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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늑대가 나를 부르면-23화 (23/100)

<23화> 그대를 안고 싶어서 죽을 거 같다고 했습니다.

2018.03.20.

맨발로 풀 밟는 걸 여전히 좋아한다고?

연우는 유타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추측하다 머리를 흔들었다.

굳이 되짚어서 추측할 필요도 없겠다.

그가 알고 있다는 건 하나의 이유밖에 없었다.

되풀이되는 그녀의 삶을 알고 있다는 것. 지난 두 번의 삶 속에도 그가 있었다는 것.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반가웠다.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아직 모르지만, 그도 연우와 같은 일을 겪었다면 무언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방금,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믿을 수 없는 연우가 확인차 다시 물었다.

“맨발로 풀 밟은 걸 여전히 좋아한다고 했는데. 뭐가 잘못됐나?”

“제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아느냐니. 봤으니 알지.”

“언제요?”

정면만 보고 있던 유타가 고개를 돌려 연우에게 향했다.

“며칠 전에.”

며칠 전이라는 유타의 답에 빠르게 뛰던 심장의 박동이 점차 느려졌다. 치솟았던 기대감이 점점 내려앉고 있었다.

“며칠 전 언제요? 제가 지하계에 와서 맨발로 걸은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그녀의 기억엔 없기에 꼬치꼬치 캐물었다.

“내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세고 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으로 보여?”

“그럼 제가 어디서 맨발로 걸었는데요? 여기?”

“그래. 여기. 며칠 전의 일도 기억 못 한다니 보기보다 머리가 몹시 나쁜가 봐.”

연우는 곰곰이 지난 며칠을 되짚어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맨발로 정원을 걸었던 기억이 없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유타가 거짓말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연우 저처럼 되풀이되는 삶을 말할 수 없는 형편일까.

어쩌면 그도 연우가 세 번째 생을 사는 걸 모르고 있어 끝까지 아니라고 할 수도.

밝히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더 물어봤자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예의도 아니었고.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가 연우에게도 그렇게 묻는다면 곤란할 터이다.

연우가 더 묻지 않았다. 그래도 궁금했다.

유타의 표정을 볼 수 있다면 짐작이라도 해보겠는데, 얼굴이 가면에 가려져 있어 불가능했다.

“가면은 왜 쓰고 계세요?”

아차. 무작정 물어보면 불쾌할 텐데 호기심이 앞서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입에서 먼저 튀어나왔다.

“머리도 나쁘면서 무례하기까지.”

“죄송해요.”

“계속 걷지.”

유타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자 연우도 따라갔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나란히 걸었다.

넓은 정원을 반 바퀴 돌 때까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아 풀 밟는 소리만 들렸다.

그런데 어색하지 않았다.

항상 이렇게 같이 산책했던 것처럼 편안하다.

“근데 진짜 제가 며칠 전에 여길 맨발로 걸었나요?”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다. 정말 기억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였다.

“진짜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 네.”

그래. 그가 거짓말을 왜 하겠어.

그럼 내 기억력이 문제네. 왜 며칠 전을 기억하지 못한 거야.

“다른 질문은 답해 줄게. 가면 얘기만 빼고.”

가장 궁금한 것만 빼라니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고민했다.

“어디서 사세요?”

“답하기 싫어. 다음.”

“가면 얘기만 빼놓고 답해준다면서요.”

“말해주면 네가 어딘지 알아?”

알 수도 있지. 지하계에서 2년이나 살았다.

하긴 2년이나 살았어도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유타의 존재도 몰랐고, 사신이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여기에 자주 오셔도 돼요?”

“내 마음이야. 왜, 휘타가 싫어할 거 같아서?”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상관없어.”

상관없다는 사람이 오늘 새벽엔 왜 휘타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유타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무한대로 늘어났다.

그는 정말 나와 같은 과거를 가지고 있는 걸까.

휘타와 똑같은 얼굴이라면 필시 잘생겼을 텐데 왜 드러내지 않고 가리고 있을까. 등등.

속 시원히 말해주면 좋겠다.

유타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테니 대놓고 물어볼 수 없었다.

묻는다고 다 말해줄 사람이 아닌 듯했지만.

“그럼 오늘은 오셨다고 휘타 님께 말씀드립니다.”

휘타를 속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마음대로 해.”

그 뒤로 유타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욕을 하고 있었다. 몹시 짜증이 난 음성이었다.

