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고양이의 결심은 알 수 없다
어느덧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호텔 방을 나서며 해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묵었던 방 호수를 확인했다. 그냥 기억해두고 싶었다.
1207호.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안 가? 뭐 하고 있어?”
“응? 갈게.”
저를 따라오지 않고 방문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해인을 시율이 이상한 듯 불렀다. 해인은 시율의 곁으로 뛰어가며 뒤를 한번 돌아봤다.
길게 늘어진 호텔 복도가 얼핏 미로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저 끝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에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해인은 가끔, 이 모든 게 꿈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강, 나는 말이야. 눈을 뜨면 전부 잊을 것 같아서 잠들기 두려울 때가 있어.’
그리고 그건 분명 다가올 날이기도 했다.
나중에, 그 어느 날의 홀연히 아침에 눈을 뜨고 기억나지 않는 1년을 자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빈 기억을 더듬으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우선은 알 수 없는 허무함에 엉엉 울고 말 것 같다. 뭘 잃어버렸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강.”
“응?”
지금은 곁에 있는 이 사람이 없다는 것도 모르면서, 없다는 사실에 울고 말겠지.
해인은 시율의 손을 붙잡아 그가 저를 내려다보게 했다.
낮게 뜨는 걸 즐기는 시선과,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오만한 코와 입술,
잘생긴 이마.
그를 더 많이 기억하기 위해 애쓰며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를 잊어버린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역시, 가지 않을 수는 없는 것 같아.’
내내 생각해봤지만 고양이로 남은 평생을 사는 건 선택할 수 없었다.
박해인으로서 가진 전부보다 그가 볼품없어서는 아니었다. 이렇게 그의 손을 잡으며 걷는 순간이 소중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입 밖으로 내진 못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도 그라면 저를 찾아낼 것 같아서였다.
아주 어렵겠지만 기어코 찾아와 주지 않을까 하는 선명한 믿음이자 바람이 마음에 자랐다.
그건 그와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날을 향한 열망이기도 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
“그냥. 너무 잘생겨서!”
“좀 수상한데.”
“왜, 정말인데?”
시율은 눈썹 끝을 구부리며 해인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려는 듯했다.
하지만 해인은 다만 미묘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더 힘주어 잡을 뿐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그날에…… 나는 긴 꿈을 꾼 기분일 거야.’
꿈속에서 자신은 슬픈 것도 같고 즐거웠던 것도 같고, 행복한 것도 같았는데…… 결국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막연히 긴 꿈을 꿨다고 생각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래도 이 순간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을 거다.
그래야만 했다.
해인은, 운명이라는 걸 믿어보기로 했다.
***
꼬박 하루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태일이 달려 나오는 게 보였다. 그러니까, 평소에 해인이 하듯 주인 기다리던 개인 양 헐레벌떡.
“형님! 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그 덕에 오히려 해인은 태일에게 들러붙을 틈이 없었다.
“뭐가? 친구네서 잤다고 했잖아.”
“개냥이까지 데리고 가셔선, 연락도 안 되고…….”
“전화 받았잖아.”
“겨우 몇 분이요?”
아무래도 태일은 아침 내내 시율을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지만 시율은 그러거나 말거나 태일을 지나쳐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내가 애냐,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는 거야.”
“이런 적 없으시잖아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사내자식이 징그럽게…….”
“징그…….”
고양이로 돌아온 해인은 곁에서 그런 둘을 지켜보며, 이거 뭔가 망나니 남편과 조강지처 부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쪽은 간밤의 행적이 걱정스러운지 안절부절못하고 한쪽은 상대가 그러거나 말거나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어제는 태일에게 그리 짧은 하루는 아니었을 것이다.
시율과 해인에게도 그랬지만.
“그래서 이하은은?”
방에 들어가려던 시율이 빈 거실을 휙, 둘러보며 물었다. 그건 정말 궁금해서라기보다는 그냥 태일의 바가지가 귀찮아서 질문을 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지만.
