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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13/97)

13화

* * *

유이시엘은 코넬을 치료했다. 황제의 허락이 떨어졌기에 그녀의 몸에는 흉터 하나 남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정신이었다. 일어난 코넬은 방을 나가기를 두려워했다.

“괜찮을 거야. 넌 이제 황제의 시녀니까.”

그러자 코넬은 유이시엘을 바라보았다.

“제가 황제 폐하의 시녀요?”

“그건 싫어?”

코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없어지면 유이시엘 님은 어떻게 되나요?”

이 아이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는데도 원망하지 않고. 가슴속으로 뜨거운 것이 밀려왔다.

“나한텐 네가 무사한 게 중요해.”

유이시엘은 손을 꼭 잡았다.

그 목걸이엔 어린 자신의 흔적이 들어가 있기에, 숨기고 싶었다. 그것을 보고 카드란이 무언가를 떠올릴 수도 있었기에.

하지만 그녀는 코넬을 살리고 싶었다. 자신이 죽기 전에 주변 사람들이 더 죽는 것은 원치 않았다.

“코넬, 내가 지켜 줄게.”

코넬은 유이시엘을 보며 울었다.

그렇게 유이시엘은 코넬을 보냈다.

그녀의 곁에는 이제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3. 마음이라는 괴물

유이시엘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칭송했다. 그녀를 류크와 다른 사람으로 봐줬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카드란의 계획대로 유이시엘에게 은닉 재산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문을 가지게 된 사람이 많아졌다.

후에 카드란이 그녀에게 은닉 재산이 없다는 걸 밝혔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심했다.

본래 의심이란 한번 시작되면 쉬이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

유이시엘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시녀가 거칠게 빗겨 주었다.

긴 분홍색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묶은 소녀는 황비의 시녀로 있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머리 손질을 할 때 빗질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옷을 다리는 거나 윗사람을 모시는 게 서툴렀다.

자신의 궁에 지원하는 시녀가 없었기에 그녀가 오게 된 것이리라.

“샤렐, 내가 하겠다.”

유이시엘은 샤렐을 멈추게 하고 자신이 직접 빗질했다. 원래 늘 혼자 하던 거다. 코넬이 직접 하겠다고 해서 시킨 거지, 코넬이 원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직접 했을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빗질하는 유이시엘을 샤렐은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로 보았다.

“나는 기도실에 가서 기도를 하고 보육원에 갈 거다. 그동안 너는 내 방을 정리하면 돼.”

유이시엘의 말에 샤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유이시엘이 방에 없는 걸 좋아하는 티를 냈다.

‘그런가.’

자신을 반겨 주는 이는 코넬 말고 없었지.

그녀는 씁쓸히 웃었다.

성녀가 하는 일 중 제국의 미래를 위해 성물 앞에서 기도하는 일이 있다. 이 일은 황비가 되고 나서도 그녀가 꾸준히 했다.

‘후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에렌의 심장에 박힌 독이 이전보다 줄었다는 것.

이대로 가면 몇 달 뒤에는 깨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지에렌만은 살리고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그녀 뜻대로 될지는 의문이긴 했다.

* * *

코넬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카드란의 시녀가 되고 나서 아무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잘 풀린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침마다 좋지 않은 모습을 봐야 했으니까.

아침에 카드란의 침실에 들어가면 카드란과 세안이 같이 침대에 있었다. 유이시엘을 아내로 맞이해 놓고 다른 여자와 잠을 자는 황제 모습은 보기 싫었다.

볼 때마다 천불이 났다.

‘못된 황제.’

황제가 유이시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코넬은 유이시엘이 얼마나 청렴하게 살았는지 잘 알았다. 수많은 남자가 유혹해도 거기에 넘어가지 않고 성녀로서 의무를 다하며 살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 그녀를 추문으로 황제가 망가뜨렸다.

“차를 가져왔습니다.”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의 앞에서 감정을 숨기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녀의 성격은 워낙 솔직했기 때문이다.

그런 코넬을 보던 카드란은 무심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독이라도 탔나?”

카드란의 말에 코넬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 네가 그런 일을 하면 황비가 배후로 지목될 테니.”

코넬은 이를 악물었다. 황제의 말이 맞았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나가 봐. 점심때도 커피를 들고 오도록.”

“네, 폐하.”

코넬은 카드란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한편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세안이 일어나 카드란에게 물었다.

“코넬을 그냥 둬도 되나요?”

“황비 때문에 아무 짓도 못 해.”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자신을 적대하는 이를 아무렇지 않게 가까이하다니.

하긴 황제는 다른 이들의 감정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뼛속까지 냉정했다. 유이시엘에게 하는 짓을 보면 잔인하기도 하다.

“곧 있으면 사냥 대회가 열린다.”

“사냥 대회요?”

