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고양이 먹이주기
다음 날 아침.
태일은 집 안 여기저기를 뒤지며 온갖 서류들을 끌어모으느라 상당히 분주해 보였다. 떠나기로 결정한 이상 정리할 게 한두 가지는 아닐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형님, 혹시 주변에 차 산다는 사람 있을까요? 싸게 넘길 수 있는데요.”
“네 차? 글쎄.”
“이달 안에는 팔아야 할 것 같아서요.”
품 안에 산더미처럼 책을 든 걸로 보아 그것들도 정리 대상인 듯했다.
“……시간이 촉박해서 있을까 모르겠네. 한번 찾아는 볼게.”
“부탁드릴게요. 중고차 딜러도 알아보겠지만 이왕이면 아는 사람한테 싸게 넘기고 싶어서요.”
“하긴, 수수료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아, 뭐 좀 도와줄까?”
“괜찮습니다. 우선 본가에 가져다둘 거랑 팔 것들을 분류부터 해야 해서요.”
오후 출근이라 느긋하게 거실에서 독서 중이던 시율은 태일이 차를 팔겠다고 말하자 그가 정말 떠나긴 떠나는구나 싶어졌다.
하기야, 몇 개월도 아니고 최하 2년이니 팔 수 있는 건 전부 팔아야 할 테지.
그걸 실감할수록 기분이 오묘해졌지만, 절대 태일에게 엉뚱한 감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어제 일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던 터라 틈만 나면 하은이 했던 오해가 생각나는 시율이었다.
아니라는 건 알지만 앞으로 남들 앞에서 태일을 대할 때 조심하자고 생각했다. 그간 동물병원에서 태일과 이야기만 조금 나눠도 꺅꺅거리던 여자들이 생각났으니까.
설마 그 여자들도 이하은이랑 비슷한 생각은 한 건 아닌지 꽤나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
“으흠.”
물론 이 고양이의 눈빛만큼 신경 쓰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해인은 어제부터 내내 이렇게 무언 시위 중이었다.
원래 고양이가 말을 못 하는 건 맞지만, 곧잘 냥냥거리며 말을 거는 이 고양이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달까.
시율은 해인이 왜 저러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래서 모르는 척 외면하는 중이었다.
***
잠시 뒤, 해인은 무슨 생각인지 어제 썼던 목줄을 입에 물고 나타났다.
그러곤 시율의 발치에 보란 듯 붉은색 목줄을 떨어트리고는 동그란 손끝으로 시율 쪽으로 툭툭, 목줄을 밀면서 그를 빤히 노려봤다.
그건 명백한 시위였다.
나가서 이야기 좀 하자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고.
이 무서운 고양이 같으니라고. 시율은 그것도 외면하려고 했지만 한참 그러고 있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목줄을 들며 대꾸했다.
“아가씨, 이런 건 개들이나 하는 거야.”
“므앙!”(아냐!)
“넌 고양이고.”
“먀악!”(치우지 마!)
시율은 얼른 목줄을 멀리 치워버렸다. 꽁꽁 숨겨둔다고 숨겨뒀지만 소용없었다. 해인이 곧장 다시 찾아서 물고 왔으니까.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 봐 보통 고집이 아니어서 둘은 잠시간 기 싸움을 해야 했다.
“어? 산책 나가고 싶은가 본데요, 형님?”
사정을 모르는 태일은 그 모양을 보고는 순수하게 감탄을 터트렸다. 똑똑한 개들이 저런 짓을 한다고 얼핏 들은 것 같긴 한데, 어제 처음 산책을 해본 고양이가 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쁘시면 제가 이거 끝나는 대로…….”
“다녀올게.”
시율은 당장 책을 덮었다.
***
산책하는 개는 흔하지만 고양이는 드물어서인지 시율은 해인을 데리고 주차장 쪽으로 가는 내내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다.
“야옹이다! 엄마, 야옹이!”
해인은 아이에게 몇 번 당한 터라 아이가 쫓아오자 얼른 시율의 품에 안겼다.
폴짝 뛰어 사람의 가슴팍까지 도달하는 점프력은 절대 개의 것은 아니어서, 개인 줄 알고 지나쳐 가다가 고양이라는 사실에 동그란 눈을 하며 돌아보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시율은 그에 은근히 뿌듯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이 정도로 신기해하다니. 이 고양이는 심지어 말도 한답니다.
“목줄 풀어줘!”
“네네.”
“문 열어줘, 얼른!”
“예이.”
“망 봐줘.”
그리고 사람으로도 변하죠.
명령대로 차에 왔더니, 이번엔 저만 안에 쏙 들어가고는 문을 닫으라는 해인이었다. 아마도 변신해서 어제 벗어놓고 나온 옷을 입으려는 모양이었다.
