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은혜 베푼 고양이
“개냥~?”
“…….”
“어이, 예쁜 개냥 씨?”
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마치 가벼운 바람둥이 같은 어투로 심심하면 와서 불러댔으니 말이다. 그런 게 제 이름이라고 해인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본인은 진지하게 잘 지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으으…….”
“그 얼굴에 그런 작명 센스라니. 좋은 주인을 뒀네?”
“캭! 저리 가! 너 싫다고!”
참다못해 해인이 이를 드러내며 소리쳤지만 이 고약한 수의사는 배를 잡고 낄낄대며 웃을 뿐이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야옹이나 나비가 낫겠다.
해인은 철장 안에서 꿍해서는 식빵 자세로 요지부동이었다.
이름도 마음에 안 들고 이 호텔을 빙자한 쇠 감옥도 마음에 안 든다. 깨끗한 건 인정하지만 너무 차갑고, 무섭고 외로운 냄새가 난다.
불안해 흘린 눈물 냄새가 났다. 태일과 일주일이나 떨어져 이곳에 있자니 벌써부터 끔찍했다.
“이거이거, 단단히 심술이 나셨네?”
“……여기 싫어.”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 봐.”
“냄새나.”
결정적으로 위아래 옆 칸을 골고루 차지한 다른 짐승들이 계속 짖어대고, 울고, 먹고, 싸는 소리는 사람의 정신으로는 버티기가 힘든 것이었다.
특히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외롭고 불안한 것인지가 고스란히 와 닿아서 그게 고역이었다.
물론 냄새도 냄새였다. 이 고양이 몸은 귀도 코도 너무 좋아서 탈이었다. 애초에 이런 곳이 쾌적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뚱한 해인에게 시율이 병원 마감 시간을 알리더니 불을 끄며 물었다.
“우리 집에 데려가줄까?”
“……널 뭘 믿고?”
“내일 아침엔 다시 여기로 데려다줄게.”
그거 조금, 아주 조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이 철장 안에서 이대로 밤을 지새우는 건 분명 고통일 테니까.
하지만 시율이 제 사지육신을 멀쩡히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해인에게는 없었다. 저 녀석 앞에서 까닥 잠들었다가는 해부될지도…….
“싫어!”
“그럼 그러시든가.”
시율은 미련 없이 등을 돌리고 사라졌다. 절로 끙 소리가 나왔지만 그렇다고 천적의 집에서 잠들쏘냐, 관심 없는 척 해인은 고집을 부렸다.
***
결국 그날 밤 내내 해인은 귓등을 눌러 귀를 막고도 잠들지 못했다. 아마 거울을 본다면 눈이 새빨갛게 변했으리라.
주인 찾는 개들의 끙끙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괴로운지. 예민한 후각은 하루 사이 다른 짐승들의 냄새로 마비될 지경이었다.
하루 종일 철장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는 건 분명 고문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지.
그건 이런 고통을 주기 위해서일까? 사람의 지능으로 버티기에 철장 생활은 매우 버거운 일이었다.
심지어 그런 생활이 이틀 밤이나 이어졌다. 아직 닷새가 남았다.
눈앞이 빙빙 돌았다.
일단 한번 맛본 문명이 눈앞에 아른거려 미칠 노릇이었다. 시율에게 재워달라고 해야 할까?
아니, 아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데!
내 자제심이 이것밖에 안 된다니, 해인은 짐승 됨을 핑계 삼아 자신이 너무 안일해졌음을 탓했다.
“강 선생님, 이 아이가 식사를 안 하는데 어쩌죠? 오늘이 삼 일째예요.”
삼 일째. 아침이 되면 불을 켜고 식사를 챙겨주는 건 젊은 수간호사였다.
그리고 그녀는 해인이 자신 몫의 사료를 먹지 않아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당연하겠지만 해인은 사료를 건들지도 않았다.
평소 태일의 집에서도 태일이 걱정하지 않도록 먹은 척, 변기에 흘려보낼 뿐이었으니까.
“물도 안 먹어요.”
다른 동물들이 주인을 찾아 시끄럽게 울어대는데도 해인은 입을 꾹 다물고 묵언수행만 했다.
웅크린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건 철장 안이라고 해도 심했다. 해인 정도의 덩치라면 그 안에서 몸을 길게 펴고 뒹굴 만한 공간 여유가 충분한데 말이다.
