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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스-1화 (1/114)

1화. 고양이가 되는 법

안녕? 좋은 아침이야.

나는 사실 아침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야, 해가 잘 드는 창가에 앉아서 늘어지게 기지개 펴는 일은 굉장히 좋아해.

물론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계속 잠들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거지. 역시 사람은 느긋하게 살아야 해.

“으음~”

아침부터 내가 이렇게 뒹굴거리고 있으면 같이 사는 남자 둘이 부스럭거리고는 각자의 방에서 흐느적거리며 걸어 나오기 시작해. 그건 한 아침 7시쯤일까.

이제는 일상이라 익숙해졌지만…… 희한하게도 나와 같이 사는 두 남자는 벗고 자는 버릇이 있어.

적어도 아래는 입어준다는 게 다행일까?

나는 거의 매일 아침을 자의와는 상관없이 두 남자의 느른한 상체 누드쇼를 관람하는 걸로 시작해.

누군가는 부러워할지도 모르겠어. 둘 다 필요 이상으로 잘생긴 남자들이거든.

“잘 잤어?”

“응.”

그리고 둘 다 나를 너무 좋아해서 탈이지.

내가 아침부터 소파에 길게 늘어져서 여전히 졸고 있으면 그들은 차례로 내게 다가와서 키스를 해.

난 이 집 주인의 키스는 기꺼이 받아주지만, 식객의 키스는 별로 내켜 하지 않아.

더구나 오늘은 이 녀석 머리가 더 까치집이야.

“나도 해주라.”

녀석이 저도 키스해달라며 얼굴을 들이대기에 슬쩍 시선을 피했어. 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

처음엔 녀석이 내게 키스하려고 들면 안 하고 버텼거든? 그런데 결국 남자의 힘은 이길 수가 없더라고.

이 식객 녀석은 제 키스를 받아주지 않으면 억지로 내 얼굴을 붙잡고는 꾸역꾸역 자잘한 키스를 쏟아부어.

코 위부터 눈가, 뺨, 이마에 이르기까지 비워두는 곳이 없어. 겨우 단장해둔 머리가 엉망이 된다고!

어쩔 수 없이 요즘에는 녀석의 키스도 받아주고는 해.

절대 좋아서 순순히 구는 게 아니란 말씀.

버틴다고 버티다가 결국 녀석에게도 쪽, 하니 가볍게 입술을 댔다가 떼어냈어. 그랬더니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이야.

“이젠 내가 좀 좋아졌나?”

“흥!”

“그럼 한 번 더…… 알았어! 알았다고!”

보자 보자 하니까 또 키스하려고 드는 녀석의 얼굴에 하악질을 해줬어. 참는 것도 한 번이 한계거든. 내 참을성은 아주 볼품없다고.

하여튼 두 남자의 키스를 받고 나면 나도 그제야 아침이 시작되는 느낌이야.

오늘은 또 뭘 하고 시간을 때워야 할지 모르겠어. 혼자 있는 하루는 엄청 심심하거든.

“다녀올게.”

“나도.”

두 남자가 차례로 출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배웅을 해주지. 그래봐야 현관에서 나가는 걸 봐주는 게 다지만.

빈집에 남아 너무 나른한 나머지 실컷 하품을 하고 있자니,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가 떠올라.

내가 비록 지금은 고양이지만 말이야, 원래부터 고양이는 아니었거든.

무슨 얘기냐고? 심심하니까 얘기해줄까, 말까.

으음, 궁금하면 거기 있어보든가. 기분 내키면 이야기해줄지도 모르거든. 고양이 변덕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

아, 요즘은 나도 헷갈리기는 하지만 말이야. 난 원래 사람이었거든. 정말이야.

***

끼이이익!

“아, 안 돼……!”

해인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가 멈추질 않았다. 어째서?

하지만 이내 그에 대한 의문보다는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였다. 커다랗게 휘어 미끄러지는 차체가 주는 아찔함에, 그 안에 있는 자신의 한 치 앞에.

벼랑 끝으로 내달리는 이 순간의 공포에.

콰앙!

차는 여지없이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잠시 허공을 나는 듯하더니, 이내 새까만 숲이 즐비해 있는 낭떠러지 밑으로 무섭게 추락했다.

충격이 지체 없이 이어졌다.

절벽을 구르며 요란스레 뒤집어지는 바람에 차 안에서 위와 아래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안전벨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엉망으로 휘둘러졌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자신을 찾아온 절망에 범벅된 그녀의 눈앞으로 작고 새하얀 새 한 마리가 보였다.

작은 새.

