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찾아온 고양이
선물은 나야!
그렇게 하면 시율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해인은 정성으로 때우기로 하며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시율의 방으로 달려가 숨겨둔 옷들을 캐리어 안에서 끄집어냈다.
그러곤 그 안에서 자신이 입을 수 있는 옷들 중 가장 예쁜, 캐러멜색의 반코트를 꺼내 입었다.
“좋아!”
거울 속 자신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해인의 작전은 간단했다.
우선 동물병원 근처로 가서 숨어 있다가, 퇴근하는 시율을 깜짝 놀라게 해줄 참이었다.
당장 손안에 준비한 게 없으니 하다못해 생일인 걸 잊지 않았다는 표시로 안 하던 짓을 할 작전이었다.
그간 마중 나간 적이 없으니 이건 제법 괜찮은 이벤트가 아닐까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좋을 테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건 꼭, 흔한 연인들의 데이트 같으니까.
지금이라면 집에 태일도 없고 몸에 양기도 충만하니 사람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었다.
어쩌면, 오늘이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니까…… 마중 나가기에 말이다.
***
태일의 집에서 시율이 일하는 병원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15분 정도로, 지금 출발하면 늦지 않게 그와 마주칠 수 있었다.
해인은 아파트 정문을 나서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고작 마중이지만 시율이 기뻐할 거 같았고, 저를 발견하고는 방긋 웃어줄 남자를 떠올리자 언뜻 행복해지는 기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해인은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으며 퇴근 인파 사이로 힘찬 걸음을 옮겼다.
병원에 가는 길이라면 잘 알았다.
시율이 저를 데리고 병원으로 출근할 때면 늘 보던 길이니 말이다.
물론, 고양이 모습으로 이동장 안에서 보던 낮고 좁은 풍경과, 사람일 때 볼 수 있는 높고 탁 트인 시야는 확실히 달랐지만, 그래도 헤맬 정도는 아니었다.
“너무 좋다.”
사람들 틈에 섞여 북적이는 신호등을 건너며 해인은 막 노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분명 본래 사람이면서도, 지금 자신이 고양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게 굉장한 일처럼 느껴졌다.
심장이 이렇게 두근두근하는 건 분명 그래서였다. 물론 서프라이즈할 생각에 들뜨기도 했지만.
아파트와 병원의 중간쯤인 공원을 가로지르면서는 해인의 발걸음이 한결 빨라졌다.
[……어.]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울음소리가 신경을 잡아끌지만 않았다면, 그대로 공원을 빠져나갔을 텐데.
해인은 저도 모르게 멈춰 서고 말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건 분명 사람의 소리는 아니었다.
좀 더 가느다랗고 간지러운, 이를테면 바람 소리 같은 소리 같은 것이었다.
사신의 말처럼 귀보다는 머릿속으로 들리는 그런 목소리.
그래, 동물병원에서 항상 듣던 동물들의 마음의 소리. 아마도 개나 고양이의 것. 감정을 표현할 정도의 지능은 있는 녀석들의…….
하지만 이렇게 미약하다는 건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목소리의 주인이 그리 건강하지 못하다는 뜻이었다.
발과 귀가 멋대로 소리가 나는 쪽을 향했다.
이어 시율을 마중 가기에도 늦었으니 무시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것이 그 무엇이든, 얽히지 않는 게 가장 편하다는 걸 머리는 알았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어차피 이건 사람도 아닌데…….
못된 생각이라는 건 알지만 외면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해인은 눈을 질끈 감아봤지만, 다시 돌아설 수는 없었다.
역시 안 됐다. 외면할 수 없었다. 너무 절절한 울음이라 결국에는 홀린 듯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생각은 마음을 다잡지 못했고, 마음은 몸을 움직였다.
시율을 받아들이게 됐을 때처럼.
[……고 싶어.]
다시 소리가 들린 건 고장 난 가로등 아래를 두리번거리며 지날 때였다.
