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고양이 길들이기
늦은 밤. 옥상정원으로 올라오자마자 해인은 정원 중앙에 있는 커다란 나무의 구멍 속에 종이쪽지를 숨겨두었다.
사신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두 달째니 슬슬 한번 들르기로 한 시점이었다.
편지를 본 사신은 뭐라고 할까. 일단 지내고 있는 집의 호수를 적어두었으니 분명 부리나케 쫓아오겠지.
쪽지를 보고 잔소리를 할까? 네가 이럴 때냐고 쓴소리를 하려나.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게 됐어요.]
난 사람인걸. 해인은 그렇게 쪽지를 적었던 자신의 손을 둥글게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상한 일 아닌가? 열 손가락을 가졌고, 사람의 말도 하는데 사람을 좋아하는 게 이렇게 죄스럽고 마음이 무겁다니.
해인은 벤치에 앉아 발가락도 꼼지락꼼지락 움직여봤다.
발가락들이 마음대로 움직이긴 하나 이 감각이 멀게 느껴졌다.
이것이 본래 내 것인데 이리 낯설다니. 사람의 몸을 움직이는 것은 마치 없던 날개가 생긴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고양이의 몸이 편하고 사람의 손발을 쓰는 게 어색해졌다.
하지만…… 이 마음만은 분명 내 것인걸. 혼란스러울 것 없이 내 것인걸.
해인은 이걸 어찌하나 싶고 한편으론 난감했지만, 사실 기뻤다.
사랑이란, 자신이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 감각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감정 아닌가. 예견할 수도, 조절할 수도, 말릴 수도 없는 감정 아닌가.
그저 속절없이 휩쓸려버리는 감정 아니던가.
아무리 지금 저가 고양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것이 점차 제 정체성을 좀먹어가고 있다고 해도.
아니, 그래서 더욱…… 이 마음이 필요했다.
“……해인아, 박해인.”
난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 박해인이야.
홀연히 허공을 향해 몇 달간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제 이름을 불러봤다. 멀어지려 하는 그것을 애써 다잡았다.
고양이의 몸이 됐다고 사람의 마음을 죽이자니 그게 너무도 슬펐다.
해인은 태일이 좋았다. 어느샌가 이성으로서의 그마저도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그가 서글퍼하자 심장이 미어지듯 아파와 눈물이 고이더니 기어코 넘쳐흘렀다.
젖은 심장이 주제도 모르고 상처 입은 남의 가슴까지 참견하려 했다.
그저 깊이 위로해주고픈 이 마음. 그건 주인을 향한 애정도 아니었고 여자가 가진 흔한 동정도 아니었다.
연정이었다. 해인은 그리 믿었다.
측은지심이나 동정심으로 여기기에는 그 감정이 너무도 저를 휘두르고 있었다.
비록 대부분의 시간을 고양이로 살지만, 본래는 사람이었고 사람의 몸이 될 수도 있으니 그것에 기대를 걸어볼 작정이었다.
많은 걸 바라진 않았다. 태일이 저를 상냥하게 쓰다듬어 줬던 것처럼, 저도 그를 한 번쯤 보듬어주고 싶었다.
당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멋진 사람인지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후우우!”
해인은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몰래 가져온 태일의 휴대폰을 열었다.
시율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망설이느라, 손끝을 떠느라.
뚜르르르르.
신호음은 길게 이어졌다. 하긴 새벽 3시를 지난 시점이었으니 보통은 잠들어 있으리라.
하지만 이때는 해인이 전화를 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새벽을 틈타 몰래 걸어야 했으니 말이다. 통화를 끝내면 통화 목록도 반드시 지워야 했다. 이래저래 조심할 것이 많아 입술을 질겅이는 해인이었다.
받아라, 받아. 집요하게 울리던 신호음이 마침내 연결음으로 이어졌다.
해인은 어깨를 좀 더 움츠렸다.
[……누구?]
분명 태일의 휴대폰이라는 게 수신창에 뜰 텐데, 시율은 누구냐고 물었다.
태일이 이 시간에 전화할 리 없으니 해인임을 은근히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아이큐 높은 타입은 이럴 때 좋았다.
“나야.”
[하암, 널 줄 알았지.]
“일단…… 새벽에 전화해서 미안해.”
잠기운 가득한 시율의 목소리를 들으며, 해인은 우선 예의 없는 시간에 전화한 것부터 사과했다.
[네 사정이야 뻔하지, 뭐.]
그건 잠에 잠겨 약간은 나른하고 섹시하게 들리기는 했으나 분명 해인을 비꼬고 있는 음성이었다.