휘타에게 전한다는 게 욕을 할 만큼 싫은 일인가 싶다.

그럴 거면 차라리 휘타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면 될 일인데 상관없다는 소린 왜 하는지. 아니 그냥 휘타가 있을 때 오면 된다.

“다음부턴 휘타 님만 만나고 가셨으면…….”

유타가 연우의 말을 잘랐다.

“나 간다.”

그 말만을 남기고 돌아서서 빠르게 걸었다.

어찌나 빠른지 유타의 뒷모습이 연우의 시야에서 금방 사라졌다.

*

산책을 끝내고 와서 휘타의 방을 들여다봤다.

방은 아직도 텅 비어 있었다.

머리 식히러 나갔다가 도리어 무거운 것들만 잔뜩 담아온 산책이 되고 말았다.

연회에 가 비어 있는 그의 방에 있기 싫어 제 방으로 간 연우.

탁자 위에 못 보던 종이봉투가 보였다.

한글로 연우의 이름이 적혀 있어 누가 보냈는지 짐작했다.

언니, 나 서우.

어제 언니 만나러 성에 갔는데 들여보내 주지 않아서 편지 전해달라고 했어.

언니, 일 알아봐 준다는 건 어떻게 됐어?

차라리 청소하고 빨래하는 게 낫겠어. 벼 베고, 과일 따는 일은 못 하겠어.

저번엔 잡초 제거하다가 손에 상처가 낫지 뭐야. 너무 아파서 엉엉 울었어.

너무 슬펐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생고생을 하고 있는지.

언니, 일자리 되도록 빨리 알아봐 줬으면 좋겠어.

언니도 내가 고생하는 거 싫잖아.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릴게.

보고 싶어. 사랑해!

- 언니의 동생 서우

연우가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접었다. 서우의 어리광은 편지에서도 묻어났다.

직접 찾아오고 편지까지 쓴 걸 보니 일이 어지간히 힘든 모양이었다.

연우는 자신만 호강을 누리고 있어 가족에게 미안해졌다.

일자리를 사림에게 물어봐야 하나, 휘타에게 물어봐야 하나.

편법을 쓰고 싶지 않지만 동생 일이라서 그런지 휘타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우선은 일자리가 있는지 먼저 물어보고 나중에 생각하자.

접은 편지를 서랍에 넣고 닫고 있는데 밖에서 사림이 부른다.

“아가씨, 저녁 드셔야지요.”

연우가 달려가 문을 열었다.

“휘타 님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가 연회에서 왔는지가 더 중요했다.

“아, 휘타 님이 오시긴 했는데요.”

“그런데?”

“많이 취하셔서 누워 계세요. 저녁은 아가씨 혼자 드셔야겠어요.”

헤헤, 하고 사람이 멋쩍게 웃었다.

대체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취해서 누워있다는 건가.

그럴 처지가 아님을 알지만, 마음에서 무언가가 끓어 올랐다.

자신의 여자라고 떠들었으면서 연회에서 기생들과 어울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 줄 것처럼 굴었던 남자였는데. 그래서 믿었는데.

아니지. 난 그의 많은 처음을 가졌다.

그게 어디인가. 그것만으로 만족하자.

휘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남자라 하루아침에 그 생활이 바뀔 리가 없었다.

어차피 그와 연우는 서로에게 정조를 지켜야 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래도 화가 나.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울상을 지은 연우가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의자에 앉았다.

“아가씨, 저녁은 드셔야지요.”

“됐어.”

손을 내젓는 연우를 본 사림이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네. 알겠습니다.”

문을 닫고 연우의 방에서 나간 사림이 얼른 옆에 있는 휘타의 방으로 갔다.

휘타에게 자신이 왔음을 고한 사림은 그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문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을 리가 없지.”

침상에 누워 있는 휘타의 입술에서 뜨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단희가 가지고 있던 미약을 너무 우습게 봤다.

그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예상보다 훨씬 강도가 셌다.

휘타는 방에 들어와 연우를 내일까지 못 오게 하라고 사림에게 미리 말해두었다.

눈앞에 그녀가 있다면 분명 일을 내고 말리라.

“휘타 님. 제가 약을 구해 올까요?”

“약 같은 거 없어.”

미약의 해독제는 오로지 그녀뿐이다.

“하나 있긴 하죠.”

사림이 히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게. 진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가라.”

