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고양이로 살아남기
[몰랐나? 아, 하긴 모르겠군.]
“미양!”(당연하죠!)
[선천적으로 방랑벽이 있고 무리 생활에 약하며 혼자서도 잘 논다. 하지만 가끔 외로움을 느끼면 뜬금없이 울기도 한다. 호기심은 왕성한데 상당한 기분파라 지속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예술적 기질이 강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지, 그리고 한번 자신을 허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애정 공세를 하지만 그 외에는 접근하면 미친놈 보듯 보지. 어때, 딱 맞혔지?]
이 저승사자 돗자리 깔아야겠네. 해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상대가 저승사자라는 사실을 상기해냈다.
감정이 없나 싶다가도 위해주고, 그러더니 갑자기 남의 전생을 막 알려주고 그러니 말이다.
그나저나…….
“야냐아앙?”(털이 있어?)
[고양이니까.]
“미야먕?”(꼬리도?)
[잘 움직이는걸. 확실히 상성이 괜찮은가 보군. 그 정도면 바로 인간계에 가도 되겠어. 잘됐군, 잘됐어.]
정말 해인은 네 발로 땅을 짚고 있었으며 가느다랗고 빳빳한 검은 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넓어진 시야와 넘치는 유연함.
맙소사! 그녀는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야옹거리는.
“미야아악!”(이게 뭐야!)
죽었나 싶더니 고양이가 됐다니. 누가 고양이로 만들어달랬어?!
그야말로 기묘한 경험에 해인이 연달아 경악성을 내뱉자 저승사자가 한결 가뿐해진 투로 말을 이었다.
[그 몸에 조금 더 익숙해지면 인간의 말도 할 수 있지. 저승의 기술은 그 정도라고!]
“먁먁! 니야아앙, 냐냐냐! 냥!”(지금 못하잖아요! 고양이가 어떻게 인간 말을 해요? 애초에 구강 구조가 다른데! 이게 뭐예요!)
[나는 뭐라는지 알겠는걸.]
“캬악!”(이 돌팔이!)
[고양이가 되더니 더 신경질적이 되었네? 뭐, 너무 따지진 말고. 그건 겉모습만 고양이지 엄연히 저승에서 만든 사신탈이니까. 우리가 인간세계를 염탐할 때 쓰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원리인 건 당연해.]
사신탈? 해인은 방금 봤던 까마귀며,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검은 고양이의 모습을 되새겨 보고는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먀먁…… 먀먀미야먀야?”(혹시…… 까마귀랑 검은 고양이가 재수 없다는 이야기가 당신들 때문인 건?)
[우리 때문 맞아. 우리가 그걸 쓰고 지나가면 누가 꼭 죽거든.]
“미약?!”(그런 걸 준 거예요?!)
[요즘은 그래서 하얀 걸 쓰고 다니지. 하얗게 나오는 버전부터가 신식이랄까. 인간들이 검은 걸 불길하게 대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이렇게 나와.]
하얗고 작은 새가 사랑스럽게도 날개를 파닥여 보였다. 애꿎은 까마귀랑 검은 고양이들은 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아, 그리고 그것의 좋은 점은 기를 충당하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거야. 어때? 딱 네게 알맞는 기능이지?]
투덜투덜, 그러니까 성질껏 캭캭거리던 해인은 드러냈던 이를 숨기고 반문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혹했다.
“냐, 냐아앙?”(이, 인간이요?)
[그래, 대신 일정량의 기가 필요하다. 사신탈이란 기본적으로 요괴들을 본떠 만든 것이거든. 그래서 음기를 필요로 해.]
“미야먀?”(어떻게 모으는데요?)
[무난한 방법이라면 매일 밤 달빛을 쐬는 거지. 그 방법이면……. 한 달 치의 달빛으로 하루 정도 인간으로 변할 수 있을 거다. 그 고양이 탈은 좀 구식이라서 효율이 좀 별로거든. 이 새의 몸 같은 경우 신식이라 보름 대비 하루일까.]
해인은 경악했다. 충전 이론이 있는 고양이 탈이라는 저승의 기술이라니. 크게 당황해 온몸을 꿈틀거리길 한차례, 해인은 이내 진정했다.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맹렬히 회전시킨 결과, 인간이 될 수 있고 영혼이 안전하다면 이 고양이의 몸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되면 자신을 걱정할 엄마에게 소식 정도는 전할 수 있을 터다. 달빛으로 충전이라니……. 도대체가 이해가 안 가는 원리였지만 영혼만 굴러다니는 것보다는 나았다.
