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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스-7화 (7/114)

7화. 고양이의 이름

무릎 위의 고양이에게 그는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이름을 지어줘야 하는데.”

상냥한 남자란 이런 남자를 두고 하는 말일 거다. 시율의 손에서 공포에 떤 직후라 그럴까. 해인은 그가 유난히 다정하게 느껴졌다.

태일은 항상 온화한 얼굴이었다. 남잔데도 피부도 뽀얗고, 웃는 입매가 예뻤다. 약간 곱슬거리는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은 염색인지 태생인지, 여튼 그것마저 그에게 너무도 잘 어울렸다.

전체적으로 옅은 색의 남자는 부드러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을 향해 상냥하게 말을 건넬 때면 해인은 제가 다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어쩜 이렇게 예쁠까?”

짐승에게도 그는 더없이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저를 쓰다듬는 그 손이 기분 좋아 절로 목 안이 그릉댔다. 누군가와는 정반대였다. 해인은 새삼 수의사를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남자는 저를 실험동물이나 외계 생명체로 보는 듯했다. 저를 보는 그 의미심장한 눈길은…… 절로 털이 거꾸로 치솟았다.

해인은 놀란 털을 다시 가다듬었다. 손등에 침을 발라 눈 위를 누르고 목을 돌려 등 위의 털이 납작해질 때까지 핥았다. 부랴부랴 그렇게 진정시키고 나니 그제야 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안락한 집 안에서 이렇게 털 관리나 하다니. 이거야말로 궁극의 상팔자였다. 옥상에서 비 맞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으슬으슬 발바닥이 시려왔다.

“미야.”(신세 좀 질게요.)

해인은 이래저래 채여본 터라 당분간은 얌전히 태일의 집에서 애완고양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사람 모드로 그럴싸하게 말하고 걸을 수 있게 될 때까지만이라도 말이다.

“음? 뭐라고 하는 걸까.”

그는 고양이를 좋아하고, 어쩌면 모든 동물을 좋아하고, 인간에게도 상냥하다. 그런 그의 집은 더없이 쾌적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다. 일단 해인 자신에게 막연한 호의를 보여주니 믿을 만했다.

온전히 고양이를 향한 것이지만 그래서 더욱 기댈 만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마침 사신과 약속한 곳과도 가까우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외간 남자와 어떻게 사나 싶었는데. 다시 맞본 문명의 안락함은 헤어 나가기가 힘든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깨닫기를, 이곳보다 제게 편한 곳은 없을 것 같았다.

그 망할 의사 놈과 협력하기로 한 마당에는 더더욱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해인이 갸릉갸릉 울며 고개를 꾸벅이자 태일의 손이 고양이의 턱 밑을 쓰다듬고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태일은 그저 자신의 집 안에 살아 있는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 보였다. 특히나 그 존재가 아주 얌전하고 총명해 보인다는 것이 더없이 흐뭇했다.

그렇게 둘의 동거 생활이 시작됐다. 물론 주인과 그 애완고양이로서였다.

하지만 거기에 악마 같은 수의사 강시율이 끼어들 거라는 점은, 해인에게 예견된 불행이었다.

***

고양이 흉내는 어렵다. 빌어먹을.

"똥을 안 싸요."

태일이 해인을 진찰대 위로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에 수의사 시율이 풉, 하니 인중을 부풀리며 웃음을 참아냈다.

“픕크큭…….”

환자에게 자주 듣는 말이긴 하지만 이 지적인 척하는 생물이 대상이 되니 우스운 것이다.

해인은 어떻게든 시율과 멀어지기 위해 태일의 어깨 위로 안간힘을 다해 기어 올라갔다. 겨우 3일 만에 다시 이 녀석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싸버릴 것을. 먹고 싸버릴 것을!

고양이 생활은 생각보다 디테일이 필요한 일이었다. 해인은 뜻하지 않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위협받고 있었다.

