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내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지?
2018.07.27.
휘타는 감옥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대화를 들었다.
현옥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또 엿듣고 만다.
연우와의 대화에서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을지 몰라서였다.
연우의 음성이 들린다.
“첫 번째 삶에서 내게 탕약을 보낸 사람, 효조가 아닌 당신이었나요?”
그래. 현옥이었지.
휘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답했다.
누명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연우는 효조가 저지른 일로 알고 있는 사건.
하긴 그가 억울할 게 뭐 있겠는가. 다 자업자득인 것을.
휘타는 별안간 뒷골이 서늘해졌다.
내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지?
현옥에게 들었던 적이 있었나.
연우도 방금 현옥에게 확인했는데 그가 먼저 알고 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따로 들은 적이 없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답한 것이었다.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그가 제 목을 쓸어내리다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지워졌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
두 번째 삶.
연우를 혼자서 사랑했던 휘타.
그때도 그의 간절한 바람으로 시간이 되돌려졌지만, 첫 번째 삶을 기억할 수 없었다.
나날이 시들어가는 연우를 보며 도와줄 수 없는 약한 자신을 탓하던 어느 날.
서우가 연우의 처소 앞에서 탕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연우의 엄마도 함께였다.
그런데 엄마라는 여자가 서우에게 어서 들어가라 손짓을 하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서우는 가다 서다 반복하며 제 엄마를 돌아봤고, 엄마는 험상궂은 얼굴로 딸을 재촉했다.
상황이 묘했다.
여기까지 와서 큰딸을 찾지 않는 엄마와 둘째 딸의 알 수 없는 표정이 그러했다.
마치 몰래 무슨 일이라도 꾸미는 것처럼.
다음 날, 휘타는 비슷한 시각에 또 서우가 탕약을 들고 가는 것을 봤다.
이번에도 역시 엄마라는 사람이 어제와 똑같이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상황인가.
그날 밤, 소호와 함께 그들의 뒤를 밟았다.
집 안의 불이 꺼져 돌아가려던 찰나, 안에서 세 사람이 나왔다.
서우와 그녀의 부모.
주위를 살피며 숲으로 들어갔다.
수풀에 가려져 있는 동굴 앞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다.
그에게서 무언가를 받더니 남자는 돌아가고 가족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휘타도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다.
울리는 발소리에 눈치챌 수가 있어 그들의 발걸음에 맞췄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휘타와 소호도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동굴 안의 울림 때문에 대화가 잘 들렸다.
“정말 언니가 모를까?”
서우였다.
“난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남자의 목소리인 걸 보니 아빠였고.
“다들 조용히 해. 마음이 그렇게 약해빠져서 무슨 일을 하겠어? 효조가 보냈다고 하면 우리가 한지 모른다니까. 어차피 조금씩 넣을 거라서 티도 안 나. 예전에도 그랬어.”
“예전이라니? 당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 농약 일을 말해?”
“아니. 있어, 그런 거. 연우가 지금처럼 탕약을 마시고 죽었어.”
“탕약을 마시고 죽어? 연우가? 당신 왜 그래?”
“암튼 그런 게 있다니까.”
그 말을 듣고서였다.
첫 번째 삶이 기억났던 건.
휘타의 머릿속으로 첫 번째 삶이 쉴 새 없이 들어와 연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준다.
연우를 사랑했던 자신. 탐야와의 거래 등.
첫 번째 삶에서도 연우는 탕약을 마시고 죽었다.
효조라고 알고 있었는데 연우 엄마의 말을 들으니 그가 아니었다. 그때도 가족이 그랬단다.
엄마라는 저 여자는 어떻게 된 걸까.
어찌 이번이 두 번째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그걸 또 왜 휘타보다 먼저 기억하고 있고.
머리가 복잡했다.
“휘타 님. 알려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소호가 조용히 물었으나 휘타는 고개를 저었다.
연우가 믿고 있는 가족이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가족이었다.
그런 가족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걸 믿을 수 있을까.
연우가 받을 상처는 또 어떻고.
그러잖아도 효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연우가 감당하기엔 벅찬 진실이었다.
“근데 엄마, 언니가 죽으면 우리한테 오는 지원도 다 끊어지는 거 아닌가?”
“그건 그때 문제야. 왜, 아쉽니? 정 아쉬우면 네가 연우처럼 효조를 유혹해봐.”
“안 해! 됐어! 무슨 일을 당하라고 그 미친놈에게 붙어?”
“미친놈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덜 미쳤던 거 같더라. 연우를 알아서 처리해줄 줄 알았는데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여. 그러니 내가 나설 수밖에.”
“그냥 언니를 적당히 이용하면 되잖아.”
“시끄러워! 내가 그년 때문에 버린 세월과 이 꼬락서니로 여기에 처박히게 된 걸 생각하면 속에서 불이나. 같은 하늘 아래서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 짜증 나 죽겠어.”