“냐…… 니야냥.”(고……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미안한데?]
“냐냥……?”(그렇긴 하죠……?)
사실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한 번 포기한 목숨이었기 때문에 해인은 자신이 한 달에 하루라도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데 감사했다.
해인은 아직도 얼떨떨해서는 자신의 고양이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오동통한 발바닥이나 힘을 주면 나오는 발톱 같은 것.
[1년 정도는 그걸로 연명이 가능할 거야. 그사이에 내가 인간 네 몸을 새로 만들어놓을 테니 잠시만 참아…….]
“니야냐냐?”(원래랑 똑같이요?)
[물론이지. 원래의 인간 네 모습 그대로 완성될 거다. 네 살점의 일부를 완성체로 배양하는 셈이니 말이야. 또 그 고양이 몸도 인간 네 영혼이 기억하는 본래 모습으로 변신할 거다. 사신탈은 영혼이 기억하는 형상을 따르기 마련이거든.]
“야아옹, 니야앙 냐냐냥 냐?”(그럼, 주의할 점 같은 건 없어요?)
[글쎄. 악귀나 이 몸 외의 사신들 정도일까. 하지만 다른 사신들이 보기에도 너는 그냥 고양이니까, 사신들 간에도 작업 중인 건 비밀이라 알아볼 리 없고…… 아, 주의 사항까지는 아니고 만약 그대로 인간계로 가면 너는 1년 동안 계속 인간계에 있어야 한다.]
잠시 한 템포 말을 쉰 사신이 하얀 새의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새까만 눈을 빛내며 덧붙였다.
[그리고 본래의 내 업무도 있거니와 네 몸을 다시 만들어야 해서 아주 바빠질 것 같으니. 그동안은 혼자 인간계에서 잘 적응해보도록 해.]
또다시 사무적인 태도로 돌아와 있었다. 일이 이런데 네가 어쩔 거냐는 듯.
해인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의 몸이었지만, 그래도.
[그리고 그 몸으로 있는 동안은 나도 네 기운을 감지할 수 없다. 그건 철저하게 정체를 숨기는 용도니까. 그런 안전한 기능 때문에 널 그 안에 넣어준 것이기도 하고 말이지.]
사신이 또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지만.
“야앙? 니야아앙!”(네? 그럼 어떡해요!)
[약속 장소를 잡아야지. 1년 뒤에 어디서 만날지 말이야.]
해인은 분명 울상을 지었지만 고양이의 몸인지라 딱히 표정이 나오지는 않았다.
“미야…….”(알았어요…….)
[너무 걱정 마라. 그 안에 있는 한 위험할 일은 별로 없을 거다. 그건 사자들의 갑옷 같은 거라 영혼을 보호해주는 힘이 있거든]
그렇게 덧붙인 사신은 몇 가지 사실을 더 알려줬다.
주의 사항이자 사용 설명 같은 것으로 웬만한 불운은 비껴나가게 만들어진 사신탈이지만 그래도 큰 사고는 주의해야 한다는 것과,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살 수는 있으나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
먹으면 배가 부르긴 하지만 먹으면 배설해야 한다는 것. 겉보기는 감쪽같으나 속은 실제 생명체와 다르니 학자나 의사 따위를 멀리할 것.
사신탈은 실제 생명체보다 단단하고, 강하고, 모든 신체 능력이 월등하니 떠돌아다니기에는 편하다는 것 등등이었다.
얼마나 그렇게 사자의 말을 경청했을까.
[그럼 이만 가볼까.]
“냥?”
[인간계로.]
사자는 정말로 바쁜 모양이었다. 해인이 채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주억이자 그가 머리 위로 날아와 앉았다.
그러더니 검은 고양이의 두 귀 사이로 내려앉아서는, 발톱에 힘을 줬다.
머리 위에서 퍼진 하얀 빛이 순식간에 해인의 몸을 감쌌고 이내 강한 바람이 불었다.
***
해인은 온몸, 그러니까 자신의 털 위로 흐르는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질끈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떠봤다.
오른쪽 눈을 먼저 조금, 그리고 이어서 왼쪽 눈도.
발밑으로 무수한 빛들이 보였다. 도시의 상공인 듯했다. 그리고…… 해인은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고양이 몸을 한 주제에.
