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연회 (1)
2018.01.19.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제법 부드러웠다. 미끄러지듯 턱을 잡는 손이 제법 따뜻하였다. 엷은 미소와 눈빛이 제법 다정하였다.
이래서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났던 걸까 싶을 만큼.
두 번의 삶을 사는 동안 이곳 지하 세계에서 연우에게 저런 눈빛을 보여주는 이가 없었다.
효조의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나오면 모두 그녀에게 동정을 보내기보다 피하기에 바빴다.
하녀들도, 사림마저도 효조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그녀의 옆에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그들을 원망하진 않았다.
연우와 잘못 엮였다간 효조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그러는 것이라 이해했다.
그래도 외로웠다.
고통으로 욱신거리는 몸을 웅크리고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할 때면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통증보다 어두운 밤, 그녀의 곁을 맴도는 외로움에 더 힘들었다.
효조의 목적이 그러했다. 그녀를 철저한 외로움 속에 갇히게 하는 것.
그리하면 저를 찾으리라 믿었던 효조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연우는 외로움을 택했다. 기어이 참아냈다.
용케도 그 기나긴 시간을 버텨냈다.
지난날이 떠오른 연우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다 맞은편에서 들리는 음성에 정신을 차렸다.
“아니라는 겁니까?”
어느새 연우의 턱을 잡고 있던 휘타의 손이 떨어져 나간 뒤였다.
“아, 죄송해요. 뭐라고 하셨는지 못 들었어요.”
“그대를 정확히 무엇으로부터 지켜주길 바라는지 물었습니다. 남편입니까?”
“네.”
효조의 이름을 말할 수 없었는데, 휘타가 ‘남편’이라고 하자 냉큼 답했다.
일순간 부드러웠던 휘타의 눈이 가늘어지며 눈빛이 변했다.
곧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분명 방금 전과는 달랐다.
그가 천천히 몸을 뒤로 빼 의자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정말 남편이 맞아요?”
확인하듯 한 번 더 묻는다.
뭐가 잘못됐나. 눈치를 살피던 연우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아차. 이를 어째.
휘타가 아는 그녀는 지상에서 온 사람으로 지하계가 처음이었다.
전 남편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래서 거짓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나 하는 거다.
뭐라고 핑계를 댈까 고민하다 재빨리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사내들이요. 남편처럼 보여서 사내가 무서워요.”
“그럼, 나는요?”
“네?”
미간을 찌푸린 휘타가 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난 사내가 아닙니까?”
맞다. 휘타도 사내였지.
“그건 휘타 님이 고우시니까.”
“곱기 때문에 사내 같지 않다는 뭐…… 이런 말씀? 해서 내게 그대를 가지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고?”
연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없이 나온 말이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이번엔 휘타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의자에 기대 멀찍이 있던 그가 상체를 앞으로 당겼다.
“이봐요, 아가씨.”
왼쪽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리고 뭐라 말할 듯 부르더니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기분이 상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말없이 찻잔을 세 번 비워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젯밤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그대는 내가 어떤 사내인지 확실히 알았을 텐데 아쉽네요.”
“죄송해요.”
“그러라고 한 말은 아닙니다.”
그러라고 한 말이 아니라고 해도 휘타의 음성 속에는 여전히 뭔지 모를 불편함이 섞여 있었다.
서 있던 그가 걸음을 옮기더니 슬쩍 곁눈질로 연우를 봤다.
“연회에 갈 시간입니다. 흠. 옷을 갈아야 입어야겠는데.”
“갈아입으세요. 저는 나갈게요.”
“나가긴 어딜 나갑니까.”
“옷을 갈아입으신다고 해서.”
“그대의 처지를 잠시 잊은 모양이군요.”
탁자를 돌아 연우 앞에 선 휘타.
톡톡.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를 가볍게 두드렸다.
앉아있을 땐 거리가 있어 몰랐는데 무겁고 진한 향기가 났다.
콧속으로 훅 들어오는 향이 아닌 공기 중에 떠도는 향. 어쩐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향.
“그대는 내 시중을 드는 하녀입니다.”
방의 구석에 있는 커다란 거울 앞에 선 그가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그건 잠, 잠자리 시중만이라고…….”
“그걸 못 하지 않습니까. 다른 거라도 해야죠. 그간 사림과 함께 시중을 드는 녀석이 둘 있었는데 이젠 그대가 합니다.”