잠시 전화기 너머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달칵, 하니 스탠드 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것들은 사람의 몸일 때도 탁월한 성능을 자랑하는 해인의 귀에나 들리는 작은 소음들이었다.
해인은 잠시 시율이 제정신 차리길 기다렸다.
[그래, 무슨 용건이야?]
“전에 약속한 거…….”
[개인적으로는, 지금부터 가출할 건데 우리 집으로 온다는 내용이면 좋겠는데.]
꿈도 참 크지. 해인은 우선 헹, 하니 웃어줬다.
[잘해준다니까 그러네.]
잠결이라 더 유혹하듯 들리는, 허스키하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는 해인이 견디기 좀 힘든 유의 것이었다.
너무 좋은 귀는, 마치 성능 좋은 이어폰을 귀에 낀 것 같은 느낌이라 뭐든 더 풍성하게 들리게끔 했으니까.
“바람둥이!”
[내가 뭘.]
“넌 바람둥이야! 고양이를 홀리려고 하잖아!”
남자인 주제에 이렇게나 섹시한 목소리라니.
개인적으로는 감정이 별로지만, 이 남자가 섹시한 건 섹시한 거다. 객관적인 사실로 그것만은 인정해야 했다.
더군다나 지금 소리로 보건대, 시율은 나른한 동작으로 느리게 제 앞머리를 넘기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해인은 제 귀가 전해오는 그 사실에 자신의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당장은 십 원도 없지만.
[네 반응이 웃기니까 그런 거지. 놀리기 좋잖아.]
전화기 너머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짓궂은 녀석 말고는 기댈 데가 없다는 현실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작게 숨을 들이쉰 해인은 최대한 차분히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진 않을까 조심하며 진지하게.
“전에 약속한 데이트, 그거 하고 싶어.”
[아아, 네 주인이랑?]
“……응!”
시율은 이 요물 고양이의 용건이 그것이었구나 하고 잠결에 태평하게 생각했다.
이상하게 목이 마르고 심장이 답답한 건 요즘 날이 건조해서라고 단순하게 넘겼지만 말이다.
뭔가 이상한 기분인데. 시율은 그 정체를 당장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땐 나중에 한다고 했잖아?]
“마음이 바뀌었어!”
[……그렇군.]
일전에 화가 난 걸 풀어주려고 그런 약속을 하긴 했는데…… 왠지 싫었다. 시율은 애꿎게 자세히 물어봤다.
[데이트하면 뭘 할 건데?]
“그런 것까지 보고해야 해?”
[내가 알아야 도와줄 것 아니야. 네가 입을 옷이며, 하물며 용돈도.]
“아, 그러네!”
[그치?]
해인은 시율의 말에 순진하게도 넘어갔다. 애초에 숨길 것도 별로 없었다.
“그냥…… 사람으로 한번 주인을 만나보고 싶은 거야. 주인한테 당신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여자들이 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그렇게 응원해주고 싶어.”
[……그게 다야?]
“응! 처음 본 사이에 뭘 더 하겠어!”
[그야 그렇지만.]
이 고양이 엄청 소박한 소망을 가졌구만. 보통 좋아하는 남자랑 데이트하면 더 장대한 꿈을 꾸지 않나?
시율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뭘 준비해야 할지 어림해봤다.
우선 태일에게 여자를 소개받지 않겠냐고 밑밥을 뿌려야 할 테고, 가진 거라곤 카랑카랑한 성격뿐인 이 고양이가 데이트 때 입을 옷도 필요하겠다.
그리고, 이 고양이가 잊고 있는 모양이지만 약속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붙어 있었다.
[데이트 한 번 주선해주면 나랑도 데이트해야 하는 거, 알지?]
“엑?”
[약속이었잖아.]
“야, 약속은 네가 한 거잖아!”
[그 조건도 약속의 일부였잖아. 난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하거든. 서로 그럼 약속 잘 지키자고. 졸려서 이만 끊는다.]
뭐라 대꾸하기 전에 전화가 뚝, 끊어졌다.
해인은 잠시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어서 불만스러운 얼굴로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어야 했다.
태일과 데이트하려면 이 녀석과의 데이트도 1+1이었다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딱 그 짝이었다.
***
아쉽게도, 끔찍하게도, 누군가에게는 기쁘게도 재회는 빨랐다.
그러니까 해인과 시율의 재회 말이다.
태일이 바리바리 들고 온 선물들과 함께 해인을 시율의 손에 넘기고 있었다. 다름 아닌 강시율의 집 현관문 앞에서.
이 두 남자, 너무 친해져 있었다.
“이번엔 촬영은 아니고 캐나다에 있는 친척이 결혼을 해서요.”
