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고양이의 알 수 없는 선물
태일과 기도가 밤샘 촬영을 하러 떠나고, 집에 남은 건 그 동거인과 동거묘뿐이었다. 그리고 동거묘는 아직 사람의 모습을 한 채로 씩씩대고 있었다.
펄쩍! 뛰며 시율에게 악을 써댔다. 여차하면 사납게 덤벼 물어뜯을 태세였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싫다고 했잖아?!”
“뭐가 문제야? 어차피 소원하던 거잖아. 신원도 생겼겠다. 한번…… 만나봐.”
“우으이잉……! 왜 다 네 맘대로인데?! 이…… 이 개 같은 놈! 개야! 개! 똥개야!”
둘만 남은 집이니 해인은 거칠 것 없이 할 말을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욕을 하며 힘껏 소리치고 따져들었으나, 시율은 그 기력이 아까울 만큼 여유롭기만 했다.
그저 한가로이 CD를 고르고 있었다.
유난히 해인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것이 오히려 함정인 것도 모르고 해인이 쿵쾅거리며 다가가, 시율이 ‘유심하게 보는 척’ 목록을 읽고 있는 CD를 빼앗아 들었다.
제 발로 파고든 그 간격, 반걸음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이 바보 똥개야! 말 좀 해봐!”
옷깃이 닿는 거리.
너무도 가까웠으나 해인은 시율의 그 노련한 수에 자신이 빠져들었음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왤 것 같아?”
시율이 손을 뻗어 자신의 허리를 휘감기 전까지는.
그건 엄청나게 나른한 손길이었다. 뜨악, 해인의 눈이 황망하니 커졌다.
“……이, 이거 안 놔?”
“내가 왜 싫다는 너한테 그 녀석과 데이트를 주선해줬을까?”
시율의 손이 버둥거리기 시작한 해인을 부드럽게 사로잡았다.
그러고는 몸을 바싹 붙이더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한결 좁혀왔다.
그제야 자신이 포박됐음을 알아챈 해인이다. 함정에 빠졌음을.
도, 도망쳐야 하는데. 이건 맹수의 아가리 속인데.
요즘 시율이 접근해오지 않아서 방심했다. 그것 또한 계획의 일부였는 줄도 모르고!
“가, 갑자기 안 궁금해졌어!”
데이트의 이유?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 품에서 놔주기만 한다면!
해인은 열심히 바둥거렸다.
작은 손으로 시율의 소매를 움켜쥐어 그와 멀어지려 했으나 시율은 그 손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시율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이 녀석이 왜 이러나 싶어 해인은 입을 쩍, 하니 벌렸다가 얼른 손으로 막고 다물었다.
왠지 또 키스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시율이 낮게 웃으며 귓가에 속삭여왔다. 어른 남자의 낮고 깊은 저음이 해인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녀석과 데이트해……. 그리고, 나와도 하는 거야.”
시율이 손으로 더 가까이 해인의 몸을 제게로 끌어갔다. 길고 큼지막한 팔뚝이 얇은 허리를 틀어쥐었다.
“비교하고…… 나를 골라. 내가 더 사랑해줄게.”
“……뭐?”
“자신 있거든.”
귓가에 바짝 붙은 시율의 음성이 너무나 감미롭게, 너무도 부드러워서 오히려 오싹하게 변해갔다.
귓가에 키스하나 싶었던 시율의 숨이 귓바퀴 속으로 파고들자 해인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엄마야!
“꺄아악?!”
난생처음 당하는 밀도 높은 접촉에 해인이 고개를 들며 비명을 내질렀다.
이게 대체 뭐야? 하는 의문을 두 눈 가득 담은 채 말이다.
태어나서 이런 어른의 스킨십을 당해볼 일이 어디 있었어야지. 품에 끌어안은 채 귓가에 하는 키스라니!
그뿐인가? 귀 안에 혀가…… 혀가…….
“흐와와……!”
