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양이 키스-29화 (29/114)

29화. 고양이, 데이트하다

현관문을 연 태일은 웬일로 시율의 방에서 나오는 개냥이를 봤다. 방방 뛰며 토끼처럼 폴짝 뛰어오는 검은 고양이.

온몸으로 자신을 반겨 절로 미소 짓게 하는 그 동물.

“냥아.”

“먕!”(왔어요!)

해인을 안아 드는 것까지는 좋았다. 평소와 같은 귀가 풍경이었다.

왠지 오늘따라 몸이 차갑다는 것과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헥헥거리며 바삐 숨을 내쉰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유난히 크게 뛰는 심장박동도 이상했다. 혼자 백 미터 달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오늘은 뭘 하고 놀았는데? 착하게 굴었니?

눈으로 그렇게 물으며 태일은 해인을 자신의 어깨 위로 올렸다. 그러곤 거실을 지나며 최근 습관이 된 귀가 인사를 했다.

“형, 저 왔어요.”

그사이 해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간발의 차였으니까.

제 발로 가출하고 제 발로 30분도 안 되어서 귀가한 건 너무 창피한 일이었지만, 태일보다 반드시 먼저 집에 와 있어야만 했다.

안 그랬다가는 이래저래 복잡해질 테니까.

“이상하다? 오늘 오전 근무라고 하셨는데, 안 계시네.”

급히 돌아온 집에 시율은 없었다. 아마도 밖에서 여전히 해인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해인은 양심이 찔려서 괜히 손바닥을 열심히 핥기 시작했다. 날도 추운데 이 남자는 대체 어딜 헤매고 있는 걸까.

***

시율이 돌아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태일에게 전화가 오나 싶더니, 집이라는 소리에 개냥이가 있냐고 물었다.

‘개냥이요? 당연히 같이 있죠.’

당연한 것을 묻는 시율에게 태일은 의아해하며 대답했고, 시율은 더 길게 묻지 않고 자신도 귀가했다.

해인은 덜덜 떨며 돌아온 시율의 집요한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난 분명 기다렸다고.

“에취!”

“형, 감기 걸리신 것 같은데요.”

“그러게…… 오늘부터 추워진 것 같네.”

“아, 캔 커피라도 드실래요? 아직 조금 따듯한데.”

“웬 거냐?”

시율은 태일이 재킷 주머니 속에서 꺼내는 캔 커피 두 개에 의문을 표했다.

그건 태일이 해인과 먹으려던 커피였다. 주머니 속에 넣어뒀더니 아직은 조금 따듯했다.

“그냥 샀어요.”

“두 개를?”

“어, 네. 그냥.”

태일도 누구처럼, 거짓말에는 아무런 재능이 없는 남자였다. 그는 해인이 오빠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던 게 생각나 적당히 얼버무렸다.

“……이상한데?”

반면 시율은 눈치가 구단인 남자였다.

집에 뻔히 커피포트가 있는데 밖에서 캔 커피를 사와? 받아 든 커피가 아직 따듯한 걸 봐서는 누구랑 먹으려던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혹시? 하는 눈으로 해인을 봤으나 해인은 지금 시율과는 눈도 안 마주치는 삐짐 상태였다.

몰래 키스하다 들켰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주 살짝 한 거라 안 들킬 거라고 여겼는데, 해인은 고양이는 고양인지 엄청 예민했다.

거의 입술이 닿자마자 눈을 뜨더니,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집을 뛰쳐나갔다.

그건 시율에게도 나름 충격적인 일이었다. 내가 그 정도로 싫은 건가.

“집에 오니까 이 녀석이 반겨주던?”

“그렇죠. 평소처럼?”

사과하기 위해 찾으러 나갔더니 이 고양이는 생각지도 못하게 먼저 집에 돌아와 있었다.

큰소리치고 뛰쳐나가기에 절대 제 발로는 안 들어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단순히 태일의 귀가 시간이 되어서 돌아온 걸까?

“캬캭!”(뭘 봐!)

“흐으음.”

아무튼 이 고양이는 사람 걱정시키는 게 특기였다. 툭하면 없어지고 숨고, 도망치고.

시율은 제법 오랜, 그간의 관찰 경험으로 보건대 해인이 삼사 일은 저렇게 삐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기분 좋게 총총, 걷고 있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이 고양이는 상당한 기분파라, 즐거운 일이 있으면 금세 신 나했으니 말이다.

***

10월 5일, 그날은 태일이 소속되어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창립기념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배우부터 가수, 모델이며 코디나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이 방면에서 한가락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초청되었다.