해인은 순간 자신이 사람 모습인 걸 잊고 귀를 쫑긋, 거려봤다가 움직이지 않자 귀 옆으로 손바닥을 세웠다.
이런다고 잘 들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야옹아……? 멍멍인가?”
어느 쪽이든 분명 이쪽에서 들렸는데.
화단 너머 어두운 수풀 안으로 눈길을 돌린 건 동물들 특유의 냄새를 포착한 뒤였다.
냄새로 짐작건대 이건 아마도 개인 것 같았다.
해인은 수풀을 넘어 잔디밭 안쪽으로 들어갔고, 거리가 가까워지는 만큼 예의 그 목소리도 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부스럭거리는 풀 소리도.
“거기 있니……?”
문득 반년 전, 태일이 저를 주웠던 비가 오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 태일이 저를 줍지 않았다면 저도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전의 자신은 길가의 동물들에게 관심 같은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언니야?]
처음으로 들린 온전한 소리는 누군가를 찾는 것이었다.
그것은 쥐어짜듯 강렬하나, 동시에 죽을 듯 미약해서 얼핏 소름이 돋았다.
해인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굳히며 코끝을 세워 냄새를 맡았다. 역한 몸 냄새에 가려져 있던 피 냄새가 난데없이 강력해졌다.
“너 많이 다쳤구나.”
[언니?]
“……아니야.”
마침내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그건 본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더러워진 작은 개였다.
생각이 들리지 않았다면 외면했을 더러운 짐승인데, 품에 안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하지만 지금 분명 무언가 말하고 있는 이 짐승을 해인은 조심스레 안아 드는 수밖에 없었다.
멋대로 발이 끌려가고 손이 뻗어 나갔다.
온몸이 축축하고 고약한 냄새가 너무 진동을 해서 피를 얼마나 흘린 건지도 모르겠다.
새까만 눈망울을 가진 개는 몇 번이나 해인의 가슴팍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제 주인과 해인의 실루엣이 비슷했던지, 맹렬하게 꼬리를 흔들다가 그게 마지막 기운이었던 것처럼 힘을 잃었다.
[……언니 아니야. 우리 언니 아니잖아.]
실망하며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녀석이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아서 해인은 덜컥 겁이 났다.
머리를 들어 보니 다행히 아직 눈을 뜨고 있었지만, 힘없는 그 눈에는 차마 안도를 할 수 없었다.
작은 개는 해인을 보던 그대로 찬찬히 눈을 감았다.
[우리…… 언니…… 보고 싶어…….]
이 녀석들의 그리움은 항상, 엄마를 찾는 아이의 것과 다르지 않은 아픔이었다. 너무 그리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멍멍아. 병원에 가자. 응?”
더러운 발. 마른 몸. 끔찍하게 엉킨 털.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어디를 다쳤는지 알 수 없어 해인이 조심히 더듬어 봤다.
더군다나 이름표도 없었다.
놀란 만큼 작은 개의 숨소리는 빠르게 약해졌다.
해인은 다급히 뛰었다.
시율이 있는 병원으로.
***
[집에 돌아가고 싶어.]
[언니가 보고 싶어.]
[잠깐 나왔는데, 이제는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집 안에서 곱게만 자랐을 녀석들이 길에서 살 수 있을 리 없었다.
“조금만 힘내, 멍멍아. 멍멍아?”
깊은 잠에 들면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눈을 감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녀석의 이름을 알 수 없어서 해인은 답답하기만 했다.
제 주인에게 제 오랜 이름을 불리면 눈을 뜰까?
귀로는 계속 사념이 들려왔다. 그 생각이, 온통 그 작은 머릿속을 차지한 건 잃어버린 제 주인이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그 눈앞에 그리고 있다.
[나…… 너무 아파. 아픈데, 언니가 아무 데도 없어.]
[이제 언니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냄새도 잊어버릴 거 것 같아.]
힘없는 까만 눈.
눈물이 차오른 것 같은, 그런 눈.
