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고양이는 병원을 싫어해
미친 듯 발버둥 쳐봤지만 이동장 안에 들었으니 자신이 사자라도 어쩔 수 없다. 이미 들어와버린 마당에 맘대로 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계속 꺼내달라 울어봤으나 고양이의 당연한 투정이라고 여긴 듯 태일은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좁은 창문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발이나 시내의 모습을 보자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소름이 돋았다.
병원?! 안 되는데? 또 털을 세우는 건 태일이 정말 동물 병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온갖 짐승의 냄새가 뒤섞여 해인의 코를 찔렀다. 동물 병원의 데스크 위로 이동장이 올려지자 간호사가 보였다. 꽉 잡고 주사를 잘 놓게 생긴…….
“미야아아아악!”(싫어어어어어!)
“예약한 신태일입니다. 건강검진이랑…….”
찰캉찰캉!
이동장이 흔들릴 만큼 난리를 피워봤으나 하나도 소용없었다. 대신 사나운 고양이로 찍혀 캐리어째로 진료실로 옮겨졌을 뿐이었다.
해인은 엉엉, 하니 울고 말았다.
엑스레이라도 찍었다가는 죄다 들킬 텐데. 이 몸은 내장 같은 게 없어! 심장밖에 없다고 했단 말이야!
사신의 신신당부 중 한 가지였다. 엑스레이 주의!
들을 땐 뭐, 그런 걸 찍을 일 있겠어? 하고 콧방귀를 뀌었는데……. 그랬는데…….
“키야아아악!”(안 돼에에!)
잠시의 그 안락함이 이런 불행을 가져올 줄이야! 하느님, 아버지, 사신님. 제발 차라리 옥상에 있을게요! 그렇게 빌어봤지만 역시나 갈 곳 없는 기도였다.
들려오는 거라고는 의사와 그의 대화뿐이었다. 이제 내 앞날은 외계인으로 찍혀서 해부실에 가는 걸까?
“이야, 거친 아가씨네요. 무슨 종이죠?”
“제 고양이가 아니라서요. 옥상에서 계속 혼자 있기에 데려왔습니다. 주인이 있을 것도 같은데……. 아,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는데 봄베이라는 품종과 가장 비슷합니다. 덩치가 좀 크고 검은 털에 금색 눈…….”
“그건 아닐 겁니다. 봄베이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희귀종이라. 비슷한 잡종은 많은데, 일단 한번 볼까요.”
수술을 앞둔 환자인 양 바들바들 떨며 해인은 이동장 안으로 깊숙이 피신했다. 하지만 사람의 손이 더 긴 것은 당연했다.
죽을 각오로 손톱을 세우고 자신을 잡아가는 손을 박박 긁어봤지만 상대는 이 방면의 프로였다. 수의사는 익숙하게 해인의 발톱을 제지하고 꺼내 들었다. 안 돼!
“미야악, 미약!”(싫어, 이거 놔!)
“엄청 사납네요.”
태일이 아닌 남자의 손에 들어 올려졌다. 그것도 상극인 수의사!
해인의 두 눈에 박혀 든 젊은 수의사는 베컴 스타일의 밝은 머리로 약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그가 매력적인 눈매의 미남인 건 지금 해인에게는 하등 알 바 없는 일이었다.
키도 크고 손도 크고……. 여유 있게 웃는 입가는 마치 악마의 것처럼 보였다. 공포 효과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해인이 샤악! 하니 이를 세우자 태일은 매우 당황해했다. 이런 사나운 모습은 처음이었으니까.
“이상하네요. 분명 얌전한 아이였는데.”
“병원에서는 다 이럽니다. 안 이러면 그게 이상한 거고요.”
“그런 겁니까?”
“네, 예민해지니까요. 아야야!”
“야옹아!”
물 만한 틈이 보이자마자 해인은 수의사의 손을 물어뜯었다. 그건 공포에 떠밀려 자의와는 상관없이 저지른 일이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보호자분은 잠시 나가 계시는 게 낫겠습니다. 사나운 고양이일수록 주인이 있으면 더 날뛰거든요. 믿는 구석이 없어야 기가 죽죠.”
