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대망의 등교 첫날, 교복을 챙겨 입고 거실로 나오자 엄마 아빠랑 마세준은 식탁에 앉아 빵을 먹고 있었고, 이산초는 마세준의 발치에 앉아 제 발바닥을 깨물고 있었다.
“아 이산초, 뭐 해. 더러워. 하지 마.”
이산초는 신경 끄라는 듯 ‘냐아아’ 길게 울었다. 참나……. 뭔 말을 못 하게 하네. 콧방귀를 낀 나는 곧 마세준의 옆자리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내 앞접시에도 식빵이 올라가 있었지만, 나는 마세준이 먹던 토스트를 뺏어 들어 반을 접고는 왕- 입에 물었다. 딸기잼이 가득 배어 나오자 그제야 머리에 피가 도는 것 같았다. 역시, 아침에는 단 걸 먹어 줘야 한다. 어우, 살 것 같다.
“세상에, 저거 봐. 이잎새. 왜 세준이 잘 먹고 있는 걸 뺏어! 저거 저렇게 고약해서 어째 정말. 세준아, 쟬 어쩌니? 미안하다. 아줌마가 대신 사과할게.”
“괜찮아요, 어차피 하루 이틀 일도 아닌…….”
나는 입 다물라는 듯 마세준의 발을 살짝 밟았고,
“냐!”
엉겁결에 꼬리라도 밟혔는지, 이산초가 짧게 성을 냈다. 나는 얼른 몸을 숙여 산초를 쓰다듬으며 말 없는 사과를 건넸고, 이산초는 고개를 팽 돌리더니 거실로 걸어가 버렸다. 고개를 들자, 나와 눈이 마주친 아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눈을 깔고 빵을 마저 씹었다.
* * *
탁 소리가 나게 실내화를 내려놓고 발을 끼워 넣었다. 아침은…… 그냥 싫다. 학교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더 싫다. 진짜 오자마자 집에 가고 싶어졌다. 우리 산초 껴안고 자고 싶다.
복도를 걷는 내내 인파에 치였다. 더군다나 마세준이랑 같이 있어서 그런가, 다들 징그럽게도 쳐다봤다. 얘가 복도에서 제일 크다. 눈에 띄는 건 질색이었다. 아무래도 앞으로 얘랑 거리를 좀 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별수 없이 일단은 마세준이랑 짝을 지어 앉았다. 좀 불쌍한 이유인데…… 아는 애가 얘뿐이었다. 반면 마세준은 뭔 아는 애가 그리 많은지 남자애들이랑 인사를 수도 없이 주고받았는데, 순간 동굴에 갇힌 줄 알았다. 목소리들이 다 이상했다.
혼자 있고 싶어질 즈음, 베이지색 점퍼를 입은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자, 다들 자리에 앉고. 거기, 조용히 하도록. 선생님 이름은 최필중이다. 과목은 영어. 뭐 자세한 건 어차피 싫어도 곧 알게 될 테니 소개는 이쯤 해 두고, 이번 한 주간 임시반장과 부반장이 필요한데, 자원할 사람 있나?”
놀랍도록,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더니 출석부를 펼쳤다.
“보자, 이름 제일 예쁜 사람이 누군가 보자. 이잎새? 잎새? 음, 이잎새 손 들어 본다.”
아니, 이런 식으로 잘 맞는 거 말고요, 선생님……. 나는 속으로 탄식하며 입술을 꽉 물었다. 마세준이 옆에서 피식 웃는 게 들렸다. 짧고 강렬하게 노려보자, 마세준은 ‘뭐’ 하며 턱을 치켜들었다. 나는 표정을 갈아치우며 손을 들었다.
“저요.”
“어, 이잎새. 일주일간 반장 해라. 의의 있나.”
“있…….”
“없대요.”
마세준은 내 말을 가로채며 대답했다. 응……? 너 지금 내가 아침에 빵 한쪽 뺏어 먹었다고 이러는 거지? 어? 이 새끼, 넌 진짜 이따 뒤졌어……. 나는 이를 꽉 물며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차마 첫날부터 이미지를 조질 수는 없었다. 뒤늦게나마 항변을 하려 했는데,
“그러고 보니 여자 남자 같이 앉은 건 너희 둘밖에 없다, 너희 뭐 사귀고 그러는 거냐?”
“네에? 아닌데요!”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우리를 동그랗게 엮으며 물었고, 나는 거의 비명을 지르듯 대답했다. 반 애들은 내 대답이 우스웠는지 순식간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 이런 식으로 주목을 받는 건 정말 싫다.
“야, 빨리 아니라고 해.”
나는 잠자코 앉아 있는 마세준의 옆구리를 퍽 치며 작게 속삭였고,
“……아니래요.”
마세준은 안 하느니만 못하게 대답을 했다. 내가 오늘 발도 밟았고 빵도 뺏어 먹었고, 뭐 여러모로 죄지은 건 맞는데, 진짜 이러고 복수하는 건 아니지. 얘, 오늘 교육이 시급해 보였다. 나는 방과 후를 기약하며 폭발 직전의 분노를 겨우겨우 내리눌렀다.
그나저나, 내 예감은 보기 좋게 틀렸다. 나 저 선생님이랑 안 맞아. 안 맞는 것 같아…….
“자, 부반장은…… 보자, 보자……. 고미호? 고미호 손 들어 본다.”
그렇게 엉겁결에 내 앞에 앞에 앉은 고미호라는 애가 부반장이 됐는데, 뒤에서 봐도 엄청나게 예쁠 거란 기운이 느껴지는 애였다. 머리카락부터 예뻤으니 말 다 했다. 나중에 샴푸 뭐 쓰는지 물어봐야지…….
* * *
어떤 선생님은 기어코 수업 시간을 꽉꽉 채웠고, 또 어떤 선생님은 화통하게 첫사랑 얘기나 자기소개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반장이라고 뭐 크게 할 건 없었고, 그냥 수업 전후로 인사 열심히 하고, 가끔 프린트물이나 나눠 주면 되었다. 근데 나는 그게 그렇게 귀찮고 싫었다……. 그 외 시간에는 열심히 멍을 때리고 있자니 어느덧 종례 시간이었다.
