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그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2018.04.03.
휘타는 연우가 자신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했다.
오늘 밤 고백하면 얼마나 좋아할지, 어떤 웃음을 지어줄지도 기대했다.
기다리는 동안 온통 그 생각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이왕 마중 나온 거 연우를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걷다 보니 성에서 멀어졌다.
날이 왜 이래.
휘타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자주 있는 일이건만 오늘따라 빨리 어두워진 하늘이 영 못마땅했다.
그가 걸음을 재촉했다.
호위무사가 넷이나 따라갔어도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다음엔 훨씬 더 많이 붙여야겠다고 다짐하며 서둘렀다.
멀지 않은 곳,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호야. 네가 보기에도 저기가 수상하느냐.”
“네. 아까부터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와봤는데 둘의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았다.
연우의 호위무사들이 복면을 쓴 자들과 싸우고 있었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자들을 보니 꽤 긴 시간 이어진 싸움이었다. 호위무사들도 상처가 심해 보였다.
즉시 싸움판으로 뛰어들려는 소호를 휘타가 말렸다.
“아가씨가 보이지 않는다. 아가씨 먼저 찾아.”
싸우는 호위무사가 셋이니 하나가 연우를 데리고 있으리라 추측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연우가 보이지 않는다.
안전한 곳에 숨어 있는 거겠지. 이 싸움이 끝나면 어디선가 나타나겠지.
바라고 또 바랐다.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타들어 갔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아직 좋아한다고 전하지도 못했는데.
아직 해줄 것이 많은데.
찰나가 영원처럼 긴 시간이었다.
크아앙! 짐승들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연우를 빨리 찾아야 했다.
혹여 괴력을 발산하는 짐승들 틈에 끼어 있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순간 휘타의 눈에 저 멀리에서 일어서는 연우가 들어왔다.
안도했다.
반가움에 연우의 이름을 부르려는데, 그녀 앞으로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연우의 표정이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위험한 상황임을 감지한 휘타가 달렸고 소호도 따랐다.
점점 연우에게 가까워졌다.
연우 앞에 있는 상대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악에 받쳐 있다는 건 알겠다.
아무 일도 없길 바라는 바람과 달리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가냘픈 그녀의 몸이 날아갔다.
곧이어 검은 인영이 수호령을 부르는 조짐이 보이고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여우 한 마리가 나타났다.
주황색 털을 가진 여우를 보자 검은 인영의 주인공이 누군지 눈치챘다.
연우가 단희를, 아니 여우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웃었다. 공허한 웃음소리가 조용하게 울렸다.
그렇게 잠시 웃더니 그녀가 눈을 감았다.
체념이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휘타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왜, 살려고 도망치지 않는 것이야.
살기 위해 발악을 해.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무슨 짓이라도 해.
연우에게 다가가 앞에 섰다.
휘타를 본 여우가 본모습으로 돌아가 휘타를 불렀지만, 그에겐 연우만 보였다.
살기를 포기하고 있는 그녀가 처연해 당장 안아주고 싶었다.
내 흰 토끼.
내 예쁜 사람.
그대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렇듯 슬퍼 보이는 걸까.
그때.
연우가 살며시 눈을 떴다.
휘타를 발견한 눈에 눈물이 방울져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늦었습니다.”
늦어서 미안하다.
“당신…… 당신이 어떻게…….”
“그대를 마중 나왔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그대에게 더 빨리 왔어야 하는데.
미안함에 미소를 지어주자 그녀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번져갔다.
연우가 먼저 휘타에게 안겼다.
울음을 터뜨리는 연우를 보며 그녀가 삶을 포기한 게 아니었음을 느꼈다.
그게 너무 기특하고 고마웠다.
엄지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품에 안은 채 돌아섰다.
황망한 얼굴로 서 있는 단희를 바라보는 휘타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휘, 휘타 님…….”
“내 너에게 그리 경고를 했건만.”
“왜, 왜 저는 안 되고 저 여자는 되는 건가요?”
