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고양이는, 알면서 모르는 척
참으로 눈물겨운 이별이었다.
그 고양이나 주인이나 똑같구먼 싶어서 시율은 벌써부터 나중 일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이래서야 진짜 태일이 아프리카에 갈 때는 대성통곡을 할 테니 말이다.
“얌마, 별것도 아닌 걸로 울긴 왜 우냐!”
그것도 다 큰 사내자식이! 시율은 더 울었다간 한 대 칠 기세였다.
사실 태일도 울고 싶진 않았다. 담담하게 굴고 싶은데, 어제부터 마치 헤어짐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유난히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려고 들지 않는 해인 때문에 그만 기분이 이상해진 것이다.
어딘가 불쌍한 얼굴로 하염없이 저만 바라보는 그 애절한 눈동자에는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태일은 진심으로 걱정이 됐다.
“형님, 개냥이가 나중에 절 미워하진 않겠죠?”
“……똑똑한 녀석이니까 이해해주겠지.”
“그래도 짐승이잖습니까. 개냥이 입장에서는 그냥 자길 버리고 갔다고 생각할까 봐…….”
“짐승이란 건 말이야. 주인 기분을 다 안다고. 네가 울면서 가면 얘도 놀라서 울 거고, 네가 웃으면서 가면 아, 별거 아니구나 하고 안심하는 법이야. 네가 그렇게 유난 떨면 쉬울 것도 어려워져요.”
시율은 말은 달래는 것처럼 했지만 막상 손으로는 해인을 제 품으로 빼앗아 왔다. 둘이 이러다 신파라도 찍기 전에 갈라놔야겠다.
“그러니까 웃으면서 다녀와.”
“예…….”
“그리고, 너한테 버림받았다고는 생각 안 할 거다. 사는 곳이 그대로니까 이 녀석은 네가 어디 멀리 가서 안 오는구나 하겠지.”
“그러면 다행이지만……. 혹시 절 기다리진 않겠죠?”
“그야 당연히…… 기다리겠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시율은 명색의 수의사였고, 사람 손에 길러진 짐승들이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이라면 질리도록 봐왔다.
학대 속에서 구조된 케이스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기억력이 허락하는 한 주인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마련이었다.
얼굴을 잊어버리면 냄새로 알아봤고, 냄새를 잊더라도, 저를 안아주면 그 품으로 어떻게든 기억해내곤 했다. 바보 같은 녀석들이라서 잊는 법을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태일도 그걸 알아 발길이 더더욱 안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추태라는 건 알지만, 이 녀석 눈만 보면 제가 죄인이 되는 것 같아요.”
“……뭐, 그야.”
해인이 태일을 보는 눈은 항상 무한한 신뢰로 반짝였고, 그런 존재를 외면하기란 확실히 쉽지 않아 보였다.
시율은 이쯤 되니 태일이 조금 불쌍해지기는 했다. 좋은 녀석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슬퍼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해인을 양보할 순 없었다.
시율은 해인이 저를 원망의 눈으로 보기 전에 얼른 말을 돌렸다.
“아, 그보다 말이야,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예?”
“별건 아니고 네 이별파티 같은 걸 조촐하게 할까 하는데, 어때?”
“제…… 이별파티요?”
“그래, 둘이 하는 건 좀 그렇고 가끔 놀러 오는 네 친구들도 불러서 말이야.”
“기도나 하은이 말씀이시군요.”
태일은 아직도 조금 젖은 눈가를 손등으로 문지르며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시율의 성격상 거추장스러운 이별파티 같은 걸 계획할 거라고는 짐작도 못 했으니 말이다.
“형님은 그런 거 낯간지러워서 싫어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뭐, 그렇긴 하지.”
시율은 뭐랄까, 정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살가운 타입도 아닌 남자였다.
누구에게든 벽이 확실히 있었고, 흔히 말하는 마음을 여는 상대가 있긴 한 건지 의문스러운 타입이었다.
‘동물들한테는 확실히 친절하지만.’
병원에서 영업용 스마일을 보여줄 때면 모를까, 그 외 사적으로는 말을 걸기 힘든 사람이었다.
