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암만 남에게 관심이 없다 한들 이 정도면 호기심이 갈 수밖에는 없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설마, 그 자신이 좋아한다는 차 때문에? 두려움을 이겨 내고 요구할 정도로 그것을 좋아하는 건가?
그렇게나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알폰스 바텐베르크가, 그 여자, 클로에 바텐베르크와 그녀의 차에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이러한 연유가 있었다.
* * *
기본적으로 클로에는, 박하정이었던 시절부터 단 한 번도 차를 우려 달라는 부탁을 거절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주변에는 차를 즐기는 사람이 흔치 않았고, 한 사람이라도 차에 관심을 가져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몹시 기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세계에 떨어졌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저……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은 키엘과…….”
“아앗! 이럴 수가. 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났어요!”
키엘이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제 이마를 쳤다. 클로에가 당황한 듯 물었다.
“저…… 정말요?”
“정말이요. 아아, 아쉽네요. 마님의 차를 맛볼 기회였는데. 그럼 전 다음 기회에!”
그런 말을 남기고서, 키엘은 90도 직각으로 허리를 구부려 주인님과 마님께 인사를 드린 뒤 바람 같은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
알폰스는 그걸 보며 역시 키엘은 눈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응접실에는 덩그러니 클로에와 알폰스, 단둘만이 남게 되었다.
……클로에는 괜히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저 사람은 그녀의 무려…… 남편이고, 그것도 사랑 없는 결혼으로 맺어진 전혀 안 친한 남편이다.
애초에 지금의 클로에가 알폰스를 마주한 건 저녁 식사 시간뿐이었는데, 그마저 간단한 예의상의 인사말과 공적이고 사무적인 화제 말고는 대화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 걸 의식하니 점점 더 어색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클로에는 고개를 흔들어 그런 기분을 떨쳐냈다.
“저…… 차는, 어떤 차가 좋으세요?”
알폰스는 자신의 아내와 집사가 가지고 온 차통들을 흘끗 보았다.
그는 여태껏 한 번도 차 종류를 입에 대어 본 적이 없었다. 말린 식물을 우린 물 같은 것은 야만인들이나 마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그에게 어떤 차가 좋으냐고 물어봤자였다.
“부인이 원하시는 걸로.”
클로에는 골치가 아팠다. 본래 ‘우리 뭐 먹을까?’라는 질문에의 최악의 대답은 비싼 요리나 호불호가 갈리는 요리가 아니라 ‘아무거나’이기 마련이다.
당연히도 클로에는 알폰스의 취향이나 식습관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조금도 사적인 대화를 해 본 적 없는 남편이 뭘 좋아하든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러나 차마 그런 마음을 밖에 내보일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알폰스의 눈빛이 여전히 위압적이었다.
“아아……. 네,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클로에는 가지고 내려온 차통들을 보며 고민했다. 과연 어떤 차를 맛보여 주는 것이 좋을까? 어떤 차가 그나마 저 남편의 입맛에 맞을까.
남편과의 관계 같은 사소한 것들은 어느새 그녀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녀의 눈빛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영업하고 싶어 하는 차 마니아의 그것이 되어 가고 있었다.
결국 결정을 내린 클로에는 차통을 부엌으로 가지고 갔다. 그녀는 찻잎을 적당히 우려낸 뒤 커피팟과 커피잔 두 개, 스트레이너를 쟁반에 받쳐 들고 돌아왔다.
“맛있게 드세요.”
스트레이너로 찻잎을 직접 걸러 주며 클로에가 말했다.
알폰스는 찻잔을 들여다보았다. 단정한 흰색 잔 위로 아롱대는 붉은 찻물은 그 자체로도 그림이었다. 뜨거운 잔 위로 옅은 김과 함께 특유의 향이 피어올랐다. 달지 않고 건조한 느낌의 향.
‘그녀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이것인가.’
알폰스는 한 손에 찻잔을 든 채 돌려 보며 생각했다. 그가 마침내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클로에는 그런 모습을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꼭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되어 심사위원의 판정을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곧이어 알폰스가 평가를 할 것이었다. 제 점수는요…….
클로에가 고른 차는 조금 진하며 적당한 무게감을 가진, 달지 않고 건조한 향의 무가향 블렌딩 홍차였다. 누구나 좋아할 만큼 호불호를 타지 않고 무난한, 하지만 진하고 묵직한 맛이 어른스러운 차.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알폰스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클로에가 생각했다.
첫 모금을 넘긴 알폰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두어 모금을 더 마셨다.
처음 느껴보는 맛과 향이었다. 코끝을 맴도는 맥아와 같은 향과, 혀끝을 실크처럼 부드럽게 감싸는, 매끄러우면서도 적당히 무게감 있는 여운.
야만인들이나 마신다는 차에 대한 편견과 다르게 이 향은 전혀 가볍지도 천박하지도 않았다.
알폰스는 아무 말 없이 찻잔을 비웠다. 클로에의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잘 마셨습니다.”
마침내 찻잔을 비운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멍하니 자신의 찻잔을 홀짝이던 클로에가 흠칫 놀랐다.
“가, 가시게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클로에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최선을 다해 골라본 건데.
자신이 가져온 신문을 챙기고 일어선 알폰스는 예의를 갖추어 작별 인사를 했다. 클로에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머리 위로, 이런 말이 툭 떨어졌다.
“다음번에도, 다시 한 번 차를 대접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
클로에의 얼굴 위에 웃음이 물감처럼 번졌다. 그녀가 아름답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물론이죠.”
응접실의 문을 닫기 전 알폰스가 아주 잠깐 자신의 얼굴을 돌아보았다는 사실을 클로에는 알지 못했다.
홍차를 다 마신 클로에가 침실로 올라갈 때, 한 하녀가 그녀를 붙들었다. 편지가 왔다는 것이었다.
“편지? 나에게?”
클로에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방에 들어와 뜯어보니 초대장이었다. 벨라도나 후작 영애가 다과회를 연다는 것이었다.
“아아, 그렇구나.”
클로에는 공작부인이니까, 사교계 활동을 해야겠구나. 그렇게 생각한 클로에는 침대 위에 누워 초대장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잠시 클로에의 기억을 뒤져 벨라도나 후작 영애가 누구인지를 떠올려 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클로에는 결혼하고 개최한 첫 번째 다과회를 크게 망쳐 망신을 당한 뒤, 사교계에서 두문불출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벨라도나 후작 영애는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달리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게다가 귀족가의 부인에게 적당한 사교계 활동을 통해 가문의 위신을 세우는 일은 의무나 다름없었다. (이전의 클로에가 의무를 행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클로에는 어렵지 않게 다과회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교계라는 것의 분위기도 보고,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도 구경하며 맛있는 거나 먹어야겠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 * *
“바텐베르크 부인은 차에 조예가 있으시다면서요?”
다과회 당일, 벨라도나 후작저.
클로에가 풍문으로 듣기로는, 벨라도나 후작은 이 국가에서 유일하게 커피를 수입하는 상단의 최대 후원자였다. 그래서인지 다과회의 음료로도 커피가 나왔다. 다과회 테이블의 옆에서는 사용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핸드드립 커피를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다과회에 참석한 클로에는 그저 조용히 묻어갈 생각이었다. 자신은 사교계라는 것이 처음이고 다른 귀족들이 어떤 사람인 줄도 몰랐다. 그러니 이번엔 참석에 의의를 두는 것으로 하고, 주변의 분위기만 살피며 조용히 과자나 먹기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머나, 차라고요?”
