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고양이와 수의사 사이
기어코 그렇게 소리치고는 해인은 이제 다 틀렸구나 하고 절망했다. 이 망할 의사 놈이 자신을 해부하거나 팔아넘길 거라 자신하는 거다. 포르말린에 말려질지도 몰라!
지금 이 순간 사신의 당부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자신의 고양이 몸에 대한 안위로 불안하다. 하지만 의외로 다시 슬쩍 다가온 의사의 손끝이 간질간질했다.
해인의 코 위가 촉촉한가 보더니 눈 밑을 벌려봤다. 이채 어린, 괴상 쩍다는 표정으로.
“너…… 대체 어떻게 말하는 거냐? 고양이 맞긴 한 거야?”
“……놔줘! 먀먀먁! 풀어줘!”
“정체가 뭐야? 요물인가?”
그가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턱을 문지르며 해인의 몸을 낱낱이 주시했다. 눈으로만 저를 보는데도 오싹오싹하니 소름이 돋았다.
악마다, 악마. 가운을 입은 악마야.
수의사는 마치 하루 온종일도 그렇게 지켜볼 수 있을 것처럼 해인을 보는 데 빠져 있었다. 핀셋에 고정된 나비처럼 해인은 그냥 파닥거리며 바르작거렸다.
급히 소리치는데 고양이 말이 조금 섞여 나오는 걸 알아챘다.
“먕! 난……!”
“넌, 고양이야, 아니야? 뭐야?”
어쩜 그리 호기심이 넘치는지. 위험하게 반짝이는 눈에 해인은 오싹, 손발을 오그렸다.
“……나는, 나도 몰라. 모른다고! 놔줘!”
“그냥 지능이 높은 고양이…… 는 아니고, 말을 하는 걸 보니 고등 생물인 것도…… 같고.”
“흐냐냐! 왜 이래?!”
“어디 보자…….”
그는 여러 가지를 중얼거리더니 해인의 입속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비집어 넣었다.
고양이의 구강구조상 사람의 말을 하는 게 불가능하니 그걸 살피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딜 겁도 없이!
해인이 냅다 콰득! 수의사의 손가락을 힘껏 깨물었다.
송곳 같은 날카로운 어금니가 그의 손톱 사이로 인정사정없이 파고들었다. 해인은 피 맛이 났지만 계속 아작아작 씹어댔다.
감희 숙녀의 입안에 손가락을 집어넣다니! 턱 힘만 있다면 씹어 먹을 작정이었다.
“냑냑냑!”
“으악! 이게 또……!”
하지만 그가 손가락을 빼내고 피가 줄줄 흐르는 검지를 감싸 쥐자 번뜩 제정신이 들었다. 아차! 해인은 실컷 물고 나서야 식겁했다.
지금은 그에게 까다롭고 사납게 굴 때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그에게 애원하며 살려달라 빌어야 할 입장이었다.
해인은 그제야 커다란 눈을 그렁그렁 뜨며 애원했다.
“미안해. 사과할 테니까 풀어줘, 의사…… 응?”
“아야야, 그거 엄…… 청! 사납네. 아오, 정말…… 이걸 그냥……!”
“하, 핥아줄까? 응? 많이 아파?”
해인은 급히 그의 안부를 물었으나 제가 생각해도 참 의미 없었다. 그의 손은 이미 여기저기 핏자국과 상처로 낭자해 있었으니 말이다. 바이킹의 손도 저보단 깨끗할 것 같았다.
“아오! 네 정체가 뭔데, 그러니까! 고양이야! 뭐야?!”
“……나 고양이 할게! 응? 그냥 고양이 할 테니까 나 풀어주라.”
“말하는 고양이가 세상이 어디 있어?”
그치? 어림없긴 하지? 해인은 격한 동공의 지진을 느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앞으로는 말 안 할게, 그러면 되잖아 응? 그러니까 다른 사람한테도 비밀로 해주면 안 될까? 부탁할게. 깨문 것도 사과할게.”
“하! 풀어달라, 말하지 말라, 바라는 것도 많네. 실컷 깨물어놓고는 말이야.”
수의사가 비아냥댔다. 그는 결코 당하고만 있는 타입은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의 너덜너덜한 손을 흔들어 보이는데 그건 확실히 과다출혈 수준이었다.
“자, 골라봐. 해부해줄까. 아니면 방송국에 팔아줄까? 역시 비싸게 받으려면 그쪽이지?”
머리 좋은 놈이 나쁜 짓도 잘한다고 협박도 그런 끔찍한 협박이 없었다. 물어뜯은 것에 대한 보복일까?
새까만 고양이 털 위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안 나오는 줄 알았더니 나온다. 털 위를 적시는 눈물자국을 보며 신랄하게 수의사가 비웃던 것을 그만뒀다.
