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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스-12화 (12/114)

12화. 길 잃은 고양이

쏴아아.

가출 열흘째,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이제는 여기가 어딘지도 알 수 없었다. 발 닿는 대로 움직이기만 했으니까.

지금 해인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엄마가 있는 집으로 찾아가는 게 아니었다.

우선 그전에 달빛을 충전해서 사람으로 지낼 수 있는 기운을 모으는 일이었다. 괜히 이 모습으로 찾아갔다가 딸이 고양이가 됐다고 엄마가 졸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엣취!”

비가 내려서 그런지 오늘따라 몸이 으슬으슬했다.

아무리 보통의 고양이보다 몇 배는 튼튼하고, 추위를 덜 느낀다고 해도 무적은 아니었으니까.

가출할 때만 해도 옥상 정원에서 지냈던 것처럼 적당이 잘 곳만 찾으면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태일의 집이 너무 안락해서 잠시 간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보호가 주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뭐, 마치 부모의 품처럼, 꼭 떠나서 고생해봐야 깨닫는 점도 똑같았다.

“먀…….”(나오지 말걸…….)

해인의 눈가와 코 위로 빗물이 타고 흘러내렸다. 온몸이 흠뻑 젖어 보기 흉했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보송보송했던 몸인데, 지금은…….

물에 퉁퉁 불어 발바닥 사이가 쓰리고 따가웠다.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가 있는 집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다. 태일이 있는 집에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울고 싶은 걸 꾹 참으며 계속 걷던 해인은 문득 지금 자신이 걷는 거리가 눈에 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

길 구석으로 걷다 보니 긴가민가해서 중앙으로 옮겨 가서 다시 앞을 봤다.

그리고 옆도 보고 뒤도 보았다. 분명 와본 적이 있는 길이었다. 사람이었을 때!

“앗!”

고양이의 낮은 시야로 걷느라 잠시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곳은 해인의 대학시절 친구가 사는 동네였다.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사는 친구였는데, 외로움을 잘 타서 그룹 과제가 있을 때면 항상 그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의 얼굴이 떠올라 해인은 가출한 뒤 처음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친구의 집으로 가는 동안은 발의 아픔도 잠시 잊어버렸다. 그 친구 고양이를 좋아했지.

아직 거기에 살고 있을까? 그럴까? 이제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해인은 익숙한 친구의 집을 향해 뛰었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반가웠다.

믿을 수 있는 친구니까 사정을 얘기하면 보살펴줄 거다. 그런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지배했다.

반지하방이라 지상으로 반만 튀어나온 창문이 한눈에 보기에도 익숙했다. 창문에 붙은 스티커도 낯이 익다. 아직 여기 사는구나!

해인이 자신도 모르게 창문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캉캉!

“가은아!”

급한 마음에 고양이 소리 대신 사람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사신이 누구에게나 정체를 숨겨야 한다고 했지만 이미 한 명에게 들킨 상태였다. 새삼스레 한 명 더 추가된다고 뭐가 다르겠어?

그저 쉬고 싶다. 이제 너무 지쳐서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오래된 빌라의 반지하방 창문에 코를 박고 손톱을 세워 문을 두들기자 금세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분명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에, 누구세요?”

“거기 있어? 나야, 나!”

“누구…….”

카각, 카각.

해인은 반가운 목소리로 친구를 부르며 창문을 긁어댔다. 창문과 지상의 경계인 방범봉 사이로 얼굴을 비집고 넣었다.

가은이 자신을 반겨줄 거라 의심치 않았다. 고양이도 좋아하고 자신도 좋아했으니까.

녹슨 창문이 끼긱, 거리며 열리고 안쪽에 있는 가은이 보였다.

가은의 뒤쪽으로 깔린 폭신한 이불과 웃음소리를 내는 텔레비전이 있는 그 방이 천국으로 보여서.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은아! 나…….”

다시 문명에 기댈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반가움에 해인이 화색하며 조금 더 다가섰다. 친구가 굳어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할 만큼 그저…… 반가웠으니까.

“……끄아아아악?!”

“어? 저기…….”

“꺄악! 꺄아악! 엄마야!”

굳어 있는 친구에게 사정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설명할 기회는커녕 입을 열 수도 없었다. 고양이가 말을 하는 자체가 너무도 소름 돋는 일이었으니까.

쾅!