그것은 공포에 질린 그녀의 눈에 이상하리만치 또렷해 보였고, 그래서 기묘했다. 심지어 그것은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

그 묘한 것에 대한 의문은 잠시였다. 더 이상의 사고는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차가 추락한다. 고로 그녀의 몸도 함께 곤두박질친다.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섬뜩하게 커지더니 이내 온몸에 따갑도록 엄습했다. 자신의 짧은 지난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그것마저도 이내 하얗게 세어버렸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산산이 깨진 창문 사이로 날카로운 바람이 쉴 새 없이 몰아쳐 그녀의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그것이 새까맣게 눈을 가렸을 때 해인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조차 포기했다. 죽음은 직감이 되었다.

콰앙!

엉망으로 구르고 낙하한 차체가 굉음과 함께 절벽 아래 바닥으로 사정없이 처박혔다.

격한 일그러짐이 그녀의 주위를 망가트렸다.

앉아 있던 의자가, 유리창이 엉망으로 갈라지고 깨어졌다. 추락의 여파가 고스란히 그녀의 몸을 뒤흔들었다.

“아, 악!”

뭉개진 차체와 함께 그 사이에 낀 두 발이 으스러지는 듯했고 빠각, 빠각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갈비뼈의 존재를 처음으로 실감해야 했다.

몸 여기저기에 금이 가고 깨어지는 소리가 귀에 소름 끼치게 울려댔다. 빠각.

울컥, 목구멍을 타고 핏물이 올라왔다.

격렬한 육체의 고통. 그리고 왜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신적 고통.

태어나 처음으로 맛보는 지독한 고통에 해인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한없는 고통 앞에서, 더 이상의 신음도 나오지 않았다. 아프다고 살아 있는 소리를 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지나버렸으니까.

“……!”

가드레일을 뚫고 외진 도로의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슬프게도 자신이 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가느다란 핏물이 눈물처럼 오른뺨을 가로질러 흘렀다. 삶이 내 것이 아니게 되는 데에는 결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정말 지극히 한순간이었다.

엄마, 엄마. 의식이 잔불처럼 꺼져가는 사이 해인의 머릿속은 온통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했다.

죽고 싶지 않는 것보다는 자신이 죽으면 가장 슬퍼하며 오열할 사람이었다.

[이름, 박해인.]

아득해진 그녀의 시야 앞으로 하얗고 작은 무언가가 날아왔다.

눈앞이 핏물로 흐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불현듯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도로에서 떨어질 때 차안에서 보았던 하얀 새가 분명했다. 이상하게 선명한 그것이 눈을 감는 걸 방해했다.

[양띠년 술시생, 부친 박상인, 모친 이해영. 부친은 10년 전에 별세, 맞는가?]

“……콜록, 욱!”

홀연히 들려온 목소리에, 사람의 것이 아닌 그 목소리에 해인은 보이지도 않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애써 주위를 살폈다.

아무리 살펴도 주위에 있는 건 새하얀 새 한 마리뿐이었다.

온통 부서지고 일그러지고 흉측해진 속에서 홀로 새하얗게 빛나는, 그래서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기괴한 존재.

그것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걸 해인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뭘까.

[나는 저승의 심부름꾼이다.]

“하아……?”

[너희 말로 저승사자지. 죽은 자를 인도하는 게 내 일이다. 그대의 운명은 오늘로 다 했으니 나와 함께 저승으로…….]

사무적이다 못해 건조한 목소리에 해인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가까스로, 가까스로.

“아…… 니야. 틀려.”

술시라면 오후 7시부터 9시를 가리키는 것인데 그녀가 태어난 시간은 6시 5분이었다.

미신을 맹신하지는 않았지만 가벼운 점술 정도야 본 적 있었기에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아…… 니! 난 유, 시……. 흐읍, 하아…… 하!”

피를 울컥 토해내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끊임없이 바람처럼 속삭였다. 목소리랄 것도 더는 낼 수 없었다. 자꾸만 눈이 감겼다.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자신이 죽어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말하려 발악하는 내내 입에서 피가 흘렀다.

고통도 느낄 수 없을 만큼 부서진 몸이었다. 직감으로 느꼈다. 이 육체로는 더 이상 살 수 없음이라고.

[잠깐, 유시? 그럴 리가?! 분명 여기에 술시라…… 고, 으음?]

새의 모습을 한 저승사자는 상당히 놀란 듯했다.

얼핏 파닥파닥거리는 바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점점 가까이 들렸다.

한순간이었다. 해인의 몸이 차 틈에서 빠져나오나 싶더니 묘하게 편안해졌다. 조금 전까지 온몸을 잠식했던 무거운 감각이 사라진 것이다.