“두세요. 주인이 없다고 심술부리는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 개중에는 주인이 자길 버리고 갔다고 굶어 죽도록 안 먹는 애들도 있잖아요.”
“그럴 녀석은 아닙니다. 주인이 자길 두고 가서 심술부리는 거지, 버리고 갔다는 생각도 안 할 녀석이고요.”
“그래요……?”
“네, 똑똑한 녀석이라 일부러 나 보라고 저러는 겁니다. 제가 담당이거든요. 제가 지켜보고 있으니 김 간호사님께서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시율은 해인이 안 먹어도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해인의 단식 투쟁에도 시큰둥할 뿐이었다. 마치 떼쓰는 아이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간호사가 없을 때면 종종 찾아와 궁금한 걸 묻고는 했다.
그가 묻는 것은 대게 다른 짐승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느냐 혹은 기분은 알겠냐. 뭐, 그런 거였다.
“대충은 알아.”
“어떤 식으로? 언어가 들려?”
“으음, 아니. 감정 같은 게 느껴져. 마치 내 감정처럼.”
“그렇군. 대단하네.”
시율은 주로 다른 직원들이 퇴근하고 폐점 직전이 되면 불을 끄러 와서는 이것저것 물었다가 불을 끄기 직전에 항상 같은 걸 물었다.
“오늘은 우리 집에 갈래?”
“아니.”
해인은 아직 시율을 믿을 수 없었다.
***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어째 병원이 하루 종일 한가한 날이었는데, 시율이 대뜸 철장 문을 열어주었다.
“나와.”
“……왜?”
“도망갈 건 아니잖아? 내 진찰실 안에서라면, 적당히 있어도 좋아.”
그거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고 보면 병원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 몇 마리는 병원 안을 자유롭게 뛰놀고는 했다.
시율은 해인의 지능으로 미루어보아 풀어줘도 무리가 없다고 여긴 모양이다.
확실히 해인에게는 철장 안이 더 스트레스였다.
“우냐아아.”(으아아아!)
사흘 만에 그 안에서 빠져나온 해인은 시율이 자신을 진찰대 위로 내려주자마자 시원하게 기지개부터 켰다.
어깨부터 등을 지나 꼬리 끝까지 쭈우욱! 하니 힘을 줬다.
“개운해?”
“냥.”(엉)
나름 성의껏 대답하며 손등을 핥았다. 다른 짐승 냄새가 잔뜩 밴 몸을 여기저기 핥는 건 고양이의 몸에 잠재되어 있는 본능이었다.
“오늘은 내가 담당이니까 괜찮지만 내일은 안 돼.”
“냥, 냥.”(알았어, 알았어.)
“내 진료실 안에만 얌전히 앉아 있어야 해. 할 수 있겠지?”
그가 보기에도 지적생명체인 해인에게 그곳은 고문이었나 보다. 철장보다는 나으니 까짓, 그러마 하고 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실 한구석을 차지고 앉아 있는 해인을 다른 손님들이 저 고양이는 왜 풀려 있느냐고 관심을 보였다.
“얌전한 아이라서요. 괜찮습니다.”
그러면 시율은 그렇게 대답하며 진찰을 계속하고는 했다. 해인은 오도카니 그가 진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리곤 시율이 의외로 제대로 된 의사라는 데 놀라야 했다.
말하는 고양이로서는 아주 비호감인 상대지만 말이다.
“선생님! 우리 캐리 어떡해요! 발에서 계속 피가…….”
“이런, 발톱이 깨졌네요. 뽑아야겠습니다.”
“네에?! 마취는…….”
“이만큼 깨졌으면 이대로 뽑는 게 낫습니다. 마취는 되도록 안 하는 편이 좋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의 진료방식을 보자면 약간…… 무식했다. 될 수 있는 한 간단명료하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권했다.
자신이 보기에 불필요하다 싶으면 환자가 원해도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쓸데없는 돈지랄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안 될 것 같으면, 심각하면, 치료보다는 안락사를 권유하기도 했다.
냉정한 건지 매정한 건지 오묘한 녀석이지만, 인간미가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어떤 심각한 분위기가 올 때면 해인은 구석에서 숨을 죽였다.
“안락사라고 나쁘게 보시면 안 됩니다. 이 수술을 반복하게 되면 아이는 더 고통스럽고, 힘들고, 말은 못하지만 어마어마한 통증을 견뎌야 합니다. 사람이 당한다면 죽는 게 더 낫다고 여길 만큼 끔찍할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더 이상 회복도 불가능하고…… 주인분도 이 아이도 힘들 뿐입니다. 서로를 위해 보내주시길 권해드리죠.”