“와, 가까운 사인가 봐?”
“큰이모 댁이기도 하고, 원체 친해서 안 갈 수가 없네요. 길어지면 3박 이상이 될 수도 있겠는데…… 정말 맡겨도 괜찮을까요?”
“그럼, 그럼. 내가 이게 더 편하거든. 개냥이 걱정 말고 잘 다녀와.”
연신 싱글벙글하는 시율이었고 캐리어 안에서 바득바득 이를 가는 해인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영리한지 학습한 태일은 공원에 가자면서 해인을 시율의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 정도는 줬어야지! 날 속여?!
“끄으응…….”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형님.”
“안심하고 가봐.”
태일은 해인이 걱정되고, 맡기기 미안했는지 잠시 떠나는 걸 지체했지만, 결국엔 출국 시간에 맞춰 떠나야 했다.
해인은 속여서 데려왔다는 사실에 삐져 있었고, 시율만이 뭐가 그리 좋은지 손까지 흔들며 배웅했다.
지성이면 감천이요, 기다리면 복이 있나니. 출장은 아니지만 태일은 떠났고 해인은 남았다. 시율의 손아귀에.
“자, 그럼…….”
함박 웃으며 시율이 캐리어 문을 열어주었으나 해인은 도리질을 쳤다.
나가지 않겠다 캐리어 안쪽에서 잔뜩 웅크린 채 털을 세웠다.
“나와.”
“……나, 나중에.”
“흐으음.”
둘이 분명 모종의 협정을 맺은 것은 맞지만 그게 평화 협정은 아니었으니까.
얼마 전에 그 키스, 아니아니 혀로 체온재기? 아니아니! 어느 쪽이든 그 사건을 잊을 순 없었으니까.
유일하게 비밀을 들킨 인간이 가장 위험한 인간이라, 해인은 가끔 이렇게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해인이 불안스레 눈을 굴리는 동안 시율은 왔다 갔다 하며 무언가 연신 꺼내 소파에 쌓고 있었다.
캐리어 안의 해인에게 잘 보이도록 차곡차곡.
그것들은 각종 옷이며 구두, 운동화, 샌들, 모자며 벨트 등 입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었다.
새것은 아닌 듯했지만 제법 질 좋은 것들이 한가득. 세탁까지 되어 있는지 세제 냄새까지 솔솔 풍겼다.
“…….”
꿈틀, 해인은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캐리어 밖으로 걸어 나가고 싶어졌다. 산더미 같은 여자 옷이다!
“어때? 동생이 대학생 때 입던 거야. 사이즈도 너랑 비슷할 거고.”
몇 박스는 되어 보이는 옷가지들에 홀려 해인은 어느새 캐리어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너 주려고 본가 창고에서 찾아왔지. 이거라면 너도 부담 안 될 것 아니야. 공짜는 싫다며? 이건 거저먹기 다름없는 물건이니까. 그치?”
“……그치?”
“주는 것도 아니고 잠시 대여니까, 한번 입어나 보지그래?”
그건 좀 고려해볼 사안이야. 해인은 시율이 자신의 사람 모드를 보려고 머리를 쓰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녀석 왜 이리 사람 모습에 집착한담. 그편이 덜 사나워서? 그편이 발톱이나 송곳니가 없으니까? 단순이 부피가 커지는 게 신기해서?
이리저리 짐작해보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예쁜 옷 입고 싶어!
***
시율이 밖에서 문을 두들겼다.
탕탕.
“이봐, 고양이씨. 이제 그만 날 좀 내 집에 들여보내 주지 않을래?”
옷은 입어봐야겠고, 강시율은 못 미더워서 해인은 일단 시율을 그의 집에서 내쫓았다.
문을 걸어 잠그고 체인까지 건 뒤에야 그가 준비한 여동생의 옷을 뒤적여 이것저것 입어봤다. 코디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시율의 여동생은 해인과 비슷한 취향은 아니었지만, 센스가 좋은 것만은 분명했다.
봄에 어울리는 코디를 완성한 해인은 전신 거울에 간만에 사람다운 사람 모습인 제 모습을 비춰 봤다.
역시 사람이 이래야지!
들뜬 기분을 주체하지 못한 해인은 시율이 다섯 번째로 문을 두들기기 전에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문 열…….”
“나 나갈래!”
“뭐?”
문짝에 기대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 시위 아닌 시위를 하던 시율은, 어느새 전부 차려입은 해인이 눈을 크게 반짝이며 문을 열고 나오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분명 안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사람이 튀어나오는 건, 언제 봐도 마술 같았다.
“나갔다 올래!”
“……어디 가게?”
