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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스-4화 (4/114)

4화. 사람이 되는 고양이

날이 밝았다.

아침 햇살은 달빛보다 강하게 해인의 얼굴을 비췄고 그에 해인은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느리게 깜빡깜빡.

오랜만의 단잠은 해인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눅눅한 풀숲과 달리 이불 위는 더없이 푹신하고 아늑했다. 나른함에 취하는 건 고양이고 사람이고 즐기는 일이었으니까.

일부러 좀 더 그 잠기운 속을 배회했다. 졸린 눈을 깜빡이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끌어안고 있다는 정도만 깨달았다.

그 따뜻한 온기에 한껏 몸을 비볐다.

이 온기의 주인은 아마도 그 남자일 거다. 상냥하고 따듯한, 좋은 사람.

자신이 정말 고양이라면 이런 사람에게 키워졌으면 좋겠다. 이런 부드러운 손으로 안아준다면 나쁘지 않은 묘생(猫生)일 것 같다.

해인은 가늘게 살짝 뜬 눈으로 이제는 익숙해진 남자의 얼굴을 봤다. 여자만큼이나 긴 속눈썹과 곧은 콧대가 그녀를 두근거리게 했다.

밑에서 올려다보는데도 굴욕이라고는 없는 단정한 생김새였다.

사람을 그리지는 않지만 이 남자가 모델이라면 혹해서 그려볼지도 모르겠다. 나른하게 호선을 그리고 있는 남자의 입술이 코앞에 있었다.

해인은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려 그를 더듬을 뻔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으음……!”

기분 좋은 나머지 그대로 여기서 잠들어버렸나 보다. 태평하게 그런 생각을 하며 기지개를 폈다.

해인은 이때까지도 몰랐다. 자신이 긴 팔다리를 가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오랜만에 맛보는 포근한 침대나, 창을 타고 들어오는 햇살이 반가워 넋을 놓고 있을 뿐이었다.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모아 넣고 멍 하니 반쯤 감은 눈으로 햇빛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좋다, 좋아. 태평하게 그런 늙은이 같은 감상에 빠져 있었다. 확실히 그녀는 고양이가 된 뒤로 느긋해진 구석이 있었다.

“……흠.”

문득, 그의 손이 주저앉은 그녀의 종아리에 닿았다. 줄곧 곁에 있던 온기가 없어지자 잠결에 더듬더듬 찾는 것 같았다.

해인은 자신의 다리에 닿는 그 손의 감촉이 너무 가깝게 밀착되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 그가 자신을 쓰다듬어줄 때의 감각과는 묘하게 다른 것이…….

왜 매끈매끈하지? 고개를 돌려 그의 손이 닿은 자신의 다리를 돌아봤다.

그리고 봐버렸다. 고양이의 것이 아닌, 매끈하고 하얀 자신의 다리를 말이다. 사람의 것이 분명한 다리.

꿈인가? 멍하니 해인은 시선을 올렸다. 자신의 다리에서 점점 위쪽으로. 발목, 종아리, 허벅지, 그리고 훤히 드러난 맨…… 가슴?

밝은 햇빛 아래 여전히 납작한 가슴. 털 없는 가슴. 슬픈 내 가슴!

“……꺄, 꺄아아앙! 미야아……. 미얍?”(꺄아아악! 이게 뭐……. 허업?)

꿈이 아니었다. 비명을 내지르던 해인은 서둘러 제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사람이 된 것도 된 것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여전히 고양이의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분 나쁘게!

으악?! 해인은 바삐 머리를 굴렸다.

아직 한 달을 채우지 않았는데 왜 인간이 되어 있는 걸까? 그리고 인간의 몸인데도 왜 사람의 언어가 아닌 고양이의 말이 나올까?

그리고, 사신은 분명 인간이 될 수 있는 시기를 저절로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변신도 의지에 따라서……. 그러고 보니 해인은 간밤에 꿈을 꿨다.

자신의 방 자신의 아늑한 침대 위에서 노트북을 하며 뒹굴다가 그대로 잠드는 꿈. 깨끗한 시트에 뺨을 부비며 골골대는 꿈. 아무도 자신을 깨우지 않아서 그렇게 한참을 자는 꿈.

그래, 꿈속에서 확실히 사람으로 자고 있기는 했지. 일상이었던 것을 꿈꾸긴 했다.

“니야니야.”(아아.)

다시 입을 열어 소리를 내봤는데, 역시 짐승 소리만 나왔다.

몸만 사람이 되면 어쩌자는 걸까! 사람이 사람 말을 써야 하는데! 해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사신에게 들었던 설명들을 분주히 되새겼다.

