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고양이, 개고생하다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단지. 태일의 아파트 주변은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완전히 낯선 곳이었다.
해인이 살던, 산과 가까운 서울 외곽 지역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여기가 서울 어디쯤인지는 우편물을 훔쳐봐서 파악해둔 해인이지만, 고양이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으음.”
지금으로썬 정확히 아는 거라고는 이곳에서 시율이 있는 동물 병원으로 가는 길뿐이었다.
해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자신이 말한다는 걸 알고 있는 시율이니까, 녀석에게만이라도 예의상 작별인사 정도는 해야지 싶었다.
아직까지는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이후에 벌어질 일들 따위는 상상도 해본 적 없었으니까.
***
동물병원 맞은편의 커다란 나무 뒤에 숨은 해인은 시율이 나오길 기다렸다.
마침 오늘은 수요일이라 화요일 당직을 한 시율이 오전 근무만 하는 날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주 본 사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의 스케줄을 꿰고 있었다.
“…….”
지그시 병원 문을 노려보며 해인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했다.
떠날 거라고 운을 띄우면 시율은 그럼 자신이 보살펴준다고 할 것이다. 분명 그러겠지. 그럼 못 이기는 척, 그의 집에서 잠시 지내줄 의향도 있었다.
그는 말하는 고양이인 해인이라면 껌뻑 죽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시율이 좋다는 건 아니었다. 녀석이 얼마나 얄미운데! 조금 믿음직스럽다가도 어쩔 때는 그야말로 미덥지 못한 변태 그 자체라고!
해인은 갈팡질팡하는 제 마음을 대변하듯 연신 앞발을 핥았다. 그러면 좀 어지러운 것들이 진정되고는 했으니까.
종잡을 수 없는 시율을 생각하려니 마음이 묘했다.
“퇴근합니다!”
딸랑.
얼마 지나지 않아 시율이 방울이 달린 병원 문을 밀며 걸어 나왔다.
원래 퇴근시간인 10시 정각에서 30분쯤 지나서였다. 기다림의 끝이라 해인은 반짝 일어나 꼬리를 세우고 그를 향해 낭창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를 부르며 반갑게…….
“먀…….”
“오빠!”
오빠아~? 변태야! 라면 모를까.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니 다른 누군가가 시율을 부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해인은 그대로 멈추어 서고는 뒷걸음질 쳐 나무 뒤로 다시 숨었다.
아담한 몸집에 귀엽게 생긴 그녀는 아까부터 동물 병원 근처에 서 있던 여자였다. 그녀 역시 시율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대학생쯤 될까? 힐을 신었지만 사람인 해인과 비슷한 키일 것 같았다. 하지만 해인과 달리 애교가 듬뿍 담긴 목소리는 콧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걸 받아주는 시율은 꽤나 비위가 좋아 보였다.
“어, 왔어?”
“응응! 오빠가 밥 사주는 게 대체 얼마 만이야?!”
“그런가?”
“그래! 나 삐칠 뻔했어. 전화도 자주 안 하고. 내가 전화하면 안 받잖아.”
“내가 설마 일부러 그러겠냐? 밥이야 시간만 있으면 매일 사주지. 바빠서 그랬어.”
여자의 애교를 익숙하게 받아주는 시율을 보는 순간 해인의 속이 제대로 틀어졌다.
그래, 예쁜 여자 앞에 장사 없다, 이거지.
해인은 한껏 가늘어진 눈으로 대화하며 걸어가는 두 남녀를 노려봤다.
“그래도 섭섭해! 오늘 제대로 만회하기다, 응? 나 갖고 싶은 구두 봐뒀거든!”
“네네.”
“정말이지? 나 가방도 사주면 안 돼?”
“너 하는 거 봐서.”
“아잉! 오빠아.”
뚝뚝 떨어지는 여자의 애교에 해인은 털 속으로 오소소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여기도 커플 나셨군!
그놈의 오빠, 오빠. 듣기 싫어 죽겠다.
해인은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2순위이자 유일하게 남은 기댈 곳이었던 시율이지만, 애인이 있는 꼴을 보니 그건 안 되겠다 싶었다.
희희낙락한 꼴이 얄미웠다. 누군 사랑을 시작하자마자 실패했는데!
해인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두 남녀를 한참 아니꼽게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세웠다.
갑작스럽게 길에 나서기에 앞서 잠시 시율의 도움을 받을까 했지만, 역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난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
해인은 자신만만하게 시율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퍽!
“검은 고양이다!”
“와아! 맞혀라!”
“캬아옹!”(이 초딩들이!)