온몸을 찌르는 고통에서 스르륵 빠져나오는 묘한 감각. 허물을 벗은 듯 너무도 가벼운 몸.

아니, 영혼.

[이게, 대체……?]

편안해진 것은 몸의 감각뿐이 아니었다. 흐려졌던 시야도 다시 선명해졌다. 하지만 그 시야로 보이는 것은 온통 회색빛뿐이었다.

위아래도 없는 무저갱 같은 한 공간. 어느 틈에 옮겨진 걸까.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자신을 빤히 노려보는 새 한 마리.

가물거리던 의식 역시 또렷해져서 해인은 모든 일의 주범이 저 하얀 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몸에 악착같이 붙어 있던 제 영혼을 빼낸 것도 저 새였다.

[……인간, 이거 미안하게 됐다.]

[나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날…… 죽인거야? 해인은 화를 내면서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하얀 새, 아니 저승사자를 향해 소리쳤다.

[이게 뭐냐고요!]

몸이, 아니 이걸 몸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지금 해인의 몸은 과하게 가벼웠다.

바람 같았고, 깃털 같았다.

힐끔 손을 내려다보니 흐릿하게 회색빛으로 빛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빛날 뿐만 아니라 반쯤 투명했다. 이 맙소사! 마치 귀신처럼…….

자신은 지금 영혼이었다.

기절할 것만 같은데 그럴 수 없었다. 정신만 남은 영혼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아픔을 주던 몸이 차라리 그리웠다. 손발을 덜덜 떨 것 같은 정신인데 투명한 손끝은 흐릿하게 퍼질 뿐이었다. 연기처럼.

[싫어.]

흐트러지는 손을 흐트러지는 손으로 붙잡으며 해인은 사라지기 싫어 울부짖었다.

[일이 꼬였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인간의 수가 아무리 많다지만 부모의 이름에 본인의 이름까지 똑같은 영혼이 있을 줄이야……. 낭패다.]

새의 입이 조잘거렸다.

[……내 실수다. 사과하지.]

저승사자는 지금, 자신이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죽었다고. 비명 같은 소리가 몸에서 새어 나갔다.

[말도 안 돼, 그럼 날 다시 원래대로 돌려줘요! 내 몸으로……. 왜 내가 이런……!]

[……그럴 순 없다.]

[어째서요? 당신 말대로면……. 나, 난 죽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난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 몸은 이미 죽었다. 그러니 영혼을 빼낼 수 있었던 거고. 살릴 수 없을 만큼 죽어가는 육체에서만 영혼이 넘나들 수 있다.]

이 이상 끝을 뜻하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차라리 기절하기를 제발 염원하는데, 저승사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새로 만드는 수밖에.]

[뭘…… 새로…… 만든다는 거죠?]

망망대해에 버려진 것 같았다. 해인은 저승사자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이었다.

[뭐긴. 인간, 너의 몸이지. 원래의 몸은 소거됐다. 아예 그 차까지 지워버렸으니 이 세상에 그것들의 잔해는 없다. 인간들은 다만 네가 행방불명됐다고만 생각하게 될 거다.]

소거? 자신의 몸을? 차를? 그거 할부……. 아니, 그보다!

[그, 그렇다면 좋아요. 얼마나 걸리는 거죠? 몸을 다시 만드는 건…….]

[미안하지만 내 전문은 소거지 창조가 아니라서 말이다.]

[그러니까 얼마나……!]

[내 선에서 일을 끝내야 하니 빨라도 1년은 걸릴 게다.]

이렇게 억울할 때가 또 있을까. 그런데 달리 선택지가 없는 참담한 경우는?

제가 잘못해놓고 남 일처럼 태연하게 구는 빌어먹을 저승사자는, 쓸데없이 요요했다. 남을 덜컥 실수로 죽인 주제에 잘도 신비스러운 자태였다.

[다른 사자의 도움을 받거나 윗선의 힘을 빌린다면 더 빨리 가능하겠지만…… 이 일이 들통 나면 너나 나나 살 수 있는 자는 없다. 저승은 톱니바퀴의 틀에서 벗어나는 일을 용서치 않으니까.]

그렇다면 새로 몸이 만들어질 때까지 자신은 영혼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걸까? 해인은 멍하니 반투명한 자신의 몸을 다시 내려다봤다.

발에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땅을 딛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게 장난이나 일종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따위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몰래카메라로 이런 일은 불가능할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난, 억울해요.]

[그럼 같이 소멸될까?]

해인은 순간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소멸은 또 무슨 말인지.

