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뒤돌아보지 마.
2018.02.09.
아침.
연우가 눈을 떴을 땐, 자신의 방이었다.
언제 잠든 지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휘타와 합주를 하고 그가 따라준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며 의미 없는 대화를 한 것까지도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의 기억이 없었다.
밖에서 사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기침하셨어요?”
“응. 들어와.”
사림이 팔에 수건을 걸치고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들어왔다.
“내가 가서 할게. 가져올 필요 없어.”
“이 정도는 제가 해드려야지요.”
“불편해서 그래. 멀쩡한 두 다리가 있잖아.”
“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탁자에 대야를 놓은 사림이 손을 모으고 서서 연우를 바라봤다. 어서 와서 씻으라는 뜻이었다.
가져온 사림의 정성이 있어 오늘만은 그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다 씻은 연우가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휘타 님이 무슨 말씀 없으셨어?”
어젯밤 휘타에게 일을 달라고 청했으니 무슨 말이라도 전하지 않겠나 싶었다.
“오늘부터 아가씨께서 할 일은 휘타 님의 방 청소와 매일 입을 옷을 직접 골라서 가져다 두시면 됩니다.”
“휘타 님의 방?”
휘타가 그 공간을 벗어날 수 없도록 묶어둔 느낌이었다.
“고생 좀 하실 거예요. 휘타 님…….”
사림이 연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깔끔하기가 말도 못 해요. 먼지가 있는 꼴을 못 봐서 일하는 사람을 잡으십니다.”
“정말?”
“모든 면에서 그러시는 건 아니고요. 방만 그래요, 방만. 먼지 쌓여 있는 거 싫어하시고 특히, 위치 바꾸는 거 제일 싫어하세요.”
“알았어. 명심하고 있을게.”
물건 위치는 손대지 않으면 되고 먼지는 부지런히 쓸고 닦으면 될 일이라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사림이 연우 뒤에 서서 머리를 빗겨줬다.
“오늘 가족분들 만나러 가셔도 됩니다.”
“언제?”
“가족분들과 점심 드시고 오세요. 제가 모실게요.”
생각보다 빨리 만날 수 있게 된 연우는 설렜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이번엔 내 걱정을 하셨으려나.
기대감에 휘타랑 하는 아침 식사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
“아가씨, 전 여기서 기다릴게요.”
몇 걸음만 걸어가면 가족이 사는 집이었다.
사림과 같이 들어가 그녀를 식구들에게 소개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사림이 연우만 들어가라고 한다.
“밖에 너 혼자 세워두는 건 아니지. 같이 들어가.”
“다음에 기회가 되면요. 다들 정신없으실 거 아니에요.”
연우는 단칼에 거절하는 사림에게 더는 권할 수 없었다.
“알겠어. 그럼 먼저 성에 가 있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천천히 볼일 보시고 나오세요.”
“늦을 수도 있잖아. 먼저 가.”
“제가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점심까지 드시고 느긋하게 나오시면 됩니다.”
“넌?”
사림은 한사코 괜찮다며 자기는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옥신각신하다 결국 연우가 졌다.
하는 수 없이 사림을 남겨둔 채로 집으로 갔다.
“서우야!”
대문을 밀고 들어가며 연우가 외쳤다.
“엄마! 아빠!”
드르륵. 방문이 열리며 가족이 얼굴을 내밀었다.
“언니!”
서우가 먼저 마당으로 뛰쳐나오자 그 뒤를 그녀의 부모가 따랐다.
“와아. 언니 좋은 옷 입었네?”
부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음성의 서우가 연우 주변을 돌며 옷 구경을 했다.
“세상에. 이건 또 뭐야.”
서우가 팔을 들어 연우의 머리에 꽂아진 장식을 매만진다.
“서우야, 언니를 봤으면 잘 지냈느냐고,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게 먼저지.”
미소를 머금은 아빠가 어서 오라며 연우를 안아줬다.
당연한 거겠지만, 모두 무사해 보여 안심이었다.
연우는 장대 위에 매달려 있던 가족의 얼굴이 아닌 이렇게 살아있는 모습을 대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보기에도 잘 지내는데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죠.”
연우의 엄마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하며 서우가 그랬던 것처럼 큰딸의 행색을 뜯어봤다.
“혼자 잘 먹고 잘사나 보구나. 우리는 다 쓰러져가는 이런 곳에 처박아놓고.”
허름한 집이 아니라 지하계의 흔한 집이었다.