방심하고 있다가 그만 날아온 돌멩이에 등을 맞은 해인은 바짝 온몸의 털을 세우며 위협했다.
“우와 무서워!”
“야야 더 큰 걸로 던져봐.”
“샤악!”(저리 꺼지지 못해!)
해인은 가출한 이래 부쩍 욕이 늘었다. 세상사가 험하니 저도 사나워지는 수밖에 없었다.
“맞아랏!”
“마녀 고양이!”
“야! 도망가잖아.”
하지만 사내아이들이라 그런지 겁도 없었다. 이를 세우면 더 큰 돌을 던졌고, 도망가면 괴성을 내며 쫓아왔다.
해인은 아이들을 피해 얼른 담벼락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한 뼘쯤 되는 담벼락 폭을 내달려 낮은 지붕 위로, 그리고 높은 지붕 위로 뛰어올라,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더 높이 도망쳤다.
해인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망치다 보니 어느새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고 있었다.
“냐냥?”(이제 못 오지?)
고양이의 몸은 쓸수록 그 특징대로 활성화됐다.
더 유연해지고, 더 기민해졌으며, 더 멀리 보이고, 더 높은 곳을 원했다. 고양이로서의 감각은 위기가 닥칠수록 예민해졌다.
살아남기 위해 한계치까지 육체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해인은 안전하다 싶자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낯선 옥탑 방 앞에 앉아 자신의 뒷발을 살폈다.
“아파라…….”
시율을 구하느라 생긴 뒷발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아예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평소에도 살짝 절뚝거려야 했고, 지금처럼 크게 뛰고 나면 욱신거리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아도 불길의 상징인 검은 고양이가 절뚝거리며 비실대니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만만하겠는가.
해인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피해 다녀야 했다.
그럴 때면 상냥한 손길로 저를 쓰다듬으며, 제 검은 털이 예쁘다고 칭찬해주던 태일이 떠올랐다.
‘착하다, 착해. 우리 고양이 아가씨는 안 예쁜 곳이 없어.’
상냥했지.
해인은 자신이 태일과 지낸 시간이 얼마나 편안했는가를 새삼 되새겼다.
그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은 배고픔도 별것 아니었는데, 그저 약간 거슬리는 불편함일 뿐이었는데, 그가 주는 나른함만 만끽하면 됐는데.
그때와 달리 커다래진 공복감이 지금은 해인을 콕콕 찌르며 괴롭혔다.
고양이의 탈과 더욱 일체화되어 그런 걸 수도 있었고, 잠을 자지 못해 지친 몸이라 더욱 괴로운 것 같기도 했다.
분명한 건, 모든 게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냐하…….”(하아…….)
해인은 문득 고개를 들어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지만 여름에 가까워 아직은 따가운 햇살이었다.
햇살에 달궈진 바닥은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뜨거웠다. 해인은 앞발을 몇 번인가 달싹이다가 자리를 떠났다.
유난히 튼튼하다고 해봐야 결국 고양이 몸이었다.
이렇게 계속 햇빛을 받다가는 탈진해버릴 게 분명했다. 밤이면 모를까, 낮에까지 지붕 위를 배회할 수는 없었다.
“시야아아악!”
“깜짝이야!”
별생각 없이 담벼락에서 그늘로 뛰어내린 해인은 그늘 안쪽에서 튀어나온 덩치 큰 고양이에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쓰레기 냄새에 다른 고양이의 냄새를 맡지 못했던 것이다.
‘진짜’ 고양이들은 사람 냄새를 폴폴 풍기는 낯선 검은 고양이를 결코 반기지 않았다.
영역 의식이 강한 데다 사람 냄새를 싫어했으니까.
“가! 간다고!”
크고 작은 고양이 세 마리가 어두운 그늘에서 걸어 나오자 해인은 후다닥 뒷걸음질을 쳤다.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여기저기 갸웃거려봤지만 오늘도 마땅히 자리 잡을 곳을 찾지 못했다.
좀 쉴까 싶어 눈독을 들이는 곳에는 반드시 터줏대감 고양이가 있다. 그도 아니면 천적인 개.
가는 곳마다 쫓겨나기도 이젠 지쳤다. 내가 동네북인가?
거의 하루 종일 걷고 나서야 해인은 한적한 마을을 발견했다. 개도 고양이도 적다. 거리는 깨끗하고 아이들도 별로 없다.
마음에 드는군! 가출 사흘 만에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겠어.
다시 하늘을 보니 해가 천천히 지고 있었다.