[인간, 정말 죽지 않는 것에 감사해라. 아니지. 그보다는 영혼이 ‘저승’에 가지 않은 걸 말이야. 만약 네 영혼을 저승에 데려갔다면 나는 실수의 죄를 물어 소멸되고, 너는 윤회의 방에서 네 본래의 수명만큼의 시간을 보내야 할 뿐이다. 저승은 널 결코, 되살려주지 않아.]

말문이 덜컥 막혔다.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 화를 내고 억울해해야 할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어지러운 사태였다.

죽었고, 다시 살려줄 수 있는 건 이 저승사자뿐이고, 그런데 그건 꽤나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 이틀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더니 1년이란다. 그 시간이면 누구나 자신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걸 알아차릴 거다.

마침 자료 조사를 위해 여행을 시작한 차고 본래부터 한두 달씩 홀연히 여행을 다녔다고는 해도 말이다.

[그럼 나더러 정말 1년을……. 그냥…….]

[1년 동안은 행방불명인 채로 있어야지. 그 후에는 다시 본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전까지 네 영혼은 이곳에 있어야만 해. 그대로 인간계를 떠돌다가는 악귀가 될 터다.]

이것을 ‘살았다’라고 안도해도 될 일인지 해인은 헷갈렸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기다리는 가족도 있고…….]

[거듭 말하지 않았는가. 미안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시 몸을 만들어주는 것뿐이라고. 뭘 더 바라는 건가?]

감정 없는 눈이 해인은 빤히 바라봤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해인은 호랑이 굴에라도 들어온 기분이라 애써 정신을 다독였다. 꾸역꾸역 납득하는 와중에도 이 한 가지만은 따져야 했다.

[하지만 1년을 이 공간 안에만 있을 수는 없어요. 그랬다간, 미칠 것 같다고요. 나도 할 일이 있는데 여기서 그냥 멍하게 있을 수만은 없어요! 남 일이라고 대충 말하는 당신처럼 그 이상한 이론에 ‘네! 알겠습니다.’ 할 수 없다고요! 알아들어요?!]

저승사자 역시 해인의 분노에는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처음엔 질질 짜기만 하더니 지금은 큰소리를 치니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나? 육체를 잃은 네 영혼이 가장 안전할 수 있는 곳은 내 공간인 이곳뿐이다! 이승을 떠돌다 악귀의 먹이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악귀가 되어서 다른 저승사자에게 잡혀가고 싶은가? 그럼 인간 너는 1년은커녕 평생 환생도 못 하고 지옥귀가 되어야 할 거다! 실수를 숨기려 한 나나, 실수의 증거인 너나 둘 다 결국엔 소멸되고 말 거다!]

저승사자 역시 보기만큼 멀쩡하진 않았는지 이내 격양된 음성이 되었다.

마치 실수로 찌른 자와, 찔린 자 같은 형국이었다. 피차 억울해 악악댔다.

해인은 사태를 이해는 했다. 이 알 수 없는 사태에도 납득은 했다, 그 말이다. 살려는 준단다.

다만, 한동안 죽은 듯 지내야만! 해인은 기가 찼다.

[그래도…… 난!]

울고 싶은데 더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영혼이라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표정은 울고 있었고 그런 해인에게 파닥파닥 날아온 저승사자가 해인의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자신의 손도 통과시키는 몸인데 앉아 있는 걸 보면 저승사자는 저승사자인 모양이다.

[확실히 미안한 일이다.]

[미안하면 다예요?!]

[……그리고 문제로군. 인간 네 영혼 퍽 약하다. 이곳에 혼자 가둬둔다면 그건 그것대로 널 망가트릴 것 같다. 흐려지다가 스스로 공기가 될 거다.]

공기라니, 섬뜩해졌다.

정신이 불안정해진다는 건, 영혼이 불안해진다는 것과 같은 말인가 보다.

해인은 더더욱 육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뿌옇게 흩뿌려지는 두 손을 움켜쥐며 저승사자에게 애원했다.

[어떻게 좀 해봐요. 살려줘요……. 제발, 나한테 몸을 줘요. 이 상태는…… 너무 무서워요. 싫다고요!]

해인은 지금 자신이 무얼 바라는지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다시 살고 싶다. 영혼인 자신은 무섭다. 다시 세상으로 가고 싶다.

1년 동안 저를 애타게 찾아 헤맬 한 사람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엄마.

[몸이라…… 좋다. 그러고 보니 쓸 만한 게 있지.]

[되, 되는 거예요? 몸을 가질 수 있어요?]

[그래. 네 원래 몸은 아니지만.]

