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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스-73화 (73/114)

73화. 고양이가 애교 부리고 싶은 기분일 때

시율은 매우 기가 차다는 얼굴이었다.

“지금 네가 내 걱정할 때야?”

“…….”

“네 안색이 어떤 줄이나 알아?!”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해인의 손을 아프도록 움켜쥐며, 마치 벼락처럼 거의 울 듯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눈앞에서 쓰러진 쪽은 그가 아닌 해인이었으니까.

그 순간에 눈앞이 얼마나 새까맣게 변했는지, 그걸 다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품 안에서 점점 죽어가는 숨소리를 듣고, 맥박을 느끼면서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대로 해인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랬듯.

갑자기 나타났듯 갑자기 사라지고, 갑자기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덜컥 그를 괴롭혔다.

‘잠깐, 안 돼. 그러지 마!’

몸을 늘어뜨리며, 눈을 감고 목을 꺾어 내리는 해인을 끌어안고 의식을 놓지 않기만을 바라다가 둘러업고 뛰면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병원에도 데려갈 수도 없는데.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건지.

그 순간이 얼마나 무력하고 허무했는지 뼛속까지 두려움에 떨렸다. 난데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안.”

힘없이 웃고 마는 해인을 보는 그의 속은 지금도 엉망이었다.

“정말, 괜찮은 거야?”

“응.”

해인은 저를 향한 염려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놀란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그를 먼저 걱정하는 수밖에 없었고, 평정을 잃은 그의 눈이 안쓰러워서 다시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그가 더 염려돼서, 아직도 아픈 자신은 뒷전이었다.

“놀라게 했지.”

“조금.”

“이젠 정말 괜찮아.”

“……그럼 됐어.”

사실은 괜찮지 않다는 걸 그도, 해인도 잘 알았다.

아직도 손끝이 저릿했고 심장은 뛸 때마다 욱신거렸다. 그 한순간에는 마치 덜미에 걸린 나약한 짐승이 된 것만 같았다.

그 여자와 멀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졌지만 말이다.

“가서 마실 걸 사올게. 잠깐만 있어.”

골몰히 땀을 닦아주나 싶던 시율이 저 멀리 보이는 편의점을 가리켰고, 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눈을 감았다.

‘……이런 건 너무해.’

그리고 마음 깊이 사신을 원망했다.

조금 전의 갑작스러운 고통 속에서 분명하게 깨달은 건, 그와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바로 스스로라는 사실이었다.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모든 의식과 생각.

‘바로 내가 감시자이자 방해자라니.’

스스로가 스스로를 그에게 어떤 힌트를 주지는 않는지 철저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24시간 모든 걸 함께하며, 모든 걸 적나라하게 감지하고 차단했다. 떨칠 수도 없고 속일 수도 없는 건 당연했다.

스스로가 의식하는 한 아무것도 그에게 알려줄 수 없었다.

거슬리는 상대도 자신이고 인질도 자신이니, 절망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

시율은 겨우 몇 분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강.”

“좀 더 쉴래?”

“아니, 일어날래.”

생각에 빠져 있던 해인은 그가 다가오는 기척에 눈을 뜨고 벤치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어느새 부축해주는 그의 손길이 따랐다.

그렇게 심한 환자 취급은 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혼자 일어날 수 있어.”

고통은 순식간에 닥쳤던 것처럼 회복도 빨랐다. 다만 시율은 해인의 회복력이 그리 미덥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것 좀 마셔봐.”

“응? 오렌지 주스? 초콜릿?”

“당이 딸리면 힘이 없거든.”

단걸 잔뜩 들이민다 싶더니 긴급 처방인 모양이었다.

“어…….”

“자, 어서.”

이런 거 마실 기분도 아니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해인은 일단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가 뚜껑을 열어주는 과즙 100%의 매우 단 오렌지 주스를 받아 들었다.

꼴깍, 두어 모금이나 넘겼을까.

그사이 그는 초콜릿 포장을 까서 대기하고 있었다.

해인은 어쩔 수 없이 그것도 받아 들어 입에 넣고 오물거려야 했다.

이건 뭐, 아프고 난 후의 어린애도 아니고…….

“주스도 다 마셔. 땀을 많이 흘려서 탈수 증상이 좀 있는 것 같으니까.”

“응…….”

“갑자기 어지럽거나 체력이 너무 딸릴 때는 단걸 먹어둬. 당이 충당되면 급한 대로 뇌 운동도 활성화되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거든. 뭐,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지만.”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시율은 해인의 입에 단걸 밀어 넣으며 이것저것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 기력이 돌아오라고 당분을 섭취하기 위해 먹는 건 알겠는데…… 오렌지 주스에 초콜릿이라니. 아무래도 궁합이 나빴다.