그 친밀함이 주는 생경함에 다시 한 번 비명이 터져 나왔다. 쉴 새 없이 제멋대로 또 이상한 소리가.
바보 같아 보인다는 걸 아는데도 너무 놀라 잘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게 익숙하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풋사랑 비슷한 연애놀이 한 번 한 것이 연애 전적의 전부인 해인이었다.
그러니 이 사태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반면, 시율은 능숙하다 못해 치명적인 스킬을 가진 타입이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이 녀석 선수인 게 분명해!
“더럽게 뭐 하는 거야!”
“풉. 그런 거 따지면 키스는 어떻게 하냐?”
“꺄악!”
시율이 이번엔 귓가를 핥았다. 둥근 귀 모양을 천천히. 해인으로서는 이런 짓을 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털 고르냐?
왜 자꾸 간지럽게 하는 거야?!
결국 해인은 펄쩍 놀라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손으로 제 귀를 덮으며 꺅꺅거렸다.
“뭐야, 왜 사람 기분 나쁘게 비명을 지르고 그래. 응?”
울상을 하고는 어찌할 바 몰라 쩔쩔매는 소형동물은 귀여운 법이다.
시율이 전혀 불쾌해 보이지 않는 음성으로 속삭이며 가느다란 목덜미에 키스했다. 점점 입술이 내려가 해인의 어깨 위에 닿았다.
그는 사랑스러운 생물일수록, 괴롭히고 싶어 하는 고약한 성미가 있었다.
“아우…… 아, 우!”
그런 인간이 저를 놀려대고 있으니 해인으로서는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해인은 놀란 눈을 하고는 입만 벌렸다 다물었다를 반복했다. 얘가 나한테 왜 이러는 겨.
“말로 해, 말. 하다못해 냥냥거리면 귀엽겠는데…….”
“왜…… 왜야? 갑자기 나한테 왜 이래?!”
해인이 가까스로 내뱉은 첫마디는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말했잖아. 네가 좋아. 네가 너무 귀여워. 네가 날 사랑했으면 좋겠어.”
그런 대사 느긋하게 치지 마! 이 선수야!
그렇게 놀려댔으면서, 괴롭혔으면서. 어제의 적이 오늘은 나를 사랑한단다.
쉽게 납득될 리 없었다.
아무리 이렇게 꼬옥, 안고 있다 한들. 물론 이것이 가장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거짓말! 또 놀리는 거지!”
사나운, 전혀 귀엽지 못한 표정으로 해인이 악 소리를 냈다.
그러자 시율은 어깨를 으쓱하며 좀 더 손안에 힘을 줬다. 부드럽게 끌어안기는 기분은 너무 간질간질한 것이라 오히려 고역이었다.
고양이 상태였다면 흐물흐물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사람이었다.
“진짜야. 아무리 나라도 사랑으로는 장난 안 쳐.”
널따란 어깨 속에 해인의 몸 하나 따위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온전히 끌려 들어가 버렸다.
시율은 해인의 몸을 그렇게 품고 있는 데 잠시 심취한 듯했다. 그 외에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해인은 그 품 안에서 뻣뻣하게 굳어서는 더듬더듬 항의했다.
“가, 강 너……! 얼마 전에는 날 해부…… 한다고……!”
“그건 네가 말을 알아듣나, 못 알아듣나 보려 그랬던 거지. 진심은 전혀 아니었어. 이젠 알 텐데?”
“……으으, 그래도 그렇지!”
“그 정도 협박은 되니까 네가 정체를 드러낸 거 잖아. 안 그래?”
인정하기 싫지만, 시율이 하는 말은 대부분 맞았다. 해부한다고만 안 했어도 말하는 고양이라는 사실을 오픈하지 않았을 테니까.
시율이 여전히 품에서 해인을 놓아주지 않은 채 느긋하니 속삭였다.
귓가에 키스하는 건지 말하는 건지 참으로 애매한 간격을 유지하며 아무렇지 않게.