아직 청소 구역이 정해지지 않아 그냥 닥치는 대로 청소를 했는데, 나는 빗자루로 바닥을 쓸게 됐다. 사실은 그냥 거의 제자리에서 빗자루를 쥐고 대충 휘저어 주는 수준이었다. 마세준은 책상을 뒤로 밀어 놓고 남자애들이랑 모여서 떠들고 있었다.
그래, 지는 친구 많다 이거지, 참나……. 마세준에게 화가 있는 대로 나 있었지만, 그렇다고 안 놀아 주는 건 또 그거대로 서러웠다.
“너 그래서 어디 오늘 안에 집에 가겠냐?”
신호를 잠깐 쐈더니 마세준이 또 칼같이 알아듣고 튀어 왔다. 예전에 자전거 타다가 지랄 지랄 한 이후로는 내 눈치를 곧잘 본다. 이런 놈이 아까는 왜 그 난리를 했대. 마세준은 내 빗자루를 뺏어 들더니 설렁설렁 비질을 시작했고, 나는 창틀에 기대서 바깥 구경이나 했다.
우리는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가는 내내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니, 정확히는, 마세준은 계속 시답잖은 말을 걸어왔는데, 내가 대화를 거부했다. 이게 어디 비질 한 번에 풀릴 화냐고. 즉석떡볶이 먹으러 가자는 말에도 나는 꿈쩍을 않았다.
나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마자 걸음을 멈추며 마세준을 노려봤다.
“야, 너 진짜 죽을래.”
“또 뭐.”
마세준은 눈을 되 맞춰 오며 삐딱하게 말했다. 내가 하도 말을 안 받아 주니까 이제는 자기도 좀 삐진 눈치였다.
“아까 같은 장난 치지 마라, 진짜 기분 나쁘거든?”
“네 말마따나 그냥 장난인데 왜 기분이 나쁜데.”
“왜 나쁘냐고? 안 나쁜 구석이 없거든?”
마세준은 열을 막 뿜어 대는 나를 보더니, 싱겁게 웃었다.
“안 해. 안 한다고.”
“도장 찍어.”
“뭘 또 도장까지 찍어. 나 간다.”
마세준은 나를 지나치더니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저래 놓으면 내가 교육을 교육답게 못 하는데……. 결국 화는 하나도 못 풀었다. 나는 스트레스를 잠재우기 위해 터덜터덜 아파트 상가 내 슈퍼로 걸어갔다. 초콜릿이랑 아이스크림을 한 봉지 사서 집으로 갔다.
산초한테 뽀뽀 폭탄을 퍼붓고 있는 내내, 뭔 놈의 아이스크림을 이렇게 사 왔느냐고, 눈에 보이면 자꾸 먹는데 엄마 다이어트를 이렇게 안 도와주냐고, 쉴 새 없이 투덜거리는 엄마를 뒤로하고 방으로 갔다. 손도 안 씻은 채로 침대 위에 엎어졌다. 얼핏 잠들었다가, 그렇게 남은 하루를 다 날려 먹었다.
* * *
첫날이야 워낙 기가 빨려서 녹다운됐지만, 사실 중딩이라 봐야 뭐 초딩 때랑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그냥 생소한 과목이 몇 생겼고, 모르는 애들이 엄청 많다는 정도였다. 아, 뻣뻣한 교복은 역시 좀처럼 적응이 안 됐다. 그리고 스타킹도. 신나서 발톱을 세운 산초가 좀 치대면 어김없이 후두두 구멍이 나거나 올이 나가서, 아침마다 산초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
아직 반 애들 이름은 다 못 외웠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니 괜찮았다. 주변에 앉은 애들이랑도 꽤 친해졌다. 특히 앞에 앞에 앉은 고미호랑도 같이 반장 부반장 일을 하며 많이 가까워졌다. 성격 화통하지, 얼굴 예쁘지, 게다가 아침마다 곱게 썬 사과를 가져와서 나한테만 나눠 주는데, 천사인 줄 알았다. 먹을 거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랬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세요.”
나는 여느 때처럼 기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래도 이 거지 같은 반장 짓도 오늘로 마지막이었다. 자리에 철퍼덕 앉았는데, 마세준이 초콜릿을 하나 던져 줬다. 조그만 초콜릿도 아니고, 은박지랑 종이에 싸인 커다란 초콜릿이었다.
‘뭐냐.’
그렇게 입모양으로 물어봤는데, 마세준은 그냥 수업이나 듣겠다는 듯 앞만 봤다.
수업 시간 종료를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나는 마세준의 팔을 잡고 물었다.
“야, 이거 웬 거야?”
“몰라, 나도.”
마세준은 진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너 지금 어디서 난 건지도 모르는 걸 나 먹으라고 준 거냐?”
“몰라. 서랍에 들어 있었어.”
내가 홱 쏴 대자, 마세준은 나를 픽 돌아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헐…… 설마 이 새끼, 벌써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가. 나는 자꾸 올라가는 광대를 붙잡지 못했다. 그건 곧 나의 행복을 의미했다. 엄청난 선물 공세를 다 내가 인터셉트할 수 있었다. 얘는 단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사탕에 초콜릿에 마카롱에 뭐 오만 주전부리를 내가 다 뺏어 먹어도 별 반응이 없었다.
앞으로 성질 좀 덜 부리고 잘해 줘야지……. 그래, 긴 겨울방학 때문에 잠시 마세준의 위력을 잊고 있었다. 그걸 까맣게 잊고 꼴랑 사탕 좀 주면서 밸런타인데이에 궁상을 떠느니 마느니 그 건방을 했으니, 얼마나 내가 웃겨 보였을까. 세준아, 내가 이제 진짜 잘해 줄게.
“자, 금요일이니까 뭐, 청소는 월요일 아침에 와서 대충 하도록 하자. 다음 주에는 반장 부반장 선거가 있겠고. 자리도 배치해서 앉도록 하겠다. 주말이라고 너무들 신나서 돌아다니지 말고, 항상 차 조심하도록. 끝!”
정정한다. 최필중 선생님은 빠른 종례를 지향한다는 점에 한해서는 나랑 참 잘 맞았다. 덕분에 우리 반은 오늘 제일 먼저 교문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마세준은 자기네 집으로 가는 대신 라면이나 먹자며 우리 집으로 왔다. 우리는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TV를 볼 겸 거실에 앉아 있었다. 마세준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이산초는 마세준 허벅지에, 나는 바닥에 앉아서 소파에 머리카락을 널어놓고 있었다.
“하지 마.”
“뭐가.”
