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고양이의 흔적
“눈이 높으시네요. 저도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드는 작품입니다.”
“유명한 작갑니까?”
자신을 갤러리 주인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왠지 장사꾼 같은 기질이 있어 보였다.
“장래가 유망한 작가죠. 신진 화가인데 작품이 자주 나오진 않아요. 주로 외국 공모전에 출품해서 우리나라에선 아직 인지도가 다소 낮기도 하고요.”
“흐음.”
“하지만 분명 뜰 겁니다! 일본에서는 미술 잡지에도 몇 번 실렸거든요.”
아무리 아담한 갤러리라고 해도 전시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었다. 팔아야지 남기에, 주인장은 시율에게 그림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작가가 아뜰리에를 통해서는 종종 전시회를 엽니다만, 아직 개인 전시회를 연 적은 없습니다. 내후년쯤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니 투자하려면 지금이 적기인 셈이죠.”
“투자라…….”
“보시면 여류 작가 특유의 섬세함이 있지 않습니까? 감수성을 자극하는 호소력이 풍부하죠.”
“뭐랄까, 화려하면서도…… 솜사탕 같은 느낌이네요.”
“네, 어지러울 만큼 색이 많은 게 특징이죠. 그걸 이해하려면 부지런히 그림을 바라봐야 하니까 10년은 주인을 즐겁게 해줄 겁니다.”
갤러리의 주인은 해인의 그림을 두고는 온갖 칭찬을 다 늘어놨다. 반은 사실이었고, 반은 팔기 위한 감언이설이었다.
그건 화가 당사자인 해인에게 거의 고문이었다. 낯간지러워 죽을 맛이었다.
“사실 그림 쪽은 잘 몰라서요.”
“아아, 그림이란 게 사실 별거 없습니다. 자기 눈에 좋은 작품이 최고죠. 흔히 우린 한눈에 반한다고 하거든요.”
“뭔지 모르게 마음에 들긴 하네요.”
“아! 이 그림의 재밌는 부분은 말입니다. 보시면 이 부분은 터치가 아주 대범한데, 이 부분은 지극히 조심스럽거든요. 화가의 고뇌가 보인다고 해야 할까.”
흔히들 그림에 그린 사람의 성격이 나온다고 했다. 해인의 작품 역시 그림만 봐도 이 작가 꽤나 기분파겠구나, 하는 걸 알 수 있게 했다.
“우리 갤러리가 좀 소규모긴 하지만, 그래도 가진 것 중 꽤나 좋은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앞에 걸어놨겠죠.”
이건 정말이지 일기장을 들킨 기분이었다. 심지어 그 일기장이 품평되고 있었다.
해인은 손발이 오그라들어 사라지기 전에 어서 이곳을 탈출하고 싶었다.
“바로 그거죠! 그리고 이 작가의 경우 보통은 이 작품처럼 색을 많이 사용하는데요. 드물게 어두운 색채를 쓴 게 있거든요. 한 2, 3년 전 작품인데 마침 우리 갤러리에 있습니다. 한번 안쪽에서 보시겠습니까?”
“아, 네, 보고 싶네요.”
“그으아…….”
그거 흑역산데! 해인은 기괴한 소리를 흘리며 어떻게 해야 시율을 다른 곳으로 유인할 수 있을까 궁리했다.
냅다 달려가면 부랴부랴 쫓아오려나?
하지만 그러면 너무 수상한데. 이 남자는 눈치가 보통이 아니라, 어떻게든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넘겨야만 했다.
시율은 해인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손발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해인은 바삐 눈을 굴렸다. 빨리 시율의 관심을 돌려야만 했다. 뭐가 좋을까?
“가, 강!”
“왜?”
“우리……! 우리 저기 안 갈래?!”
긴장의 끝에서 해인이 필사적으로 가리킨 곳은, 평소라면 절대 먼저 가자고 할 리 없는 곳이었다.
시율이 혹해서는 두 눈을 반짝였다.
“……좋은데?”
“그치? 얼른 가자!”
해인은 얼른 다가가 팔짱까지 끼면서 시율을 그곳으로 이끌었다. 시율은 순순히 끌려갔다. 지금이 아니면 못 갈 것 같은 곳이었으니까.