한 손님에게 그가 안락사를 권한 후 뺨을 맞는 것까지 구경한 해인이 물었다.
물론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였다. 공중으로 살랑거리는 해인의 긴 꼬리가 뜻하는 건 드물게도 시율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왜 수의사가 됐어?"
일단 수의사가 됐다는 건 동물을 좋아한다는 건데 안락사를 권하다니. 그리고 사서 맞고는 맞을 줄 알았다는 듯 시큰둥하다니.
하여간 강시율은 특이한 인간이었다. 좋게 말하면 자기관이 뚜렷한 거지만.
“이젠 질문도 하네?”
“……대답하기 싫으면 말고, 흥!”
모처럼 물었는데 그는 해인이 제게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신기한 모양이었다.
제가 궁금해하고는 제가 민망해 해인은 별로 관심 없는 척 고개를 팩 하니 돌려 보였다.
시율은 그 관심이 나쁘지 않았는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제 이야기를 털어놨다.
“우린 집안이 의사 집안이야. 아버지는 외과의, 어머니는 신경과의, 형은 성형외과, 여동생은 치과의. 그래서 그래.”
“엄청 엘리트네. 그런데 왜 당신만 수의사야?”
“맞아. 다섯 명 중에서도 나 하나지.”
“……사람을 구하는 게 낫지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수의사보다는 그쪽이 본인에게 이득이 아닐까 싶었다. 공부를 못했나? 해인은 잠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저 인간이 그런 타입일 것 같지는 않았다.
시율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입가에 웃음을 걸고는 체온계를 소독하며 대꾸했다.
“동물은 말을 못 하잖아. 아, 보통은 그렇잖아?”
말하다가 해인을 슬쩍 턱짓했다. 너는 아주 특이케이스라는 듯, 동의를 구해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다 보니 아파도 어디가 아프다. 이래서 아픈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아픈데 언제부터 아팠다. 말을 못해서 진료가 힘들어. 아기들도 그렇지. 그래서 소아과랑 수의사가 점점 줄어들거든.”
“그래서 수의사가 됐다고? 이왕이면 소아과가…….”
“내가 좀 튀기거든. 집에서 하지 말라고 말리니까 더 하고 싶더라고. 사람만 생명인 건 아니니까.”
그렇게 대답하며 진찰대를 정리하는 강시율은, 좀 좋은 인간 같기도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해인의 비밀을 지켜줬고. 은근히 신경 써주고. 얄밉게 웃는 얄미운 인간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켜보니 악인은 아닌 것 같았다.
단골인 동물 중에는 친해 보이는 동물도 많았고 말이다. 예민한 짐승들이 호의를 가진다는 건 본성은 나쁘지 않다는 뜻이리라.
어차피 계속 봐야 할 사이니 조금 친하게 지내줄까? 해인은 그를 지켜보는 동안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얼마 안 가 또 원수 사이가 되었지만 말이다.
***
그것은 마지막 날의 일이었다. 내일이면 태일이 돌아오는 날. 그날도 해인은 시율의 손에 옮겨져 진찰실에서 쉬고 있었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뻔뻔하게 진료실에 기거했다.
낮은 캐비닛 위에 누워서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오늘도 무료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살짝 꿰매면 되겠네요.”
“어머나…… 심한가요?”
“조금요. 음…… 마취는 필요 없겠습니다. 살짝 집는 개념이라.”
“그래도 아프지 않을까요?”
“당연히 아프죠. 그래도 마취할 정도가 아닌데 굳이 마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율의 말에 의하면 동물을 마취하는 비용은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대충 10만 원 선이었다.
마취 비용보다는 그 마취를 그 짐승이 받아도 되는지, 조직 검사에 드는 비용이라고 했다. 실제로 100마리면 5마리 꼴로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같은 마취약을 같은 종의 짐승에게 사용해도 사람이 그렇듯 개체 차가 있어서. 약한 장기가 있으면 그 장기만 마취에서 안 깨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법적으로 마취 전 검사를 무조건 하지만 짐승의 경우 주인이 돈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검사를 거부할 수 있다고 했다.
못 깨어날 확률은 약 5% 미만이니 주인에 따라 10만 원은 아까울 만도 했다.