‘인간의 몸과 고양이의 몸을 오가게 되면 처음에는 어색할 수도 있어. 네 발로 걷다가 두 발로 걷고, 고양이 말을 쓰다가 사람 말을 쓰는 게 초반에는 전환이 잘되지 않을 거다. 그래도 금방 적응하게 될 거야. 어느 순간 자동으로, 저절로. 인간은 무엇에든 금방 익숙해지니까.’

은근히 미운 정이 들어버린 그 사신, 자동이고 어쩌고 잘도 떠들었겠다! 사람의 몸으로 냥냥거려야 한다는 말은 없었잖아! 처음에는 전환이 쉽지 않을 거라던 게 이런 거였나 보다.

“……야옹아.”

해인이 소리 내는 연습을 해본 것에 그가 깨어났나 보다. 몸을 뒤척이며 한 손을 들어 눈을 비비적거리는 모양새가 당장이라도 눈을 뜰 것 같았다.

해인은 일단 발가벗은 자신을 충분히 인지했음으로 침대 위에 넘치는 얇은 시트 하나를 끌어 자신의 몸을 둘둘 감았다.

사신의 탈인지 뭔지 이 희한한 건 옷을 입는 옵션은 없는 모양이다. 남자를 피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는 것이 해인은 그만 자신이 두른 시트 끝자락을 밝고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져버렸다.

“냐!”(앗!)

쿠웅!

턱이 아팠다. 고공을 즐기던 고양이 때의 유연함은 어디로 갔는지 본래의 둔해 터진 몸과 같았다.

전환이라는 건 대체 언제 되는 걸까.

묵직한 음을 내며 맨바닥에 떨어진 만큼 아픔은 제법 강렬했지만 우선은 도망이 먼저였다.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려는데 몸이 일어서질 않았다.

다리에 도통 힘이 들어가질 않는 것이었다.

“니야니야 미이이이!”(이런 빌어먹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 때문에 엎어져 버둥거리며 마구 짜증을 내고 싶었지만, 남자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해인은 급한 대로 침대의 밑으로 후다닥 기어 들어갔다.

다행히 침대 밑에는 제법 공간이 있었고 몸집이 아담한 해인은 무리 없이 그 아래로 숨을 수 있었다.

남자는 깔끔한 편인지 먼지가 없었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알몸에 달랑 시트 한 장 걸치고 침대 밑에 숨어 있는 모양이라니…….

민망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해인의 얼굴이 화르륵 붉게 달아올랐다.

“……고양아? 흐으음, 야옹? 야옹아아.”

그가 기지개를 켜는지 침대 스프링이 묵직하게 눌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해인을 부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젯밤 데려온 검은 고양이가 어디로 갔을까. 깨어나서 어디 숨어버렸나.

그는 집 안 어딘가에 있겠거니 하며 침대에서 천천히 내려왔고 거실로 걸어갔다.

멀어지는 그의 발뒤꿈치를 보며 해인은 두 손 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자신의 방 침대 밑에 알몸으로 숨어 있는 여자라니……. 영락없는 변태였다.

변녀! 들키느니 죽지!

지금은 털이 없는 몸인데도 온몸의 털이 바짝 서는 기분이었다. 숨소리조차 죽이며 그야말로 ‘죽은 듯’ 기척을 죽였다.

그는 다행히도 침대 아래 누군가 있다는 건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현관 쪽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게 보였다.

“고양아?”

여전히 그녀를 부르며 말이다.

해인은 차마 대답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워 시트 자락을 마구 물어뜯었다.

왜 하필 이럴 때 사람이 된 거야! 사람이 사람으로 뒹구는 꿈 좀 꿨기로서니! 하필 알몸! 다시 고양이가 되게 해줘! 하고 자신의 몸을 원망하며 말이다.

그러면서 사납게 이불을 질겅이는 해인은 영락없이 성질 더러운 고양이었다.

고양이 몸으로 생활하며 손보다는 이를 쓰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본인은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미약!”(으악!)

이런 모습을 그에게 들켰다가는 창피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쯤, 해인은 자신의 몸을 감싸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마치 퐁당 물속에 빠진 듯 온몸의 감각이 멀어졌다.

몸이 점점 깊은 물속으로 떨어지는 밀도 높은 압박을 느끼나 싶더니, 몸이 뽀얗게 빛나며 차츰 차츰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숨어 있는 공간이 점점 넓어지는 건 아닐 테니까. 자신이 작아지고 있는 것이리라.