“화장실 모래는 뭘 쓰십니까?”

“일단 종류별로 세 가지 정도 자리를 만들어줬는데 거들떠도 안 봅니다.”

샥샥! 거리며 태일의 어깨 위로 올라간 해인은 애처로울 만큼 바짝 털을 세우고 시율을 경계했다. 그 모양을 올려보며 시율이 물었다.

“흐흠, 먹는 건 잘 먹습니까?”

“네. 출근하기 전에 먹이를 주면 돌아와서 보면 다 먹고 없어요.”

“그런데 배변 흔적은 없다? 삼 일이나?”

“그래서 그게 걱정스러워서요.”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요. 먹긴 먹는데…….”

안 싼다? 시율의 눈이 또다시 흥미로움으로 가득 차 반짝였다. 해인은 그 눈빛을 볼 때면 그저 소름이 왕창 돋을 뿐이었다.

“제가 아파트에 살아서 달리 쌀 곳도 없는데. 집 안 말고는 돌아다닐 곳도 없거든요. 그렇다고 변기에 싸고 물을 내리진 않을 텐데…….”

태일이 이상한 듯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고 시율은 알 만한지 소리 죽여 웃을 뿐이었다.

그는 아마도 해인이 뭔가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긴 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게 사료인지 큰 볼일인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눈치챘다. 시율은 피식 웃으며 믿음직한 수의사다운 어투로 말을 이었다. 눈길은 내내 해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거 변비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배 속에 얼마나 쌓였나 한번 엑스레이를 찍어볼까요?”

“먀?”(변비?)

“아, 그럴까요? 큰 병이느니 차라리 변비였으면 좋겠는데.”

호감 최고조를 달리는 주인 양반이 제 변비를 기원하는 건 아주 끔찍한 기분이었다. 해인은 저를 어깨에서 잡아 내리려는 태일에게 처음으로 이를 드러냈다.

“미야!”(싫어!)

“냐옹아?”

항상 너무 순해서 탈이었던 해인이 학을 떼며 샤악, 하는 소리를 내자 태일도 깜짝 놀란 듯했다.

그 모양을 지켜보던 시율이 뒤늦게 손을 내저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농담입니다. 무조건 돈 들여 엑스레이 찍는 것도 사실 우습고.”

“그럼?”

“밖에서 생활하던 녀석들 중 드물게 진짜 흙이 아니면 안 싸는 녀석들이 있거든요.”

“그럼 흙을 파와야 됩니까?”

“그보단 근처에 공원이나, 어디 널찍한 데 하루에 한 번쯤 잠시 풀어줘보세요.”

걱정 많은 집사인 태일은 시율의 처방에 꽤나 당황하는 얼굴이었다. 얕은 고양이 지식이었지만 그건 아주 위험해 보였으니 말이다.

개도 아니고 고양이에게 배변을 위한 산책이라니.

“그러다 도망가면 어떻게 합니까?”

“확실히 아무에게나 추천드리는 방법은 아닙니다만, 녀석은 워- 낙 똑똑해서 괜찮을 것 같네요.”

“……하긴, 우리 애가 영리하긴 합니다. ‘손’ 하면 주고 ‘앉아’ 하면 앉더라고요.”

“오, 그래요?”

해인은 그가 장난삼아 개에게 하듯 손을 달라고 했을 때 기꺼이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어주었다. 마치 개처럼.

찰나 심각하게 걱정하던 태일은 이내 흔한 팔불출이 되어서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생각해보니 아파트 옥상정원에 풀어주면 되겠네요. 처음 데려온 곳도 그곳이거든요.”

“좋네요. 거기라면 위험한 일도 없을 테고. 그리고 아직 집이 낯설어 화장실을 안 가는 걸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참거든요. 아무 데나 싸기도 하고. 하지만 그러진 않죠?”

“네, 그러진…….”

