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97)

66화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려는 겁니까?”

슈렌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카드란이 이렇게 비장하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유이시엘을 데리러 간다. 류크가 협박 편지를 보내서 짐에게 혼자 오라고 했다.”

슈렌과 라젤란은 경악했다. 그렇지만 곧 류크의 성격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걱정 어린 눈으로 카드란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곧 죽게 되실 성녀님인데 그럴 가치가 있습니까?”

라젤린이 냉정히 물었다.

“짐에게는 있다.”

카드란은 그들에게 말하며 웃었다.

유이시엘이 죽게 될 것은 알고 있었고, 그 미래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런데 그 노력이 소용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 마음이 타들어 갈 듯 아팠다.

“내가 살려면 그녀가 필요해.”

유이시엘이 어떤 존재인지, 그저 살아만 있어도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슈렌과 라젤란은 그런 카드란을 말리지 않았다. 후에 레카린과 기첼이 반대했지만 카드란은 혼자서 말을 타고 유이시엘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 * *

유이시엘은 혼자서 히죽이는 류크를 응시했다. 류크는 성물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오랫동안 말을 못 한 사람인 양 성물을 붙잡고 하루 내내 떠들어 댔다.

“내가 이 꼴이 된 것은 모두 다 저 계집과 카드란 때문이야.”

“아, 그렇지. 나는 잘 알지.”

“그런데 왜 성물, 네가 나를 도와주지?”

류크는 어느새 성물에게 말을 놓으며 물었다. 성물은 씁쓸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초대 황제에게 속아서 여기에 갇힌 거거든. 나는 원래 황가에 종속된 몸이 아니야. 그래서 복수할 기회를 늘 노리고 있었어.”

류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황가의 핏줄은 모두 다 싫어.”

성물은 그렇게 말하고는 밖을 바라보았다.

“우리 말이 잘 통하는걸?”

류크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성녀는 물론 카드란도 곧 너의 손에 죽을 거야.”

“그렇지!”

류크는 들고 있는 검을 바라보았다.

“이것으로 그놈을 찔러서 죽일 거다. 바로 죽일 수는 없지. 고통스럽게 죽게 할 거야! 내가 감옥에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유이시엘은 자신을 이용해서 류크가 어떤 짓을 할지 알고 조금 걱정이 되었다. 카드란이 그냥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자신은 오래전에 버림받았다. 이번에 다시 버림받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죽음을 맞이하면 되는 일이었다.

유이시엘은 고개를 숙였다.

어린 시절, 자신은 카드란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다. 자신이 목숨을 걸었다고 상대도 그러길 바라는 건 무리였다. 그리고 그런 것을 유이시엘도 바라지 않았다.

죽음이 다가온다. 내일이면 자신은 잠이 든다.

“카드란…….”

삶의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던 존재다. 그가 있는 것만으로 의지가 되고 힘이 되었다.

그는 이런 마음을 알까.

어린 시절, 유일하게 다가온 빛이었기에 더욱더 매달려 놓지 못했다.

이제는 끝난 마음이지만.

카드란이 오지 않는다 해도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이시엘, 카드란이 올 것 같아?”

성물이 다가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모르겠어요.”

“왔으면 좋겠지?”

“아니요.”

유이시엘은 단호하게 말했다.

* * *

1달 전 황실 비밀 서고에서 서류를 보고 있을 때였다. 자신 옆에 나타난 성물이 이기죽거렸었다.

〈그때 그렇게 버린 주제에 이제 와서 되돌리려고 노력하네.〉

성물은 카드란이 열심히 서류를 뒤지는 것을 비웃었지만 카드란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서류만 보았다. 그에 성물은 그대로 사라졌었다.

“버린 것이지.”

카드란은 말을 타고 가며 중얼거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 속도가 생각보다 나지 않았다. 물에 젖은 길을 달리며 그는 유이시엘을 떠올렸다.

언제나 자신의 위치에 서서 조용히 있던 그녀.

한 번은 버렸고 두 번째에는 죽이려고 했다.

아무리 이유가 있다 해도 자신이 한 짓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유이시엘이 죽어 간다. 그녀를 버려야 하는 순간이 왔다. 심지어 다들 버리라고 말한다. 그녀가 죽고 나서 나서는 게 낫다고 했다.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다.

“이번에는 제발!”

자신이 구해 줄 기회가 있기를, 그녀를 버리지 않을 수 있기를.

