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07. 첫 아이
“축하드립니다. 백작님.”
“정말이에요?”
안토니아가 기쁜 소식을 전해 들은 건 다름 아닌 자신의 24살 생일 파티 자리에서였다.
“정말로 제가 아이를 가졌어요?”
“그렇습니다. 백작님! 아이를 가지셨습니다.”
태의가 다시 한번 확신하듯 이야기하자, 안토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제 배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당연히 배는 납작하기만 했다.
근래 들어 안토니아는 좀 피로해하는 편이었다.
그걸 그녀는 연말연시를 맞아 쏟아진 일거리들 탓이라고 생각했다.
바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리를 거르는 것도 종종 있는 일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진 않았고 말이다.
그러다 생일 파티에서까지 어지러워하자 시간을 내어 참석했던 이스베르가가 급하게 태의를 불러 주었다.
‘여름에 리샤르에게 선언한 뒤로 여러가지로 노력했는데 잘 되지 않아서…….’
뭐, 그렇다고 해도 겨우 반년가량이었지만.
‘원래 임신이라는 게 그렇지, 너무 걱정하지 말렴. 안토니아. 넌 아직 젊으니까.’
이스베르가는 웃으면서 안토니아의 초조함을 달래 주었다.
이렇게 되니 좀 무안하기도 했다.
겨우 반년의 기다림이었으니까.
“축하한다. 안토니아.”
그 자리에서 먼저 입을 연 건 다름 아닌 그녀의 할머니인 알렉산드라였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생일 파티는 가족만의 조촐한 자리였다.
아니, 애초에 열아홉 살의 생일 파티 이후로는 그처럼 크게 파티를 연 적이 없긴 했지만.
그때는 황태자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연 파티였으니까.
베네딕트도 정신이 난 듯 축하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직도 이렇게 작은 네가…….”
여전히 덜 자란 아이 취급을 하는 건 여전했지만.
이어서 이스베르가에 울피나, 폴리와 로레나를 비롯한 사용인들까지도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생일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다니, 이만한 경사가 없었다.
이스베르가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이야기했다.
“분명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거야, 오랜만에 황실에 기쁜 소식이니까.”
“그러게요.”
“내가 폐하께 이 기쁜 소식을 전해도 되겠니?”
“그럼요.”
안토니아는 조만간 입궁해 인사를 드리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이스베르가는 안토니아에게 일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이제 사람도 넉넉하니 황궁 일은 쉬렴.”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럼 물론이지. 드란제아 소공작이 그렇게 난리를 피웠으니, 더더욱 그래야지.”
안토니아는 몇 달 전 있던 소동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은 연애 시절에도 소란스럽더니 첫 임신 때도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드란제아 소공작의 과보호가 말이다.
리카르도도 과보호로는 누구에게 지지 않을 정도였으나, 적어도 안토니아의 운신을 제한하는 형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드란제아 소공작은 정말로 발렌타인을 유리 세공품 대하듯 굴었다.
그것 때문에 몇 번이나 싸우면서 말이다.
그래도 임신이기도 하고 그녀의 경우에는 초기에 절대 안정 소리를 듣기도 해서 이번에는 소공작의 과보호가 이겼지만.
안토니아는 문득 그게 떠올라 태의에게 물었으나, 평범하게 조심하면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당연히 과로를 하셔선 안 됩니다. 오르테가 소후작님처럼 절대안정까지는 아니어도 됩니다만….”
태의는 다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스베르가를 바라보았다.
“그냥 절대안정이라고 생각하렴, 안토니아.”
“네? 하지만…….”
“수도는 번잡스럽기도 하니, 영지에서 머무는 것도 괜찮을 거야. 그럼 영지 일도 몰아치듯 하지 않아도 될 테니.”
그건 그랬다.
확실히 늦가을부터는 수도에 올라와 시간을 보내야 하다 보니 돌아갈 즘엔 꼬박꼬박 일이 쌓여 있곤 했으니까.
“그리고 백작령이 훨씬 따뜻하기도 하고. 아이를 가졌을 때는 과하다 싶게 조심하는 게 방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특히나 첫 아이니까.”