“상처가 그리 심하지 않다는 뜻이신 거죠?”
“네, 금방 끝납니다. 일단 잠시 밖에 나가 계시는 게 낫겠습니다.”
또한 마취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라 시율은 심각하지 않으면 마취를 추천하지 않는 수의사였다.
동물에게는 전신 마취밖에 사용할 수 없는데, 전신 마취 자체가 성격을 변하게 할 만큼 몸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하니 말이다.
대신 매번 피를 보는 건 시율이었다. 험한 짐승들에게 할퀴고 물리고를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취시켜 늘어뜨리면 될 텐데. 그럼 돈도 벌고 수술도 편하고, 시율이 고집하는 건 해인이 보기에는 좀 손해 보는 일이었다.
“네…… 얼마나 걸릴까요?”
“넉넉잡고 삼십 분 안에 끝납니다. 잠시면 되니 걱정 마시고 기다리세요.”
주인이 나가자 더 불안해하는 하얀 페르시안 고양이를 보며 해인은 저도 저랬을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아마 비슷했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저 페르시안 쪽이 더 동정표를 호소하기 좋은 생김새였다. 긴 털에 파란 눈. 얼마나 우아하고 예쁘단 말인가.
새까만 자신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외모였다.
페르시안이 공주 같은 외모로 바들거리니 해인의 마음이 다 약해질 지경이었다. 시율은 이번에도 꿈쩍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의사의 소양 중 하나로 매정함이 있다면 시율은 그걸 갖춘 셈이다. 저렇게 예쁜 아이가 떨고 있는데 약해지지 않다니.
“먕?”
문득 예의 페르시안 고양이가 돌연 해인 쪽으로 튕기듯 날아온다.
“키양야아아앙!”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동체시력이 워낙 좋은 해인은 날아오는 모양을 마주 보며 슬쩍, 옆으로 몸만 조금 움직여 피해버렸다.
해인이 있던 빈 공간에 내려앉은 페르시안은 높은 캐비닛 위로 또 훌쩍훌쩍 높이 올라가버렸다.
고양이답게 아주 높은 곳으로. 그래봤자 진찰실 안이었지만.
시율이 잡으려고 손을 뻗자 이번엔 단번에 캐비닛 아래로 뛰어내려서는 우다다 도망을 쳤다.
진찰실은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시율은 얌전하게 오들오들 떨던 저 페르시안이 이렇게 말광량이일 거라고는 여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낯선 곳에 놀라고 주인이 없음에 한결 불안해진 페르시안 고양이가 마구 진찰실 안을 뛰어다니며 날뛰었다.
잡으려는 시율과 더욱 온 힘으로 여기저기 건드리며 도망 다니는 페르시안 고양이 덕에 비커가 떨어지고 액자가 떨어지고 난리였다.
우장창!
“이 녀석!”
“우먀먀먀먀!”
페르시안은 결국 그의 손에 잡히긴 했다. 하지만 해인보다 거칠어서 저를 붙든 시율의 손이며 머리를 마구 공격하고 있었다.
손에 잡혀서도 손발을 가만두지 않고 할퀴어대니 그는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잡은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든다.
저걸 진정시켜야 치료를 하든 뭘 하든 할 텐데…… 저렇게 사나워서야. 그것 때문이라도 마취시켜야 할 것 같았다.
다른 애완 고양이와의 싸움으로 허벅지 안쪽이 찢어진 하얀 고양이는 유난히 거칠고 신경질적이었다.
제압에 능숙하기만 하던 시율이 못 당해낼 정도다.
해인은 그걸 보며 저 공격 방법을 한 수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공격은 본능으로 하는 거군! 하며 감탄도 했다.
하품이나 하며 고역을 치르는 시율을 지켜보는 건 해인에게 좀 즐거운 일이었다. 맨날 저를 놀리는 인간이 저렇게 당하다니. 이렇게 재밌기도 힘들 텐데.
“캬이야아아앙!”
“으얏, 잠깐! 잠깐!”
시율은 계속 페르시안의 사력을 다한 공격에 고전을 면치했다.
두 손은 벌이라도 서듯 위로 올리고 있고, 그 위의 고양이가 버둥거리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정도였다.
어느샌가 한쪽 슬리퍼가 벗겨졌는데 그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평화 협상을 시도하지만 페르시안 고양이는 해인만큼의 지능이 없는지라. 아니, 있더라도 지금은 거의 이성을 잃은 상태라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 저 고양이, 딱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그 상태였다. 저렇게 공격해야만 시율을 제압할 수 있는 모양이다.