[잊어버리기 싫은데.]
점점 늘어지는 몸으로 죽기 싫다는 말보다 많이 하는 건, 보고 싶다는, 그립다는, 잊고 싶지 않다는 말들이었다.
그것들에 저절로 눈물이 나서 해인은 똑바로 뛸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마음이 급해져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뒤에야 겨우 병원이 있는 큰 골목에 들어설 수 있었다.
[……언니…… 언니…… 나 여기 있는데…… 왜 몰라……?]
“다 왔어. 힘내 봐. 응?”
[이제…… 말 잘 들을게. 데리러 와.]
정말 다 왔는데, 녀석은 고장 난 것처럼 눈을 깜빡깜빡거리다 결국 깊이 감아버렸다.
한순간 만에 거짓말처럼, 숨을 쉬지 않았다.
더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해인도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눈물이 흘렀다.
***
숨도 쉬지 않고 꿈을 꾸나 보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주인이 저를 찾으러 오는 꿈을 꾸나 보다. 그만큼 그 품이 믿음직한가 보다. 그 안에서 착한 아이로 구는 꿈을 꾸나 보다.
“흐.”
너는 분명 사랑받고 컸겠지. 그러다 잠시 밖이 궁금해서 나왔겠지.
하지만 밖에서는 네 집에서처럼 예쁨 받지 못했을 거야.
모든 사람이 널 예뻐하진 않으니까.
그 집에서 귀했던 너는, 밖에서 한낱 애물단지였겠지.
널 아기처럼 예뻐해주던 언니와 같은 사람들이 너에게 발길질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래도 너는 배가 고프면 참지 못하고 다가갔겠지.
하지만 세상에는 너를 더럽다, 기분 나쁘다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서, 결국 다치고 말았겠지.
그래도 바보처럼 그 밑에서 어리광 부리고 화도 내보겠지만 그래도 또 상처 받겠지.
그러다가 경계하는 법을 배우면 살 것이고, 못 배운다면 이렇게 죽고 말겠지.
너는 사람의 몸통보다도 작다. 그 반이나 될까 싶은 작디작은 네가 눈을 감고 몸을 옹그리자 얼마나 초라하고 가엾어 보이는지 알고 있니.
그런데도 그렇게 여기는 것 말고는 해줄 것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 덧없는 초라함에 해인은 가슴이 미어지고 아파왔다. 목을 꺾어 내리며 죽은 냄새를 풍긴다. 이 작은 것은 사는 건 어렵고 죽는 건 쉬웠다.
그런데 자신은 그 작은 것조차 돕지 못했다.
“……미안해.”
내가 너의 언니가 아니라 미안해.
아무도 도움도 못 되고, 울어버려서 미안해.
죽는 건 보는 것조차도 힘겨운 일이었다.
해인은 한동안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다가, 녀석의 소원을 떠올리며 얼마 안 남은 병원을 향해 걸음을 뗐다.
‘데리러 와.’
그게 마지막 소원처럼 들렸다.
이제라도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늦었지만 너는 그리던 따듯한 품 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해인은 병원 앞에 도착한 다음에야 하아, 하니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숨은 목에서 넘어가지가 않았다.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숨이 잘 골라지지가 않았다.
딸랑.
“어떻게 오셨…….”
병원 문을 힘없이 열고 들어가자 데스크 여직원이 말을 잇다 말았다.
코트 여기저기가 피범벅이 된 해인은 응급환자를 데리고 왔나 싶기에는 너무도 처진 분위기였으니까.
위급할 때의 급박함보다는 정리되고 난 후의 차분함 쪽에 가까운 상태였다. 겉보기에는 초연해 보였다.
해인은 그대로 입구에 잠시 멈춰 서서 시율의 진료실 쪽을 보며 물었다.
“……강…… 저기 있어요?”
“네?”
“강 선생님이요.”
데스크의 직원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리며 다시 또박또박 말한 해인은 이름 모를 녀석을 안고 있는 손에서 힘을 풀었다.