“알겠어요, 이스베르가 님.”
“무엇보다 저 얼굴을 보렴.”
안토니아는 그 말에 조용히 그 시선의 끝을 따라갔다.
모두가 축하의 말을 전하고, 이스베르가와 한참 일에 관해 이야기한 그 시점까지도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이 있던 탓이었다.
다름 아닌 역시 전장에서나 멋있는-물론 안토니아는 요즘은 한두 군데쯤 더 추가해도 좋겠단 생각을 했지만-그녀의 귀여운 남자였다.
“리샤르.”
“……안토니아.”
그는 안토니아가 부른 말이 마치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겨우 숨을 내뱉으며 답했다.
그의 보랏빛 눈에서 많은 감정이 보였다.
걱정, 염려, 그런 감정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기쁨과 고마움, 미안함과 같은 감정도 섞여 있었다.
남들은 그저 딱딱한 트라체스 대공의 눈이라고 하겠지만 안토니아에게만큼은 그 감정이 고스란히 읽혔다.
그는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안토니아의 손을 꼭 잡았다.
부부의 그 모습을 보며 이스베르가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손뼉을 쳤다.
“오늘 파티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네요, 안토니아가 쉬어야 하니까요.”
그 말에 베네딕트가 잠시 머뭇거렸으나 그리 길지 않았다.
리카르도가 안토니아에게 이기지 못하듯, 그도 알렉산드라에게 절대 이길 수 없었으니 말이다.
* * *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 리카르도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에스코트해 침실로 향했다.
그는 온열 기구를 이용해 방의 온도를 올리고 안토니아를 침대 위에 눕히고서야 겨우 깊게 숨을 내뱉었다.
“……고마워.”
그가 겨우 꺼낸 첫마디는 그거였다.
“다행인걸.”
“응?”
“좀 걱정했어, 리샤르가 무섭다고 말할까 봐.”
안토니아는 물론 그의 마음을 깊이 이해했다.
하지만 그래도 기쁨의 순간에 역시 그가 걱정의 말을 꺼내는 건 싫은 이기심이 있었다.
자신과 그의 아이니까, 그가 느끼는 첫 감정이 긍정적이길 바랐다.
“안토니아가 믿으라고 했으니까.”
리카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안토니아를 꼭 끌어안았다.
“그래도 무섭지 않은 건 아니야, 그렇다고 참는 것도 아니야. 그리고 기쁘고 고마운 감정이 훨씬 큰데…….”
“큰데?”
“사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리카르도의 목소리에 물기가 섞였다.
“너무 신기하고 고맙고……. 믿기지 않기도 한데.”
“그런데?”
안토니아는 리카르도와 시선을 맞췄다.
얼떨떨해하던 그의 표정이 이내 미소로 변했다.
“그래도 확실한 말이 하나 있긴 해.”
안토니아는 말해 보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리카르도는 평소보다 더 조심스럽게 안토니아에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사랑해, 매일매일 더해지는 감정이, 오늘은 더 크게 더해진 것 같아.”
그건 안토니아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의 표현이었다.
* * *
안토니아는 그 뒤 리카르도와 상의해 백작령에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걱정 많은 그뿐만 아니라 이스베르가나 알렉산드라까지도 그게 좋겠다고 이야기했으니까.
‘뭐든지 간에 네가 편한 곳이 제일이야.’
알렉산드라는 수도건 어디건 안토니아 외에도 일할 사람들은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물론 황제도 뛸 듯 기뻐했다.
‘너희 둘의 아이니, 아니 안토니아 네 아이니 틀림없이 무척 사랑스럽겠구나.’
지금은 폐태자가 된 세르미아의 유폐 이후로 묘하게 기운이 없어 보이던 황제는 드물게도 기쁨을 드러냈다.
축하 선물로 보낸 것들도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것들이었지만 말이다.
‘어머, 이건 제위 계승자들에게 주던 것 중 하나인데.’
‘네?!’
‘폐하께서 그만큼 기쁘신가 봐.’
이스베르가는 그렇게 말하더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티아라를 선물했다.