“돌아갔죠. 진작에!”
“그래? 기껏 단둘이 있게 해줬더니.”
“무, 무슨 일이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딱히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닌데, 태일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아마도 크게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잔인하게도 시율은 그런 걸 재미있어하는 남자였다. 놀려먹을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모처럼 기회인데 키스 정도는 하지 그랬어.”
“형님! 저흰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어제부터는 그런 사이가 된 거잖아.”
“……그야.”
“보통은 서로 좋아한다는 걸 확인하면 키스하고 싶어지지 않나?”
태일은 분명 하려던 말이 있었지만, 시율의 서슴없는 질문 공세에 뒷걸음질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요! 이제 겨우 알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그…… 그런 걸…… 할 리가……!”
“겨우 키스가지고 말까지 더듬기는.”
이 녀석 설마 키스도 안 해본 걸까? 시율은 얼핏 그런 생각을 했다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하니 나이 서른에 아직도…… 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의구심은 태일의 민망한 얼굴을 보자 확신으로 바뀌었으니까.
태일은 하여간 어떤 의미로 대단한 구석이 있었다.
이래서야 서른 살 남자랑 대화하는 게 아니라 첫사랑에 빠진 소녀랑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너희가 어제 오늘 안 사이는 아니잖아.”
“그거랑 그거랑은 다르잖습니까!”
“그리고 너희, 미국에 가면 같이 살게 되는 거 아니었어?”
“……형님! 하은인 아직 파혼 전이라고요!”
“아 참, 그랬지.”
갈 길이 멀었지. 그걸 잊고 있었네.
태일의 성격상 그런 부분이 확실해지기 전에는 손도 잡지 않으리라.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런 게 참아진다는 점에서 시율은 이 녀석 보살인가 싶을 뿐이었다.
“……키스 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나도 안 괜찮아요!”
심각하게 권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내 남자 친구지만 참 양심 없다…….’
뒤에서 둘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제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해인은 당하고 있는 태일이 안쓰러워졌다.
보통이라면, 지금 쩔쩔매야 하는 쪽은 태일보다는 시율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언제 정식으로 파혼하는데?”
“……아직 그런 건.”
태일은 시율이 돌아오면 조금 따지고 싶은 게 있었다.
어제 자신을 함정에 빠트린 일이라거나, 뭔가 계략이 있었던 것 같은 점이라거나 등등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
하지만 시율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고, 말을 할수록 궁지에 몰리는 건 어째 태일 쪽이었다.
애초에 덤빌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빠르면 좋잖아. 서두르라고. 그나마 서른 초반일 때 첫키스 정도는 해야지.”
“형니임!”
“키스 못 하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별롤걸.”
해인은 시율을 말려주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솔직히 시율의 말에 동감이기도 했고 말이다.
천연 모태솔로 태일과 달리 시율은 명백하게 골키퍼가 있든 말든 공격하는 쪽이었다.
“아무튼, 난 너희가 미국에 가면…… 정말정말 기쁠 거다.”
“……지나치게 기뻐 보이시는데요?”
“축하의 의미야. 커플이 함께 있다는 건 좋은 거잖아?”
얼핏 들으면 태일과 하은의 이야기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절레절레, 시율의 진심을 아는 해인은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새삼스럽지만 시율은 참 욕망에 충실한 남자였다.
누구의 남자인지 무섭게도 말이다.
‘난 대체 어쩌다 저런 남자한테 사랑을 받고 있는 걸까.’
좋은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
“냐냐?”(어디 가?)
해인이 두 남자의 행동에서 수상함을 감지한 건 늦은 저녁 즘이었다.
분명 퇴근하고 돌아와서 씻은 시율이 다시 옷을 걸쳐 입고 있었고, 내내 홈웨어를 입고 편하게 있던 태일도 두터운 외투를 꺼내 입었다.
둘 다 나갈 채비를 하는 게…….