물론 예전에 살던 아파트나, 이곳의 성과 비교할 바는 못 됐다. 개인적으로 재물을 모은 사람들의 집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빈손으로 온 사람들에게 이만한 집은 좋은 편에 속했다.
연우의 엄마. 현옥은 원래 딸들에게도 살갑지 않았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 여느 엄마와는 달랐다.
우리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과 다르나, 하고 원망을 한 적도 있으나 지금은 한 개인으로 엄마를 인정한다.
“근데 빈손으로 왔니? 넌 그렇게 차려입었으면서?”
“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제 수중에 뭐가 없어요. 다음에는 가지고 올게요. 오늘은 잘 지내시는지 얼굴만 뵈러 온 거예요.”
엄마가 오해할 만도 했다. 가족에 비해 지나치게 화려한 복장이었다.
수수한 옷으로 입고 오는 건데 내가 잘못했다.
“들어가자. 어찌 지내는지 얘기는 들어봐야지.”
돌아서는 제 엄마를 보며 연우가 씁쓸하게 웃었다.
엄마가 원래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기로 했어도, 매번 보는 모습이어도 가끔 서운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 그랬고.
하루아침에 상황이 바뀌었다.
사고가 났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세계에서 딸을 모르는 남자에게 맡기고 며칠 만에 보는 거였다.
걱정하는 눈길,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도 어려운 건가.
그런 연우의 마음을 눈치챈 아빠가 다가와 딸의 어깨를 감싸 안아줬다.
“네가 이해하렴. 지금 스트레스가 최고치거든.”
이해는 한다.
자신이야 이 상황에 적응되어 받아들 수 있지만, 처음인 가족에겐 황당하고 막막한 일이었다.
연우는 엄마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조용히 삼켰다.
*
“그럼, 그 남자 밑에서 일하는 거야?”
서우가 눈을 반짝였다.
“그 남자는 자기 밑에서 일하는 사람에겐 언니처럼 입혀줘?”
“어? 어.”
연우는 기생들을 떠올렸다.
휘타가 본인 밑에서 일하는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니지만, 그중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생들은 그렇게 해주니까.
“언니, 나도 성안에서 일하면 안 돼? 여기는 직접 먹을 걸 구해 와야 해. 이것 봐봐.”
제 손바닥을 쫙 펼쳐 보이는 서우.
“딱 한 시간 동안 벼를 벴는데 이렇게 됐어.”
작은 물집이 잡혀 있었다.
“이런 것도 해본 사람이나 잘하는 거지. 엄마랑 아빠는 그런다 치지만 아가씨 손이 이럼 되겠어?”
울상을 지은 서우가 제 언니의 팔에 매달렸다.
“언니. 나도 말 좀 해주라. 응?”
“당장은 어렵고 나중에 기회 봐서 부탁해볼게.”
“역시 우리 언니 최고!”
서우가 좋다며 연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연년생으로 태어났어도 막내로 자라서인지 서우는 연우보다 애교가 많고 어리광을 피우기도 했다.
지켜보고 있던 엄마가 서우를 떼어내며 물었다.
“널 데려간 남자는 일 시키려고 그랬던 거라니?”
“네.”
“무슨 일 하는데?”
그저 휘타와 대화를 나누고 금(琴)을 켜는 것이 전부지만,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렇게 보내고 있다 해도 다른 목적이 있는 건 분명했다.
“청소나 옷 정리 같은 잡다한 일이요.”
“언니, 청소해?”
서우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응. 여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거밖에 없어.”
“청소는 싫은데…… 물 손대고 하다 보면 물집 생기고 그럴 거 아니야. 집에 있는 거랑 뭐가 달라.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데, 가서 일하려면 손을 아껴야 하잖아.”
연우는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서우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어떻게 이야기해줘야 하나.
첫 번째 삶에서는 연우도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었고, 두 번째 삶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서우에게 알려줬다.
받아들이지 못한 서우는 넉 달 가까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연우는 이번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스스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편이 더 좋을 듯싶었다.
“배울 만큼 배운 애가 잡다한 일을 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 설명은 들었는데, 도무지 납득이 안 돼.”
현옥이 골치 아픈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예민한 성격의 엄마가 몸져누울 법도 한데 병이 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우, 또 어지럽네. 난 누워야겠다. 연우 넌 잘 가고. 다음에 또 보자.”
연우가 한쪽에 이불을 폈다. 엄마가 눕자 이불을 덮어주고 또 오겠다는 말을 한 뒤 방을 나왔다.