보편적으로 티아라는 황족이 아니면 할 일이 없는 장신구인데 말이다.
아무튼 덕분에 안토니아는 황실의 비호를 받고 아무 걱정 없이 백작령으로 올 수 있었다.
“주인님,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뭐든지 말씀하세요.”
마틴을 비롯해 저택 식구들은 임신 소식에 모두 무척 기뻐했다.
마틴은 안토니아가 오기 전부터 상단에 연락해 질 좋은 식재료를 주문하고, 침구도 모두 더 좋은 것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게다가 또 특별한 사람들이 백작령을 찾아왔다.
“나도 한동안 백작령에 있을 거야.”
“수도는?”
“마기나가 있잖아.”
루퍼스는 그래야 자신의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오랜만에 동부지부에 둥지를 틀었다.
덕분에 동부 지부장이 여러 허점을 발견당해 탈탈 털린 건 뜻밖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사도님의 중요한 일에 어찌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교황 자리에 오른 에밀리오까지 백작령에서 머무를 것을 이야기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제는 교황 성하시잖아요.”
“그러니 더더욱 제가 가까이에 있어야지요, 사도님께서는 주신께서 선택한 분이시니까요.”
에밀리오는 특유의 아름다운 미소로 대답했다.
안토니아는 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으나, 리카르도의 얼굴을 보고 더 말리지 않기로 했다.
루퍼스와 에밀리오의 등장에 그가 눈에 띄게 안심한 얼굴을 했으니까.
‘이 두 사람이 있으면 죽고 싶어도 죽기가 어렵긴 하겠다.’
한 사람은 마법 기계 공학의 최고 권위자고, 또 한 명은 교황이니.
어쩌면 이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망자도 살려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 * *
백작령에서의 시간은 꽤 평온하게 흘러간 편이었다.
물론 아무 일도 없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괜찮아, 리샤르?”
“응? 아무렇지도 않아.”
안토니아는 시치미를 뚝 떼는 제 남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백작령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덧이 시작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안토니아가 먹고 싶은 것들은 대체로 쉽게 해결되는 것들이었다.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스튜가 먹고 싶어.’
‘있잖아, 마틴이 어릴 때 만들어줬던 찹 스테이크가 먹고 싶은데.’
‘수도에서 먹었던 블루베리 타르트가 먹고 싶은데…….’
집에서 먹었던 건 마틴이 레시피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고, 타 지역까지 음식을 구하러 가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특히 타 지역의 음식 공수는 루퍼스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줬다.
그는 정보 상단의 인력을 마음껏 활용해 음식부터 시작해 임신부에게 좋다고 하는 것들을 잔뜩 구해다 주었다.
덕분에 안토니아는 입는 것, 먹는 것, 가구에 이르기까지 거의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리카르도 쪽이었다.
“거짓말은 나쁜 거야, 리샤르.”
“정말이야.”
“턱선이 평소보다 훨씬 갸름해졌는데도?”
물론 이건 이거대로 잘생기긴 했다. 살이 다소 빠지긴 했는데 그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마치 단련에 빠진 사람인 양 굴었다.
실제로 홀쭉해졌다기보다는 그냥 감량을 한 느낌에 더 가깝기도 했고.
“안토니아가 날 예쁘게 봐 줬으면 좋겠어서.”
“그런 식으로 무리하는 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닌데.”
“정말이야, 그냥 좀…….”
“좀?”
“몸을 단련할 때 주로 먹는 것들만 입에 맞는 것뿐이야.”
그건 거짓말이 아니긴 했다.
희한하게도 안토니아의 입덧과 같이 음식을 가리는 그가 입에 달고 사는 건 고기의 퍽퍽한 살이라거나, 기사단이 근육을 단련할 때 먹는 대체식 같은 종류들이었다.
“요즘 좀 긴장을 풀고 살아서, 너에게 매력이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주신께서 계시를 내린 게 아닐까?”
“교황 성하도 와 계시는데!”
“아니야, 성하께도 말했더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셨어.”
“뭐……?”
안토니아는 제 귀를 의심하며 리카르도를 바라보았다.