줄곧 벨라도나 후작 영애의 곁에 찰싹 붙어 시녀처럼 구는…… 아니 친한 친구인 듯한 시에나 백작 영애가 변죽을 맞추었다.
“설마 그, 야만 국가에서 마신다는 말린 식물을 우린 물 말씀이신가요? 말도 안 돼, 그 바텐베르크 부인이 말린 식물을 우린 물에 관심이 있으시단 말인가요?”
시에나 영애는 테이블의 저쪽 끝까지 들릴 것 같은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 근처의 부인들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그새 내가 차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사교계까지 퍼진 걸까. 아마 클로에의 차를 수입한 상단 측을 통한 정보일 것이다. 그만한 양의 차를 한 번에 수입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니까.
시에나 영애는 뒤늦게 눈치를 보는 척 주변을 둘러보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어머나, 죄송해요. 호호호. 너무 놀라워서요. 저희 시에나 백작령에서는 말린 식물을 우린 물은 마시지 않는답니다.”
그렇다면 커피콩은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란 말인가? 시에나 영애의 명백한 공격에 클로에는 기분이 조금 언짢아졌다.
시녀…… 아니 친한 친구가 추임새를 넣어주니 더더욱 자신감이 붙은 것 같은 벨라도나 후작영애는 콧대 높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제 삼촌이신 라파엘로 자작님이 선물해 주셔서 홍차라는 걸 마셔 봤는데 정말 쓰고 떫더군요. 바텐베르크 부인의 입맛은 정말로 남다르신 것 같아요.”
“정말이요. 커피의 깊이 있는 씁쓸함과는 다르죠.”
‘둘이서 신났다 신났어.’
클로에는 잠시 그녀들이 승리감에 도취되어 시시덕거리는 것을 지켜보다가, 말을 꺼냈다.
“저런, 삼촌께서 홍차를 어디서 처음 접하셨는지 궁금하네요. 홍차는 전혀 쓰고 떫은 음료가 아니거든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끓는점이 낮은지 벨라도나 영애의 목소리가 단번에 높아졌다.
“홍차를 드셔 보긴 한 건가요, 바텐베르크 부인? 제가 마신 홍차는 정말로 썼어요. 삼촌께서는 원래 홍차는 그런 맛으로 마시는 것이라고 하셨는걸요.”
그러고는, 자신의 삼촌이 그 ‘쓰고 떫은 말린 나뭇잎 우린 물’이나 마시는 사람으로 오해당하는 게 싫었는지 다급하게 덧붙였다.
“뭐,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그 이후로 삼촌도 홍차를 입에 대진 않으시는 것 같지만요. 그렇게 매력을 느끼진 못하셨나 보죠.”
“말린 나뭇잎을 우리든 볶은 콩을 우리든 음료에서 쓰고 떫은맛이 나면 매력을 느끼기 어려운 게 당연하죠. 아무래도 삼촌께서는 홍차 우리는 법을 다시 배우셔야 할 것 같아요, 영애.”
클로에가 커피를 휘휘 저으며 말을 이었다.
“홍차에서 쓰고 떫은맛이 났다는 것은 잘못 우렸다는 증거거든요.”
“저, 저희 삼촌이 홍차를 잘못 우렸다고요?”
당황스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발끈한 벨라도나 영애가 얼굴을 붉혔다.
“설마 부인께서는, 지금 제 혈육을 모욕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홍차 잘못 우렸다는 얘기가 뭐 그리 대단한 모욕이라고. 벨라도나 영애의 예민한 반응에 클로에는 기가 찼다. 그녀는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니까 진정하세요. 홍차에서 나는 쓰고 떫은맛을 내는 성분, 탄닌은 찻잎을 정상적으로 우려냈을 때는 나오지 않아요.”
간헐적인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웅성거림이 넘쳐나던 다과회 테이블이 잠잠해졌다. 클로에는 조용함을 틈타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탄닌 성분은 찻잎을 지나치게 오래 우렸거나, 찻잎을 쥐어짜는 등 지나친 자극을 주었을 때만 우려 나와요. 잘 우린 홍차는 아주 부드럽고 향긋할 뿐, 쓴맛이 전혀 나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잠시 정적. 아무도 웃거나 수다스럽게 떠들지 않았다. 모두가 이 자리의 주최자, 그러니까 벨라도나 영애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당사자는…… 꼭 심한 모욕이라도 당한 양 눈을 부릅뜨고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누가 보면 클로에가 그녀에게 어퍼컷이라도 먹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벨라도나의 그런 반응을 본 시에나 영애는 두리번두리번 애써 눈치를 살폈다. 테이블의 정적을 깨뜨린 것도 그녀였다.
“저희에게 차를 우리는 법 같은 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아요. 즐기시는 분이나 충분히 즐기면 되는 거죠. 안 그래요, 벨라도나 영애?”
그녀가 위로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내용의 말을 주워섬겼다. 그제야 조금 진정이 됐는지, 벨라도나 영애 역시 원래의 콧대 높은 태도를 회복했다.
“그, 그래요, 시에나 영애.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녀가 노골적으로 클로에 쪽을 흘겨보며 말했다. 클로에는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두 영애가 정신승리를 시전하고 있던 찰나, 한 부인이 클로에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건 그렇고, 바텐베르크 부인. 이렇게 오랜만에 뵙게 되어 전 정말로 반가워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호턴 부인.”
“정말이요. 바텐베르크 부인께선 이전에 다과회를 열었다가 고생하신 적이 있잖아요? 그 뒤로 1년 만이죠?”
호턴 남작부인은 장갑 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 뒤로 두문불출하셔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전 무척 기쁘답니다.”
클로에는 호턴 부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눈치챘다.
클로에는 1년 전 공작부인이 된 뒤 처음으로 열었던 다과회를 엉망으로 망치고는 수치감에 사교계에서 몸을 감췄다. 그런 클로에에게 그때의 일이 좋은 화젯거리일 리 없었다. 그 사실을 호턴 부인이라고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사교계에서도 클로에는 좋은 먹잇감인 모양이야.’
물론 그때의 클로에와 지금의 클로에는 다르니 상관은 없었지만.
클로에는 주변의 영애들과 부인들이 자신과 호턴 부인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심약한 클로에가 울거나 충격을 받거나 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을 테지. 하지만 클로에는 그렇게 해 줄 생각이 없었다.
클로에는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네, 그러게나 말이에요.”
“…….”
호턴 부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예전의 클로에였으면 이미 울거나 새빨개진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달아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저…… 부인, 정말 괜찮으세요? 그때 무척 당황하신 데다 눈물까지 보이셔서 안타까웠는데요.”
“네, 그때는 그랬지만 이젠 괜찮아요. 옛날 일이니까요. 그런데…….”
클로에가 가볍게 웃었다.
“꼭 제가 괜찮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호턴 부인은 순간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사람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 시선이 닿아 있는 호턴 부인만은 알 수 있었다.
클로에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서려 있는 냉랭한 기운을 호턴 부인은 눈치챘다.
그녀가 아는 클로에라면 이럴 수가 없었다. 클로에 바텐베르크, 언제나 주변의 눈치만 보고 있는 여자. 남편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한심할 정도의 아량으로, 사교계의 시기와 악의를 한 몸에 받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던 여자.
눈앞의 이 여자가, 호턴 부인 그녀가 알던 클로에 바텐베르크가 맞단 말인가.
그 짧은 순간 호턴 부인은 상대가 공작부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유감스럽게도 여성의 지위는 남편의 지위로 결정되는 사회다. 여태까지 클로에는 운수 좋게 손 안에 떨어진 분수에도 맞지 않는 지위를 전혀 활용할 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클로에라면 다르다. 호턴 부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클로에가 자신의 지위를 십분 활용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자신 따위는…….
