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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스-16화 (16/114)

16화. 고양이와 사랑에 빠진 자의 말로

그날 저녁 해인은 침통하니 병 걸린 고양이처럼 골골대며 침실 구석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다시 가출을 하자니 너무도 개고생할 게 뻔했고, 닥쳐올 시율을 만나자니 그건 그것대로 불만스럽고.

아니, 불만 정도가 아니라 부아가 치밀었다. 내가 왜 녀석을 피해 도망쳐야 하는 거야?

마수에 걸린 사냥감이 된 것 같았다.

따지자면 끝이 없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 고양이 꼴이었다.

이렇게 되지만 않았다면 고양이 주제에 사람을 좋아하지도, 고양이 주제에 수의사에게 인권 모독을 따질 일도 없었을 테니까.

“크옹……!”(제길……!)

엄마에게 갈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이내 접어버렸다.

사람으로 누군가의 곁에 있자니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도 짧았으니까.

한 달에 하루꼴, 결국 사람도 안 돼, 고양이도 안 돼. 그렇다고 왔다 갔다 하게 된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자니 그것도 끔찍한 일이었다.

1년만 버티면 되는데 가족들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해괴한 경험을 하는 건 저 하나로 충분했으니까.

다시 하아, 하니 짧은 숨을 토하며 해인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띵동.

문득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반짝 고개를 치켜든 해인은 밤 10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한 번 보고는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가 침실 문턱에 섰다.

고개를 갸웃하며 태일이 열어주러 나가는 현관문을 주시했다.

매니저인 친구 놈? 하은? 둘 다 별로 달갑지 않은데.

해인이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킁, 하니 코끝을 움찔 세워 방문자의 냄새를 탐해보고는…….

번개처럼 움직였다.

“오셨군요.”

“아, 이거 실례…….”

탁월한 후각과 짐승의 감이 천적의 방문에 기민하게 반응했다.

비상, 비상, 비상! 강시율이다앗! 해인은 냅다 다다다닥 소리를 내며 침대 밑으로 피신해버렸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기어들어가 가장 깊숙이 숨어서야 헉! 하니 숨을 들이켜며 자신이 도망쳐버렸다는 사실은 인지했다.

그것은 거의 본능적인 도피였다. 자존심 상하지만 숨은 게 맞았다.

녀석을 인식하자마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따져보고 이왕 못 피할 상대, 당당하게 마주하자고 결심했건만 몸이 먼저 거부하다니.

“히약……!”

숨어들어서도 해인은 심장이 쿵쾅거려 죽을 맛이었다.

이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도 가도 할 수가 없었다.

뻔히 여기 있다는 사실을 들킬 텐데 도망쳐 버린 것도 우스웠다.

하나 시율의 존재를 알아챈 순간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 온다며?!

해인은 그렇게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침대 밑으로 보이는 두 쌍의 발을 보고는 그저 입술을 우물거릴 뿐이었다.

다가온다, 다가와……!

불안감으로 입술이 물결치듯 흐물거리는 기분이었다.

난감해하는 태일의 음성이 먼저 들려왔다.

“녀석 빠르네……. 이 밑으로 숨은 것 같은데 어쩌죠? 한번 숨으면 잘 안 나오는데요.”

“음, 내가 어지간히 싫은가 보네.”

“크오우으으!”(싫다 뿐이냐!)

당연한 것을 궁리하듯 말하는 시율에게 해인은 힘껏 화답해줬다.

침대 밑에 숨어서는 밖으로 들릴 정도로 크게 아릉거렸고 태일은 그마저 미안한 모양이다.

“죄송해서 어쩌죠. 기껏 와주셨는데.”

“수의사 몇 년 하다 보면 미움 받는 것도 익숙해집니다. 애초에 이렇게 도망갈 것 같아서 일부러 급습한 거고. 녀석들이 눈치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흔히들 고양이는 영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귀를 기울이던 해인은 꼬리에 바짝 힘을 줬다. 영악한 건 네놈이지!

내일 온다더니 오늘 온 것도 다 계획된 것이었던 모양이다.

제 방문에 해인이 또 가출을 고심할 거라는 걸 염두에 둔 게 분명했다.

시율은 제멋대로 해인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었다. 심지어 태일까지 제 손아귀에 넣으려 들었다.

그는 직업을 살려 믿음직한 투로 말했다.

“사실 제가 데리고 있는 동안 간단한 검진은 해뒀습니다. 외관상에 큰 문제는 없었고…… 오늘은 뒷다리의 상처 경과를 좀 볼까 했던 건데. 이래서야 무리겠군요.”