배웅을 나온 아빠와 서우가 연우를 달랬다.
“네가 이해해라. 나도 힘든데 네 엄마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더 힘들겠지.”
“네. 전 괜찮아요.”
“좀 나아지면 다음에 와서 하룻밤 자고 가.”
“네. 그럴게요.”
아빠에게 억지로 웃어 보인 연우가 서우의 손을 잡고 부탁했다.
“너도 어렵겠지만 엄마 신경 좀 쓰고.”
“응. 알았어. 언니 자주 와.”
아쉬워하는 서우의 눈이 연우의 머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연우가 제 머리에서 장신구를 빼서 서우에게 줬다.
“가져.”
“진짜? 진짜 나 주는 거야?”
“응.”
서우에게 주고 나니 제 것이 아님을 깨닫는 연우.
그녀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어느 것 하나 연우 것은 없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휘타에게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전에 받는 것에 대한 값을 치르는 게 먼저였다. 염치없는 사람이 될 뻔했다.
장신구값은 일해서 갚아야겠다.
그런 언니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서우가 신이 나서 머리에 장신구를 꽂았다.
“아빠, 나 어때? 예뻐? 언니 나 예뻐? 청소는 싫어도 이런 걸 받는다면 할 만하네.”
“응. 잘 어울려. 난 이만 갈게. 아빠, 저 가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빠가 안타깝게 바라봤다.
“또 와.”
“언니, 잘 가!”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서우나 아빠나 연우에게 오라고 하지만 같이 살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다. 늘 겉도는 기분.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나 연우는 느끼고 있었다. 가족이 자신과는 거리를 둔다는 것을.
사고 이후, 슬럼프에 빠져 집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든 장본인이 자신이라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그때가 언젠데 아직 이러는지.
미안해서 많이 노력했는데 변하지 않는다.
엄마야 원래 그렇다지만 서우나 아빠마저도 멀어져 가끔은 서글펐다.
같이 살고 싶은데. 이 집에서 함께 살면 안 되는 건가.
효조를 절대 만날 일이 없는 성 밖이 훨씬 낫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휘타가 완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 전까진, 남아 있는 불안함이 모두 사라지기 전까진, 가족과 살고 싶은 마음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
연우가 집에서 나오자 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사림이 뛰어왔다.
“아가씨, 왜 벌써 나오셨어요? 점심 드시고 오시지.”
“엄마가 편찮으셔서. 너 밖에 있는 것도 걸렸어. 안에서 나만 먹는 것도 그렇잖아.”
“전 괜찮다니까요. 그럼 이왕 외출하셨으니 저랑 시장가요.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요.”
사림이 연우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예전에도 사림과 시장에 온 적이 있었다. 지상의 시장과 다르지 않았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사는 손님들의 대화가 섞여 시끌벅적하다.
여기저기서 음식을 굽고 끓이고 지지는 냄새가 진동했다.
가족을 만나고 와서 가라앉은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아가씨, 이것 보세요!”
사림이 연우에게 팔짱을 꼈다.
그녀가 가지각색의 장신구가 있는 어느 좌판 앞으로 데려갔다.
“이 팔찌 예쁜 거 보세요. 어? 이거 화실로 만든 거예요?”
“물건 볼 줄 아네. 그거 오늘 새벽에 만들어서 가지고 나온 거야. 우리 아들이 어제 그거 채취하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목숨 내놓고 하는 거 알지? 실로 뽑아내는 것도…….”
아주머니의 설명이 줄줄이 이어졌다.
화실은 커다란 불구덩이 안에서 채취할 수 있는 나무뿌리였다.
까맣기만 한 뿌리의 재를 손바닥으로 비벼서 벗겨내야 한다.
식었을 때 하면 색이 곱지 않기 때문에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뜨거웠을 때 손바닥으로 비벼야 하는데 그 때문에 대부분 손에 화상을 입었다.
그렇게 고생 끝에 선명한 파란 빛의 실이 나온다.
지하계 사람들은 푸른 하늘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그와 같은 색을 굉장히 선호했다.
“이것 봐봐. 하늘빛을 닮았지?”
아주머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정말 그렇네요. 아가씨 보시기엔 어때요? 예쁜가요?”
“응. 그렇네.”
공이 많이 들어가서일까.
예쁘다. 지상에서도 보기 힘든 영롱한 빛을 낸다.
연우 역시 파랗게 갠 하늘에 대한 열망이 있어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수중에 돈이 있다면 사림에게 하나 사주고, 나도 하나 가질 텐데.
