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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스-40화 (40/114)

40화. 고양이 길들이기

겹겹이, 입술이 닿았다.

이제 더 이상의 거부는 의미가 없었기에 해인은 조용히 눈을 감아버렸다.

데스크 뒤편에 앉은 채로 받은 키스는 어쩐지 은밀하게 느껴졌다.

떨어질 듯 말 듯 다시 닿아오는 시율의 입술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는, 자신이 지고 말았다는 것뿐이었다.

‘사람에게 함락당한다는 게, 바로 이런 걸까.’

사실 해인은 내내 이런 일이 생길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렇게 도망치고 외면하고, 그러다가 못 버티고 발톱을 세우기도 했는데, 결국은 다 소용없었다.

전에 이미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끝내는, 이렇게 강시율의 손아귀에 떨어질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음……!”

그는 이제 해인의 두 뺨을 손안에 감싸 쥐고는 마음껏 키스하기 시작했다. 거듭되는 입맞춤은 이제 몇 번이라고는 차마 셀 수 없게 되었다.

입술과 입술 사이로 고이는 숨결이 뜨겁고 축축했다. 단것을 맛본 것처럼 시율이 만족스러운 소리로 목을 울렸다.

살그머니 입술 위를 핥고 있는 그의 시선이 목을 조르는 듯했다.

해인은 입술을 꾹 다물고 버텼지만, 벌리라는 듯 핥아오는 감촉에는 목 안이 메었다.

이 남자는, 너무 야해.

“하으.”

정말 취하는 것만 같았다.

해인은 키스가 끝나지 않음에 한 번 신음하고, 양기가 흘러들어 오는 느낌에 또 한 번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양기란 마치 진득한 공기처럼 느껴졌다.

밀도 높은 산소가 목을 타고 내려와 폐 속을 꽉, 들이채우는 듯한 포만감.

동시에 달콤한 향이 나는 술에 취한 것처럼 배 안에서부터 저릿하게 밀려 올라오는 묘한 흥분감.

가늘게 뜬 시선이 점차 흐려졌다.

‘뭔가, 너무…… 기분이 좋아.’

양기가 몸 안을 채울수록 해인은 자신의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갔다.

대신 입술을 한껏 벌리고, 시율과 더 깊고 내밀한 접촉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몸 안에서 들끓었다.

양기의 진가를 깨달은 몸이 제멋대로 더 많은 기운을 원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끝없이 기운을 빨아들이길 재촉했다.

맙소사, 어쩌면 이렇게 적나라한 욕망이 들 수 있을까.

“……! 그, 그만해.”

해인은 순간 자신의 몸이 바라는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라 시율을 밀어냈다.

이래서야 자신이 정말 요괴 같았으니까.

그저 키스했을 뿐인데 어지러울 만큼의 흥분과 쾌감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었다.

시율과 처음으로 제대로 키스한 해인의 소감은, 명백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행여나 기를 몽땅 빨아들여서 이 남자를 죽이진 않을까 하는.

“왜, 그런 얼굴이야?”

“어?”

시율이 심각한 얼굴로 물어서 해인은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만져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제가 지금 마치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시율을 놀라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싫었다면…… 사과할게. 미안해.”

아픈 듯 찌푸려진 시율의 눈가가 해인을 당황스럽게 했다.

“내가 착각했나 봐.”

“……난.”

“억지로 할 생각은 없었어. 손을 내리기에…… 괜찮다는 뜻인 줄 알고.”

시율이 죄를 지은 사람처럼 힘없이 한 걸음 물러났다. 해인은 저도 모르게 놀라 손을 뻗고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고개를 내저으며 시율을 올려다봤다.

“아니야. 그래서가 아니라…….”

“울 것 같은 얼굴을 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억지로 당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자신이 그의 양기를 빨아들여서였다.

하지만 그건 말할 수 없는 일인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이 답답한 증상은 분명 사신의 솜씨였다.

망할 금언술! 망할 사신! 망할 몸뚱이!

“……키스는, 내가 수긍한 게 맞아.”

해인이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 정도가 다였다.

시율의 오해를 풀어주는 건 좋은데, 나도 키스하고 싶었다고 인정하는 건 꽤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곧장 새빨간 얼굴이 되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시율은 슬그머니 안도하는 얼굴이 되었다

“내가 또 억지로 키스한 줄 알았어.”

“…….”

“아니라니 다행이야.”

안도하는 얼굴이 부드러웠다.

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더없이 나긋해서 해인은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부끄러워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그냥…… 놀라서 그랬어.”

“나랑 키스해버린 게?”

“……그래!”

