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끝을 맺은 것이 아닌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일
2018.01.16.
휘타의 향이 훅 끼친다.
그의 결 좋은 머리칼이 연우의 목덜미 위에 자리 잡았다.
그녀가 심호흡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귓불에 휘타의 입술이 닿는 순간, 연우의 머릿속에 끔찍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효조와 보냈던 첫날 밤.
효조는 연우에게 제 것이라는 흔적을 남긴다며 온몸을 다 씹어놨다.
빈틈없이 빼곡히 채워졌던 잇자국. 통증은 말할 것도 없고 보기조차 징그러울 정도였다.
밤을 어떻게 치렀는지 모르겠고 오로지 고통과 공포의 시간으로만 각인됐다.
효조와 밤을 보낼 때마다 그랬고 그 시작은 바로 귀부터였다.
휘타가 입술만 댔는데, 말랑한 살을 콱 물던 이의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지금은 앞에 있는 사람이 효조가 아닌 휘타라는 걸 알면서도 몸이 반응한다.
괜찮아. 휘타는 효조가 아니야.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연우가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지만, 손발이 벌벌 떨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숨을 끊어놓을 것처럼 목을 죈다.
연우의 호흡이 불안정해지자 휘타가 몸을 세웠다. 그녀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것이다.
“어디 불편합니까.”
휘타의 손이 연우의 볼을 감쌌다.
“아가씨?”
부르는 소리가 귀에서 맴돌아 연우의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스르륵 눈이 감기려는 찰나 그녀가 애써 정신을 차리며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휘타가 아닌 효조가 연우를 안고 있었다.
꿈에서 봐도 그녀를 미치게 하는 사악한 웃음을 짓고서.
“이거 놔!”
연우가 효조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또 이렇게 되는 건가.
복수고 뭐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살려고 했다. 쥐 죽은 듯이, 없는 듯이, 그렇게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않은가 보다.
대체 효조와 무슨 악연이길래 매번 다시 엮이게 되는 건지.
단 한 번도 이 검은 세계에서 잘 먹고, 잘 살길 바라지 않았다. 부귀영화를 꿈꾸지 않았다.
평생 휘타의 하인으로 살아도 상관없었다. 그저 효조를 안 보고 살 수 있기를 원했다.
그를 안 보고만 살아도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작이 많이 바뀐 세 번째 삶.
달라진 줄 알았다. 운명이 바뀌었다고 믿었다.
너무 이른 안심이었던 걸까.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싫어! 놔! 놓으란 말이야!”
연우가 손톱으로 그의 손등과 팔을 헤집었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그를 밀어내고 때렸다.
“그만 좀 해!”
연우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절규했다.
“더는 싫어! 제발 나 좀 놔달란 말이야!”
한 번도 끔찍한데 세 번이라니.
세 번 모두 효조에게 먹히는 인생이 되려나 보구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의 힘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운명도 그리되나 보구나.
가혹하고 비참하다. 징글징글하다.
“아아아아악!”
진짜 싫어! 미치게 싫어!
이 지독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연우가 울부짖기를 몇 차례.
끝내 정신을 놓고 말았다.
*
쓰러지는 모양새가 거센 바람에 맥없이 꺾이는 나뭇가지 같았다.
힘없이 무너지는 연우를 받아든 휘타의 미간에 엷게 주름이 졌다.
연우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혼자 비명을 질렀다.
그와 밤을 보내기 싫어 수를 쓰는 건가 싶었지만,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연기가 아닌 실제였다.
사실 휘타는 오늘 밤 연우를 안을 계획이 없었다.
그냥 말뿐이었다. 장난이었다.
낯선 세계에 온 사람치고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이 호기심을 끌었다.
난데없이 자신을 가지라든지 지켜달라든지 하는 말들이 그의 흥미를 건드렸다.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처럼 굴다가도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여 그를 자극했다.
머리 염색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을 하러 갔을 때, 목욕 중이던 연우가 황급히 제 모습이 가리기에 급급한 모습이 재미있었다.
늘 남자를 능수능란하게 상대하는 여자들만 봐와서인지, 그런 연우가 조금 귀엽기도 했다.
방금 정신을 잃기 전, 굉장한 일을 앞둔 사람처럼 결연한 연우의 표정은 그의 장난을 더 부채질했다.
어떤 사람일까. 뭘 감추고 있는 걸까.