시율은 밖에서 해인이 옷을 입을 때까지 망을 보면서 생각했다.
괜히 차 유리에 비싼 선팅을 했다고. 모르는 사람에게 차 안이 보이는 게 싫어서 하긴 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노린 바로 그 기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아쉽달까? 실루엣 정도는 보여도…….
“응?”
금세 뒷문이 열리더니 해인이 앙칼진 손으로 시율을 뒷좌석으로 끌고 들어갔다. 누가 보면 납치라도 하는 줄 알겠다.
해인은 시율을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가자마자 그의 옷깃을 붙잡고 탈탈 흔들었다. 말 못 하는 답답함이 컸는지 괜한 화를 내고 있었다.
“날 무시했겠다!”
“이런, 우리 아가씨가 왜 화가 나셨을까.”
“몰라서 물어?! 왜 말해주지 않는 거야!”
역시, 해인의 불만은 그것이었다.
시율은 목덜미가 잡혀서 털리고 있는 주제에 느긋하게 웃고 있었다. 어림없다는 듯.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하지만 안 돼.”
“왜!”
“전에도 했던 말이잖아? 이하은은 이제 곧 결혼할 거니까.”
“……하지만 주인은 게이가 아니잖아!”
왜일까. 해인은 제가 다 억울한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속병이 날 것 같았다. 시율과 둘만 있는 차 안에서 재차 소리쳤다.
“이런 거 이상해!”
답답함과 속상함으로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해인의 얼굴을 보며 시율은 잠시 말이 없었다.
이런 일로 해인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해인이 사람 모습일 때는 특히나 모든 순간이 아까웠다.
시율은 끔찍이도 다정한 목소리를 내며 저를 흔드는 해인의 손목을 붙들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리가 남 일로 싸우는 게 난 더 이상해.”
“남이야, 주인이?!”
“남이지.”
“강은 주인한테 얹혀살고 있잖아!”
맞다. 이 녀석의 머릿속에서 나는 그냥 식객이었지.
“……제대로 월세 내거든.”
“그래도,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잖아?”
“전혀.”
“도와주자, 응? 도와주자!”
왜 굳이 사람이 됐나 했더니 이렇게 조르기 위해서였나 보다. 시율은 저에게 딱 달라붙어서 두 눈을 반짝이는 해인 때문에 인내심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응? 응?”
“너…… 이럴 때만 애교 부리는 거냐!”
“아, 아냐! 진심으로 부탁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소용없어.”
시율은 해인에게 평소에는 뭐든 오냐오냐 하는 주제에 제가 안 된다 싶은 일에는 죽어도 물러서질 않았다.
“……왜? 이하은이 두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잖아. 주인을 오해해서 그렇지……. 누가 봐도 주인을 좋아하는 거잖아.”
“뭐, 그렇다 쳐. 그러면 그 약혼자는 어쩔 건데? 그것도 결혼이 한 달도 안 남은 불쌍한 새신랑.”
“그건…….”
“다시 말하지만, 안 돼.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야.”
태도에서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시율이었다. 해인을 볼 때는 그렇게 다정했는데, 그 외에 것에는 늘 이런 식이었다. 현실적이고, 무서울 만큼 냉정했다.
“이하은은 이제 곧 그 남자랑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테고, 태일인 아프리카에 다녀올 테고. 태일이가 돌아올 때쯤이면 각자 마음도 정리가 됐겠지. 서로 평생 모르고 그렇게 살면 돼.”
“강은…… 너무 냉정해!”
“내가 원래 좀 이기적이지.”
반면에 해인은 아직도 어린 구석이 있고 정에 곧잘 휘둘리는 성격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누군가가 힘들어하는 걸 제가 아픈 것도 아닌데 참질 못하는 성미였다.
눈물이 나서 젖어들기 시작한 눈으로 시율을 바라봤다.
멍울멍울 흔들리는 해인의 눈동자에만큼은, 시율도 조금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나중에…… 주인이 다른 여자랑 결혼하면 이하은은 어떡해?”
“……그땐.”
“그 기분이 어떻겠어?”
그건 얼마나 참담하고 처참한 기분일까. 얼마나 끔찍하고 서러울까. 후회하기엔 너무도 늦고, 되돌릴 수도 없을 만큼 나중이 되면…….
해인은 그 기분을 알 것 같아서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저 역시 끝이 뻔한 사랑을 하고 있어서일까.
똑같이 아무 소용없는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하은은 저에 비하면 가망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허무하게 끝나는 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자기가 바보였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되겠지.”
시율은 하나도 몰라줬지만 말이다.