이건! 산책의 증후야! 할아버지, 아니 사신의 이름을 걸고 분명해!
“니야!”(나도 갈래!)
귀신같이 산책하려는 기색을 눈치채고 시율의 바짓단에 들러붙는 해인이었다.
예로부터 모든 애완동물에게는 주인이 일을 하러 가는 건지 그냥 슈퍼에 가는 건지 구분할 수 있는 신묘한 힘이 있었다.
해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넌 집 봐.”
“먀?”(왜?)
평소라면 순순히 데려갔을 시율이 이번만은 왠지 해인을 데려갈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것도 아주 단호하게.
“남자 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까.”
“먀아먀!”(고양이한테 비밀로 할 게 뭐가 있다고!)
“그런 게 있어.”
“므악!”(치사해!)
태일은 함께 나가고 싶어 하는 해인이 걸리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봤지만 시율이 강제로 현관 밖으로 끌고 나가버렸다.
저만 떼어놓고 갈 줄이야.
해인은 닫혀버린 현관문을 긁으며 미양미양, 울어댔다. 이러면 마음 약한 태일은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야, 미야아, 먀아, 먀먕!”(나도 데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왜 나만 따돌리는 건데! 이건 배신이야!)
분명 아직 현관 앞을 서성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태일은 원망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울려서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결국에는 질질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정말 둘이서만 사라져 버렸다.
이건 애완동물의 입장에서는 꽤나 서러운 일이었다.
“냐냐냑!”(이 나쁜 사람들!)
***
시율이 해인도 따돌리고 태일을 끌고 온 곳은 아파트의 옥상 정원이었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대부분의 풀들이 죽어서 정원은 황량한 상태였다.
당연히 달리 올라온 사람도 없었다. 옥상엔 둘뿐이었다.
“에취!”
“따듯하게 입지 그랬냐?”
“킁, 형님께서 잠깐이면 된다고 하셔서…….”
“그렇긴 하지.”
“그런데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요? 집에서는 왜 안 하시고.”
시율이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은 벤치는, 우연이겠지만 태일이 처음 해인을 만난 자리였다.
딱 저 자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검은 고양이를 발견했었다. 그게 벌써 여덟 달 전이라니 시간이 참 빨랐다.
“일단 앉아라.”
“무슨 일입니까?”
“그냥…… 그런 거 있잖냐. 꼭 말로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못 듣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
“……알죠. 그런 거.”
시율이 그런 걸 따지는 타입인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그는 뭐든 서슴없이 말하는 게 특기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간 대화하고 싶어 하는 건 늘 태일 쪽이었는데, 오늘은 시율이었다.
“네가 떠나기 전에 말해줄 게 있어서.”
“심각한 일입니까?”
“비슷한가? 사실 말이야, 내가 널 속인 게 하나 있거든.”
웃으면서 할 소린가, 그게?
지금 시율의 말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태일은 그게 어떤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형님이, 절요?”
“으흠.”
“농담이시죠?”
“아니. 정말인데.”
시율은 고백할 게 있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여유로워 보였다.
코트 주머니 깊숙이 두 손을 집어넣고는 허공에 긴 숨을 내쉬었다. 날이 얼마나 찬지 증명하듯, 입김이 공중에서 하얗게 얼어붙었다가 사라졌다.
“……그게 뭡니까?”
“강시연.”
돌연 나온 이름 하나는 태일이 기억을 딱히 더듬지 않아도 바로 떠오를 만한 사람이었다.
유난히 결이 좋아 보이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 어린 짐승의 코끝을 닮은 분홍빛 입술이 유난히도 그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저를 보던 마냥 순한 눈도 떠올랐다.
그건 이성으로서 매력을 느꼈다기보다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서 사랑스럽다고 느낀 점들이었다.
애초에 이성으로 감정을 품기에는, 시율이 너무도 소중하게 바라보고는 했던…….
“동생분?”
“사실 내 여동생 아니야.”