해인은 오늘 그곳에 포토그래퍼 태일의 파트너로 참가했다. 전에 시율이 주선한 바로 그 데이트였다.

“나, 나 실수하면 어떡해?”

화가로 초대돼서 전시회 오프닝이나 작은 파티에는 몇 번 가본 적 있어도, 이런 연예인이 오는 본격적이고 호화로운 파티는 처음이라 해인은 자꾸만 떨렸다.

“이것만 기억해.”

“뭔데?”

“가만있으면, 반은 간다. 따라 해봐.”

“가만…… 있으면 반은 간다!”

“그래, 그래. 모르면 입 꾹 다물고 구석에만 서 있어도 반은 가. 긴장하지 말고 잘 구경하다 와. 재밌을 거야.”

해인은 시율이 조달해온, 진주가 장식된 살구색 원피스를 입고, 역시 시율이 골라온 메리제인을 신었다.

시율이 건네준 비상금 카드까지 쥐고 나니, 첫 소풍 가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시율은 남의 데이트인데도 꽤나 살뜰하게 챙겨줬다.

예쁘고 꾸며줬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상한 것 먹지 마라, 나 같은 사람 쫓아가지 마라, 화장은 안 해도 된다, 립스틱은 이걸 발라라.

별걸 다 거들려고 들어서 결국 립스틱은 시율이 발라줬다. 이 남자는 대체 이런 걸 어디서 구해오는 건지.

“나 이제 갈게!”

“그래, 뛰지 말고. 넘어진다, 너.”

해인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태일이 기다리는 정류장으로 뛰었다.

아무리 여자는 좀 늦어도 된다지만 이미 약속 시간에서 20분이나 오버한 차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태일이 나가야 해인이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

해인은 태일의 차가 멀리 보이자 더 서둘렀다.

운전석 시야가 높은 남색 지프는 해인이 뒤꿈치를 들어야 겨우 얼굴이 창에 걸쳐질 정도였다.

조수석의 창가에 빠끔히 매달려 안을 보다가…… 잠시 기다리다가, 유리창을 두들겼다. 태일이 뭔가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똑똑.

“……아, 시연 씨.”

응? 누구? 아! 나!

해인은 태일이 차에서 내리며 부르는 이름에 잠시 멍했다가, 그게 시율이 지어준 자신의 가명임을 반짝 상기했다.

태일이 그렇게 부르면서 보는 건 분명 자신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내려서 기다렸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제가 늦어서 죄송해요.”

조금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공공장소에서 사람으로 있는 것도 어색한데 심지어…… 태일과의 데이트라 어쩔 수 없이 부끄러워졌다.

“전 괜찮습니다. 휴대폰이 고장 났다고 형이 그러던데요. 불편하시겠어요.”

“네…… 하필, 이럴 때.”

“제가 모시러 갔어야 했는데, 이쪽으로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게 길도 안 엇갈릴 것 같아서요. 제가 이쪽을 잘 알거든요. 친구가…… 살아서.”

해인은 데이트 날이 정해진 다음부터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시율과 미리 입을 맞췄다. 나중에 서로 이야기가 틀리면 이상하니 말이다.

한편, 자꾸만 시선을 회피하는 해인을 태일은 낯가림이 있는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그리고 전에는, 그냥 가서 정말 죄송했어요.”

“그럴 수도 있죠. 개의치 마세요.”

“……너무 창피해서 그랬어요.”

“이해합니다. 그보다 슬슬 출발해야 파티 시간에 맞출 것 같은데…….”

태일이 조수석 문을 열며 에스코트했다. 해인은 태일이 내미는 손의 끝을 겨우 붙잡으며, 배시시 웃었다.

차에 오르기 전에 해인이 웃자 태일도 따라 방긋 웃었다.

그렇게 서로가 먼저 웃음을 거두길 기다리다가, 해인 쪽이 먼저 뺨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어색해!

“조심하세요. 차체가 조금 높아서.”

“네, 네네.”

확실히 치마를 입고 타기에는 상당히 높은 차였다.

해인은 태일의 손을 좀 더 크게 움켜잡으며 조수석에 오르기 위해 용을 썼다. 키가 작다 보니 더 수월치가 않았다.

정말로 낑낑대야 했다.

태일의 외제차는 해인의 허리와 차의 발치가 거의 비슷했다. 바퀴는 왜 이리 커? 바퀴를 밟고 올라가야 하나?

“으엄…….”

태일은 해인이 그 격식 차린 차림으로는 혼자 차에 탈 수 없음을 판단했다. 그래서 가만히 손을 뻗어 가느다란 허리를 받쳐 쥐었다. 살며시.

“실례.”

“아.”