황제가 직접 여는 대회는 귀족들의 잔치다. 정부는 참석할 수 없는 자리였다.

“그대는 황비와 같이 오도록 해.”

“폐하께서는요?”

“나는 먼저 출발할 거다. 맞이해야 할 손님이 있어.”

“알겠어요. 다만 황비와 제가 비교가 많이 될 텐데.”

정부와 황비, 그것만으로도 사냥 대회에서 엄청난 이목을 끌게 될 것이었다.

“황비보다 더 아름다운 드레스를 내려 주지.”

카드란은 세안이 무엇을 신경 쓰는지 알았다. 그 역시 세안이 유이시엘보다 밀리는 건 싫었다.

“그럼 괜찮을 듯하지만, 이왕 하는 거 이번 일만 하고 저를 놓아주시는 게 어때요?”

세안이 곤란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와 비교하고, 경쟁하고 이런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리고 상대는 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성녀였다.

“그냥 해. 내가 약점을 쥐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폐하는 정말로…….”

그냥 말을 말자.

그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내저었고, 카드란은 무심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안은 이 바보 같은 연극은 하고 싶지 않지만, 카드란이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 * *

유이시엘이 기도실로 들어갔다. 조용히 앉아 기도하던 그녀는 문득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기운을 느꼈다.

“아, 피곤해.”

성물이 오랜만에 현신했다. 성물은 유이시엘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황제가 마음에 안 들어.”

성물은 툴툴거렸다.

“만날 이상한 일이나 꾸미고.”

성물의 말에 유이시엘은 살며시 웃었다. 자신의 곁에 이젠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성물이 있었다.

“폐하와 말씀 나눠 보셨어요?”

“아니, 내가 왜?”

“그는 황제잖아요. 그 앞에서 현신하셔야죠.”

“싫어.”

성물이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유이시엘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의 일처리는 마음에 드시죠? 전 황제는 한 번 보시더니 관심 끄고 아예 투덜거리지도 않으셨잖아요.”

그러자 성물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내 마음을 너무 잘 아네?”

성물은 하늘을 날았다. 작은 날개가 파닥거렸다.

“그 남자는 네 말대로 일도 잘하고 깔끔해.”

“그렇죠?”

“황제의 그릇은 맞아.”

성물의 말에 유이시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드란이 황제가 되도록 성물을 설득한 보람이 있었다.

“어차피 다음 성녀가 곧 생길 텐데. 저에 대한 동정은 접으셔야죠.”

그러자 성물이 버럭 소리쳤다.

“싫어, 그래도 유이시엘이 가장 불쌍하단 말이야!”

성물은 그렇게 말하고 유이시엘의 손을 잡았다.

“정말로 그냥 죽을 거야? 카드란 그 자식에게 복수하자!”

“어떻게요?”

“그건…….”

“성물은 황제의 편이잖아요. 황제에게 해를 끼칠 순 없잖아요.”

그녀의 반박에 성물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난 유이시엘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성물은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동정해 줘서 고마워요.”

지금은 자신을 싸늘히 바라보는 시선들만 있다. 그 와중에 따뜻한 감정을 건네받으니 정말로 크게 와닿았다.

이런 동정이라도 필요했다.

* * *

레카린은 황제의 최측근인 황실 기사단장이 되었고, 카드란을 따르던 상당수가 군부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전쟁터를 떠돌던 인재들이었다. 그렇기에 군부는 빠르게 개혁이 되고 있었다.

레카린은 오늘도 훈련 중인 기사단을 바라보았다. 귀족 출신에 실력이 없지만 낙하산으로 들어온 이들을 모조리 기사단에서 내보내고 실력이 있는 자들만으로 다시 구성하고 있었다.

“아, 레카린 형님.”

그런 레카린을 향해 누가 손을 흔들며 걸어왔다. 긴 초록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고 허리춤에 칼을 찬 그는 볼에 칼자국이 나 있고 입술은 무척이나 붉었다. 갈색 눈동자가 날카로워 보이는 남자였다.

이름은 기첼 코렌. 코렌 자작가의 사생아였다가 이번에 변방을 책임지는 최고 우두머리인 북쪽 사령관이 되었다. 카드란에게 충성을 바치는 또 다른 수하이기도 했다.

“오랜만이군, 기첼.”

“오랜만에 수도에 오니 좋군요.”

그는 카드란이 결혼식을 하고 난 뒤 바로 변방으로 떠나 그곳에서 그동안 호의호식하며 공을 가로챘던 부패한 이들을 모조리 다 정리했다.

오랫동안 군부가 류크와 전대 황제의 무관심에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가장 잘 아는 게 카드란과 카드란의 수하들이었다.

“폐하께서는 잘 지내고 계십니까?”

“인사하고 오지 그랬냐.”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먼저 손님이 있어서 일단 나왔습니다.”

기첼의 말에 레카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헬몬 공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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