내가 이렇게 하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 그것이 궁금하였다.
물론 이 모든 호기심과 재미보다 더 그의 관심을 끌었던 건, 빛을 내는 연우의 머리카락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연우가 미적대는 기색이 보였지만, 스스럼없이 자신을 내어주길래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아도 경험이 있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휘타는 연우의 귀에 살며시 입술만 댔다.
오늘 밤은 그저 그의 호기심과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장난에 불과해 입술만 대었다가 끝낼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누가 봐도 남자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에 사로잡힌 여자였다.
헛것을 보고 발작하는 연우의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로 참혹했다.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진 얼굴. 파들파들 떨리는 몸. 두려움으로 공허해진 눈동자.
공포가 극도로 치달으면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 법이다. 그녀의 메마른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더는 싫어! 제발 나 좀 놔달란 말이야!’
한 번이 아닌 듯하다.
아까 말을 태우고 내려주면서도 가볍다 생각했는데 연우는 정도가 심했다.
사람이 정신을 잃으면 무거워지기 마련이지 않나. 탁자보다도 가벼웠다.
추측해보건대 꽤 오랜 시간 누군가에게 시달리며 살았지 않나 싶다.
휘타가 연우를 침상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줬다.
그대로 돌아서려다 얼굴을 덮고 있는 머리카락이 보여 옆으로 정리해주고 가만히 내려다봤다.
피부가 하얗게 변해 송장 같았다.
대체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또 그를 자극한다.
“역시 그대는…… 앞뒤가 안 맞아.”
쯧, 혀를 차고 일어섰다.
“그래도 내가 바라는 건 맞았으면 좋겠는데.”
휘타가 두꺼운 옷을 걸치며 문으로 걸어갔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열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호의 정수리가 보였다.
“사림을 불러줘.”
“찾으셨습니까?”
사림이 소호 뒤에서 쑥 얼굴을 내밀었다.
“네 방에 안 있고 왜 여기 있어?”
“오늘처럼 중대한 밤을 잠으로 보낼 수 없죠.”
사림은 도통 휘타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콩만 한 게 따박따박 하고 싶은 말 다한다.
그런데 그게 또 밉지 않았다.
일 잘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보기와 달리 입이 아주 무거워 측근으로 두고 있었다.
“한데 이를 어쩌냐. 내 너에게 미안하게 됐구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들어와서 직접 봐.”
휘타가 몸을 옆으로 비켜주자 사림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사림은 누워있는 연우에게 가서 그녀를 확인하더니 곧장 문으로 달렸다. 얼른 문을 닫고 목소리를 죽여 휘타에게 따졌다.
“어찌 된 일입니까? 아가씨 기절하신 거예요? 대체 뭘 어떻게 하셨길래 그래요?”
사림이 도끼눈을 하고 휘타를 노려봤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기생은 잘 다루시는 분이 왜 아가씨를 이리 만드셨어요? 세상에 눈물 좀 봐!”
“울어? 내가 눕힐 때만 해도 안 그랬다.”
“이 눈물을 보고도 거짓말을 하십니까?”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니까.”
휘타가 삐딱하게 서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제 턱을 긁었다.
귀에 입술을 대긴 했어도 그게 연우가 쓰러진 원인은 아니니까.
“너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뭐가요.”
휘타를 한 번 쏘아본 사림이 연우의 이마를 짚어보며 열이 있는지 확인했다.
“누가 보면 네가 그 아가씨의 유모라도 되는 줄 알겠어. 언제 봤다고 그리 애지중지하는 것이야.”
“아가씨가 휘타 님을 편하게 해주실지도 모르는 분이잖아요. 휘타 님이 편해지셔야 제가 편해지고요.”
“아, 맞다. 내가 그것 때문에 너를 불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는데, 호들갑을 떠는 사림 때문에 잠깐 잊고 있었다.
“아가씨의 견갑에 표식이 있더냐.”
사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가 희미한 흔적이 있긴 했습니다만, 점인 거 같기도 하고 불분명합니다.”
“그래?”
누워 있는 연우에게 특별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사림이 연우의 얼굴을 닦아주고 돌아섰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뭘.”
“두 분이 밤을 보내셔야 확인을 할 텐데, 아가씨를 이렇게 만들어놓으셨으니 당분간 힘들 거 아니에요.”