처음엔 제가 뭘 잘못했나 싶었던 태일이지만, 시율과 한집에 살게 된 뒤에는 그냥 그가 원래 그런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됐다.
방문은 항상 닫혀 있었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자기 사생활에 대한 선이 확실했다. 시율은 어딜 보나 혼자 있는 걸 즐기는 타입이었다.
그런 그가 제 친구들까지 챙겨주다니. 평소 거리감이 확실한 시율에게 상당히 이례적일 일이었다.
“부대끼는 건 질색하시잖아요?”
“그래도 작별인사 정도는 제대로 해야지. 너랑 나, 기도랑 이하은…… 그렇게 넷 정도면 좋지 않나 싶어. 그 둘이라면 나도 안면이 있으니까. 왜? 별로야?”
“아뇨…… 저야 좋죠.”
뜻밖의 제의에 태일은 다소 놀란 듯했고, 해인도 대체 무슨 꿍꿍이냐는 눈으로 시율을 노려봤지만 그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여 보일 뿐이었다.
“파티는 여기서 할까 하는데.”
“집에서 말인가요?”
“그래, 먹을 건 내가 준비하고.”
사실 시율로서도 태일이 떠나는 것 자체는 확실히 아쉬운 일이었다. 해인을 빼앗은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도 있었고 말이다.
“그거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4인분쯤이야 일도 아니지.”
“그래도, 제 이별파티니까 제가 밖에서 뭔가 사는 편이…….”
“간만에 솜씨 발휘 좀 하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원래 멀리 가는 사람은 얻어먹는 거라고.”
그리고 이 고양이도 참석하고 싶을 테니까.
그러려면 확실히 집에서 파티를 할 필요가 있었다. 시율의 그런 생각을 알았는지, 해인의 눈에 생기가 조금 돌아온 건 그때였다.
“먼 길 가는 사람한테 내가 해줄 게 그런 것뿐이네.”
아무튼 이건 그 나름의 최대한의 호의였고, 해인에 대한 마음이 섞여서 그런지, 평소 태일에게 보여주던 것치고는 매우 다정한 것이었다.
태일이 감동하는 건 바로 그래서였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신경 써주실 줄은…….”
“아, 또 울진 마. 질색이니까.”
모진 건 여전했지만 말이다.
***
태일이 본가로 떠났으니, 앞으로 일주일은 해인과 시율 단둘이었다.
알 듯 말 듯 한 이유로 해인이 시무룩한 것만 빼면 완벽한 나날이었다.
“다녀왔어.”
“왔구나…….”
시율의 이른 퇴근에도 해인은 소파에 누워서 뒹굴고 있다가 손만 한 번 맥없이 흔들어줬을 뿐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기운이 없는지. 나른한 거랑 맥없는 건 엄연히 다른데 말이다.
평소에 고양이 모습일 때 하던 걸 사람 모습으로 그대로 해준다는 건 색달랐지만 앞으로 일주일을 저러는 건 곤란하기 때문에, 시율은 나름의 타개책을 준비해 왔다.
“오, 왜 그 모습이야?”
“이게 편해서…….”
본래 사람인 해인이니 당연히 이쪽이 더 편했다. 게다가 양기도 충분하고, 집에 태일도 없으니 사람으로 있지 못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근래는 양기가 너무 넘쳐서 묘하게 취한 느낌이 들고는 했다. 몸이 너무 건강한 나머지 쓸데없이 날뛰고 싶은 기분이 된달까?
역시 뭐든 과한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적당한 컨디션을 위해서 해인은 일부러 기운을 소비하는 중이었다.
뒹굴뒹굴, 해인은 커다란 티셔츠 속으로 무릎을 넣고 소파 위를 괴상한 생명체처럼 굴러다녔다.
아, 아무것도 하기 싫다.
지금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힘껏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잘됐네. 일어나 봐. 선물을 가져왔거든.”
“……응?”
“좋은 걸 준비했지.”
관심부터 끄는 게 뭘 좀 아는 시율이었다.
해인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다가오자 그는 자신 있게 웃으며 커다란 종이봉투를 해인의 품 안에 들려줬다. 그 안에 가득한 것은, 뭔가의 재료들이었다.