가은은 얼굴을 마주한 것만으로 미친 듯 비명을 지르더니 다시 창문을 닫아버렸다.

순간 목격한 가은의 표정이 너무도 경악스러워 소름이 뻗쳤다. 거의 공포에 질린 얼굴이라 해인은 그대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닫힌 창문 안쪽에서 허겁지겁 창문을 잠그고 커튼을 치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이어 쿵쾅대는 소리가 났다. 악몽이라도 꾸고,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계속 비명이 들렸다.

“끄하악! 저게 뭐야?!”

해인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가은의 비명이 집 안에서도 멈추지 않는 건 그만큼 끔찍하기 때문일 거다.

그 소리가 얼마나 두려움과 경악에 찬 것인지 주변으로 하나둘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거 지하방 아가씨네서 들리는데?”

“무슨 일 있나?”

아아아악! 재차 들리는 비명 소리에 해인은 가은의 집과는 반대로 뛰기 시작했다.

난 괴물이야!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거야.

해인은 그걸 이제야 깨달은 자신의 바보 같음에 절망했다.

기어코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시율이라도 보고 싶었다.

***

휘청휘청, 불안한 걸음으로 한참을 도망친 해인은 어느 골목 처마 밑에 버려진 종이상자를 발견했다.

킁킁거리며 안을 들여다보니 비를 잠시 피할 순 있을 것 같았다. 냅다 들어가 힘없이 누워버렸다.

비가 오는데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골목인데도, 그냥 쓰러지듯 엎어져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더는 지쳐 움직일 수 없었다.

항복, 이제 걷는 것도 못 하겠어.

생각하는 것도 싫어, 모든 게 귀찮아. 해인은 그렇게 웅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을까.

“냐옹아?”

힐끔, 작은 기척에 눈을 떴더니 빗속에서 빨간 우산을 쓰고 검은 비닐봉지를 든 사내아이가 보였다.

제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어째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해인은 고개를 들 기운도 없어 다시 눈을 감았다.

돌 던질 거냐? 그렇게 속으로 비꼬면서 그냥 나 죽여라 하고는 기진맥진해 더욱 몸을 작게 말았다.

“어디 아파, 야옹아?”

이 꼬마아이는 걱정을 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쿡, 해인의 등을 찌르는 손이 꽤 강했다.

“캬악!”(저리 가!)

자리를 옮기기엔 높은 곳으로 뛸 힘이 없었다. 해인은 아이에게 한차례 이를 드러내며 성질을 부렸다.

그런데도 아이는 가지 않고 그대로 해인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럼 배고파?”

“먀…….”(귀찮아…….)

이대로 잠들어버리자. 그리고 눈을 뜨면 그냥 저승에 가 있을 거야. 이 몸도 불사는 아니라고 했으니까……. 해인은 차라리 그것을 염원하며 잠들려고 했다.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는데 문득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이상해서 올려다보니 상자 위로 빨간 우산이 쓰여 있었다.

아이는 벌써 멀찍이 비를 맞으며 뛰어가고 있었다.

***

“어머, 어머, 어머. 세상에!”

“거봐! 고양이 죽어.”

“너는 그래도 우산을!”

아이의 손에 끌려온 엄마는 요리를 하던 중이었는지 밥 냄새를 폴폴 풍겼다.

그건 해인의 식욕을 자극하지는 않아도 향수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우리 엄마도 날 기다리며 저렇게 밥을 하고는 했는데. 해인은 울컥 눈물이 났다.

“미야아…….”(으, 엄마…….)

“세상에.”

고개를 푹 숙이고 울컥 눈물을 흘리는 해인을 아이의 엄마가 수건으로 덮어주더니,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아마도 전에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있는지 익숙한 손길이었다.

해인이 버둥거리거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선에서 품으로 안아 들고는 토닥여주는 손길에 해인은 또 눈물이 나서 그 품으로 파고들었다.

태일과는 다른 다정함이었다. 엄마 냄새가 나는 품이었다.

“어쩜 이렇게…….”

“엄마! 야옹이 괜찮아? 안 죽어?”

“글쎄……. 일단 집에 가서 먹을 걸 주자. 응? 자, 우주도 이제 집에 가자.”

아이가 꽤나 기승을 부렸던지 그녀는 한 손으로는 해인을 안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아이를 잡아끌며 함께 다독였다.