“난 아무 짓 안 했대도 그러네. 그리고 어차피 오늘 밤은 나도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밤을 보내는 게 확실한 방법인지도 모르잖아.”
“태평하십니다.”
휘타가 어깨를 으쓱였다.
급할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묵묵히 기다려왔는데 며칠, 설령 몇 달 더 기다린다고 해서 큰일 나지 않는다.
“됐으니 그만 나가 봐라. 밖에서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고.”
“당연하지요.”
휘타는 사림이 사라진 문을 보다가 탁자에 턱을 괴고 앉았다.
누워있는 연우가 정신을 차리려면 적어도 새벽쯤이나 될 텐데, 그동안 옆에서 잘 수도 없고 어쩐다.
멀뚱멀뚱하게 앉아서 마냥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재미없으니 오늘은 일을 빨리 시작해보련다.
어차피 해야 할 거 미리 가서 있는 것도 좋다.
옷을 갈아입은 그가 문으로 나가기 전 작은 음성으로 연우에게 속삭였다.
“편히 쉬고 있어요. 우린 뜨거운 밤을 보낸 거니.”
밖에 있는 하인들의 입을 통해 이 사실이 멀리멀리 퍼져야 했다.
그때 연우의 눈꼬리를 타고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이거 참. 신경이 쓰인다.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아줬다.
창문을 연 휘타가 고개를 돌려 연우를 한 번 더 본 후, 뛰어내렸다.
*
어디선가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연우는 까마귀 하면 자연스레 효조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젯밤에도 봤던 효조가 생각났다.
연우의 눈이 번쩍 떠졌다. 낯선 천장에 눈동자를 굴리며 여기가 어딜까 판단한 그녀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효조. 정말 효조가 있었던 거야?
고개를 돌려가며 효조를 찾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차분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휘타였다.
찻잔을 들어 보이며 싱긋 웃는 그를 보고 나니 연우는 그제야 어젯밤의 일이 생각났다.
“악몽이라도 꾼 모양입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그가 말했다.
“어젠 죄송했어요.”
“네. 김이 빠진 건 사실입니다.”
휘타에게 미안해졌다. 느닷없이 악을 쓰고 때렸으니 황당할 것이다. 화를 안 내는 게 어디야.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망설이며 곁눈질로 슬쩍 그를 봤다. 기분이 많이 상한 거 같진 않아 보였다.
“그럼 오늘 밤…….”
탁. 찻잔을 탁자에 놓는 소리가 거칠지는 않아도 신경질적이었다.
“어젯밤과 같은 일을 또 당하란 말입니까.”
“오늘은 그러지 않을 거예요.”
휘타가 답하지 않았다. 사기로 된 주전자를 들어 차를 따르며 입을 다물고만 있다.
뭐라고 말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는 침묵만 지킨다. 그가 새로 채운 잔이 다 비워질 때까지.
“또…… 앞뒤가 맞지 않는군요.”
“…….”
“귀신을 본 것처럼 무서워하면서 다시 밤을 약속하는 그대의 속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연우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 밤에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밖에 사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간단히 씻고 와서 같이 아침을 먹도록 하지요.”
“배고프지 않아요.”
침상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휘타의 눈이 좇았다.
“그럼 차를 마시던가요.”
연우는 휘타의 말대로 밖에 대기하고 있는 사림을 따라가 씻고 돌아왔다. 더불어 불편했던 옷도 갈아입었다.
휘타 앞에 마주 앉자 그가 긴 소매를 다른 손으로 잡고, 알맞은 위치에서 알맞은 각도로 차를 따라 연우 앞으로 밀었다.
하얀 자기로 된 찻잔에 엷은 주황빛의 액체가 담겼다.
연우가 입술에 살짝 대자 은은한 꽃향기가 퍼졌다. 거부감이 없는 향에 한 모금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그대는 내게 자신을 지켜달라고 청했습니다. 남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는 편입니다만, 그래도 내가 지켜야 할 여자가 무얼 두려워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우가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효조와의 일이 머릿속에 상처가 되어 휘타를 효조로 착각하는 상황이 일어날 줄은 미처 몰랐다.
진작 몇 번이고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연우 자신도 모르고 살았다.
아무리 다시 시간이 과거로 되돌려졌다고 해도 채연우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지난 두 번의 삶이 치유되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남겨졌다.
끝을 맺은 것이 아닌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일.