단희가 손을 들어 연우를 가리켰다.
“이유는 없다, 단희야. 그저 너에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야.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에 어찌 이유가 있겠어. 찾으려 할수록 비참함만 남는다.”
“사람들이 절 휘타 님의 부인이라고 불렀어요! 다른 사람들은 저 여자가 아니라 절 인정했다고요!”
단희가 제 가슴을 치며 주저앉았지만, 휘타는 그녀를 무감각하게 바라보며 끌끌 혀를 찼다.
한심한 것.
“그들이 백 번, 천 번 인정해도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
“제게 왜 이러세요? 잘해주셨잖아요. 예뻐해주셨잖아요.”
“내가 잘해주지 않은 기생이 있더냐. 예뻐해주지 않았던 기생이 있더냐. 내 흥을 북돋워주는 기생을 싫어할 이유가 없지.”
“제게만…… 옆자리를 허락하셨잖아요.”
단희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녀는 휘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예감하면서도 물었다.
연우의 말이 맞았다. 원래 그런 남자인 휘타를 단희가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정할 수 없었다.
모두가 우러러봤던 자리. 모두가 탐냈던 위치.
오로지 단희만 가졌었다.
“너에게만 허락한 것이 아니야. 네가 내 옆자리를 다른 기생에게 내어주지 않은 것이지.”
누구에게나 친절한 남자.
그런 그에게 자신이 특별한 줄 알고 있었다. 정말 착각이었다.
얼이 빠진 단희가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래도 연우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휘타의 옆자리를 아직도 지키고 있을 테고, 사람들에게 ‘휘타의 부인’이라 불렸을 것이다.
네년은 지상에서나 잘살 것이지 이곳에 내려와서 나를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지.
분했다. 휘타가 나타나기 전에 없애 버릴걸 그랬다. 그랬으면 저 남자의 옆자리는 여전히 내 것이었다.
단희의 손톱이 흙바닥을 파고들었다.
오늘은 비록 이렇게 끝이 나나, 다음엔 절대 살려두지 않을 테다.
휘타가 소호를 불렀다.
“호야. 아가씨를 부탁한다.”
떨어지기 싫어하는 연우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잠시만요. 오래 걸리지 않아요.”
소호가 연우를 데리고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휘타가 단희 앞에 섰다.
“단희야.”
단희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눈빛은 차가웠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얼굴의 휘타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휘타를 향했던 원망이 그의 얼굴을 보자 풀어진다.
저 고운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에 어떤 여자가 원망을 품을 수 있겠는가.
그를 완전히 소유한 연우가 부러웠고, 동시에 연우에 대한 미움이 무한대로 늘어난다.
“나는 네가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었지. 항상 약속을 지켰다. 기억하느냐.”
단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이번에도 약속을 지킨다.”
휘타가 제 발 하나를 들었다.
우드득! 그가 단희의 손가락을 밟아 비비자 마디마디가 부러진다.
“으아아악!”
단희의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그에게 자비란 없었다.
약속했던 것처럼 단희의 열 손가락 모두 부러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단희의 고통에 찬 비명이 수풀 사이사이로 울려 퍼졌다.
*
“아얏!”
찢어진 입술에 물기가 닿자 쓰라렸다.
직접 피를 닦아주던 휘타는 제가 아픈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많이 아픕니까?”
“참을 만해요.”
상체를 숙인 그가 손끝으로 귀한 것을 잡고 있는 것처럼 연우의 턱을 잡았다.
호호, 불어주는 입김이 간지러워 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휘타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릴 때마다 그의 머리카락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연우의 입술을 보고 있는 눈동자가 움직이며 그녀를 보고 웃어준다.
큰일을 겪어서 그런가. 내내 헛것을 보고 있는 것 같더니 이제 실감이 났다.
꼼짝없이 죽겠다 싶은 순간 나타난 휘타는 꿈같았다.
그는 늘 그렇다. 꿈처럼 나타나 그녀를 붙잡아줬다.
휘타를 보자마자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왔다. 살았구나, 하며 안도했다.
