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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스-70화 (70/114)

70화. 비밀 이야기를 할 때는, 고양이를 조심할 것

이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드세요.”

“잘 마시죠.”

하물며 고양이 봐도 알겠다. 이 두 남자가 나란히 마주 앉아서 차나 마실 사이는 아니라는 걸 말이다.

좋아하는 여자의 약혼자에게 차를 대접하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자신의 약혼녀를 좋아한다는 남자에게 차를 대접받는 기분은?

해인은 둘 다 짐작할 수가 없었다.

막연히 서태준이 집에 찾아온 이유가 태일을 또 때리기 위해서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온몸으로 경계심을 표출할 뿐이었다.

‘주인은 모자라니까 내가 주인을 지켜줘야겠어. 맞을 짓을 하긴 했지만 또 때리는 건 나빠.’

다소 불경한 그런 생각을 하며, 해인은 태일의 무릎 위로 꾸역꾸역 기어 올라갔다. 그게 심각한 분위기를 우습게 갉아먹고 있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 덕분에 분위기가 묘해진다는 걸 말이다.

“저기…… 냥아?”

“냐냐!”(나만 믿어, 주인!)

태일은 그런 해인을 차마 내쫓지는 못하고 그저 난처한 기색이었다.

마치 제 영역이라는 양 태일의 무릎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전혀 비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만 서태준을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보며 연신 기분 나쁜 꼬리로 찰싹찰싹, 소파를 때려대고 있었다.

그뿐인가. 여차하면 발톱을 세우고 마치 한 마리 야생동물처럼 서태준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그 녀석, 물기도 합니까?”

서태준이 차를 마시다 말고 그렇게 물었다.

해인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의 눈에 저는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고양이 수준이라는 것을.

썩 틀린 말도 아니었고.

“……아, 가끔요.”

“그렇군요. 개만 무는 줄 알았는데.”

“낯선 사람에게는 사나운 편이라. 하지만 괜찮을 겁니다. 잘 잡고 있으면…….”

“크응크응!”(뭘 봐, 짜샤! 얼굴을 긁어줄까 보다!)

서태준은 담대한 구석이 있는지 온몸으로 저를 위협하는 고양이 모습에도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꽤나 여유 있어 보이는 쪽으로, 누가 보면 놀러 온 줄로 착각할 싶을 정도였다.

하긴, 제 발로 적진에 온 셈이니 그 성격이야 알 만했다.

“개인적으로 동물은 안 길러봤지만 그런 비유를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개는 밥을 주는 사람을 신으로 알고, 고양이는 자기가 신이라 사람이 밥을 주는 줄 안다고.”

“그거…… 꽤 맞는 말이네요.”

“그런 은혜를 안다는 점에서 난 개냐 고양이냐 하면, 개 쪽이 좋습니다만.”

반면 태일은 여유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서태준이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대화나 하듯 굴수록 바짝 긴장하는 눈치였다.

“그보다, 저희 집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습니까?”

“비서한테 조사시켰습니다.”

둘은 명함을 교환한 적이 있었고, 태일은 명함에 적힌 주소를 보고 어제 서태준의 사무실을 찾아갔었다.

그가 저희 집에 올 거라고는 상상해보진 않았다.

따로 뒷조사를 했다는 것도 놀라운 부분이었다.

“……그냥 밖으로 부르셨어도 됐을 텐데.”

“부른다고 올지도 모르는 거고, 시간도 많지 않을뿐더러, 어제 당신이 날 갑자기 찾아와서 나도 그렇게 해본 겁니다. 사람 많은 곳에서 이야기 나누고 싶지도 않았고.”

“……할 말이 없네요.”

“뭐, 싸우자고 찾아온 건 아니니까 안심하시고.”

그건 영 믿을 수 없는 발언이었다.

해인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서태준을 지그시 노려봤고, 서태준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째 이 고양이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눈에 저런 표정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속에 사람이라도 들었나……?’

물론 서태준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니 얼마 안 가 기분 탓이라고 여기며 다시 태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도 눈이 있으니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어제 맞은 여파로 팅팅 부은 태일의 얼굴을. 한쪽 눈은 반밖에 뜨지 못했고, 입가도 찢어져서 아주 가관이었다.