해인은 울타리에 앉아 퉁퉁 부운 뒷다리를 핥았다. 얼마나 걸은 걸까? 까칠한 자신의 혀가 왜 이리 서러운지.
이렇게 1년을 지낼 순 없으니 얼른 하루 정도는 사람으로 지낼 만큼의 음기를 모아야겠다.
그래야 집으로 갈 수 있…….
“뇽?”
문득 코끝에 이상한 냄새가 스쳐 해인을 고개를 바짝 들었다.
하지만 길거리에 나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길고양이 레벨이 낮은 해인으로서는 당장 그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탐색하기 위해 귀를 앞으로 세웠다가 옆으로 세워본다.
킁킁, 공기의 냄새를 맡아본다. 하나 달리 느껴지는 게 없어 귀를 제자리로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이미 해인은 잠자리채 같은 커다란 망에 잡혀 있었다.
휙!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잡았다!”
“미야옹?!”(이게 뭐야?!)
해인은 화들짝 놀랐다. 어느 틈에 잡힌 건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잡혔다는 걸 인지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자자, 이제 퇴근하자고!”
그건 유기동물센터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퇴근 시간에 맞춰 운 좋게 한 마리 더 포획한 것이 그저 즐거운 모양이었다.
단, 해인의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지만.
“냑!”(싫어!)
“신고받은 것보다 못 잡은 것 같아.”
“그러게. 새끼 낳은 고양이가 있다고 했는데.”
“거참, 어디 숨었는지.”
이 동네가 유난히 한적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나 보다. 길짐승을 신고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세상엔 자신의 집 앞을 지나가는 주인 없는 개나 고양이를 못 보아 넘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이 마을은 아무래도 그게 유난스러운 모양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동네에 접어든 해인은 운 나쁘게 잡히고 말았고.
짐승을 경계하는 방법은 가까스로 깨우쳤지만 사람을 경계하는 것만은 아직 깨우치지 못한 해인이었다.
고양이와 사람의 경계에 선 해인이지만 분명 속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늘 몇 마리 잡았더라?”
센터 사람들로서는 이름표도 없는 해인을 잡는 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방치된 지 오래된 듯 여기저기 다쳐 있으니 더더욱 그랬다.
“미야 미야~!”(이거 놔줘~!)
애걸해봤지만 소용없었다. 헛된 울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뱉고 말았다.
그물로 된 반투명한 포획망 안에서 몸이 뒤집혀 난리를 쳐보지만 그렇다고 편해지지는 않았다.
다만 이대로 잡혀갈 수는 없었다.
운 좋으면 중성화 수술을 받고 그 증거로 한쪽 귀를 잘릴 거다. 운 나쁘면? 안락사당할 수도 있었다.
아, 물론 그전에 자신이 보통 고양이와 다르다는 걸 들키지 말아야겠지만.
해인은 순간 오싹하니 소름이 돋아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오늘? 일곱 마리째던가. 그래도 이 마을은 이제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아.”
“그럼 다음 마을은 어디려나……. 유난히 신고 들어오는 데가 어디랬지?”
찰칵.
해인이 들은 포획망을 목에 걸친 남자가 회색 캐리어를 웃으며 떠들었다.
이게 일상인 양 지극히 편안하게, 해인으로서는 공포 그 자체건만. 캐리어 안으로 떠밀리지 않으려 해인은 죽을힘을 다했다.
“음?”
그 회색 캐리어 안에 들어가면 모든 게 끝이었다.
그리고 그런 해인이 작은 덩치에 비해 힘이 세고 고집 있다는 걸 눈치챈 센터 사람은 노련하게도 포획망 입구를 아예 캐리어에 대고 뒤집어 흔들었다.
해인이 캐리어 안으로 날름 떨어지지 않고는 버틸 수 없도록 거칠게.
그래도 가까스로 해인은 캐리어 입구에 매달려보지만, 끈질기게 매달려 있던 대가는 퍽! 하고 한 대 맞는 것뿐이었다.
“컁!”
덜컹.
얼굴을 얻어맞은 해인은 캐리어 안으로 떨어져 몇 바퀴 굴렀다.
그리곤 차 트렁크에 휙! 하니 던져 넣어 캐리어 안의 해인은 또다시 이리저리 구를 수밖에 없었다.
이어 차에 시동이 걸리는 순간은 또 왜 이리 무서운지.
차가 움직이는 동안 해인은 공포에 떠는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에 짓눌리는 것처럼 온몸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짐승들의 눈이 무서웠다. 자신이 죽을 걸 아는 짐승들의 눈에 자꾸만 숨이 막혔다.