“냥?”(응?)

납작 엎드려 있던 해인은 자신이 어느새 침대 밑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껏 동공이 커다래진 고양이 눈으로 검은 털이 돋아난 자신의 앞발과 넓적하고 얇은 뒷다리를 돌아봤다.

이거야, 이거! 치킨 다리 같은 뒷다리!

해인은 그에게 흉물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감격스러워 폴짝거렸다.

고양이 몸이라 표정은 안 나왔지만 정말이지 하느님 감사합니다. 할 정도로 안도하고 기뻐하는 중이었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분명 인간의 모습보다 고양이의 모습이 기꺼웠다.

“어디 갔니? 야옹…….”

“미야옹! 니야니야!”(여기요! 나 고양이에요!)

때마침 그녀를 부르며 그가 다시 침실로 돌아왔고 해인은 냉큼 침대 밖으로 뛰쳐나갔다. 엉덩이에 시트를 걸치곤, 앞발부터 번쩍 내밀며 개선하듯 말이다.

고양이인 저가 자랑스럽다는 듯.

“거기 있었구나. 음, 시트가 왜 여기 있지.”

자연스레 해인을 안아 올린 그는 침대 밑에 빼꼼 나와 있는 시트를 발견하고는 주워 올렸다. 침대 위로 내려두며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때마침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그는 해인을 안아 든 채로 현관으로 걸어 나갔다.

인터폰도 확인하지 않고 문을 여는 걸 보아 방문이 예정된 사람인 모양이다.

문을 열자 올백 머리에 무테안경을 낀 남자가 무거워 보이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집 안으로 들어섰고, 해인은 어째 방문자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당황해서는 앞발을 들어 얼굴을 급히 비벼댔다.

“좋은 아침.”

“일찍 왔다?”

둘은 절친한 듯했다. 안경 쓴 남자가 힐끔 그의 품 안에 안긴 해인을 눈짓했다.

“그보다 뭐야, 그 고양이는?”

“아, 말했었잖아. 신경 쓰인다는 여자.”

신경 쓰이는 여자라는 말에 해인은 더욱 바삐 얼굴을 비볐다. 비비고 비볐다. 쑥스러운 탓이다. 얼굴이 발그레해질 것 같은데 그러질 않으니 괜스레 얼굴이 더 간지러운 것만 같았다.

고양이 세수가 한창인 검은 고양이를 두 남자가 주시했다.

“……고양이였냐.”

“어제 붙잡았다.”

“하긴, 너한테 기대한 내가 미친놈이지.”

그가 기분 좋게 대꾸하며 해인의 이마 위로 짧게 키스했다. 자신이 여자라는 건 어떻게 알았던 걸까. 딱히 요염한 자태로 군 것도 아닌데.

해인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눈썰미 좋은 그는 이 우아한 곡선을 가진 새침한 고양이가 여자라는데 제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을 만큼 확신했다.

“미인이지?”

미인이란다. 해인은 아예 양손을 들어 바삐 뺨을 문질렀다. 부끄럽고 민망하니 얼굴이 간지러워 절로 그렇게 표현이 되고 말았다.

그에 두 남자가 가볍게 웃었다.

“좀 귀엽네.”

“그렇지?”

“키울 거냐?”

“그러고 싶긴 한데……. 주인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수소문 좀 해봐야지. 길고양이치고는 너무 예쁜 녀석이라.”

커다란 손이 머리 위를 쓰다듬었다. 그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우드 계열의 향수를 쓰는 걸까? 시원한 숲 냄새가 났다.

해인은 진분홍색 코를 그의 손목에 묻고 작게 킁킁거렸다.

“아, 병원 같은 데서 붙여주던데.”

“뭘?”

“찾습니다 포스터. 요 앞 동물 병원에도 있던데?”

“그래? 그럼 한번 가봐야겠네.”

“그런데 지금은 안 돼. 촬영이 당겨졌거든. 태일이 너, 지금 시간 괜찮지?”

두 귀를 쫑긋거리며 자신을 안고 있는 그를 올려다봤다. 남자의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다.

“니양?”(태일?)

“음?”

“냥, 냥.”(이름, 태일)

“뭐라고 하는 거 같아?”

“뭐라고 하긴? 고양이가 양양거리는 게 그냥 양양거리는 거지.”

고양이의 흔한 냥냥거림에 일일이 대꾸해주지 않아도 되련만 그는 꼬박꼬박 매번 시선을 맞춰주고는 했다. 해인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이름 좀 지어줄까? 야옹아 야옹아는 이상하잖아.”