냉정한 남자 같으니. 해인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시율은 타인의 일에는 한없이 차가웠다. 제게 하는 것에 반만 신경 써줘도 좋으련만. 해인이 안타까운 건 그런 이유 때문도 있었다.
“강은 여자 마음을 너무 몰라줘.”
“……울어도 안 돼.”
“……나빠.”
“아니, 그냥 현실적인 거야.”
“나쁘다고!”
시율은 안 된다고만 하고,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얼마나 답답한지. 해인은 불끈 쥔 두 주먹으로 시율의 가슴팍을 쳐댔다.
“강은 바보야!”
그 힘이 제법 세서 시율은 당황해야 했다.
이거 잘하면 멍들겠네 싶었다.
“……아, 아파.”
“주인이 불쌍해! 흐헝!”
“난 내가 더 불쌍하다만…….”
해인은 작게 울먹이다가 시율의 가슴팍에 매달려 두 눈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의 옷깃에 눈물을 닦으면서도 사실 저보다 시율이 옳다는 걸 알았다. 사실은 자신이 아주 무력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마음이란 게 항상 옳은 쪽으로 따라주진 않았다.
“그런 거 싫어.”
“나도 좋진 않아.”
“으……. 좋아하는 사람끼리 엇갈리는 건 이상해.”
“그래, 이상해.”
“이루어지는 게 맞는 거잖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울먹이는 걸 보니 시율도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해인이 앙칼진 듯 굴어도 어딘가 한없이 여리고 어린 걸 알았다. 경계심이 많은 것도 다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알고 보면 많이 짖는 개일수록 겁이 많은 법이었다.
“항상 옳은 일만 있지는 않아.”
세상엔 의외로 부조리하고 불공평하며, 정의롭지 않은 일이 많았다. 아마 순수한 사람일수록 그걸 인정할 수 없을 테고, 인정하는 순간 더 이상 순수할 수는 없을 테다.
시율은 안겨오는 해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등을 다독여줬다.
“네가 울면, 내 마음이 아파.”
“그럼 어떻게든 해줘.”
“알잖아.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강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똑똑한 건 강, 너잖아.”
이 녀석은 내가 무적인 줄 아나.
해인은 정말 시율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얼굴이었다. 시율은 그 믿음이 싫진 않았지만 지금은 화답해줄 수 없었다.
“늘 말하지만, 내 관심사는 너뿐이야.”
“……응?”
“어떻게 해야 네가 어디 가지 않을까, 내 곁에 조금이라도 오래 있을까, 그런 궁리뿐이야. 어떻게 해야 너랑…….”
돌연 야한 눈이었다.
마치 단숨에 잡아먹고 싶어 하는 맹수 같은 눈이었다. 해인은 시율이 너무도 가까이서 제 어깨를 토닥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슬그머니 그에게서 떨어졌다.
설마 이 좁은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겠…… 구나.
상황이 역전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나…… 이제 집에 갈래.”
“나올 땐 맘대로지만, 들어갈 땐 아니란다.”
시율은 웃으면서 말하는데도 사람을 무섭게 하는 신통한 재주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데이트가 급하게 끝났지. 그리고 이 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키스를 했지. 그 뒤가 이어지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이기적이라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불쌍한 건 나야. 그 녀석이 아니라.”
“……안 나빠, 안 나빠.”
“네가 내일이라도 당장 없어질 줄 어떻게 알겠어? 미안하지만 나도 남 일 신경 쓸 여유가 없어.”
차 뒷좌석은 비좁고 어두웠다. 짙은 선팅이 되어 있어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밖에선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끌어안기며 키스당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숨이 막히는 압도적인 느낌의 키스는 온몸을 소유당하는 것과 같았다.
“흐아.”
시율은 마치 심술이라도 부리듯 해인이 힘들어하는 짙은 키스를 퍼부었고, 해인은 제가 방금 시율을 괴롭힌 게 있어서 꼼짝없이 당해야만 했다.
날이 갈수록 그는 완연한 남자로 다가왔다.
근사한 웃음을 짓고, 좋은 목소리를 내고, 상냥하게 대해주다가도 한순간에 수컷이 되고는 했다.
“숨 쉬라니까.”
“하, 하아!”
“요령이 부족해.”
“강…… 나, 숨차.”
살이 섞일 것 같은 깊은 키스를 하면서 대체 어떻게 숨을 쉬라는 걸까.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표정이 너무 잘 보였다. 제 것이 아닌 피부의 온기의 느껴졌다. 점점 키스의 수위가 진해지고 있었지만, 불만을 토할 순 없었다.
연인이 된 이상, 키스하는 데 이유는 필요 없었으니까.
