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고양이의 능력
추위가 무르익어가는 가을.
태일이 출근하고 나면 해인은 시율을 따라 동물병원에 놀러 가고는 했다.
그곳은 이제 더 이상 두려운 곳이 아니었다. 제2의 집이나 다름없는 해인의 영역으로, 유일한 나들이 장소이기도 했다.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야 아무렴 덜 심심해서 종종 시율을 따라오게 된 것이다.
일단 병원에 도착하면 해인은 제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야옹이 안녕?”
“냐옹.”
해인은 자신을 개냥이라고만 부르지 않으면 종종 대답도 해주었다.
여기저기 알은척을 받아주기도 귀찮아지면 조용하고 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낮잠을 즐겼다.
그런데 오늘따라 병원이 시끄러웠다.
“미옹?”(신입인가?)
호텔 칸에서 나는 소리 같았는데, 개 한 마리가 하루 종일 끙끙거리며 울고 있었다.
늑대처럼 구슬프게 울 때면 병원 전체가 시끄러울 정도였다.
어떤 녀석이 이렇게 우는 거야? 그건 해인의 쾌적한 휴식을 매우 방해하는 일이었다.
“흐옹.”(저 녀석이군.)
해인은 호텔 방의 문가에 서서 문제의 녀석을 노려봤다.
맨 아래 칸의 특대형 철장안에 있는 녀석은 울음소리만큼이나 덩치도 컸다. 해인에게는 정말 산만 해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덩칫값도 못 하고 마치 하룻강아지처럼 징징거리고 있었다.
“끄응, 끙! 끙? 워우웅…….”
불쌍하게 바닥을 킁킁거리며 끊임없이 우는 이유인즉슨, 제 주인을 찾는 것이었다. 아마도 주인과 떨어진 게 이번이 처음인 모양이었다.
덩치만 크지 한 살도 안 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군.’
해인은 총총 새침한 걸음걸이로 커다란 개 앞으로 다가갔다.
“워웅?”
울먹이던 개는 처음 보는 생물이 다가오자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뒤로 물러섰다. 순 겁쟁이 같았다.
“미야옹.”(안녕.)
철장이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고는 해도 보통의 고양이라면 천적인 개한테 결코 이렇게 가까이 접근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해인은 서슴없이 다가가서는, 그 앞으로 엎드렸다.
뿐만 아니라 철장 안쪽으로 코를 조금 밀어 넣고 상당히 호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 행동은 너와 친해지고 싶다는 뜻이었다.
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해인은 이제 이 정도는 익숙했다.
“끄으응?”
게다가 동물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보니 이 덩치 큰 녀석이 제게 위험할지, 아닐지 정도는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울보 강아지는 당연히 후자였다.
해인이 잠시 그러고 철장 앞에 엎드려 있자, 울보 개도 해인의 앞으로 슬금슬금 몸을 낮춰 맞은편으로 엎드렸다.
각기 종이 다른 두 생물이 코를 마주 대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러는 동안은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무서워?’
‘……응.’
적어도, 해인에게는 그 일이 가능했다.
‘주인이 널 데리러 오지 않을까 봐?’
‘나 어제 혼이 많이 났거든. 놀아달라고 물어뜯은 게 있었는데, 누나가 아끼는 거였나 봐.’
‘아아, 그랬구나.’
‘그래서 여기에 두고 간 건가 봐. 데리러 오지 않을 건가 봐. 누나가 나보다 아끼는 걸 내가 망가뜨려서, 누나는 이제 내가 미워졌나 봐.’
그것은 언어가 없는 대화였다.
사실 대화보다는 감정의 교류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해 보였다. 슬픔, 걱정, 우울함, 후회 그런 것들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사람일 때는 차마 몰랐던 것들이었다. 동물에게도 이런 감정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건 아닐 거야.’
‘누나가 막 슬픈 얼굴로 갔는데도? 웃어주지 않았는데도?’
‘그건 너랑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런 거야.’
‘날 두고 어딜 갔는데? 집엔 언제 돌아가는데?’
눈앞의 개는 정말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해인은 고양이들보다는 개와 대화하는 게 훨씬 쉽게 느껴졌다. 녀석들은 솔직하고, 비밀이라는 게 애초에 없는 종이었다.
또한 고양이고 개고, 녀석들이 느끼는 건 언어나 생각보다는, 감정 그 자체였다. 본능적으로 마음을 느낀달까.
‘그건 모르지만, 얌전히 기다리면 반드시 돌아올 거야.’
‘정말?’
‘그럼. 여기 있는 아이들 모두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어. 착한 아이는 반드시 주인이 데리러 올 거야. 항상 그랬어.’
‘누나는 내가 미워서 버리고 간 게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누군가를 무작정 기다리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았다.
저를 길러준 사람의 손을 잃어버릴까 봐 겁을 내는 짐승들은 하나같이 엄마 잃은 아이처럼 슬퍼했다.
이들에게 주인이란 부모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울지 마.’
‘누나는 내가 부르지 않으면 봐주지 않는걸.’