자신보다는 강이 어떡해든 해줄 테니까.
“아, 지금 퇴근 준비하고 계실 텐데.”
해인에게는 익숙한 병원이었지만, 병원 사람들에게 사람인 해인은 낯선 여자일 뿐이었다.
그들은 멈칫거렸고 해인은 이미 그 안쪽에 있는 시율의 기척을 느꼈기 때문에 멈췄던 걸음을 뗐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시율의 진료실로 정확히 걸어가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해인은 숨을 쉬고 싶은 것처럼 시율을 찾았다.
“누구…….”
자신의 진료실 문이 대뜸 열리자 옷걸이 앞에 서 있던 시율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막 가운을 벗으려던 차였는데, 문턱에 멍하니 서 있는 해인을 발견하고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집에 얌전히 있어야 하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걸까.
“강.”
“……너.”
시율은 채 한마디를 내뱉기도 전에 모든 상황을 알아챘다.
해인은 품 안에 미동하지 않는 무언가를 안아 들고, 그저 아프다고 말하는 얼굴이었다.
피범벅인 코트며, 비 맞은 듯 떠는 어깨며, 상처 입은 눈.
시율이 그것만으로 상황을 다 알겠다는 얼굴을 해서일까. 해인은 다시 뚝뚝,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죽었어.”
“울지 마.”
“다 왔는데, 죽어버렸어.”
그가 다가와 제 어깨를 꽉 끌어안아주자, 해인은 이 녀석이 그리워하던 게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저를 안아주는 것.
그저 그뿐.
그리 어려운 바람은 아니었는데. 영원히 헤어지지만 않는다면.
“……네 탓이 아냐.”
시율의 조용한 위로에 해인은 그의 가슴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자신도 안다. 그런데도 눈물이 나는 건, 이 녀석이 마치 저 같아서였다.
“죽으면 다 끝인데, 흑!”
“괜…… 찮아, 울지 마.”
시율이 애탄 목소리로 달래줬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음은 끝이고, 지금 자신이 시율의 앞에 있는 이 시간은 죽음과 삶의 틈이었다.
그리고 해인은 한번 맞이한 끝을 되돌리는 조건으로 언젠가 이 틈을 완전히 버려야만 했다.
끝의 좁은 틈에서 무얼 하든, 그건 이내 뭉개져 사라져 버릴 뿐인데. 그걸 아는데, 사신이 계속 가르쳐주는데도.
그런데도 이 틈에서 자꾸만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런건 싫어…… 헤어지는 거, 싫단 말이야.”
“알아. 나도 그래.”
“다시는 못 보는 건 싫어.”
죽은 개를 안고 우는 해인을 보며 시율은 제 눈가가 젖어드는 걸 느꼈다. 심장이 통탄했다.
죽은 짐승이라면 매일같이 보는데도 지금은 극에 달한 안타까움에 시달렸다.
더군다나 해인은, 마치 그의 앞에서 울어도 좋다고 허락받은 것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하염없이 시율을 바라보며 눈물 흘렸다.
“내가 어떻게 해줄까…… 응?”
그것이 안타까운 나머지 죽은 것은 되살릴 수도 없으면서도, 시율은 해인이 그렇게 해달라 하면 할 수 있을 것처럼 물었다.
이 순간은 그저 해인이 울음을 그쳤으면 싶기만 했다.
우는 어깨를 당겨와 안으며 그 훌쩍이는 뺨에 입술을 묻었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속삭여보지만, 사랑함을 깨닫자마자 절망하느라 해인의 울음은 도통 잦아들지를 않았다.
제가 떠나거든 데리러 오라고는, 차마 염치가 없어서 말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불가능하니까.
“제발, 울지 마.”
어떻게 해야 네가 안 울까. 손끝으로, 눈으로 쉼 없이 묻는 시율이었다.
달래지 못하는 것에 가슴이 미어져서 그도 울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직원들은 생각했다. 저 둘, 사랑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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