외치는 음성에 울분이 가득했다.
엄마가 무엇 때문에 저리도 한이 맺힌 사람처럼 말하는지 모르겠으나 이대로 두면 연우는 효조가 아닌 가족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연우에게 탕약을 못 먹게 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가족이 곁에 머무르는 한 그녀는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보였다.
성으로 돌아온 휘타는 연우의 가족을 어찌할지 고민했다.
휘타는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선에게 돈과 값나가는 물건들을 최대한 마련했다.
소호와 함께 그것들을 가지고 연우의 가족을 찾아가 떠나주기를 부탁했다.
“우리가 왜요?”
연우의 엄마가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말했다.
“연우 님에게 보내는 탕약.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압니다.”
휘타의 말에 가족 모두 놀라는 얼굴이었다.
“그걸 어떻게…….”
엄마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효조 님께서 아시면 가족 모두 살아있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것들을 가지고 떠나세요. 앞으로 몇 년간 먹고사는 덴 지장이 없을 겁니다.”
“잘못했습니다. 떠날 테니 제발 효조 님께는 알리지 말아주세요.”
“조용히 떠나준다면 나는 평생 입을 다물어줄 수 있습니다.”
엄마의 눈이 커지더니 연신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을 시에는 효조 님께 바로 알립니다. 약속을 지키면 나도 지켜요.”
“네. 네. 약속드립니다. 절대, 절대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떠나겠습니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돌아서는 휘타를 엄마가 붙잡았다.
“저…… 며칠만 시간을 주세요. 그래도 연우에게 앞으로 못 만날 거라는 얘기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믿었다기보다는 연우를 위해서였다.
갑자기 가족이 사라진다면 걱정이 크리라.
“허튼수작 부릴 생각 말고, 연우 님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잘하세요.”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그 며칠 동안 연우의 가족은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휘타는 그들이 핑곗거리를 만드느라 시간이 걸리는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큰 착각이었다.
감시를 붙여놨던 소호가 급하게 찾아왔다.
“동굴 앞에서 저번에 만났던 남자 말입니다.”
“응.”
“알아봤더니 약재상이었습니다.”
약재상이 독을 준비해준 모양이었다.
“한데 오늘 밤, 또 만나려는 모양입니다.”
“오늘 밤?”
더는 독이 필요할 일이 없을 텐데 왜 또 만난단 말인가.
설마.
휘타가 한숨을 쉬었다.
엄마라는 사람이 제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이며 약속했다.
절대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고.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막는 게 아니라 지켜봐야지.”
약속을 지키는지 말이다.
*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동굴 앞에서 연우의 가족과 약재상의 만남이 있었다.
이제 보니 약재상이 건넸던 무언가는 약을 싸고 있는 하얀 종이뭉치였다.
약재상이 돌아가고 연우의 엄마가 서우에게 종이뭉치를 주며 말했다.
“암튼 연우 계집애. 남자 후리는 능력은 타고나야 해. 효조로 모자라 그 유명한 휘타가 나설 줄 누가 알았겠니.”
“엄마 그냥 우리 떠나면 안 돼? 이거 들키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야.”
서우가 엄마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도망치면 어떻게 잡을 거야. 여기가 CCTV가 있니, 경찰이 있니. 괜찮아.”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계속 침묵으로 일관했던 연우의 아빠가 나섰다.
“응. 해야겠어. 명줄이 질기기도 하지. 농약을 먹고도 멀쩡해. 혼수상태였다가도 깨어나. 이번에 못 죽이면 정말 내가 직접 칼이라도 찔러 넣을 거야.”
“대체 연우한테 왜 그래!”
“미워. 뭘 해도 미워 죽겠어. 착한 척, 고상한 척, 나와는 태생부터 다른 인간인 척하는 꼴을 보고 사는 게 얼마나 고역이었는데.”
“연우가 언제 그랬다고!”
아빠의 말에 엄마가 울먹이며 어깨를 들썩였다.
“이것 봐. 당신도 꼭 걔 편들잖아. 사람들이 다들 그랬어. 딸하고 엄마하고 어쩜 그리 다르냐고.”
“누가 편든다고 그래.”
아빠의 음성이 누그러졌다.
그는 두 손으로 아내의 손을 꼭 잡으며 알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한다.
듣고 있던 휘타가 손을 말아쥐었다.
주먹을 꽉 쥔 손등 위로 푸른색의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휘타가 소리 없이 웃었다.
순진했다. 애당초 글러 먹은 사람들이었다.
곱게 떠날 사람들이었다면 딸을 죽일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휘타는 처음으로 자신이 생명을 해할 수 있는 사람임을 느꼈다.
살기가 올라와 그의 가슴에서 영역을 넓혀갔다.
저들을 죽여야 한다. 죽여라. 세상에 살려둬선 안 되는 사람들이다.