해인은 애걸하다시피 했다.
“나 생각할 줄 알아! 사람만큼 똑똑하고. 그냥 고양이 아니야. 해부 싫어!”
“……그럼 대체 뭐냐고?”
“나도 몰라! 그래도 놔줘! 미야미야먁!”
사신탈인 건 알지만 그건 어차피 말할 수 없었다. 사신이 그런 주박을 걸어뒀기 때문이었다. 배를 째도 주술에 걸려 말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자신이 본래 사람이라는 것 역시 그랬다.
수의사는 처음엔 신기해하더니 이제는 기가 막힌 모양이다. 해인조차 스스로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 못했는데 그가 해인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을 리 없다.
“몇 살인데, 너?”
“몰라!”
“다 모르냐?”
“그으래!”
이렇게 속 보이게 잡아떼기도 힘들 텐데.
수의사는 허탈하게 웃으며 턱을 긁적였다. 식탁 위의 생선처럼 진찰대 위에 잡힌 해인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구미가 당겼는지 참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럼 너, 나랑 살래?”
“뭐약?”
“어차피 인간한테 길러지면서 전전하는 묘생이면, 내가 길러줄게.”
그거 엄청나게 위험해 보이는 제안이었다. 지옥으로의 초대 같은 걸까? 해인은 누가 봐도 싫다는 얼굴이었다. 아니, 거의 혐오하는 수준의.
“으웩.”
“반응이 너무하는걸? 내가 더 잘생기지 않았나?”
그런 거 소리 나게 중얼거리는 놈치고 멀쩡한 놈 못 봤다. 해인은 이 수의사가 꽤나 제 잘난 맛에 사는 놈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무지하게 재수 없고, 위험한 녀석이라는 것도.
“잘 생각해봐. 나랑 살면 비밀도 지켜주고…….”
“미쳤어, 내가?”
“그럼 저 밖에 있는 남자한테 말한다? 니가 평범한 고양이는 아니라고.”
훽!
“그 사람한테 말하면…… 가만 안 둘 거야!”
“하? 그럼 어쩔 건데?”
“……무, 물 거야.”
그거 참 굉장한 협박이었다. 해인은 제가 말해놓고는 수치스러움에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수의사가 대번에 빵 터져서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푸하하하!”
“웃지 마!”
배를 보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해인인데 지금은 배를 훤히 드러낸 채 그냥 묶여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방비한 상태라 그 어떤 협박도 가소로웠다.
해인의 눈에 그제야 가운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신나서 웃어젖히는 수의사의 명찰이 보인다. 고양이 눈은 시야가 좋다. 선명한 세 글자.
해인은 자신이 얼마나 지적인 생물인가를 강조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 시. 율. 수의사!”
“호?”
그가 조금이라도 냉정히 생각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설마 글씨도 읽는 지능 생물을 산 채로 해부하진 않겠지.
보아하니 자신의 정체를 어디 팔아먹기보다는 독점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 보였다. 그것 역시 만만치 않게 무서웠지만 말이다.
“나 그냥 짐승 아니거든? 그러니까 관심 꺼!”
“이거 물건이잖아. 글씨도 읽고?”
“해, 해부 싫어!”
“……하여간 요물이야. 이게 대체 뭐 하는 생물이람.”
시율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가 쿡, 하니 해인의 뺨을 손끝으로 찔렀다. 물어뜯으려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손이 떠난 뒤였다.
해인은 지적 생물인지라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했다. 이 수의사 놈이 꽤 잘생겼다는 걸.
“마술 같은 거 부릴 수 있냐?”
“그런 걸 할 줄 알면 너한테 저주부터 걸 거야!”
미친놈은 잘생겼든 못생겼든 미친놈인 법이다. 해인은 다시 가까이 다가오는 시율의 얼굴이 무서워 오들오들 떨었다.
짧은 시간 안에 실험대 위의 외계인, 밥상 위의 생선, 진찰대 위의 고양이가 전부 되어봤기 때문에 공포는 가까웠다. 몸을 웅크리고 바들바들 떨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워낙에 단단히 묶여 있어야지.
심하게 버둥대자 그가 손을 내밀어왔다. 역시 해부하려는 걸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먀?”
“뭐, 좋아. 풀어주지.”
해인은 얼떨떨했다. 조금 전까지는 해부하네 마네 하더니 포박한 네 다리를 풀어주고 있었으니까.
배의 버클까지 끌러줘서 해인은 몸을 일으키자마자 일단 뒷걸음질부터 쳤다. 네발로 슬금슬금, 꼬리를 한껏 추켜올려 살랑이는 게 전투태세랄까, 경계태세랄까.
