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마음을 건 내기
2018.01.30.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
꿈에서 봐도 끔찍해서 진저리치게 되는 얼굴.
모르고 본다면 인상이 강할 뿐, 잘나게 생긴 남자였다.
장공의 인성까지 닮았다면 좋았으련만, 효조는 제 아버지의 얼굴만 빼닮았다.
미친 붉은 곰. 또는 잘생긴 미친놈.
성안의 사람들이 쉬쉬하면서 부르는 효조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그는 그 이름에 맞게 정말 미친 게 맞았다.
내키는 대로 흥청망청 사는 건 기본,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했다.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일평생 노력한 장공이 잘못한 건 딱 하나였다.
바로 아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것.
후에 이 미친 아들이 권력을 쥐게 되며 지하계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고 만다.
차라리 장공이 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아들만 잘 키웠더라면 연우는 물론이고 지하계는 평탄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연우는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를 안타까워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효조에게 어떤 대답을 할지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머릿속이 텅 비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놀랐나 보군.”
효조가 연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내민 손을 잡아야 하는 게 맞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연우에게 득이다.
단단히 마음을 붙잡은 연우가 효조의 손을 잡자 그가 힘을 주어 끌어올렸다.
“그러게 날 보고 왜 피해.”
“피, 피한 게 아닙니다.”
“누굴 바보로 아나. 날 보자마자 뒤돌아서 달려갔잖아.”
“정말, 정말 아닙니다. 생각 없이 걷다가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간 것뿐입니다.”
효조는 믿지 않는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려 비릿하게 웃었다.
“네가 정말 아니라니 그렇다 치고. 누구냐.”
그가 연우의 차림을 살펴본다.
그녀가 들고 있는 옷과 장신구도 확인했다.
그의 눈길이 닿는 자리가 역겹다.
인두로 그의 이름을 새겨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 그랬다간 일이 커지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연우는 효조에게 이름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 저는 휘타 님의…….”
“휘타의 기생인가? 기생이 입는 옷이 아닌데?”
“아니요. 기생이 아니라 하녀입니다.”
효조가 뒷짐을 지고 연우 주위로 한 바퀴 돌았다.
“하녀가 입는 옷도 아니지.”
“밤 시중을 드는…….”
“뭐?”
몸을 뒤로 젖힌 효조가 목청껏 크게 웃었다.
가슴까지 들썩이며 한참을 웃은 그는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네가 그 아이로구나. 지상에서 오자마자 휘타가 취했다는 그 아이. 휘타 녀석 고자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게야. 그래. 어떻든? 만족스럽든?”
미친놈.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효조는 연우가 고개를 숙이자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그녀를 올려봤다.
“기생들은 죽어도 안지 않는다더니. 넌 왜 안았을까?”
묻는 음성의 끝이 느려지다가 가라앉는다.
연우는 이 음성을 기억하고 있었다. 광기가 묻어나오는 목소리.
뚫어지게 보고 있는 붉은 눈동자에도 그 기운이 서렸다.
심기가 불편하면 나오는 목소리라 그녀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조심조심 걷는 기분이었다.
조금만 그를 거슬리게 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숨을 죽였다.
“너의 어떤 점이 그리도 끌렸는지 나중에 휘타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너도 내게 알려주려무나. 휘타가 밤에는 어떠한지. 아주 궁금하거든.”
자리에서 일어나며 효조가 말했다.
“다음에 또 보자.”
효조가 연우를 지나쳐가자 서로의 옷깃이 스쳤다.
그것만으로도 연우는 오한이 난다.
그가 말한 다음이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오늘은 이대로 갈 생각인 모양이다.
멀어질 때까지 안심할 수 없어 그 자리에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멀어지던 걸음 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너.”
등 뒤에서 묻는 효조의 음성에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에게 이름을 알려주고 싶지 않지만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 연우…… 라 합니다.”
“연우. 좋은 이름이네.”
그 말을 끝으로 효조가 자리를 떠났다.