연우는 난감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옷을 갈아 입혀주는 거였다.
이곳 사람들이 입는 속옷은 너무 간단한 거던데. 설마 그것까지 하라고 하진 않겠지.
하긴 이거라도 어디인가 싶다.
설마 하던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덤덤히 받아들이리라.
그와 밤을 보낼 생각도 하지 않았었나.
“해본 적이 없어서요. 불편하더라도 이해해주세요.”
휘타의 뒤로 가서 그가 벗은 겉옷을 받아 들었다.
“저기 붉은색으로 하렵니다.”
벽에 걸려있는 몇 벌의 옷 중에 하나를 가리켰다.
그냥 겉옷만 갈아입는 거였다.
안도한 연우의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
붉은 천에 그의 눈빛을 닮은 금색의 수가 놓인 옷이었다.
그녀가 옷을 들고 오자 휘타가 팔을 양옆으로 벌렸다. 팔을 끼워주고 발뒤꿈치를 들어 어깨에 얹었다.
몸을 조금만 낮춰줘도 좋으련만 그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앞으로 돌아가 허리띠를 묶기 위해 양손을 그의 허리 뒤쪽으로 뻗었다.
마치 그를 안는 듯한 자세가 되어 민망하다. 바로 눈앞에 가슴근육이 보였다.
그나마 안에 얇은 옷을 입어 맨살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숨이 옷을 통과해 그의 살에 닿을까 또 숨을 쉬지 못하겠다.
연우는 빨리 끝내기 위해 서둘러 끈을 묶었다.
“됐어요.”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겨우 참았던 숨을 뱉었다.
묶인 허리띠를 힐끗 본 그가 머리를 저었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다시 묶을까요?”
“아닙니다. 다시 묶어봤자 더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겠지요. 좀 이따가 능숙한 이에게 부탁하겠습니다.”
매무새를 살피던 휘타가 마땅찮은 눈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보다가 돌아섰다.
“이제 갑시다.”
“어딜요?”
“연회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길 저도 가요?”
“당연한 소릴.”
“제가 왜요?”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 싫었다.
무엇보다도 그 자리에 행여 효조가 있을까 봐 겁이 났다.
지난 두 번의 삶을 살면서 효조가 휘타의 연회에 참석한 적은 없었다. 반대의 경우라면 몰라도.
하지만 그건 연우가 멀쩡했을 때의 이야기고, 지하감옥이나 수조, 또는 고문의 여파로 몸져누워있을 때 효조가 참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했던 말을 벌써 잊었습니까? 앞으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겠다고 했는데.”
“연회까지 동행해야 하나요? 전 연회에서 지켜야 할 예법도 몰라요.”
“특별히 할 거 없습니다. 그저 곁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돼요.”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내는 나 하나뿐입니다.”
휘타는 사내를 무서워한다는 연우의 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알겠어요. 저도 갈게요.”
딱히 다른 핑계를 댈 게 없어 수긍했다.
“혹 소호, 그러니까 내 옆에 있던 녀석도 무섭습니까? 아직 남자라 하기엔 어립니다만.”
연우가 소호를 본 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런 그를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휘티의 호위무사라고 하기엔 어리다는 것. 아주 심하게.
나이를 많이 먹어야 10대 후반쯤?
얼핏 열여섯, 일곱 정도 되어 보였다.
휘타의 말대로라면 그녀의 짐작대로 소호는 소년이었다.
어려도 능력이 좋은가 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휘타의 호위무사라니.
“그분은 괜찮아요.”
솔직히 소호뿐만 아니라 효조만 아니라면 누구든 무섭지 않다.
“가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그녀가 먼저 걸어가 문을 열었다.
*
휘타의 뒤를 소호와 연우, 그리고 사림이 따랐다.
가는 동안 연우는 사림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들었다.
작게는 아까처럼, 매일 휘타의 방으로 옷이 들어오면 갈아 입혀주는 것은 연우의 몫이었다.
크게는 오늘처럼 연회를 따라다니고, 그가 술에 취할 때가 많으니 잘 부축해서 데리고 오는 것 역시도 연우가 할 일이었다.
“저나 소호 님도 있긴 하지만, 휘타 님께서 그때그때 직접 명하지 않은 이상 저희는 휘타 님의 몸에 손을 댈 수가 없어요.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연우 님은 항시 가능하십니다.”
