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고양이의 종특
고양이의 종족특성을 꼽으라면 우선 그 특유의 뻔뻔함을 들 수 있겠다.
제멋대로 구는 건 기본 옵션이었고, 사고 치고 모르는 척하는 건 일상이었다.
예를 들어 사람과 눈을 마주친 채로 컵을 바닥에 떨어뜨리는가 하면, 보란 듯 비닐봉투 따위를 씹으면서 꼭 바쁜 사람이 저를 쫓아다니게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악한 종족인 것이다.
그에 관한 한 고양이를 키워봤다면, 누구라도 공감하리라.
‘말썽은 이 녀석들의 숙명이 틀림없어.’
물론, 그중 누구의 고양이도 말을 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능력을 남의 십 몇 년 묵은 고백을 대신하는 데 쓴다든가 하지도 않을 테고.
세상에 이런 유의 사고를 쳐서 사람 속을 썩이는 고양이는 아마…….
“냥?”
“……귀여운 척하지 마, 인마.”
“어머, 난 존재 자체가 귀여운걸. 어쩔 수 없다고.”
두 눈을 크게 깜빡여 보이는 해인의 귀여운 척에 시율은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는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맞는 소리였으니까.
고양이란 자신들이 얼마나 귀여운 생물인지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제만 해도 그런 짓을 해버려서 혼을 내려고 했더니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그에 저도 모르게 달래주고 난 뒤 시율의 소감은, 당했다! 싶은 것이었다.
울먹울먹한 눈을 보면 더는 혼낼 수 없게 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혼나기 싫어서 일부러 울어버린 건가 싶기도 했다.
하여간 고양이는 요망한 생물이었다.
“오냐오냐 하니까 아주 못 하는 소리가 없구만.”
“하지만 사실인걸.”
확실히 해인은 지금처럼 고양이 모습일 때 유난히도 뻔뻔했다.
그리고 컵을 떨어트리거나, 비닐을 씹는 흔한 말썽을 부리는 대신 희한한 말썽을 부렸다.
바로 어제 같은…….
사실 어제만 해도 태일과 이하은을 잠시 둘만 있게 둔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냐 싶었던 시율이다.
어차피 해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랬었다.
“……그래서 어제 그런 폭탄선언을 했냐!”
누가 고양이 손을 도움 안 되는 손으로 비유했던가. 그보다는 말썽을 부리는 손으로 정정해야 했다.
“왜! 말은 하라고 있는 거야!”
“이제 당당하구나, 아주.”
“……내가 한 것만 모르면 돼!”
둘은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옥신각신하는 것치고는 아주 소곤소곤 대화하고 있었다.
방 안에 태일이 있었으니까.
“하여간……. 그래서, 저 녀석은 계속 저 상태야?”
“아, 응.”
“내가 병원에 다녀온 내내?”
“내내.”
이제 막 퇴근한 시율은, 자신이 출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굳건히 닫혀 있는 태일의 방문을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태일은 어제 밤부터 쭉 저 상태였다.
그러니까, 이하은이 술자리에서 허겁지겁 도주한 뒤로 계속.
누가 초식동물과 아니랄까 봐 이하은은 궁지에 몰리면 도망치는 게 특기였고, 태일은 아프리카행을 정할 때도 그러더니 고민이 생기면 굴을 파는 게 특기였다.
저런다고 뭐가 해결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밥은 먹고 저러는 거야?”
“아니, 밥은커녕 방 안에서 한 번도 안 나왔어.”
“……거참, 전화도 안 받고.”
시율로서도 답답할 따름이었다.
낮에 걱정돼서 해본 그의 전화도 받지 않더니, 지금도 아까부터 계속 울리고 있는 누군가의 전화를 그냥 방치하고 있었다.
출국이 코앞이라 연락 오는 곳도 많을 텐데.
방 안에 있는 건 분명한데, 문을 닫고 있으니 안에서 무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있잖아. 강이 한번 열어보면 안 돼?”
해인이 소파 등받이 위로 뛰어오르더니 그의 귓가에 슬그머니 속삭였다.
“내가 미쳤냐.”
“왜? 걱정되잖아!”
“삼 일째 저러고 있으면 열어봐주지.”
“……너무해!”
걱정되기야 하지만 해인만큼은 아닌 시율이었고, 애초에 그는 지금의 이 상황에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화나는 걸 애써 참고 있는 쪽에 가까웠다.
왜 사고는 고양이가 치고 뒷수습은 제가 해야 하는 건지. 그것 참 생각할수록…….