“우선, 어제는 때려서 미안합니다. 나도 모르게 욱한 감이 있었군요.”

가만 그 얼굴을 쳐다보나 싶던 서태준은 찻잔을 내려두며 가볍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얼핏 진심 같았다.

그를 솔직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안면이 두꺼운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후자가 유력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당신도 갑자기 너무하잖습니까. 난데없이 찾아와서는 그간 하은이를 좋아했다고 말하면, 그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 일은…… 제가 마음대로 저지른 겁니다.”

“아하?”

“하은인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제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그런 겁니다.”

서태준을 찾아간 것은 태일의 일생에서 가장 이기적인 짓으로 손꼽힐 만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거의 유일할지도 모르겠다.

잘했냐 못했냐를 따진다면 분명 잘못한 일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럼에도 뭔가 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혼자만의 마음인 줄 알았을 때와는 너무도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으니까.

태일은 다만 하은을 탓하게 되는 상황이 두려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태일이 서태준의 눈에 못마땅한 건 당연했다.

“바로 그게 마음에 안든다는 겁니다. 당신도 하은이도 하는 짓이 똑같다는 게.”

“…….”

“아주 불쾌해.”

서태준 그는 매사에 아주 무표정한 남자였다. 몇 번인가 만났지만 항상 그다지 기분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또한 누군가를 노려보는 데 익숙한 시선이었다.

그래서 태일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남자, 그리 대하기 편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마음 밑바탕에 깔린 질투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여겼었다.

“마치 어린 개새끼 같잖습니까. 소극적인 주제에 마음은 무거워서 한번 정한 고집은 바꿀 줄을 모르고, 누구도 상처 주지 않으려다 보니 항상 본인이 가장 고통스럽지.”

“…….”

“그런데 그게 보는 사람도 힘들다는 걸 왜 모를까. 어제 내가 화난 이유? 그건 하은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걸 나도 알아섭니다. 아주 잘.”

서태준의 목소리는 크지만 어투가 단호했다. 윽박지르려는 말이라기보다는 담담한 분노 같은 기색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원인이 당신이었다는 걸 알았으니, 내가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성격 강한 남자가 태평하기 그지없는 하은일 좋아한다는 데 태일은 의문이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보니 알겠다.

그도 진심이라는 것 정도는.

***

“나 이래 봬도 하은이한테 세 번이나 차였습니다.”

“……압니다.”

“그렇게 따로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여자를 3년 넘게 쫓아다녔고, 겨우 사귀게 되고도 눈치만 보던 게 2년이었고……. 그런데 날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냥 운 좋게 내 프로포즈를 받아줬다는 느낌, 압니까?”

프러포즈를 받아들이고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던 이하은이 떠올랐다. 당시의 태일은 그걸 결혼 전의 어느 여자나 겪는 막연한 두려움이라고 여겼다.

예전과 달리 그 불안감을 깊이 위로하지 못했던 것은 그 사안이 다른 남자와의 결혼이기 때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것 역시 질투이자 속 좁은 시기였다. 그리고 외면이었다. 약혼한 뒤로 하은을 자꾸만 밀어냈던 건 양심이기도 했지만 질투기도 했던 셈이다.

이제 깨닫기로 참 부끄러운 사실이었다.

“……아뇨.”

“그야 당연히 모르겠지.”

서태준은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지만 그게 지극히 자조적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사귀기 전이었던가. 하은이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혹시 당신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거든. 주변에 따라다니는 남자는 많았지만 유달리 사이좋은 건 당신이랑 김기도 정도뿐이었으니까.”

“항상…… 셋이 다녔으니까.”

“절대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럼 이상형이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 이상형은 근육질에. 운동도 많이 하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당신이랑 전부 반대로 말했더라고.”

“……설마 그러지는…….”

아니, 빼박인데?

해인이 보기에 이하은은 참 거짓말에 소질이 없어 보였다. 눈치가 별로인 저도 알아차렸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었다.

물론 고양이이다 보니 남의 본심을 훔쳐보는 데 매우 유리한 입장이긴 했지만 말이다.