‘지금은 멀리 있어서, 불러도 들리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네 주인은 너를 버린 게 아니거든. 잠시 여행을 떠난 거거든.’
그렇게 달래니, 어리고 커다란 개는 여행이란 게 어떤 건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인은 여행은 멀리 산책을 다녀오는 일이라고 알려줬다. 그러자 울보 녀석은 조금은 덜 시무룩해 보였다.
“끄응.”
달래주면서도 해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개라는 녀석들은 어쩌면 이렇게 맹목적으로 주인을 사랑하는 걸까.
말을 못 한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울지 않는다고 마음까지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산책이 너무 즐거워서 누나가 안 오면 어쩌지.’
‘날 잊어버리면 어쩌고?’
‘누나 냄새가 맡고 싶어.’
해인 자신이 지금 짐승에 가까워서일까. 사람의 모습일 때도 동물의 감정이 전달되긴 했지만 고양이 모습일 때가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금방 돌아올 거야. 착하게 기다리면.’
‘정말?’
‘그럼, 잘할 수 있잖아.’
‘응, 나 기다리는 거 잘해.’
해인은 철장 안으로 작은 손을 넣어 순한 녀석의 코를 두드렸다. 눈을 감은 개는 더 이상 슬피 울지 않았다.
납득한 걸까.
호텔 칸도 어느새 조용해졌다.
“어머? 울음을 그쳤네. 무슨 일이람.”
개가 더 이상 울지 않는 게 이상했는지, 수간호사 하나가 호텔 칸으로 들어왔다가 해인을 발견했다.
“개냥이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수간호사가 슬쩍 쫓아내기에 해인은 쪼르르 방을 나섰다. 병원의 평화를 찾았으니 다시 조용한 곳을 찾아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
“저 검은 고양이 요즘 자주 보이는데, 병원에서 기르는 고양이예요?”
“아뇨, 강 선생님 고양이예요.”
정확하게는 병원 수의사의 룸메이트의 고양이지만, 여기서는 대충 그렇게 통했다.
해인은 누가 제 이야기를 하자 로비를 지나가다 말고 그쪽을 바라봤다. 손님인 듯한 여자는 데스크 직원에게 괜한 오지랖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목줄 안 해줘도 돼요? 혹시 밖으로 나가기라도 하면…….”
“아, 강 쌤이 괜찮다고 하셔서요.”
“어휴! 그래도 짐승인데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전에 쌤이 일부러 문을 열어줬는데도 본 척 만 척 안 나가더라구요. 개냥이가 유달리 똑똑 하긴 하거든요.”
히익! 목줄이라니.
어떻게 그런 끔찍한 말을! 해인은 소름이 돋기 전에 두 여자의 시선을 피해 로비에서 냉큼 도망쳤다.
대체로 유순한 해인이 유일하게 격렬히 거부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목에 목줄을 거는 것이었다.
목줄은 이름표 역할도 하고, 주인이 있다는 표시이기도 해서 동물을 잃어버릴 경우에 대비해 필수적인 물건이긴 했다.
다만, 해인에게는 변신을 방해하는 ‘위험한’ 물건일 뿐이었다.
그런 걸 목에 걸었다가는 변신하다 목 졸려 죽을 게 분명했다.
고양이인 채로 목에 목줄이 걸리면 고양이 손으로는 그걸 풀 수도 없었으니까.
무서워, 무서워.
해인은 우다다 계단을 뛰어올랐다. 오늘은 아무래도 쉴 만한 곳이 없었다.
***
“미양~ 미양!”(열어줘~ 열어줘!)
해인이 최후의 쉼터로 고른 곳은 병원 옥상이었다. 그곳에는 호텔을 이용하는 개들을 풀어주는 간이 정원이 있었다.
지나가는 수간호사 하나를 옥상 문 쪽으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발목쯤에 이마를 문지르며 문을 열어달라고 졸랐다.
그 부비부비 어택에 인간들이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학습한 지는 오래였다.
해인의 관찰 결과, 고양이의 애교란 가뭄에 비처럼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아이참, 개냥아 요즘 추운데…….”
“먀아앙.”(내보내 줘.)
사람이었을 때는 애교와는 거리가 먼 해인이었지만 고양이로 살면서 원하는 것을 애교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에게 애교란, 살기 위한 기술 중 하나였다.
“아, 안 되는데…….”
해인은 그렇지 않아도 예쁜 황금색 눈동자를 크게 뜨며, 방울방울 울 것 같은 눈을 했다.
그러면 대부분의 수간호사는 치명적인 애교 어택에 견디지 못하고 항복을 선언했다.
“그럼, 잠깐만이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생각했던 대로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고, 해인은 냉큼 옥상으로 뛰어나갔다.
수간호사는 추워지면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문틈을 조금 만들어주고는 마저 가던 길을 갔고, 해인은 원하던 것을 얻어서 기분이 좋았다.
“냥냥~”(옥상 최고~)
고양이가 된 뒤로 사람을 이용하는 법을 터득한 해인이었다.
전에는 그림만 그렸던 사람이라 그런지 인간관계에 항상 어려움을 느꼈는데 말이다.
