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이제 더는 내어줄 게 없는데.
2018.07.06.
“심각한가요?”
연우의 귀를 막고 있는 사림의 손이 떨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연우가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자 사림이 손에 더 힘을 줘서 눌렀다.
연우가 절대 듣지 못하도록.
“아직 생명에 지장이 없을 듯합니다. 물론 앞으로 계속 먹게 된다면 위독해지고요. 돌아가서 해독제를 만들어 보낼 테니 꾸준히 드시게 하세요. 내일부터 탕약은 절대 안 됩니다.”
멍한 얼굴의 사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독인지 알 수 있나요?”
“글쎄요. 거기까진 어렵습니다.”
의원이 주섬주섬 풀어놨던 짐을 쌌다.
그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림은 연우의 가족이 지내는 처소로 갔다.
들어가지 않고 담장 밖에서 몰래 안을 훔쳐봤다.
깔깔거리는 서우의 웃음소리가 문을 통과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그리고 연우 엄마의 웃음까지도.
철없는 동생이야 그런다 하지만, 엄마라는 사람은 딸이 아픈데 저런 웃음이 나올 수 있는 건가.
처음부터 영 정이 가지 않는 가족이었다.
사림의 기억에 연우의 가족은 늘 그랬다.
항상 연우만 가족 걱정에 안달하고 마음 아파할 뿐, 가족들은 전혀 연우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연우가 아픈 걸 저들과 상의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으로 여긴 사림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성에 상주하는 의원이 아닌 밖에서 데려오길 잘했다.
딱히 이렇다 할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촉이 그러라 시켰다.
의원이 가고 연우만 있는 방에 왔는데도 손 떨림과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사림은 잠든 연우를 바라봤다.
들을 수 없게 귀를 막았는데, 듣지 않으셨겠지?
동생이 아침마다 정성스럽게 다려서 가지고 온 약에 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받을 충격에 걱정되어 그랬다.
저도 이리 놀랐는데 연우는 더할 것이다.
서우가 왜 독이 든 탕약을 가져왔을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모르고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다. 조제는 성안의 의원이 해줬다고 들었기에.
그렇다면 성의 의원은 무엇 때문에.
서우의 사주를 받고?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사주? 그것도 아니면 의원 스스로?
의원 스스로 그랬을 리가 없다. 의원이 연우를 죽여서 얻는 이득이 전혀 없을 테니까.
그럼 서우나 다른 사람의 사주라는 결론이 나온다.
서우에게 물어봤자 모른다고 할 테고.
섣불리 나섰다가는 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 뻔했다.
마침 휘타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황급히 그를 만나러 갔다.
*
사림에게 연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휘타는 제 귀를 의심했다.
연우에게 나타난 증상이 죽음이 가까워져서라고 여겼건만, 그게 아닌 서우의 탕약 때문이었다니.
사림이 아무나 데려오지 않았을 거란 걸 알면서 확인차 물었다.
“믿을 만한 의원이냐.”
“네.”
따닥따닥.
휘타가 탁자 위를 두드렸다.
사림에게 얘기를 듣는 동안 피안이 알려준 장공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효조가 꾸준히 보냈던 탕약.
그는 첫 번째 삶에서 연우에게도 독이든 탕약을 보냈었다.
혹시 장공과 연우가 마실 탕약을 조제해준 의원이 같은 사람인가.
하지만 현재 성에는 효조가 없었다.
지하계의 모든 눈이 효조를 향해 있는데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만난다는 것도 어려웠다.
의심이 가는 사람이 하나 있기는 했다.
설홍이라면 효조 밑에 있었던 의원과 잘 알고 있을 터.
그러나 안전을 보장받아 성에서 살아가고 있는 설홍이 연우에게 그럴 이유는 없어 보였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생각했다.
연우의 동생 서우도 빠뜨릴 수 없었다.
“우선 서우가 가져오는 탕약을 계속 받아. 대신 마님을 못 만나게 하고 네가 받아서 돌려보내라. 탕약은 버리지 말고 모아두도록.”
며칠 동안 해독제를 먹은 연우의 상태를 보고 추후 일을 결정짓기로 했다.
“너도 알겠지만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배후를 찾아야 하니까 말이다.
현사의 일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연우의 적이 성 밖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안에도 있었다.
누군가 밖에서 떠도는 소문을 듣고 연우에게 그런 짓을 한 걸까.