“……괜찮을까요.”
“금방 끝날 겁니다.”
태일이 나가버렸다. 매정하니 나가버렸다. 어쩜 의사 말도 잘 듣지. 당연한 행동인데 그것은 해인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
진찰대 위로 자신을 눕히는 억센 손길에 이제는 빌어보기로 했다.
“미이이……. 미이……. 미.”(놔줘요……. 놔줘……. 싫어.)
익숙하니 고양이를 제압하는 그는 해인에게 커다란 천적이었다. 도살장에 끌려온 소가 이런 기분일까. 이런 참담함? 유일하게 자유로운 꼬리는 공격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휘둘러 찰싹찰싹 그의 얼굴이며 손등을 쳐보지만 그게 위협적일 리 없었다. 귀여운 것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자, 착하다.”
“미미미미밍!”(살려줘엉!)
“야야! 가만있어!”
울어도 봤지만 말이 통하질 않으니 결국 고양이 소리에 불과했다.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수의사라도 고양이 말을 알아듣는 재주는 없으니까.
여러 가지 걱정이 떠올랐다. 지금 뽑는 피는 정말 고양이 피긴 한 거야? 지금 찍는 이 엑스레이에 고양이 뼈가 찍히기는 하는 거야? 내 몸에 대는 삑삑거리는 그건 뭔데?
해인은 차가운 은색 진찰대 위에서 가까스로 무장하고 있던 사나움을 잃어버렸다.
걱정과 놀람에 짓눌려 그냥 바들바들 떨고 말았다. 그런데, 피 뽑는 건 둘째치고…… 지금 뭐 하는 거야?
“햑……?!”(학……?!)
“다 끝나갑니다, 고양이 아가씨.”
그가 자신의 겨드랑이에 해인의 몸을 단단히 고정해 잡았다. 그리고 꼬리를 바짝 들어 올렸다. 젊은 수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히 항문에 검사 봉을 집어넣으려 할 뿐이다.
변 검사를 위해, 하지만 해인의 입장에서는 천하의 날벼락으로 이건 어쩌면 죽는 것보다 무서웠다.
너 그거 어디 넣는 거야?!
감당 못 할 일대의 사건에 해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놀라 입을 쩍 벌린 채 자신의 엉덩이에 뭔가 길고 반투명한 것을 대는 수의사를 봤다.
그게 뭘 하려는 줄 알아 그게 가장 두려웠다. 진짜 고양이라면 모를 텐데. 차라리 내가 진짜 짐승이었으면! 해인은 질겁해 소리쳤다. 수치심에 미친 듯이.
“야! 이 변태 새끼야!”
젊은 수의사의 눈이 해인의 것처럼 크게 뜨였다. 고양이가 사람 말을 했으니까. 그것도 욕을.
“…….”
단단히 놀란 둘은 순간 침묵했다.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말한 고양이도 들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수의사는 얼빠진 표정으로 텅 빈 진료실을 느리게 둘러봤고, 역시 자신과 고양이 한 마리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해야 했다.
그 손안에서 말문이 트인 해인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으며 절망했다.
이 만큼의 다급함으로 강렬하게 염원해야만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차라리 그걸 모르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점.
“너 지금……?”
설마설마 하면서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는지 수의사가 해인을 내려다보며 말문을 떼었다. 숨 쉬는 것도 잊기 직전인 해인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시침 뚝, 떼는 일뿐이었다. 그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울었다.
“미, 미야오옹……?”
하지만 그건 너무 긴장했기 때문인지 사람이 고양이 소리를 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다급한 고양이 시늉은 상황이 어색해지는 것만 한 술 더 거들었다.
해인이 데룩데룩 눈을 굴리자 수의사의 눈이 예민하게 빛났다.
아차! 싶어 황망하니 발톱을 세워 앞으로 도망가보려 하지만 소용 있을 리가 없다. 검사를 위해 바짝 온몸을 포박당한 채였으니까.
진료대 위를 긁는 발톱 소리만 났다.