어쩌면 자신은 애완 고양이가 적성일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천성인 건 아닐까? 다시 사람이 되면 이제는 애교 넘치는 여자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기억만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전부 잊어버리게 될 거다.]
사신의 목소리가 떠올라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
해인은 애써 흥겨운 기분을 추스르며 볕이 잘 드는 야외 테이블 위로 뛰어올랐다.
[인간인 너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주술을 걸 거다.]
[한 가지 안배라면, 가족을 만날 수는 있게 해주마. 그들에게는 고양이인 너에 대해 말할 수 없을 터다.]
맞춤형 금언술까지 걸린 뒤로는 이유 없이 우울함에 시달릴 때가 많았다.
해인은 테이블 위에 앉아 저 멀리 풍경을 바라봤다.
사신의 말대로 어차피 잊어버릴 기억들이라면, 이렇게 겹겹이 쌓을 필요가 없을 것도 같았다.
나중에 잊고 나면 얼마나 마음이 공허할까. 이 기억들이 있던 자리가 얼마나 허전할까?
그걸 알면서도 알 수 없는 미련들이 해인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 고양이로서의 생활에 등 돌리지 못하게 말이다.
‘뭘까, 이 기분은?’
자신은 대체 뭐가 이렇게 걸리는 걸까. 다정한 태일? 아니면……
발정기 수컷처럼 저를 유혹하는 시율?
해인은 근래 들어 시율을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가슴이 꽉 막히면서 귓가가 간지러워졌다.
저도 모르게 심각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바람이 많이 부는데도 생각에 빠져 있었다.
***
시율이 옥상에 나타난 건 해가 질 무렵이었다. 해인이 여기서 뒹굴고 있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곧장 올라와서는 호통을 쳤다.
“야 인마, 너 어젯밤에 그랬겠다!”
해인은 짐승 특유의 감각을 살려 옥상에 저와 시율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걸 한 번 확인하고는, 새침하게 대꾸했다
“내가 뭘?”
“내가 잠든 사이에 태일이한테 갔잖아, 날 버리고!”
“당연한 걸 가지고 뭘 새삼.”
해인은 별것도 아닌 걸로 유난 떨지 마라 눈을 한 번 흘기고는 하던 일에 몰두했다. 해인은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아 발등을 핥고 발바닥을 핥으며 그게 기분 좋아 꼬리를 하늘하늘 흔들었다.
그 모양을 지켜보는 시율이 욱하고 만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새침데기를!
“어떻게 한 번을 안 봐주냐?”
“버릇은 잘 들여야 한다며, 네가.”
시율은 이를 으득, 갈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자신이 누누이 태일에게 강조하던 대사였으니까.
애완동물 버릇은, 확실하게!
그때는 제가 당할 줄을 꿈에도 몰랐겠지만.
애초에 해인은 길들이는 게 불가능한 지능의 소유자였다. 뭐든지 결국 제가 원하는 대로 했으니까.
“내 옆에서 한 번 자는 게 그렇게 어렵냐.”
“네 옆은 불편하단 말이야.”
“대체 어떻게 하면 편한데? 태일이처럼 벗고 자도 흥이면서.”
뭐랄까. 그런 거랑은 다르달까.
해인은 골똘히, 제가 시율의 옆에서 잠들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편하지 않다는 것 말고는 딱히 이유가 없었다.
시율의 옆에 누워 있으면 자신의 심장이 시끄럽게 콩닥대는 게 유난히도 거슬렸다.
“애초에 내가 왜 강, 네 옆에서 자야 하는 건데?”
“네가 그 녀석이랑만 자서 질투 나니까.”
대놓고 질투를 드러내는 남자치고 시율은 너무 당당했다. 어쩜 이리 뻔뻔하담. 해인은 혀를 내밀어 손을 핥다 말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집에 주인이 없어도, 너랑은 안 자.”
“왜?”
“그야 싫으니까!”
“그럼, 차라리 셋이 잘까?”
“……진심이야?”
시율이 진지하게 건의해서 해인은 몸을 단장한 것도 잊고 온몸의 털을 거꾸로 세웠다. 상상만으로 뭔가 이상해!
“거, 까다롭긴. 너 너무 태일이만 좋아하는 것 아냐?”
“그야 주인이니까!”
“주인이면 다 좋냐?”
“그리고 고마운 사람인걸. 좋아하는 감정 이전에.”
태일은 해인에게 있어서 고양이일 때의 주인이기도 하고, 은인이기도 하고. 아무튼 무한 호의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일단 시율과 달리 안전한 존재라 살아 있는 은신처 같달까? 해인은 스스로도 그렇게 납득했다.
“그럼 난?”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해인에게 시율이 눈썹을 뒤틀며 물었다.
살짝 심술 난 투였다. 그에 대꾸하지 않으려던 해인은 어젯밤에 내버린 게 조금 미안해 대답해주기로 했다.
“넌…….”
그런데 대체 뭘까, 저 기대에 찬 눈은.
해인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이며, 시율의 생각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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