독으로 죽은 사람을 먹는 멍청이는 없을 텐데.
“경목들에게 알려. 서우가 만나는 의원이 있는지 잘 살피라고. 아니 의원뿐만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을 보고하라고 해.”
순간 연우 엄마의 얼굴이 휘타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왜일까.
연우의 집에 갔던 날, 묘하게 연우만 섞이지 못했던 느낌이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엄마라는 사람도 용의 선상에 올려두느냐 망설이던 그는 가족 전체를 넣기로 했다.
연우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지만, 탕약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된 사람이라면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마님도 모르게 해야 해. 가족이 연관되어 있든 아니든 상처가 될 거야.”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
다음 날도 어김없이 서우가 탕약을 들고 연우를 찾아왔다.
사림은 휘타가 시킨 대로 서우의 출입을 막았다.
“탕약만 주고 가세요. 제가 책임지고 마님께서 드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비켜. 내가 언니한테 줄 거야.”
“죄송합니다. 마님께선 안정이 필요하셔서요.”
서우가 사림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힘이 더 센 사림이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있어야 언니가 더 안정을 취할 거 아니야!”
서우의 음성에 짜증이 묻어났다.
안정이 필요해 만날 수 없다고 하면 얼마나 아프냐고 묻는 것이 맞지 않는가.
서우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만 잔뜩 열을 올렸다.
사림이 문 앞에 있는 하인들을 시켜 서우를 쫓아낼 수 있었으나 마찰을 피하고 싶었다.
서우 스스로 물러서도록 하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었고.
“휘타 님도 마님을 위해 일부러 오래 계시지 않습니다.”
“넌 왜 있는데?”
“마님을 보살필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요. 편찮으신 마님 수발들 자신 있으세요? 먹여드려야 하고 씻겨 드리기도 해야 하고요, 구토하시면 직접…….”
“알았어!”
서우가 기겁한 얼굴로 탕약이 든 쟁반을 내밀었다.
“네가 전해줘.”
쟁반을 받아든 사림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럼 그렇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는데 서우는 연우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행여 연우의 수발을 들라 할까 봐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방으로 들어간 사림은 준비해둔 병에 탕약을 부은 후 못마땅한 눈으로 봤다.
여기에 독이 들어 있을 줄 누가 생각했겠어.
의심해봤어야 했는데, 동생이 들고 오는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제 잘못이었다.
해독제가 든 탕약을 들고 연우에게 다가갔다.
어젯밤부터 조금씩 먹이고 있으나 아직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마님.”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우자 연우가 눈을 떴다.
“약 드셔야 해요.”
사림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 앉은 연우가 핼쑥해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오늘은 서우가 안 왔네?”
“마님 쉬시라고 약만 전해주고 가셨어요.”
“그랬구나. 네가 고생이다.”
“별말씀을요.”
연우가 손을 들어 스스로 그릇을 잡았다.
“제가 해드릴게요.”
“아니야. 어제보단 힘이 있어서 괜찮아.”
정말 괜찮은지 그릇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제대로 실렸다.
떨지 않고 끝까지 약을 다 마신 연우가 사탕까지 직접 집어 제 입에 넣었다.
“휘타 님은?”
“볼일이 있으시다고 외출하셨어요.”
“그래. 알았어. 너도 쉬어.”
대답만 ‘네.’ 하고 연우의 곁에 있었다.
자리에 누운 연우는 몇 번 뒤척이더니 금방 잠들었다.
*
며칠이 지났다.
연우의 회복은 더뎠다.
꼭 필요할 때만 눈을 떴고 그 외엔 항상 잠들어 있었다.
그나마 눈을 떴을 땐 힘이 있는 것 같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듯했다.
그동안 휘타는 피안을 찾아가 효조를 도와 장공의 탕약에 독을 넣은 의원을 알아냈다.
효조의 밑에 있는 의원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장공을 전담했던 의원이었다.
피안에게 그 의원이 아직 성에 있느냐 물었고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
‘어째서 벌하지 않습니까? 하다못해 성에서 쫓아내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증거가 없습니다. 꼬투리 잡을 만한 작은 것조차 발견되지 않았어요. 처벌하거나 쫓아내기 위해선 이유가 필요한데, 없지 않습니까. 장공을 모시던 의원으로 성 내의 의원들을 이끄는 사람입니다. 무조건 내보내면 나머지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거예요.’