그러고는 가뿐하니 해인을 들어 올려 조수석에 앉혔다. 사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행동이었고, 그저 몸에 밴 매너의 산물이었다.

해인은 발이 땅에서 떨어지자 순간 본능적으로 숨을 참아 허리 사이즈를 줄였다.

그 와중에도 너무도 가볍게 자신을 드는 태일에게 놀랐다.

태일 역시 여자의 가벼움에 놀랐다.

가늠한 것 이상으로 상대가 가벼울 때 흔히 느끼는 그 깃털 같다는 체감. 가늘고 유연한 여자의 허리가 주는 부드러움.

해인은 허리 부근이 왠지 얼얼했고, 태일은 손바닥 안이 간질거린다고 생각했다.

눈만 마주쳐도 부끄러운 얼굴로 웃는 해인이. 그는 어쩐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

꽤 호화로운 파티가 될 거라는 건 짐작했었다.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10주년 창립파티라 특별히 호텔을 대관했다고 했을 때부터 말이다.

음식은 마실 것만 몇십 가지가 넘었고,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백조얼음조각이 중앙에 크게 놓여 있었다.

오케스트라도 보였다. 화려한 초대객을 위한 호화로운 파티장. 어딘가 기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우와아…….”

“확실히, 이번 파티는 성대하네요.”

“정말 굉장해요!”

해인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예술품에 가까운 샹들리에에서 특히 눈을 떼지 못했다.

아름답게 차려입은 사람이 홀 안에 가득 있었다. 중간중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도 연예인 같았다.

“대표님이 사업 확장에 보기 좋게 성공해서. 올핸 그 성공 잔치도 겸한 겁니다.”

“아아!”

“원랜 회사 옥상에서 출장뷔페를 부르는 정도였거든요.”

“그것도 좋네요.”

“그렇죠? 저는 이런 것도 좋지만, 그냥 맥주나 먹는 그릴 파티가 더 좋더군요.”

“고기는 진리죠! 햄도 좋고! 소시지도 좋아요!”

“푸핫.”

둘은 모르고 있었지만, 남들이 보기에 태일과 해인은 참으로 풋풋하니 귀여운 커플이었다.

키가 훌쩍 큰 태일과 그 바로 곁에 서 있어서 가끔 완전히 모습이 가려지고는 하는 아담한 해인.

연신 종종거리며 작은 걸음으로 잘도 돌아다니는 해인과, 보호하려는 것처럼 바짝 쫓는 태일.

특히나 해인이 해사한 얼굴로 부끄러움을 타는 모양은, 파트너인 태일만 없었다면 필시 남자가 꼬이겠다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며 그저 사부작 웃는 해인은, 분명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천진하게 상대를 무너트리는 해사함이 있었다.

본디 그걸 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훤히 보이고 있었다.

그 호의 가득한 미소가 태일을 향하는 동안은 사방에 드러나 버리니까. 볼수록 사랑스러운 사람이 정말 있다.

태일이 하은 외에 동행한 여자는 처음이라 호기심에 한 번, 그다음에는 귀엽게 느껴져서 또 한 번, 해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참석자는 제법 많았다.

“어머, 귀여운 아가씨를 데려왔네?”

“황 코디님! 잘 지내셨어요?”

“나야 완전 바빴지.”

“아, 그러고 보니 요즘 중국에서 활동하신다고…….”

“그나저나 태일 씨 애인이야? 피부 완전 애기 같다. 미성년자는 아니지?”

태일이랑 있을 때면 특히나 얼굴이 잘 빨개지는 해인은, 이쪽 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순진해 보이는 아가씨였다.

“감사합니다…….”

“난 부끄러움 타는 사람 좋아해. 물론 일반인일 때.”

“하하.”

“귀엽잖아. 이 아가씨 이쪽 사람 아니지?”

“예, 그냥 일반인이에요.”

둘은 은근히 주변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지만 둔한 편이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해인은 중간부터 사람들이 계속 말을 걸자 바짝 긴장해 있었고, 태일은 그런 해인을 보호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계속 말을 걸어서 둘은 구석으로 피신했다.

“정신없죠?”

“그러게요. 태일 씨를 아는 분이 많네요.”

“뭐, 이쪽에서 오래 일했으니까요. 그리고 뭔가 먹어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파티라는 게 기력이 빨리는 곳이라.”

해인은 확실히 슬슬 목이 말라왔다.

태일이 때마침 웨이터에게 건네받은 마실 것을 권했지만 그건 아무리 봐도 술이었다.

취할 게 분명해서 거절한 해인은 대신 조각 케이크 몇 조각을 집어 와 하나씩 포크로 찍어 먹었다.