“일단 옥상에 하루 이틀 풀어줘보시고 계속 안 싸는 것 같다 싶으면 다시 데려와보세요.”

태일은 경청하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의사나, 선생님의 말이라면 무조건 맞는 줄 아는 순진한 타입이었다.

이내 시율이 방긋 웃으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잠시 진료해보겠다며 태일에게 대기실을 권했고, 태일은 별 의심 없이 해인을 악마의 손에 넘겼다.

“먀먀!”(가지 마요!)

방심 하고 있던 해인은 어느새 시율의 손에 들려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애타게 태일을 불러봤지만 소용없다. 이미 진료실 문은 굳게 닫힌 뒤였다.

“어이, 변기에 싸는 거야? 아니면 안 싸는 거야?”

“…….”

단둘이 되자마자 시율이 주체 못하는 탐구욕에 물었다. 그 간지러운 곳 좀 긁어달라며 못 견뎌하는 얼굴이라니!

해인은 고양이 행세를 하기 위해 사료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배변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먹질 않는데 쌀 리가 있나!

이 고양이의 형상을 한 몸은 사실 사신탈이라는 저승의 물건이라, 배고픔은 느끼나 미약했고 식은 필수요소가 아니었다. 또한 추위도 더위에도 강했다.

전부를 말해줄 수는 없지만 정체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배변 현황일 뿐이니 해인은 팩! 하니 고개를 돌리며 심술 맞게 대꾸했다.

“안 싸!”

일단 이 수의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였고, 저 눈빛은 너무도 부담스러웠으니까.

“그거 엄청나군. 너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거냐?”

“……아마도.”

“묘하네. 대체 뭘까, 이게?”

그는 아무래도 궁금한 게 많은지 근질근질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해인을 자극해봐야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해인이 꽤나 심술이 덕지덕지한 신경질적인 고양이라는 걸 이미 잘 알았으니 말이다. 그의 손등에는 아직도 해인에게 할퀸 자국들이 선명했다.

“내가 한 번 도와준 거다, 너?”

“우냐냐?! 뭘 도와줬다는 거야!”

“변비 진단 안 내려줬잖아?”

“먀먀먀! 거참 고맙네요!”

해인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시율이 뭐가 또 궁금한지 해인의 쫑긋한 두 귀를 만지작거렸지만 이를 박박 갈 뿐 물지는 않았다.

이 수의사 덕에 좀 더 고양이 행세를 하기 용이해진 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적으로 만들긴 두려운 상대니 마지못해 아군으로 두기로 했다.

아침마다 보지도 않을 볼일을 위해 옥상에 올라가야 할 테지만, 적어도 흉내 내기는 그럴싸해졌다.

***

관찰 결과 태일은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고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종종 잡지 같은 걸 산더미같이 들고 돌아오는 걸 보아 해인이 짐작한 대로 사진작가가 맞는 듯했다.

아마도 패션 쪽의 포토그래퍼로 보였다. 본인도 안 꾸민 듯 꽤나 멋스러운 스타일이었고.

친구로 보이는 안경잡이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모양으로 집에 쓸데없이 자주 찾아왔다. 잘은 모르겠지만 둘은 같은 회사 소속인 모양이었다.

아, 대화를 주시해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둘은 소꿉친구인 모양이고, 그 사이에는 여자인 소꿉친구가 하나 더 있는 듯했다.

셋은 매우 친해서 자주 모였고, 해인은 그 사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습지만 애완고양이로서 그를 독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속에서 부글댔다.

그녀의 하루는 대부분 태일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태일을 기다리고, 태일을 반기고, 태일의 손길을 받고.

혼자 있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기만 했다.

홀로 보내는 시간은 점점 무의미하고 따분해서 잠을 자는 것으로만 때웠다.

그가 집에 있을때 만이 해인의 시간은 외로움에서 벗어났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 그만을 기다리는 게 최근 해인의 모든 일과였다.

“다녀왔어.”