이러면서 포기하려고 했다니.
실상은 죽고 싶지 않았으면서.
연우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그녀가 삶을 포기했던 건 단 한 번뿐이었다.
이젠 포기하지 않으리라. 아까 다짐했던 것처럼 보란 듯이 살아남을 것이다.
사림에게서 깨끗한 천을 받은 휘타가 다시 연우의 상처를 조심해서 닦았다.
“참지 마세요. 아플 땐 아프다고 하는 겁니다.”
“…… 네.”
소호와 같이 있으면서 연우도 단희의 비명을 들었다.
연우에게 말할 때 격앙된 음성으로 말하던 단희가 휘타에게도 그러는 모양이었다.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오기도 했는데, 연우의 귀를 소호가 막아줘 더 듣지 않아도 됐다.
휘타는 약속했던 대로 금방 연우에게 돌아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연우의 얼굴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찢어진 입술을 닦아준 그가 천을 찬물에 적셔 부은 볼에 대줬다.
“호위무사 분들을 어떻게 되었나요?”
그녀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웠던 사람들이었다.
정신이 없어 그들의 안위를 이제야 물었다.
“다치긴 했지만, 생명에 지장 없고 그대를 넘긴 놈은 쫓고 있으니 수일 내에 잡힐 듯싶습니다.”
“다행이에요. 복면 썼던 사람들은요?”
“거의 죽고 산 채로 둘을 붙잡아 왔습니다. 캐내야 할 것이 있어 당분간은 살려둘 예정입니다.”
어차피 단희가 꾸민 일인데 뭘 더 캐낸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단희가 어떻게 됐는지도 궁금하고.
하지만 그에게 더는 복면을 쓴 자들과 단희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모르겠다. 모르고 싶었다.
머리만 복잡해질 텐데 거기까지 알아서 뭘 하겠는가.
“다음부턴 호위무사를 더 많이 붙여야겠습니다.”
“네. 감사해요.”
“흠. 가족을 성안으로 부르면 어떻겠습니까? 위험한 상황을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그렇고, 같이 사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말이죠.”
“제 가족을요?”
놀란 연우가 볼에 대고 있던 젖은 천을 내리며 묻자 사림이 가져가 물에 담갔다가 짠다.
“그건 반대입니다.”
사림의 음성에 힘이 들어갔다.
“네게 묻지 않았다.”
휘타가 사림에게서 젖은 천을 가져가 연우의 볼에 대줬다.
“명분이 없잖아요.”
휘타의 여자라고는 하나 연우는 일개 하녀였다.
하녀의 가족을 성안으로 불러들여 같이 살도록 하다니.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말이 나올 일이라 연우도 사림의 반대를 이해했다.
“명분이야 만들면 되지. 그게 뭐 어렵다고.”
“어떤 명분이요?”
“그런 게 있다.”
“생각을 짜내봐도 그럴듯한 명분이 없어요. 전 반대입니다.”
연우의 눈동자가 휘타와 사림이 말할 때마다 옮겨 다녔다.
가족이 성안에서 살게 된다면 좋긴 하겠다.
휘타 말대로 오늘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일도 없고, 만나고 싶을 때마다 쉽게 볼 수 있다.
하나 연우가 걱정하는 건, 가족이 성안에 들어와 마냥 편하게 살 생각을 하면 어찌하느냐였다.
그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
“아직 제 뜻은 말하지 않았어요.”
연우의 말에 휘타와 사림이 설전이 멈췄다.
“아, 물론 그대의 뜻이 최우선입니다.”
“생각해볼게요. 가족과 상의도 필요하고요.”
“그래요.”
그가 상자에서 연고를 꺼내 입술의 상처에 발라줬다.
“내일이면 더 아플 겁니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요.”
“또 그런다.”
“네. 아프면 말씀드릴게요.”
“좋습니다. 아주 예뻐요.”
연우의 머리를 휘타가 쓰다듬어줬다.
그의 손이 머리에 닿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어 죽겠다.