“안토니아는 사도니까 내게 일어난 변화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하던걸.”
“……그는 교황 성하니까.”
안토니아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못 먹는 건 아니니까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로 괜찮은 걸까?
혹시라도 그의 건강이 상할까 봐 염려가 되었다.
* * *
걱정이 무색하게 안토니아의 입덧은 2개월을 좀 지나 사그라들었다.
게다가 리카르도 쪽도 그녀가 괜찮아짐과 동시에 평소와 같아졌다.
그리고 그 두 달이 지났을 때, 안토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에밀리오와 리카르도의 가설에 왠지 동의하게 되었다.
“정말로 팔이 더 단단해졌네.”
“마음에 들어?”
“더 멋있어지긴 했어.”
그의 몸이 특별히 커지거나 마르게 되진 않았으나, 원래도 아름답다고 느꼈던 근육들이 더 짜임새가 있어졌다.
갸름해지기만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염려했던 턱선도 입덧이 끝남과 동시에 안토니아가 원래 좋아하던 것과 비슷하게 돌아왔고 말이다.
한 마디로 리카르도의 변화는 모두 안토니아가 좋아하는 방향으로만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이유로 신께서 네게 변화를 준다는 게 조금…….”
좀 너무 멋없지 않는가.
그래도 신인데, 자신의 사심을 채우기 위한 방향으로 변화를 줬다는 게 영 믿기지 않았다.
“그만큼 널 아끼신다는 거겠지. 그런 거라면 난 얼마든지 지긋지긋한 그 음식들만 먹고 살 수 있어.”
“내가 싫어.”
“그래?”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물린단 말이야.”
간이라곤 거의 되어 있지 않은 퍽퍽한 음식들을 먹는 모습만 봐도 자신의 입 안이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괴롭지도 않은지 아무렇지 않게 삼켰지만.
아무튼 어느덧 5개월을 넘어서 안토니아의 배도 슬슬 부풀어 오른 채였다.
리카르도는 그녀가 산책을 할 때마다 조심조심 에스코트를 하곤 했다.
“혼자서도 산책쯤은 할 수 있는데.”
“어떻게 그래.”
리카르도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난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건 그게 뭐든지 해 주고 싶어.”
그는 처음처럼 두려워하고 있진 않았으나, 무척 미안해했다.
여전히 자신이 대신 낳아 줄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를 말이다.
아무리 루퍼스와 에밀리오까지 협력해 안토니아에게 편한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 한들, 임신을 한 이상 불편한 점들은 분명 있었으니까.
‘심지어 정말로 루퍼스랑 상의까지 했었지.’
루퍼스가 안토니아에게 네 남편 정말 이상하다며 이야기했기에 알고 있었다.
그런 것 치고는…….
‘아이를 외부에서 자라게 하는 방법은 없나 여러모로 알아보긴 했는데, 아직 내 지식으로는 안 되겠더라고.’
이상한 방향의 노력은 한 것 같았지만.
루퍼스는 솔직하게 그건 마법보다도 태의나 신관의 영역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에밀리오와 함께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에밀리오도 여러모로 고민해 본 모양이었으나, 역시 답은 비슷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통증을 거의 없앨 수 있는 힘을 쓸 수 있습니다.’
안토니아가 알기로 그건 꽤 고위 신성 마법이었다.
성력을 꽤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신관들은 쓸 수도 없는 그런 신성 마법 말이다.
적어도 그녀가 알기에 그 신성 마법을 출산 과정에서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들 날 너무 과보호해.”
안토니아가 살짝 투덜거리듯 이야기하자, 리카르도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팔을 둘러 안으며 이야기했다.
“과보호를 받아 줘, 제발.”
“리샤르.”
“안 그러면 내 심장이 멈춰 버릴지도 몰라.”
“이제는 네 심장을 걸고 나를 협박하는 거야?”
“협박이라니, 부탁이지요. 내 아가씨.”
안토니아는 그 말에 조금 얄밉다는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턱 끝을 살짝 깨물었다.
“이래서 정말 아이가 태어나는 날엔 어쩌려고 그래.”
“울지도 몰라.”
“내 앞에서는 울어도 돼.”