그리고 해인이 서식하는 환경도 좀 궁금했고, 그 말은 눈으로 태일의 집안을 살피는 걸로 대신하는 시율이다.

“그렇습니까? 그럼 전염병 검사 같은 건…….”

“저도 고양이 에이즈나 피부병 검사를 하고 싶긴 합니다만, 신경이 날카로워 보이니 좀 더 안정된 뒤에 할까 합니다. 아! 그리고 맥주는 제가 알아서 사왔는데 괜찮습니까?”

이게 무슨 소리? 해인은 눈가가 바르르 떨리는 걸 느끼며 둘이 서 있는 쪽으로 조금 기어갔다.

냉큼 꺼지지 않고 뭘 어쩌겠다고? 제 성능 좋은 귀를 또 의심하는 해인이다.

“저는 딱히 가리는 건 없습니다. 그나저나 안줏거리가 별로 없는데 치킨을 시킬까요?”

“축구하는 날이라 주문해도 치킨이 많이 늦을 텐데요.”

“아…… 그 생각을 못 했네요.”

“그리고 제가 제의했으니 제가 책임져야죠. 병원 근처에서 이것저것 사왔습니다.”

시율은 지금 해인을 핑계로 ‘말을 얻으려면 장수를 쏴라’ 전법을 적극 실천 중이었다. 사람 좋은 태일은 멋모르고 요령 좋은 시율에게 휩쓸리고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경계가 심한 동물한테는 나는 네 주인과 친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경계를 풀게 하는 데 가장 좋거든요. 검증된 효과적인 방법이죠.”

해인은 이 두 남자가 친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웅크리고 있던 몸을 침대 밖으로 조금 내밀었다.

하지만 시율과 눈이 마주 치자마자 뒷걸음질 쳤다.

흐아악, 안 되겠어. 무서워서 못 나가겠어!

결국 불안한 해인은 목을 울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우오우으으우…… 우양!”(주인 그 인간은 악마라구……. 속지 마!)

해인이 애타게 태일을 시율의 마수에서 구해보려 했지만 둘은 이미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은 뒤였다.

성인 남자 둘이 술 한잔하면 급속도로 친해질 터다.

그게 싫은 해인은 그저 침대 밑으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안타깝게 울었다.

“저 봐요. 우릴 주시하죠?”

“정말이네요. 근데 뭐라고 하는 걸까요?”

“키야옹!”(걔랑 놀지 마!)

경계하는 듯한 모습이 마냥 신기한 태일이었고, 그마저 이용하는 시율이다.

시율이 소파에 기대앉으며 턱으로 해인을 가리켰다.

“생각해보세요. 저 고양이 눈에는 수의사인 내가 얼마나 위험해 보이겠습니까. 자기한테 주사도 놓고, 아프게 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주인에게도 가까이하지 말라고 위험을 알리는 거죠.”

“꼭 어린 아기들 같은 시선이네요.”

“단순해서 사랑스러운 녀석들이죠.”

저 거짓말쟁이……! 해인은 이를 갈았으나 감히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여전히 나질 않았다.

***

걸터앉은 자리에서 맥주 캔을 여섯 개 정도 비우고, 안주도 새로 뜯으며 두 남자가 오늘의 축구경기에 몰입할 즈음.

둘은 마치 십년지기 친구 같아 보였다.

남자란 저게 문제야. 축구랑 맥주만 있으면 누구든 금세 친구 되는 거지?!

“오늘 경기 흥미진진한데? 안 그래?”

은근슬쩍 말을 놓는 시율이었고 그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태일이었다.

“이야, 그러게요. 어떻게 저 볼을 넣죠?”

“어시스트가 워낙에 좋으니까. 축구는 공격수만 가지고는 안 되고 윙스가 좋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선수들은 어시스트를 너무 우습게 봐.”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다들 자기 볼 넣을 욕심만 있어서…… 저 외국 선수들 봐요. 어시스트에까지 목숨 걸지 않습니까.”

둘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어서 친해지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비슷한 나이대, 축구, 개냥이, 사진. 그리고 당근을 우아하게 휘두를 줄 아는 시율.

“참, 이봐 동생. 우리 집에 와서 마음에 들어 했던 사진 있잖아? 거실에 크게 걸린 거. 어디서 구했냐고 물었던.”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페리토모레노 빙하요?”

무슨 빙수라고? 해인은 태일의 혀가 술 때문에 꼬부라진 줄 알았다.

“그거 아주 싸게 넘길까 하는데, 생각 있으면 어때?”

“예? 그거 정말이십니까?”

“그럼, 정말이지.”