말짱한 정신이어도 저 거구를 부축하려면 힘들 텐데, 취한 몸이라고 생각하니 팔에 무게가 느껴졌다.
힘들긴 하겠지만 못 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전 어디서 자나요?”
매일, 종일 휘타와 한 공간에 있지는 않겠다 싶어서 사림에게 조용히 물었다.
“휘타 님 방이요. 밤마다 휘타 님 방으로 드셔야 합니다.”
“낮에는요? 잠깐 쉰다거나 할 때요.”
“오늘 들은 얘깁니다만, 아마 아가씨는 휘타 님 전담 하녀라서 같이 생활하실 듯해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여쭤볼까요?”
고개를 저었다. 괜히 물어봤다가 일을 그르칠라.
이럴 땐 그저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그래도 종일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기는 부담스럽다.
아주 잠시라도 혼자 있을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긴 복도를 끝을 몇 번이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연우는 경험상 상당히 큰 건물 두세 채를 건넜다는 걸 알았다.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네 개 정도의 금(琴)이 어우러져 내는 아름다운 가락은 상당히 숙련된 악공의 연주였다.
아니다. 휘타가 사내는 자신뿐이라고 했으니 악공은 아니겠다. 기생인가.
점점 커지는 소리를 따라가자 커다란 문 앞에 하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문에 가까워질수록 분 냄새와 향냄새가 진동한다.
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흘러나오던 소리가 뚝 끊어졌다.
고운 차림과 화장을 한 여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휘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기생들이었다. 연우의 예상대로 금을 켜던 이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빼어난 미색을 가졌다.
“휘타 님, 어서 오세요.”
동시에 울리는 인사.
한데 어우러진 나긋한 목소리처럼 인사하는 몸짓도 부드러웠다.
불청객인 연우에게 못마땅한 눈길을 주면서도 눈은 웃고 있었다.
그때.
“어머! 오늘은 손님이 계시네요.”
어깨가 훤히 드러난 옷을 입은 여자가 불쑥 나타나 휘타에게 팔짱을 끼며 쓱 연우를 훑었다.
“귀한 분이다.”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오늘도 단희는 여전히 곱구나.”
휘타가 단희에게 잡힌 팔을 빼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휘타 님을 위해 단장하는 거 아시잖아요.”
휘타의 명이 있지 않은 이상 그의 몸을 손을 댈 수 없다더니, 단희는 스스럼없이 그에 팔을 붙잡았다. 자주 있는 일처럼.
연우가 단희를 본 적은 없지만, 그녀가 아주 잘나가는 기생이라고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휘타와 친밀한 사이였는지는 모르겠다.
휘타와 단희가 자리를 잡고 앉자 서 있던 기생들도 자리에 앉았다.
소호와 사림은 멀찍이 섰고, 단희는 휘타의 왼편, 연우는 그의 오른편에 앉게 됐다.
멈췄던 연주가 다시 울렸다. 무복을 입은 기생들이 나와 춤을 췄다.
하늘거리는 나비 같았다. 떨어지는 꽃잎 같기도 했다.
연회 때 기생들이 이렇게 예쁘게 춤을 췄었구나.
효조와 연회에 참석하면 늘 마음이 불안해 춤을 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날이 왔다.
연우는 자신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생각되기도 했으나, 바뀐 현실에 감사한 마음이 먼저였다.
휘타 앞으로 서너 명의 기생들이 와 술을 따르고 일정 시간이 흐르면 다른 기생으로 교체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꽤 많이 마신 휘타는 아직 정신이 맑았다.
옆에서 단희가 눈웃음을 치며 휘타의 팔에 가슴을 비빈다.
“휘타 님, 아가씨께서 힘들어 보이십니다. 들어가셔서 편히 쉬라고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 아가씨.”
그제야 연우가 떠올랐는지 휘타가 몸을 돌려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술 한 잔?”
“좋아하지 않아요.”
연우가 지하계에 오기 3년 전, 그러니까 첫 번째 삶에서 지하계에 오기 3년 전이다.
작곡한 노래가 음원차트에서 1위를 해, 축하 겸 서우와 만나 쇼핑을 했다. 저녁을 먹고, 술도 마셨다.
