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늑대가 나를 부르면-58화 (58/100)

<58화> 당신밖에 남지 않았네요.

2018.07.20.

휘타는 연우를 제 엄마에게 보내놓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따라왔다.

소호만 남겨둔 채 모두 물리고 방 안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듬성듬성 들려 어떤 상황인지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연우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누가 내 엄마야!’

‘내 엄마가 아니잖아!’

여기까지 들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연우가 단순히 오해로 제 엄마에게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

휘타는 문손잡이를 잡고 있으면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는지 몰라 망설였다.

‘어떤 엄마가 딸을 죽이려고 해!’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가 현옥의 목을 잡았다.

너였어? 네가 감히 연우를 죽이려고 했던 거야?

설홍이 배후에 있는 줄 알았건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었다.

아니 예상했던 건가.

볼 때마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찜찜함.

해서 처음에 용의선상에 두었다.

어쩐지 그러고 싶더라니.

그런데 이 여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한다.

“넌 예나 지금이나 엿듣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뭐?”

휘타가 손에 힘을 주자 현옥이 캑캑거렸다.

“역시 넌 기억나지 않나 보네.”

“무슨 말이야.”

“궁금해 죽겠지? 알고 싶지? 날 죽이면 절대 알아내지 못할 비밀.”

현옥의 얼굴에선 자신감이 넘쳤다.

왜일까. 문득 유타가 했던 말이 이거였나 싶다.

내가 꼭 알고 행해야 할 일.

휘타가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현옥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명우가 달려가 부축했다.

“호야, 두 사람 가둬라.”

그리고 눈길을 돌려 연우를 바라봤다.

연우가 휘타를 보며 힘없이 웃어줬지만, 그녀의 눈동자에 생기가 없었다.

전부 다 잃은 듯한 눈이었다.

그녀가 금방이라도 부서져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날아갈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달려가 연우를 안았다. 안아준 건 그인데 그녀에게 안겼다.

정확한 속사정은 모르나, 연우에게 아주 힘든 일이 닥쳤다.

언젠가 봤던 연우의 눈이 그녀의 심정을 알려주었다.

부디 이겨내기를.

부디 내가 그대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꽉 껴안으며 기도하는 휘타.

“이제 제겐.”

약간 쉰 음성으로 연우가 말했다.

“당신밖에 남지 않았네요.”

*

연우는 기운이 빠져 누웠다.

앉아 있는 휘타에게 옆에 오라고 하자 그가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휘타의 허리를 두 팔로 감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캐묻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연우가 그의 가슴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알게 된 사실들을 그에게 빠짐없이 설명했다.

말하면서도 기가 막혔다.

간간이 숨이 막히는 거 같아 호흡을 조절하기도 했다.

휘타는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들으며 연우가 힘들어하면 등을 토닥여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끝까지 이야기를 들은 그는 비교적 차분했다.

연우는 휘타가 현옥의 목을 잡았을 때 두 사람이 대화를 한 것 같아 물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지 않았나요?”

“오래전부터 날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처럼이요? 뭐라고 했는데요.”

“나더러 예나 지금이나 엿듣는 버릇이 여전하다더군요.”

연우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녀와 휘타가 이 전의 삶을 기억하는 것처럼 현옥도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첫 번째와 두 번째 삶에서 그 여자와 만났던 기억이 없어요?”

“글쎄요. 제가 기억하는 건 오가다 몇 번 마주쳤을 뿐. 인사 한 번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궁지에 몰린 현옥이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인가.

하지만 휘타에게만 조용히 말했다는 것이 걸렸다.

워낙 악랄해 어쩌면 이런 부분까지 계산했을 수도 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휘타는 모르고 현옥만 알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자 불안했다.

그가 연우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생각이 많겠지만, 오늘 밤은 그냥 자요.”

“잠이 안 올 거 같아요.”

“그래도 자는 게 좋겠습니다. 내일부터 할 일이 많을 테니.”

휘타의 말에 억지로 눈을 붙였다.

뒤척이긴 했으나 깊은 잠에 빠졌다.

꿈을 꾸었다.

아이가 된 연우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포근한 기운이 연우을 감싸줬다.

사랑스럽게 보고 있는 그의 눈빛에 연우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의 손을 잡고 눈이 쌓인 숲길을 걸었다.

“아빠!”

아이가 그를 불렀다.

아아, 아빠였구나.

가짜가 아닌 진짜 아빠. 내 아빠. 우리 아빠.

왈칵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절 두고 왜 먼저 가셨어요. 조금만 더 곁에 계셔 주시지.

왜 그런 여자에게 절 맡기셨어요.

아이의 몸이 되니 생각도 아이가 되는 모양이다.

채연우, 이러지 말자.

아빠도 어쩔 수 없었을 텐데.

어린 딸을 혼자 두고 가는 아빠가 제일 힘드셨을 텐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셨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죄송스러우면서도 원망이 됐다.

“연우야, 여기까지 와봤으니 됐지? 봐, 아무것도 없잖아.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이제 돌아가야 해.”