“제발 우리 아이가 널 하나도 안 아프게 하고 나왔으면 좋겠어.”
“어떻게 그래.”
“그럴 수도 있어. 내 아이라면.”
안토니아는 그 말에 잠시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다, 그냥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만으로도 어디인가 싶었다.
가족을 잃을까 두렵다고 떨던 때에 비하면 말이다.
* * *
주변 사람들의 극진한 보호를 받으며 안토니아의 배는 매달 매달 커져 갔다.
이스베르가는 산달이 가까워지자 노련한 산파들을 백작령으로 보내 주었다.
만약을 대비해 태의며 신관까지 수도에서 보낼 채비를 모두 마쳤다는 어마어마한 편지까지 함께 말이다.
‘여기는 교황 성하까지 계신데 말이야…….’
그걸 모를 리 없는 이스베르가일 텐데도 그녀는 뭐라도 준비해 주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건 폐하의 뜻이기도 하니, 넌 그냥 받기만 하면 된단다.]
그래서 안토니아는 그 어마어마한 호의들을 그저 넙죽 받기로 했다.
산달을 한 달 앞두고는 알렉산드라도 백작령에 와서 머물렀다.
‘네 할아버지는 절대 오지 못하게 했다.’
‘왜요?’
‘소란 떨 놈은 하나면 족하니까.’
명백히 리카르도를 지목하는 발언이었다.
덕분에 안토니아는 그 어떤 위험에도 처하지 않고서 무사히 산달을 맞이했다.
진통은 태의가 예상했던 날보다도 사흘을 지나 시작되었다.
안토니아는 그 사흘을 평소와 같이 보냈으나 저택 사람들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오죽하면 안토니아는 첫 진통을 느꼈을 때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리카르도의 바람이 무색하게 그녀의 첫 아이는 꼬박 하루를 안토니아를 괴롭혔다.
에밀리오가 방 너머에서 신성 마법을 써 준 덕에 고통 자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지니 진이 빠졌다.
안토니아가 온 힘을 다할 때마다 리카르도의 얼굴에서도 핏기가 덩달아 사라졌다.
그녀가 정말 더 이상은 쥐어짤 힘도 없다고 몇 번째인가의 한계를 넘어섰을 때 첫 아이는 비로소 울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탄생을 요란하게 알렸다.
“안토니아……!”
리카르도는 기력을 쓸 대로 쓴 안토니아의 핏기 없는 얼굴을 보며 기절할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괜찮아.”
너무 용을 쓴 탓에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안토니아는 태어난 아이를 얼른 보고 싶었다.
리카르도는 산파가 아이를 깔끔하게 닦아 강보에 싸 안토니아의 앞에 보여 줄 때까지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거 봐, 리샤르.”
“…….”
“나, 너무 기뻐.”
안토니아는 정말 진심이었다.
아이는 남자아이었다. 게다가 이스베르가가 말해 줬던 대로 금발이라고도 믿을 법한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리카르도의 아기 시절과 같은 머리칼 말이다.
“정말, 정말로 널 닮은 아이를 안고 싶었는데.”
분명 너무 사랑스러운 광경일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있고, 그 사이에 귀여운 아이가 있는 풍경은.
안토니아의 말에 겨우 아이의 얼굴을 본 리카르도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안토니아는 반쯤 억지로 그에게 아이를 안겨 주었다.
엉거주춤 들어서일까, 조용해졌던 아이가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와 함께 리카르도의 눈에서도 왈칵 눈물이 터졌다.
아이를 안은 순간 그도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낀 탓이었다.
안토니아가 그 고생을 했다는 생각, 자신의 아이가 품에 있다는 생각. 기쁨과 놀라움, 그리고 안심이 섞여 눈물로 터져 흘렀다.
안토니아는 그 광경이 어쩐지 무척 귀엽다고 느꼈다.
그래서 손을 들어 그의 눈물을 닦아 주며 평소처럼 어쩔 수 없다는 듯 속삭였다.
“아이참, 내 리샤르를 어쩌면 좋지?”
자신의 첫 아이와 제 남자가 함께 우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