듣기 싫은 쇳소리. 버둥거려 도망치려 하나 그러지 못하는 소리. 카가가각! 카칵!
수의사는 해인과 눈을 마주치려 했고 해인은 힘껏 거부했다. 파닥파닥대며 제 얼굴을 돌리려는 손을 할퀴고 도망가려 두 발을 허공으로 뻗으며 탈출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결국 짐승의 몸이라 수의사가 제 등가죽을 잡아 올리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롱대롱, 등가죽을 잡혀 허공에 들려 있는 꼴이 처참했다.
수의사로서는 이 사나운 고양이를 꼬리째 거꾸로 들어 올리려다 그나마 참은 것이었다.
“이봐!”
“크캬아악!”
해인은 심히 불량스러운 눈매였다.
짐승에게 말을 거는 남자에게 냅다 발톱을 세우고 이를 드러냈다. 억지로 눈이 마주쳐진 것도, 등가죽을 잡힌 것도 모두 불쾌했다.
무력하게 들어 올려진 것이 가장 못마땅해 더욱 사납게 굴었다.
하지만 그는 해인이 버둥거리며 온몸의 손과 발, 꼬리를 움직이는 걸 새삼 신기한 듯 봤다. 해인은 그에 오싹하니 소름이 돋았다.
위험하다! 본능이 그렇게 웽웽댔다. 이 남자의 눈은, 뭔가 감지한 눈이었다.
“다시 말해봐.”
수의사가 여전히 크게 뜬 눈으로 물었다. 긴가민가한 와중에 긴가임을 확신하며 말이다.
“미~ 야~ 옹?”
해인은 최대한 귀엽고 깜찍하게, 고양이스럽게 소리 냈다. 하지만 그건 사람 입으로 야옹거리는 것과 똑같은 우스꽝스러운 느낌일 뿐이었다.
해인은 슬그머니 수의사의 눈을 피했다.
오동통한 분홍빛 발바닥에서 식은땀이 뻘뻘 흘렀다.
“…….”
의뭉을 떨어봤지만 돌아온 것은 어색한 침묵과 꼬리 아래로 확 잡아당기는 손뿐이었다.
“우갹?!”
그 감각이 고양이에게 아주 불쾌하다는 걸 잘 아는 눈이었다. 그러니 어서 말이나 해보라는.
그는 수의사답게 고양이를 다루는 법에 매우 능통했으며, 당연하겠지만 머리가 좋았다.
자신이 들은 것과 그 근원지를 분명히 인지한 모양이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해인에게 그 사실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어 했다.
“너, 분명 말했어. 그렇지?”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단순한 호기심이기도 했고 이 불가사의한 일에 대한 의사로서의 탐구욕이기도 했다. 뭐가 됐든 해인에게는 위급한 상황일 뿐이지만.
해인은 두 발로 수의사의 손목을 움켜쥐고는 냅다 손톱, 아니 발톱을 세웠다.
그러곤 힘껏 긁어 내렸다.
“아악! 아오오!”
발톱을 박자마자 피가 터졌다. 계속 놔주지 않으면 이번엔 잘근잘근 이를 세우려는데 그가 반사적으로 해인을 멀찍이 집어 던졌다.
착지는 우아했고, 도망치는 것은 허겁지겁이었다.
“너!”
뒤에서는 하얀 가운을 입은 악마 같은 녀석이 이를 갈며 다가왔다.
더 죽어라 살려달라 울어봤지만 진료실 문은 방음 기능이 있는 것 같았다. 깡총깡총 점프해 문고리를 건드려봤지만 탈출을 시도하는 짐승이 많은지 문고리는 상당히 무거웠다.
“먁!”(망할!)
인간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이야 탈출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래저래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하며 해인은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위태롭게 울었고, 수의사는 무자비하게 거리를 좁혀 왔다.
잡히겠다 싶어 냉큼 오른쪽으로 뛰었더니 그 앞을 커다란 발이 쿵! 하니 가로막았다.
다급히 왼쪽으로 틀어봤지만 역시 가로막혔다. 쾅.