“너무하긴! 얌마, 너만 참고 넘겼으면 이 지경이 됐겠…….”
덜컥.
“형님?”
“……어어.”
“누구랑…… 이야기하세요?”
그건 눈 깜빡할 새였다.
돌연 태일이 자신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몸을 내민 것은.
***
한참을 더 닫혀 있을 것 같더니…… 시율은 당황해서는 때마침 뺨을 잡아 늘리고 있던 해인을 눈으로 가리켰다.
“……개냥이랑.”
사실이긴 했지만 썩 그럴싸한 대답은 아니었다.
“예?”
“이 녀석이…… 자꾸, 놀아달라고 귀찮게 하지 뭐야. 그래서…….”
이건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너무 방심했던 모양이다.
당황한 나머지 시율은 손에서 땀이 나는 걸 느꼈다.
“냐냐냥!”
동시에 그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뺨을 붙잡힌 해인은 두 뺨에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놔달라고 버둥대야 했다.
“분명 여자 목소리 같은 게 들렸는데…….”
“으야으양!”
“……잘 들으면 여자 목소리 같지 않나?”
해인이 난리를 치거나 말거나, 시율이 은근히 긴장을 하거나 말거나 태일은 잘 모르겠다는 눈이었다.
전혀 공감되지 않는 것 같은 영혼 없는 표정.
“…….”
“으약! 이야으야앙!”
“내가 원래 동물이랑 대화를 잘하거든!”
하지만 태일은 이내 다른 심각한 고민으로 인해, 시율이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는 의문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눈치였다.
그의 관심사는 다른 것인 듯했다.
“……그보다 형님, 지금 퇴근하신 겁니까?”
“뭐, 한 10분 전에.”
“그렇군요. 잠깐 멍했던 것 같은데…… 거의 하루가…….”
태일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느덧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어제 술자리 이후로 20시간 이상 지나 있었다.
정말이지 천만다행이었다.
태일이 멍한 상태라서 말이다.
지금의 태일이라면 고양이가 눈앞에서 말을 해도 못 알아먹고 지나갈 것 같았다.
“거…… 사람이 정신없으면 그럴 수도 있지.”
시율은 겨우 마른 숨을 돌리며 그제야 손에서 해인을 놓아주었다. 볼이 얼마나 아팠던지 해인은 온몸에 털을 바짝 세우고 있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상담하고 싶은 게 조금…….”
“난 상담소가 아닌데.”
너무 의지하면 튕기고 싶은 법이었다. 시율이 슬쩍 튕기자, 태일은 곧장 시무룩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기운 없는 모습이었는데 더 우울해졌다.
마치 귀를 접은 래브라도 리트리버 같은 모습이랄까.
개에 비유해서 미안하지만, 태일은 일명 천사견이라고 불리는 그 종과 정말 많이 닮아 있었다.
너무 유순해서 어딘가 바보 같은 구석까지 전부 비슷한 것 같다.
“농담이다. 어제 일 말이지?”
“……네.”
“들어나 보지, 뭐.”
사실은 늘 그랬듯, 태일이 뭔가 상담해올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던 시율이었다. 또한 어제의 자세한 정황을 듣고 싶기도 했다.
해인의 말만 듣고는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가 없었으니까.
“아, 집 말고 밖에서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얘기하고 싶은데…….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나가서 먹자고? 술도 안 좋아하는 녀석이 무슨.”
“그냥…… 집이 좀 답답하게 느껴져서요.”
지금의 태일은 확실히 불안하고 위태해 보였다. 얼굴에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데다가, 다크서클만 진한 게 꽤나 숨 막히는 사람 같았다.
남의 고민 상담에는 취미가 없는 시율이지만, 슬슬 결판이라고 생각하니 봐줄 수밖에 없었다.
시율은 소파에서 일어나며 다시 시계를 봤다. 마침 한잔하러 나가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사실 내가 술집을 그다지 안 좋아해서 말이야. 시끄럽고 취객 많은 건 둘째치고…… 남이 해주는 요리 먹는 것도 별로고.”
“그럼……?”
“어제 남은 안주 싸서 한강이나 갈까. 캔 맥주도 그냥 있고.”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수척했던 태일의 얼굴에 그제야 화색이 돌았다.
“그럼 넌 맥주 좀 챙겨라. 내가 안주를 챙기…….”
“냐냐냐냐! 냐냐!”(나도나도! 나도!)
그리고 절대로 이 사이에 빠질 해인이 아니었다.