그의 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제야 연우는 안심할 수 있었다.
힘이 빠진 몸을 벽에 기대며 조금 전 자신을 책망했다.
한심하게 효조를 보고 얼어붙었다.
대꾸를 제대로 했는지, 그의 눈을 똑바로 봤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다.
효조와의 만남은 달라졌어도 그는 그대로였다.
연우 자신도 그대로였다.
*
휘타의 방에 도착한 연우는 머리가 멍했다.
그뿐만 아니라 온몸이 저리고 욱신거려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겠다.
현기증이 느껴져 하는 수 없이 침상에 몸을 뉘었다.
푹신한 요에 몸이 파묻히고 베개에서 좋은 향이 올라와 코끝에 머물렀다.
여전히 몸이 욱신거리기는 했지만, 마음이 안정을 되찾고 현기증도 가라앉았다.
“살 것 같다.”
주인도 없는 방, 남의 침상인데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연우에게 이 방은 마치 성역 같았다. 적어도 지금은 효조가 접근하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영원한 성역은 아니다.
미약하나 분명 무언가가 그를 거슬리게 했고, 성격상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있다.
저 문을 당장 박차고 들어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또 헤어지기 전, 그가 이름을 물어본 것도 찝찝했다.
차라리 효조가 장공 옆에 있었더라면 덜 당황했을 텐데, 안심한 뒤 등장한 그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필이면 왜 피하려는 순간 맞닥뜨린 걸까.
한편으로는 어차피 만나게 될 거 잘된 건가 싶기도 하다.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고 하지 않은가.
연우는 그를 보자마자 주저앉은 제 모습이 떠올라 화가 났다.
두 번이나 효조 때문에 망가진 인생이었다.
죄인은 연우가 아닌 효조였다. 겁을 먹고 떨어야 하는 사람은 그녀가 아닌 그였다.
왜 내가 이래야 하는 거지? 왜 나만 이래야 하는 거야.
다시 주어진 삶을 또 효조 같은 놈 때문에 암울하게 보낼 수 없다. 그러기 싫었다.
휘타의 그늘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없는 사람처럼 살려고 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시 효조를 만난다면 그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처럼 하지 않으리라.
똑바로 마주 보고, 떨지도 않으리라.
물론 그에게 복수 같은 위험한 시도를 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 효조가 가질 권력이 얼마나 크고 위험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효조는 그대로여도 상황이 변했다.
*
“흠.”
연우는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팔짱을 낀 휘타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머리 뒤로 천장이 보인다.
그제야 무슨 일인지 깨달은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죄송해요. 잠시 쉰다는 게……”
누워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장공 님을 뵈었던 자리가 어려웠나 봅니다. 더 쉬십시오.”
서둘러 침상에서 내려오려는 연우의 어깨를 휘타가 다시 밀었고, 그에 힘에 밀려 뒤로 눕고 말았다.
“많이 쉬었어요.”
“더 쉬어야 할 듯한 얼굴입니다.”
몸을 일으키는 그녀를 휘타가 또 밀어 눕혔다.
그러더니 옆에 걸터앉는다.
“아주 곤히 자던데요.”
“언제부터 계셨어요?”
“글쎄요. 얼마나 됐으려나. 사림이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두 번 다녀갔습니다.”
“깨우시지…….”
“말했잖습니까. 그대가 곤히 자고 있었다고.”
“감사해요. 근데 이제 일어나고 싶어요.”
휘타가 이번엔 일어나는 연우를 내버려두었다.
그녀가 침상에서 내려올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고,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사림에게 저녁을 준비하라고 할까요?”
“입맛이…… 네. 먹어요.”
입맛이 없어서 안 먹겠다고 하려다 생각을 바꿨다.
지하계에서 제대로 살기 위해선 힘을 내야 하고, 힘을 내기 위해선 입맛이 없어도 먹어야 한다.
건강한 사람도 습도가 높고 더운 이곳에선 적응하기가 힘들어 없던 빈혈도 생기고 허약해졌다.