“끼야아앙! 냐앙! 냐아앙!”(꺄아아악! 꺄악! 꺄아악!)
[음? 왜 이래?! 얌전히 있어! 이러다 떨어뜨…… 렸다.]
저도 모르게 있는 힘껏 버둥거렸다.
그러자 해인의 귀를 꼭, 잡고 있던 무언가가 힘을 잃었고 그 탓에 해인의 몸이 까마득한 땅 위로 떨어져 내렸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말이다.
해인은 한껏 네 개의 발을 허우적거리며 소리쳤다. 오늘 참, 여러 번 살고 싶다.
“꺄아아앙! 니야니야냐냐냐냐!” (꺄아아악! 살려줘요오오오!)
혜인이 어느 건물의 옥상 위로 떨어지기 바로 직전, 저승사자의 가느다란 새 다리가 해인의 등가죽을 꽉, 낚아챘다.
간발의 차로 겨우 목숨을 부지한 해인은 해롱해롱해진 눈으로 몸에서 기운을 뺐다.
사실 이미 떨어지는 동안 하도 소리를 질러서 남은 기운도 없었다.
“므아…….”(히야…….)
[큰일 날 뻔했네! 아깝게 무슨 짓이야?]
뭐가? 사신탈이? 해인은 십년감수해서는 반박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제야 우는 소리가 엉엉 튀어나왔다.
“냐아앙……! 냐아아……. 니야아…….”(어허엉……! 엄마아……. 흐어엉…….)
사신이 사람 잡네, 서러워서 못 살겠네. 엉엉 울음을 터트렸으나 그래봐야 고양이 울음 소리였다.
[탈이 아무리 튼튼해도 거기서 떨어지면 망가진다고! 그 탈이 망가지면 영혼이 튕겨 나가버리니까 조심해. 그랬다가는 악귀들의 먹잇감이 될 테니까.]
“냥, 니야아.”(흑, 니에에.)
[오, 여기 좋군. 인간들의 옥상정원이야.]
그 말에 해인은 해롱해롱 풀린 눈으로 겨우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은 온통 수풀이었는데 벤치도 보였고 커다란 나무도 보였다. 잘 꾸며진 화단과 정원같이 꾸며진 모양으로 보아 옥상정원이 맞는 듯했다.
아파트 꼭대기인 걸까. 이어진 사신의 말에 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명 냄새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약속 장소는 여기로 하면 되겠어.]
“……니야.”(……좋아요.)
[잘됐군. 그럼 이만 가볼 테니……. 아, 혹시 급히 전할 말이 생기면 저기 저 나무 꼭대기에 종이로 메어두기로 하지. 자네도 할 말이 있거든 적어두게나. 시간 나면 들러볼 테니까.]
“냐.”(알겠어요.)
불만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해인은 이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저승사자라면 할 일이 정말 태산 같을 테니까.
무엇보다 자신의 몸을 만들어야 하는 중책을 가지지 않았는가.
싫은 소리 하기도 이제 조금 꺼림칙해졌다. 좋든 싫든 저승사자는 유일한 믿을 구석이었으니까.
해인이 대답하자 저승사자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어두운 밤하늘로 포르르, 날아올랐다. 그대로 사라질 것 같더니 공중에 뜬 채 뒤돌며 당부했다. 경고의 경고였다.
[당연하겠지만 사신탈의 존재는 금기일세! 혹시라도 발설하면 천기누설의 벌과 맞먹는 죄야.]
“니야아아?”(말할 일이 있을까요?)
[……하긴. 그래도 조심하라고.]
뭐랄까. 실수를 거짓말로 덮는 기분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둘 다 살고 싶은 것을.
해인은 다시 바삐 날아가는 사신의 뒤통수를 한참 바라보다 사라지기 전에 소리쳤다.
“냐아 냐이야아앙!”(나 잊으면 안 돼요!)
짧은 고갯짓만 남기고 사라지는 사신에게 해인은 앞발을 가볍게 흔들며 배웅했다. 뭐, 배웅이라고 해봤자 곁에 있던 의자 위로 올라간 것이 다였지만 왠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몇 시간 사이에 고양이로 세상에 내던져서인지 불안하기만 했다.
아직 사태 파악이 덜된 것도 같았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 죽어라 발버둥 친 결과가, 고양이가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고양이라니. 그건 자신의 전생이라고 해도 현생에서는 전혀- 인연이 없는 생물이었다.