그에게 들릴까 봐 조용히 심호흡해도 조용해지지 않았다.
연우는 그의 손길이 주는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따뜻하고 포근해 마음껏 쉴 수 있도록 해준다.
기분 좋은 긴장을 주는 설렘이 더 살고자 하는 욕심을 준다.
하마터면 이 손길을 영영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더 소중했다.
*
마주 보고 누운 휘타와 연우.
피곤해하는 연우 때문에 간단히 저녁만 먹은 후, 바로 누웠다.
그의 팔베개가 생각보다 편해 졸음이 몰려왔지만, 그녀는 눈을 감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이 시간을 좀 더 오래 가지고 싶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아도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좋은 시간.
고요함이 주는 편안함에 단희와 있었던 일이 먼 옛날 같았다.
“왜 피하지 않았습니까.”
휘타의 낮은 음성이 고요함을 깨뜨렸다.
이불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연우의 손을 잡은 그가 또 묻는다.
“단희가 수호령으로 변했을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망갔어야죠. 왜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그냥…… 그땐 포기됐어요.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무엇으로부터 피하고 있는데요.”
연우가 제 아랫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입술을 열었다.
이제 그에게 조금씩 털어놓을 작정이다.
두 번이나 시간이 과거로 돌아갔다는 것. 그래서 사실은 효조가 전남편이라는 것.
나는 당신을 처음 만난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등등 말이다.
한꺼번에 말하면 혼란스러울 테니 휘타가 이해할 수 있게 차근차근 풀어놓을 계획이었다.
“죽음이요. 죽음으로부터 피하고 있어요.”
“죽음?”
“대부분 전남편이 원인이긴 했지만,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겪었어요. 가장 암담할 때에 당신을 만나게 되면서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그 후로 다행히 저를 위협하는 죽음으로부터 피하고 있는 거 같았고요. 근데 오늘은 피할 길이 없어 보였거든요.”
“왜 그런 생각을 했습니까.”
“전남편이 원인인 죽음에서는 벗어났어도, 다른 방식의 죽음이 내게 오고 있구나 싶어서요. 저번 연회에서의 일도 그렇고.”
휘타가 상체를 약간 들어 연우를 봤다.
풀어놓은 실타래 같은 까만 머리카락을 연우가 만지작거렸다.
“지켜달라는 것이 남자가 아닌 죽음이었습니까.”
그녀가 덤덤하게 답했다.
“그런 셈이죠.”
연우에게 효조는 곧 죽음이었으니까.
이제는 효조에 국한되지 않았지만.
“이게 내 운명이구나. 나는 죽을 수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피하지 않았어요.”
휘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이런 말을 하는 게 민망하기도 했다.
연우가 그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까 내 보기에 그대는 살고 싶어 했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네. 포기했을 때 당신이 떠올랐거든요. 이대로 죽자 마음먹었는데, 당신 얼굴이 어른거려서…….”
그 상황이 다시 겹치자 연우의 목이 멘다.
눈을 떴을 때 나타난 휘타의 얼굴을 보며, 단희가 단번에 저를 죽이지 않아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왜 그 순간 그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로 인해 그대로 죽는 게 억울해졌고 살고 싶어졌다.
“제가 말한 적 없죠. 당신은 내게 빛이에요.”
캄캄했던 내 삶에 유일한 빛.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인생의 단 한 줄기 빛.
“내가 그대의 빛입니까.”
“네.”
“정말?”
“정말.”
연우가 울먹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휘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다시 반복되었을 끔찍한 일들.
거기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그는 빛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휘타였다.
“그럼 다시는 포기하지 마.”
휘타가 연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마를 따라 그리며 내려오다 볼을 소중하게 어루만졌다.
“죽음 따위. 아무것도 아니야.”
연우를 바라보고 있는 금색의 눈동자가 곧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그댈 지킬 테니까.”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연우만을 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물이 흘러넘친다.
그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쌓여 터질 것 같았다.
완벽한 믿음. 그녀의 제안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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