효조 앞에서 다리에 힘이 풀린 건 체력 때문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다시 만나게 될 그 앞에서 마음이 두려울지언정 힘으로라도 버티고 싶었다.
그 앞에서 주저앉는 일 따위, 죽어도, 두 번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
휘타와 식사를 하기 전 불편한 옷을 갈아입기 위해 그가 마련해준 방으로 갔다. 바로 그의 옆에 있는 방이었다.
그가 거처하는 곳만큼 잘 꾸며졌다.
커다란 거울. 두 사람이 눕고도 남을 커다란 침상.
옷이 걸려있는 옷걸이와 가림막.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탁자. 딱 봐도 정성스레 만든 가구들이었다.
연우는 의문이 생겼다.
이건 말이 하녀지 대우는 하녀가 아니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그렇고, 이 방도 그렇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걸까.
단순히 나를 취하기 위해서?
휘타의 기생은 연우보다 훨씬 빼어난 외모와 몸매를 가졌다.
여자를 원했다면 그가 손만 뻗어도 걸릴 여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나지?
사림과 효조의 말을 취합해 보자면 휘타는 아직 여자와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기생들에겐 몸이 동하지 않는 건가.
연우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꼼꼼히 뜯어보고 고개를 저었다. 남자를 홀릴 만한 외모가 아니다.
맞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머리카락.
세 번째 삶이 시작되면서 머리카락 색이 변했다.
염색 때문에 빛이 나지 않지만, 처음엔 빛이 나고 있었다. 휘타는 그걸 신기해했고.
빛이 나는 머리카락 때문에 자고 싶어 한 거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는데.
연우가 이유를 생각하며 머리의 장식을 빼려고 했을 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저 사림입니다!”
“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민 그녀가 총총거리며 들어왔다.
“도와드리려고 왔습니다. 이게 혼자 벗으려면 영 고역이거든요.”
“고마워요. 근데 정말 ‘아가씨’라는 호칭 바꿀 생각 없어요?”
“아가씨를 아가씨라고 불러야죠. 연우 님이라고 할까요?”
“아니요.”
사림이 늘 ‘연우 님’이라고 불러 그게 더 친숙하게 다가왔으나, 지금은 그때랑 신분이 달랐다.
사림이 겹겹이 입었던 옷을 벗겨 바닥에 차곡차곡 개어 쌓았다.
옷걸이에 걸린 옷 중 하나를 가져와 입혀준다.
직접 입으려 해도 사림이 한사코 본인이 하겠다고 우겼다.
연우는 저를 아가씨라 부르는 사림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그녀에게 직접 물어봤다.
“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사림 씨, 라고 할 수도 없고.
“사림아, 하고 불러주세요.”
“그렇게 부르면 말을 놔야 하잖아요.”
“말도 편하게 하시면 되죠.”
사림의 붙임성이 이리 좋았던가 싶다.
연우는 두 번의 삶을 사는 동안 사림과 함께했기에 그녀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우가 몰랐던 사림이 있었던 모양이다. 낯가림이 심하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할까? 사림아?”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우와! 좋습니다. 아가씨!”
사림이 손뼉을 쳐가며 좋아했다.
“고마워. 덕분에 여기 생활에 적응하기가 더 수월할 거 같아.”
“말씀만 하세요. 제가 다 도와드릴게요.”
“그래. 혹시 목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효조를 만나 긴장한 탓에 땀을 흘려 몸이 끈적이는 느낌이었다.
연우도 씻는 장소가 어딘지 알고 있지만 혼자 함부로 드나들 처지가 아니라 사림에게 물었다.
“그러잖아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요.”
사림이 연우의 허리 매듭을 묶다가 그녀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밤에 휘타 님 목욕을 도와드려야 합니다.”
“내가?”
“네. 아가씨가요.”
남들이 보기에 어떻든 연우는 휘타의 하녀로 들어왔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휘타 님의 목욕을 도와주는 일과 내가 목욕하는 게 무슨 상관인데?”