해인은 문득 김기도도 이하은의 속마음을 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둘 모두에게 아주 가까운 인물이었으니까.

“역시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이게 왜 웃긴 줄 압니까? 나 그걸 듣고 운동을 시작했거든. 복싱, 그걸로 댁을 때리게 될 줄은 몰랐지만.”

“선배, 정말 좋아했군요. 하은이를.”

“……처음엔 맹한 게 날 자꾸만 차니까 오기였지.”

“그런 것 같았습니다.”

“나중엔 별것도 아닌 것들을 열심히 하는 게 귀여워 보였고.”

서태준은 다 비운 찻잔을 들여다보며 무언가 떠올리는 듯했다.

그리고 해인은 복싱이라는 소리가 나왔을 때쯤부터 태일의 등 뒤로 잽싸게 피신해 있었다.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빽빽댔다.

‘그런 걸 배워놓고 사람을 때리면 어떻게 하냐, 이 야만인아!’

아까부터 훔쳐, 아니 지켜보기로 서태준은 참 이상한 남자였다. 나쁜 사람 같다가도 괜찮은 것도 같았다.

그가 태일을 들고 팼다는 사실로 애써 정체성의 혼란을 막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속으면 안 돼! 저 남자는 저 멍 자국의 범인이라고!’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말은 섞던 어느 순간부턴가 태일이 서태준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긴장이 조금 풀린 것 같은 태도라든가, 유순해진 시선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설마하니 그렇게 바보는 아닐 텐데. 자길 때린 남자를……. 아니, 그간 해온 걸 봐서는 그만한 바보일지도 모른다.

“이봐, 신태일 씨.”

“예?”

“내가 당신을 무시하든가, 얼마든지 다른 식으로 결판을 낼 수도 있었는데 굳이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어제 당신이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야.”

“……나도, 하은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말했죠.”

“그게 나랑 같았거든. 내가 그 녀석을 좋아한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 녀석이 행복했으면 할 때니까.”

좋은 사람이든 아니든, 적어도 그는 이하은이 결혼을 결심할 만한 남자인 건 분명해 보였다.

“그 태평한 여자가 계속 그렇게 생각 없이 웃고 살 수 있으면 할 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당신, 정말 나보다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네?”

“별로 자신 있어 보이진 않네.”

방금 그건 대답이 아니라 단순 의문인 것 같은데. 해인은 순간 사태가 기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딱 이틀 주지. 지금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까.”

서태준은 뜻을 할 수 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어느샌가 말을 놓고 있었지만 태일은 위화감을 전혀 못 느끼는 듯했다. 다른 게 더 신경 쓰였으니까.

“그게 무슨 뜻입니까?”

“바라는 대로 하은이와 확실히 결판을 내달라는 거야.”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난 착한 바보들은 싫어하지 않거든. 사람을 상대로 사기는 안 치니까. 뒤통수를 치려고 들었다면 찾아서 거꾸로 매달았을지도 모르지만.”

제 귀를 의심하고 있기는 해인도 마찬가지였다. 이 남자가 또 때리려고 찾아왔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앞통수일지는 몰랐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지금 그 말은, 저더러…….”

태일은 거의 얼이 빠져서는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났을 정도였다. 무릎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때렸지만 아픈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버벅거리는지 알기나 할까.

“지금 생각하는 그게 맞아.”

“선배!”

“신태일을 확실히 버리고 날 택하거나, 날 확실히 버리고 신태일을 택하거나. 둘 중 한 가지 명확한 선택을 해주길 바랄 뿐이야.”

“……왜?”

“어중간해서야 불행한 결혼이 될 테니까. 미련은 머지않아 후회가 될 테고.”

엉거주춤, 태일이 소파에 앉았지만 그건 그냥 다리에 힘이 풀렸을 뿐이었다.

얼떨결에 옆으로 굴러떨어지긴 해인도 마찬가지였다.

“말했잖아. 행복하길 바란다고.”

***

‘이봐, 명심해. 양보하는 게 아니라 본인에게 선택하게 하자는 것뿐이야. 자기가 어느 쪽이 더 행복할 것 같은지.’

‘난 자신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해.’

‘아무튼 결혼식 날 신부가 안 나타나는 사태는 사절이거든.’