아주 저렴하게 넘기겠다 홀리는 시율이었고 넘어가면서도 그게 뇌물인지는 꿈에도 모르는 태일이었다.

둘은 속수무책으로 친해져 갔고, 해인은 그 모습을 불안하게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

축구경기의 후반전이 끝날 무렵 태일은 어느새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근래 잠이 부족했는데 술이 들어가니 곧장 잠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마저 모두 시율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시율은 주량이 상당히 센 듯 멀쩡하게 일어나 태일이 잠든 걸 확인했다. 그러고는 여전히 해인이 숨어 있는 침실로 유유히 걸어왔다.

그 느긋한 걸음걸이가 해인에게는 긴장의 날을 세우게 했고 그가 가까워올수록 해인은 숨을 죽이며 발톱을 길게 빼냈다.

여차하면 긁어줄 심산이었다.

“이봐.”

그러나 다짐이 무색하게도 시율이 침대 아래로 얼굴을 내밀자 해인은 급히 안쪽으로 후퇴했다.

태일이 시율과 친해지는 것도 막지 못한 터라 어째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졌다.

“어이?”

“…….”

“개냥 씨?”

“캬아옥!”(냉큼 꺼져버려!)

가지도 않고 사람, 아니 고양이 불안하게 계속 부르는 시율에게 해인이 해줄 거라고는 사납게 울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시율은 해인과 대화가 하고 싶은 모양인데 해인은 말문을 트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강시율은 해인의 머리 위에서 노는 인간이었다.

“아, 그나저나 네 주인 참 괜찮은 것 같더라. 남자가 봐도…….”

힐끔, 거기까지 말한 시율은 침대 밑을 살폈다.

사나운 씩씩거림이 잦아지는 걸 귀로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그는 안다. 당근에 장사 없다는 걸. 사람이고 고양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칭찬해주는데 기분 나쁜 사람, 아니 고양이 없었다.

“네가 반할 만하더라. 확실히 동물이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고는 하지.”

“…….”

“진국이랄까, 사람 참 좋은 것 같던데…… 어디 예쁜 후배 있으면 소개시켜주고 싶네.”

“그, 그건 싫어.”

“아참! 사랑에 빠진 여자였지.”

그건 명백히 비꼬는 말투였다. 해인은 숨어 있는 주제에 따질 건 따졌다. 거실에 잠든 태일에게 들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바닥을 기는 목소리였다.

“짐승 취급 했으면서 이제 와서 생각해주는 척하지 말라고!”

“그럼 어쩌라는 거야? 사람은 아니니 외계인 취급? 아니면 요괴? 도깨비? 뭐가 좋으세요?”

결국 괴상한 생명체들뿐이군. 그 범주에 자신이 들었음에 해인은 치를 떨었다.

“뭐든 좋아. 난 너랑 더 친해지고 싶어. 정말이야.”

더없이 진심이라는 듯 시율이 진하게 웃으며 말했고 해인은 그게 무서울 따름이었다.

시율이 저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관찰욕? 학자들이 가진다는 탐구열? 그도 아니면 희귀한 생명체에 대한 소유욕? 그리고 이내 해부욕?

부르르, 해인으로서는 온몸에 떨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내, 내가 미쳤냐?!”

“……실수였다니까 그러네. 해부 같은 건 나도 취미 아니야.”

“이젠 네 말 안 믿을 거야! 얼른 네 집으로 가버려!”

“어떻게 해야 네게 호감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해봤거든? 이런 거 어때? 잘되게 도와줄게. 네 주인이랑.”

사람 좋게 웃는 낯에 잠시 정신이 팔려 해인은 시율이 대뜸 던진 말이 곧장 이해가 되질 않았다.

뭘 되게 해줘?

“뭐?”

“내가 저 녀석한테 너를 소개시켜줄게. 인간으로서.”

천천히 웃음을 지워버린 시율이 진지하게 말했고 해인은 그 변화를 지켜보며…… 거참 바보 같은 제안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제안, 조금 혹했다.

“내가 아는 여자 후배라고 하면서, 데이트 정도는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지. 어때?”

“……사람.”

“그래. 사람 대 사람으로. 내가 저 녀석이랑 왜 친해지고 있다고 생각해? 다 널 위해서야.”

태일에게 사람으로서 다가갈 수 있다고? 심장이 방금 전까지의 불안과는 다른 것으로 작게 콩닥였다.

그러나 아주 잠시였다.

이내 자신의 처지를 인지하고는 고개를 털어버리는 해인이다. 악마의 속삭임에 일일이 휘둘려서야 쓰나!