“먀?”(왔어요?)

돌아온 그는 매번 그렇게 다정하게 인사하며 해인을 안아 올리고는 했다. 그리고 코끝으로 키스하고는 다시 살며시 바닥에 내려줬다.

처음엔 낯간지러웠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곤란할 정도로 당연하게 그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고양이 행색을 하고 있어서인지 주인에게 애완동물로서 애정표현을 받고 하는 데 점차 적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와의 일상이 해인은 점차 마음에 들었다.

하루의 대부분은 해가 잘 드는 베란다 창가에서 잠들었고, 그 외에는 그의 곁에서 골골댔다.

그가 자신을 안아들고 집 밖으로 향하면 얌전히 안겨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자, 다녀와.”

태일은 출근하기 전과 후에 해인을 옥상정원으로 데려가 잠시 풀어줬다.

그러면 해인은 자신이 한동안 지냈던 수풀들을 한 바퀴 탐험하고는 그의 앞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몇 번 그의 근처에서 흙을 파는 시늉을 했더니, 그는 볼일을 보고 온다고 여기고는 안심했다. 물론 그냥 그런 척할 뿐이었다.

둘은 여유가 있을 땐 공원에서 좀 더 자유를 즐겼다. 바람을 맞으며 같이 앉아 있거나 그가 해인을 카메라로 찍고는 했다. 해인은 좋은 피사체였다.

얼마나 영리한지 그가 손짓하는 대로 움직였다.

움직이길 원하는 것 같으면 천천히 걷고, 가만있기를 바라는 것 같으면 멈춰서 그를 돌아봤다. 그의 손이 만져주는 대로 턱을 들고 꼬리를 세우고 서 있기도 했다.

“미야?”(이렇게요?)

고개를 갸웃하며 해인이 그렇게 물으면 그가 핫, 하니 웃음을 터트리는 얼굴은. 너무 매력적이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해인은 점차 그의 앞에서 애교가 늘었다.

예쁜 척, 귀여운 척 하는 게 그리 창피하지 않았다.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왜냐하면 애완고양이에게 애교 부리는 일은 일종의 업무였으니까.

심지어 할당량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가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먼저 다가가서 비비적대야 직성이 풀렸다.

“넌 왜 이렇게 귀여운 거니.”

그도 그럴 것이 태일이 보여주는 웃음은 너무도 상냥하고 다정했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에 유일한 위안이었다.

누군가에게 예쁨 받고 있다는 사실은 못내 행복한 것이었으니까.

그와의 생활은 생각대로 안락하고 그의 곁은 편안하고. 종종 그 동물병원에 가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무튼 나쁘지 않았다. 좋은 편에 가까웠다.

그의 모델이 되는 데도 익숙해졌으니 이대로 1년쯤은 금방 갈 것 같다.

물론 심술맞게도 행복이란 늘 고생과 함께이지만 말이다.

***

“선생님, 급하게 일주일 정도 출장이 생겨서요. 그동안 이 아이 좀 맡아주실 수 있나요?”

썩은 동태 같은 눈을 한 채 해인은 태일의 품에 뚱하니 안겨 있었다. 입술을 내밀 수만 있다면 진작 삐죽하니 내밀었을 거다.

못 마땅한 건 두 가진데 하나는 당연하겠지만 이 동물병원에 왔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태일이 앞으로도 종종 출장을 갈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즉 시율에게 종종 신세를 져야 한다는 뜻이니까!

나 혼자 집 잘 볼 수 있다고 태일에게 어찌 전해야 할까?!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문제였다.

말하는 고양이는 역시 기분 나쁘니 말이다.

“좋고말고요. 저희 병원은 호텔 층이랑 입원 층이 다르니까 안심하고 이용하셔도 됩니다.”

“제가 오늘처럼 갑자기 출장이 잡히는 경우가 많아서 걱정입니다. 매번 호텔에 자리가 있을까요?”

