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해서는 안 될 일.
2018.07.03.
오늘도 효조를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
휘타는 점점 쇠약해지는 연우 때문에 예민해졌다.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머리에서만 그럴 뿐 마음이 조절되지 않았다.
정말 효조가 죽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나 있다면 오직 탐야가 답이었다.
그러나 이미 휘타의 영혼은 탐야의 소유가 되었기에 이번 생을 끝으로 거래는 마지막이었다.
유타가 말했던 자신이 알고 해야 할 일이란 게 자꾸 걸렸다.
그게 답일까.
하지만 기억하려 노력해 봐도 그게 뭔지 작은 단서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휘타 님.”
뒤에 있던 소호가 휘타 옆으로 말을 몰며 불렀다.
“요즘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고민이 많으셔서 입 다물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셔야 할 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흉흉한 소문?”
“시장에서 매일 하는 인형극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소호가 말하는 소문의 시작.
인형극의 내용은 이러했다.
지하계는 아름다운 사신이 살고 있고, 그에게는 더 아름다운 신부가 있다.
여기까지는 예전부터 떠돌던 이야기라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신비로운 머리카락 색을 가진 사신의 신부는, 낮이면 힘이 약해지는 사신에게 힘을 주기 위해 태어났는데, 그 신부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또 있다는 것이다.
“그게 뭐라더냐?”
“신부를 먹으면 사신이 가진 영원불멸을 가지게 될 뿐 아니라 사신에게 줄 낮의 힘도 가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신만큼 강해진다는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언제는 약한 인간의 모습을 한 사신을 죽이면 사신만큼 강해진다더니.
쯧쯧. 사람들의 욕심에서 비롯된 소문은 희한하게 부풀려졌다.
강해진다는 게 누군가를 희생시킨다고 되는가.
이런 소문은 돌고 돌아 진실이 되고 만다.
휘타가 말을 멈췄다. 그러자 소호도 멈췄고 뒤따르던 무리도 멈췄다.
말의 고삐를 잡고 있는 휘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진실이 되면 안 되는 소문이다.
사람들은 사신이 휘타라는 걸 알고 있다.
특히 효조를 몰아낼 수 있었던 것도 휘타가 가진 사신의 힘이라고 믿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신부가 누군지 알려졌다.
물론 연우의 얼굴은 잘 모르나, 이번 일로 그녀의 이름이 퍼졌다.
성안의 사람을 사주한다면 얼굴은 금방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소문의 가장 말이 안 되면서 위험한 부분.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신부를 먹어?”
“네.”
“사람을 먹는다고?”
“네.”
미쳤다.
이 미친 소문을 흘린 놈이 누구고 믿는 놈이 누군지 확인이 필요했다.
“인형극이 시장에서 한다고 했지. 가보자.”
휘타가 방향을 틀었다.
*
수색하는 병사들을 돌려보낸 휘타가 소호와 단둘이서 시장으로 왔다.
해가 질 무렵, 상인들이 하나둘 장사를 접었고 떨이 상품을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누군가가 외쳤다.
“인형극 시작한다!”
다들 우르르 몰려갔다.
휘타도 그들의 뒤를 따라 인형극이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조그마한 천막을 세워놓고 열리는 인형극.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어서 시작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인형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휘타와 닮은 인형이었다.
물론 인형이라 얼굴은 전혀 달랐지만, 남자라고 하기엔 곱상한 인형이었고 머리카락과 평소에 입는 복장과 장신구들이 그임을 알려줬다.
“휘타다!”
아이가 혀짧은 발음으로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인형이 등장한다.
은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인형.
실제 연우는 빛을 잃었으나 인형의 머리카락은 원래 연우의 색처럼 빛을 가졌다.
조금 전 휘타의 이름을 불렀던 아이가 또 외친다.
“사신의 신부, 연우다!”
연우의 이름이 나오자 휘타의 눈이 가늘어졌다.
인형극은 사랑 이야기였다.
마음대로 지어낸 이야기였지만, 사람들은 아름다운 남녀의 사랑에 흠뻑 빠져 있었다.
사람을 먹는 무섭고 잔인한 얘기를 왜 좋아하나 싶었는데 이유를 알겠다.
사랑 이야기로 포장되어 다들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거였다.
소호가 말했던 내용과 같았다.
연우를 통해 힘을 얻고자 하는 무리가 그녀를 죽이고 먹었다.
속에서 분노가 끓어 올랐으나 휘타는 마지막까지 보기 위해 참았다.
여자와 아이들은 손으로 눈을 가리며 눈물을 흘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눈도 깜박하지 않을 정도로 집중했고 개중에 몇몇은 입을 벌린 채로 지켜본다.
인형극이 끝을 향해 달렸다.
연우를 먹은 한 남자가 힘을 자랑한다.
그리고 휘타가 복수를 다짐하며 인형극이 끝났다.