불에 덴 듯 놀란 호턴 부인이 손을 마구 내저었다.
“아, 아 아니요! 그럴 리가 있나요. 제, 제가 말재간이 부족해서 그만, 실례될 만한 말을 해 버렸나 봐요. 정말 죄송해요, 바텐베르크 부인.”
호턴 부인의 급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그것을 듣고 있던 모든 부인과 영애들이 놀랐다. 하지만 정작 그녀를 마주 보고 있는 당사자, 클로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어머, 아니에요. 저도 아직 부족해서 종종 실례될 언행을 하고 만답니다. 당신을 이해해요, 호턴 부인.”
클로에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호턴 부인은 그 겸손한 말 속에 들어 있는, ‘당신은 실례를 한 것이 맞다.’라는 숨은 의도를 이해했다. 그녀의 등은 왠지 모를 식은땀으로 텁텁해졌다.
클로에와 호턴 부인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호턴 부인의 항복 선언으로 끝나자, 다과회의 분위기가 한결 침잠했다. 참가자들 중 눈치 빠른 부인 하나가 잽싸게 화제를 바꾸었다.
“그…… 그건 그렇고, 다들 퀸 다이제스트지의 금주 호를 읽어보셨나요? 새로운 유행의 소매에 주름이 들어간 버슬 드레스 말인데요…….”
화제는 순식간에 평화로운 방향으로 흘러갔고, 이후로는 아무도 클로에를 공격하려 들지 않았다.
클로에는 원래의 목적이었던 ‘사교계의 분위기를 살피고 맛있는 것을 먹기’를 충실히 수행한 뒤 공작저로 돌아갔다.
* * *
“다과회는 즐거우셨습니까.”
어린 소고기 요리를 썰고 있던 클로에의 머리 위로 중저음의 목소리가 툭 떨어졌다.
클로에는 맞은편에 앉은 남편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알폰스의 아름다운 얼굴엔 언제나와 같은 무감각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또 예의상의 말이구나. 그렇게 생각한 클로에도 예의상의 미소를 지어 화답했다.
“그럼요. 정말 즐거웠어요.”
“다행입니다.”
저녁 식사 중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뒤, 클로에는 언제나처럼 알폰스에게 인사를 하고 침실로 올라갔다. 그러려고 했다.
“부인, 잠시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클로에가 인사를 하기 직전, 알폰스가 말을 걸었다. 무심하지만 예의 있는 목소리였다.
“네? 그럼요.”
클로에가 큰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차를 대접받고 싶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클로에의 얼굴이 스위치라도 켠 듯 밝아졌다. 다른 사람과 차 한 잔을 함께 하는 것, 그녀가 제일 사랑하는 일이었다.
“물론이죠!”
클로에는 이번에는 알폰스가 직접 자신이 마실 차를 고르도록 만들고 싶었다. 작은 종지 여러 개를 들고 차 창고로 들어간 그녀는 몇 분 뒤 응접실에 나타났다.
“그게 뭡니까?”
알폰스가 관심을 표했다. 클로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것은 결혼 뒤 처음으로 알폰스가 클로에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시향 차예요. 자, 시향해 보세요.”
클로에가 미소 지으며 종지들이 담긴 트레이를 알폰스에게 넘겼다. 이것은 다양한 특징을 가진 찻잎들을 조금씩 덜어낸 것이었다. 차를 마실 손님으로 하여금 직접 찻잎의 향기를 맡고 원하는 것을 고르게 할 수 있었다.
알폰스는 종지들을 하나씩 들어 시향해 보더니, 금방 한 가지를 골라냈다.
“랍상소우총이군요! 훈연 향을 좋아하시나 봐요.”
클로에가 반갑게 말했다.
랍상소우총은 그녀가 박하정이었던 시절 살았던 지구에서 쓰던 이름이다. 차통에 붙어 있는 라벨에 따르면 이곳에서 부르는 이름은 달랐다. 지리와 산지가 다를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담배와도 비슷한 향이죠. 담배, 좋아하시잖아요?”
클로에는 장난스럽게 알폰스가 시가를 피우는 모습을 흉내 내 보았다. 연기를 뱉는 척 공기를 뱉어 낸 그녀가 조금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까르르 웃었다.
알폰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얼굴로, 그녀가 그러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부인.”
“네?”
“그런 모습은 숙녀답지 않습니다.”
아…… 네. 그러세요. 클로에는 조금 뾰로통해지고 말았다.
잠시 후, 클로에가 랍상소우총을 한 팟 가득 우려 가지고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만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받쳐 들고 온 트레이 위엔 작은 접시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접시에 올려져 있는 건…….
“햄입니까?”
“네, 맞아요.”
클로에가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폰스는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그가 와인을 마실 때 종종 안주로 먹는 햄이었다. 티팟에서 흘러나오는 특유의 향이 아니었으면 그는 클로에가 술을 가져온 건지 헷갈렸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스트레이너로 차를 거른 뒤 찻잔을 알폰스에게 건넸다.
“맛있게 드세요.”
알폰스는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수색은 지난번에 처음으로 마셨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찻물에서 흘러나오는 향은 조금 매캐한 것 같기도 한 독특한 느낌이었다. 알폰스는 찻잔을 입술에 대었다.
입안에 감기는 맛은…….
“베이컨 같죠?”
클로에의 뜬금없는 물음에 알폰스가 찻잔을 입에서 떼었다.
“예?”
“저는 랍상소우총을 마시면 언제나 베이컨 같다는 생각을 해요. 베이컨은 돼지고기에 훈연을 입혀서 만드는 것이고, 랍상소우총은 찻잎에 훈연을 입혀서 만드는 것이니까요.”
클로에가 자신의 찻잔을 검지로 톡톡 쳤다.
“베이컨 맛 차라니,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차라는 건.”
“그렇습니까.”
알폰스는 몇 모금을 더 마셨다. 자신이 직접 골라서 그런지, 진하게 감기는 훈연 향은 제법 그의 입맛에 맞았다.
그런데 묘한 느낌이었다.
무언가 허전하다고나 할까. 본디 알폰스 바텐베르크, 그는 식도락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음식이란 생명을 연장시키거나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선지 딱히 무언가가 먹고 싶다거나 하는 감각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왠지…… 무언가가 강하게 당기는 느낌이…….
“허전하지 않으세요? 자.”
알폰스의 눈앞에 무언가가 내밀어졌다. 예의 그 햄이 담긴 접시였다.
알폰스는 햄 조각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부드럽게 씹히는 햄에서는 짭조름한 소금기와 육즙이 터져 나왔다. 지방질의 고소한 맛도 느껴졌다. 그는 이것이 그가 필요로 했던 음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울리죠?”
클로에가 기쁜 듯이 말했다.
“안주가 차에도 어울리다니, 특이하군요.”
“랍상소우총은 고기 종류와 잘 어울려요. 짭짤한 햄, 햄을 가득 넣은 샌드위치, 소시지…….”
클로에는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는 듯한 행복한 얼굴을 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만두가 생각나더라고요. 고기가 많이 들어간 고기만두.”
“만두? 온(溫)의 음식이 아닙니까.”
“맞아요. 랍상소우총도 온이 모태가 된 차니까요.”
온은 이 세계 동방에 있는 거대한 왕정국가다. 이 세계의 차에 대해 공부한 클로에는 차의 시초가 온이라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온의 요리를 좋아하십니까?”
“그럼요! 정말 정말 좋아해요.”
클로에가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알폰스는 묵묵히 차를 마셨다.