만약 아이의 엄마가 센터 사람이라거나 병원 사람이었다면 어딘가 물고 벌써 도망갔을 해인이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 주워줬으니 지금은 잠시 이 따듯함에 기대기로 하고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역시, 가장 보고 싶은 건 엄마였다.

***

역시 목욕은 좋아. 해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맡겼고, 우주의 엄마는 이렇게 얌전한 고양이는 처음 본다며 연신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따듯한 물을 대든, 비누를 대든 발톱 한 번 세우지 않고 의젓하게 앉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입이 굉장히 짧아서, 아니 아무것도 입에 대질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걱정을 쏟아내야 했다.

“그것도 안 먹어? 그럼 안 되는데…….”

“닭고기 맛있는데.”

우주는 해인이 외면한 삶은 닭 가슴살을 제가 대신 집어 먹다가 엄마에게 혼쭐이 났다.

“웬 고양이야?”

“우주가…….”

“그 녀석 기어코 주워 왔나 보네.”

저녁 무렵 돌아온 이 집의 가장도 꽤나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인 듯했다.

“사람 손을 많이 탄 것 같아. 분명 주인이 있을 거야.”

“그래? 그럼 어떻게?”

“일단 인터넷에 주인 찾는다는 글을 올려야지. 그런 카페가 있거든. 아니면 찾는 글이 올라와 있을지도 모르겠네.”

아이 엄마는 익숙하게 컴퓨터를 켰고, 고양이 관련된 카페를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그 뒤에 매달려 우주가 징징댔지만 하나도 소용없었다.

“엄마! 우리가 기르면 안 돼? 응? 엄마아~”

“무슨 소리니! 빌라에서는 동물 못 길러!”

“왜에! 주인집 할머니는 강아지 기르잖아!”

“떼쓰면 혼난다? 거긴 주인집이잖아!”

“……싫어! 나도 기를래에~! 기를 거야아아아악!”

젊은 부부 둘에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하나 사는 작은 빌라는 거실 겸 큰방과 작은방이 전부였다. 아담한 편이었고, 확실히 짐승을 기르기에는 너무도 좁았다.

“안 돼!”

“주인 없어!”

“있을 거야. 지금 글 올렸으니까 떼쓰지 마.”

“엄마 나빠! 내가 발견했단 말이야!”

우주는 사내아이라 그런지 손길이 억셌다. 주워 와서 씻을 수 있게 해준 건 고맙지만 꼬리를 쥐거나 다친 뒷발을 움켜쥐거나 해서 곤란했다.

뒷다리는 특히나 상처가 커서 만지면 못 참을 정도였다.

해인은 가까스로 우주의 손에서 탈출에 옷장 위로 뛰어올랐다. 씻었더니 조금은 기운이 났다.

느긋하게 손과 꼬리를 핥으며 오늘 하루쯤은 이 집에서 신세를 지자고 생각했다.

“어? 우주 엄마! 여기 좀 봐. 글이 두 개나 올라와 있어.”

“어디?”

“봐봐! 여기.”

‘찾습니다.’ 게시판을 살피던 남편의 부름에 우주도 그 엄마도 컴퓨터로 다가갔다. 해인도 은근슬쩍 그 뒤에 고개를 디밀었다.

확실히 그 화면 속의 그 검은 고양이는, 자신이 맞았다.

달을 등지고 난간 위에 앉아 고개만 살짝 카메라 쪽으로 튼 검은 고양이. 선명한 황금색 눈동자에 윤기 흐르는 털, 새침한 표정.

총명해 보이는 데다가 사랑받는 느낌이 물씬 났다. 전문 사진작가의 손길이 묻어나 자태가 더욱 훌륭했다.

그건 일전에 태일이 찍은 사진이었는데, 주워 와 씻기 전의 해인과는 극과 극일 만큼 상태가 달라 보였다. 목욕한 지금은 그나마 좀 비슷했다.

엄마 쪽이 해인과 사진을 번갈아 보며 게시글을 읽었다.

“검은색 털, 금색 눈, 3.5kg 정도, 뒷다리 다침. 말을 걸면……. 냥냥하고 잘 대답함. 이름은 개냥이지만 아직 못 알아듣는 것 같음……. 사람이 보는 데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음.”

“얼추 맞는데?”