TV 선반 유리로 마세준이 내 머리카락을 갖고 노는 게 훤히 보였다. 아주 손에 감았다가 문질렀다가 여한이 없이 가지고 놀았으면서. 입에 침이나 바르고 구라를 쳐라, 진짜…….
“너 머리카락 또 건드리기만 해.”
“산초가 그랬겠지. 난 안 그랬는데.”
“아오! 저기 다 반사돼서 다 보이거든?”
내가 말을 말지. 마세준은 자기 정말 아니라는 듯 딱 잡아떼고 있었고, 나는 그걸 상대하느니 라면이나 끓이자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 버렸다.
거품이 막 올라오려 하기에 건더기 수프랑 분말 수프를 넣었더니 부글부글 물이 끓어올랐다. 면을 넣고 신나게 휘젓고 있는데, 마세준이 주방으로 와 냉장고에서 김치랑 오이소박이를 꺼내 접시에 옮겨 담았다.
이산초는 코를 킁킁대며 식탁 위로 올라오더니, 매운 냄새에 코를 한 번 찡그렸다. 그러고는 븍- 소리를 내며 다시 바닥으로 내려갔다. 라면은 오늘따라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설거지 가위바위보.”
“콜.”
내가 제안하자, 마세준은 흔쾌히 응해 왔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내가 이겼다. 빠 낸 다음에 묵 내는 레퍼토리는 대체 언제 버릴는지. 나는 첫판에는 빠를 내서 비겨 주는 은혜를 베푼 후에, 또 빠를 냈다. 마세준을 이기려면 그거면 된다.
* * *
“야, 너 그거 왜 그러냐?”
나는 식탁 의자를 빼 앉으며, 내 오른쪽 턱을 톡톡 두드렸다. 마세준은 아침부터 얼굴에 웬 밴드를 하나 붙이고 나타났다. 얘가 뭐 길 가다 자빠질 애도 아니고, 싸움박질하고 다닐 애도 아닌데. 마세준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대답을 피했다. 어쭈…….
“어? 어쩌다 그랬냐니까?”
나는 얼굴을 들이밀며 대답을 종용했다. 아니, 왜 사람이 물어보는데 말을 안 해? 이럴 때마다 속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이잎새, 넌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면도하다가 그랬대. 세준이 그만 귀찮게 하고 얼른 밥이나 먹어.”
사람이 묻는 데 말 한마디 없는 마세준을 혼내는 게 더 상식적인 처사로 보이건만, 엄마는 단호한 목소리로 나를 꾸짖었다.
“아, 면도……. 난 또 뭐라고. 아주 지 혼자 어른 흉내는 다 내고 있네.”
“너! 혼나 진짜! 엄마가 너 말할 때 생각 좀 하고 말하라고 몇 번을 말해! 어우, 어우……. 세준아, 미안하다. 응? 다 부모가 잘못 키워 저래.”
엄마는 두가 울린다는 둥, 자식 하나 있는 걸 저리 키웠으니 인생 헛살았다는 둥, 이마를 짚으며 어지러운 척을 했다. 나는 잼을 퍼서 빵 위에 얹었다. 근데 별생각 없이 퍼 놓고 보니 잼이 한강이었다. 이대로는 달아서 못 먹겠다 싶어서, 마세준 빵 위에다 잼을 좀 덜어 냈다.
“이잎새!”
“아, 내가 뭐! 맛있게 먹으라고 발라 준 건데.”
엄마는 결국 정수기로 달려가 얼음물을 들이켰다.
* * *
쉬는 시간, 멀뚱히 앉아서 펜을 돌리고 있는데, 등에 뭐가 닿는 것 같기에 앉은 자리에서 뒤를 돌았다.
“뭐야?”
“아, 미안. 여기 털이 묻어서.”
임성재라고, 새로 선출된 우리 반 부반장이었다. 그냥 가끔 여럿이 수다나 떠는 정도였지, 등에 털 묻은 거 떼어 줄 친분은 아닌데……. 나는 고개를 몇 번 까딱이고는 다시 앞을 봤다.
“근데 너 혹시 고양이 키워? 털이 고양이 털 같은데.”
임성재는 영 심심한 모양이었는지 다시 말을 걸었다. 뭐, 고양이 얘기라면……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지. 나는 얼른 몸을 돌렸다.
“어.”
“몇 살인데?”
“대충 한 살. 애기 때 산에서 데려온 거라 정확히는 몰라.”
“그래? 그럼 아직 엄청 까불겠네. 우리 집 고양이는 일곱 살인데.”
“헐, 그럼 같이 산 지…… 7년이나 된 거네?”
나는 손가락을 접어 햇수를 셈하며 물었다. 임성재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곧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배경 화면이 냥이 사진이었다.
“세 살 때 보호소에서 데려왔어. 완전 뚱냥이.”
“대박. 진짜 귀엽다. 아, 배 만져 보고 싶어. 이름이 뭐야?”
나도 모르게 낑 소리를 내며 임성재의 휴대폰 화면을 조심조심 만졌다. 털이 빵빵하게 쪄서는 배를 까놓고 일광욕을 하고 있었는데, 진짜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었다.
“임자.”
“야, 냥이 이름이 그게 뭐냐.”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수업 종이 울려 얼른 몸을 앞으로 돌리려는데, 옆 분단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마세준과 잠깐 눈이 마주쳤다. 뭘 째려봐. 소리 없이 말하고는 뻐큐를 날려 줬다. 마세준은 빡친다는 듯이 이를 꽉 물었다. 크, 내가 이 맛에 산다. 정말이지, 마세준을 빡치게 할 수 있다면 난 뭐든 할 수 있었다.
* * *
“아, 빨리.”
“하……. 또 뭐 때문에 그러는데.”
“아, 가 보면 안다니까. 빨리, 나 현기증 나. 진짜로.”
나는 마세준의 팔을 억지로 잡아당기며 정차 벨을 눌렀다. 집으로 가려면 두 정거장 더 가야 하는데, 마트에 가려면 여기서 내려야 했다.
“가. 아, 간다고.”
나는 마세준의 가방끈을 쥐고, 초콜릿/젤리/사탕 코너로 직진했다. 오늘은 3월 13일, 고로…… 내일은 3월 14일 화이트데이라는 소리다. 내가 지난 2월 14일 잔잔하니 떡밥을 깔아 둔 것은, 다- 내일을 위한 청사진이었다.