“……예?”
그럼 자신을 속였다는 게…… 태일은 한동안 의아한 얼굴로 시율을 쳐다봐야 했다.
딱히 충격적이거나 한 사실은 아니었다. 다만 이해할 수 없을 뿐.
“왜, 그런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와서 사실을 말해주는 이유는 또 뭐고.
“그 녀석, 널 좋아했거든.”
그래, 그건 좀 충격이었다. 더욱더 이해할 수 없어서.
시율은 툭 하니 말을 내뱉고는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태일은 제가 뭔가 되물어도 되는지 자신이 없었지만, 이야기를 하자고 자리를 만든 건 시율이었으니 용기를 내서 되물었다.
“……그건, 이상합니다. 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꼭 날 알고 있으라는 법은 없잖아.”
“그야 그렇지만…… 왜 하필 저를.”
“네가 비록 그런 놈이지만 그게 장점이기도 하니까. 남에게 상처 주지 못하는 거. 그 녀석이랑 그게 닮았거든. 거기에 끌렸던 거 아닐까.”
따로 시율이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여동생인 줄 알았던 여자가 사실은 그가 좋아하는 여자라는 것쯤은 말이다.
전에 봤던 모든 것들이 설명됐다.
과하게 싸고돌던 것,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했던 것, 이상할 만큼 자꾸 눈으로 좇던 것.
지금의 저 따듯한 음성이나 시선만 봐도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저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여동생이라도 거짓말하셨던 게 그럼, 그때 시연 씨가 절 좋아하고 있어서였습니까?”
“으흠. 지금은 아니지만.”
“……그건, 다행이네요.”
“적어도 그땐 내 애인이라고 소개할 수 없었거든. 엄청 화냈을 거야. 뺨을 맞았을지도.”
말하는 것과 달리 심각하진 않아 보이는 게, 시율이 그것들이 귀엽다는 듯 웃고 있어서였다.
그래서 태일은 내심 안도할 수 있었다.
“후배 정도로 말하시지 않고요.”
“꼬실 생각 못 하게 하려고 그랬지.”
“……제가 그럴 리 없잖습니까.”
“아니, 그 녀석이 너를 말이야. 꽤 당돌하거든. 은근히 위험하단 말이지.”
해인은 보기보다 엄청 저돌적인 구석이 있어서, 가끔 시율을 당황하게 하였다. 마음먹고 애정 표현을 하기 시작하면 이러다 혼이 빠지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태일이 그걸 당했다면 지금쯤 그의 상대는 이하은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런 것치고는…… 저랑 데이트까지 하게 하셨잖습니까. 그것도 형님이 주선…… 하셔서.”
“아, 네가 얼마나 괜찮은 녀석인가 보여주고. 그런데 내가 더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
“……하?”
“미안.”
대놓고 이용했다고 말한 거 같은데, 방금. 그리고 은근슬쩍 사과까지.
태일은 저도 모르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허탈한 웃음을 흘리기는 했지만 화를 내진 않았다. 본래 그런 데 욱할 성미도 못 됐거니와, 상대는 시율이었으니까.
“하하, 그래서…… 어떻게 되셨습니까?”
“일단은, 사귀고 있어.”
“아. 혹시 예의 그 여자 친구분이……?”
“그래.”
“알겠네요. 안 보여주셨던 이유가 그거군요.”
“그런 셈이지.”
“축하드리면 되는 겁니까?”
“……그런 건 됐으니까.”
시율은 말할 때 항상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보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어째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달을 보는 건지 별을 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히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지금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을 멈춰버려서, 태일은 잠자코 그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
“……?”
“나중에, 길에서 그 녀석을 보면 꼭 알려주라.”
“……뭘 말입니까?”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태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말일 뿐이었다.
지금 시율이 왜 쓰게 웃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니다. 그냥 그 자리에 붙잡아놔.”
말을 덧붙이며 그가 슬프게 웃는 이유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