피안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대체 얼마나 비밀스럽게 움직였기에 증거 하나도 남기지 않았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휘타는 먼저 서우를 불렀다.
단둘이 마주한 자리.
서우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었지만 휘타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연우를 위해 탕약을 매일 달이느라 수고가 많아.”
“제 언니데요, 뭘.”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쭈뼛거리며 대답하는 서우였다.
“직접 조제도 했다지?”
“아니요.”
고개를 든 서우가 손사래를 쳤다.
“그럼?”
“아는 의원님께서 해주셨어요. 제가 무슨 능력으로…… 그런 거 하나도 몰라요.”
서우가 말하는 의원과 피안이 알려준 의원이 일치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캐내고 말 것도 없었지만, 피안의 말대로 증거를 찾거나 자백을 받아내야 했다.
곧바로 의원을 불러들였다.
서우도 함께 있는 자리였다.
의원의 이름만 들었을 땐 몰랐는데 구면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불렀습니다.”
“예에?”
당황한 의원의 눈이 커졌다.
“지어준 탕약 덕분에 우리 부인이 건강해졌습니다. 아주 많이.”
의원의 동공이 흔들렸다.
지금쯤이면 종일 혼절해 있어야 하는 시기인데 건강해졌다니 놀랄 수밖에.
그런 모습을 보며 휘타는 확신했다.
휘타가 미소를 띠며 의원에게 다가갔다.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잠깐 어리둥절해 있던 의원은 휘타에게 장단을 맞춰줬다.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랬겠죠. 밖에 소호 있느냐.”
문 너머에서 소호의 대답을 들려오자.
“가지고 들어와라.”
휘타의 명령에 문에 열리고 소호가 커다란 병을 들고 왔다.
함께 들어온 사림이 탁자에 그릇 두 개를 놓자 소호가 병을 기울여 안에 든 액체를 따랐다.
쓴 향이 훅 퍼진다. 진하고 탁한 색만 봐도 무엇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휘타가 의원과 서우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탕약입니다. 그간 의원이 지어줬던 그 탕약.”
그릇 하나를 가리키며 서우를 봤다.
“우리 연우가 마셨던 탕약이라 몸에 좋아. 들지.”
“제가 이걸 왜요?”
“그간 수고가 많았다는 의미로.”
“아하!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고개를 갸웃한 서우는 아무렇지 않게 그릇을 들어 마셨다. 끝까지 말끔하게 마시고 약이 쓰다며 투덜거렸다.
“의원과 할 말이 있으니 동생은 나가 있도록.”
서우가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휘타는 시선을 옮겨 의원에게 고정했다.
“마셔요.”
의원이 머뭇거렸다.
“며칠 동안 연우에게 온 탕약을 모은 것입니다. 꽤 많은 양이긴 합니다만, 좋아지라고 지어준 약이니.”
내내 미소를 머금고 있던 휘타의 입술이 일자로 굳어졌다.
눈빛이 내려앉았다.
“다 마셔.”
의원이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달달 거리는 손으로 의원이 그릇을 잡았다.
그러나 입에 닿기도 전에 그릇을 놓쳤다.
쨍그랑, 소리가 나며 사기그릇이 산산조각이 났다. 하얀 사기 파편과 쏟아진 탕약이 바닥에 섞여 흩뿌려졌다.
“잘못했습니다!”
의원이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모아 빌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살고 싶다면 말해. 네게 이 약을 사주한 사람이 누군지.”
“그…… 그게. 마님의 동생인 서우 아가씨입니다.”
“방금 너도 봤지 않았느냐. 서우는 이 약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전혀 몰라. 모르니 마시지 못한 너와 달리 전부 마신 거지. 누가 사주했는지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내부인을 독살하려 한 죄로 처형을 당할 것이야.”
“말하겠습니다! 사실대로 말하겠으니 제발 목숨만은…….”
“들어보고 결정하겠다.”
“저 그게…… 다, 단희…….”
휘타의 미간이 구겨졌다.
누구? 단희?
“의원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네가 기생의 사주를 받았다고?”
“저도 욕심이 있으니까요.”
장공의 전담 의원이라 보수가 만만치 않았다고 들었다.
게다가 효조와 모략을 꾸미고 실행한 대가도 흘러넘칠 정도로 받았을 것이다.