“나, 이거.”
“……?”
마세준은 눈썹을 세우며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난 이거로 하겠다고. 번거롭게 안 골라도 되고, 얼마나 좋아.”
“사 달라고?”
“아니, 그게 아니고. 네가 사서, 나를 줘.”
마세준은 제 이마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마음에 참을 인을 새기고 있는 것 같았다. 선수를 쳐야 한다.
“야, 너 밸런타인데이에 홀랑 받아먹어 놓고 설마 의리 없게 쌩 깔 생각인 건 아니지? 그게 뭐 일 년이 지났어, 이 년이 지났어. 딱 한 달 전이다. 내가 너 성가실까 봐 미리 골라 놓기까지 했는데, 이 정성을 참작해서라도 네가 성의를 보여야지.”
마세준이 입술을 달싹거리자, 나는 속사포처럼 말을 쐈다.
“물론, 뭐, 그걸 거의 다 내가 먹기는 했어. 어. 근데, 네가 기분이 좋았잖아. 그치? 내 덕에 혼자 궁상 안 떨고, 얼마나 좋았겠어.”
엄밀히 말하자면 마세준이 궁상떨 일이야 절대로 없었지만, 유야무야 몰아치는 통에 내 말을 제대로 듣지도 못했을 거다. 마세준은 한숨을 쉬어 제 앞머리를 후- 날리더니…….
“이거? 이거야?”
내가 삿대질하고 있는 바구니를 집어 들었다. 나는 완전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먼저 나가 있을 테니까, 계산하고 나와.”
“뭐?”
“아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니야. 꼭 내가 너 협박해서 받아 내는 것 같잖아. 그러니까 사서 나오라고. 1층에서 기다린다.”
마세준의 오라가 슬슬 까매지는 게 보여서, 나는 얼른 여자 화장실로 튀었다.
* * *
이튿날 학교에 가자, 애들이 고미호 책상에 우르르 몰려 있었다. 흘끔 보니까, 와, 바구니를 놓을 데가 없어서 바닥에까지 늘어놓고 있었다. 아, 맛있겠다……. 마세준이 준 것 좀 몇 개 챙겨서 들고 올걸. 나는 입맛을 다시며 쓸쓸히 내 책상으로 갔다.
그런데, 정말 뜻밖에도, 내 책상 위에도 초콜릿이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콧구멍 평수 관리에 실패한 채 혼자 시시덕댔다. 대박……. 잘 먹겠습니다. 누가 준 건지 뭐 굳이 알 필요가 있나.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
얼른 까서 입에 넣으려는데, 덜커덩 소리를 내며 마세준이 내 앞자리에 나를 마주 보고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다.
“뭐.”
나는 마세준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거 나 줘.”
“이걸 왜 널 줘? 내 거야. 내가 받은 거야.”
“달라고, 먹게. 먹고 싶어.”
“아, 사 먹으면 되잖아. 그리고, 네 책상에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거 다 알거든?”
내 반박에도 불구하고 마세준은 꿈쩍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빌어먹을 양심이 나를 계속 흔들었다. 아침에 마세준이 가져다준 바구니가 얼마나 컸는지를 생각하자, 이거 한 입 안 주면 나는 인간도 아닌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울상을 찌푸리며 한 칸을 잘라서 건넸다.
“됐지?”
마세준은 초콜릿 한 줄을 냉큼 가져가더니, 한입에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또 뻔뻔하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지금…… 더 달라는 거야?
“야, 너 단 것도 안 좋아…… 야!”
마세준은 대뜸 내 손에 들린 초콜릿을 통째로 낚아채더니,
“좋아하는데.”
이러고 순식간에 교실 밖으로 뒤꽁무니를 뺐다. 나는 번개같이 일어나 그 뒤를 쫓았다. 그러나 별 소용은 없었다. 저 꺽다리 새끼, 아무리 뛰어도 안 잡힌다. 계속 간격만 벌어지고 내 체력만 축난다. 아오, 아오!
나는 결국 포기한 채 교실로 돌아와 앉았다. 너무 격렬하게 뛰어서 이마에 땀이 배어 나올 지경이었다. 지금쯤 저 새끼 배 속에 들어앉아 있을 내 카카오 열매들을 생각하자니, 당장이라도 뚜껑이 열릴 것 같았다.
그래서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너 진짜 죽었어}
{각오해}
{방과 후에 옥상으로 와라}
{아니 우리 집으로}
잠시 뒤, 마세준이 홀가분한 걸음으로 교실로 들어왔다. 저 새끼는 땀도 안 나나 보다.
옥상이고 우리 집이고 나발이고, 거기까지 갈 것도 없었다. 우리는 학교 정문을 나서자마자 고래고래 싸워 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잘못을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잘못한 건 맞는데,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지는 모르겠다고.”
“다시 생각해 보고 대답해.”
“그거 하나 못 먹은 게 그렇게 억울하냐? 내가 더 큰 거 줬잖아.”
나는 너무 억울해서 주먹까지 쥐었다. 마세균 말도 얼추 맞는 말이라 더 빡쳤다.
“그건 그거고! 왜 내 걸 부득불 뺏어 가서 먹냐고, 넌 오늘도 쏟아지게 받았잖아. 여자도 아니면서!”
“그것도 다 너 줬잖아.”
“이것도 다른 얘기지. 내가, 어? 그거 달랑 하나 받은 건데, 그걸 왜 뺏어 가. 단 거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말을 하다 보니까 슬슬 복받친다. 괘씸해도 너무 괘씸했다. 자기 책상에 있는 건 먹지도 않고 다 나 줬으면서, 내가 받은 초콜릿은 왜 뺏어 가냐고.
“너는 맨날 넘칠 만큼 받으니까 모르겠지만, 나는 유일하게 그거 딱 하나 받았어.”
“그럼 내가 준 건 뭔데.”
“…….”
“어? 그건 뭐가 되냐고.”
“이 씨, 그게 카운트가 돼? 거의 멱살 쥐고 받아 낸 게?”
마세준은 턱을 한 번 악물더니, 그대로 뒤를 돌아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홀로 몸을 실었다. 그제야 정신이 팍 들었다. 쟤, 진짜 빡쳤다. ‘나 간다.’ 이 말 안 하고 갈 때는, 진짜 진짜 진짜 빡이 친 거다.