둘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며 마시다 보니 밤이 늦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차량 한 대가 건널목을 건너는 자매를 치고 달아났다.
하필 CCTV가 없는 곳이라 뺑소니범을 잡지 못했다. 자매가 술에 취해 있어 기억나는 것도 없었다.
경상을 입은 서우와 달리 연우는 중상이라 약 1년을 병원에서 보냈다.
처음엔 의식불명. 의식이 돌아오고 나서부터는 재활치료.
퇴원하고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손가락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그날의 일은 연우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간혹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날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몸을 제대로 가누며 건널목을 빨리 건넜더라면.
만약 사고가 났더라도 취하지 않아 그 상황을 조금만 기억했다면.
소용없는 짓인 걸 알면서도 이런저런 가정을 세우며 자책하다가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만큼 손가락의 움직임이 돌아왔으나 사고의 기억 때문에 술을 멀리했다.
휘타는 연우를 향해 내밀었던 술잔을 거둬들였다.
“지루하지 않습니까?”
“전혀요.”
마음 편히 연주를 감상하는 게 얼마 만인데.
휙. 갑자기 휘타의 몸이 돌아갔다. 단희가 그를 돌려 자신을 보게 한 것이다.
연우는 대충 느낌이 왔다. 단희는 휘타를 좋아하고 있다.
그의 관심이 연우에게 가는 꼴을 못 보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휘타 님. 요즘 성 밖에서 유행하는 곡이 있는데 들려드릴까요?”
목소리가 간드러졌다.
“그래. 들어보자꾸나.”
사뿐히 걸어나가 휘타 앞에 앉는 단희.
그녀의 무릎 위로 금이 놓였다. 연주를 위해 어깨를 살짝 비틀자 더 요염해졌다.
“연인이라는 곡입니다.”
긴 손가락이 줄 위를 노닐었다.
아련한 곡조다.
다만 휘타만을 바라보며 유혹의 몸짓을 보내는 단희의 연주 자세와 곡이 어울리지 않아 아쉬웠다.
기생들 사이에서 단희의 칭찬이 터져 나왔다.
“역시 단희 언니가 잘해.”
“단희 언니의 연주를 들으면 마음이 뭉클해져.”
그러다 휘타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연우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어떻게 휘타 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지?”
“연주를 잘하나? 휘타 님이 단희 언니를 옆에 두는 이유가 금을 잘 타서라잖아.”
“에이, 말도 안 돼. 이곳에서 단희 언니의 금 타는 솜씨를 누가 따라가. 그래도 우리보단 잘 타겠지. 그렇지 않고서 저 자리에 있다는 건 말이 안 돼.”
연우는 가만히 숨을 뱉었다.
왜 그렇게 휘타 하나만을 보고 사는지.
그 예쁜 얼굴을 하고, 그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긴 여긴 연우가 살던 세계가 아니었다.
그녀도 스스로 자신을 지킬 힘이 없어 휘타에게 의지하고 있지 않은가.
할 말이 없는 입장이었다.
어느덧 연주가 끝나고 우렁찬 박수 소리가 났다.
단희의 연주 자세가 아쉽긴 했지만, 연주가 훌륭했기에 연우도 손뼉을 쳤다.
휘타 역시 기분 좋은 얼굴로 박수를 대신했다.
그가 탁자에 턱을 괴며 느른한 표정을 지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기자 기생들에게서 작은 한숨이 들려왔다.
“역시 너의 금 연주는 최고다. 말해봐. 소원을 들어주마.”
“됐어요. 매번 주셔서 넘칩니다. 오늘 연주는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한데…….”
“그래. 말해봐.”
“아가씨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어요. 아름다운 얼굴만큼 연주도 잘하실 거 같아서요.”
“아가씨의 연주?”
휘타가 연우를 봤다.
그리고 모두가 숨을 죽이고 연우를 본다.
“아니, 전…….”
연우가 손사래를 치는데도 그가 빤히 바라보았다.
해보라는 신호다.
아니라고 말했잖아.
인상을 쓰고 입을 벙긋거리며 ‘못 해요.’라고 아주 작게 말했다.
방 안에 있는 시선들이 얼굴에 꽂히는 기분이었다.
“전 연주를 못…….”
순간 연우는 휘타가 단희의 연주를 듣고 소원을 들어준다 했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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