“안 들을 거야! 또 놀리려는 거 다 알아.”

“놀리는 거 아냐. 널 돕고 싶어서 그래. 인간을 좋아하게 돼서 생긴 네 소원 같은 게 있을 거 아니야. 키스나 데이트, 옷도 그래서 사달라고 했던 거 아닌가. 너 인간 흉내 좋아하잖아? 그 중 뭐가 하고 싶어? 설마하니 인간과 결혼하고 싶은 건 아닐 테니…… 연애 놀이 정도라면 내가 거들어주지. 얼마든지! 어드바이스도 맡겨두라고.”

또다! 상냥한 척 웃는다. 해인은 흔들리는 이성을 붙들며 또박또박 대꾸했다.

“싫어. 넌 분명 그 대가로 뭔가를 요구할 거잖아!”

“있긴 있지만.”

해인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꼬리 끝에 벽이 닿아 몸을 살짝 틀며 혹여 시율이 다가올까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어둠 속에서 한껏 경계하면서도 해인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고 시율은 이 짐승 제법 머리 굴리네? 하며 피식, 웃어버렸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아는 짐승이라니 제법이지 않은가.

그는 짙게 웃었고 해인은 그럴수록 경계했다. 웃음 뒤에 숨긴 걸 간파해보려 눈을 빛냈으나 어느 모로 보다 시율 쪽이 고단수였다.

“그저 네 신뢰.”

“……내 신뢰?”

“단순히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하는 작은 선물이야. 난 정말 너에게 한 짓을 마음 깊이 반성하고 있거든. 너라는 존재가 낯설어서 실수를 조금 한 것뿐이야. 사과하고, 만회하고 싶어. 네게 도움이 되고 싶고.”

그는 태일에게 호감을 샀듯 해인에게도 그러고 싶었다. 그것은 기실 그의 특기 중 하나였으니까.

해인이 차라리 정말 여자라면 돈이나 선물로 때울 수 있을 텐데. 하나 먹는 것도 통하지 않고, 이제 옷도 싫단다.

통하는 거라고는 태일에 관한 얘기뿐이었다.

“내 신뢰로…… 뭘 어쩌려고?”

“난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 그뿐이야.”

해인은 조금 늦추기는 했지만 여전히 경계 중이었고 그 벽을 부수기 위해 시율은 쉬지 않고 달콤한 속삼임을 이었다.

이 예민한 고양이를 채 다 파악하지 못해 지금은 미움을 샀지만, 그래봤자 단순한 짐승이니 끈기를 가지고 꼬드겨 볼 셈이었다.

주인도 꼬드겼는데 그 고양이쯤이야.

“응? 네 주인이랑 손잡거나 키스할 수 있게 도와줄게. 날 믿어보라니까? 검사해본 소견상 그런다고 들통 날 것 같지도 않고…….”

“끄아악!”

그러나 여전히 해인을 다 파악하지 못한 시율은 민감한 구석을 다시 건드렸고 해인은 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칫 흐리멍텅하니 녀석이 바라는 대로 끌려갈 뻔하지 않았는가.

최면처럼 반복해 말하는 시율의 수법에 저도 모르게 귀 기울이던 해인은 녀석과 키스했다는 사실은 상기하자마자 정신이 들었다.

시율은 다시 멀어지는 해인은 보며 작게 혀를 찼다. 다 꼬셨건만 막판에 정신을 차려버리다니. 키스라는 단어가 안 되는 걸까.

“그냥 네가 신비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어.”

해인이 그 낯부끄러운 표현에 거뒀던 시선을 다시 시율 쪽으로 돌렸다.

흥미롭다는 들어봤어도 그건 또? 약간은 꺼림칙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눈이었으나 시율은 한 술 더 떴다.

“난 너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거든. 너에 대해 알고 싶어서 때때로 숨이 막힐 정도야.”

이 인간…… 날 파헤치고 싶어 해?! 역시 해부? 그렇게 받아들인 해인은 그저 오싹할 따름이었다.

시율은 시율대로 제 두근거림의 방향을 다소 착각하고 있었다.

하긴 보통 짐승에게 두근거리면 그걸 사랑이라고 여기지는 않으니까.

해인의 인간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고, 다시 보고 싶은 강박이 든다고 그걸…… 사랑이라고는 여기지 않으니까.

울먹이며 제 뺨을 때리던 해인의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고, 그걸 사랑이라고는 여기진 않으니까.

그는 첫눈에 반한다 따위 믿지 않는 인종이었으니까.

이 두근거림은 단순히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다, 시율은 그렇게 정의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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