해인은 너무 창피한 나머지 괜히 화를 내고 있었다. 부끄러운 기분을 감출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었다.

“난 좋았는데.”

“으윽.”

이런 황망한 기분이 될 걸 뻔히 알면서. 진짜로 키스해버리면 더는 시율을 거부할 수 없게 된다는 걸 알면서 왜 허락하고 만 걸까.

해인은 이제는 알쏭달쏭한 얼굴이 되었다.

“내가…… 내가 왜 허락해버린 거지?”

시율은 의기양양했지만.

“그야 내가 싫지 않으니까 그런 거겠지.”

“……그건 맞지만.”

“기특하네? 웬일로 인정을 다 하고?”

싫은데 키스할 리는 없잖아. 해인은 뾰로통하니 시율을 올려다봤다.

이제 와서 싫어한다고 고집부려봐야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이 느른하게 잘 웃는 남자가 좋아져버린 건 사실이었으니까.

저를 보는 시율의 눈이 바로 몇 분 전보다 더 애틋하게 변했다는 걸 외면할 수 없었다.

몸에 남은 많은 양의 양기가, 시율이 저를 얼마나 갈망하는가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건 한 달 내내 달빛을 충전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저기…… 혹시 어지럽진 않지?”

“내가? 왜 어지럽겠어? 어지러워해야 한다면 그건 너겠지.”

“그, 그렇지?”

키스하고 상대의 건강 염려해야 한다니, 이런 경우가 또 있을까? 다행히도 시율은 멀쩡해 보였다.

“겨우 이런 베이비 키스로는 안 어지러워.”

“……이게 애들 키스라고?”

“그럼, 제대로 하면 넌 숨도 못 쉴걸. 어른의 키스라는 건 엄청나거든.”

뭘까. 저 기대하라는 듯한 웃음은.

그리고 지금도 숨 못 쉬었는데? 해인은 동그란 눈을 하고는 대체 어른의 키스란 게 어떤 건지 상상해봤다.

왠지 그것만으로 벌써 숨 쉬기가 버거워진 느낌이었다.

절로 달아오른 얼굴이 수습되질 않았다. 아직도 입술에 시율의 온기가 남아 있는 와중이었으니까.

“와, 이 음란마묘 같으니. 얼굴 빨개진 거 봐.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으씨, 누가 누구더러!”

“그래서 말인데…….”

“응?”

“이참에 진짜 내 여자 친구가 되는 게 어때?”

뭐냐, 그 기승전여친 이론은!

“우리 정식으로 키스도 했는데.”

“……키, 키스는 키스일 뿐이야.”

애써 별거 아니라는 양 해인은 호기롭게 받아쳤지만, 그게 시율에게 통할 리 없었다.

더 짙은 웃음을 띠며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는 포기를 몰랐으니까.

“아냐. 키스는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거야.”

이 남자의 위험한 구석을 꼽으라면 우선 낮고 섬뜩할 만큼 좋은 목소리고, 두 번째는, 색기가 뚝뚝 묻어나는 눈웃음이었다.

코앞에서 그런 얼굴로 웃으면 홀려버린다고.

요괴는 자신보다는 이 남자가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아주 여럿 홀려서 잡아먹을 게 분명했다.

“틀려?”

자신만만하게 웃는 시율을 보며 해인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키스를 허락해버렸다는 건, 마음도 허락했다는 뜻이었으니까.

***

“슬슬 가자.”

날이 밝았고, 전날 당직을 선 시율은 오늘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이었다.

점심이 조금 지난 무렵 캐리어를 들고 고양이 모습인 해인에게 다가왔는데, 해인은 슬금슬금 게처럼 옆걸음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어디 가?”

“어…… 어어?”

태일이 출장에서 돌아오려면 멀었는데 이 사냥꾼의 눈을 한 남자와 한집에 있는 건…… 나 잡아 잡숴 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집에 가자니까.”

“난…… 병원에…… 있을까 해.”

“으흠?”

“그, 그냥! 여기가 더 넓고…… 이제 편하기도 하고…….”

키스를 한 번 받아들인 이상 시율은 또 키스하려고 들 게 틀림없었고, 결정적으로 해인은 이제 그를 거부할 자신이 없었다.

“흐으으음.”

애써 시율의 시선을 피했지만, 젤리 같은 발바닥에서 땀이 뻘뻘 흐르는 느낌이었다.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다 보이거든.”

“…….”

“이 음란마묘야.”

시율은 어젯밤 자신이 이 겁 많고 걱정덩어리에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생물을 길들였다는 걸 깨달았다.

키스 중간에 내려다본 그 발그레한 얼굴을 기억력 좋은 그가 잊을 리 없었다.