“다녀오고 싶은 데가 있어!”
해인은 옷을 입은 김에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마침 태일도 며칠 외국으로 나갔으니 지금이 가장 적기였다.
시율은 신이 나 방방대는 해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살펴봤다. 고양이 주제에 패션 센스가…… 제법 귀엽잖아.
“저기…… 강!”
“응?”
해인은 꼭 시율을 강, 이라고 불렀다.
강시율이라는 풀네임은 길어서 귀찮은 모양이었고, 이름을 부르는 건 너무 정감 있어서 또 싫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보통은 수의사! 혹은 너 이 자식! 이런 식으로 불렀다.
강, 이라고 부르는 건 해인이 시율에게 하는 최대한의 친근한 호칭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부를 때는 꼭, 부탁이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아마 고양이 모습이었다면 두 귀를 접고 저자세로 나갔을지도 모르는 상황.
잠시 우물거리던 해인은 작고 하얀 손바닥을 슬쩍 내밀어 보였다. 부탁해야 하니 두 손을 모아 얌전히.
“나 만 원만…….”
“어디 쓸 건데?”
“……교통비.”
“어딜 가려고? 태워다 줄게.”
실으어어, 하는 표정으로 해인이 거세게 도리질을 쳤다.
“……우으으.”
해인은 아마 모를 테지만 지금 그녀는 고양이가 경계하거나, 싫을 때 내는 목 울림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수의사라면 질리게 듣는 그 소리를 사람 행색으로 말이다.
“뭐, 알았어. 빌려줄게.”
“정말?”
“그렇다니까? 일단 집에 들어나 가자. 지갑도 안에 있고.”
채무자의 입장인 해인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현관에서 비켜줬다. 시율은 오늘따라 시원시원한 태도였다.
금방 지갑을 찾아 나오더니, 당장 돈을 꺼내줄 것처럼 지갑을 뒤적여 보였다.
해인이 그 지갑 속에 정신이 팔린 사이 현관문을 여나 싶더니. 어느새 둘 다 문 밖에 나와 있었다.
“어라?”
“자, 가자.”
띠리릭, 소리를 내며 현관문도 자동으로 잠겨버렸다. 해인은 어느새 시율이 건네는 캐주얼 한 여자용 운동화를 받아 들며 얼떨떨하게 대꾸했다.
“……에? 나 같이 간다고 안 했는데?!”
엄마가 있는 집에 가볼 참이었던 해인이니 시율의 동행이 반가울 리 없었다. 하나 시율은 역시나 승기를 잡았다 싶으니 뻔뻔해졌다.
“나는 돈 그냥 빌려준다고 안 했는데? 그리고 짐승을 어떻게 혼자 보내냐.”
이 기회주의자! 해인이 가난한 걸 알고는 아주 제멋대로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여기 있지.”
“왜 네 맘대로 하는데?”
“돈 그럼 안 빌려줘도 돼?”
안 돼! 버스비도 없으니까!
이것이 돈 없는 자의 설움인가?
해인은 대놓고 볼을 부풀렸다. 떼어내려고 하면 어떻게든 붙어 있는 시율이 얄미웠다.
어쩜 이렇게 사사건건 태일과 비교되는지!
여자가 부담스러울까 거리 두는 걸 미덕으로 아는 남자와 제 욕심을 채워야만 하는 이 이기적인 사내라니.
물론 각자 대하는 상대가 좋아하는 여자냐, 고양이냐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난 네 임시 보호자니까.”
“으 씨.”
“안 갈 거야 그래서?”
“……갈 거야.”
다소 불만스러웠지만 앞서 가버리는 시율을 쫓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사람 모습으로 밖에 나가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으니 말이다.
해인은 인파가 그리웠다. 그리고 그 속이라면 시율도 함부로는 못하겠지 싶어 결국 지고 말았다.
“뭔가 탈 거면 후문으로 나갈까? 그쪽에 꽃이 엄청 폈거든.”
“정말?”
“그래, 끝물이긴 해도 벚꽃이 남아 있지. 모처럼 예쁘게 차려입었으니까 구경하자고.”
“나 꽃 좋아하…….”
그런데 이거, 은근히 데이트 같은데? 해인은 아리송해서 시율의 옷깃을 붙잡으며 물었다.
“그런데, 이거 이렇게 되면 데이트 아닌가?”
“아니지! 이건 보호자 동행이지.”
“……뭐가 다르냐.”
“다르지, 달라.”
해인은 결국 시율을 말솜씨로 이길 수 없었다.
“그럼 뭔데?!”
“음, 산책.”
“……으씨!”
반박할 수 없었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리 봐도 데이트 같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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