뒤섞인 맛이 이상했다.

‘평소라면 좀 더 센스 있게 골라왔을 텐데…… 급했나 봐.’

하지만 그러니 안 먹겠다고 투덜거리기에는 그가 너무 진지한 얼굴이었다. 마치 약이라도 투여해주는 느낌이랄까.

하긴 해인의 몸에 무슨 약이 드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그로선 이런 걸 먹이는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해인은 그의 엄청난 환자 취급이 언제 끝나려나 싶어 슬쩍 그의 눈치를 살폈다.

“눈 크게 떠봐.”

“엑.”

“여기 똑바로 보고.”

돌연 커다란 손을 뻗어오나 싶더니 시율이 해인의 눈꺼풀을 바짝 들어 올리고 휴대폰 플래시를 눈앞에 비춰댔다.

이거야, 원!

해인은 슬슬 입술을 내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건 뭔데?”

“Pupil reflex. 뇌에 이상이 있나 없나, 동공 반사 검사.”

“……그래서 결과는?”

“양쪽 다 수축해. 정상이야.”

“그치?”

“하지만 안심은 안 돼. 네가 보통 사람은 아니니까.”

쳇, 그럴 거면 검사는 왜 하냐!

해인은 대놓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는 초콜릿을 으적으적 보란 듯 먹어 치웠다. 지금 시율의 얼굴을 봐서는 이걸 다 먹기 전에는 놔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율은 그걸로 부족했는지, 해인의 손이며 발이며 여기저기를 주물러대고 있었다.

“너 손이 차가워.”

“원래 차.”

“……발이 많이 뻣뻣한데, 혼자 일어날 수 있겠어?”

정확하게 가장 나쁜 곳을 알아채다니. 의사는 의사인 모양이었다.

끔찍하던 기분도 나아졌고 손의 저릿함도 사라졌지만, 아직 회복되지 않은 딱 한 군데가 다리였다.

“……아직 힘이 잘 안 들어가. 그런데 금방 괜찮아질 것 같아! 그냥 쥐가 난 느낌이야. 조금 쉬면…….”

물론, 지금은 일어나면 힘이 풀려서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다. 그에게 말하진 않겠지만, 그런다고 모를 남자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야겠다.”

이것저것 변명을 덧붙였지만 시율은 더 이상의 데이트는 무리라고 판단한 듯했다.

해인은 문득, 자신이 데이트를 망쳐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에 가면, 아직 이하은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가 아픈 게 더 큰일이야. 넌 좀 쉬어야 해.”

“응…….”

해인이 기가 죽어 대답하는데, 새 코트에 흙이 묻은 게 눈에 들어왔다. 쓰러졌을 때 묻었나 보다.

그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털었지만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흙이 아닌 진흙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얼룩이 지면 어쩌지 걱정이 됐다.

순간 해인은 제가 잘한 건 하나도 없음에도 속상한 걸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졌다.

그가 동창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게 한 것도 자신이고, 그가 사준 코트를 더럽힌 것도 자신이고.

전부가 쓸모없는 제 탓이어서…….

“이런 건 괜찮아. 세탁소에 맡기면 돼.”

“……깨끗해질까?”

“그럼. 원래대로 해줄게.”

그의 목소리가 유난히도 다정했다.

시율은, 해인이 불안하게 만지작거리고 있는 코트 끝자락을 툭툭, 털어주고는 평소처럼 웃으며 차가운 손등을 매만져줬다.

“이런 건 신경 쓰지 마.”

왜일까.

별것 아닌 걸로 속상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고, 달래줄 때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는 건.

겨우 이런 순간에 가장 사무치게 다가오는 건.

그 어느 때보다, 그가 사랑스러운 건.

해인은 왠지 굉장히 그에게 키스하고 싶어졌다. 그것도 아니면, 그의 얼굴을 꼭 끌어안고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뺨을 묻는 것도 좋겠다.

그러고 싶어서 입술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그보다 가서 차를 가져올 테니까…….”

그가 차를 세워둔 곳은 꽤 멀었다. 산책로를 따라서 20분은 걸어가야 있는 공영 주차장이었으니까.

해인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기다릴게. 얌전히!”

단둘이 되면 키스할 수 있겠네!

“……아니다.”

“응?”

“네가 조금 더 괜찮아지면, 택시를 잡아서 같이 가는 게 낫겠어.”

“왜?”

당장이라도 집에 가서 쉬자더니, 그는 왜 마음이 바뀐 걸까. 해인은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는 여전히 해인의 손등을 쓰다듬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네가 없어질 거 같아서.”

스스로도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지 답지 않게 작은 목소리였다.

“……안 그래!”

“네 탓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불안해.”