“캬앙!”
“이 녀석! 그만 못…… 우앗!”
“시야아악! 우캭!”
“응? 이봐! 거기 조심, 어어?”
나름 흥미진진하게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해인은 깜짝 놀라 시율을 불러 세웠다. 그가 뒷걸음질 치는 자리에 비커가 깨져 있으니까.
아까 페르시안이 떨어뜨리면서 깨진 모양인데, 그건 신발을 신고 밟아도 아킬레스까지 닿을 만큼 뾰족하고 커 보였다.
하지만 그는 해인이 놀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손에 잡힌 페르시안이 워낙에 사납게 울며 난리를 피우고 있었으니까.
“야아!”
폴짝, 서랍 위에서 진료대 위로 옮겨간 해인은 재차 시율을 불렀다. 하지만 괴성에 가려 역시나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불안해서 저도 모르게 진찰대 위에서 발을 돌돌 구르며 시율의 발아래를 주시했다.
뒤를 조심하라고! 거기 발밑!
검지만큼이나 높은 비커 조각을 밟았다가는 대량의 유혈사태가 벌어질 게 분명했다.
“저기 뒤에…… 이봐, 야! 어? 야아!”
그런데 해인의 염려 가득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율은 자꾸만 깨진 유리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어쩌지, 어쩌지? 해인은 당황해서는 황금색 눈동자를 크게 치켜떴다.
그가 점점 페르시안 고양이의 공격에 밀려 뒷걸음질 치는 게 이제는 보기가 무서웠다.
“가만! 있지, 못해?!”
바로 한 발자국 뒤에 뾰족하게 솟은, 칼날이나 다름없는 비커 조각이 있으니까.
그게 발에 박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자신까지 아팠다. 심장이 크게 콩닥대기 시작했다.
살 속으로 밀려들어 뼈를 찌를…… 예견하는 것만으로 끔찍했다. 마치 제 뇌 속으로 조각이 찔려오는 듯한 아찔함에 한순간 현기증이 인다.
다급해진 해인이 손을 뻗어 그를 말려보려 했지만 그래 봤자 고양이 손이었다.
“끄악!”
“야아아!”
그때였다. 하필이면 시율은 피가 튈 만큼 손가락을 크게 깨물리더니,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려 했다.
해인의 성능 좋은 눈에는 그것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그대로 넘어지면 발로 유리를 밟는 게 아니라. 뒤통수에 처박힐지도 몰랐다.
애탄 경고의 외침은 사나운 페르시안에게 모조리 먹혀버렸다.
“위험……!”
안절부절못하던 해인은 너무 당황해서는 성큼 일어났다.
“캬아오오옹!”
“너 그만…… 어?”
전도유망한 수의사 강시율은 자신이 붙들고 있던 페르시안 고양이가 제 손등을 인정사정없이 아그작! 크게 깨물다가 이내 도망가버렸는데도 몸을 굳히고는 그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안간힘을 다해 붙잡고 있던 녀석이지만 지금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뒤, 돌아…… 보지 마.”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분명히 들었는데도 갑작스레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은 말랑한 존재에 참지 못하고 그만 뒤를 돌아봤다.
그건 거의 본능이라 어쩔 수 없었다.
분명 진료실 안에는 자신과 고양이 두 마리밖에 없었는데 홀연히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으니, 황망한 기분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야말로 인간이라면 외면할 수 없는 강력한 호기심의 본능. 설마 싶은 마음.
“……하?”
그리고 그는 ‘고양이가 말을’ 했을 때보다 더 놀라고 말았다. 아마 그 수백 배쯤? 아니, 감히 어림할 수 없을 만큼 얼이 빠지기도 했다.
왜냐면 자신의 하늘색 수의에 살짝 감겨 있지만, 제 등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그것은…… 분명 사람이었으니까.
그것도 하얗고 말랑한 나신의 인간 여자.
눈이 마주치자 새빨갛게 뺨을 붉히며 내는 목소리는…… 자신이 최근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검은 고양이와 똑같은 음성이었다. 그 특유의 어투였다.
“보지…… 말라니까!”
해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왜 그냥 찔리든 말든 그러다 운 나쁘게 죽든 말든 모른 척하지 못한 걸까!
그리고 자신은 왜 변신을 하면 알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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