결국 휘타가 그들 앞에 자신을 보였다.
“어?”
서우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자 부모도 휘타를 바라봤다.
휘타의 몸에서 검은빛이 일어났다.
그가 자신의 수호령을 부르는 중이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다른 사람을 죽이기 위한 부름.
소호는 제 주인의 뜻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잠시 후.
검은 털 위로 윤기가 흐르는 거대한 늑대가 나타났다.
난데없는 늑대의 등장에 연우의 가족은 못이 박힌 것처럼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바라만 봤다.
하지만 그 늑대가 조금 전의 휘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두려움이 보고 있는 소호에게도 전해졌다.
늑대는 크게 울지 않았다.
으르렁, 거리는 낮은 울음.
고요하지만 숲을 진동한다.
느릿하게 다리 하나를 들어 올리자 엄마가 땅에 엎드러졌다.
“잘못했습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당장 떠날 거예요! 떠나려고 했어요!”
하지만 늑대는 엄마를 지나쳐 서우에게 달려들어 목을 물고 흔들었다.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금세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다.
다음은 연우 아빠라는 사람 차례였다. 체념한 듯 눈을 감은 그도 서우처럼 되었다.
마지막은 엄마였다.
두 사람의 죽음 지켜본 여자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늑대가 여자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진한 금빛의 눈은 아름다운 만큼 잔혹한 빛을 내며 여자를 노려보았다.
“살, 살려…… 으아악!”
그게 여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소호가 시체를 수습해 그들이 사는 집 마당에 던져놓았다.
사람의 소행인 것처럼 칼로 단면을 말끔히 정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휘타의 명령이었다.
***
이것이 휘타의 죄였다.
사랑하는 여자의 가족을 몰살한 죄.
그가 사신이 된 이유였다.
아무리 그들이 연우를 속이고 죽이려 한 나쁜 인간들이었다고 하나, 그건 그들의 죄였다.
“하, 하지만 두 번째 삶에서 제 가족을 죽인 건 효조였는데…….”
연우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잘 생각해보세요. 효조는 그대의 가족을 죽였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그저 죽어 있는 그들의 머리에 장대에 매달아 성 밖에 세워뒀을 뿐입니다.”
효조가 연우 가족의 죽음을 알게 된 건, 다음 날이 그의 생일이라 입고 올 옷을 전해주기 위해 방문한 하인에 의해서였다.
효조는 머리 잘린 채 죽어 있는 가족의 죽음을 흥미로워했고 그걸 연우에게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하다 성 밖에 매달아둔 것이었다.
“내가 그대를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연우의 가족을 그리 죽이지 않았다면 효조도 그런 일을 꾸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연우가 자살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 죄책감을 버텨내기가 힘들었다.
제 목숨을 끊고 숨이 꺼져가는 연우를 보며 했던 말.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기에 미안했고 죄스러웠다.
“해서 스스로 괴로운 그 부분에 관한 기억만 지워버렸던 것입니다.”
“휘타 님, 저는…….”
연우가 그를 바라보며 입술만 깨물었다.
“과거를 기억하는 역할이었던 유타마저도 이 일을 몰랐던 이유는, 유타는 탐야가 만든 것이 아닌 내가 만들어낸 존재였습니다.”
이번 생에 연우를 살리기 위해서 누군가는 그녀를 기억해야 했다.
연우를 기억하고 싶은 간절함에 스스로 만들어낸 존재.
그러나 유타도 휘타의 일부분이었기에 그가 가족을 죽인 일은 지워버렸다.
유타가 말한 휘타가 꼭 알고 행해야 할 일이 이거였다.
이제 알게 됐으니 행해야 할 일만 남았다.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 자신은 영원히 사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번에 또 연우의 가족을 잔인하게 죽이게 될 테니까.
또 같은 죄를 짓게 될 테니까.
“지나간 일이에요.”
연우가 그를 보며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그때의 당신은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이해해요.”
그녀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니 부디 자신의 탓하지 마세요.”
휘타를 안아줬다.
토닥토닥. 그의 마음을 다독였다.
*
이튿날.
가족이 처형된다는 소식을 들은 연우가 휘타를 찾았다.
“처형은 안 돼요.”
“아직 마음의 정리가 안 됐습니까. 그렇다면 시일을 더 미뤄도 됩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정현옥이 다음 사신이에요.”
휘타가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효조에 이어 현옥이 다음 사신이라니.
하긴. 효조나 현옥이나 휘타만큼이나 지은 죄가 크니 사신을 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이들이었다.
“그대는 정현옥을 사신으로 살려두고 싶은 겁니까.”
“네. 일거양득이죠. 저도 살아서 두고두고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 여자만 좋을 일이 났군요.”
“아니요. 그럴 수 없을 거예요. 절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장담하는 연우가 어쩐지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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