방금 쓰러진 게 그의 고질적인 불안에 부채질을 한 걸까? 해인은 어떻게 해야 그를 안심시킬 수 있을지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그, 그래. 목줄이라도……. 강! 우리에겐 리본 달린 목줄이 있어!

해인은 당황한 나머지 제가 지금 사람 모습이라는 건 제대로 간과하고 있었다.

“그, 그러면……!”

“네 의지가 아니라, 다른 뭔가로 없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와, 그 기분 잘 맞네.

“넌 항상, 가기 싫다고 말하니까.”

해인은 말을 고르다가 그대로 입술을 깨물어버렸다. 바보 같은 자신이지만 이 사람이라도 똑똑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저도 모르게 내뱉는 그런 아슬아슬한 힌트들을 다 주워듣고 있다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하지만 그것들은 저를 찾는 데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단서들이었다.

“강은, 정말 대단해.”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데 무슨.”

“아냐! 정말 대단해. 정말 너무너무…….”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어서, 답답하고,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해인은 항상 그에게 좀 더 멋진 말들로 화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저에게는 시율처럼 말재주가 없어서, 겨우 이런 말을 고르는 걸로도 벅차기만 했다.

그래서인가 보다.

이토록 그를 끌어안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미안해.”

“……음?”

“강! 우리 오늘, 집에 들어가지 말자.”

두 눈을 매우 반짝이며, 해인은 시율의 손을 꼭 붙잡았다.

좀 더 상투적인 유혹의 말이 있을 것 같았지만 해인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시율은 잠시간 그게 무슨 말인지, 농담인지, 진심인지. 이 고양이가 뜻을 알고는 쓰는 건지 고심하는 눈이었다.

그리고 금세 답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의욕 넘치는 해인은 처음이었으니까.

“아, 양기가 필요해?”

“……엑?”

“회복에 도움이 돼서? 그거 괜찮겠네.”

그건 생각하지 못한 순기능이었다.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보단?”

애정 표현이랄까? 다 알면서 되묻는 시율은, 평소에 그렇듯 더없이 짓궂게 웃고 있었다. 해인은 이제 그 웃음을 보면 안심이 됐다.

그래서 부끄러운 얼굴이 됐지만 그의 귓가에 속삭일 수 있었다.

그가 기분 좋게 듣고 있다면, 부끄러운 것도 참을 만했으니까.

“조, 좋아하니까.”

“흐음, 난…… 사랑한다는 말이 더 좋더라.”

“……사랑해!”

해인은 생각보다 목소리가 크게 터져버렸다.

그 때문일까. 시율이 나지막이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의 목소리는 울림이 바람을 닮아서, 들으면 절로 귓가가 움찔거리고는 했다.

“나도 그래.”

그리고 바로 지금 그와 자신의 사이가 너무 가까웠다. 그건 입술을 달싹이는 소리가 들릴 만큼이었다.

다행이다.

그가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평소처럼 웃어줘서.

눈앞에 보이는 그의 눈길이 해인의 심장을 간질거리게 했다.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지금 이 참을 수 없는 기분은.’

굉장히, 닿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해인은 이곳이 공공장소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냥 그와 키스해버렸다. 누군가 보건 말건 먼저 입술을 겹쳤다.

어쩔 수 없었다. 너무 키스하고 싶었으니까.

참을 수 없이.

이게 사랑인가 보다.

***

그리고 이것도 사랑.

호텔의 2인실 방은 적당히 아늑했고, 오로지 둘의 숨소리로 채워졌다.

그림자가 겹쳐지는 이때에는, 몸짓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속삭임이 느껴지고, 애틋하고 따듯해서 때론 숨이 막혔다.

이건 서로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겠지만, 닿을 때마다 세상에 제게 부족한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떨어질 때면 다시 허전해지겠지만 적어도 이 찰나에는 모든 게 빈틈없었다.

그와 자신 말고는 걱정할 게 없었다.

그의 두 뺨에 두 손을 대면, 그의 두 손이 제 허리를 쓸면, 뿌듯하고 벅찬 감각에 기분 좋은 숨을 쉬게 됐다.

“……무리하는 거 아니지?”

“누가 할 소릴.”

“아, 그러네.”

가까운 어느 와중에 그가 묻는 소리에 해인은 픽, 하니 웃고 말았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그는 행여나 알까.

이 순간이면, 때로 영원히 이대로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걸.

낮에는 고양이로 지내고, 밤에는 사람이 돼서, 그냥 평생 그를 잃지 않는 삶을 택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이 든다는 걸.

그 사실 하나에 온 정신이 쏠려서, 가족도 친구들도, 제가 이룬 모든 게 다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는 걸.

그만큼 당신이 소중해졌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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