***
그가 으슥하게 속삭였다.
“솔직히 말해보시지.”
“뭐, 뭘……?”
“너 그 화가랑 아는 사이 아니야? 혹시 그림을 그 사람한테 배웠다든가…… 전에 길러졌다든가.”
시율은 그 그림에 뭔가 있다는 걸 눈치채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해인이 그 화가 당사자라고는 여기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시율의 머릿속에서 해인은 인간의 범주에 속해 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정도 추리도 해인을 당황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모르겠는데 전혀, 무슨 소린지……?”
당황한 나머지 쪼오오옥, 하고 아이스티의 반 정도를 한 번에 들이켜고 만 해인이다. 그것도 빨대로.
시율은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사력을 다하는 해인에게 무언가 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더 파고들면 이 고양이가 난폭해질 거라는 걸 알았다.
기껏 달래두고, 기껏 환심을 사는 중인데 불안하게 만들면 오히려 제 손해였다. 시율은 오늘의 즐거운 데이트를 위해 압박은 이쯤 해두기로 했다.
지금은 충분히 즐길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인기가 좋네?”
시율은 자신과 해인이 마주 앉은 테이블 주변을 웃는 눈으로 훑었다. 둘은 지금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정확히는, 카페 안의 모든 고양이가 해인을 졸졸 따라다녔다.
“냐옹!”
“미야옹~”
해인이 궁여지책으로 시율을 이끈 곳은…… 근처의 캣 카페였다.
고양이 카페, 고양이가 있는 카페. 한때 유행했던 애견 카페의 고양이판. 커피를 먹으며 고양이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곳.
보통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지만, 해인에게는 참으로 의미 없는 곳이었다.
본인이 고양이였으니까.
“……별로 달갑지 않은 인기야.”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기껏 도망친 곳이 고양이 굴이라니. 제가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었다.
가장 희한한 것은 해인이 고양이의 모습으로 떠돌 때는 그리 박정하게 굴던 고양이들이, 해인이 사람의 모습으로 앉아 있자 너도나도 구경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굉장해. 고양이들이 다 너만 쳐다봐.”
“냐냥?”
“먀옹, 먀옹.”
확실히 기묘한 일이었다. 각기 종이 다른 고양이들은 어리건 늙건 하나같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해인만 바라봤다.
‘너 누구야?’라는 호기심 가득 찬 눈이라니.
“얘들은 내가 재미있나 봐.”
해인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 녀석들 짐승은 짐승인지 제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끼는 모양이었으니까.
괜히 여기로 도망쳤나 싶었다.
하지만 주술의 효과까지 더해진 건지, 그 그림에 맹렬한 거부감이 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 바라보는 것조차 숨이 막혔다.
금기라도 범하는 기분이라 자꾸만 식은땀이 흘렀다. 사신의 주술은 역시나 강력했다.
“……슬슬 나가면 안 되겠지?”
“무슨 소리야. 우린 방금 들어왔는데. 난 커피 한 모금밖에 못 마셨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친 곳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부담스러울 만큼의 관심을 받고 있질 않은가.
캣 카페의 고양이들은 본래 사람 손을 많이 타서 낯을 가리지는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손을 많이 타는 만큼 먼저 다가가는 일이 드물었다.
누가 만지면 귀찮아하며 달아나는 게 고양이였다.
그런데 해인이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고양이들은 일제히 코를 벌름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졸졸졸 해인을 따라다녔다.
해인이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에는 그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둘러앉았고, 결국 해인은 사람들의 시선도 받아야 했다.
“먕- 먕-”
그것은 ‘놀자, 놀자’는 뜻으로 고양이들은 해인에게 상당한 호의를 보이는 것이었다.
해인으로선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은 상황이었다. 동족의 모습일 때는 그렇게 경계하더니, 인간일 때는 왜 재미있어하는 걸까.
그나저나, 고양이가 몸을 비비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할 땐 몰랐는데 받아보니 제법 좋았다.
“미양!”
온몸과 등허리, 꼬리를 이용해 해인의 다리를 연신 휘감는 어린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녀석은 계속 안아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결국 요청대로 안아 들고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더니, 시율이 문득 감탄했다.
“고양이가 고양이를 안고 있네.”
