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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스-14화 (14/114)

14화. 남심 자극하는 고양이

시율의 집은 전형적인 독신남의 오피스텔이었다.

고층이라 야경이 좋았고, 창은 컸다. 집 주인의 취향대로 푸른색 계열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모직으로 된 새벽하늘색의 커튼은 해인의 마음에도 들었다.

“미요?”(깔끔하네?)

남자 혼자 사는 집치고 센스가 제법이었다.

해인은 저도 모르게 집 안을 살피며 코를 킁킁댔다.

야외 생활을 한 덕에 생긴 낯선 곳에 대한 탐색이기도 했고 순수한 호기심이기도 했다.

해인은 하얀 가죽 소파 위로 단번에 뛰어 올라갔다.

당장이라도 문명만세! 하고 소리치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렸다.

“이봐.”

“응?”

“옷 입어봐야지.”

한창 집 안을 탐색 중인 해인의 앞으로 시율이 제가 사온 원피스를 펼쳐 보였다.

“지금?”

특유의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연한 살굿빛 원피스를 살랑살랑. 이렇게 예쁜데, 어서 입어보고 싶지 않냐는 듯 말이다.

뭔가 서두르는 느낌인데.

그는 왠지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고대하던 순간이라는 양.

“그래, 어서 입어봐.”

시율이 냉큼 옷을 사준 이유는 해인의 인간 모드를 다시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생각할수록 굉장하지 않은가. 사람으로 변하는 고양이라니.

어디가 특별한 걸까. 아니면 사람이랑 완전히 똑같은 걸까. 사람으로도 변한 후에도 고양이 귀나 꼬리가 그대로 있진 않는 걸까.

“……지금은 별로 그런 기분이 아닌데.”

시율의 기대하는 눈빛 때문에라도 해인은 영 변신하기 싫었다. 원래 시키면 더 하기 싫은 법이니까.

“약속했잖아? 보여주기로. 닳는 것도 아닌데 얼른 해치우라고.”

“닳거든? 아주 확실히!”

“어라, 그런 거냐.”

한 달에 약 24시간, 하루 종일 모아도 40분 정도. 사람으로 변하는 건 충전 대비 효율이 나쁜 느낌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고, 나중을 위해 부지런히 모아둬서 20시간 정도 저장해뒀으니 오늘은 인심을 쓰자고 생각했다.

해인은 시율의 집을 다시 한 번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어디서 갈아입어?”

“내 앞에서 변신하면 안 되겠지?”

시율이 제 턱을 쓰다듬으며 하는 소리에 해인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이 변태야!”

“어째서? 난 순수한 과학자일 뿐이야. 그러니까 순수한 호기심에서일 뿐이라고.”

“웃기지 마! 넌 의사잖아!”

“비슷하거든. 의학은 과학의 한 분야잖아.”

이런 뻔뻔한 놈 같으니. 변신한 직후에 알몸이 아니라고 해도 해인은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 순간은 해인에게 있어 최대의 약점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본능적으로 남에게 드러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럼 변신 안 해!”

“알았어, 알았다고. 그럼 화장실에서 어때?”

반면 시율은 그 질량 보존의 법칙이 무시되는 순간이 매우 궁금했다.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하는 그 광경이 보고 싶어서 피가 끓고, 몸살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밀어붙이면 이 고양이는 분명 토라질 터.

그는 아쉬운 대로 변신 후의 모습이라도 보자고 생각하며 해인을 화장실로 떠밀었다.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 봐 해인은 상당한 기분파였으니까.

마지못해 화장실로 향했지만 해인은 뭔가 영 찜찜했다.

“훔쳐보면 죽어!”

걸음을 옮기다 말고 뒤를 보며 샥! 하니 이를 드러냈다.

“네, 네.”

“보기만 해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해인은 늘 고양이로 지내느라 맨몸에 대한 수치심이랄까, 저항감이랄까…… 그런 거부감이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그래서 더욱 옷의 필요성을 느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흐려지는 인간 박해인을 회복하기 위해.

나날이 고양이화되어가는 자신을 느낄수록 그것이 시급했다.

화장실로 옷을 옮겨준 시율이 마지막으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물었다.

“너 말이야. 속옷 입을 줄은 아냐? 혹시 모르면……. 미안하다.”

그러다가 해인이 손톱을 바짝 세우자 냉큼 말을 바꿨지만 말이다. 발등까지 단련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

오랜만에 두 발로 서자 어색함이 밀려왔다.

본래 사람인데 사람 모습이 어색하다니, 큰일이었다. 거의 한 달 만에야 사람의 옷을 입은 해인은 엉거주춤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본래 치마나 너풀거리는 옷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너무 여성스러운 원피스였다.

처음 치마를 입어본 것처럼 왠지 부끄러웠다.

맨발도 부끄럽지만 자신의 다섯 발가락이 왜 이리 낯선지.

고개를 숙여 무릎을 한 번 보고 자신도 신기한 듯 자신의 두 다리를 한참 내려다보던 해인은, 이내 고개를 살짝 들며 시율에게 물었다.