“강아지 소리가 들렸어요.”

그때 짐승의 울음이 들려왔다.

아이가 소리 나는 쪽으로 아빠의 손을 이끌었다.

찾아간 자리에는 털이 까만 강아지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얀 눈밭이 붉은 선혈로 물들었다.

아빠가 강아지를 구하고 연우의 머리를 묶고 있던 끈으로 피가 나는 강아지의 다리를 지혈했다.

어? 꿈속의 연우는 이 장면이 익숙했다.

연우가 들었던 아빠의 노래 내용과도 비슷했고, 휘타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붉은 끈의 이야기와 똑같았다.

그날 당신이 만난 소녀가 나였던 거야?

순간 장면이 바뀌었다.

사방이 눈에 덮인 나무만 있었다.

아이가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 있고 아빠가 자신의 품으로 딸을 안았다.

나무 밑에 앉은 두 사람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는 졸음이 오는지 눈이 감겨갔다. 아빠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우가 자면 안 된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들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점점 눈이 쌓여갔다.

얼마나 눈을 감고 있었을까.

누군가가 그들을 깨웠다.

“…… 요! ……봐요! 이봐요!”

어린 연우가 먼저 살며시 눈을 떴다.

“얘, 정신이 드니?”

젊은 현옥이었다.

안 돼. 저 여자는 안 돼!

아빠 저 여자 만나지 마요!

지켜보고 있는 연우는 아는데, 꿈속의 어린 연우와 아빠는 모른다.

아무리 외쳐봐도 듣지 못한다.

현옥이 아빠의 어깨를 흔들자 그가 눈을 떴다.

연우는 눈물이 터졌다. 진실을 알고 나서는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이제야 나온다.

나 때문이었구나. 나 때문에 그 여자를 만난 거였어.

내가 강아지, 그러니까 수호령으로 변한 휘타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면 바로 집으로 돌아갔겠지.

그럼 길을 잃을 일도 없었고 그 여자를 만날 일도 없었다.

날 두고 돌아가신 아빠를 원망할 게 아니라 자신을 원망했어야 한다.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에 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

울음소리에 휘타가 눈을 떴다.

서러운 꿈을 꾸는지 잠든 연우가 눈물을 흘렸다.

현옥의 방에서 연우가 애써 참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괜찮은 척하고 있으나 속은 말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참고 있었을까.

눈물을 옷깃으로 닦아줘도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많이도 우는구나, 내 흰 토끼.

왜 참고 있었어.

휘타는 자신의 눈이 젖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 작은 몸으로 고문을 견디며 효조의 앞에서도 절대 울지 않았던 그대.

그래서 난 그때도 숨어서 그대와 함께 울었지.

이제 함께 있으니 혼자 울지 않아도 되잖아.

가슴이 한쪽이 저릿저릿하다.

연우를 품에 조심스럽게 안았다.

잠시 후 연우가 서러운 한숨을 토해내며 눈물을 멈췄다.

휘타는 연우가 깨지 않도록 천천히 일어났다.

다음 사신이 누군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현재 연우가 그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듯하여 내일로 미뤘다.

이 일 때문에 다음 사신에 대해 생각이 필요하다고 했던 건가 싶다.

침상에서 빠져나온 휘타는 연우가 더 깊이 잠들 수 있도록 이불을 정리해주고 밖으로 나왔다.

소호를 찾자 금세 나타났다.

“자고 있었을 텐데 미안하구나. 가볼 곳이 있어서.”

“아닙니다. 마침 깨어 있었습니다. 어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연우의 엄마. 아니지. 정현옥이라고 했던가? 그 여자를 만나야겠다.”

그녀가 했던 말이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사실이든 아니든 현옥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

습한 곳이었다.

몇 개 안 되는 횃불이 안을 겨우 밝히고 있어 어두컴컴했다.

소호와 휘타는 감으로 길을 찾아갔다.

현옥과 그녀의 가족이 갇힌 감옥이 가까워지자 말소리가 들렸다.

“나를 이렇게 두고 잘될 줄, 괜찮을 줄 알았어요!”

서우였다. 목소리가 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날 이때까지 재워주고 먹여주고 키워줬으면 그 정도 보답은 하는 거 아니니?”

이번엔 현옥이다.

“보답? 엄마가 시킨 일 다 해줬잖아요. 그만큼 보답했으면 됐지. 어떻게 나한테 누명을 뒤집어씌워요?”

“얘 좀 봐. 누가 들으면 네가 선량한 사람인 줄 알겠다.”

“엄마보단 선량하죠.”

휘타가 왔는지도 모르고 날 선 대화가 왔다 갔다 한다.

“죄인들이 말이 많군.”

그의 등장에 서우와 현옥의 대화가 멈췄다.

물기가 축축하게 젖어 있는 차가운 바닥.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둠.

이런 곳에 있으면 누구라도 조용해지길 마련인데 두 여자는 개의치 않아 했다.

명우만 영향을 받았는지 한쪽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휘타를 발견한 서우가 달려와 창살을 잡고 휘타에게 애원한다.