[설마 죽은 사람의 몸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인간들 드라마에서나 가능하지 그런 건. 그렇게 쉬우면 진작 권했을 거다. 그건 인간의 기준으로 하면 살인죄에 해당하는 끔찍한 짓이라고.]

해인은 웃다 울며 혹시 그가 마음이라도 바꿀까 싶어 저승사자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하얀 새는 잡히지 않고 포르르 높이 날아가 버렸다. 그러곤 바보 대하듯 질책했다.

[너의 조급한 심정 얼핏 알 것 같다만, 인간 네 몸을 다시 만드는 것은 어찌하든 1년 내에는 힘들다.]

[……왜 꼭 1년이죠? 조금이라도 더 빨리는 안 되는 거예요?]

[육체의 틀을 창조함에 열 달. 어미의 배 속에서 인간이 자라는 그 시간은 신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어. 그건 물은 물이고 불은 불인 것과 같이 우주에 정해진 순리거든.]

[그럼, 남은 두 달은요?]

[틀을 갖춘 몸을 다시 네 본래의 나이와 같게 만드는 시간이다. 네 ‘조각’으로 갓난아기를 만들어 선계의 시간 속에 집어넣을 거다. 그곳의 시간은 인간세계보다 훨씬 빠르지. 그곳에서의 두 달은 인간 세상에서의 20년과 같아. 그러니 도합, 서둘러서 1년이라는 거다.]

[……그럼, 그 열 달도 선계라는 곳에서 보내면……?]

[그래서는 순수한 선인의 몸이 되어버려. 더러운 인간계에서 육체가 버티질 못하지. 천사가 인간계에 못 사는 거라고 해야 하나?]

무슨 말인지 반은 알 것 같고 반은 모를 것 같았다. 해인은 불안스레 흐트러지는 자신의 손과 발에 시선을 빼앗겼다.

[불안하군, 불안해.]

[알았으니까, 그럼 빨리……. 다른 몸을 줘요. 이대론 싫어요! 내 손을 좀 보라고요!]

저승사자는 생각에 빠진 듯 아무것도 없는 회색 공간을 천천히 날아다녔다.

철저한 저승사자만의 공간에서 저승사자는 이내 무언가 떠올렸는지 작은 부리로 허공을 콕, 집어 쭈우욱, 길게 찢어냈다.

그 안에서 무언가 검은 것이 툭 굴러 나와 회색 공간 안을 부유했다.

[이걸 써봐라.]

날개를 접고 잠든 까마귀 같은 형체였다. 그것은 시체라기보다는 마치 박제 같은 느낌이었는데, 절로 해인의 앞으로 다가왔다.

[쓰라고요?]

[그 안에 들어가 보라는 말이다. 내가 이 몸을 쓰기 전에 사용하던 것인데…… 상성이 맞으면 들어가서 머무를 수 있을 거다.]

[어떻게…… 들어가는데요?]

[일단 만져봐라. 그러면 알 수 있다.]

저승사자의 말에 해인은 얼떨했지만 일단 손을 들어 그 까마귀 같은 것을 만져보려 했다.

하지만 파치직, 손이 튕겨져 나온 건 곧장이었다. 영혼인 손은 연기처럼 허공에 퍼졌다가, 다시 손의 형태로 모아졌다.

해인은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미약하지만 고통이 따랐으니까. 영혼인데도 아프다니. 이 박제 같은 게 대체 뭘까 싶었다.

[아, 아픈데요?!]

[안 맞는 모양이지? 그럼 이걸로.]

다른 허공을 찢어 저승사자가 꺼낸 것은 새까만 고양이였다. 그것 역시 천천히 해인의 앞으로 흘러오듯 다가왔다.

조금 전의 그 찌릿한 감각이 아직 선명한지라 해인은 섣불리 손을 대지 못했다.

손을 뻗었다 움츠렸다 하며 망설이는 사이 가까이 다가온 고양이의 몸이 해인의 영혼에 부딪쳤고, 그것만으로 고양이의 몸은 절로 해인을 끌어당겼다.

빨려 들어가는 감각에 절로 몸을 움츠렸는데 이상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감각이 둔하던 몸이 바짝, 근육을 조이고 있었던 것이다.

“야옹?”(뭐지?)

[오, 그거 아주 잘 맞는군. 그 정도로 잘 맞으면 적응기도 따로 필요 없겠어.]

“야앙!”(에엑!)

해인은 화들짝 놀랐다. 그러자 본래의 그녀에게는 없던 엉덩이 뒤의 무언가가 파바밧! 하고 바짝 곤두 서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뭐야?!

[하긴, 전생에 고양이였으니까.]

“먁?!”(엑?!)

이런 뜻하지 않은 전생을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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