“음…… 어때?”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시선이 영락없이 소녀 같았다.

커다란 눈망울은 사랑스러운 다갈색이었다.

앞머리 없는 긴 머리칼이 이마 옆을 가리고 어깨 아래로 떨어져 흘렀다.

특히나 치마 밑으로 쭉 뻗은 가는 두 다리는 그녀를 확실히 사람답게 보이게 했다.

“……와우, 진짜 사람 같잖아.”

시율의 두 눈이 한계까지 커다래졌다.

화장실로 들어간 고양이가 사람이 되어 나왔다. 그것도 제법…… 예쁘장한, 뽀얀 다리를 가진.

짝짝짝!

“예쁜데?”

시율은 정말 열과 성을 다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마치 재롱부리고 받는 갈채 같아서 해인은 머쓱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예쁘다는 소리에 기분이 나쁘진 않아서,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봤다. 예쁜 옷이었다.

문득 의문이 한 가지 들었다.

“그런데 속옷 사이즈까지 너무 정확하게 딱 맞는데?”

“우연이야, 우연.”

“그런가?”

해인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설마 시율이 한 번 본 걸로 제 사이즈를 알아챘다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만져봐도 되냐?”

“……에?”

“조금만.”

어느새 코앞에 다가온 시율의 물음에 해인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시율은 마치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모험가처럼 이채 어린 얼굴이었던 것이다.

옷도 사줬으니까, 손 정도는 만지게 해줄까?

해인은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고 시율은 사양 않고 덥석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곤 손가락 마디마디와 손톱 하나까지 세밀하게 살펴봤다.

말랑거리는 손등 위를 매만지며 안쪽의 뼈와, 힘줄, 그리고 두근대는 맥박을 느꼈다.

느리게 제 손으로 깍지도 껴보고 풀었다.

보드라운 피부 끝을 더듬어보는 손길에 사심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신기해?”

“음.”

정말 본인의 표현처럼 과학자 혹은 의사의 것처럼 미지의 것을 조사하는 듯했다.

“대단한데…… 너 정말 사람이야.”

시율은 기막힌 듯 중얼거리며 해인을 바라봤다.

해인의 존재 자체가 지금 그에게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눈앞의 이 여자가 사실은 고양이라니.

이걸 어떻게 해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

시율은 손을 들어 해인의 목덜미를 만져봤다. 그의 손안에서 너무도 선명하게 맥박이 두근거렸다.

“왜, 왜 이래! 징그럽게.”

“너 제대로 살아 있잖아?”

“……당연하지!”

“놀라워. 정말 놀랍다고. 심박 수까지 사람이랑 똑같아.”

그야 원래는 사람이니까.

어느새 시율의 손은 해인의 쇄골을 타고 내려가 가슴 위로 올라가 있었다.

옷 위라 조금 뒤늦게 눈치챈 해인이었다.

거긴 가슴인데?!

“너……!”

해인은 살짝 움찔했다.

하지만 시율의 시선이나 손길에서 느껴지는 것은 순수한 감탄뿐이었다. 그래서 화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렸다.

그의 손이 지금 느끼고 싶은 건 부푼 가슴이 아니라, 그 안쪽에 있는 심장이었으니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구조야? 응? 이 심장 뭐냐고. 고양이일 때도 심장이 유난히 크더니…….”

“나도 잘 몰라.”

시율이 살짝 흥분하고 있었다.

해인은 위기를 느끼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정말 몰라? 어떻게 이렇게 변신할 수 있는 거야? 언제부터 할 수 있었는데? 그냥 처음부터 됐어? 변신할 때 에너지는 뭘 써?”

해인은 도리도리 고개만 내저었다. 이 몸은 저승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신탈에 대해 해인이 아는 건 극히 일부였다.

애초에 인간의 물건이 아닌데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의 탐구욕과 호기심이 한계까지 울렁거렸다.

그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해인의 손목을 꽉 붙잡아 당기며 요구했다.

“입 벌려봐.”

“뭐?”

“입안이 보고 싶어서 그래. 신기해서. 응? 만져보기만 할게!”

“싫어!”

빽! 하니 해인이 소리쳤다. 하지만 시율이 바짝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그는 고양이인 해인의 입안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듯, 지금도 그러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이 신기한 생물체의 입 안쪽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 몸속은 또 어떻게 되어 있는지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해인은 시율의 손가락이 입가에 닿자 입을 다물며 고개를 완강히 내저었다.

외간 남자의 손을 어디 입안에! 만지기만 한다고 허락할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말이냐! 소냐! 구강 검사를 당하게!

“뭐, 어때. 우리 사이에, 응? 보여줘.”

“웃기지 마! 우리가 무슨 사인데?”

해인은 혹시 기습당할까 봐 될 수 있는 한 이를 악물고 웅얼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시율이 어깨를 으쓱하며 상큼하게 대꾸했다.

“우린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잖아.”

“난…… 네 비밀 모르는데?”