귓가에 맴맴, 서태준이 남기고 떠난 말들이 떠돌았다.

이하은이 구구절절한 오랜 미련을 완전히 버리고 서태준을 선택할지.

아니면 현실적인 많은 비난들을 감수하고라도 처음으로 제게 손을 뻗은 태일을 선택할지.

‘나라면…….’

진지하게 궁리해봤지만 결국 당사자가 아니니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 됐든 이하은이 힘든 결심을 하게 될 건 틀림없어 보였다.

해인은 제가 시율의 손을 붙잡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누군가 평생에 하나가 될 사람을 정하는 건 여자의 인생에서 절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결정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보다 일단은 주인이 걱정인데.’

서태준이 떠나고 제3차 안드로메다로 떠난 태일을 보며 해인은 고개만 절레절레 내저었다.

선택받을 자신이 없기는 태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저러다가 또 중압감에 몸서리치며 도망치진 않을지 그게 걱정이었다.

태일은 다 좋은데 강한 면모가 부족해서 소극적인 면이 있었으니까.

‘뭐…… 애초에 주인이 자신감 넘치는 타입이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도 않았겠지.’

그런 면에서 내 남자 친구는 꽤 훌륭하단 말이지. 너무 자신만만해서 가끔 재수가 없지만.

창가에 퍼져서 드러누워 있던 해인은 생각이 끝나자 벌떡 일어나 예의 그 붉은 목줄을 찾아 나섰다.

시율이 항상 꽁꽁 숨겨두지만 결국은 찾아내 입에 물고 시율의 방문을 긁었다.

열어줄 때까지 벅벅벅.

산책 타임이야!

“무슨 일이야?”

“냐냐!”

다른 말로는 작전 타임이었다.

매번 그랬지만 시율은 해인이 입에 산책줄을 물고 나타나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항상 그를 괴롭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난 산책보다는 데이트가 하고 싶은데.”

그리고 좋아하는 건 따로 있어서. 시율은 작게 투덜댔다.

“냥!”

“네네, 가야죠. 여부가 있겠습니까.”

“냐냐냑!”

“……알았어. 빨리 준비하면 될 거 아냐.”

그래봤자 결국은 억지로 끌려 나오게 되지만 말이다.

근래 들어 둘 사이의 주도권은 완전히 해인의 것이었다.

시율은 반강제로 나갈 채비를 했고, 너무 자연스러운 나머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해인이 고양이 말만 해도 대충 알아듣고 있었다.

***

“그래서 주인이 완전히 얼이 빠져버렸어!”

물론 서태준 이야기는 사람 말로 해야 했다. 그리고 보통은 고양이랑 대화할 수 없기 때문에 둘은 차 안에 숨어야 했다.

해인은 이야기하는 내내 포동포동한 젤리 손바닥에 힘을 주고 열변을 토했다.

중요한 대목에서 손바닥이 쫙, 펴지는 건 흥분했다는 뜻이었다.

“결혼식 날 신부가 안 나타나는 건 사절이래!”

시율은 잠자코 이야기를 듣나 싶더니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은근히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됐단 말이지.”

“응. 근데 김기도는 왜?”

“난 이하은 연락처를 모르거든.”

“……이하은 연락처는 왜에?”

대충 그러니까, 김기도에게 이하은 연락처를 알아내겠다는 건 알겠는데.

해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좌로, 우로 번갈아 갸웃댔다. 그건 확실히 안에 사람이 들어 있는 표정이었다.

“우린 오늘 데이트해도 될 것 같아.”

“으흠?”

“왜냐하면, 지금 바로 집에 이하은을 부르기 때문이거든.”

“……주인 혼자 있는 집에 말이지?”

“바로 그거지.”

확실의 시율은 매사 수법이 강경했다. 유혹도 해결도 모든 게 그렇게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식이었다.

남들이 고민할 시간에 해결하는 타입이랄까.

대신 여유는 일절 주지 않았다. 지금은 남의 일이라서 더 그랬다.

“왔다. 연락처.”

휴대폰을 흔들어 보이며 웃는 시율은,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근래 그렇게 웃는 건 처음 본다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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