볼을 문지르며 잠자코 듣고 있나 싶더니 귀신같이 시율의 다리에 매달렸다. 나가자는 소리에 반응하는 게 마치 일주일 산책 못한 개처럼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니야냐!”(나도 데려가!)
“……알았으니까, 가서 네 목줄이나 가져와.”
못마땅한 시율의 목소리에, 해인은 냉큼 자신의 산책줄을 걸어둔 드레스 룸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만으로 충분히 보통 고양이는 아니었다.
***
때아닌 한강 산책이었다.
사람들은 일단 나란히 걷는 잘생긴 두 남자에게 시선을 빼앗겼다가, 이내 그 사이에서 귀여운 소리를 내며 총총, 품종 좋은 개처럼 걷는 해인을 발견했다.
개를 산책시키는 거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이건 나름 구경거리였다.
“……고양이였어.”
“방금 고양이였지?”
“고양이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군수군거리며 돌아보는 것도 당연했다.
얼핏 보면 흔한 소형견과 비슷한 몸집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고양이 특유의 낭랑한 발걸음이라거나, 기분 좋을 때 절로 내는 그 울음소리가 개와는 명백하게 달랐으니 말이다.
“냥냥냥♪”
두 눈이 금색으로 반짝이는 날렵한 생물은, 심지어 심각하게 귀여웠다.
제가 무슨 소리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기분 좋은 꼬리를 공중에 살랑거렸다. 뿐만 아니라 한 마리 뱀같이 유연한 꼬리 자체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해인은 자신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청각을 곤두세웠다.
“너 방금 봤니? 산책시키는 남자들, 완전 잘생겼던데?”
“어? 고양이 보느라고 못 봤는데. 고양이 짱 귀엽더라.”
“헐. 둘 다 대박이었는데 못 봤단 말이야?”
대부분의 여자들이 오른쪽이네, 왼쪽이네 누가 잘생겼는지 토론하며 사라졌다.
둘 다 제 것이라고 생각하는 해인으로서는 뿌듯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랑 이렇게 나란히 둘이 걷는 거 처음인 것 같다?”
“그러게요, 형님.”
“하긴, 남자 둘이 이러고 다닐 일이 별로 없긴 하지.”
“개냥이 아니었으면 산책할 일도 없으니까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그렇긴 하다.”
해인만큼 청각이 좋지 않은 두 남자는 나름 오붓하게 사색에 빠져 있었지만 말이다.
“저기…….”
“네?”
“너무 예뻐 그러는데, 고양이 한번 만져봐도 되나요?”
그때였다. 산책로를 마주 지나가던 여자 하나가 태일에게 말을 거는가 싶더니 해인을 가리킨 건.
그 젊은 여자는 고양이라면 껌뻑 죽는지, 눈이 상당히 반짝이고 있었다.
“아…… 그게.”
태일이 그에 시율의 눈치를 보는 건, 이젠 해인의 주인이 시율이라서였다. 허락은 시율이 해야 했고, 시율은 의외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웃음을 지었다.
“뭐, 가능하시다면.”
“예?”
이내 그녀는 시율이 그런 말을 한 이유를 깨닫고는 가던 길을 가야 했다.
해인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까. 얼마나 유연하게 낯선 이의 손길을 요리조리 피하는지, 뼈가 없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철벽방어였다.
“……전 개냥이가 사람이라면 다 좋아할 줄 알았어요.”
“하하! 넌 그 이름부터 잘못 지었어.”
“저한테만 개냥이였나 봐요.”
“그걸 이제 알았냐.”
“알고 나서는 바꿀까도 했지만, 이미 입에 익어 버려서요. 그리고 전 정말 그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했거든요.”
“……네 취향이 조금 특이하긴 하지.”
“그런가요?”
태일은 조금 기운이 났는지 약간 웃음 섞인 목소리가 됐다.
그래서일까, 해인은 기분이 좋았다. 제가 좋아하는 두 남자와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 마냥 흥겨운 기분이었다.
웃는 얼굴로 저를 보는 두 사람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이런 게 바로 애완동물로서의 행복일까? 그런 걸 깨달아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겠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얼마 안 가 외출의 목적을 상기하고는 눈치를 봐야 했지만.
“이쯤에 앉을까?”
“그럴까요.”
“날이 좀 쌀쌀해지긴 했지만, 괜찮겠지.”
시율과 태일이 산책을 멈춘 건 집에서 나와 30분가량 설렁설렁 걸은 뒤였다.