“야! 나 오늘 카드 안 가져왔단 말이야. 혼자 가면 어떡해. 찍어 줘.”
마세준은 재주가 좋다. 뒤통수로도 화를 낼 수가 있다. 나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버스 계단에 발을 디뎠다.
“학생 둘이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빈자리에 앉기에, 나는 얼른 그 옆에 가 앉았다.
“자리 많다. 저리 가라.”
“아, 뭐가. 내 맘이야.”
마세준은 더 대답하는 대신 그냥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몰래 돌아보자, 여전히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그래…….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시키는 대로 다 해 줬더니, 네 건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러면…… 나 같아도 빡친다. 일단 이럴 땐 수그려야 했다.
* * *
내가 허구한 날 저 지랄을 하고도 마세준과 사이가 썩 나쁘지 않은 이유는, 마세준이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얜 다음날이면 거의 다 까먹는다.
나는 산초 간식을 사 들고 온 마세준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아주머니는.”
“몰라, 무슨 꽃놀이 간대. 꽃도 하나도 안 폈는데.”
마세준은 겉옷을 식탁 의자에 걸쳐놓으며 물었고, 나는 괜히 찔려서 나름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산초, 이리 와.”
마세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산초를 천장까지 안아 올렸다.
“이산초, 간식 먹을까.”
아까부터 비닐봉지에 정신이 다 팔려있던 산초는, 그런 건 애초에 묻는 게 아니라는 듯 대차게 크릉크릉거렸다.
“뭐 먹고 싶어. 연어 먹을 거야?”
마세준이 식탁에 간식을 늘어놓자, 탁- 이산초가 식탁 위로 안착했다. 킁킁 냄새를 맡더니, 연어 캔에 코를 비비는 것으로 간택을 끝냈다.
마세준은 캔을 따 그릇에 옮겨 주고는, 내가 앉아 있는 소파로 와 앉았다. 그러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하나 꺼냈다.
“자.”
어제 내가 뺏긴 초콜릿이랑 똑같은 초콜릿이었다. 이번에는 진짜 좀 미안했다. 지랄은 내가 다 했는데.
나는 머뭇거리다 그걸 받아 들었고, 마세준은 말없이 TV를 켰다.
* * *
“마세준, 그러지 말고 오늘만 좀 껴라. 2학년 형들이랑 붙는데 너 없으면 백타 져.”
교실 뒤편에서 조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용호였다. 거의 반쯤 농구에 미쳐 있는 애로, 1학년 최장신인 마세준을 입학 이래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닌다. 농구부 들자고.
“안 돼, 집에 가야 돼.”
하지만 마세준은 단호했다. 농구부는커녕 게임 한 판 같이 뛰자는데 가열하게 튕겼다.
“야, 진짜. 오늘만이라도 빼지 말고 좀 같이 뛰자. 어? 한 시간이면 된다는데 그걸 못 해 주냐.”
“농구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었냐. 내일 점심시간에 해.”
“이 새끼는 집에 무슨 꿀단지를 감춰 놨길래 이러냐. 더럽게 빼, 진짜.”
이제 최제훈까지 가세해서 마세준을 꼬드기려 들었지만, 마세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양이 쥐 눈물 생각하듯 나랑 같이 집에 가겠답시고 저렇게 버티고 있을 거란 추측이 가능했다. 에이 씨, 진짜 그놈의 마세준 겁나게들 찾네. 어디 찔려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나 오늘 애들이랑 놀기로 했음}
{먼저 가}
화장실에 가는 척 교실을 빠져나온 뒤, 있지도 않은 약속을 만들어 마세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집에 혼자 가는 건 진짜 싫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마세준의 교우 관계까지 망칠 수는 없었다. 쟤 성격에 ‘농구 해야 되니까 먼저 가.’ 이런 말은 절대 안 할 거란 걸 아니까.
기껏 일은 벌여 놨는데, 혼자 버스 갈아타 가며 집에 갈 걸 생각하자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그때 진동이 울렸다.
[뭐냐]
[누구랑 노는데]
마세준에게서 답장이 연달아 왔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괜히 특정 인물 말했다가 뻥인 거 들키면 쪽팔리는 건데…….
{몰라도 됨}
그래서 그냥, 이쯤 해 두기로 했다. 뭐 어련히 알아듣겠거니 하고. 내친김에 사진첩을 열어서 산초 폴더를 열었다. 흑흑……. 발바닥을 확대하자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힝, 오늘 가서 뽀뽀 백 번 해야지.
그렇게 다시 교실로 돌아가는데, 앞에 선 누군가에 의해 몸이 가로막혔다.
“미안.”
짧게 사과를 건넨 뒤 얼굴도 안 보고 옆으로 지나쳐 가려던 와중에, 또 시야가 막혔다.
“너 왜 대답 안 해.”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은 마세준이었다. 저 결연한 눈은 또 뭐야.
“누구랑 약속 있냐고.”
“아, 왜 이래.”
나는 반걸음 뒤로 몸을 물리며 짜증을 냈고, 마세준은 한껏 굳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임성재 그 새끼야?”
“에? 웬 임성재. 아닌데?”
“그럼 누군데.”
난 친구 있으면 안 되냐? 이 새끼 왜 이렇게 끈질겨? 하……. 거짓말 고자 유전자를 탑재한 주제에 내가 너무 무리수를 뒀다. 그냥 대충 미호 만난다고 둘러댈걸.
“에이 씨, 넌 내가 가물에 콩 나듯 배려를 해 줘도 어떻게 그걸 못 받아먹냐?”
이제 와 뭐 딱히 할 말도 없고, 나는 애초에 거짓말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진실을 고했다.
“뭐?”
“내가 친구가 어딨어. 그냥 너 농구나 하라고 그런 거지. 네 친구들이 너 있어야 한다잖아.”
나는 바닥을 보며 툴툴댔다. 쪽팔리게. 꼬치꼬치 캐묻고 있어. 마세준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약속 같은 거 없다고. 나 먼저 집에 갈 테니까, 넌 농구나 실컷 해.”
그렇게 말하고 뒤를 도는데, 마세준이 내 손목을 쥐었다. 나는 별수 없이 다시 마세준의 얼굴을 쳐다봤다.
“기다려, 그럼.”
내가 왜 이러냐고 묻기도 전에 마세준이 말했다. 뭘 기다려.
“뭐?”
“네가 나 기다려 주면 되잖아.”