두 사람은 오래지 않아 티팟 가득 우려 온 차를 전부 마셨다. 물론 햄도 모두 먹어 버렸다. 저녁 식사 직후인데도 어떻게 이렇게 잘 먹고 마신 건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전과 같이 알폰스는 차를 마시고도 좋다거나 싫다는 등의 표현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어떠한 제안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언제든지 찾아와 주세요, 공작님.”
알폰스는 순간 조금 놀랐다. 자신이 할 말을 상대가 먼저 눈치채고, 대답까지 해 버린 것이다.
“저는 누군가와 함께 차 마시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거든요.”
클로에가 맑게 웃어 보였다.
* * *
이후로 두 사람은 습관처럼 저녁 식사 후 티타임을 가졌다.
이전에는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 대하는 시간은 오로지 저녁 식사 시간뿐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알폰스는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준으로 쓸데없는 짓에는 결코 시가 한 대 피울 만큼의 시간 이상은 쓰지 않았다. 클로에는 알지 못했지만, 그런 그가 매일 저녁 식사 뒤의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그가 티타임을 꽤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뜻했다.
분명히 차라는 문화는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그는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바쁜 일로 내몰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좋아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여유가 있을 때에 느끼는 것은 편안함이 아닌 공허함이니까. 적어도 바쁠 때는 그런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티타임 때만은 달랐다. 아내가 신이 나 재잘거리는 설명을 들으면서 차를 마시고 있자면 바쁘다는 감각도 없는데 공허한 기분 역시 들지 않았다.
그것이 어째서인지는 알폰스 자신도 잘 설명할 수 없었다. 차라는 이국의 음료에서 흘러나오는 신비로운 약효를 포함한 은은한 향기 때문인지, 배 속을 채우는 따뜻한 온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그 무언가에 이유가 있는지.
어쨌든 그 시간은 그에게, 유일한 휴식다운 휴식을 갖게 하는 힘이 있었다.
물론 알폰스는 클로에가 좋아하는 만큼 차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고작 한 잔씩 마셔 보기 시작한 것뿐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어째서 이런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는 알겠군.’
진심으로 차를 좋아하는 듯한 클로에를 보며 알폰스는 문득 생각했다.
한편 공작 부부가 매일 티타임을 가진다는 소문은 바텐베르크 공작저의 모든 사용인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공작님이 날마다 마님과 차를 마신다고?”
짐을 나르는 일을 하는 하인이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말도 안 돼! 잘못 본 거겠지.”
“잘못 봤을 리가 없잖아, 바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닌걸.”
“하지만 그 두 분이 가깝지 않았던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닌걸. 무려 열세 달이라고?”
설거지를 담당하는 부엌의 하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열세 달이라고! 공작님은 마님을 열세 달이나 냉대했어. 꼭 남 보는 듯한 눈으로 봤단 말이야.”
“그랬는데 갑자기 친해졌나 보지 뭐.”
“그게 가능할 것 같아?”
“마님은 엄청 소심하고 멍청한걸. 공작님이 갑자기 그런 마님에게 관심이 생길 리 없잖아.”
“기사들 말로는, 마님이 변했다던데?”
“지금 무슨 대화들을 하는 거지?”
그때였다. 하인들과 하녀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한 방향을 향해 쏠렸다. 그 시선의 끝에 있는 사람은…….
“시, 시녀장님!”
사용인들이 기겁했다. 그들은 후다닥 자신들의 옷매무새를 점검하곤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꼭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어린애 같은 표정이었다.
“저, 저희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들이 유독 콜린 부인의 앞에서 긴장하는 까닭은 그녀가 시녀장이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해 시녀와 하녀, 하인은 별개의 존재이므로 하녀와 하인을 관리하는 게 그녀의 관할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곤 해도 시녀장이라는 이름값이 가지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녀, 고위귀족 여성의 곁에 붙어 그녀를 보필하고 돌보는 하급귀족 사용인. 위치상 바텐베르크 공작가의 주인마님과 제일 가까울 수밖에는 없는 존재다. 또한 시녀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시녀장은 한낱 평민 하녀와 하인들에게는 한없이 높은 존재였다.
그런 콜린 부인에게 주인마님을 흉보는 것을 들켰으니 하인과 하녀들의 심정은 말이 아닐 수밖에.
콜린 부인은 클로에를 흉보던 사용인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입술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다.
“누가 마님이 변했다고 말했지? 잘 듣도록.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나 마님 같은 사회 부적응자라면 더더욱 그렇지.”
“시녀장님…….”
예상 밖의 전개에 당황한 사용인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살필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서 콜린 부인이 날카로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잘 들어라. 바텐베르크 공작께서는 잠깐의 변덕을 부리시는 것뿐이다. 그 여자가 불쌍해 보여 동정을 베풀어 주시는 것뿐이야. 두 사람은 얼마 안 가 원래의 관계로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그러니…….”
클로에에게 호의적인 논조로 말을 하던 하녀가 침을 꿀꺽 삼켰다. 방금 왠지, 콜린 부인이 자신을 노려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마님이 변했다든가, 두 사람의 관계가 어쨌다든가, 그런 허튼소리는 집어치우는 것이 좋다. 알겠나?”
이러쿵저러쿵해도 청소나 빨래를 하는 사용인들보다는 클로에의 곁에 붙어 다니는 시녀장 콜린 부인이 더 그 주인 부부에 대해 잘 알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물론 시녀장님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은 것도 있었고.
이런저런 복합적인 이유로 사용인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 날 하녀들과 하인들의 수다는 그런 식으로 결론지어져 버렸다.
모든 건 바텐베르크 공작의 변덕일 뿐이다. 마님은 변한 것이 아니다.
그러고 나니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었다. 모여 있던 사용인들은 각자 자기 일을 하러 뿔뿔이 흩어졌고, 자리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
한편, 함께 자리를 뜬 시녀장 콜린 부인은 이를 꼭 악물고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또각거리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에는 발을 구르는 듯 지울 수 없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클로에가 변했다고? 웃기지 말라지.’
콜린 부인, 그녀는 콜린 백작가의 차녀로 태어났다. 그레이 백작가의 장녀였던 클로에가 소녀 시절과 사춘기 시절을 보낼 때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콜린 부인 역시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귀족 소년 소녀들이라고 남다른 고귀함과 배려를 타고나는 것은 아니었다. 콜린 백작가는 일찍이 수도에 올라와 살았고, 어린 시절의 콜린 부인은 수도의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은밀한 따돌림을 받는 존재였다. 그것은 콜린 부인의 노력이나 능력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 그녀는 일찍부터 좌절을 배워야 했다.
그녀에게 광명이 찾아온 것은 이후, 그레이 백작가가 수도로 올라오면서였다.
성격이 특이했던 클로에는 수도의 귀족 자제들의 새로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 결과로 콜린 부인은 따돌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클로에의 일거수일투족을 비웃고, 그녀에 대한 험담을 하면서 콜린 부인은 수도 귀족 아이들의 무리에 자연스럽게 섞여들 수 있었다. 그것이 콜린 부인에게는 일종의 마지막 동아줄이었고 구원이었다.
그런 식의 사춘기 시절을 보내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클로에는 자신보다 아래이며, 아래여야만 한다는 식의 무의식적 인식을 만들게 되었다. 클로에는 나보다 열등하고 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추락하는 것은 내가 될 것이다.