“하지만 여긴 지역이 한남동이잖아. 거기서 여기까진 고양이가 걸어오기엔 좀 먼데…….”

내가 좀 걷긴 했지. 잘 나온 자신의 사진에 뿌듯해하던 해인은 엉뚱한 것에도 에헴, 하며 쓸데없이 뽐내고 있었다.

“……개냥아?”

“…….”

하지만 우주가 제 이름을, 아니 개냥이라고 불렀을 때는 고개를 팩! 하니 돌려버렸다.

대답하지 않을 셈이었다. 시침을 때면 이 순진한 가족이 어찌 알겠는가. 비슷한 고양이야 세고 셌다는 게 해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검은 털에 금색 눈을 가진 고양이는 조금 드물었다.

“이름은 못 알아듣는다잖아.”

“아무래도 비슷한 것 같지?”

“그러게.”

여자가 게시판을 좀 더 들여다보며 덧붙였다.

“애타게 찾는 것 같은데……. 어머, 사례금이…….”

“흐흠, 전화해봐.”

“글이 두 개야. 하난 주인이 올린 것 같고. 하나는 동물 병원에서 올린 것 같아.”

“위에 거부터 전화해봐.”

시간은 벌써 저녁 9시를 넘어섰지만 애완 고양이를 잃고 슬퍼할 누군가를 위해 부부는 기꺼이 전화를 걸었다.

해인은 뒤에서 그 모양을 지켜보며, 아마도 저 온 가족이 소고기를 몇 번 사먹을 정도의 사례금 때문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

주인 찾아주기에 대한 의욕이 충만한 부부 덕에 해인은 금세 저를 그리는 이와 마주할 수 있었다.

“개냥아. 우리 사이에 왜 그럴까?”

“먀악!”(싫어어!)

“자자, 착하지?”

“우갸갹!”(얼굴 치워!)

해인은 아주 불쾌한 티를 팍팍 냈다. 태일이 올 줄 알았는데, 시율이 왔으니까.

하필 네놈이냐! 해서는 뾰로통한 것이다. 은연중 아는 사람을 만난 것이 반갑긴 하지만 티를 내기에는 부끄러웠다.

그러다가 시율이 억지로 안아 들어 키스하려고 하자 두 앞발을 뻗어 얄미울 만큼 잘생긴 얼굴을 네 발을 이용해 힘껏 밀어냈다.

“우으옹~ 이야냐냐……!”(왜 이래~ 징그럽게……!)

완강한 거부에도 시율이 삐죽 내민 입술을 들이밀어서 해인은 주먹으로 몇 번 후려치며 거부했다. 그래봐야 손톱도 빼지 않은 고양이 펀치지만 말이다. 잽잽.

지켜보던 우주의 가족이 의심스럽다는 듯 묻는다.

“……정말 냥이 주인이세요?”

“흐흠.”

“아무래도 이상한데……. 엄청 싫어하는 것 같고…….”

“아뇨! 저는 담당 수의삽니다. 주인분 대신 왔습니다.”

“주인분 대신이라고요?”

“네, 이 녀석 주인이 지금 해외로 출장 중이라.”

태일의 부탁으로 같이 글을 올린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신 왔을 뿐, 대신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진 않았다. 그러나 시율은 뻔뻔하게 잘만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 제 신분증. 그리고 수의사 면허랑, 명함도. 마음껏 보세요. 병원으로 전화해보셔도 됩니다.”

해인의 짜증스러운 태도에 시율을 잠시 미심쩍어 하던 우주네 가족이지만. 이내 시율이 내밀어 보인 믿을 만한 증거 앞에서는 안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둘은 아옹다옹하면서도 묘하게 친해 보였고, 해인은 싫어하되 시율에게 발톱을 세우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제가 데리고 있다가 주인분에게 잘 인계하겠습니다.”

게다가 수의사 차림 그대로 달려온 시율은 확실히 믿을 만해 보였다. 전화를 건 지 30분 만에 도착한 걸 보면 서두른 것도 분명했고.

굳이 그가 과일세트를 사와서는 아니고, 일단 사람은 의사라는 종족에게 절로 신뢰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 뭐…… 믿고.”

“사례금도 일단 제가.”

“어머. 그러실 것까지야.”

“므으응…….”(불길한데…….)

저를 찾은 시율이 너무나 기분 좋아 보여서, 해인은 오히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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