해인은 괴상 쩍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시율이 슬금슬금 다가와서 뒷걸음치다 보니 어느새 소파에 무릎이 닿았다. 슬그머니 앉게 됐는데 그게 더 위험했다.

시선을 피해 스르륵, 얼굴을 옆으로 움직여 봤지만 시율이 집요하게 따라왔다.

맞아. 이놈 위험한 놈이었지!

“내 비밀은, 네 비밀을 안다는 게 비밀이지.”

결국 해인은 시율의 품 안에 갇혀 소파로 내몰린 모양새가 되었다. 녀석의 눈이 위험하게 빛난다 싶은 순간, 해인은 턱을 틀어 잡혔다.

“으읍?!”

그리고 불안함은 적중했다.

기어코 시율이 자신의 손가락을 해인의 입안으로 비집어 넣은 것이다.

한 손으로는 턱을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깊숙이 치열이며 입 천장까지를 더듬어갔다.

무자비한 손길이었다. 물지 못하게 턱을 붙잡고 있는 시율의 손은 마치 짐승 다루는 것 같았다.

시율로선 동물을 상대로 자주 해왔던 검사일 테니 손놀림이 익숙했다.

그에 해인이 제 턱을 벌리는 시율의 손목을 붙잡으며 바르작댔지만 건장한 남자가 힘으로 억누르는데 이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조금 차가운가?”

“아, 으우……! 싫…… 어!”

타인의 손가락이 입안으로 들어와 혀나 안쪽의 살을 만져대니 숨이 막혔다.

기다란 손가락은 목구멍까지 닿도록 깊숙이 들어왔다. 역함이 얼핏 밀려들었다 사라진다.

그러니 제대로 말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이건 인간으로서 받을 대접은 아니다. 그야말로 고양이로서면 모를까!

하지만 화난 해인이 두 손을 들어 밀어봐도 시율은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꽉, 하니 힘준 그의 손목은 단단하고 돌덩이 같다. 이 녀석은 역시 날 짐승 취급하고 있어!

그가 엄지와 검지로 해인의 혀를 쥐어보며 중얼거렸다.

“그냥 사람 구강구조랑 똑같은 것도 같고…….”

“으읍!”

“아, 잠깐만. 조금만 더 보자. 응? 옳지?”

시율은 그저 해인의 어디가 보통 사람과 다른지가 궁금했다.

저를 달래는 시율의 목소리에 해인은 그만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내가 정말 짐승이야?

“……왜 우냐?”

시율은 그제야 깜짝 놀라 손을 떼어냈다. 해인은 겨우 놓아졌지만 방울방울 눈물을 쏟아냈다.

“싫다고…… 싫다고 했는데!”

“그래도 봐야 알지.”

“이…… 나쁜 자식아! 사람이잖아! 지금은 사람이잖아!”

“원랜 고양이잖아?”

이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좁히겠는가.

해인은 억울하고 서러워서 눈물을 쏟아냈다. 저를 짐승 제압하듯 꽉 누르고 있는 시율의 가슴팍을 손이며 이마로 치며 온갖 화를 냈다.

“난, 짐승 아니란 말이야!”

“그럼 뭔데?”

“보면 몰라?!”

여자잖아! 여자!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냐?

해인은 화가 났다. 이러기 위해 뇌물 삼아 사준 거라면 옷 따위 당장 벗어버리고 싶었다.

이리저리 자존심이 상하고 수치심까지 들었다. 아무리 고양이로 알고 있다지만, 지금은 버젓이 사람 모습인데!

훌쩍임을 참는 해인의 얼굴은 숨이 차서 약간 붉었다. 그가 손을 뻗어오자 힘껏 밀어내고 보는 해인이다.

아랫입술을 앙다물며 화가 나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시율은 무안한 손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참나…….”

꼭 칭얼거리는 여자 친구 같았다. 정말 그 앙칼진 검은 고양이가 맞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상처받은 얼굴이 확실히 양심을 찔러댔다.

시율은 이쯤 되니 자신이 정말, 굉장히 나쁜 짓을 한 것 같았다. 고양이 주제에 왜 사람처럼 굴어서 사람 마음을 이상하게 하는 걸까.

“흐, 흐윽!”

원래는 고양이라는 걸 아는데도, 눈앞에서 훌쩍이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여자라도 되는 양 굴고 말이야. 여자 대접을 해달라는 고양이는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저 안을 어떻게 맛봐야 하는 걸까?

잠시 고심하던 시율은 아까처럼 만져봐도 되냐는 듯 툭, 물었다.

“……키스해봐도 되냐?”

눈물 맺힌 해인의 눈이 화들짝 떠지며 시율을 노려봤다.

다시 벌어지는 입술을 물론 그래도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만큼 놀랍다는 거지. 그가 예의상 덧붙인다. 어쩌면 당연하다는 듯.

“딥 키스.”

될 리가 있냐, 이 미친놈아? 해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경악했다. 하지만 그건 이 순간 내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틀어 막혔으니까, 입술에.

뜨겁고 말캉거리는 것이 입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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