“지금은 사람이다, 뭐.”
“그야 그렇지만.”
확실히 시율의 눈에는 기이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생각하는 해인의 본질은…… 고양이니까.
“……강.”
“응?”
어린 회색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폭신한 그 털 사이에서 시선을 고정한 채 해인은 천천히 입술을 떼어냈다.
내심 궁금했던 일이 있었다. 한 번쯤은 시율에게 제대로 물어봐야지 했던 것.
“너는…… 내가, 고양이지만 사람으로 변할 수 있어서…….”
“있어서?”
“그래서 날 좋아하는 거야?”
어렵게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맞췄다.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긍정의 기색을 보인다면 해인은 이제 시율에게 흔들리거나,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아니, 전혀.”
“……그럼?”
하지만 시율은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런 건 전혀 상관없다는 듯.
“말도 안 되는 발상이야. 흥미로운 거랑 사랑은 전혀 다른 감정이니까.”
“하지만 강, 너는…… 나를 재미있어했잖아.”
“처음엔 그랬지.”
시율은 어느새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웃음기 없는 목소리였다. 그저 진심일 뿐인.
“네가 너를 사랑할 수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말이야.”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 어려운 단어였다. 항상 근처에 들리는데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 같았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 대상이 되어서, 해인은 혼란스러워졌다.
적어도 이제는 시율이 저를 좋아한다는 건 알았다. 그 마음에 거짓은 없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두려웠다.
그 마음이 짙은 흥미와 호기심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재밌어 보여서 단순히 갖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었다.
“나도 내 마음이 단순히 흥미라고 여겼을 때가 있어. 쉴 새 없이 네가 떠오르고, 너를 보면 심장이 뛰고 기분이 이상해져서…… 분명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말이야.”
“…….”
“네가 나를 보고 웃어주길 바라게 됐어.”
그는 마치 부드럽게 주장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너를 사랑한다고, 내 감정은 이렇게 분명하다고. 해인이 그것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도록 말이다.
“네가 내게 키스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꿈을 꿨어. 네가 태일이를 보면…… 나는 화가 나게 됐지. 그건 명백하게, 사랑이잖아.”
뭐가 이리 당당한지.
해인은 남자에게 고백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모두가 이렇게 당당하고 강력한 태도로 말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도리어 해인이 할 말을 고르지 못하고 있는데, 시율이 테이블 위로 몸을 숙이며 손을 뻗어 왔다.
“난 네가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랬다면 우린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누, 누가 누굴 사랑한다고……?”
느리게 다가온 손이 아기 고양이를 쓰다듬는 해인의 손을 움켜쥐었다. 시율의 손은, 너무 커다랬다.
“적어도 그렇다면 네가 날 거부할 궁리만 하지는 않을 것 아니야.”
그 손이 제 손가락 사이로 꽉, 깍지를 끼며 붙잡는 모양을 해인은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이 손에도, 목소리에도 어쩐지 천천히 옭아매지는 기분이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는 건…… 너는 몰라도 나는, 네가 무엇이든 상관없을 만큼 너를 원한다는 거야.”
흐릿한 의식 사이로 생각했다.
이성에게 사로잡힌다는 게 바로 이런 걸까? 해인은 자신이 마치 나약한 사냥감이 된 것 같았다. 시율은 분명 노련한 맹수 같은 사내였다.
그가 원한다면 붙잡힐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꼼짝없이 사로잡힌 듯했다.
“사실 네가 무엇이든 그건 이제 내게 중요하지 않아. 그 마음이 분명하지 않았다면 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을 테니까.”
“뭘…… 시작했는데?”
“알잖아. 나는 지금, 너한테 구애를 하고 있는 거야.”
해인은 지금 제 심장이 말을 듣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눈앞의 남자 때문이었다.
꽉 쥐어진 오른손이, 몸에서 가장 민감한 곳이 되어버렸다.
***
달칵.
막 잠이 들었던 태일은 자신의 침실 문이 열리는 기척에 눈을 떴다.
원체 잠귀가 밝은지라 그는 작은 소리에도 곧장 잠에서 깨어났다. 태일은 잠결에도 이 방에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게 시율밖에 없다는 걸 떠올렸다.