“도와드리며 같이하시는 것도 좋을 듯해서요.”
“말도 안 돼.”
“휘타 님도 은근히 바라시는 눈치던걸요?”
연우가 사림을 살짝 째려보다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사림이 그냥 하는 말인지 휘타가 정말 그런 눈치를 보였는지 알 수 없지만, 얼굴이 화끈거려 손으로 부채질했다.
휘타나 사림이나 유별난 구석이 있다.
*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그대가 했던 제안을 생각해봤습니다.”
휘타가 숟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알고 싶으면 해보세요. 제가 휘타 님을 완벽하게 믿을 수 있도록.
완벽하게 믿을 수 있게 해보라는 연우의 제안을 생각해봤다는 것이다.
그녀는 고려해 보겠다는 휘타의 말에 거의 포기했었다.
거절이나 다름없다 여겼고,
그런 그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휘타가 빙그레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못 미덥죠? 내가.”
역시 그는 연우가 그런 제안을 한 의도를 알고 있었다.
“꼭 그렇다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연우의 말끝이 흐려졌다.
“날 믿기 힘든 것도 사실이긴 할 테죠.”
“…….”
연우는 자신의 속내를 꿰뚫고 있는 그에게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그대가 날 완벽하게 믿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
“그대도 해보십시오.”
“뭐를요?”
“내가 그대에게 빠질 수 있게.”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연우의 눈꺼풀이 빠르게 깜박였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죠. 우리가 처음에 했던 이야기 기억납니까? 내가 그댈 지켜주면 그대는 그 대가를 치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시중을 들기로 했잖아요.”
그것도 잠자리 시중을.
“거래를 정정하겠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믿음을 주는 대신, 그대는 내게 사랑을 주는 겁니다.“
연우는 휘타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사랑은 당신의 기생들에게서 찾지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사랑이라는 게 주고 싶다고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이라는 게 뜻대로 되는 거라면 이미 효조에게 줬을 것이다.
맞다. 나도 휘타에게 믿음을 달라고 했지.
믿음도 마음인 것을.
연우가 한숨을 쉬며 휘타를 바라봤다.
돌이켜보니 먼저 제안을 하는 쪽은 늘 연우였고, 휘타는 그녀에게 같은 것을 바랐다.
연우가 자신의 ‘몸’을 들이밀었을 땐, 그도 그녀의 ‘몸’을 원했다.
이제 ‘마음’을 달라고 하니 그 역시 ‘마음’을 달라고 한다.
그래도 차라리 같은 ‘믿음’이면 좋으련만. 사랑은 어렵다.
연기를 잘하면 시도라도 할 텐데, 잘하지도 못하고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러자, 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휘타 님. 사랑이란 건 자연스럽게 생기는 마음이에요. 노력한다고 되지 않아요.”
“될지 안 될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도 왜 제게 그런 걸…….”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를 안을 생각입니다.”
“제가 휘타 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절 안으세요.”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는데 일을 복잡하게 만든 이유를 모르겠다.
하긴 복잡하게 만든 시초는 연우 쪽이었다.
휘타가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천으로 입을 닦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양 팔꿈치를 탁자에 올리더니 깍지를 끼고 연우를 응시했다.
연우는 그의 금색 눈동자를 마주하게 되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시선을 회피했다.
“그대가 나를 무서워 않는다고 하지만, 전 남편과 보낸 밤의 기억으로 그 일 자체는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물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 나아질 거라 여겼어요. 그럴 생각이기도 했고요. 한데 기다리기 싫어졌습니다.”
“만약에 뜻대로 안 되면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고.”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연우에게 그가 한마디 더했다.
“난 자신이 있는데.”
“이건 내기가 아니잖아요!”
연우가 언성을 높였다. 자신이 있다니.
도발하는 듯한 그의 말이 거슬렸다.
“내기도 재미있지요.”
도발하는 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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