인간의 두 다리가 마치 가옥의 쇠창살과 같아 보였다. 코너에 몰린 해인은 와들와들 떨며 두 눈을 꼭 감았다.
“흐, 흐냐냐냐……!”(사, 사람 살려……!)
손등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수의사가 자신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감히 자신을 할퀴고 도망치려 한 이 요망한 생명체의 등가죽을 잡아 올렸다. 다시 물지 못하도록 목과 함께 틀어쥐는 교묘한 솜씨에 해인은 치를 떨어야만 했다.
“시치미는 그만 떼고. 너, 말해봐.”
“미……. 미, 미야아악! 먀먁먁먁!”(이……. 미, 미친놈아! 고양이가 어떻게 말을 해!)
미친놈아! 소리가 사람 말로 튀어나가려는 걸 해인은 겨우 삼켜 넣었다. 그러곤 고양이 말로 양양대며 끝까지 잡아뗐다. 시치미에 장사 없다지 않은가.
수의사는 해인을 달랑 들어 쇠로 된 진찰대로 옮겼다.
몸을 꽉 눌러 길게 늘이더니, 벨트를 이용해 허리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진찰대 위로.
“말 안 들을 땐 어쩔 수 없지.”
철컥철컥 네 팔다리까지 무엇인가에 졸라매지나 싶더니 사지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목까지 벨트에 고정되었을 때 해인은 제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깨달아야 했다.
난폭하게 군 죄로 꼼짝없이 결박당한 것이었다.
유연하게 늘어지는 검고 늘씬한 해인의 몸이지만 지금은 실험대 위의 외계인과 다를 바 없었다. 고정된 채로 꼼짝없이 자신의 눈앞으로 빛 무더기가 다가오는 걸 바라봐야 했다.
생포된 외계인이 이런 기분일까?
실험대 위에 묶여 빛을 본다는 건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다. 심지어 상대가 평소 피를 보는 직업이라면 더더욱. 전등을 들이밀며 수의사가 물었다.
싱긋 웃어 보이는 것이 이 녀석이 정말 사람인가 싶었다.
“말할래, 해부당할래?”
단순히 말귀를 알아듣는지 아닌지 실험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심일까? 여하튼 소름 끼치는 것만은 같았다.
수의사는 자신의 질문에 크게 움찔하며 오들오들 떠는 해인을 보며 이 짐승이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확신을 얻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해인의 손바닥을 눌러 발톱이 정상적으로 나오나 봤고, 귀 안쪽은 어떤가도 봤다. 갈비뼈가 전부 있는지도 꼼꼼히 만져보며 살폈다. 여차하면 정말 해부해볼 것만 같은 태세였다.
해인은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꼬리만 불안스레 흔들었다. 미안해, 잘못했어, 깨문 것 사과할게 등등의 의미를 담아서 말이다.
검은 고양이의 꼬리가 그의 손을 찰싹찰싹 쳐댔다.
짐승의 꼬리란 많은 언어를 나타냈지만 그는 지금 그런데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홀연히 진료대에서 멀어지나 싶더니 해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진열장에 가서는 쇠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친절하게 설명까지.
“너 메스가 뭔지 알아? 개복할 때 쓰는 도구지. 석션은 피를 빨아들이는 데 쓰는 수술 도구고……. 아, 우선 마취부터 해야겠다. 주사 정도는 뭔지 알겠지?”
독한 놈! 나쁜 놈! 변태 같은 놈!
해인은 바득바득 이를 갈며 독립투사의 정기를 이어받아 이 협박에 버텨보려 했지만, 눈앞에 메스를 들고 나타난 수의사에게는 결국 굴복해야 했다.
그 공포는 감히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산 채로 배가 열릴 위기였다. 마치 악마의 환상이 보이는 듯했다.
“해부도 해부지만 조직 채취부터 해야…….”
“이, 이……. 싫어……!”
“오.”
“해부 싫어! 싫다고, 이 변태야! 싫어! 흐어엉!”
해인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공포에 질려 황금색 눈동자에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며 항복하는 수밖에는 말이다. 이 변태 고문관을 대대손손 저주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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