“전 언니를 죽이려 한 적이 없어요. 제가 했다는 증거가 없잖아요. 아무리 법이 없고 재판도 없이 사는 미개한 세상이라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절 꺼내줘요.”

“증인이 있지.”

“왜 그 사람 말만 믿는 건데요?”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니까 그만해. 더 깊은 감옥으로 보내기 전에.”

휘타의 경고에 서우가 입을 다물었다.

“그쪽은 나와 얘기 좀 하고.”

현옥에게 말하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섰다.

휘타는 현옥과 둘이서만 빈 감옥으로 장소를 옮겼다.

현옥이 낡아빠진 나무 상자 하나를 끄집어 놓더니 그 위에 앉았다.

“정현옥이라고 했던가? 네가 알고 있는 비밀이라는 게 무엇인지 듣고 싶군.”

“내가 말을 해주면 넌 내게 무엇을 해줄 건데?”

“해줄 거 없어. 살고 싶으면 말해. 목숨은 약속하지.”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믿기 싫으면 말고. 내가 명령을 내리는 순간 네 목은 잘린다.”

현옥이 기지개를 켰다.

무엇이 저리도 당당하게 만드는지 궁금했다.

대체 그 비밀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목숨의 대가와 같은 걸까.

그녀가 두 손을 뒤로해 상자의 모서리를 짚으며 흥얼거렸다.

“휘타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

휘타가 창살에 몸을 기댔다.

끼익대는 녹슨 쇳소리가 감옥을 울렸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묻고 있잖아.”

“그거 알아? 넌 똑같은 삶을 세 번째 살고 있어.”

똑같은 삶을 세 번 살고 있다고?

그걸 알고 있다는 건 현옥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 말은 곧, 그녀가 지난 두 번의 삶을 기억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두워서 미세하게 변하는 휘타의 표정이 현옥에게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선 그는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믿기지 않겠지. 겪고 있는 나도 믿기 어려우니.”

“고작 그런 소리에 내가 넘어갈 줄로 알았나.”

“연우는 첫 번째 삶에서 죽었어. 두 번째에서도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모르지만, 죽었으니 세 번째가 다시 시작된 거겠지?”

“그건 네가 세 번째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지 않아.”

“나도 너와 똑같은 말을 해야겠다. 믿기 싫으면 믿지 마. 그렇다고 진실이 바뀌지 않으니까.”

휘타가 창살에 기댄 몸을 바로 세웠다.

조금 전에 났던 쇳소리가 또 들렸다.

“좋아. 네 말이 다 진실이라 치고. 내가 예전에도 엿듣기가 취미였다며? 그건 무슨 말이지?”

“두 번째 삶에서 우리 가족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고 네가 일을 벌였지. 아주 비밀스러운 장소였는데 거길 어떻게 알았나 몰라.”

“내가 엿들은 건 어떻게 알았고?”

“그렇지 않은 이상 네가 우리의 계획을 알 턱이 없으니까.”

“계획?”

현옥이 상자에서 일어나 휘타의 얼굴에 제 얼굴을 들이밀고 그를 뚫어지게 봤다.

그녀의 입가에 이 감옥과 같은 어두침침한 웃음이 드리운다.

“너 기억하고 있지? 첫 번째와 두 번째 삶.”

뱀 같은 여자. 날름대는 저 혓바닥을 잘라버리고 싶다.

그러나 아직 답을 듣지 못했기에 참았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지는 건가.”

“보아하니 전부 기억 못 하는 거네.”

현옥은 서우와 다르다. 목을 쥐고 흔들어도 절대 눈 깜짝하지 않을 여자였다.

이대로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조금만 방심하다간 그녀의 계약에 말려들어갈 수 있기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연우에게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다 들었을 거고.”

비정상적인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들었다.

“아, 연우가 그건 모를 거야. 제 친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현옥이 휘타 주위를 돌며 말했다.

그는 현옥이 하는 대로 두며 지켜봤다.

“내가 죽였어.”

한숨이 나왔지만 놀라지 않았다.

“결혼했으면 부부가 되는 거고, 부부는 돈을 나눠쓸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많은 재산을 좀 주면 어떻다고. 사업하게 돈을 빌려달라면 항상 거절했지.”

연우의 친부는 현옥의 본모습을 알고 죽었을까. 속절없이 당했을까.

“연우 그 계집애는 명 짧은 제 아빠를 닮았으면 얼마나 좋아. 목숨줄이 질기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일찍 죽어서 보험금 내가 받았으면 이런 구질구질한 세상에 올 일도 없었을 건데.”

연우에게 들었다. 연우의 가짜 가족이 그녀의 목숨의 대가로 나오는 돈 때문에 죽이려 했다고.

그러면서 왜 그 돈이 나올 수 없는 지하계에서도 저를 죽이려 하는지 알고 싶다 했다.

그가 연우를 대신해 묻는다.

“이곳에선 그 보험금이라는 게 없는데 왜 그녀를 죽이려 했어.”

“여기서? 그건.”

“…….”

“너 때문이야. 바로 너.”

휘타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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