한강을 마주 보고 있는 한적한 둔치였는데, 가로수가 많고 벤치가 넉넉히 놓여 있어서 한강을 보며 맥주 한잔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였다.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고 앉은 두 남자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태일이 먼저 봉투를 뒤져 맥주를 꺼냈고, 시율에게 하나 건넸다. 둘은 함께 있는 게 어느새 꽤나 익숙해진 사이였다.
“고마워.”
“뭘요. 항상 제가 감사하죠.”
“감사할 게 있나?”
“개냥이를 보살펴 주신 것도 그렇고…… 그냥, 저랑 잘 지내주신 것만으로 항상 감사해요.”
“넌 욕심이 너무 없다니까. 너무 소박하고. 그런 건 별로 안 좋아.”
늦은 저녁, 찬바람을 맞으면서 마시는 맥주는 제법 가치 있는 것이었다.
시율은 간단하게 건배하고는 맥주로 목을 축였고, 태일이 뭔가 말하길 기다렸다. 태일은 오늘따라 생각이 많아 보였다.
수심 깊은 눈을 하고는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별로 이야기한 적이 없긴 한데, 제가 둘째 아들인 건, 말씀드린 적 있죠?”
“들었지.”
“저희 집이 많이…… 가부장적이고 고루한 집안이거든요. 재산이 꽤 있고. 그리고 제 아버지는 모든 사업이나, 일을…… 전부 형에게 주고 싶어 하셨어요.”
“……그건 처음 듣네. 왜 형한테만 주는데?”
“형이 장남이니까요.”
“그건 좀…….”
“욕심낸 적도 없지만, 내길 바라지도 않으셨어요. 아버진 나중에 형제간 싸움이 날까 봐 걱정이 됐는지 어쨌는지…… 제가 어렸을 때부터 뭐든 양보하는 것부터 가르치셨어요.”
그 지독한 평화주의 성격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군.
시율은 가만히 들으며 맥주를 비웠는데, 한 캔이 바닥나는 건 금방이었다. 태일의 이야기를 들으면 제 손으로 두 번째 캔을 땄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어른들도. 모두 제가 참고 한 걸음 뒤에서 얌전히 형을 따르는 게 미덕이라고 가르치셨고, 그렇게 배우고 자랐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날 깨닫기로, 제가 참 의지 없고 갈대 같은 인간이더라고요.”
“그게 네 탓은 아니지 않나.”
“결국 제 성격이니까, 제가 타고난 것도 있겠죠. 그래도 가끔은…… 조금 더 강한 성격이었으면 좋지 않았나 싶어요.”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 남편으로서는 너 같은 성격이 최고라고.”
별로 위로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시율은, 열기만 하고는 그냥 들고 있는 태일의 맥주에 자신의 맥주를 부딪치며 일단 먹으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태일은 두 손으로 꽉 맥주를 움켜쥘 뿐,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저한테, 용기가 필요하다는 건 알겠어요.”
낮게 잠긴 목소리는 갈피를 잃고 떨리고 있었다.
“그걸 알면 된 거 아닌가.”
“하지만……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하? 왜 안 되는데?”
“……용기랑 욕심은 다르잖아요, 형님.”
딱히 핀잔한 건 아닌데, 문득 눈을 마주치기로 태일은 진심으로 수치스러운 눈이었다.
하긴, 선할 대로 선한, 자신보다 남을 위하는 게 익숙한 남자에게 남이야 어찌 되든 자신만을 위한 욕심을 부리라는 건 스스로에게 하는 고문일지도 모르겠다.
“너 모르는구나. 욕심부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해. 욕먹을 용기.”
“…….”
“욕 안 먹고 사는 건 불가능해, 인마.”
“……저도 알지만……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혼란스럽고, 스스로가 한심해서…….”
너무 오래 다른 사람의 기분만 생각하고 살아오면, 제 기분을 위하는 법은 오히려 잊길 마련이었다.
이기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적어도 태일의 일상에는 없는 단어였다.
너무도 착해 빠진 남자였으니까.
“그럼 네가 아는 게 뭔데? 지금 분명한 사실.”
“분명한 거?”
“그것부터 떠올리면,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대충 답이 나오지 않을까.”
정답은 아니더라도 말이야. 세상에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까.
시율은 속으로 뒷말을 삼켰다.
위태로운 태일의 눈이 조금은 확신을 가지는 걸 보면서는, 저 역시 잘하는 짓인 줄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저에게 하는 소리기도 한 셈이었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하은이가, 절 좋아한다는 거요.”
“그거 잘됐네.”
작게 중얼거리곤 차가운 맥주를 한껏 들이켜며, 시율은 이러다 조만간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울컥했다.
왜 문제는 고양이가! 수습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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