“걱정 마세요. 없으면 저희 집에서라도 맡아드리죠.”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시율의 말은 백 프로 진심이었다. 이 병원이 싫어서 진저리 치는 누군가와 달리 시율은 항상 매우 반가운 눈치였다.

“오히려 공짜로 해드리지 못해서 유감입니다. 대신 지인 할인을 좀 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부담 갖지 마세요. 저도 이 아이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그럽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한테 맡겨야 안심이 되네요.”

“사람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미약!”(없어!)

해인이 꽥 하니 기겁해서는 항의했지만 두 남자는 고양이가 뭐라고 하든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해인은 원체 병원을 싫어하는 고양이었으니까.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화장실은 역시 흙 위가 아니면 안 보는 것 같고. 사료는 먹는 걸로 좀 챙겨왔습니다. 그리고 또…….”

“좋은 주인이시네요.”

“아, 아닙니다. 부끄럽군요.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까다로운 녀석이 잘 따르는 건 그런 이유겠죠. 참, 이름은 정하셨습니까?”

해인이 태일과 지낸 지도 어느덧 이 주째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해인을 고양아 혹은 야옹아, 라고 부를 뿐 이름을 지어주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올 때마다 진료카드에 무명, 이라고 기재하는 것도 슬슬 한계였다. 오죽하면 수의사가 먼저 물었을까.

“사실은 주인이 나타날까 봐 이름 짓기를 좀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아아, 그러셨군요.”

“포스터도 정류소에 붙여보고, 인터넷에도 주인 찾는 글을 올려봤는데…….”

“그랬습니까? 그래서 연락은?”

“연락이 없네요. 역시 제 고양인가 봅니다.”

그렇게 대꾸하는 태일은 약간 기뻐 보였다. 저를 올려다보는 해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코끝에 쪽, 하니 입을 맞추는 걸로 애정을 표현했다.

보통의 고양이라면 꽤나 싫어할 일이었지만 해인은 순순했다. 그녀는 마치 개처럼, 주인에게 한없이 순종적인 고양이였다.

해인은 자신에게 이름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 귀를 쫑긋거렸다. 궁금하긴 시율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럼 이름은?”

“한참 고민해봤는데 딱 어울리는 게 마침 있더라고요.”

“호오.”

“개냥이로 할까 합니다. 고양인데 꼭 개처럼 애교가 많거든요. 그런 애들은 개냥이라고 한다더군요.”

잠시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해인은 이내 입을 딱, 하니 벌리고 말았다. 그건 수의사인 시율도 마찬가지였다.

태일만이 해사하게 웃으며 진심으로 들떠 보였다.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개냥이.”

둘 중 누구도 이 완벽함에 가까울 만큼 점잖고 착한 데다 잘생긴, 신태일이 그런 처참한 작명센스를 가졌으리라고는 여기지 않았으니까. 역시 신은 공평했다.

시율은 태일의 품에 안긴 해인과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풉, 하니 웃음을 터트렸다.

해인은 마치 입에 뭔가 물고 있는 것처럼 입을 헤- 하니 벌리고 있었다.

“개냥이라, 크크큭, 개냥이…… 아주 좋네요. 어울려요. 정말 딱이네요.”

“아, 괜찮습니까?”

절대 안 괜찮지! 해인은 제발 그것만은 막아달라는 뜻을 담아 간절하게 시율을 바라봤다.

그건 지적 생물에게는 너무 잔인한 이름이었다.

남녀노소 불문 많은 생물들이 항복을 외친다는 고양이의 애절한 얼굴이었지만, 수의사인 시율은 그런데 면역이 있었다.

알 바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심지어 거참 잘됐다는 듯 콧노래까지 부르는 그는 역시 나쁜 놈이었다.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 더 좋군요. 잘 어울립니다. 개냥이한테.”

개냥이, 병원 차트에 해인의 이름은 그렇게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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