드르륵. 문이 닫히자 그가 크게 숨을 뱉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연우가 떠오른다.

눈을 떠야 한다고 머리가 알려오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상상뿐인데 어떠냐고 검은 목소리가 그를 유혹한다.

물방울이 맺혀 있던 머리카락. 발그레하게 물든 두 뺨.

깜빡이던 속눈썹. 그리고 생생하게 모두 기억하고 있는 입술의 감촉.

여기까지만 떠오르면 다행이지.

하얗고 동그란 어깨. 수줍게 그의 등을 안던 팔.

그의 단단한 가슴에 눌리던 말랑한 느낌.

옴폭하게 들어간 그녀의 등줄기를 손가락으로 만지면 어떨까.

문신 자국이 있는 그녀의 견갑에 입을 맞추면 어떤 느낌일까.

머릿속으로 연우를 탐했다.

수차례 본 적이 있는 그녀의 매끈한 피부. 아예 보지 않았더라면 상상이 되지 않을 텐데.

눈앞에 있는 듯 그려진다.

반대로 그녀의 완전한 나신을 본 적이 없어 그의 상상을 더 자극한다. 갈증이 생긴다.

허리 아래가 뻐근해졌다.

그의 붉은 입술 사이에서 뜨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미치겠다.”

감고 있는 눈을 떴다.

그녀에게 미안했다. 죄스러웠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끊임없이 찾아오는 연우를 내쫓았다.

큰일이네. 밤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으려나.

그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찬물이라도 뒤집어써야지.

이러다 정말 연우의 방으로 뛰어들겠다.

“사림이 거기 있느냐.”

사림이 들어오자 목욕을 준비하라 시키는 휘타.

물론 아주 차가운 물로 준비하라고 했다.

*

연우는 난데없이 목욕하라는 사림에게 이끌려 왔다.

싫다고 했지만 사림의 끈질긴 청에 결국 이리되고 말았다.

방 안에서 화를 누르고 있는 것보다 목욕하며 마음을 느슨하게 만드는 것도 좋을 듯싶기도 했고.

역시 몸이 풀어지니 마음에 쌓여가던 화도 누그러졌다.

조금 더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다.

그는 그의 삶이 있는 거고, 난 내 삶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고, 신뢰를 지켜야 하는 사이도 아닌데 이러는 건 너무 웃기다.

천천히 머리와 마음이 정리되어 갔다.

이제야 배가 고파진다.

연우가 욕조에서 일어나자 그녀의 전신을 타고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젖은 머리카락을 모아 물기를 짜내고 밖으로 나와 몸을 닦기 위해 커다란 수건을 들었다.

그때. 시선이 느껴졌다.

황급히 몸을 가리고 보자 하의만 입은 휘타가 서 있었다.

“언, 언제…… 왔…… 어요?”

당황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야. 욕조에서 일어섰을 때부터?

아무것도 입지 않았는데.

어둠 아래, 뿌연 수증기를 뚫을 만큼 강렬한 눈동자였다.

금빛이 번쩍이며 수건으로 가리고 있는 그녀의 몸을 훑어 내려갔다.

그의 시선을 따라 온몸이 빨갛게 익어가는 것 같다.

욕실에서 휘타를 본 게 처음이 아닌데, 오늘따라 그의 시선이 아프게 꽂힌다.

그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연우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욕조 안에 손을 담그더니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림이 이 녀석.”

사림의 이름을 말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연우는 빨리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옷 입어야 해요. 고개 돌려주세요.”

여느 때의 휘타답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면 연우를 놀리려고 하는 그가 순순히 돌아섰다.

자잘하게 근육이 붙어 있는 휘타의 등을 확인한 연우도 돌아서 서둘러 옷을 입었다.

손이 떨렸다. 치마까진 어떻게 입었는데 상의의 소매에 팔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팔이 소매를 찾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자꾸 헛손질했다.

“자, 여깁니다.”

휘타가 도와줬다.

그의 손이 팔을 따라 스쳤다.

옷 입는 걸 도와줄 뿐인데 야릇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의 손이 피부를 스칠 때마다 숨을 멈춘다.

양 소매에 팔을 넣고 허리를 묶기 위해 팔을 뒤로했다.

두 손으로 띠를 잡고 옆구리를 거쳐, 배에 닿는 찰나.