“아주머니, 이거 얼마예요?”
사림이 대뜸 물었다.
연우가 알기로 사림도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값이 나간다는 건 알고 있지?”
“암요.”
사림이 자신 있게 답했지만, 아주머니 입에서 나온 금액은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다.
“오늘만 날인가요? 다음에 사러 올게요!”
주먹을 쥔 사림이 당당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둘이서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러 위에서 음식을 넣어달라는 신호가 왔다.
“아가씨, 부침 좋아하시죠? 기름에 지글지글 부친 거요.”
부침, 튀김 등 기름에 요리한 음식은 다 좋아하는 연우였다.
언제 사림에게 말한 적이 있었나.
“어떻게 알아?”
“아가씨 얼굴에 쓰여 있어요. 저도 좋아해서 알아볼 수 있답니다!”
사림이 오늘은 자기가 사겠다고 하며 먹고 싶은 것 다 말하라고 한다.
그녀가 아는 가게가 가까워져 오는지 고소한 기름 냄새가 연우의 코에도 맡아졌다.
지하계에 오고 지금이 최고로 식욕이 돋는 순간이었다.
막 가게 안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이게 누구실까?”
곱게 차려입은 무리가 앞길을 막았다.
기름 냄새를 막는 분향에 코를 막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화장품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전모 아래로 늘어진 너울을 들어 올리자 나타난 얼굴은 단희였다.
그녀 뒤에 있는 여자들도 기생인 모양이다.
“가던 길 가시죠.”
사림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그럴 거야. 어딜 가려던 참이었어? 여기? 냄새는 나는 이 집?”
검지로 코 밑에 대며 인상을 쓰는 단희.
그녀가 연우를 위아래로 훑었다.
“아가씨, 이런 음식을 드세요? 휘타 님은 음식 냄새 싫어하세요.”
“휘타 님이 싫어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못 먹나요. 가자, 사림아.”
이번엔 연우가 사림의 손목을 잡아 끌어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휘타가 싫어한다고 먹고 싶은 것도 참는가 보구나.
사림이 음식을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부침이 나왔다.
휘타와 먹을 때도 기름에 조리한 음식이 있었는데 이것과는 달랐다.
너무 고급스러운 기름을 써서 그러나. 고소함이 훨씬 덜 했다.
겉은 바사삭 부서지고, 안은 부드럽다.
“맛있죠?”
대화할 틈도 없이 젓가락질을 하고 있자 사림이 흐뭇한 눈길로 바라봤다.
“응. 맛있다.”
배부르게 먹고 나와 소화 시킬 겸 시장 구경을 더 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시장 골목의 끝에 다다랐다.
중앙과 달리 끝은 조용하고 상인이나 손님이 많지 않아 한적했다.
조금 스산한 기운이 돌기도 했다.
서둘러 가려는 때.
“예쁜이들. 우리랑 놀지 않을래?”
장정이 넷이 그림자를 만들며 연우와 사림을 붙잡았다.
사림이 옆으로 비켜갔다.
“바빠요.”
연우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사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사내들은 또다시 연우와 사림의 앞에 섰다.
“에헤이. 안 바빠 보이는데 뭘.”
“바쁘다고요! 비키지 않으면 소리 지를 거예요!”
사림이 고함을 쳤다. 연우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들었어? 소리 지를 거래.”
남자들이 비웃었다.
“비키라고 했지.”
연우가 사내를 노려봤다.
“안 비키면?”
“후회할 거야.”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 연우 자신도 모른다.
다만, 그들에게 겁먹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보내달라고, 살려달라고 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은 빌어도 본인들 뜻대로 할 거니까.
효조를 보며 충분히 깨달았다.
“이 계집이 구미를 당기게 하네.”
남자가 연우에게 성큼 다가서자 뒤에 있던 다른 사내가 말했다.
“적당히 희롱만 하랬잖아.”
“알게 뭐야. 처음부터 그럴 생각도 없었어. 넌 나랑 가자. 너희는 이 못생긴 애 좀 잡고 있어.”
둘을 떼어 놓기 위해 다른 남자가 사림을 붙잡았다. 사림이 비명을 질렀다.
“아가씨! 아가씨!”
“사림아! 사림아! 이거 안 놔!”
퍽! 별안간 연우를 잡고 있던 사내가 떨어져 나갔다.
그녀가 한 게 아니었다.
놀란 연우가 뒤를 돌아보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차갑다.
“뒤돌아보지 마.”
“…….”
“놀라서 까무러치고 싶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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