“지 이름이 있을 텐데?”

“그래도, 잠깐이라도 정 있게 불러주고 싶어서.”

사람이 기르는 짐승들은 이런 애정 어린 시선을 받으면, 이 사람이 자신을 아껴준다는 걸 절로 알게 되나 보다.

그래서 개는 사람에게 충성하고, 고양이는 길러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건가 보다. 그가 자신에게 쏟는 게 매우 따듯한 시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대충 나비야 같은 거…….”

“니양!”(싫어!)

해인은 안경 군의 성의 없는 작명에 대번에 뾰족한 소리를 냈다. 그러곤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의 친구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해인을 가리켰다. 놀란 모양이었다. 태일은 그걸 꽤나 자랑스러워했다.

“……지금 싫다고 한 거야?”

“굉장히 똑똑하거든. 그렇지?”

그의 손끝이 해인의 턱 밑을 간질였다. 해인을 보며 넌 똑똑한 아이야, 그렇게 속삭였다. 그 눈빛과 음성이 그냥 좋아 해인은 그의 손끝에 코를 비볐다.

그에게 몸 어딘가를 붙이는 건 해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 표시였다.

“이름 같은 거 나중에 짓고, 촬영 가야 되니까 우선 대충 나가자.”

“한 시간이나 빨리 와놓고는 재촉하기는.”

“모델이 급하다는데 어쩌냐, 내가?”

“저번 주 로케도 갑자기 당기더니……. 너 정말 이런 거 한두 번이 아니다.”

“미안하다. 부탁 좀 하자, 태일아.”

친구의 사과에 그는 결국 물러섰다. 더 말하기도 언짢다는 표정을 고수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

그들이 집을 나가고 해인은 잠시 동안 집 안을 배회했다.

남겨지고 보니 자신이 집 안에 갇혔지 싶었다.

사람과 고양이의 모습을 오가는 방법을 얼추 터득했으니 사람이 되어서 문을 열고 나갈 수야 있겠지만……. 그럼 돌아온 태일이 얼마나 미스터리하게 여길 텐가.

막힌 집 안에서 고양이가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당장은 나갈 수 없겠다. 틈을 노리는 수밖에.

집 안을 쫄래쫄래 구경하던 해인은 식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발견했다.

의자 위로 훌쩍 뛰어올라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염원했다.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이 감각 맞는다면 이게 변신하는 방법이었다.

틀리지 않았는지 해인은 아까와 같은 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일순 온몸이 무감각해지는 그 감각.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본래의 자신이 되어 있었다. 사람이.

“묘.”(오.)

여전히 냥냥대기만 했지만.

***

스스로도 조금 신기해서 해인은 화장실로 향했다. 무릎으로 반쯤 기어서 말이다.

세면대를 붙들고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며 여기저기 뜯어봤다. 영락없이 제 얼굴이었다. 눈 코 입, 작은 점 하나까지 전부. 여전히 말은 고양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건 심각한 문제였다. 사람의 말을 못 하면 엄마에게 갈 수 없으니 말이다. 전화도 할 수 없고.

해인은 다시 노트북이 있는 식탁으로 기어갔다.

돌 때나 이렇게 기어가봤을까? 답답했지만 일어서기도 여의치 않았다. 노트북을 켜고 겨우겨우 식탁 의자 위에 앉았다.

다섯 손가락이 곧게 뻗은 자신의 손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노트북을 이용해 일단 엄마에게 메일을 썼다. 계속 손이 구부정하게 되어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겨우.

[엄마, 나 취재가 길어질 것 같아요. 흥미로운 게 많아서 즐거워. 참, 휴대폰이 고장 났는데 어차피 여기서는 안 터지네? 가끔 메일로 연락할 테니 걱정 마요.]

길게 쓰지는 못했다. 길게 써봤자 수상해질 것 같아 짧게 끝냈다. 마침 다음 작품 취재차 여행을 떠난 시점이라 당분간은 찾지 않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달 이상 전화 한 통 안 한 적은 없었다. 목소리는 내야만 했다. 노트북을 끈 해인은 목을 가다듬어봤다.

“먀, 먀!”(아, 아!)

하지만 계속 이 꼴이다. 왜 사람 몸을 하고 고양이 말을 해야 한담? 아이러니한 상태였다. 사람도 고양이도 아닌 것이…….

끙, 하니 언짢은 얼굴로 해인은 친구 몇몇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그러고는 태일의 옷 방에 들어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티셔츠 하나를 주워 입었다.