갑작스레 태도를 바꾼 그의 꿍꿍이를 알 수 없어 더욱 긴장이 됐다.
레이더를 한껏 작동시키고 예민하게 온몸을 튕길 준비를 했다.
“네, 네놈 속내가 뭐냥!”
그리고 그런 해인의 반응 하나하나에 시율은 강한 흥미를 보였다. 작게 박수까지 쳐가며 감탄했다. 그거 참 잘 만들었네! 하듯.
“와우, 정말 고양이 같은 반응이네? 하긴 보니까…… 뼈대는 고양이 뼈대야. 근데, 장기가 몇 개 없네?”
그가 방긋, 웃으며 해인의 엑스레이를 들어 보였다. 그새 나온 걸까? 불안에 떠느라 해인은 몰랐지만 시간이 꽤 흐른 모양이었다.
그가 또 손을 뻗어 와서 해인이 등의 털을 바짝! 세우며 경계했다. 짧고 빳빳한 털이 가시처럼 솟는다. 절로 이를 드러내는 해인은 머릿속이 어떻든 겉은 진짜 고양이와 별다를 바 없었다.
“시야악!”
“네 정체가 뭘까? 외계인? 무슨 행성 출신 그런 거?”
“아냐!”
“음, 그럼 지구 태생이긴 한 거네?”
해인의 정체가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는 아마도 어릴 적 우주 얘기에 꽤나 열 올렸을 꿈 많은 소년 같았다. 지금이야 능글능글거리는 불량한 느낌의 수의사였지만 말이다.
이런 호기심 많은 인간 유형은 해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심지어 손에 자신의 엑스레이까지 들고 있는 상대라니! 약점을 잡혀도 단단히 잡힌 상태였다.
해인은 털을 세우고 바짝 네 발로 서서는 잔뜩 경계모드였다. 지금은 무슨 변심인지 풀어줬지만 언제 또 포박당할지 몰랐으니까.
그에 그는 호오, 감탄스러운 소리를 내며 진찰대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그리고 그게 아주 신경에 거슬려서 해인은 마치 새끼 낳은 고양이처럼 예민하게 울었다.
“으우오우으이이이……!”
그건 그냥 본능적으로 그 몸에서 튀어나오는 경계의 소리 같은 것이었다.
“이런, 너무 흥분하네? 진정하지 그래.”
“캬악!”
“우리 상부상조하자고. 나도 예민해진 녀석 더 괴롭히는 취미는 없으니까.”
“샥! 누가 너 따위랑!"
“그래? 그럼 그 잘생긴 주인님을 불러서 알려줘야겠네. 여기 댁이 주워 온 고양이가 참 이상하다고.”
인간이 어쩜 저리 사악하게 웃는담? 그는 벌써 해인이 의지하는 바, 염려하는 바를 다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해인이 정체를 들키기 싫어한다는 것과, 태일에게 강한 호감이 있고, 그를 아주 신뢰한다는 것 등등 말이다.
해인은 이래서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이 싫다. 적당히 태평하고 너무 계산적이지 않은 인간이 좋았다. 태일같이.
“상부상조면…… 어떻게?”
해인은 끙, 하니 못마땅해 물었다. 이 수의사가 아주 나쁜 놈은 아니길 바라며 눈을 흘겨보였다.
“뜻 알아?”
“…….”
“아는 모양이네? 놀라운 지능이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너는 보아하니 아까 그 남자가 마음에 든 것 같은데. 그렇지? 그 남자를 주인으로 인정한 거 아니야?”
해인은 잠시 궁리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주인이라긴 뭣하지만 그래도 태일은 유일하게 아군으로 느껴졌다.
이 수의사는 천하의 몹쓸 악마고. 자신을 거칠게 눌러 꽁꽁 싸매던 손길이 아직도 몸에 선명했다.
실행은 안 했지만 해부 운운한 데서 이미 없던 정나미도 다 떨어져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이 인간의 속을 알 수 없어 도통 경계를 풀지 못하고 있다. 아마 진정이 된 뒤에도 바짝 선 털은 한동안 지속될 것 같았다.
“그걸 거들어줄게.”
“뭘?”
“저 남자의 고양이로 살 수 있게. 도와줄게.”
“……속셈이 대체 뭐야?”
“뭘 그렇게 못 미더워해? 이래 봬도 난 의사라고. 거짓말은 잘 안 해.”
그거 하긴 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해인은 미심쩍은 눈을 빛냈다. 아까는 자기랑 살자더니 이번엔 태일과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단다. 뭔가 변덕이 죽을 끓듯 하는 남자였다. 마치 고양이처럼.
“속셈이라기보다는 그냥 널 좀 더 관찰하고 싶을 뿐이야.”
“……해부?”
