거든요. 이렇게 덥석 손잡고 그러시면 심장이 막 뛰거든요.
해인은 갑작스러운 제의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길고양이 밥 주기라니, 살면서 해본 적 없는 낯선 일이었다. 그건 어딘가 부끄럽기도 하고…….
“……왜, 저한테 그런 부탁을…… 우린 초면인데…….”
“그야 아가씨 주변에…….”
내 주변? 무슨 소린가 싶어 자신의 주변을 슬쩍 돌아본 해인은 원인을 깨달아야 했다.
해인은 또 고양이들에게 빙, 둘러싸여 있었다. 언제 이렇게 쫙 달라붙은겨!
[밥 줄 거야?]
[밥?]
[쓰다듬어도 좋아!]
[사진 찍어도 돼!]
[만질래? 대신 밥 줘!]
등가교환인가……. 하여간 바라는 게 분명한 녀석들이었다. 아직도 배가 고픈지 근처를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얘들이 낯을 많이 가려서, 내가 와서 불러야 그때 나타나거든. 그런데 아가씨가 오면 그냥 나올 것 같아서…….”
“……이 녀석들, 밥 주는 사람 기억해요?”
“그럼, 귀신같이 기억하지. 자기들한테 발길질 한 번이라도 한 사람한테는 다신 안 가는걸.”
해인은 제 곁에 옹기종기 모인 고양이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 녀석들이 제게 은혜를 갚을 수 있을지도 궁금해졌다.
“밥을 주면, 기억한단 말이죠?”
“그렇다니까? 얘들 머리가 얼마나 좋은데.”
그거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어디 한번 고양이 길들이기를 해볼까 싶어졌다. 얼굴만 그대로고 다른 게 바뀌어도 고양이들이 알은척을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해볼게요.”
“정말? 고마워! 내가 음료수라도 사줄게!”
“괜찮아요. 자주는 못 올 것 같기도 하고…….”
해인은 다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양이들을 통해 자신이 여기 있었다는 흔적이라도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지금의 두통이 얼마나 미약한가를 보면, 스스로도 이게 별로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건 잘 알았다.
하지만, 혹시 모를 그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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