끽해야 길에서 몇 번 보거나. 집사가 됐다며 친구들이 자랑하는 애완 고양이를 사진으로 본 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고양이였다.
아직도 뭐가 뭔지. 해인은 허공에 앞발을 흔들다가 이내 자신의 앞발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새까만 털. 달빛에 어렴풋이 푸른빛을 내는 자신의 털 결이 신기했다.
달빛의 농도에 따라 검은빛, 푸른빛, 간혹 보랏빛을 내는 자신의 발을 이리저리 뒤집어보다가 이내 분홍빛 발바닥에 시선이 닿았을 때였다.
문득 핥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솟았다.
인간의 자아로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고양이의 자아는 저 오동통한 발가락 사이사이를 혀로 꼼꼼히…….
찰칵.
“냥!”(꺅!)
해인은 돌연 터지는 빛과 함께 들려온 셔터 소리에 화들짝 놀라 등의 털을 곤두세웠다. 꼬리가 너구리 꼬리만큼이나 크게 부풀어 올랐다.
바스락거리며 수풀 쪽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는 인기척에 귀를 바짝 세우고는 돌아봤다.
“이런, 미안미안! 많이 놀랐구나.”
사람이 이렇게 반가울 수도 있는 걸까. 다가오는 건 낮지만 질감이 풍부한,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였다.
성능이 좋아진 코는 남자의 스킨 향을 쉽게 캐치했다.
한밤중에 낯선 남자라니. 경계해야 당연한데 해인은 깡충 의자에서 뛰어내려 그에게로 사뿐사뿐 걸어갔다.
괜스레 사람이 반가웠다. 본래는 낯선 사람이 말 거는 데 질색하는 성격이면서 말이다. 방금 가버린 사신도 어째 떠나니 아쉬웠던 해인이다. 불안하니 뭐든 붙잡고 싶기만 했다.
“니야아.”(반가워요.)
천천히 꼬리를 흔들며 울었다. 하지만 해인은 자신이 꼬리를 살랑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호오, 너 붙임성이 제법 좋구나?”
이내 남자가 달빛 아래 섰을 때 해인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꼬리를 한껏 꼬았다.
아주, 호남형의 미남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살며시 해인의 턱 밑으로 손가락을 넣었을 때, 그리고 그 손이 턱 밑을 간질였을 때, 해인은 움찔, 기분 좋은 느낌에 저도 모르게 목을 울렸다.
마치 난생처음으로 사람의 살가운 손길 받아본 기분. 어쩜 이리 따듯하고…… 보드랍고 상냥하담. 나를 예뻐하는 손은 매우 좋은 거로구나.
“갸르르.”(으응.)
“착하다. 예쁜 아이네.”
예쁜 아이네……. 예쁜…….
자신을 보고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이 뒤집어쓴 고양이 탈을 보고 한 말인데도 해인은 부끄러움을 탔다.
그 달콤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이토록 적나라하게 이성에게 칭찬 받아본 적이 없어서일까. 사람의 얼굴이면 분명 얼굴을 붉혔을 테다.
찰칵, 찰칵.
보라색과 푸른색, 검은색이 기묘하게 섞여 윤기를 흘리는 해인의 털빛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그는 벤치 앞에 쭈그려 앉아 해인을 찍기 시작했다.
사람일 때의 해인은 사진에 찍히는 걸 질색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제게 집중하는 남자의 시선이 묘하게 즐겁기까지 했다.
카메라 속의 해인에게 집중하던 그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해인은 벤치 등받이 위, 한 마디 정도 되는 공간에 네 발로 서서는 목을 울렸다.
“야옹?”(가요?)
“또 보자, 고양아.”
그는 해인의 쫑긋한 귓가를 가볍게 만지작거리더니 옥상을 빠져나갔다.
해인은 그가 나간 문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 뒤를 따르듯 문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문은 이미 닫혀 있었고 그녀로서는 이 문을 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지 못했던 문제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될 수 있다고만 들었지 어떻게 되는지는 듣지 못했다. 주문 같은 게…… 있는 걸까? 못 들었는데? 앞발을 들고 문에 기대 서봤지만 문고리는 여전히 높이 있었다.
“니야앙?”(어떻게 나가지?)