“그동안 나는 뭐 하라고.”
“앉아서 나 응원해.”
응원이라도 맡겨 놨나, 태연하게도 말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좀 아니꼬웠지만……. 뭐, 그것도 괜찮은 생각 같았다. 집에 혼자 가느니……. 하지만 그냥은 안 되고.
“그럼 나 사탕 또 사 줘. 그럼 생각해 볼게.”
나는 마세준을 올려다보며 당당히 요구했고, 마세준은 조금 멍한 표정으로 나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왜, 너무 뻔뻔해서 말이 안 나오냐?
“사 줄 거냐고.”
대답이 없기에 재촉하듯 다시 묻자, 그제야 마세준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어……. 이거 그냥 심심풀이 농구 경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방과 후인데도 불구하고 구경하는 애들이 장난 아니게 많았다. 마세준 이름이 쩌렁쩌렁 농구 코트를 메우는 동안, 나는 미호랑 나란히 구령대에 앉아 있었다.
“마세준 인기 장난 아니네.”
먹을 것만 우르르 받아 오는 줄 알았더니, 농구 봐 주는 애들도 있었겠다……? 내가 새삼스레 놀라 중얼거리자, 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내 눈엔 김용호가 훨씬 멋있는데.”
“김용호? 기임요옹호오? 너 그래서 맨날 남아서 농구 보는 거였어?”
나는 미호의 얼굴을 능청스럽게 바라보며 말꼬리를 잡았고, 미호는 뭐 문제 있냐는 듯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다시 농구 코트 위로 던졌다.
“봐. 키도 별로 안 큰데 날아다니잖아, 형아들 다 젖히고. 쟤는, 애가 기개가 있어. 빠이팅이 있다고.”
미호는 반쯤 홀린 상태로 김용호를 바라봤다. 나는 미호의 취향에 영 공감하기 어려워, 그냥 잠자코 있었다. 미호 성의를 생각해서 잠깐 김용호를 들여다보기는 했는데, 그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지나가는 중딩1 같은데…….
“하기야, 네 눈이 보통 높겠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미호가 툭 말을 던졌다. 표정 관리를 잘 못 한 것 같아 미안했다. 악의는 없었는데. 괜히 머쓱해져서 애먼 바닥만 슬슬 긁고 있는데, 미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나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
“어, 뭔데?”
“너네는 왜 안 사귀어?”
‘너네’라고 한다면 일단은 나와 누군가를 엮어 묻는 것일 테고, 그럴 만한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 봐야…… 마세준뿐이었다.
“내가 쟤랑 왜 사귀어?”
마세준을 떠올린 내가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하자, 미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고는 은근하게 웃었다.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네?”
“그런 질문을 한두 번 받아 본 게 아니거든. 근데, 우리 네 살 때부터 친구야. 뭐 중간에 몇 년 떨어져 지내긴 했지만.”
“그럼, 사귀면 안 돼?”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우린 그냥 친구가 아니야. 불알친구라고.”
“으음.”
미호는 미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눈으로 김용호를 쫓았다. 쿼턴지 뭔지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주어졌고, 물을 마시던 마세준과 눈이 마주쳤다. ‘빨리 끝내라.’ 내가 오른손 검지로 왼쪽 손목을 두드리자, 마세준은 피식 웃으며 물 뚜껑을 닫았다. 마세준이 웃자, 몇몇 애들이 막 꺅꺅거렸다. ……세상엔 참 특이한 애들이 많다.
* * *
요란스러운 농구 경기는 1학년 팀이 3점 차로 패배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래도 1학년 팀의 전반적인 경기력은 결코 얕잡아 볼 것이 아니었다. 미호 말마따나 김용호도 제법 파이팅이 넘쳤고, 2학년들의 저열한 태클만 아니었다면 아마 마세준도 골 서넛쯤 더 넣었을 거다.
아니, 2학년들도 그렇지, 한 살이나 더 처먹고 그러고 싶을까? 본의 아니게 억지로 눌러앉아 경기를 보기는 했지만, 막상 간발의 차로 지고 나니 퍽 아쉬웠다. 그러나 정작 경기를 마친 마세준은 홀가분하고 상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편의점에 들렀다가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나는 소파에 누워 마세준이 사 준 젤리를 뜯어 먹고 있었고, 마세준은 거실 러그에 드러누워 있었다. 나는 지금 저기서 뒹굴뒹굴하고 있는 저 인간이랑, 아까 농구 코트 씹어 먹던 그 인간이랑 진짜 같은 인간이 맞나 싶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미호는 김용호가 날아다녔다지만 정말 날아다닌 건 쟤다. 농구는 또 언제 배웠는지.
“야, 농구 그거 뭐가 재미있어서 하는 건데?”
“별 재미는 없어. 그냥 하자니까 하는 거지.”
재미도 없는 걸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 또 무슨 경우래.
“그럼 넌 뭐가 재밌는데?”
“딱히 재밌는 건 없어.”
싱겁냐, 애가. 물을 마시던 산초가 타닥타닥 발톱 소리를 내며 다가왔고, 마세준은 얼른 산초를 잡아채 안았다.
“산초, 이산초. 오늘 뭐 했어. 뭐 하고 놀았냐고, 인마.”
마세준은 산초의 코를 톡톡 만지면서 참 길게도 물었다.
“걔가 묻는다고 대답을 하냐?”
“하지, 왜 안 해.”
마세준은 산초를 가슴팍에 눕혀서는 고개를 들어 쪽쪽, 뽀뽀를 했다. 저게…….
“이산초 지 입으로 자기 발 핥아. 그 입에 대고 뽀뽀를 하고 싶냐?”
“너도 하잖아.”
마세준은 누운 자세로 산초를 아예 번쩍 안아 들더니, 움- 마 하고 뽀뽀를 했다. 나는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켜 앉은 뒤, 쿠션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알면서 왜 하는데! 내 이산초야, 나만 할 거라고!”
“얘가 왜 네 산초야. 공동 명의인데.”
그러더니 보란 듯이 뽀뽀를 또 했다. 짧게 여섯 번. 나는 행여나 산초가 맞을까 봐 쿠션을 던지지도 못하고 씩씩거렸다. 마세준은 내 꼴을 보며 웃더니, 갑자기 얼굴을 싹 굳힌 채 등을 돌려 누웠다.
“잘 좀 앉아 있어라. ……보여.”