다크 초콜릿, 버터, 코코아가루, 박력분…… 라즈베리.
“이게 뭐야?
“라즈베리 퐁당 쇼콜라. 지금부터 만들 거야.”
“……내가 뭐 갠 줄 알아? 먹을 걸 준다고 기분 좋아질 줄 알면 오산…….”
“침 닦아.”
“응.”
해인은 쓱, 하니 손등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
단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건 엄연히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었다. 이 괴상한 몸에도 통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튼 해인은 단거라면 환장했다.
입안에 절로 침이 고이는 건 죄가 아니리라.
“앗, 달걀에 설탕을 섞는구나.”
“그렇지.”
“어쩐지 맛있더라!”
시율의 등 뒤에 달라붙어서는 그가 능숙하게 재료를 섞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는 해인에게 단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안 뒤로 이렇게 직접 무언가 만들어 주고는 했는데, 하나같이 말도 안 되게 맛있었다.
수의사 말고 파티셰를 해도 될 것 같을 정도였다. 본인은 간단한 거라면서 뚝딱 만들어 주는 게 퐁당 쇼콜라나, 가나슈, 설탕시럽을 가득 바른 도넛이었다.
해인은 이미 시율의 손맛에 완전히 길들어져 있었다.
“너도 해볼래?”
“……헛, 정말?!”
평소라면 만드는 걸 구경하는 것까지만 허락해주는 시율이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함께 만들자고 했다.
태일이 돌아올 일도 없겠다 마음껏 느긋하게 둘만의 시간을 보낼 셈이었다.
“……내가 해도 맛있겠지?”
해인은 짐짓 심각하게 물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눈동자였다. 퐁당 쇼콜라는 소중하니까!
“괜찮아. 내가 같이 있잖아.”
“……그러네!”
고민하던 해인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고, 시율은 제가 들고 있던 거품기를 해인의 손에 넘겨줬다.
그것만으로 몸 둘 바를 모르는 해인이었다.
거품기라는 게 보기보다 무겁구나! 시율의 손에서는 귀엽더니 제게 오니 마치 전투용 무기가 된 것 같았다.
가만있을 수가 없는지 이것저것 건드려 보는 해인의 뒤쪽으로 가 여분의 앞치마를 둘러주는 시율이었다.
그러곤 목뒤로 리본을 매주며, 가느다란 목 근처에 속삭였다.
“머리 묶어줄게.”
“응!”
요리하기 앞서 해인의 긴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아래로 묶어주는 시율의 손길이 꽤나 야릇했지만, 거품기에 흥분해서는 전혀 이상한 느낌을 못 받고 있는 해인이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즐거운 요리 시간이었지만, 시율에게는 어른의 시간일 뿐이었다.
***
검지 끝이 달콤한 갈색에 감겨들었다. 그렇게 가득 묻혀서는 해인의 입가로 내미는 시율의 손길은 어째서인지 상당히 느리고, 그래서 나른하고, 그래서 어딘가…… 섹시했다.
그저 깨끗하고 큰 손일 뿐인데, 단정한 남자의 손일 뿐인데, 왜 이 남자는 손마디 관절 하나까지 이렇게 관능적인 걸까. 뭘 믿고 이렇게!
“자, 먹어봐.”
“어으엉……?”
“잘 섞였나.”
시율이 그의 가장 위험한 무기인 눈으로 함께 말했다. 웃느라 반쯤 감겨서는.
“맛을 봐야지.”
꼭 손으로 찍어서 맛을 봐야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의 눈이 말하는 달콤한 속삼임에 사로잡혀 버리면 그건 무엇이든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 됐으니까.
입술 위를 배회하는 손끝은…… 참으로 달 테니까.
톡, 하고 자신의 아랫입술을 건드리는 시율의 손 때문인지, 그 끝에 묻은 초콜릿 때문인지 만져진 입술이 얼얼해졌다.
옮아온 열기로 살포시 떨려왔다.
시율을 한 번 힐끔, 올려다본 해인은 못 이기는 척 작게 입술을 벌렸다.
혀를 조금 내밀고 다가온 손끝을 베어 물었다.