그냥 말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남의 귓가에 나른함을 풍겨댄다.
“일단…… 나 좀 놔줘!”
“알았다고 하면 놔줄게.”
“뭘?!”
“내가 널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잘 알아두라고.”
미쳤구나! 그런 뻥에 안 속는다고!
“갑자기 그게 무슨…….”
“그럼 고백을 갑자기 안 하면 어떻게 하는데?”
“……예, 예고하고……?”
“그것 참 새로운 방식이네.”
해인은 어떻게든 이 공황상태에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휘둘리리라.
엄마가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댔어!
그러니까…… 이럴 땐……!
“난 고양이야!”
그걸 이렇게 기쁘게 말해보긴 처음일 거다.
해인은 나이스라고 생각하며 시율이 자신을 사랑할 리 없는 이유 첫 번째를 나열했다.
그건 자신이 남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와도 같았으니까.
그러나 이미 아는 얘기에 시율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뻔뻔했다.
“하지만 사람이 될 수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
“잘해줄게. 지금까지와 다를 거야. 이젠 널 유혹할 생각이거든.”
목과 목이 맞닿아 시율이 말할 때마다 그의 목울대가 꿀꺽, 하니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게 무서운 건지, 설레는 건지 해인은 이제 혼란스러워질 지경이었다.
“나, 나는…… 고양이…… 라니까……?”
“그런 건 상관없다니까.”
“있어! 있다고!”
남자 특유의 단단한 듯 매끈한 피부 결도 사람을 숨 막히게 했다.
“없어.”
“왜 그걸 네가 결정해?!”
“왜냐하면 너는 사람을 이성으로 좋아할 수 있으니까. 예를 들면, 네 주인. 그런데 난 안 될 게 뭐야.”
심지어 뭔가 도망치려고 할수록 옭아매지는 느낌이었다.
이 자식 머리가 너무 좋아! 뇌가 너무 유연하다고!
하긴 말하는 고양이를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냐마는.
“그리고 전설의 고향 같은 걸 보면 말이야…… 구미호랑도 잘만 살더라.”
“흐악?!”
시율은 매사 호불호가 확실한 인간이었다.
머리가 좋다 보니 무엇이든 경계가 애매한 걸 싫어했다.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항상 명확했다.
왜 자기 판단을 분명하게 하질 못하지? 자기 마음을 자기가 모르나?
보통은 애를 먹는 일이 그에게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사람으로 변하는 고양이에게 홀렸음을 인정하긴 힘들었으나, 결국 납득하자 당연하다는 듯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너 그거랑 비슷해 보이거든.”
흔한 말로 천재형 인간이랄까. 시율은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해인도 최근에 사신에게 들어서 겨우 알게 된 사실을 관찰만으로 눈치채기도 했으니까.
“……나 여우 아냐……! 고, 고양이라고.”
“구미호는 애도 낳더라.”
“햑?!”
시율이 고개를 들어 해인을 내려다보며 심각하니 물었다.
“그보다 어디 아는 여우 없어? 있으면 좀 물어봐. 사람 되는 법.”
해인은 알지도 못하지만 물어봤다간, 간을 백 개 먹으라고 할 것 같았다.
끝까지 도리도리, 하는 제 품 안의 해인을 보며 시율은 마른침을 삼켰다. 예상했던 대로 해인의 거부는 만만치 않았다.
“우, 우린 결혼도 못 해……!”
“사랑하면 꼭 결혼해야 하나? 아니야.”
“……해야지! 해야지! 아무렴 사랑하면…… 결혼해야지? 그런데 나랑은 못…….”
“그렇게 하고 싶으면 무호적자 절차 밟아줄게.”
치밀한 놈! 해인은 시율이 자신의 상상했던 그 이상 인물임에 기겁했다. 그는 노련했고 해인은 그걸 당해내기에는 하룻고양이에 불과했다.