물론 금방 울먹거려서 놀라긴 했지만.

여하튼 고양이의 특성인지 마음을 여는 데 오래 걸리고, 마음을 열고도 도통 곁을 주진 않지만, 그래도 숱한 노력 끝에 드디어!

이만큼 길들인 그는 당연하게도 해인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오늘 밤은 안 건드릴 테니까, 일단 가자고.”

“끄응……?”

“생각해봐. 오늘 하루 피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는 당장이라도 이 고양이 아가씨에 대한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만큼 관찰한 후였다. 어떤 말에 약한지는 이미 훤히 꿰고 있었다.

“응? 얼른 가자고. 이번 주에만 이틀이나 당직을 섰더니 너무 피곤하단 말이야.”

시율은 괜스레 자신의 어깨를 주물러 보였다. 목도 아픈 것처럼 만지다가 뿌득, 뿌득 소리가 나도록 뼈마디를 풀어 보였다.

해인은 마음이 약해져서 결국 실랑이하지 못하고 캐리어 속으로 제 발로 기어 들어가고 말았다.

사람만 안 되면 괜찮겠지, 그런 안일할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고양이라도 좋으니까, 널 끌어안고 잠들게 해주라.”

이 나쁜 놈! 변태! 음란마귀!

해인은 평소처럼 태일이 없는 빈방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시율은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해인이 있는 방으로 들어오더니 문을 잠갔다.

상황 파악을 하는 것보다 창문까지 잠기는 게 더 빨랐다.

설마하니 한낮에 제 영역인 태일의 방에 가둬질 줄은 몰랐던 해인이다.

“이 변태야아아!”

“내가 좀 변태지. 너무 잘생긴 변태라 탈이지만.”

“왕자병아!”

해인은 버둥대며 악을 썼지만 결국 시율의 손에 잡혔고. 시트로 꽁꽁 싸매져서 품에 곰 인형인 양 끌어 안겨 있어야 했다.

해인은 거의 누에고치처럼 되었다.

안에서 꾸물꾸물 댔지만 시트 밖으로 손도 뺄 수 없었다.

“안 건드린다며!”

“밤에는, 이라고 했잖아? 지금은 한낮이고.”

“누가 낮에 자냐!”

“당직 서고 온 수의사.”

코앞에서 싱글싱글대는 그 얼굴을 확, 긁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본인의 말대로 워낙 잘나게 생겨서 긁기엔 아까웠다. 피라도 나면 미안하고.

해인은 고양이 모습이면서도 볼을 부르퉁, 하게 부풀렸다.

잠긴 문 정도는 사람으로 돌아가면 몇 번이든 열겠지만 사람으로 돌아가는 게 지금은 더 위험하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시율의 품에 잡혀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귀여워.”

“꺅?!”

촉, 촉 소리가 날 만큼 시율이 해인의 이마 위로 가벼운 키스를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흐왁, 하지 마! 느끼해!”

“너 모르는구나?”

“뭘?”

“애정표현은 원래 느끼한 거야.”

큰일이었다. 정말 큰일이었다.

이마 위로 입술을 문대는 녀석이 밉지 않아서, 정말 큰일이었다. 그게 애정표현이라는 걸 알자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더 큰일이었다.

그에게서 나는 비누향이 기분 좋아서, 큰일이었다.

시율이 해인을 가슴팍에 꼬옥, 하니 안고는 속삭여 물었다.

“언제쯤 사람이 되어줄래?”

“……안 될 건데.”

“내 품에 사람으로 이렇게 안겨준다면 참 좋을 텐데.”

“지금 내가 사람이었으면 넌 철컹철컹이야!”

경찰 아저씨 여기예요! 이렇게 소리칠 거라고! 지금 고양이 모습이라서 그나마 봐주는 줄 알아.

해인이 그렇게 투덜대자 시율은 낮은 소리로 웃는가 싶더니 꽉 안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대신 부드럽게 끌어안았는데, 해인은 힘이 약해졌는데도 여전히 도망갈 수 없었다.

“난 말이야, 여자 친구 말고는 없었거든.”

“뭐가?”

“이렇게 안고 잠든 여자 말이야.”

“……흥!”

얼굴도 모르는 그 여자들에게 질투가 난다면, 그게 더 큰일이겠지?

해인은 조금 더 반항했지만 결국 그대로 시율과 함께 침대 위에서 잠들고 말았다.

바로 옆에서 잠든다는 건 마음을 허락했다는 뜻이지만…… 어쩌겠는가, 잠이 오는 것을.

해인은 시율의 온기 속에서 꽤나 푹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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