일종의 강박과도 같은 그 인식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그녀의 언행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클로에가 우연히도 바텐베르크 공작가의 안주인이 되었고, 콜린 백작가의 가세가 기울어 콜린 부인이 클로에의 시녀장으로 취직한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13개월 동안, 콜린 부인은 그러한 자신의 강박에 충실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클로에는 공작부인이었지만 공작에게 사랑받지 못했고 심지어 예산 관리권이나 인사권, 아무것도 없는 허수아비였다. 게다가 성격까지 야무지지 않고 조금씩 괴롭혀도 반항 한 번을 하지 못했다.
콜린 부인은 현재에 만족하고 있었다. 비록 겉껍데기는 공작부인이라고 하나 사실 속은 한심하고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클로에의 위에는 언제나 자신이 있었다. 하녀들과 시녀들은 클로에보다 자신을 두려워했고, 클로에의 처우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었다…….
그래, 그랬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
콜린 부인의 이가 부득 갈렸다.
클로에가 추락하지 않으면 추락하는 것은 자신이 될 것이었다.
콜린 부인은 클로에가 변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무엇이든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 * *
차를 마실 생각으로 부엌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고 있던 클로에는, 들어 본 적 있는 목소리와 마주쳤다.
“우왓, 세상에. 마님!”
그쪽을 돌아본 클로에의 얼굴에 반가움 가득한 웃음이 번졌다.
“어머, 제이콥! 발트와 카인도 있네요!”
클로에는 환히 열려 있는 창문을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그녀는 창틀 너머로 보이는 제이콥과, 그의 양옆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발트와 카인의 얼굴을 보고 반가움에 눈을 빛냈다.
“오랜만이에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마님! 이야, 오랜만에 봐도 너무나 아름다우시네요.”
제이콥의 오버스러운 찬사에, 클로에는 이 얼굴은 자기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괜히 쑥스러워졌다.
클로에는 곧, 기사 삼총사 전원이 땀에 푹 젖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복장도 저번에 봤을 때 입고 있던 제복이 아니라 비교적 편해 보이는 생활복 같은 형태의 옷이었다.
“수련 중이셨어요?”
“예, 맞아요.”
“어쩜, 이 더운 날씨에……. 저, 잠시 들어오실래요? 시원한 거라도 드시고 가세요.”
그러나 뜻밖에도 상대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아, 그게, 저…….”
“저희도 마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시원한 거 마시면서 쉬고 가라고 하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미적거리는 상대들을 보고 클로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결국, 제이콥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게, 일전에 마님께 차를 얻어 마신 일로 저희 단장한테 엄청나게 혼나 가지고 말입니다. 평기사 주제에 감히 마님과 마주 보고 앉다니! 라면서 무진장 털렸지 말입니다.”
“어머? 저랑 마주 보고 앉는 게 뭐가 어때서요?”
“기사의 예법에 따르면, 평기사는 모셔야 할 분 곁에 앉으면 안 됩니다. 그 곁에 서 있어야 해요.”
바텐베르크의 기사단이 모실 분이라면 물론 바텐베르크의 일족이었다. 안주인이신 클로에가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어쨌든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클로에는 무척이나 미안해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전 꿈에도 몰랐어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히 혼까지 나시고…….”
“아니, 아닙니다! 마님께서 죄송하실 일이 아닙니다!”
“마님 잘못이 아니에요!”
제이콥과 발트의 곁에서 카인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꼭 헤드뱅잉을 하는 것 같아서 클로에는 조금 크게 웃을 뻔했다.
제이콥이 우수에 찬 눈빛으로 아련히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마님께서 주시는 것은 뭐든 믿고 마실 준비가 되어 있는데, 이거 정말 아쉽게 됐습니다.”
그 곁의 발트가 투덜거렸다.
“으아아, 먹고 싶다! 마님이 주시는 차.”
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
클로에는 고민했다.
“……음, 그렇다면요. 저와 마주 앉지만 않으시면 되는 거잖아요?”
“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 말을 남긴 클로에는 부리나케 부엌 쪽으로 달려갔다. 기사 삼총사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클로에는 몇 분이 채 되지 않아서 돌아왔다. 품에는 유리병 세 개를 안고 있었다.
기사들과 달리 체력이 부실한 편인 그녀는 그 짧은 거리를 뛰었을 뿐인데도 숨을 몰아쉬었다. 겨우 호흡을 가다듬고, 클로에가 유리병을 기사 삼총사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며 말했다.
“사실은 제가 마시려고 만든 거지만, 기사님들께 드릴게요. 여름엔 정말 이만한 게 없어요.”
“그, 그렇게 귀한 걸 저희에게…….”
“전 또 만들면 돼요. 찻잎이 아주 많이 있거든요.”
클로에가 생긋 웃었다.
엉겁결에 받아 든 기사 삼총사는 유리병을 살펴보았다. 하나에 약 500ml 정도 될 법한 용량이었는데, 겉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도 새겨져 있지도 않아 안에 든 게 무엇인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안에 든 것은, (준 사람이 클로에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마 차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일전에 마셨던 과일 아이스티와 다른 점은, 과일 아이스티는 선명한 오렌지빛을 띠었지만 이것은 옅고 투명한 연둣빛이라는 것이다.
“이게 뭐예요?”
발트가 물었다.
“가향 우롱차라는 거예요. 우롱차는 찻잎을 중간 수준으로 산화시킨 거구요. 홍차와 녹차의 중간 단계라고나 할까요?”
클로에가 기쁜 듯이 설명했다.
“부드럽고 고소하고 상큼하고, 녹차의 장점과 홍차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저는 우롱차를 정말 좋아해요. 게다가 가향을 해서…… 어머!”
그녀가 깜짝 놀란 것은 발트 때문이었다. 참지 못한 발트가 그녀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뚜껑을 열어 우롱차를 들이켰던 것이다.
“야! 마님 앞에서 예의 없게!”
제이콥이 힐난했지만 발트는 듣지 않았다. 한 번에 병의 반 정도 분량을 마신 발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으헉!”
“왜, 왜 그래?”
“부드럽고…… 고소해. 게다가…… 과일 향이 나.”
그 말에 호기심을 못 이긴 제이콥 역시 병을 따서 조금 마셔 보았다. 카인도 마찬가지였다.
“우왓……! 맛있다. 향긋한데 은은하게 느껴지는 고소함이…… 오오!”
몇 모금씩 마시며 감탄, 또 감탄하던 제이콥은 어느 순간 클로에를 돌아보았다.
“정말로 과일 향이 나는데요. 복숭아입니까?”
“맞아요! 복숭아 가향 우롱차예요.”
클로에가 손뼉을 쳤다.
“아무 과일도 안 들어 있는 것 같은데 복숭아 향이 나다니 신기하네요. 복숭아 즙을 넣으신 건가요?”
“아니요, 이건 찻잎 자체에 향을 입힌 가향 차예요. 찻잎은 향을 잘 빨아들이는 속성이 있거든요. 그래서 다른 재료의 향을 입히기가 쉽답니다.”
“가향 차……?! 그런 것도 있단 말입니까?”
“그럼요! 과일 가향은 평범한 축에 속하고요, 꽃 가향, 심지어 초콜릿, 바닐라, 캐러멜이나 ‘레드벨벳 케이크’, ‘크리스마스 푸딩’ 등의 디저트 가향까지 없는 게 없어요.”
“뭐라고요? 레드벨벳 케이크 향의 차가 있다고요?!”
제이콥이 기겁했다. 그 정직한 반응에 클로에가 사풋 웃었다.
“과일 가향 우롱차 냉침은 정말 맛있지요. 여름나기에 이만한 게 또 없어요.”
“예, 최곱니다. 달콤한 복숭아 향에 은은한 고소함이라니…….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본 기분인데요.”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 정말 기뻐요. 자, 기사님들.”