박수와 함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사람들이 천막 앞에 놓인 바구니에 돈을 넣고 흩어졌다.
휘타는 지나가는 여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왜 다음 편을 자꾸 미루고 맨날 같은 거만 해줘?”
“몰라. 나도 다음이 너무 궁금한데 매일 똑같은 내용을 봐도 재미있어서 기다릴 수 있어.”
“그렇긴 해.”
일부러 같은 부분만 반복해서 보여주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 인형극을 하는 사람에게는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휘타는 천막 안에서 사람이 나오길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다가갔다.
그때 남자 하나가 휘타 옆으로 와서 조용히 말했다.
“내가 그랬잖아. 사신의 신부를 먹으면 힘이 생긴다고.”
크크큭 웃는다.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 놈이 있다니.
삿갓을 살짝 올려 남자의 얼굴을 본 휘타가 인상을 찌푸렸다.
현사였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이 엉켜 산발이었고, 얼굴에는 구정물이 흘렀다.
낡아빠진 옷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그나저나 이 녀석이 여기에 왜 있는 거지.
문득 연우가 했던 말이 스쳐갔다.
‘절 보는 게 먹이를 보는 거 같기도 하고.’
연우가 그랬다. 효조가 연 연회에서 현사가 연우를 먹이 보듯이 봤다고.
게다가 방금 그가 한 말.
‘내가 그랬잖아. 사신의 신부를 먹으면 힘이 생긴다고.’
현사는 그때 이미 뭔가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너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가. 사신의 신부에 대해.”
“신부가 지상에서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단한 비밀을 얘기하듯 낮은 음성이었다.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답하는 거로 보아 완전히 미치지 않았다.
“누구에게 들었는데?”
현사가 등을 움츠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누구에게 들었느냐고 물었다.”
휘타는 반복되는 질문에도 여전히 웃기만 하자 현사의 멱살을 잡았다.
“누군지 말해라.”
“믿을 만한 정보야. 믿어.”
“호야, 네가 잠깐 이놈을 잡고 있어라.”
잡고 있는 현사의 멱살을 소호에게 넘긴 휘타가 천막으로 갔다.
우선 인형극을 하는 사람을 만나야 했다.
촤르륵. 천을 걷자 안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남자가 놀랐다.
“뭐하는 겁니까!”
휘타는 말없이 삿갓의 끈을 풀었다.
드러나는 그의 얼굴을 본 남자가 헉, 하더니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휘, 휘타 님.”
“인형극 잘 봤습니다. 아주 재미있더군요.”
휘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날카롭게 빛나는 휘타의 눈빛에 남자는 얼어붙고 말았다.
“내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답해야 합니다. 거짓이 있을 시엔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몰라요. 당신이 꾸며낸 이야기입니까.”
남자의 치아가 딱딱딱 부딪친다.
“사실대로만 말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휘타가 앉아 남자와 눈높이를 비슷하게 맞추며 다시 묻는다.
“당신이 꾸며낸 이야기입니까.”
“아, 아닙니다!”
“그럼?”
“책을 받았습니다. ”
“책?”
인형극이 인기가 없어 겨우 입에 풀칠만 하며 살던 어느 날.
누군가 남자의 집 마루에 책을 두고 갔단다. 인형극으로 만들어 달라는 편지와 함께.
내용은 사람들 흥미를 끌 만했다. 더구나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휘타가 나왔다.
주인공이 그라는 것 하나만으로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베일에 싸인 휘타의 여인까지 등장하다니.
고민하고 말 것도 없이 인형극으로 만들었다.
“저는 책 내용대로 한 거밖에 없어요! 정말입니다”
남자가 휘타 앞에 엎드렸다.
휘타의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미소 짓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사람을 베어버릴 것처럼 무서운 눈빛이었다.
“다음 내용을 하지 않고 같은 부분만 반복하는 이유는 뭡니까.”
“다음 내용을 모릅니다. 책에는 다음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책을 두고 간 사람을 찾고 있는데 도무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당신의 말이 사실인 걸 내가 어떻게 믿어야 하나.”
“믿어주세요! 가족이 있습니다! 제 아이들을 걸고 맹세합니다. 조금의 거짓도 섞지 않았어요!”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남자가 속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휘타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 일어섰다.
“뭐 믿어보죠.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당신을 항상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돌아선 휘타가 소호에게 가서 명령을 내렸다.
“넌 저 녀석의 집을 알아놔. 집 근처와 가족 모두에게 사람을 붙여 감시하라 하고.”
“인형극은요?”
“당분간은 그냥 둬.”
“이분은 어쩔까요?”
소호가 자신의 손에 잡혀 있는 현사의 멱살을 보였다.
“놔두고 가.”
휘타가 현사 앞에 섰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현사는 그저 헤헤거리기만 했다.
이런 놈을 잡고 제대로 대화가 되려나 모르겠다.
“누구야. 너에게 사신의 신부에 대해 말했던 사람.”
