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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늑대가 나를 부르면-52화 (52/100)

<52화> 보란 듯이 늙어 죽을 때까지 살겠어.

2018.06.29.

효조가 죽은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우는 실망 되지 않았다. 분노하거나 통쾌하지도 않았다.

몸이 저절로 움직여 의자에 앉았을 뿐이다.

힘이 빠지고 그냥 웃음만 나왔다.

그간 왜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차분함을 유지하나 싶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나 보다.

다음 사신인 효조가 죽었으니 이제 나는 죽고 휘타는 사신으로 살아가는 건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지만, 텅 빈 머리가 도통 돌아가지 않았다.

탁자에 팔꿈치를 얹고 머리를 기댔다.

눈을 감았다.

생각을 하자. 이제 뭘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휘타에게 다음 사신을 찾아 함께 살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사신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는 다시 사신의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원하던 세상이다.

효조가 없는 세상이지 않은가.

비록 살고 싶은 만큼 살 수 없게 되었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고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거니까.

죽을 날을 아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주변을 정리하고 남은 생을 편안하게 마감하면 된다.

적어도 첫 번째 삶처럼 독살당하지 않을 테고, 두 번째 삶처럼 자살하지 않아도 되니 이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연우는 앞으로 며칠이 남았을지 세어보았다.

석 달을 채우지 못하는 기간.

휘타와 가족을 마음껏 사랑해주리라.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웃기다.

분노 따위가 일어나지 않았으나 작은 불씨가 붙자 정신없이 타올랐다.

왜 내게만 이래.

죽을 날은 아는 게 어떻게 꽤 괜찮은 일이 될 수 있어?

이만하면 나쁘지 않기는 뭐가 나쁘지 않아!

효조가 없는 세상에서 이제 마음 놓고 편히 살겠다 싶은데, 신(神)은 연우에게만 온정을 베풀지 않는 듯하였다.

탐야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따지고 싶었다.

인간의 삶에 개입하기 싫다면서, 특히 그녀는 지상에서 온 인간이라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다고 했으면서 무슨 권리로 이러는지 묻기나 해야겠다.

간절히 바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따져 살려내라 할 것이다.

“당신 필요할 때만 날 찾아오지 말고 내가 필요할 때도 나타나란 말이야.”

꿈이든 어디든 제발 나타나.

날 살려 내라고 당당하게 말하겠다.

그리고 보란 듯이 늙어 죽을 때까지 살겠어.

*

휘타는 효조를 계속 찾으라 명했다.

다들 효조를 이미 죽고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였으나, 휘타는 시체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일도 아니고 연우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그도 수색하는 병사들과 함께 나설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이래야 했다. 효조를 찾아내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함께 나서서 찾아야 했는데.

산을 타기에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신도 바꿔 신었다.

걸리적거리는 머리카락을 한데 모야 묶어 연우에게 다녀오겠다 인사하러 가는 길.

그녀가 알고서 나와 있었다.

“어디 가세요?”

“효조를 찾는 일이 더디게 진행되어 직접 나서야겠습니다.”

연우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효조의 다리가 발견되었다면서요. 죽은 거 아니었나요?”

“확실하지 않습니다. 피가 묻어 찢긴 그의 옷을 보고 추측하는 것이죠.”

효조는 절대 죽어서 안 된다.

다리 하나가 없더라도, 설령 산 송장이 되었더라도 살아 있어야 했고 찾아야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휘타의 인사에도 연우는 잡고 있는 그의 팔을 놓지 않았다.

“그럼, 사람들이 찾도록 둬요.”

연우가 웃는다.

이 상황에서 그대는 어찌 웃을 수가 있는지.

마치 포기한 사람 같아서 마음이 쓰라렸다.

그토록 혼자 남을 나를 생각해달라 말하였건만.

휘타의 눈빛이 슬프게 가라앉았다.

“포기했습니까?”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올곧은 눈동자가 휘타를 올려다본다.

“절대 아니에요. 당신과 약속했잖아요. 포기하지 않아요.”

“그럼?”

“제 목숨은 제 것이에요. 사신의 신부니 뭐니 하며 탐야가 마음대로 정하는 것, 전 동의하지 않았어요. 그런 적 없어요.”

연우의 눈빛, 입술, 표정 하나하나가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녀가 동의한 적 없는 그 일.