클로에가 작고 가벼워 보이는 무언가를 건넸다. 제이콥은 그것을 황급히 받아 들었다. 작은 천 주머니였다.
“이게…… 뭡니까?”
“복숭아 가향 우롱차 잎이에요. 저번에 만든 아이스티는 진하게 우려 얼음을 넣는 ‘급랭’ 방식으로 만든 거지만, 이번 것은 찻잎을 물속에 오랜 시간 넣어 두는 ‘냉침’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클로에가 검지를 들어 보였다.
“냉침은 정말 정말 쉬워요. 물에 찻잎을 넣고 차가운 곳에 12시간 정도 보관해 두기만 하면 되니까요. 이 찻잎은 기사님들이 직접 만들어 보시라고 드리는 거예요.”
“마, 마님……!”
제이콥과 발트는…… 거의 울 기세였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정하시고 배려심 깊으실까! 저희를 위해 귀한 차에, 찻잎까지 나누어 주시다뇨!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무릎이라도 꿇을 표정으로 제이콥이 말했다. 클로에는 수줍게 웃었다.
“저…… 으음, 다음에 한 번 단장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제이콥과 발트와 카인이 저와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도록요. 그렇게 되면 저랑 또 차 마셔 주셔야 해요.”
“예…… 예에에에?”
더 이상 놀랄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기사 삼총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클로에는 부끄러운 듯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제이콥, 발트, 카인은 제 소중한 다우(茶友)니까요. 부담 갖지 말아 주세요. 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차 마시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클로에가 수줍게 웃었다.
그 순간 기사 삼총사는 생각했다.
‘천사다……!’
‘여기 천사가 있어……!’
‘마님은 천사야……!’
그 순간, 그들은 맹세할 수밖에 없었다.
클로에 바텐베르크는 그들의 존귀하고도 고아하신 안주인이시며, 그분께 일생일대 최고의 충성을 바치겠다고.
바텐베르크 기사단의 명예와 긍지를 걸고, 이 한 몸 불태워서라도 기필코 마님을 지키겠다고!
* * *
“제이콥, 뭘 마시고 있는 거야?”
제이콥은 남에게 뺏길세라, 마시고 있던 유리병을 얼른 품속에 갈무리했다.
“흥, 넘보지 마라. 이건 말이지, 무려 마님께서 주신 우롱차라는 것이다 이거야.”
“뭐? 뭘 우롱한다고?”
“으이그, 무식한 촌놈. 수준이 안 맞아서 못 있겠네.”
어느 순간부터 더운 훈련 시간마다 기사 삼총사가 유리병에 담긴 무언가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목마르고 지친 기사들의 주목을 끌 수밖엔 없었다.
특히, 그런 와중에 자신이 마시고 있는 것이 마님께서 주신 신문물이며 아주 맛있는 신비의 음료라는 사실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어필하고 다니는 제이콥은 기사들의 원망과 얄미움을 한 번에 샀다.
결국 몇 명의 기사들이 작당을 했다.
“제이콥! 마님께서 주셨다는 신문물을 내놔라!”
“안 돼! 이것만은 절대 못 줘!”
“웃기지 말고 내놔!”
“카인! 발트! 도와줘!”
그러나 기사 삼총사 중 두 명은 제이콥의 애타는 부름을 외면했다.
역시나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었다. 명백한 수적 열세에 눈 뜨고 우롱차를 뺏긴 제이콥이 땅을 쳤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목마르고 더운 기사들 사이를 몇 번 오고 가자 그새 병이 바닥을 보였던 것이다.
“아니……?”
“이, 이건……?”
우롱차를 마셔 본 기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냐, 이건! 엄청나게 향긋하고 고소하고 시원하잖아!”
“이런 것을 마님께서 네게 주셨다고?”
그리하여, 명예롭고 긍지 높은 바텐베르크 기사단에서는 난데없이 복숭아 가향 우롱차 냉침이 유행을 탔다. 기사단원 중 한 명이 항구까지 가서 복숭아 가향 우롱차 잎을 다량으로 사 와서는, 동료들을 상대로 비싼 값을 붙여 팔아먹다가 단장에게 들켜 땡볕 아래에서 연무장 400바퀴 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이미 마셔 보아 그 맛을 아는 기사들과 주변의 찬사에 호기심이 동한 기사들까지 모두 모여 공동구매를 하는 일도 있었다. 어떤 기사는 복숭아 외의 다양한 과일 우롱차 잎을 사 와서 자랑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기사단 한정으로는 이런 신문물을 전파해 주신 은혜가 있는 마님에 대한 나쁜 평가가 쑥 들어갈 수밖엔 없었다. 클로에도 모르는 사이, 기사단에서의 그녀에 대한 평판이 솟구치고 있었다.
* * *
그간 경황이 없어 지키지 못한 약속을 클로에는 내내 기억하고 있었다. 어떤 약속인가 하면, 키엘과의 티타임 약속이었다.
일전에 키엘이 차 정리를 도와주었을 때에 그에게 차를 대접하기로 했지만, 그날은 알폰스와 우연히 마주치는 바람에 불발이 되었던 것을 클로에는 신경 쓰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일정도 없는 한가한 오후, 클로에는 키엘과 엘리를 불렀다. 그들과 차를 마시기 위해서 말이다.
“마님께서 직접 우려 주시는 차를 맛볼 수 있다니, 영광이네요.”
싱글벙글한 낯의 키엘의 곁에서 엘리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클로에의 차를 몇 번 마셔 본 적이 있는 엘리는 그녀의 차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클로에는 키엘을 응접실에 앉혀 두고 엘리와 함께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돌아오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엘리가 들고 있는 쟁반 위에서 차로 가득한 커피팟이 달그락댔다.
그들이 돌아옴과 동시에 응접실에는 달콤한 향기가 가득 찼다. 낯설지 않은 향이었기에 키엘은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달콤한 향이네요. 국화인가요?”
“맞아요.”
클로에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쟁반을 테이블에 올려 둔 엘리도 부리나케 키엘의 옆자리에 앉았다.
클로에는 키엘의 잔에 직접 차를 따라 주었다. 연한 노란빛이 감도는 수색의 찻물이 흰 잔 가득 차올랐다. 스트레이너에 걸러지는 게 언제나 보던 검은 찻잎이 아닌 건조된 흰 꽃잎이었다.
“카모마일이에요. 국화류의 허브죠.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그 말에 엘리와 키엘도 잔을 입에 대었다.
찻잔이 가까워졌을 때에 코끝에 닿는 향은 달콤해서 기분이 좋았다. 달콤하고 향긋한, 어쩌면 민트처럼 시원한 것 같기도 한, 저절로 마음을 편하게 하는 향.
그러한 향이 날숨을 통해 빠져나가고 찻물이 혀에 닿을 때에 느껴지는 것은 명백한 단맛이었다. 단순히 꽃잎만을 우려낸다면 나타날 리가 없는 그런 단맛이다. 키엘은 찻잔을 입에서 떼고 말했다.
“달콤하네요. 설탕을 넣으셨나요?”
“아니에요. 꿀을 넣은 거예요. 카모마일 티에 꿀을 넣어 즐기는 방식은 제국 남부 반도 국가의 방식이랍니다.”
클로에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듣고 보니 카모마일 특유의 국화 향과 섞인 이 풍미는, 꿀 특유의 진하고 독특한 그 향이었다.
카모마일에 꿀을 넣어 즐기는 것은 클로에가 이전 생에서 살았던 세계의 스페인에서 즐겨 마시는 방법이었다. 이를 스페인에서는 만사니야 꼰 미엘이라고 부르는데, 우유를 넣어 밀크티로 만들어 즐겨도 좋은 차였다.