조심스레 쪽 하고 빨아들이다 보니, 분명 사람의 몸인데도 고양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손가락을 물었을 뿐인데, 왜 이리도 야한 기분이 드는 걸까.
해인은 제가 언제부터 변태가 된 건지 생각해내야 했다.
“키스해줄까?”
문득 시율이 물었다.
조용한 물음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홀리는 목소리가 어디가진 않았다. 달콤한 건 입안의 무엇인지 귓가에 감겨드는 그의 목소린지.
분명한 것은 목소리에 안기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해인은 그 순간, 이게 단순한 요리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태일도 없는 집에서, 시율과 단둘이 무언가 하는데…… 그게 평범할 리는 없었다.
이제 보니 그의 모든 게 유혹이었구나.
해인은 제가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좋아.”
수긍과 함께 그의 입술이 닿았다. 모든 순간이 마치 숨 쉬는 것과 같았다.
초콜릿 때문인지 유난히 달고, 끈적이며…… 정신을 좀먹어오는 그런 접촉.
이게 뭘까. 분명 함께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되고 만 걸까.
해인은 의문을 가지면서도 답을 알았다. 그건, 서로를 갈망하기 때문이었다.
***
한껏 꺽은 목이 아파와 해인은 두 손을 들어 올려 시율의 목을 좀 더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것은 매달린다기보다는 가져오는 손길이었고, 시율은 기꺼이 끌려가 상체를 숙이며 한 손으로 해인의 허리를 틀어쥐었다.
고작 왼쪽 팔뚝 안에 온전히 감기는 여자의 허리가 주는 애틋함에는 그의 심장도 요란을 떨었다.
그는 자신이 흥분하는 것을 느끼며 깊숙이 눈을 감았다.
이르다, 일러.
해인이 지금처럼 의심 없이 기쁘게 안겨오는 건, 순전히 키스 이상을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선은 넘으려 들면 또 저 멀리 도망갈 거라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허리와 함께 끌려와 온전히 닿는 말캉한 몸에는 숨이 막혔다. 길어지는 키스에 여자가 내는 야트막한 숨소리에는 기어코 혀끝이 떨렸다.
인생의 모토가 여유이건만, 천하의 그도 이쯤 되니 한계였다.
차근차근이고 뭐고, 전부 씹어 먹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자꾸만 불끈거렸다. 입안의 작은 혀도, 낭창한 몸도 전부.
키스는 거듭할수록 아쉬워졌다.
갈증을 부르는 것으로 갈증을 참으려니 고약스러운 일이었다.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들이켜는 멍청한 형국이라는 걸 그도 알았다.
아는데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시율은 초콜릿이 묻은 오른 손으로 해인의 뺨을 간질이며 귓가를 쓰다듬었다. 가만가만 톡톡, 검지를 뺀 시율의 손가락이 해인의 목덜미까지를 두드렸다.
진득하리만치 깊어지는 입안과는 달리 부드럽고 다정한 손길이었다.
휘감는 혀가 그의 욕망이라면 그의 나긋한 손짓은 그가 가까스로 위장하고 있는 평화로운 외관이었다.
그러나, 둘 다 해인을 미혹시킨다는 것만은 같았다.
“하아.”
“……그만?”
숨을 쉬기 위한 틈에 시율이 물었다.
녹아드는 목소리로 어차피 그만둘 생각도 없으면서 확인하듯 물어온다. 이게 저만 바라는 일이 아니라는 걸 해인에게 가르치는 것 같았다.
사실 물음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이미 서로의 공기가 얽혀버려 경계를 잃은 것쯤이었다.
해인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며 더, 라고 재촉했다. 그걸 말하는 입술 사이에 시율이 그대로 다시 파고들었다.
혀를 비집어 넣어 맞추며, 그와 동시에 해인의 허리를 번쩍 들어 올려 식탁 위로 앉혔다.
사뿐한 손짓이었지만 키스하던 채라 해인은 몸이 들리자 움찔, 작게 긴장했다.
“……!”
반사적으로 그의 목을 휘감았던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낚아 쥐는 남자의 강한 두 손을 붙잡았다.