그럼 이건 시율이 형 아니면 도둑이겠군.
“…….”
태일은 아직 약간 몽롱한 채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 시율이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열고 들어와, 발소리를 죽이며 자신의 침대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형?”
태일이 오른 팔뚝으로 상체를 슥, 하니 일으키자 슬금슬금 접근하던 시율이 손을 뻗은 채로 멈춰 서는 게 보였다.
그는 들켰음에도 태일만큼이나 태연한 기색이었다.
“아, 깼구나.”
“무슨……?”
태일의 물음은 잠기운이 그득했다. 그에 조용히 해인만 집어 갈 생각이었던 시율은 낭패감을 느꼈지만 그런 걸 내색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여전히 무표정한 채로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마저 내밀어 태일의 맨가슴 앞까지 뻗었다.
목표물이 거기 있었으니까.
물론 시율은 아무리 멋들어진 가슴팍이라도 해도 남자의 가슴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 녀석 좀 잡아가려고. 마저 자.”
몸이 공중으로 들려지자 잠들어 있던 까만 고양이가 부스스 눈을 떴다.
조도가 낮은 어슴푸레한 실내에서 그보다 더 새까만 털을 가진 것이, 보석 같은 금색 눈을 깜빡였다.
흐리멍덩한 눈에 초점을 잡아가며 잠꼬대를 했다.
“므아앙……?”(뭐야아……?)
침대 위의 태일은 항상 그렇듯 시트를 둘렀다고 해도 반나체였다.
그리고 그 탄탄한 가슴팍에 익숙하게 기대 잠들어 있는 해인은, 시율에게 꽤나 야속한 존재였다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가슴팍을 빌려 자는 모습은 정신건강에 아주 해로웠으니까.
시율은 해인을 납치해 떠나기 전에 태일에게 당부했다.
“……아!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마라. 정말 이쪽에 볼일이 있는 거니까.”
“무슨 오해 말입니까……?”
뒷머리를 긁적이며 태일이 되물었다. 말한 시율이 어색하게도 정말 모르겠다는 듯 말이다.
시율은 역시 이 집 안에서 자신이 가장 음험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해인과 시율의 사이를 의심하진 않더라도 하다못해 잠든 자신의 침대에 침입한 사람에게 ‘혹시 날……?’ 하고 한 번쯤 의심할 만도 한데 말이다.
“우갸갹!”(안 갈 거야!)
“쉿.”
“캬악, 캭!”(납치범이다!)
해인이 고양이의 사지를 이리저리 틀어보며 울어댔으나 인간 남자의 힘에는 하등 소용없었다.
결국 해인은 시율의 방으로 잡혀 가고 말았다.
“나랑도 좀 잘 수 있잖아!”
“크아악!”
“고양이라도 좋다고!”
거의 애걸이었고, 해인은 결국 도망칠 수 없었다.
하지만 납치범이 잠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태일과 달리 시율은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몰랐다. 그저 자신이 해인을 납치해온 데 만족해 꽉 끌어안고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품에서 해인이 다시 빠져나가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해인은 시율이 잠들자마자 냉큼 그 품에서 빠져나왔다.
총총걸음으로 다시 태일의 방으로 돌아가 그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매트리스가 아주 조금 출렁였다.
“먀옹.”(나 왔어요.)
그리고 그 작은 흔들림에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태일은 자신을 향해 반짝이는 금색 눈을 발견했다.
잠결에도 태일은 시트를 들춰 품을 내줬다.
엎드려 자는 그의 가슴과 시트 사이 가장 따듯한 곳, 갈비뼈와 허리 사이. 해인은 그곳으로 기다렸다는 듯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다.
태일은 해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하품이 섞인 나른한 투였다.
“개냥아…… 형이랑도 자주고…… 그래…… 응? 착한 아이잖아…….”
사실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 해인이 기특하기도 한데 매번 거부당하는 시율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잠은 편한 곳에서 자고 싶었다. 시율이랑 침대에 있으면 이상하게 눈이 초롱초롱했기 때문이다
역시 태일이 최고 편하지.
해인은 몸을 둥글게 말고 골골대며 잠을 청했다.
시율은 해인이 빠져나간 걸 아침에야 비로소 알아챘다.
“이 치사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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