키엘이 감탄했다.
“달콤하고 맛있는걸요. 꼭 국화 사탕을 먹는 것 같아요. 저는 차는 다 밍밍하고 물맛만 난다고 생각했어요.”
단맛이 나고 향이 친숙해 누가 마셔도 좋은 차였지만, 키엘에게 대접하기 위한 차로 클로에가 굳이 이것을 고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키엘, 불면증이 있다고 했죠?”
“앗, 네.”
바텐베르크의 집사, 키엘이 불면증이 있다는 건 공작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었다. 잠을 못 자는 그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사용인들을 감독하려 드는 통에, 본래라면 설렁설렁 일해도 좋을 야간 근무를 서는 사용인들이 애꿎게도 빡세게 굴려지는 일이 잦았다.
“카모마일은 긴장을 완화해 주고 혈액순환을 좋게 해 주어 불면증에 좋아요. 여기에, 역시 숙면에 좋은 재료인 꿀을 첨가해 보았어요.”
저택 내에서 드물게도 클로에에게 친절한 키엘은 그녀에게 고마운 사람 중에 하나였다. 클로에가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제나 공작가를 위해 열심히 일해 주시는 키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키엘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공작가의 안주인씩이나 되시는 분이 자신의 수면 사정까지 챙겨 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차 역시 맛이 좋았던 것은 물론이다.
“이 차 한 잔에 그런 깊은 뜻이……. 마님, 저는 지금 엄청나게 감동해 버렸어요.”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모시겠습니다, 마님. 잘 부탁드려요.”
“어머, 키엘! 어서 앉으세요.”
그러는 그를 말리면서도 클로에는 기쁜 듯한 웃음을 얼굴에서 지울 수 없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키엘.”
한편, 클로에와 키엘이 이렇게나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유일한 한 사람이 있었다.
‘마님은 내 건데……! 나도, 나도 카모마일 정말 맛있게 마셨는데!’
엘리였다. 엘리는 어쩐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빼앗긴(?)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질투심을 차마 밖으로 드러내기엔 그녀는 너무나 소심했다. 그러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안경 아래로 서글픈 눈빛을 담고 타는 속을 식히기 위해 카모마일 티를 계속해서 들이켜는 것뿐이었다.
엘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클로에와 키엘은 여전히 하하호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차가 드시고 싶다면 얼마든지 찾아오세요. 제가 가진 차도 전부 키엘이 주문해 주신 거잖아요.”
“전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차’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전부 발주했을 뿐인걸요.”
키엘이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으며 대답했다. 그의 말을 곱씹으며 잔을 들어 홀짝이던 클로에가 문득 말했다.
“그거 아세요? 사실 엄밀히 말해 카모마일은 차가 아니에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키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를 대접해 준다고 하면서 카모마일 티를 줘 놓고서는 갑자기 카모마일이 차가 아니라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키엘은 순간 마님이 농담이라도 하시는 건가 싶었지만 클로에는 진지했다.
“사실 차(tea)라고 하는 것은 차나무의 잎사귀로 만든 음료를 가리켜요.”
“아아! 알겠어요, 마님과 제가 마셨던 것이 차(tea)로군요!”
엘리가 드물게도 그녀의 말에 끼어들었다. 클로에는 그런 엘리의 의도(?)는 꿈에도 모르고, 그저 그녀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곤 말했다.
“맞아. 엘리와 내가 마셨던 것들이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차란다. 그리고 차나무의 잎이 아닌 재료로 만든 음료는 엄밀히 말해 ‘대용 차’, 혹은 ‘인퓨전(infusion)’이라고 불러.”
“그렇군요! 그럼 마님과 제가 마신 것은 차, 이번에 마신 카모마일은 인퓨전인 거네요!”
엘리가 키엘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한편 키엘은 그러는 꼬마 하녀의 의도가 너무 빤히 보여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저 꼬마, 마님을 엄청나게 좋아하긴 하는 모양이었다. 순진한 마님은 하녀가 집사를 견제하고 있는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하지만 안타깝게도 키엘은 꼬마가 그러는 걸 귀엽다는 듯 아빠 미소로 훈훈하게 바라보기만 할 만큼 성격 좋은 사람이 못되었다. 그는 꼬마 하녀의 동심을 깨주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의 융숭한 대접은 정말로 감사했어요, 마님. 혹시 무언가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신가요? 이 집사 키엘, 대단치는 않아도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릴게요.”
그가 친절한 얼굴로 클로에에게 물었다. 클로에는 순진하게 대답했다.
“으음, 차를 마실 때 쓸 티팟과 찻잔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공작저에는 커피팟과 커피잔밖에 없거든요.”
“아하, 티팟이요. 알겠습니다.”
“어머! 정말로 감사해요.”
“하하, 이 정도로 뭘요.”
클로에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집사로서의 권력(?)을 과시한 키엘은 엘리를 흘끗 보았다.
‘어때, 꼬마야. 이게 바로 너와 나의 눈높이다.’
과연, 엘리는 절망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라이벌(??)은 너무나도 강적이었다. 티팟이나 찻잔 같은 고급 수입품을 사들여 클로에에게 안겨줄 돈과 권력 따위 그녀에겐 없었던 것이다.
‘으으, 마님……! 내가 마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게 이렇게나 없다니……!’
엘리가 서글픈 눈으로 클로에를 보았으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동심이 파괴된 꼬마 하녀가 가련하게 고개를 떨구었고 키엘은 승리감을 느꼈다.
그날의 티타임 뒤 키엘은 약속대로 클로에가 쓸 다구를 주문하려고 했지만, 식기는 취향의 문제니만큼 자신이 독단적으로 주문하는 것보다는 마님이 직접 보고 고르시게 해 드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님이 내일 다구를 고르러 외출하실 거라는 내용을 알폰스에게 보고했다. 알폰스의 답변은 이러했다.
“내일은 중요한 업무가 있는 날이다. 키엘, 네가 부인을 모시고 다녀오도록.”
키엘은 이 답변을 듣고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응? 그렇다는 건 원래는 같이 가실 생각이셨다는 건가?
비록 최근 주인 부부께서 날마다 티타임을 가지시는 것을 보고 조금 친해지셨구나 싶긴 했지만, 키엘은 그것이 알폰스가 차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클로에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곤 추호도 생각지 않았다.
알폰스는 그만큼이나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자였다. 특히나 지난 13개월 동안 냉대했던 클로에에게는 더더욱.
알폰스의 답변을 듣고 그의 집무실에서 나오며 키엘은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주인 부부의 관계가 변할지도 몰라.’
알폰스를 오랜 시간 모셔온 그는 주인을 잘 알았다. 알폰스에 대한 그의 추측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이것은 그 전조일지도 모르지.’
키엘은 흥미롭다는 듯이 웃었다. 만일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대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 * *
다음 날, 클로에와 키엘은 함께 제국 제일의 항구도시에 도착했다.
제국에서는 차 문화가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 찻잎과 다구를 비롯한 관련 물건들을 구하는 방법은 수입을 제외하면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들은 항구도시에 있다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다구 전문점에 온 참이었다.
“음, 저쪽이네요. 가 보실까요, 마님?”
키엘이 말하는데, 갑자기 그들의 옆으로 거대한 마차가 하나 멈춰 섰다. 그 안에서 내린 사람은…….
“공작님!”
클로에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마차 안에서 내린 사람은 알폰스였던 것이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클로에를 쓱 보더니, 인사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업무 약속이 취소되어서 왔습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이더군요.”