오른손으로 그의 왼쪽 손등을, 왼손으로 그의 오른 손목을.
그러자 시율의 손이 미안하다는 듯, 긴장하지 말라는 듯 해인의 등허리를 부드럽게 쓸어 만졌다. 부끄러웠지만 그 손이 너무 따듯해서 속절없었다.
허리의 움푹 파인 그 부분을 시율의 손이 지그시 누르며 매만지자 긴장이 되어서 발끝까지 힘이 들었다.
해인은 지금 그와 자신이 위험할 만큼 가깝다는 걸 알았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시율이 어찌해도 자신이 허락한 그 이상을 넘어오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는 이상할 만큼 해인이 겁내는 선을 지켰다.
시율을 생각하며 해인은 두 손을 움직였다.
지금 그와 키스하며 그를 느끼고 있는데도 부족한 기분이 들어 순간순간을 손끝에 그려나갔다. 자신의 허리를 붙잡은 시율의 손을 타고 더듬어 올라가며 음미했다.
두 손을 함께 움직여 그의 손목을 매만지고…… 팔등을 더듬어 올라가 와이셔츠 소매가 접혀진 팔꿈치를 스쳐 지났다. 그리고 단단한 팔뚝을 한번 쥐었다가 손끝을 그의 어깨 위에 안착했다.
살며시 어깨를 붙잡으며 그의 감촉을 만끽했다. 단단하고, 따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시율이 지금 자신을 음미하는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만지고 붙잡는데도 아쉬운 기분이 들어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끊이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손끝을 세밀하게 만들어 시율을 보듬고 만다. 그의 어깨에 근육이 선 모양을 손끝으로 더듬자니, 이제 떨어지는 건 그였다.
“……간지러워.”
시율이 입술을 반쯤 떼어내고는 속삭였다.
키스하는 그동안, 찰나인 그 영원 사이에서.
해인이 그에 키득거리자 시율이 다시 웃음을 삼켜버렸다. 여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더 깊이 찾아 들어왔다.
키스는 끝을 모르게 깊어졌다.
이제 제법 이런 진한 입맞춤에 익숙해진 해인이지만, 시율이 마음먹고 압박해오면 결국 밀려버렸다.
싱크대와 이어진 하얀 대리석 아일랜드 식탁 위로 해인을 더 올려 앉히며, 시율은 지긋이 뜬 눈으로 해인의 눈이 흐려지는 걸 지켜봤다.
어디까지 몰아붙일 수 있을까.
충동을 이기지 못한 그의 움직임이 문득 강해졌다.
감미로운 선을 넘은 우악스러운 포식에 힘겨운 듯 뒤로 몸을 기울이며 반쯤 눕나 싶던 해인은, 어느새 힘에 겨운 듯 식탁 위로 누워버렸다.
아니, 눕혀진 쪽에 가까웠다.
해인의 긴 머리카락이 식탁 위로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숨을 몰아쉬고 있는 가슴에, 그의 가슴이 닿았다.
띵!
……아차, 이게 아니지.
오븐이 꺼지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시율은 해인에게서 빠르게 떨어졌다. 1초쯤 선을 넘을 작정을 해버린 것 같았다.
고작 키스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다니. 젖비린내 나는 애도 아니고…….
“……미안. 내가 너무 빠졌다. 그치?”
그는 스스로도 꽤나 당황했지만, 그렇지 않은 척 웃으면서 해인을 일으켜 줬다.
미친 거지, 키스에 10분이나 정신을 팔다니. 오븐에 케이크를 넣고 남은 반죽을 맛보면서 키스를 시작했으니 빼도 박도 할 수 없었다.
퐁당 쇼콜라가 구워지는 시간은 180도 예열로 12분. 그리고 그와 맞먹은 키스타임.
세상이 좋아져서 예약 기능이 없었다면 필히 태워먹었으리라. 그 소리가 들린 건 기적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시율이 상체를 세웠지만 해인은 비실비실 그대로 뒤로 쓰러져 버렸다.
그러곤 묶은 머리가 거슬리는지 턱을 옆으로 돌리며 긴 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가슴을 들썩이다가, 그를 놀라게 했다.
“……강은, 날 안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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