효조가 죽으면, 그의 시체를 확인하면 마무리가 지어지는 걸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휘타의 눈동자가 연우를 직시했다. 그는 기어이 연우에게서 이야기를 들을 기세였다.
전부 말한다 한들 휘타가 믿지 않을 것이다.
연우는 그에게 어디까지 얘기하고, 어디까지 잘라내야 할지 머릿속으로 갈무리했다.
“남편이…… 있었어요.”
그가 연우를 바라보던 눈길을 아래로 내리깔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제가 자기의 죽은 어머니를 닮았다면서 사랑한다고 했고요.”
이 얘기는 하지 말걸 그랬나. 간단하게 해도 되니 구구절절 쓸데없는 사정은 얘기하지 말자.
“잘해줬죠. 하지만 그의 부인이 되던 날, 넘어질 뻔한 절 옆에 있던 남자가 붙잡아줬는데, 그 남자와 바람이 났다며 그날 밤 매질을 했어요.”
“의처증이었네요.”
의처증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게.
“그는 제게 사랑을 원했지만, 전 그를 사랑할 수 없었어요. 어느 날은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잘해주고, 어느 날은 벌레와 쥐가 들끓는 지하에 가둬뒀죠. 가끔 물이 가득 담긴 수조에 담금질하기도 했고요.”
대충 얘기하려고 했건만, 왜 입에서 술술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연우였다.
머리가 ‘그냥 그 정도에서 끝내’라고 하는데 입이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건 처음이라서 그럴까.
휘타에게 효조의 만행을 전부 알려주고 싶었다.
효조는 폭군 정도가 아니라고. 그로 인해 한 여자의 삶이 어떻게 부서졌는지 아느냐고.
“온몸에 남편의 이름으로 낙인이 찍혔고, 그의 기분이 나쁜 날엔 과녁이 되기도 했어요.”
연우는 남의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거나 격해지지 않았다.
“…… 가장 힘들었던 건…….”
하지만 어젯밤처럼 목이 또다시 죄어온다.
“밤마다…… 강제로…….”
무거운 돌덩이가 쿵쿵 가슴을 찍어내린다. 심장이 비틀려 호흡이 힘들어지고, 결국 숨이 들이쉬어 지지 않았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 위아래가 뒤바뀌려 할 때쯤.
“됐습니다. 그만하세요.”
휘타가 연우의 말을 잘랐다.
“다 알아들었으니 그만해도 됩니다.”
그가 안타까운 눈으로 연우를 봤다.
맞은편의 그를 보자 꽉 막혔던 숨이 겨우 쉬어졌다.
아, 아직 효조를 만나지 않았지.
연우가 안도했다.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알았다면 일을 미뤘을 겁니다.”
“이겨냈으니까요.”
비록 어젯밤은 그 모양이었어도, 정작 효조를 보면 몸이 굳을지 몰라도 이만하면 잘 이겨내고 있다.
앞으로도 잘 이겨낼 것이다. 두 번째 삶에서 마지막에 웃은 사람은 연우 자신이었으니까.
연우는 숨이 편안해지자 차를 홀짝였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따뜻한 액체가 전신에 퍼지며 안정을 준다.
다시 찻잔을 입에 대는 순간 휘타와 눈이 마주쳤다.
느릿하게 그의 손이 연우를 향해 뻗어 잔을 빼앗았다.
“그대는, 이겨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지가 않아요.”
휘타의 눈동자는 사람을 잡아당기는 마력이 있다.
금빛의 마력. 깊숙이 침투해 속을 꿰뚫는 마력.
연우는 그것이 불편하지만, 벗어날 수가 없다.
“어젯밤 울었는데 기억납니까?”
연우가 고개를 저었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긴 했어도 운 적은 없었다.
“울어요? 제가요?”
웃음이 나왔다. 그럴 리가 없으니까.
“전 그 사람 때문에 절대 울지 않아요.”
스스로 약속했던 단 한 가지였다.
아파서 죽을 거 같아도 효조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를 물고 참고 있느라 치아가 다 상하기도 했었다.
어떻게 버티고 버텼는데 그런 자신이 울었다니 그럴 리가 없다.
휘타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그러더니 그가 다시 손을 연우에게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서너 번 부드럽게 연우의 머리를 쓰다듬은 휘타의 손이 내려와 턱을 살며시 잡았다.
“앞으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할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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