“뭐?”
“……팬티 보인다고.”
그러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차 싶어서 쿠션을 다리 위에 얹었다가, 쿵쾅거리면서 내 방으로 갔다. 아이 씨, 무슨 개망신이야 진짜. 저 새끼는 차라리 그냥 모른 척을 하지. 그걸 왜 굳이 또 얘기를 해 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쪽팔리게 만들어.
방에서 자주색 고쟁이를 껴입고 나오자, 정자세로 누운 마세준은 제 팔뚝으로 눈을 가리며 웃기 시작했다. 귀가 겁나 빨갰다. 나는 그걸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고고하게 팔짱을 낀 채 마세준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 봤어. 안 봤어!”
마세준은 팔을 거둔 뒤, 웃느라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아직도 얼굴에 웃음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재밌냐? 어? 재밌냐고.
“안 봤어.”
“너 확실히 말해. 봤어, 안 봤어.”
“안 봤다고. 안 보였어.”
“뭐어? 안 보여어? 보려고 했는데 안 보였다는 소리야?”
“안 봤다고. 의심 좀 하지 마. 보이려고 하길래 말한 거야.”
마세준은 억울하다는 듯이 단번에 몸을 일으켜 앉더니, 호소하듯 얘기했다.
“너, 뻥 아니지?”
“뻥 아니야. 안 봤고, 안 보였고, 안 볼 거야.”
나는 그제야 팔짱을 풀며 분노를 한 김 식혔다. 앞으로도 안 보겠다는 의지까지 내비쳤으니 이쯤 해 두면 될 성싶었다.
“그럼 됐고. 나 배고파, 카레 먹자.”
그렇게 말하고 주방을 향해 걷는데, 여태 앉아 있던 마세준이 또 피식피식 웃었다.
“너 그 바지 좀 어떻게 안 되겠냐.”
“이게 뭐. 얼마나 편한데.”
나는 냉장고에서 당근을 꺼내며 대답했고, 마세준은 마른세수를 몇 번 하더니 주방으로 왔다. 산초가 대번에 따라와서 무릎에 코를 비볐다. 얼른 간식 좀 내놔 보라는 뜻이었다.
* * *
해가 게으름을 피우며 느릿느릿 지면으로 몸을 늘어뜨리는 토요일 오후, 나는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고 있었고, 이산초는 베란다 캣타워에서 늘어져라 낮잠을 자고 있었고, 마세준은 소파에 기대어 테이블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야.”
나는 마지막 남은 과자를 입에 털어 넣으며 웅얼대는 목소리로 마세준을 불렀다.
“왜.”
마세준은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설렁설렁 답했다. 무슨 인간이 책을 한 번 잡으면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꼼짝을 않냐.
“태규유네 엉이 어우대앴나?”
“전쟁 났냐. 다 먹고 말해.”
마세준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나는 바쁘게 과자를 씹으며 마세준을 노려봤다. 나는 지금 과자를 먹는 것이 아니다, 마세준을 씹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화가 좀 풀렸다.
과자를 삼킨 나는, 한쪽 손으로 소파를 짚고 테이블 위의 주스 잔으로 손을 뻗었다. 이게, 닿을 듯 안 닿으면 더 도전 정신이 불탄다. 입술까지 물어 가며 버둥대는데, 마세준이 주스 잔을 잡아채 넘겨주었다. ‘아이 씨, 내가 잡으려고 그랬는데.’ 나는 작게 툴툴대며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최규훈네 형이 서울대랬나?”
“그럴걸.”
“오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나는 잽싸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고, 연락처에서 최규훈의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최 씨면 한참 저 밑이라, 화면을 오르내리는 손가락이 바빴다.
“그건 왜.”
마세준은 마침내 책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슬슬 수학이 딸리는 것 같아서. 요즘엔 수업 시간에 뭘 듣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거든.”
“그러니까, 근데 왜 최규훈네 형을 찾아.”
“아, 과외받을 수 있나 물어보려고 그래.”
나는 급 짜증을 내며 마세준을 노려봤고, 마세준은 못마땅한 얼굴로 책을 집어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으며 나를 쳐다봤다.
“야, 그 형 바빠.”
“물어나 보자는 거지.”
“그 형 인문대야. 수학 못 해.”
“야, 서울대 다니는데 중딩 수학이야 껌으로 하겠지.”
“물어보나 마나야. 서울대 다니는 형이 뭐가 아쉬워서 중딩 나부랭이 과외를 해 주냐.”
내가 툴툴대자, 마세준은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니, 지가 최규훈네 형아 수호자야 뭐야. 내가 뭐 잡아먹겠대?
“그건 최규훈네 형이 알아서 할 일이지! 왜 네가 난리야. 누군 뭐 잘 모르는 사람한테 과외받고 싶은 줄 아냐? 주변에 과외받을 만한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지.”
“내가 알아.”
“뭘.”
마세준은 여상한 표정으로 말을 잇더니, 다시 책을 펼쳤다.
“과외 할 만한 사람, 안다고. 그 사람 수학 잘해.”
“그래?”
“어. 아마 저렴하게 해 줄걸.”
“진짜? 그럼 나 다리 놔 줘.”
“그래.”
마세준은 순순히 대답했고, 순간 저 새끼가 웬일인가 싶었지만, 설마 이런 거로 장난을 칠까 싶어 그냥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 * *
[11시]
[과외]
아침에 눈을 떠 마세준의 문자를 확인한 나는 호들갑을 떨며 욕실로 달려갔다. 아무리 과외 선생님이라지만, 씻지도 않은 몸으로 스승님을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갈한 마음으로 목욕재계를 하고 나오자, 벌써 10시 57분이었다. 나는 머리도 말리지 못한 채 옷을 욱여넣었고, 옷에서 목을 빼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호다닥 달려가 문을 열었다. 마세준이 서 있기에, 문을 더 젖혀 활짝 열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야, 왜 네가 왔어? 선생님은?”
“내가 선생님인데.”
마세준은 달랑 문제집 두 권이랑 샤프 한 자루를 들고는 뻔뻔하게 말했다. 아니, 이게 말이야 방귀야? 나는 거대한 분노에 압도당해 순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울컥 날카롭게 말을 쏘았다.
“야,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아니.”
마세준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내려다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스치는 얼굴에 조소가 잠깐 보였던 것 같은데.