해인은 어느샌가 시율의 접촉에 무뎌져서는 그가 자신을 끌어안고,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종종 뺨이며 이마에 느리게 입술을 맞추며 나른한 숨을 흘리는 데 익숙해져버렸다.
아주 느릿하게 이어지는 그 행위에 거부하는 걸 그만 잊어버린 것이다.
저도 모르게 익숙해져서.
마치 끓는 물 안의 개구리처럼 말이다.
“우익! 내가 왜 너랑 이런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넌 날 괴롭혔잖아! 막 그랬잖아!”
어느 순간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거칠게 밀어내는 손길에 시율이 쳇, 하니 혀를 찼다.
거의 다 홀렸는데.
너무 살짝 안고 있던 터라 시율은 결국 밀려나야 했다. 그사이 비어버린 품이 허전했다.
방금 결혼 얘기를 했던 사이에 왜 이럴까? 하며 시율이 다시 손을 뻗었다.
“이제 안 그럴게. 됐지?”
“안 됐어! 못 믿겠다고 널! 이렇게 더듬는데! 바람둥인데?!”
“뭘 못 믿겠다는 거야?”
“……이, 이렇게 위험한데……! 어딜 봐서 날 사랑한다는 거야?”
너무도 강렬한 유혹에 도리어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능숙한 인간을 어찌 믿을쏘냐!
시율이 자신을 유혹하고 있음을 깨닫자마자 화가 났다. 이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바람둥이라니. 전혀 아닌데?”
“바람둥이야! 지금 네가 한 짓을 봐! 세, 세상에……! 어휴 엄마야, 무서워.”
해인이 진정 치를 떨며 뒷걸음 쳤다.
그러고는 소름이 돋을 것 같은 팔뚝을 연신 쓸며 도리질을 쳤다.
“무섭다니. 무례하네, 그 녀석. 왜 이래? 난 보통 사귀면 1년을 넘긴다고.”
“거짓말……! 너는 고양이였으면 새끼가 백 마리는 넘을 놈이야!”
“백…….”
해인은 그렇게 소리치고는, 방에서 얼른 도망쳐버렸다.
무슨 놈의 인간 수컷이 페로몬을 뿌려대!
***
해인은 시율 몰래 탈출을 강행했다. 마침 태일이 밤새 집을 비웠으니 절호의 찬스기도 해서, 짬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에게 달려간 것이다.
보고 싶었던 건 물론이고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어차피 전부 말하진 못할 테지만.
“그래서 그간 어디서 지냈다고?”
세 달 만에 보는 해인의 모친은 살이 좀 쪄 있었다.
딸이 그간 코빼기도 안 보였는데 어쩜 이리 윤기가 잘잘 흐르는지.
심지어 해인의 귀가에도 여행에서 찍어온 사진을 정리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무리 해인이 작업을 위해 시골에 있었다고만 여겨도 그렇지. 하여간 야속한 엄마 같으니.
“으응…… 산에 있는 암자야. 휴대폰도 안 터질 만큼 엄청 깊어!”
“절이니?”
“응.”
“이름이 뭔데? 스님은 몇 분이나 계시고? 사람이 있긴 하고?”
질문은 했지만 엄마는 그다지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고 있었다. 해인은 대충 둘러댔다.
그림 작업을 위해 독립한 지 2년이 된 해인의 일상에 부모는 일일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면 오는구나, 가면 가는구나 하는 눈치였다.
“으음…… 있어…… 둘.”
시율과 태일을 졸지에 스님으로 만들었으나 해인은 거짓말이 영 서툴렀다.
요령 좋게 둘러대는 데는 재능이 없었다. 다행히 친모는 눈치가 둔한 사람이라 속아 넘어가지만 말이다.
“많이 외진 곳인가 봐? 먹는 건?”
“먹는 건…… 뭐, 잘 먹어! 그리고 나 금방 가봐야 해. 화구가 떨어져서 사러 나온 김에 엄마 얼굴 보러 온 거야.”