지상에서 연우가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걸 먼저 알고 있었던 사람.
“그녀를 먹으면 힘이 강해진다고 했던 사람.”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이길래 사람을 두고 그런 소문을 흘리는지.
“누군지 말해.”
휘타가 현사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쳤다.
“으아아악!”
갑자기 현사가 소리를 지르며 떨었다.
“살려줘요! 잘못했어요!”
돌변한 현사의 모습에 휘타가 한숨을 쉬었다.
“다시는 그러는 일 없을 겁니다! 사혼에게 먹히기 싫어요!”
손을 모으고 싹싹 빈다.
유타에 의해 사혼에게 먹힌 날을 떠올린 거 같다.
적당히 하지 그랬냐, 유타.
정신은 온전히 붙어 있게 했어야지.
그래야 제대로 대화를 할 텐데 이 상태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웠다.
하긴 자신이 그런 건데 할 말이 없었다.
지금, 휘타를 유타로 보고 겁에 질린 현사가 그 증거였다.
*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엄마가. 왜 엄마가 다음 사신인 거야.
처음엔 효조더니 이번엔 엄마.
자신이 죽을지언정 엄마를 사신으로 선택할 수 없었다.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만 다음 사신으로 보여준다.
어떻게 내가 엄마를 고통스러운 사신의 굴레에 들어가게 한단 말인가.
순간 연우는 깨닫게 됐다.
내가 이기적이었구나.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사신으로 선택해 고통 속으로 집어넣는 것.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사신의 신부가 하는 일은 그런 거였다.
당장 죽는다고 하니까, 다음 사신이 효조니까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가 엄마를 보고 알게 됐다.
그래. 어차피 다음 사신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니 엄마가 다음 사신인 것에 대해서도 의미를 두지 말자.
그래도 왜 하필 엄마가 다음 사신이 된 걸까.
탐야는 정말 알 수가 없는 존재였다. 잔인하기도 했고.
인간이란 신 앞에서 이렇게 무력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그들의 힘 앞에서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점점 의식이 흐릿해져 갈 때쯤.
연우를 부르는 음성이 들렸다.
“…… 님! …… 님! 마님!”
그녀를 마님이라고 부를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사림이 차가운 물수건으로 연우의 얼굴을 닦고 뺨을 톡톡 치기도 한다.
“정신 차려 보세요! 연우 아가씨!”
오랜만에 듣는 아가씨 소리에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어? 눈 뜨셨다. 정신이 좀 드세요?”
대답할 힘이 없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마님, 제가 의원을 데리고 왔어요.”
사림이 연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의원님. 마님께서 정신을 차리셨어요. 시간 없어요. 빨리요!”
사림의 뒤에서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남자가 와서 연우의 얼굴을 살펴봤다.
“증상이 어떠십니까?”
그가 사림에게 물었다.
“요즘 부쩍 자주 누워 계셔서 그냥 기력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 오늘 피를 토하셨어요.”
“얼마나요?”
“이 정도?”
사림이 제 손바닥에 그려 알려줬다.
“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의원이 연우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심각한 얼굴로 변한 그는 가져온 보따리를 풀어놓고 여러 방법으로 원인을 찾았다.
연우는 겨우 눈을 뜨고 의원이 하는 일을 보다가 다시 눈을 감기를 반복했다.
“기침은 안 하십니까?”
“마른기침하시는데 심하지 않았어요.”
“가슴을 크게 들썩이며 가래침을 뱉지 않고 그냥 마른기침만요?”
“네.”
“이상하네.”
의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작은 칼을 꺼내자 사림이 화들짝 놀랐다.
“뭐 하시게요!”
“염려 놓으세요. 아주 조금만 상처를 낼 겁니다.”
칼끝을 연우의 엄지에 대고 그었다. 따끔한 느낌에 연우가 흠칫 놀랐다.
살이 베이고 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의원은 피를 받아 탁자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얼마 후.
그가 사림에게 뭔가를 계속 물어봤고 사림은 아는 대로 모두 답해주었다.
한참 생각하던 의원이 다시 사림에게 물었다.
“혹 평소에 먹지 않던 걸 최근에 지속해서 드셨습니까? 예를 들자면 풀뿌리나…….”
탁. 사림의 손에 들려 있던 젖은 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커다래진 사림의 눈이 바쁘게 움직이다 멈췄다.
떨어진 천을 주워들어 바구니에 넣고 연우에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귀를 두 손으로 막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의원에게 말했다.
“최근에 아침마다 탕약을 드셨어요.”
“탕약은 조제를 잘못하면 몸을 망가뜨립니다. 마님께선 좋지 않은 뭔가에 중독되고 계신 듯합니다. 당장, 끊으십시오.”
의원이 최대한 돌려서, 그러나 사림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단호하게 말하였다.
그는 사림이 성안에 많은 의원을 두고, 이름 없는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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