그의 손이 등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

연우의 손이 지나갔던 곳, 옆구리를 거쳐 배에 도착. 끈을 쥐고 있는 연우의 손을 감쌌다.

그리고 뒤에서 힘껏 안았다.

스륵. 휘타가 연우의 어깨에 턱을 걸쳤다.

거칠어진 호흡이 귀를 통해 고스란히 들려왔다.

“저, 저기…….”

당황스러워 그의 이름을 부를 수도, 얼굴을 볼 수도 없었다.

“죽을 거 같습니다.”

“네?”

“그대를 안고 싶어서 죽을 거 같다고 했습니다.”

그의 진하고 뜨거운 숨이 피부를 달궜다.

*

욕실에 들어오며 휘타가 제 옷을 벗어 던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머릿속으로 연우를 탐하는 일은 그만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욕조에서 불쑥 사람이 올라왔다.

희미한 빛을 받은 나신의 굴곡이 완전하게 드러났다.

몸을 휘감고 있는 머리카락이 반짝 빛을 내어 누군지 금방 알아챘다.

연우가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한쪽으로 모아 물기를 짰다.

주르륵. 똑. 똑. 수면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마치 그의 가슴에도 연우가 흘린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했다.

어느 책에서 봤더라.

인어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꼬리가 없어서 그렇지 그녀가 그 인어 같았다.

여인이 나신을 수도 없이 봤지만 별 감흥이 없었건만.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는 건 처음이리라. 이처럼 자극적인 것 또한 처음이리라.

상상하던 그녀가 눈앞에 있었다.

눈앞의 세상이 빙글 돌았다. 그의 자제력도 점점 힘을 잃어갔다.

이대로 돌아서서 나가야 하는데, 몸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언제 왔느냐는 연우의 물음에 멀어지는 이성의 끄트머리를 겨우 붙잡았다.

사림이 꾸민 일이었다.

연우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역력하게 나타났다.

뽀얀 얼굴이 석류처럼 발갛게 익어 있었다.

그녀가 돌아서 있으라고 했으니 계속 그렇게 있어야 했다.

한데 순간적인 충동 때문에 그녀를 봤고, 결국 이런 사태가 왔다.

풍겨오는 살 내음에 머리가 아찔했다.

그의 모든 감각을 깨움과 동시에 겨우 붙잡고 있는 이성을 마비시켰다.

연우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 납작한 배를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새로운 세상에 있는 기분.

몽롱한 이 기분이 싫지 않았다.

눈을 뜨자 그녀의 쇄골이 보였다.

할짝. 물방울이 맺혀 있는 그곳을 향해 혀를 내밀어 핥았다. 귀하디귀한 감로수였다.

연우가 흠칫 놀랐다. 안고 싶다. 정말 안고 싶어 죽을 거 같았다.

“죽을 거 같습니다.”

“네?”

“그대를 안고 싶어서 죽을 거 같다고 했습니다.”

숨을 크게 쉬는지 그녀의 어깨가 들썩였다.

“지금이요?”

“지금이라고 하면 허락해줄 겁니까?”

“허락은 우리가 처음 만난 날 했잖아요.”

“그랬나.”

“항상, 언제나…… 당신에게는…… 허락해요.”

부끄러워하고 있지만, 단단히 각오한 음성이었다.

그녀는 늘 이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휘타의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다.

그리고 쐐기를 박는 말.

“저는 괜찮아요.”

그 말이 그의 가슴에 박혔다.

전남편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울 텐데, 자신을 지키고 싶은 간절함에 하는 허락이었는데.

나는 겨우 약으로 인한 욕구를 해소하고자 그녀를 안고 싶다 말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휘타는 머리로 상상하며 연우를 탐했던 것보다 더 미안해졌다.

그녀의 몸을 돌려세웠다.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본다.

“오늘은 아닙니다.”

“왜요?”

“오늘은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연우.

“날이 더 좋을 때, 그때를 기다리겠습니다.”

휘타가 미소를 짓자 따라서 웃는 연우를 안았다.

문득 그가 연우를 안고 있던 한 손을 들어서 봤다.

단희를 만진 손이었다. 단희뿐만 아니라 다른 기생도 만졌다.

그러고 와서 이대로 연우를 안을 생각을 했다니.

아주 몹쓸 놈이 된 것 같아 다시는 이러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는 그의 귓가에.

“좋아해요.”

조심스러운 고백이 들려왔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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