“워어우우우~!”
“미야옹! 미야옹!”
“워웅워오오…….”
다른 캐리어의 짐승들이 우는 소리가 마치 저승 곡처럼 들렸다.
끔찍했다. 살려줘, 돌아갈래. 엄마, 아빠. 언니! 자신을 버린 주인을 찾거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미친 듯이 울어대는 소리가 귓속으로 처절하게 파고들었다.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건 이럴 땐 그저 패닉에 빠지게 할 뿐이었다.
“끼잉! 낑.”
해인은 다른 동물들이 쏟아내는 불안과 공포에 짓눌려 이성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만약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 압박을 이기지 못했으리라.
한참을 굳어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캐리어 입구의 작은 틈새로 손을 내밀었다. 손등의 털이 다 벗겨져 나가겠다 싶을 만큼 구멍이 좁아 움직이기 벅찼다.
끼긱.
끽…….
“끄응.”
고양이 손이지만 사람의 지능을 가진 해인은 약간 고전한 끝에 캐리어를 열 수 있었다.
다만 잘못 꺾는 바람에 손목이 많이 아파왔다.
끙끙거리며 캐리어에서 세 발로 기어 나온 해인은 이대로 쓰러지고 싶었지만 포기했다간 정말 죽을 상황이라 몸을 일으키며 사람으로 변했다.
스멀스멀 해인의 몸이 커지기 시작하자 다른 캐리어의 짐승들이 조용해졌다.
홀연한 침묵, 그건 짐승들도 놀랄 만한 광경이었다.
무릎으로 서며 해인은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열댓 개쯤 되는 캐리어와 그중 반쯤 채워진 짐승들.
“……미안.”
안타깝지만 그 아이들까지 풀어줄 수는 없었다. 해인은 작게 사과하고는 차가 속도를 줄이길 기다렸다.
마침내 차가 멈췄을 때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안에서 열 수 있는 구조라 천만 다행이었다.
가만히 바깥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손잡이를 당겼다.
끼이이익.
문 틈새를 바라봤다. 아마도 도로 한가운데. 그 순간 해인은 문을 활짝 열며 고개를 강하게 털었다.
긴 검은 머리가 찰랑인다 싶은 순간, 해인은 다시 고양이로 돌아가 있었다.
벌린 문틈으로 휙! 하니 차에서 뛰어내리자 도로 한복판이었다.
퇴근시간이라 차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전부가 너무 크고 위협적이었다. 특히나 차는 해인 하나쯤 얼마든지 깔아뭉개 고깃덩이로 만들 듯했다.
맹렬히 빠르고 위협적이며, 바퀴 아래는 보지 않는 공포스러운 것.
“엄마! 저기 고양이!”
열린 자동차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한 아이가 해인을 가리켰다.
해인은 힐끔, 그 아이를 한번 보고는 냉큼 초록신호를 향해 뛰었다.
작은 몸에 4차선 도로는 너무도 거대했다. 하루 종일 뛰어도 건널 수 없을 것만큼 넓어 보였다.
“헉, 헉!”
숨이 차게 뛰어도 끝이 다가오질 않았다. 그때, 신호가 바뀌며 차 한 대가 돌진하다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해인의 귓가를 찢었다.
어둠이 막 내려앉은 도로 한가운데서 두 눈을 빛내는 고양이.
끼이이익!
빠아앙!
고양이에게 그런다 한들 보통은 알아들을 리가 없는데, 거칠게 사방에서 클랙슨을 울려댔다.
무섭고 놀라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일단은 살아야 하기에 해인은 도보까지 죽어라 뛰었다.
네 발로 달리는데 앞발과 뒷발, 등이 너무 아파 속도는 느렸다.
그런 해인을 본 누군가는 저 고양이가 차에 치였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상태가 좋지 못했다.
절뚝거리며 겨우 도보 위에 앞 다리를 올리고 숨을 고르며 해인이 뒤를 돌아봤다.
“아니! 이게 왜 열려 있어?!”
유기동물센터차가 비상등을 켜고 도로 한가운데 서 있었다. 해인이 탈출한 건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문이 열려 있어 기겁하고 있었다.
해인은 좁은 골목 속으로 또다시 뛰어 들어갔다.
그 와중에 왈칵 눈물이 나는 건 자신이 너무도 나약한 존재라서였다.
고양이란 이토록 약하고 작은 생명이었던가? 사람은 이다지도 무서운 것이었나.
“흐흑!”
태일이 보고 싶었다. 시율도 보고 싶었다.
다들 보고 싶었지만,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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