“그러니? 또 몇 달 만에 와서는 자지도 않고 가?”
“엄마…….”
“가기 전에 네가 쓰던 방 정리 좀 해라. 아주 쓰레기통이야.”
역시 엄마가 제 걱정을 하긴 했구나 싶어 감동하려던 해인은, 그럼 그렇지 하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잔정 없는 아줌마 같으니.
“그리고 갈 때 이 기념품 좀 가져가라. 딸이 신세 지는데 뭐라도 드려야지. 네가 예뻐서 주는 건 아녀, 이 기집애야. 많이 사와서 그래. 알겠어?”
엄마가 툭 하니 내민 것은 화장대 위에 5층탑을 이루고 있는…… 중국 문화지 모형이었다.
마치 경주 수학여행 때 많이 사오고는 하는 ‘후에 쓸모없는 물건 베스트 파이브’의 첨성대 모형 같은 것이었다.
아니, 저걸 챙겨 가라고?
“두 개 가져가라.”
“……두 개나?”
“두 분이라며, 스님이. 좋아하실 것 아니야, 귀한 거야!”
“참 좋아도 하시겠네.”
진짜 스님이라도 반겨줄지 의문인, 촌스러운 관광지 모형 두 개를 얻은 해인은 난감해졌다.
이걸 버릴 수도 없고 짊어지고 가자니…… 그 세련된 남정네들이 받아줄지도 의문이었다.
아니, 애초에 줄 방법도 없는데!
하여간 엄마란 존재는 항상 이랬다. 뜬금없는 구석이 있달까. 촌스러운 걸 좋아한달까.
“더 가져갈래?”
“……아니. 충분해.”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번엔 엄마를 만났으니 말이다.
일시적 피신이라 해가 뜨기 전에 돌아가야겠지만. 해인은 태일이 오기 직전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역시나 시율이 해인의 부재를 알아채고는 현관을 지키고 서 있었다.
아마 조금만 더 늦게 돌아왔다면 찾아 나설 모양새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해인은 시율을 경계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너 어디 가면 간다고 말을 해야 할 것 아니야?!”
“……흥.”
“너!”
“다가오면 다시 나갈 거야!”
시율은 자신이 계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있다 온 해인이 불안했다.
대체 어딜 저렇게 싸돌아다니는 걸까. 이렇게 걱정하는 줄도 모르고 툭하면 가출이라니.
시율은 속이 부글부글댔지만 애써 진정시켰다.
두어 걸음 이상 다가가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치는 해인이었으니까.
겨우 그 정도 대시했다고 뭐 이렇게 경계하는지.
먼저 만져도 좋다고 부비적거릴 때는 언제고! 또 집에 불이 나야 만지게 해줄 셈일까? 하여간 고양이는 이게 문제였다.
“……그, 이거 줄게.”
인상을 팍 구기고 있는 시율에게 해인이 엄마에게 받아 온 기념품 하나를 멀찍이서 내밀었다.
손바닥만 한 종이 상자 속 물건은 딱히 남에게 주고 칭찬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 해인 자신이 받는다면 빈말로도 고맙다고는 안 할 물건.
“이게 뭔데?”
“받아둬.”
시율은 외출 후 돌아온 해인이 무언가 제게 내밀자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풀어보니 더욱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화나서 나갔다 오더니,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면서 선물을 줘? 그것도 해괴망측하고 조잡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모형을.
“……일단은, 선물이야.”
“어…… 고맙다.”
살다 살다 고양이에게 쥐 시체 외의 선물을 받아볼 줄이야. 이 고양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걸까.
절간 모형 같은 걸 받아 든 시율은, 이거 혹시 저주용 물건일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해봤다.
방에 두면 병에 걸리는 거 아닐까?
그만큼 뜬금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밀지 못한 건 모처럼 해인이 준 물건이라서였다.
아니, 처음으로 준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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