알몸에 익숙한 자신이 낯설어 일부러 주워 입은 차다. 우선 행거를 붙잡고 서는 연습부터 했다. 중심이 조금 잡혀서 설 수 있게 되자마자 기지개부터 켰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감각 하나를 느꼈다. 체감되기는 하는데 오감 중 하나는 아니었다. 마치 공복감과 비슷한 것이…….

“미!”(아!)

해인은 그것이 자신이 이 인간의 몸을 유지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말 그냥 알 수 있었다. 배고프고, 졸리고, 피곤한 것처럼 체감된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신기한 일이었다.

해인은 얼추 서 있을 수 있게 되자 무릎으로 걸어 거실로 나왔다. 본능적으로 따듯한 햇볕 아래를 찾아가 누워서는 고민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지? 계속 이 집에서 신세질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나가자니 틈을 노리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생각에 빠지기도 잠시. 해인은 줄어드는 시간이 아까워서 얼른 고양이로 돌아갔다. 생체 시계가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됐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걷는 연습을 하고는 싶었지만 당장은 낭비 같았다. 사람 목소리도 못 내는 걸 말이다.

고양이가 되니 그 자리에는 입고 있던 큼지막한 옷만 남았다. 해인은 그걸 물어다 있던 장소에 가져다 두고는 다시 햇볕이 잘 드는 자리를 찾아갔다.

고양이의 몸이 차라리 편했다.

소파 손잡이에 앉아 골골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잠들어버린 건 분명 그래서일 거다.

***

꾸벅, 꾸벅, 그러다가 푸우우욱 하니 잠든 해인의 표정은 고양이인데도 침을 흘릴 것같이 편안했다.

삐비비비빅.

쫑긋! 자다 말고 귀를 세웠다. 전자 키 여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얼마나 잠든 건지 밖은 깜깜했다. 해인은 낭창한 걸음으로 현관으로 옮겨가서 열리는 문틈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태일의 향수 냄새가 났다. 그가 방긋 웃으며 들어왔다. 반겨주는 존재가 그 역시 반가운 모양이다.

“야옹아!”

“미.”

시계를 보니 그의 귀가는 12시간 만이었다. 역시 평범한 사무직은 아닌 것 같은 출퇴근 시간이었다. 살가운 손으로 자신을 안아 드는 그에게 해인이 커다란 두 눈을 깜빡여 보였다.

그는 살짝 긴 진갈색 곱슬머리를 꽁지 묶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눈동자 색은 색소가 옅어 빨려들 듯한 고동색이었다.

그는 다정하게 해인을 가슴에 안았고, 이 부드러운 눈동자를 가진 남자의 고양이로 한동안 살아볼까, 해인은 찰나 그런 강한 유혹을 느꼈다.

“선물 사왔어. 볼래? 맛있다는 간식이랑…… 장난감.”

“미요…….”(흐응…….)

“그리고, 캐리어.”

캐리어? 그건 여행 가방 아닌가? 그건 그보다는 이글루같이 생겼다. 하얗고 딱딱해 보였다.

저게 뭐지. 짐승을 길러본 적 없는 해인은 그가 들어 보이는 낯선 것을 주시했다.

그가 가까이 보여줘서 킁킁거려봤다. 후각이 예민해져서 본능적으로 후각에 기대고는 했다.

이건 그냥 가방인데. 모양이 좀 이상한 가방. 요즘은 이런 여행 가방이 유행인가?

킁킁거려봤지만 새것인지 플라스틱 냄새가 날 뿐이었다. 태일은 해인이 흥미를 보이자 캐리어 문을 열어 보였다. 입구가 옆면에 있었다.

해인은 그제야 그게 뭔지 깨달았다. 집이구나! 고양이 집, 그렇지?

“들어가자.”

“잉?”(엥?)

그의 손이 해인을 캐리어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곧장 입구가 닫혔다. 해인은 그사이 이동장 안에 갇힌 자신을 발견했다.

감옥처럼 사슬로 된 입구에 손을 올리며 이게 무슨 사태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했다. 이건 고양이 집이 아닌 모양이다.

그보다는, 가두는 물건이었다.

“먁?”

나 지금 갇힌 거야? 네가 나를? 너무 방심했던 걸까. 믿을 수가 없어 문을 박박 긁어봤지만 그는 곧장 현관을 열고 문 밖으로 나섰다.

“병원 예약해뒀거든.”

그는 아무래도 옥상에서 몇 주간 생활한 해인의 질병 상태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도 아니면 주인 찾아주기 운동. 뭐가 됐든 병원……?

이동장 안의 해인은 사납게 털을 세웠다. 병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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