사신의 신부도 휘타 때문이었다.

그걸 알면 그대는 뭐라 할까.

휘타가 그녀를 알아볼 수 있게, 용기를 내어 잡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부탁에 탐야가 그리했다고 말하면 어떤 얼굴이 될까.

탐야를 원망할 필요가 없었다.

현재 일어나는 모든 일은 휘타 스스로 만들었다.

“그대가 사신의 신부가 된 것도 나 때문입니다. 내가 그대를 첫눈에 알아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해서.”

그러자 연우가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세 번째 삶에서 처음 만난 그녀가 휘타의 눈에 띈 이유 중에 하나. 머리카락 색 때문이었다.

“그래서 머리카락 색이 변한 거였군요.”

연우는 변해버린 머리카락 색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효조가 사는 곳에 있는 것만으로 머리가 복잡했으니까.

“그런데 당신이 탐야에게 저의 죽음까지 부탁하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휘타가 바랐던 건 그저 그녀를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그녀의 생명을 두고 거래를 제시한 쪽은 탐야였고.

모두 연우의 짐작이었지만, 부정하지 않는 휘타를 보니 틀리지 않은 듯했다.

“탐야를 만날 거예요. 그리고 물어볼 거예요. 뭣 때문에 제게 이렇게 하는지 물어보고 절 살리라고 할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효조를 찾을 필요가 없어요. 살아 있든 죽었든 이제 그는 제게 의미가 없어졌거든요.”

그래. 효조는 이제 연우의 삶에서 어떤 부분도 차지하지 않는다.

사실 효조가 다음 사신이라는 이유로 제 목숨을 쥐고 있는 거 같아 불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마주할 상대는 효조가 아니라 탐야였다.

애초에 지상의 인간인 나와 내 가족을 무슨 이유로 그가 만든 세계로 불러들였는지 묻겠다.

지하계에 온 것부터 시작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녀의 삶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가 다음 사신을 찾지 못하면…….”

연우가 휘타의 말을 잘랐다.

“안 죽어요! 안 죽을 거예요. 억울해서 못 죽어요!”

큰 외침에 휘타의 얼굴이 순간 멍해졌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이고 피식 웃었다.

내내 어두운 표정인 그가 웃자 연우의 마음도 한결 편안해진다.

“그대는 여러모로 날 놀라게 합니다.”

“그래서 질리지 않잖아요.”

연우의 답에 그가 더 큰 소리로 웃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옵니까. 탐야도 그대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 당황하는 거 아닌지 몰라.”

“당황 좀 하라죠. 전 지금까지 당황의 연속이었어요.”

사고가 난 그날부터 여태껏.

“자신감이 넘쳐서 좋기는 한데, 탐야가 만나주지 않으면 어쩌려고.”

“만나주겠죠. 그래도 사신의 신부잖아요.”

휘타가 간절히 찾아서 만나줬다고 했으니 연우도 그러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탐야가 그대의 바람을 들어준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큰소리치면서도 걱정되는 부분이긴 했다.

따져 묻고 경고해도 탐야는 신이다. 싫다고 거절하면 그걸로 끝이 되는.

그녀에겐 탐야를 협박하거나 저울질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었다.

이 자신감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탐야를 만나 대화를 하면 답이 나오겠지.

가만히 앉아 당하고 있기 싫었다.

“제 바람을 들어주게끔 해봐야죠.”

“거래는 안 됩니다.”

휘타가 얼굴에 웃음기가 거두며 말하자 연우는 알겠다고 했다.

“한데 효조가 다음 사신이란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진작 물어본다면서 잊고 있었네요.”

“제게만 보이는 거 같은데 당신 가슴에 검은 연기가 보여요.”

“내 가슴?”

그가 눈을 내려 제 가슴을 봤다.

“여기에 검은 연기가 있다는 겁니까. 아, 날 찾아왔던 여자가 그래서 가슴을 짚었던 거군.”

“효조에게서도 봤고요.”

“혹 다른 사람에게선 못 보고?”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 다른 사람에게 볼 수 있는 게 가능한가.

“다음 사신이 둘일 수도 있을까요?”

“하나란 말은 하지 않았으니.”