“관! 찰! 물론 나는 널 키우고 싶지만 넌 지금 내가 맹렬하게 싫은 것 같고. 저 남자는 좋은 거잖아? 그럼 저 남자의 고양이로 가끔 널 구경하는 걸로 우선 만족할까 해.”
시율이 안심하라는 듯 두 손을 반짝, 펴 보였다가 주머니 깊숙이 넣으며 말한다. 무기는 없으니 항복한다는 듯한 제스처였다. 웬 인심?
“병원 차원에선 주인 있는 고양이를 더 환영하기도 하고.”
그는 갑자기 착하게 굴었지만 해인은 믿을 수 없어, 하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여전히 그를 등지지 않게 조심했다.
언제든지 자신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남자니까. 묶었다 풀렀다를 아주 번개같이 하는 남자니까.
바짝 선 꼬리, 빛나는 눈, 힘 들어가 튀어나온 발톱, 어딜 봐도 살가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고양이의 태도에 시율은 가증스럽게도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사과할게. 미움 받을 짓한 거 나도 후회하고 있어. 정말이야. 난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크으응…….”
“아, 이러면 어때? 날 믿어달라는 의미로 네 새 주인한테 네 몸에 이상이 없다고 말해줄게. 물론 다른 사람들한테도 네 얘기하지 않을 거고. 널 그냥 평범한 고양이로 위장해줄게. 나라면 가능해.”
“……정말?”
“그래, 네가 아- 주 평범한 고양이라고 말해주지.”
확실히 수의사가 거들어주면 고양이 행세를 하기는 좀 편해질 것 같다. 계속되는 시율의 회유에 긴장이 풀리려 해서 해인은 앞발 하나를 살짝 들어 올려 언제든 도망갈 태세를 정비했다.
이 수의사의 입담에 제 경계가 풀리려는 걸 경계했다.
“사실 나도 시끄러운 건 질색이야. 그리고 너도 모르겠다는 네 정체를 조금 파악해보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걸수록 아껴둬야 한다는 신조라서.”
맛있는 건 아껴먹는 타입의 인간이로군. 해인은 그를 그렇게 정의했다. 물론 앞에는 ‘위험한’ 혹은 ‘음흉한’이 붙었다. 좋지 않은 동업 상대였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난 너 싫은데…….”
“솔직하긴.”
“무섭잖아, 너.”
“아무래도 좋아. 우선은 우리…… 친해지자고.”
해인은 정말이지 싫었지만. 이 수의사가 너무나 싫었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었다. 뻣뻣한 목을 끄덕여 보이는 수밖에.
***
“검사 끝났습니다. 결과가 아주…… 흥미롭더군요.”
“네? 어디 문제라도…….”
“아, 너무 건강해서 흥미롭다는 말이었습니다. 굉장히 영리한 녀석이더군요.”
극적인 협상 끝에 수의사는 얌전해진 해인을 태일의 품 안으로 넘겨줬다. 해인은 악마의 품에서 천사에게도 옮겨간 듯 안도하며 태일의 품안으로 바짝 파고들었다.
마치 정말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 어리광 부리는 고양이처럼 말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저 음흉한 수의사에 대해 그에게 일러바치고 싶어 끙끙 앓고 있다.
허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태일에게 자신이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들키고 싶지는 않다.
사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데 저 수의사에게는 이미 들통 나버렸다. 태일은 손톱을 바짝 세우고 따갑게 제 품으로 파고드는 해인의 몸을 손바닥으로 받치며 되물었다.
“다행이네요. 사료를 할 것 같은데 추천해주실 만한 게 있습니까?”
“아아, 마침 오픈 5주년 이벤트 중이니까 잘됐네요. 지금 가입하시면 할인도 되고……. 우선 제가 이것저것 좀 챙겨드릴 테니 먹여보세요. 사료도 종류별로 샘플이랑 간식 꺼내 드릴 테니 먹여보고 잘 먹는 걸로 구매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고양이들 기호성이 워낙 널을 뛰어서.”
“아, 그래도 됩니까?”
태일은 몰랐다. 때로는 호의에도 계략이 숨어 있다는 걸 말이다.
“물론. 그리고 이 검은 아가씨가 저랑 좀 친해졌으니 될 수 있는 한 제게 오셨으면 좋겠군요.”
“아, 그렇습니까?”
“네. 고양이라는 게 종 특성상 워낙 예민하고 낯을 많이 가려서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타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병원이 제일 가깝습니다.”
태일은 고양이는 처음 길러보지만 보통 이렇게 겁이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검은 고양이를 토닥토닥 달래줬다.
뭘 그리 겁에 질렸는지 바짝 튀어나온 손톱이 옷 속을 따끔하니 찌르는데도 그는 착하지, 착하지, 하고 진정시켜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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