눈이 마주치거나, 손끝이 닿거나, 그것들만으로도 키스할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시율은 매번 너무 민망할 만큼 급작스러웠다.
그리고 받아들이기 버거울 만큼의 기운을 해인에게 주고 있었다. 달빛으로 아름아름 모으는 음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묵직하고…… 흥건한 양기.
음기가 안개 같다면, 양기는 진흙 같았다.
어느 날, 깨닫기로, 사람으로 변하는 데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기운이 넘쳤다. 그리고 그건 전부 시율에게서 흡수한 양기였다.
이만큼 양기를 흡수당했는데 시율은 괜찮은 걸까?
“……착하지, 음?"
해인의 그런 걱정을 알 리 없는 시율이, 입술 위로 달래는 말을 속삭이며 다시 젖은 살을 섞어왔다.
마주 닿은 피부가 뜨겁게 달아오름과 동시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의식한 탓인지 너무도 선명하게 그것이 해인의 목을 타고 내려갔다. 꿀꺽, 넘겨받은 것은 기인지, 아니면 단순히 타액인지.
그걸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그와 너무도 가까웠다.
해인은 숨 막히게 이상한 그 기분을 견딜 수가 없었다. 목 안쪽이 저릿거리고 손이며 발끝에 잔떨림이 경련하듯 찾아왔다.
꽉 맞물린 입술을 통해 자신이 시율의 무언가를 흡수한다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와 키스할 때면 거짓말처럼 목이 마르곤 했다.
자신의 깊은 곳에서 더한 접촉을 갈구하는 목마름을 느꼈다. 다름 아닌 시율을 향해서, 그것은 다름 아닌…… 욕망이었다.
맙소사, 이래서야 정말 요괴잖아. 나 왜 이리 밝혀? 키스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자신에게 해인은 반항했다.
“그만…… 하지, 마.”
그것은 정말이지 미약한 움찔거림이었다.
하지만 시율은 넘겨준 만큼 받아야만 했다. 해인의 턱을 들어 올리고, 저도 한참 고개를 숙여야 맞닿는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가쁜 숨을 삼키고, 그 몸에서 신음을 짜내 음미했다. 자신의 몸으로 느껴지는 해인의 모든 소리며 떨림, 숨의 온도까지 감상했다.
그러다가 목이 치켜들려 힘겨워하는 해인의 허리를 바짝 들어 올렸다.
끌어안는 키스에 해인은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진한 압박과 숨 막힐 듯한 몰아붙임이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빈틈없이 옥죄여진 기분. 몸과 정신의 감각이 쉴 새 없이 교차했다.
그가 욕정을 품을수록 흘러들어오는 기운은 강해지기 마련이었는데, 그게 오늘만큼 왈칵 밀려들어온 적은 없었다.
“그만해 정말! 강, 이러다가…….”
“싫어?”
“아냐! 싫은 게 아니라, 이러다가 네가…….”
얼굴이 붉어지는 건 그의 갈망을 빤히 알아서였다.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서.
“내가?”
“큰일 날 수도 있단 말이야.”
키스할 때 상대의 건강을 걱정하는 건 아마도 저뿐이리라. 해인의 염려가 무색하게도 시율은 느긋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럴 리가. 난 황홀하기만 한데.”
이래서야 어느 쪽이 요괴인지.
해인은 분명 시율이 주는 무언가를 느끼면서도, 자신이 흡수하면서도 잡아먹히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상대가 너무도 강한 탓이리라.
“그거야, 나도 그렇지만……. 그래도 너무 진한 건, 안 돼! 위험하단 말이야.”
“위험하다고? 대체 뭐가?”
“너…… 죽을 수도 있어!”
“왜?”
해인은 심각하게 당부했지만 시율이 납득할 리 없었다.
“그건…… 말 못 하지만…….”
“아, 양기? 양기구나.”
“……엥?”
“나 그거 알아. 공부했거든.”
이 남자, 해맑게 뭐라는 걸까. 뭘 공부해?!
걱정이라고는 조금도 안 하는 시율 때문에 해인은 얼이 조금 빠졌지만, 시율은 힌트를 얻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을 뿐이었다.
“구미호 느낌인가?”
“어, 어떻게 알아?!”
시율은 과연 모범생이라 척 하면 척이었다. 그 방면에 대한 지식은 해인보다 훨씬 낫기도 했고 말이다. 이래서야 사신의 금언술도 소용없는 게, 상대가 먼저 알고 있는 탓이었다.
시율이 문제없다는 얼굴로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오며 해인의 입술을 더듬었다.
“난 괜찮으니까, 내 양기를 빨아.”
“에…….”
“내 양기…… 얼마나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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