설마 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연우는 탐야를 독대하길 기다리는 것보다 혹시 있을지 모를 또 다른 사신을 찾는 쪽이 빠를지 고민됐다.

하지만 더 있었다면 탐야가 말해줬겠지.

거기다 생각의 정리가 된 이상 연우에게 다음 사신도 효조처럼 의미가 없었다.

“탐야가 제게 그 정도의 배려는 해주지 않았을 거 같아요. 전 지상에서 온 인간이라 더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거든요. 걱정하지 마세요. 탐야, 꼭 만날 거예요.”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방법을 휘타에게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

며칠이 지났다.

죽음이 가까워져 오는지 연우는 몸의 이상을 느꼈다.

이렇다 할 증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기운이 없어 오래 걷기가 힘들었고 어지럽기도 했다.

자꾸 졸렸고 어느 날은 몸살이 온 것처럼 전신이 욱신거렸다.

휘타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도 눈치챘다.

날마다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대며 효조를 찾는 휘타를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최근 부쩍 누워 있거나 잠들어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휘타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보고 있기가 괴로웠으리라.

탐야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탐야에게 기도했다.

독기가 바짝 올라 협박에 가까웠던 기도는 점점 애원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침 일찍 탕약을 들고 찾아온 서우가 누워 있는 제 언니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자꾸 몸이 안 좋아서 어떡해? 내가 탕약도 가져다주는데 왜 그러지.”

“괜찮아. 흔한 몸살이야.”

웃어넘기는 연우의 입에서 마른기침이 나왔다.

목에 먼지가 붙은 것처럼 끊임없이 간지러워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옆에 있던 사림이 급하게 물을 주려고 하자 서우가 사림의 손을 밀어냈다.

곧바로 연우를 일으켜 앉혀 부축하더니 연우의 입술에 탕약 그릇을 갖다 댔다.

써서 잘 넘어가지 않아도 기침이 멈췄다.

서우가 준비해온 사탕을 연우에게 먹여주고 손수건으로 입술에 묻은 약을 닦았다.

“고마워.”

마냥 철없게만 봤던 동생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 미처 몰랐다.

“아프지 마.”

“응. 금방 좋아질 거야.”

다시 눕고 나자 연우의 아빠와 엄마가 들어왔다.

아빠의 얼굴에 잔뜩 먹구름이 끼었다.

“아프다면서?”

몸이 안 좋으니 가족의 관심을 받게 됐다.

이런 일로 가족이 모이는 것이 싫지만 오랜만에 받는 관심에 연우는 기분이 좋았다.

온 가족이 모여 걱정해준 적이 언제였더라.

서우와 교통사고 났을 때였다.

눈을 떴을 때, 서우와 부모님이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엄마의 깊은 한숨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보고만 있던 아빠.

엉엉 울던 서우.

상황 파악이 안 된 연우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꼭 그날 같네.”

“무슨 날?”

서우가 물었다.

“교통사고 당하고 나서 내가 깨어난 날.”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자신의 착각인가 싶은 연우가 가족들의 얼굴을 훑어봤다.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웃는 엄마를 따라 연우도 억지로 웃었다.

뭔가 알 수 없는 분위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갑자기 서우가 하하하 크게 웃었고 그 웃음 역시 엄마의 웃음만큼이나 어색했다.

“아~ 그날! 그날 언니한테 되게 미안했어. 난 거의 멀쩡한데 언니만 심하게 다쳤잖아! 그래서 엄마랑 아빠도 걱정이 많이 하셨고…….”

서우의 목소리가 줄어들며 연우의 눈을 피해 엄마를 슬쩍 봤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신호. 그리고 엄마가 서우를 책망하는 듯한 눈짓.

“그런 나쁜 기억은 잊어.”

엄마가 이불을 연우의 가슴까지 끌어올려 덮어줬다.

좋지 않은 기억인 건 맞다.

하지만 조금 전에는 좋은 기억으로서 말했던 거였다.

부모에겐 자식의 사고가 나쁜 기억인 게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방 안을 채우고 있는 분위기가 의아했다.

연우 저만 모르고 있는 그날의 일이 있기라도 하듯.

또 현기증과 함께 졸음이 몰려온다.

“저 눈 좀 붙일게요.”

“어. 그래. 어서 자렴.”

엄마가 연우의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눈이 감기고 막 잠들 무렵.