그러다 입술에 크림을 묻혀서 혀로 할짝이고, 손끝에 묻어서 쪽, 하니 입안에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요즘 들어 도구를 쓰는 걸 자꾸만 까먹었다.

“앗.”

그러다가 태일과 눈이 마주쳐서 얼굴을 한껏 붉히며 발그레하게 웃는 얼굴은, 누구더라도 심장이 이상이 올 만큼 위력적인 것이었다.

부끄러워하는 여자의 미소가 가져오는 건 잔잔한 파괴라, 보호자 기분에 빠져 있던 태일도 움찔거리게 했다.

그는 문득 목이 간지러웠다.

“태일아, 여기 있었구나!”

“……하은아.”

구석에서 쉬고 있는 둘을 찾아온 건 하은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태일과 파트너로 파티에 참석했었지만, 올해는 진지하게 만나는 상대가 있어서 그 남자와 온다고 했다.

같이 다가오는 바로 저 남자인 게 분명했다. 키가 태일만큼 크고, 몸도 태일만큼 좋았다. 해인의 눈에는 태일이 더 멋있어 보였지만 말이다.

“소개할게, 이쪽은 내 남자 친구인 태준 씨.”

“안녕하세요. 서태준입니다.”

“신태일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하은은 확실히, 평소 집에서 보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뻤다.

아주 고급스런 드레스를 입고 시선을 빼앗는 화려한 귀걸이와 목걸이를 했다. 그리고 그 화려한 것들 사이에 묻히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이쪽은?”

“내 파트너, 강시연 씨.”

“아아, 어떻게 만난…… 사람인데?”

여자와 여자가 만나면 일단 서로를 물색하는 법이었다.

해인은 하은이 저를 빠르게 살펴보는 걸 느꼈다. 그리 기분 나쁜 눈길은 아니었지만 움찔하기에는 충분했다.

“같이 사는 형님의 여동생이야.”

“아아, 그렇게도 인연이 되는구나. 반가워요! 난 이하은이에요.”

“전…… 강시연이에요. 안녕하세요.”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박해인’이라고 소개하려던 해인은, 목이 졸리는 느낌에 말을 바꿨다. 사신이 건 금동술은 훌륭했다.

무의식으로도 저를 내보이는 걸 불가능하게 했으니까.

“둘이, 잘됐으면 좋겠다.”

“그런 사이 아냐.”

“에이 네가 여자 데려온 건 처음인데? 이렇게 딱 달라붙어서 마크하고.”

“형님 여동생이니까.”

키가 월등히 큰 남녀 셋 사이에 묻혀 있자니 해인은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대는 기분이 들었다. 괜히 위축이 되었다.

“……참! 오늘 너한테 처음 말하는 건데. 나 결혼해, 이 사람이랑.”

“결혼?”

“응, 이제 우린 약혼한 사이야.”

하은이 인파를 헤치고 찾아온 이유가 그것이었나 보다. 자신의 약혼자를 소개하기 위해서.

“프러포즈 받은 지 얼마 안 됐거든. 그래서 아직 부모님들한테는 말씀 못 드렸어.”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하은은 자신의 파트너에게 팔짱을 껴 보였다.

해인은 속으로 내심 놀라며 태일의 동태를 살폈다. 하지만 태일은 짐작하던 일이라서인지 그리 놀라지 않고 있었다.

“그렇구나.”

“응, 우리가 만난 지 벌써 2년이 다 돼가더라고.”

“그럼 그럴 때도 됐네.”

시율이 차갑게 냉정하다면, 태일은 온화하고 차분하게 평정을 유지하는 타입이었다.

태일은 분명 미약하지만 웃어 보이고 있었다.

“내 나이도 서른이 넘었고,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얼른 준비 시작하려고. 아, 내 웨딩화보는 네가 찍어주기다? 예전에 약속했잖아.”

“……그래야지.”

“너만 믿는다? 그럼 나 저쪽에도 인사하러 가볼게. 오늘 바쁠 것 같아.”

하은이 실컷 제 할 말을 하고 떠난 뒤, 태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해인도 입술을 꾹 깨물고 바닥만 쳐다봤다.

왜 자신이 다 참담한 기분인 걸까? 제가 이런데 태일은 오죽할까?

오랫동안 짝사랑한 친구가…… 아니 여자가 결혼을 하는데 웨딩화보를 직접 찍어줘야 하는 처지라니.

그건 아주 끔찍한 기분이 아닐까?

“이런, 그러고 보니…… 축하한다는 말을 깜빡했네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는데.

태일이 웃음이 섞인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을 때 해인은 왠지 제가 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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