아무도 안 물어본 것을 변명하듯 그리 말하더니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클로에는 그런 낌새는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반갑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어머, 그러셨군요. 운이 좋았네요!”
그러나 알폰스의 오늘 일정을 알고 있던 키엘은 그녀처럼 순진한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별로 가까운 곳은 아닐 텐데. 적게 잡아도 마차로 한 시간은 달려야…….’
그렇게 생각한 키엘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갑자기,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앗! 저, 사야 하는 물건이 있었는데 깜빡했네요. 죄송하지만 다녀올게요. 두 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어머? 키엘!”
그러고는 부리나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역시 그는 눈치 좋고 주인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집사였다.
키엘이 사라진 곳을 당황스러운 눈으로 좇는 클로에의 곁에서, 알폰스가 팔을 내밀었다. 에스코트를 해 주겠다는 식이었다.
“그럼, 가시겠습니까.”
클로에는 그런 알폰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와 외출을 하는 것도, 그에게 에스코트를 받는 것도 처음이었다.
왠지 새삼스러운 기분에 그녀가 수줍게 웃었다.
“네.”
다구 가게는 얼마 걷지 않아 나타났다.
“어머, 세상에!”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클로에의 얼굴이 스위치라도 켠 듯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얼른 알폰스의 팔을 놓고 진열장을 들여다보았다.
이쪽을 보아도 저쪽을 보아도 전부 다구, 다구들이었다.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티팟과 찻잔들, 그 외 다양한 법랑들과 또 다판과 코스터, 거름망, 사랑스러운 디자인의 인퓨저 등등 없는 것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곁에서는 알폰스가 좋은 건지 싫은 건지 모를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진짜 찻잔이야!”
이국적인 생김새의 찻잔을 집어 들고 클로에가 행복해했다. 알폰스가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진짜 찻잔? 공작저에 있는 커피잔과는 다릅니까?”
“그럼요! 찻잔은 수색과 향을 즐기기 위해 커피잔에 비해 납작하고 넓은 모양을 하고 있어요. 게다가 차의 종류마다 다구도 전부 다른데요…….”
이제 제법 알폰스가 친근해진 클로에는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얼굴로 그걸 묵묵히 들어 주던 알폰스가 문득 말했다.
“부인. 부인은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 눈이 빛납니다. 알고 있습니까?”
내버려 두면 계속 떠들 것 같았던 클로에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네? 제가 그런가요?”
“예.”
‘내가 너무 신이 나서 떠들었나?’
클로에는 뒤늦게야 부끄러움이 들었다. 그녀의 귀가 조금 붉어졌다.
그런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는 알폰스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클로에가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요 며칠 느낀 그녀는 진심으로 차를 좋아하는 것만 같았다. 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오늘은 어떤 차를 마실지 고민하거나, 그녀가 우려 준 차를 알폰스 자신이 모두 마셨을 때의 그녀는 생기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녀의 그러한 모습들은 알폰스에겐 무척이나 낯선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결코 할 수 없는 일 중의 하나였으니까.
‘어떻게 하면 저렇게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는 거지.’
그가 보기에 클로에는 꽤, 신기한 사람이었다.
“커흠, 흠, 흠.”
클로에가 놀라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헛기침을 한 건 다구 가게의 주인장이었다.
“흐흠, 흠.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부르시고, 마음껏 구경하십시오.”
그래서 클로에는 정말 마음껏 구경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가게 구석구석까지 다니며 모든 다구들을 살펴봤다.
‘역시 차를 맛있게 우리기엔 둥근 모양의 티팟이 좋지. 하지만, 기분 전환에는 특이한 디자인도 나쁘지 않아. 용량은 적당히 2인용 정도로 할까? 아니, 많은 사람들과 마실 때도 있으니까 대용량이 좋으려나? 하지만…….’
‘티팟 외의 다구들도 멋진 게 많은걸. 어머, 이 찻잔의 섬세한 음각 좀 봐.’
‘이 밀크팬 정말로 예쁜걸. 절수력도 좋아 보여. 아, 이 머들러 정말 귀엽네.’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이 중 살 것을 고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가 마음껏 구경하도록 시간을 준 알폰스가 다가왔다.
“다구가 마음에 드십니까?”
“네! 정말로요.”
클로에가 환하게 웃었다.
“이런 곳에 데려와 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녀의 반짝반짝 빛나는 듯한 얼굴을 빤히 보던 알폰스가 내뱉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시종일관 무관심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알폰스는 마침내 가게 주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주인장. 이 가게에 있는 것을 전부 주시오.”
* * *
알폰스는 다구 가게에 진열된 모든 물건은 물론, 창고에 있는 것들까지 전부 샀다. 구입한 물건들을 전부 싣기 위해 클로에와 알폰스가 탄 마차 빼고도 마차 여섯 개가 더 필요했다.
경악한 건 가게 주인뿐이 아니었다. 클로에도 경악했다. 신이 나서 오늘 장사를 접는 가게 주인을 뒤로하고 마차에 탄 클로에는 내내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인.”
알폰스가 부르는 소리에 그녀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돌아본 알폰스는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기쁘지 않으십니까?”
알폰스는 궁금했다. 클로에가 차에 대한 것을 좋아하므로, 다구를 사주면 분명 그녀가 반짝반짝 빛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클로에가 고개를 마구 가로저었다.
“아녜요, 정말 기뻐요! 정말로요. 그냥, 이래도 정말 괜찮은가 싶어서 그래요.”
“괜찮다니, 어떤 의미에서 말입니까?”
“그러니까…… 아무래도 양적으로 좀 많이 구매한 감이 있잖아요? 저택에 놓을 자리가 충분한가 싶기도 하고, 재정적으로 무리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
그렇게 말한 뒤에야 클로에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알폰스의 미간에 가느다란 금이 간 것이다.
‘아차, 자기 능력 의심하는 걸 싫어했지.’
알폰스의 그런 오만함 덕에 주문한 차가 온 날 크게 당황하지 않았던가.
“부인이 걱정할 바가 아닙니다.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구매하셔도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아, 그랬죠. 죄송해요.”
“고작 도자기 몇 개는 공작가의 재정에 티끌만 한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게 말한 알폰스는 품에서 시가를 꺼내 들었다.
‘고작 도자기 몇 개’가 아닐 텐데? 게다가 전부 외국산 수입품인데, 도자기 주전자라고는 해도 이만저만 값이 나가는 것이 아님을 클로에는 짐작하고 있었다.
알폰스는 시가 끄트머리를 잘라 불을 붙인 뒤 그 끝을 깊게 빨아들였다. 그가 뱉어 낸 연기가 마차의 열어 둔 창문 밖으로 흘러 나갔다. 그가 말했다.
“차 창고를 증축해서 다구를 놓을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구매한 것은 물론, 이후 추가 구매를 하시더라도 부족함 없을 정도로.”
“네…… 네? 증축이요?!”
클로에는 또 한 번 깜짝 놀라야만 했다. 공작저는 역사가 깊은 고저택인 데다 그 재질과 설계가 특이해 함부로 개조할 수 없는 곳이었다. 건축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클로에가 보기에도 한번 개수를 하려면 막대한 인력과 비용이 들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클로에는 딴지를 걸거나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만일 그랬다간 알폰스가 더 싫어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공작의 돈지랄은 서민인 자신과는 급이 다르구나, 생각하면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정말로 알폰스는 그 많은 다구를 꽉꽉 채우고도 남도록 차 창고를 넓히고, 차를 보관하기에 좋을 정도의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도록 개조하게 했다. 클로에는 이 일을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클로에는 차를 마실 때마다 어떤 다구를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선택 장애가 생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