“마님께서 편안히 주무실 수 있도록 모두 나가주세요.”

사림의 음성이 들렸다.

마님. 며칠 전부터 사림은 연우에게 ‘아가씨’라는 호칭 대신 ‘마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사림의 말이 평소와 달랐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차가움이 묻어났다.

“너는 우리가 누군지 알면서 꼭 이러더라!”

서우였다.

“저는 마님을 모시는 거지, 마님의 가족을 모시는 게 아니니까요. 어서 나가주세요.”

딱딱하고 단호한 음성.

사림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나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강한 어투였다.

씩씩대며 서우가 뭐라고 말했지만, 금세 잠든 바람에 듣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잠이 들 때마다 깊은 늪으로 몸이 빠지는 것 같았다.

벗어나기 위해 허우적대다가 끝내 앞이 깜깜한 진흙탕 속으로 빠지고 마는 느낌.

그래서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악몽을 꾸거나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곤 했다.

오늘도 그렇다.

바닥이 자꾸 꺼지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눈을 감고 있는데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는 사림이 보였다.

젖은 천으로 연우의 이마를 닦아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렸다.

눈을 뜨고 움직이고 싶지만 몸이 그녀의 명령을 따라주지 않았다.

스르륵. 사림 앞으로 투명한 인영이 나타났다.

사림의 눈에는 투명한 인영이 보이지 않는지 그녀는 하던 일을 했다.

“나는 네가 만족할 만한 답을 줄 수 없다.”

탐야였다. 그는 연우의 질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럼 누가 해줄 수 있나요.”

“네가 사는 세계를 다스리는 신은 따로 있으니 그에게 물어봐.”

연우는 어이가 없어 짧게 숨을 들이켰다 뱉었다.

“저를 여기로 보낸 것도 그…… 제가 사는 세계의 신이 그랬단 건가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지하계도 그렇고 내가 살다 온 세상도 그렇고. 당신들이 창조했다는 이유만으로 왜, 왜 마음대로 삶과 죽음을 조정하는 거예요! 그럴 거면 차라리 만들지 말았어야죠.”

“오해하지 마라. 우리는 마음대로 한 적이 없다. 너희가 먼저 찾았지. 우린 들어줄 뿐이고.”

휘타도 그랬다. 그가 먼저 탐야를 찾았다.

“그래서 저는 이대로 죽고요?”

“다음 사신을 찾으면 돼.”

“효조가 죽었잖아요! 다음 사신이 없어요, 저는 죽기를 바란 적이 없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얘기해주세요. 당신 말대로라면 지상을 주관하는 신을 내가 찾았다는 건데 그런 적 없어요. 전 지하계에 오기를 원한 적이 없단 말입니다.”

탐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은 얼굴로 조용히 연우를 보고 있을 뿐이다.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 알고 싶다면 지상을 창조한 신을 만나야 하는 건가요?”

“건취현(乾取炫). 그의 이름이다.”

“저는 그를 몰라요. 만나게 해주세요. 아무리 휘타의 소원이었다지만 절 사신의 신부로 만든 건 당신이니까 적어도 그 정도는 해주셔야죠.”

점점 그의 형체가 흐릿해진다. 사라지려는 모양이었다.

손을 내밀어 잡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약속해줘요! 만나게 해달라고요!”

탐야가 연기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날 살려달라고 해야 한단 말이야!”

외침과 동시에 눈이 떠졌다.

숨이 가빴다. 또 식은땀으로 등이 젖었다.

“연우야, 나쁜 꿈을 꿨나 보구나. 괜찮니?”

“…… 안 가셨어요?”

“네가 많이 아픈 거 같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라.”

걱정하는 엄마를 보자 눈물이 쏟아질 거 같다.

엄마, 저 죽는대요.

다음 사신인지 뭔지 찾지 않으면 죽을 거래요.

욱! 구토증이 일었다.

사림이 뱉을 수 있는 작은 그릇을 들고 달려왔으나 그 전에 나오고 말았다.

연우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비릿한 맛의 액체가 입을 통과하고.

연우의 손에 빨간 피가 묻었다.

“마님!”

사림의 외침.

다시 어지럽다. 옆으로 쓰러지는 찰나.

엄마? 왜?

그녀의 가슴에 검은 연기가 보였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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