그는 간절히 바라며 말을 타고 달렸다.

* * *

비가 오고 있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에 유이시엘은 고개를 돌렸다. 어느덧 해가 지고 저녁이 찾아왔다.

이 밤이 지나면 자신은 잠든다.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아무래도 카드란의 얼굴은 보고 갈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가 오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죽는 건 아쉬웠다.

그냥 뭐랄까, 그에 대한 마음은 죽었어도 여운이 남아 있는 듯했다. 목숨을 걸고 사랑했고, 미움을 각오했던 자신의 인생 밑바닥에 고인 찌꺼기 같은 거랄까.

“아니,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류크는 버럭 화를 냈다.

“곤란하네. 내일이면 성녀가 잠드는데.”

성물은 옆에서 류크를 자극했다. 그러자 류크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 자식, 정말로 안 오는 건 아니겠지?”

류크는 문득 걱정이 되었다.

“그 자식, 유이시엘을 사랑하는 것 아니었나? 그런데 왜 안 오는 거야?”

“일부러 천천히 오는 건지도 모르지. 인간이란 연기하는 존재니까.”

자신이 죽은 후에 도착하도록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성물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카드란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오면 오고, 오지 않으면 그냥 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거짓 연기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유이시엘이라도 찔러 죽여야 하나.”

류크가 검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유이시엘이 그를 바라보다 싱긋 웃었다.

“절 죽이려고요? 지금 죽여 봤자 잠들 뿐이에요.”

유이시엘은 류크를 비웃었다.

“어리석은 자.”

“이 계집이!”

그는 열을 받아서 소리를 쳤다.

류크의 모습을 보던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토록 싫어하던 류크가 발악하는 걸 봐도 이제 아무런 감정이 안 드는 것을 보니 정말로 죽을 때가 된 모양이다.

“그냥 너라도 죽어!”

류크는 검을 들고 그녀를 찌르려고 했다. 카드란이 오지 않는다고 확신한 것 같았다.

유이시엘 역시 그렇게 여기고 있었기에 그냥 눈을 감고 그의 검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천둥이 치며 거친 빗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빛이 번쩍하는 장면을 등지고 한 남자가 비에 젖은 채 들어왔다.

“늦지 않았군.”

카드란이 왔다.

어리석은 남자. 그가 와 버리고 말았다.

카드란은 소리를 내며 저벅저벅 걸어왔다. 짧은 머리카락을 적신 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걸어왔다.

“유이시엘.”

그녀가 무사한지부터 살핀 그는 아직 눈을 뜨고 있는 유이시엘을 보고 안도했다.

“왔군.”

류크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유이시엘의 턱을 움켜쥐었다. 단검을 든 그가 카드란을 협박했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유이시엘의 목숨은 없다.”

카드란은 가만히 있었다.

“무엇을 원하지?”

카드란의 질문에 류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너의 목숨.”

“나의 목숨이라…….”

“그 빌어먹을 목숨을 진작에 끊어 놨어야 했다.”

하지만 황제의 목숨을 앗아 가는 것은 성물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류크는 유이시엘의 턱을 잡았다.

“성녀가 곧 잠든다고 성물이 말해 주더군. 그럼 너는 평생 유이시엘을 보지 못하게 되지.”

류크가 든 검이 유이시엘을 향했다.

“이 계집을 찔러서 영원히 잠들게 해 주지.”

“차라리 나를 찔러라.”

카드란의 말에 류크가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성녀에게 치료를 명령하지 않으면 황제도 죽일 수 있다. 유이시엘이 저렇게 있고 내가 저항하지 않으면 가능해.”

카드란의 얼굴이 초조해 보였다. 그의 말에 유이시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장 도망가요!”

유이시엘이 소리치자 카드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는 꼭 지킬 거다.”

도대체 무엇을 지킨단 말인가. 자신이 그를 지키는 것이지, 그가 자신을 지키는 것은 아니었다.

류크는 웃으면서 검을 들고 카드란의 향해 달렸다. 달려온 그는 즉시 카드란의 배를 검으로 찔렀다. 성물의 힘이 들어간 듯 검이 카드란의 복부에 깊이 들어갔다.

카드란은 이를 악물며 쓰러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죽어!”

류크는 다른 곳을 찌르려는 듯 검에 힘을 주려는데 카드란이 맨손으로 검을 잡았다.

“유이시엘, 성물을 파괴해!”

그리고 그는 유이시엘에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유이시엘의 눈동자가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