“이산초, 뭐 하고 놀았어. 뭐? 누나가 하나도 안 놀아 줬어? 저 누나 안 되겠네. 산초, 그럼 형네 집에 갈까. 형이랑 살까.”
“야!”
나는 세월 좋게 산초랑 노닥거리는 마세준 앞으로 다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산초가 깜짝 놀라 귀를 뒤로 눕혔다. 죄 없는 산초에게는 미안했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나는 진지하게 부탁한 건데 이러고 장난을 치고 싶냐? 엄마가 더 알아본다는 거, 벌써 소개받았으니까 그럴 거 없다고 했단 말이야. 왜 사람 속을 긁어? 나는 진짜 수학 때문에 돌아 버리겠는데.”
“장난 아니야. 아주머니께도 며칠 전에 말씀드렸어. 나한테도 도움 되는 일이고. 너 봐 주면서 나도 한 번 더 공부하는 거니까.”
마세준은 산초를 내려놓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거실 테이블로 가 앉았다. ……진짜 장난이 아닌 모양이었다.
“엄마는 그런 소리 안 했는데.”
“내가 아무 말씀 마시라고 했어. 일단 한번 들어 보고 결정하던가. 회당 오천 원.”
“오천 원이라고?”
“어.”
나는 주저하며 마세준 앞에 무릎을 세운 채 앉았다. 아직 엉덩이를 대고 앉기에는 저 자식이 다분히 의심스러웠다.
“잘 못 해도 친절하게 가르쳐줄 거야?”
마세준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일단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럼 한번 가르쳐 보던가.”
그렇게 오천 원짜리 과외가 시작됐다.
“씨, 또 틀렸네. 이건 왜 틀린 거야?”
마세준은 샤프를 돌리며 연습장을 응시하더니, 샤프 끝으로 문제를 짚어 냈다.
“음……. 나머진 잘했어. 근데 여기서 계산이 틀렸어. 상수항이 음수인데 그대로 더했잖아. 49에 14를 더할 게 아니라, 마이너스 14를 더해야지.”
마세준은 나름 자상하게 말해 준답시고 애를 쓰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빈정이 상했다. 쪽팔려. 비슷한 문제를 대체 몇 번을 틀리냐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에 코를 박았고, 마세준은 옅게 웃었다.
“웃지 마. 나라고 못 하고 싶어서 못 하는 줄 아냐.”
여태 한 단원만 훑고 있는 데도 성에 차지 않았다. 게다가 기껏 잘 풀어놓고 사소한 데서 실수를 하니까 더 열 받았다. 나는 화낼 기운도 없어서 웅얼거리듯 말했고, 마세준은 별말 없이 책장을 넘겼다.
“하다 보면 느는 거지. 천천히 해.”
있는 자의 여유란 언제나 재수 없다. 나는 속으로 마세준에게 욕을 퍼붓다가,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책을 들여다보기는커녕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기도 싫었다.
“이잎새, 더 안 할 거야?”
몽롱하게 잠에 빠질 즈음, 마세준이 작은 목소리로 물어 왔다.
“오천 원 뽕 다 뺐으니까 오늘은 그만할래.”
최저시급도 안 나오는 오천 원짜리 과외의 부작용이 그런 것이었다. 나는 중얼거리듯 답했고, 마세준은 피식 웃었다. 웃지 말라니까, 또 웃냐…….
산초가 사료를 씹는 소리에 눈을 뜨자, 해가 지려는지 뜨거운 태양이 거실로 쏟아지고 있었다. 사방이 온통 붉었다. 몸을 일으킨 나는 길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사료를 다 먹은 산초가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 얼굴을 몇 번 비벼 주었다. 산초는 만족스럽다는 듯 크릉크릉 소리를 내더니, 다시 캣타워로 올라가 아쉬운 일광욕을 즐겼다.
마세준은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흘끔 그 밑에 깔린 문제집을 보자, 중1 수학 끄트머리였다. 쳇, 맨날 나처럼 빈둥대는 줄 알았더니 지 혼자 공부를 많이도 해 놨다. 아니, 농구하고, 산초랑 놀고, 허구한 날 책 읽고, 언제 공부까지 했대.
나는 턱을 괴고 앉아서, 잠든 마세준의 얼굴을 한참 동안 뜯어봤다. ‘꺅!’ 마세준만 보면 소리를 지르던 애들의 음성이 귓가에 스치는 것 같았다. 뭐, 잘생기긴 했지…….
가지런한 이마 아래 곧게 뻗은 눈썹이 자리해 있었고, 길쭉한 눈 끝에는 까만 속눈썹이 맺혀 있었다. 코는 또 어떻고. 그리고 입술은……. 나는 마세준이 웃을 때마다 뺏어 오고 싶다고 생각했던 입술로 눈을 돌렸다. 시원하게 끝이 올라간 입술은 가히 탐이 날 만한 것이었다. 어차피 잠든 마당에 뜯어 와도 모를 것 같았는데, 양심상 참았다.
나는 마세준의 속눈썹으로 손을 뻗었다. 짜식, 속눈썹 진짜 예술이네. 그다음에는 코끝을 만졌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실리콘이나 귀 연골이 들어 있을 법해서. 그다음에는…… 전에 면도하다 배였다던 턱을 만졌다. 상처는 이제 눈을 뜨고 찾아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살성도 좋다. 얜 진짜 안 가진 게 뭐야. 진짜 재수 없다. 나는 괜히 미워서, 잘 자고 있는 마세준의 볼을 한번 푹 찔렀다. 미동도 없는 게 신기해서 또 볼을 찌르려는데,
“하지 마.”
마세준이 눈도 안 뜨고 내 손을 잡아 저지했다. 아니, 눈두덩이에도 눈이 달렸나…….
“야, 뭐. 그거 좀 만진다고 닳냐? 치사하게.”
마세준은 피식 웃으며 손에 힘을 풀었다. 그래, 저 입술이다. 어떻게 저렇게 예쁘게 올라가지?
얼핏 다시 잠든 것 같기에, 나는 다시 손을 들어 마세준의 얼굴을 요리조리 만졌다. 초딩 마세준과 머리 뜯으며 싸웠을 때 이후로 이렇게 머리카락을 만진 것도 오랜만이었다. 이 새끼, 지 혼자 좋은 샴푸를 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한참 뒤에 손을 뗐다. 세상 만만한 마세준이지만, 그래도 입술을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