단희가 가진 재물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의원의 욕심을 자극할 정도는 아닐 텐데.
단희 뒤에 누군가가 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 단희를 부르면 연우에게 질투가 나서, 미워서라고 했겠지. 이미 한 번 그런 일도 있었고.
단희는 제쳐놓았다.
끄나풀에 불과한 단희를 조정하는 사람이 누군지 잡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산 넘어 산이다.
휘타는 이대로 연우만 데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까 고민해봤다.
다음 사신을 찾지 못한다면 연우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없었다.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한가 싶다가도 그가 먼저 포기하는 것 같아서 선뜻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시간이 다할 때까지 기다려 보다 다시 탐야와 거래를 할까 보다.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이제 더는 내어줄 게 없는데.
이런 생각은 하지 말자.
어떤 상황이 와도 포기하지 않는다.
굳게 다짐했다.
*
“언니한테 준 약에 문제라도 있는 걸까요?”
서우가 약과를 베어 물고 오물거리자 설홍이 차를 따라준다.
“그러게. 왜 휘타 님이 그러셨을까.”
설홍이 눈웃음을 지으며 서우 앞으로 약과가 가득 올려진 접시를 밀어줬다.
서우는 단순했다.
치켜세워주고 잘해주고 이것저것 챙겨줬더니 금세 넘어와 제 언니보다 설홍을 자주 찾아왔다.
“제 느낌상 언니가 먹었던 약에 문제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랬으니 의원님을 부른 거 아닐까요?”
“그 의원이? 실력 좋고 성품도 좋은 의원인데 이상하네.”
의원은 설홍의 사람이었다.
효조의 위치가 불안해지자 의원이 먼저 설홍을 찾아왔고 쓸모가 있을 거 같아 거뒀다.
서우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친분을 쌓았다.
성에 왔다가 돌아가는 서우를 따로 불러 차를 대접했다.
대화하는 중에 서우가 휘타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언니보다 제 욕심이 먼저인 동생이었다.
설홍은 연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큰 원한도 없다.
다만 피안이 지배자의 자리에 올랐어도 대세는 휘타에게 기울어졌고.
안위를 보장받았지만, 그로 만족되지 않았다.
연우와 달리 서우는 다루기가 쉬웠다.
서우가 휘타의 부인이 된다면 설홍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올 거 같았다.
그녀를 이용해 권력을 누릴 기회.
물론 완벽하게 성공하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서 방패막이를 세워뒀다.
서우, 의원, 단희가 엮였으니 휘타가 그 셋을 족칠 것이다.
의원에게 두둑한 돈을 쥐여주고 그의 가족까지 책임져 준다 했으니 배신할 일은 없었다.
특히 단희는 연우에 대한 미움이 하늘을 찔러 연우를 없앨 수만 있다면 자신은 어떤 일을 당해도 상관없다 했다.
아무 생각이 없이 사는 멍청한 서우는 그냥 놔두면 되고.
잘되어가고 있었다.
여태 연우가 아프다고 들어 계획이 성공한다 싶었건만.
휘타가 의심을 한 모양이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물러나야 한다.
단희 선에서 일이 마무리될 것이다.
앞으로 계속 들락거리며 서우가 귀찮게 할 일이 조금 막막했다.
당분간 받아주다 못 오게 하면 되겠지.
그녀는 연우와 달리 말이 많고 원하는 것도 많다.
“설홍 님. 오늘 머리에 꽂으신 거 예쁘네요?”
서우는 오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올 때마다 설홍의 것을 탐냈다.
“이거? 예전에 선물 받은 거야.”
“예쁘네요.”
“선물 받은 거라 이건 곤란해. 다른 거로 줄게.”
“네! 감사합니다!”
다시 약과를 오물오물 씹는 서우.
당분간이 아니라 빨리 못 오게 해야겠다. 더는 쓸 데가 없으니.
“나도 요즘 몸이 허약해졌나. 계속 몸 상태가 별로네. 다 먹고 가.”
설홍이 일어서서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네. 쉬세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서우의 인사도 받지 않은 채.
다른 때였으면 서우가 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밖으로 나와 배웅까지 했는데 말이다.
설홍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서우.
들고 있던 약과를 내려놓으며 입안에 남아 있는 약과를 씹어 삼켰다.
그녀의 입 끝에 미묘한 웃음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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