손에 힘을 주자 발톱이 튀어나왔다. 그것으로 문을 박박 긁어봤지만 하등 소용없는 짓이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기어 올라갈 만한 것도 없었다.
잠시 문 앞을 어슬렁거린 해인은 이내 문에서 떨어져 정원을 돌아봤다. 예쁘기는 하지만 지극히 인공적인 곳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이내 수풀 아래로 몸을 옮겼다.
수풀 아래에 자리를 잡고 누우니 좀 전 남자가 나간 문 반대편에 조금 더 작고 하얀 문이 있는 걸 발견했다.
‘Staff only’라고 적힌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해인은 열려 있는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소리 없이 움직였지만, 네 발로 움직이는 것이 익숙지 않아 처음에는 계단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기민한 몸은 금세 적응했지만, 짐승으로서 키 높이의 계단을 내려가는 일은 흡사 사람이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것과 다르지 않은 높이감이었다.
“냐냐?”(37?)
반 층 정도 내려왔을까. 해인은 자신이 있는 층수를 발견하고는 기겁을 했다. 저걸 언제 다 내려가?
엘리베이터가 있을 테지만 고양이의 몸으로 어떻게 엘리베이터를 탈 것인가, 빼도 박도 못하고 이 계단을 37층이나 내려가야 하나 싶어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차라리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겠어!
이제야 든 생각이지만 엘리베이터도 못 타는 몸으로 이 아파트인지 주상복합인지 모를 건물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가 문제였다.
저 무거운 비상문을 어떻게 열 것이며. 나가서 당장 할 수 있는 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놀란 마음에 어서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만 급해서 어떻게 만나러 갈 것인지는 전혀 생각도 못 했다.
심지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 안다고 해도 그 길을 걸어갈 것인가? 지하철을 탈 수도 없는데?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길을 걸어간다 해도…… 그러다 잡히면 유기견, 아니 유기동물 보호소로 잡혀갈지도 모른다.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슬슬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었지만 해인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주인 없는 길고양이들이 떠돌아다니다가 사람 손에 잡히면 무슨 짓을 당하는지 정도는 말이다.
운이 좋으면 잡혀서 중성화 수술을 받은 다음에 귀 한쪽을 잘릴 테고, 운이 나쁘면 안락사였다. 애묘가인 지인에게 그런 열띤 토론을 들은 적이 있었다.
관련 자료를 만들어서 무료로 배포할 정도로 열성적인 친구였고, 그 자료에 들어갈 일러스트를 그려준 적이 있었다.
‘TNR(Trap Neuter Return)이라는 게 있어. 길고양이를 잡아서 중성화 수술을 시킨 뒤에 다시 길거리로 돌려보내는 거야. 길고양이 개체 수 줄이기 운동의 일환 같은 건데,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는 생식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발정기 고양이 특유의 소리로 울지 않게 돼.’
‘아, 그 애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 말이지?’
‘그래, 사람들은 그 소리를 매우 싫어해. 수술하면 개체 수도 늘어나지 않게 되고 우는 횟수도 줄어들어. 수술을 받은 고양이들은 한마디 정도 귀를 잘라내서 표시해두는데 나는 그나마 이게 사람이 길고양이한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화합이라고 생각해.’
‘수술비는 누가 내? 자원 봉사자들?’
‘그렇기도 하고 시에서 부담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것도 돈이 많이 들어서 시행하지 않는 도시가 많아. 그럼 사람들의 신고로 잡혀가는 고양이는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나야 잘 모르지.’
‘대부분 안락사 되어버려. 수술보다 싸게 먹히거든. 인간이란 참 잔인해. 생각할수록 너무하지 않니? 먹이를 주면 고양이가 몰려든다고 싫어하고 내버려두면 음식물 쓰레기를 헤집는다고 싫어해. 걔들도 생명인데 사람들은 고양이는 생명이 아닌 줄 아나 봐.’
고양이를 5마리나 기르는 친구는 새빨간 얼굴이 되어서는 해인에게 열심히 길고양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고양이를 싫어하는지도 말이다.
사람들이 길고양이에게 하는 짓을 자신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크게 소름이 돋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아무렴 죽는 것보다야 고양이로 사는 게 백번 낫지만, 이대로 그냥 죽는 것도 싫고 귀가 잘리는 것도 싫다. 물론 안락사도 싫다.
도시를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동물들의 말로가 떠오르자 해인은 어느새 몸을 돌려 다시 옥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양이로서의 삶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